제 1 편 달 비

제 3 장

 

집에 돌아온 정옥은 혹시나 해서 청천강화력발전소건설장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부주석은 자기 방에 있었다.

《부주석동지, 저예요, 정옥이예요.》

《오, 은경이 어미냐?》

김일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뚝한 성미 그대로 목소리도 무뚝뚝했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철이 할머니가 걱정하시던데… 소화장애로 신고하시다가 건설장에 가셨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구…》

《지금은 일없다. 그런데… 왜 전화를 하느냐?》

부주석은 성미그대로 단도직입적이였다.

정옥은 잠시 주저했다. 수화기로 여러 사람들의 말소리들이 흘러나오기때문이였다. 아마도 부주석방에서 무슨 협의회를 하는 모양같았다.

《지금 무슨 모임을 하는것 같구만요. 바쁘시겠는데… 후에 다시 전화를 하겠어요.》

《일없다. 이 사람들이 무슨 공법이 이렇구 저렇구 하면서 말씨름을 하는데… 결판을 낼 때까지 우린 우리끼리 〈모임〉을 하자꾸나. 무슨 일이냐?》

정옥은 그 《말씨름선수》들이 보란듯이 삑 돌아앉아 전화를 받고있을 부주석의 우둥퉁한 얼굴모습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상긋이 웃었다.

너무 과묵해서 기자들이 취재를 왔다가 한시간동안에 두세마디밖에 안하는 바람에 두손들고 돌아갔다는 김일이지만 옛 전우의 딸인 정옥이와는 언제나 례외였다.

《좀 물어볼게 있어서요. 부주석동지가 1936년도에 우리 어머니랑 함께 백두산으로 나오실 때 말이예요. 그때 어머니와 둘이 식량공작을 나가셨던 일이 있었다고 했지요?》

《음,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려인숙에서 한 녀자를 본 생각이 나세요? 정선화라구…》

《정선화?》

김일은 이렇게 되묻더니 잠잠해졌다. 잠시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인지…

이윽고 석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이 난다. 잠간 만났댔지. 그런데 그건 왜 갑자기 묻느냐?》

《저한테 우리 어머니에 대한 실화가 와있는데 거기에 그런 이름이 나와서…》

《음…》

《그 녀자는 어떤 녀자예요?》

김일은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는듯싶더니 뜨직뜨직 말했다.

《글쎄… 불쌍한 녀자라고 해야 할지…》

《부주석동지, 좀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그 녀자는 도대체 누구예요? 우리 어머니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사연이 좀 있다. 너희 어머니도 그 녀자를 만난 다음엔… 좀 괴로워하는것 같더라. 어머니와 무척 가까운 사이였댔으니까…》

정옥은 놀랐다. 어머니가 그 정선화를 만나고 괴로와했다니… 그럼 우리 어머니가 그 녀자한테 무슨 죄되는 일이라도 했단 말인가? 실화에서는 그 정선화가 우리 어머니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옥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불길한 예감이 슬며시 머리를 쳐들었다.

어머니는 정옥에게 있어서 신성불가침이였다. 어머니가 남들을 어떻게 위해주었다는것은 투사들이 다 알고있다. 어머니는 혁명을 위하고 동지들을 위하고 인민들을 위하여 길지 않은 한생을 깡그리 바친 혁명렬사이다.

그런 우리 어머니가 그 정선화를 만나고 괴로와하다니…

《우리 〈씨름선수〉들의 〈경기〉가 끝난것 같구나. 뭐 다른건 없느냐?》

정옥은 너무 시간을 지체한것 같아 그럼 건강에 주의하시라고 당부하고나서 송수화기를 놓았다.

《아유, 엄만 집에 들어와서도 〈혁명사업〉이나? 엄마는 집에 오면 말그대로 철저히 엄마라는걸 알라요.》

금방 학교에서 돌아오는듯 막내딸이 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하는 《훈시질》이다.

정옥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나가면서 그 애의 오똑한 코를 꼭 집어주었다.

《아야.》

《아버지 들어오시기 전에 방안청소나 해라.》

《예예, 에 오늘 외국어 열단어는 또 밑졌다.》

막내딸이 가방을 방에 들여다놓고 실내옷을 갈아입으며 탄식처럼 하는 말이다. 방안청소를 하는 시간이면 외국어 열단어는 뗄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게 시간을 아끼는 애가 공부는 왜 1등을 못하니? 전번 수학경연때두 9등을 했다면서?》

《우리 학급엔 25등을 한 애두 있다나…》

《야, 난 대학때까지두 다섯손가락안에서 벗어나본적이 없다. 9등이 뭐 그리 장하다구…》

《소시적에 호랑이 잡지 못한 사람 없대요.》

《고건 그저 입만 까가지구.》

좀처럼 씨가 먹어들어가지 않는 막냉이이다.

《어쨌든 다음번에두 그래봐라. 5등권내에 들어서지 못하면 집에 들여놓지 않을테다.》

《찬성, 그런데 내가 집을 나가면 엄마가 울며불며 찾아다니겠는데 그땐 어쩌면 좋담, 호호호.》

세면장에 들어갔는지 솨- 하고 수도물소리가 났다.

정옥은 어이가 없어 《흠.》 하고 코소리를 내고말았다. 막냉이라고 어자어자했더니 그저 응석만 부린다.

저런게 어떻게 학급 사로청(당시) 초급단체위원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옥은 교원들에게 단단히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쌀을 일었다.

저녁밥을 먹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자 정옥은 조용히 서재로 들어갔다. 낮에는 행정시간이여서 얼마 보지 못했지만 밤에는 많이 볼수 있었다.

정옥은 책상에 마주앉자 그 실화원고를 펼쳤다.

말파리는 여전히 꾸준히 달리고있었다.

《아까 려인숙에서 만났던 녀자가 누구냐?》

정선화는 무뚝뚝하게 묻는 오빠의 목소리에 생각에서 깨여났다. 얼핏 오빠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차거운 눈바람이 가시돋친 눈쪼각들을 얼굴에 쫘르륵 후려갈겼다. 선화는 진저리를 쳤다. 목을 움츠리며 얼른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저 좀… 아는 사이예요.》

서봉삼은 《쩌, 쩌》하면서 연신 채찍을 휘두르다가 흘깃 정선화를 돌아보았다.

《그런걸 뭘 은인이나 만난것처럼 떠들썩거리면서… 그만큼 빨리 가야 한다구 했는데… 녀자들이란 참…》

선화는 흘끔 오빠를 다시 쳐다보았다. 서봉삼은 시무룩한 표정을 풀지 않은채 《쩌!》 하고 채찍을 휘둘렀다. 성이 난 모양이다. 가죽으로 만든 채찍이 오른쪽 말의 등허리를 휘감아치자 두마리 다 껑충 놀라며 네굽을 안고 내달렸다. 날이 어둡기 전에 현성에 가대야 한다면서 저렇게 서두르는것이다. 오늘중으로 도착하지 못하면 어머니가 근심을 한다면서… 현성의 새로 마련한 집에서는 어머니가, 그러니 정선화의 맏이모가 기다리고있다. 서봉삼은 어머니가 심하게 앓을 때 단지까지 했다는 쉽지 않은 효자였다.

정선화는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오빠는 어머니가 기다리고있는 현성으로 한시바삐 가야겠는데 《그저 좀 아는》정도의 녀자나 만나서야 왜 그렇게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느냐 하는 의미에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계순언니를 념두에 둔 말이라고 생각하니 귀에 거슬렸다.

선화는 계순이가 있을 려인숙쪽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뽀얀 눈의 장막뿐이였다. 눈바람은 우우 노한 소리를 지르며 룡트림을 하듯 눈가루를 하늘공중으로 말아올리기도 하고 와우-와우- 산언덕으로 치달아오르는가 하면 잎없는 앙상한 나무가지들을 와지끈 뚝 꺾어 내던지기도 하면서 미친듯이 날뛰고있었다. 여기저기서 눈갈기가 뱀처럼 기여다녔다.

선화는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계순언니가 그 옷을 입고 얼마나 추울가.)

자기 외투라도 벗어주었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허줄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계순의 모습이 자꾸만 망막을 지져댄다.

불쑥 그를 처음 만나던 3년전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저 언니는 저런 옷차림이였지.)

 

1

 

그날 정선화는 룡정에서 국수집을 운영하는 둘째이모네 집 웃방에서 이미 보풀이 인 소설책을 흥심없이 뒤적이고있었다. 최찬식이 쓴 《춘몽》이라는 소설이였다. 출판된지는 20년도 넘었음직한 소설책이지만 상처입은 고독한 마음을 달래이기에는 그런대로 보탬이 되는듯도 싶었다.

정선화가 소설의 주인공 옥선이 자기를 도적들에게서 필사적으로 구원해준 안익상이와 결혼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있는 대목을 읽고있는데 밖에서 《어멈! 어멈!》 하는 이모의 청높은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이모는 이 국수집의 《마님》으로 불리우고있었다.

선화는 마당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 나가요.》

주방칸에서 칼장단소리가 멎더니 이어 문이 열리고 알락달락한 문양의 앞치마에 물묻은 손을 닦으며 스무나문살 났음직한 젊은 녀인이 나왔다.

《음, 임자인가?》

이모는 왜서인지 이마살을 찌프렸다. 자기의 실수를 깨달은 모양이다. 주방칸에서 일하던 나이지숙한 어멈이 달포전에 왜놈경찰에게 잡혀가 잘못되였다. 공산당이라는것이다. 그런데도 이모는 버릇된듯 《어멈!》 하고 찾군 했다. 그래서 자연히 처녀인지 청상과부인지 분명치 않는 저 한미영이라는 녀자가 《예-》 하고 대답하지 않을수 없었고 결국은 《어멈》이 된것이다.

《오늘부터 이 처녀를 데리구 일하라구. 이름은 방영순이야. 잡부로 들어왔으니 아무 일이나 시켜두 돼.》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신경질적인 감정이 깔려있는듯 했다.

선화는 그제야 이모옆에 있다가 한걸음 나서며 미영에게 인사하는 단발머리처녀를 보았다. 지금껏 몸이 뚱뚱한 이모에게 가리워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무릎까지 오는 검정 베치마에 흰 당목저고리를 입었는데 팔굽과 치마단쪽에 손바닥만 한 천을 덧대고 기운 자리를 보던 선화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불쌍한 처녀이다. 먹고살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처녀, 며칠전에 저 처녀는 저런 차림으로 와서 이틀을 굶어서 그러는데 먹을것을 좀 달라고 사정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또 와서 자기는 부모도 형제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면서 먹여만 주면 아무 일이건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간청했다.

이모는 우리는 그런 거지를 받아 먹여주는데가 아니라고 돌려보냈다. 그런 이모가 밤에는 이모부에게 그 처녀가 옷은 허줄해도 사람은 곱고 똑똑해 보인다느니, 삯전을 주지 않아도 일을 하겠단다느니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이모부는 《맘에 들면 당신 마음대로 하구려.》 하더니 이렇게 락착된 모양이다. 측은하고도 불쌍했다. 얼마나 가긍한 처지인가.

대신 자신은 중학교까지 졸업하고서도 이렇게 호의호식하며 빈둥거리고있으니 세상은 얼마나 불공평한것인가. 《유산자》와 무산자…

순간 정선화는 오히려 저 람루를 걸친 방영순이란 처녀가 부러워졌다. 내가 저런 무산자라면 그 청년을 따라 유격근거지로 갔을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쳤던것이다. 자기는 아버지가 정미업을 하는 《유산자》인 까닭에 그를 사랑할 권리를 상실하였다. 아니, 애당초 자격이 없었다.

지철민,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어깨가 쩍 벌어진 바위처럼 듬직한 청년, 순박하고 어질고 고지식한 사람, 남들이 열마디, 스무마디할 때도 겨우 한두마디씩이나 하고 남들이 너무 우스워 눈물까지 찔금찔금 흘려가며 죽겠노라 대굴대굴 굴 때에도 《뭘 그다지야…》 하는 식으로 씩- 하고 한번 황소처럼 웃는 총각.

선화는 지철민을 처음 알게 된 2년전의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그날은 비가 몹시도 내렸었다. 머리우에서는 꽈르릉 꽈르르릉 우뢰가 가로세로 마구 굴러다니면서 어디 밖으로 나와보기만 하라는듯 으름장을 놓고있었다.

선화는 어머니께 드릴 첩약봉지들을 유지로 겹겹이 싸서 품고 집으로 가고있었다. 어머니가 심하게 앓는다는 전갈을 받은것이다. 아버지가 건강치 못한 약골이여서 궂은일, 마른일 도맡아하던 어머니가 앓아누워 고열에 시달리면서 정신까지 잃군 한다니 한시도 지체할수가 없었다.

해란강을 가로지른 토성포다리를 건느기 바쁘게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세찬 비바람이 회오리치듯 덮쳐들더니 우산을 꺼꾸로 뒤집고 중둥이를 뚝 꺾어버렸다. 그러자 동이로 물을 쏟아붓듯 대줄기같은 비가 머리며 어깨며 앞가슴에 쫙쫙 쏟아져내렸다.

선화는 진저리를 치면서도 용감하게 전진했다.

덜덜 떨면서도 비장하게 옛 시조 한구절을 외웠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하늘에서 큰일이 난듯 꽈르릉꽈르릉 굴러다니던 우뢰가 마침내 어디에 걸채여 왈칵 넘어진듯 했다. 갑자기 눈이 부시게 새파란 섬광이 번쩍하며 하늘을 깨버렸다.

《우지끈 딱- 꽈당탕 땅.》

《엄마!》

선화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쥐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가슴이 한줌만 해졌다.

(내가 벼락맞은건 아닌가?)

벼락은 맞은것 같지 않았다. 밤알같은 비방울들이 머리며 어깨며를 마구 두드려대고있다는것이 새삼스레 감각되였던것이다.

머리우에서는 다시금 꽈르릉거리며 우뢰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을 내웠는데도 또다시 일어나 주먹을 부르쥐고 총총히 걸어가는 처녀를 보니 화가 나는 모양이였다. 이번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려고 벼르는듯싶었다.

(암만이구 그래보라지. 내가 못 갈줄 알구?)

선화는 이발을 사려물었다.

길옆으로는 시뻘건 탕수가 부글부글 끓으며 콸콸 흘러간다.

그 반대쪽에서는 무섭게 불어난 해란강이 솨솨 몸부림을 친다. 풀검불이며 뿌리채 뽑힌 나무등걸이며 가마니짝이며 깨진 바가지짝같은 잡동사니들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간다.

또다시 한 서너번 번쩍번쩍 하늘이 찢겨나갔다. 뒤따라 뢰성이 꽈당탕땅땅 하고 울부짖었다.

하늘이 통채로 무너지든 땅덩이가 산산이 부서져나가든 무슨 결판이 날것 같다.

이번에는 앞에 큰물이 막아섰다. 길옆으로 흘러가던 탕수가 산골짜기를 따라내려온 물과 합쳐서 길을 가로질러 해란강으로 빠져나간것이다.

원래는 이곳에 자그마한 나무다리가 있었다.

선화는 한 열댓메터 폭이 되는 시뻘건 탕수를 원망스레 쏘아보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물속에 잠겼을 다리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아무리 깊어야 무릎이상은 넘을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어쩐지 겁이 났다.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안타까이 서성거리던 선화는 마침내 아래입술을 꼭 깨물었다. 신발을 벗어들고 용감하게 개울물에 들어섰다. 앓고있는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범람하는 물소리를 누르며 가슴에 송곳질을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어머니가 잘못될것만 같다. 물은 벌써 정갱이를 넘어섰다. 눈앞이 또다시 펑끗했다.

《들어서지 마시오. 위험하오.》

저앞에서 학생복을 입은 웬 청년이 손을 내저으며 소리친다. 선화는 입술을 감빨았다.

주저할수도 돌아설수도 없는 선화였다. 눈앞엔 앓아누운 어머니모습뿐이다. 물살은 점점 더 세차진다. 무릎을 넘어섰다. 몸이 자꾸만 아래로 쏠리는것이 가누기가 힘들다. 이제는 다리가 있는 곳에 거의 온것 같다. 그런대로 다리만 넘어서면 될것이다. 선화는 조심조심 발을 내짚었다. 그 청년도 마주 건너왔다. 처녀가 건너오는데 사내인 자기가 주저했던것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얼핏 그를 쳐다보며 발을 내짚던 선화는 그만 몸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면서 풍덩 물에 어푸러졌다. 다리가 있어야 할 위치였다. 다리가 떠내려갔다는것을 알지 못했던것이다.

《엄마!》

몸은 사정없이 물살에 떠밀리웠다.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허우적거렸으나 너무도 물살이 세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선화는 한손으로는 첩약봉지꾸레미가 들어있는 가슴을 꼭 눌러안고 한손은 마구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일어서려 했으나 물살의 힘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잔등을 콱 떠박지른다. 떠내려오던 통나무같다. 이번에는 풀덤불같은것이 얼굴에 들씌워졌다.

《사람… 살…》

꼴깍 물이 한입 들어왔다. 누구인가 억센 손으로 자기를 물속으로 끌고들어가는것 같다.

선화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어느 집 방안에서였다. 한 늙은 녀인과 얼굴이 둥그스름한 청년이 자기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에구, 체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만.》

늙은이가 반색을 했다. 얼굴이 둥실한 그 청년의 억실억실한 눈가에도 불꽃같은것이 번쩍 빛났다.

《여기가… 어디예요?》

선화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며 물었다. 그러고보니 자기는 이불을 쓰고 누워있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제야 자기가 지금 알몸으로 이불을 쓰고있다는것을 깨달은것이다.

《여긴 우리 집이라네. 이 젊은이가 임자를 업구 왔더구만. 강으로 떠내려갈번 한걸 겨우 건져냈다더구만. 에그, 이렇게 고운 체네가 어쩌자구 그런 물엘 뛰여드나, 응? 무슨 사연이 있길래…》

녀인은 말이 좀 다사한축 같았다.

선화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애써 물었다.

《저… 혹시… 약은…》

《약은 있네. 좀 젖긴 했지만… 에그, 글쎄 정신을 잃구두 그 약꾸레미만은 꼭 붙들구있더라지 않나.》

선화는 약이 그대로 있다니 안도의 숨이 나갔다.

《그래 약을 사러 갔던 길인가?》

《어머니가 앓아서…》

《원 이런… 효녀로구만, 효녀야. 이렇게 큰물이 난 때에 모친약을 사겠다구 나서다니… 임잔 어쩌면…》

선화는 녀인의 칭찬이 쑥스러워 눈길을 돌렸다. 저쪽 구석쪽에 빨래줄을 매고 자기의 젖은 옷을 걸어놓은것이 보였다.

《저… 난… 가야겠는데…》

《가다니? 이제? 체네는 집이 어딘가?》

《옥계동…》

《뭐, 옥계동? 그 먼델 이제 간단 말인가? 그 몸으루?…》

녀인의 눈이 둥그래졌다.

선화는 더운 침을 꼴깍 삼켰다.

《어머니가… 위급하다고 해서…》

묵묵히 선화를 내려다보던 청년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내가 그 약을 가져다주면 안되겠소?》

선화는 놀란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억실억실한 그 눈엔 진정이 어려있었다. 눈, 코, 입이 다 큼직큼직한것이 무척 순박해보이고 미더워보였다.

선화는 고마움에 눈물이 다 핑 도는것을 느꼈다.

《고맙지만… 어머니한테는… 제가 가야 해요.》

녀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두 그 몸으루야 어떻게… 그리구 이젠 인차 날이 저물겠는데…》

《그래두… 그래두 가야 해요. 어머니… 저… 옷을 좀…》

선화가 부끄럽고도 애처로운 눈길로 얼핏 청년쪽을 스쳐보자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밖으로 나가느라 문을 열자 쫘르륵-쫘르륵 하는 비소리가 커졌다. 비소리는 인차 작아졌다. 문이 닫긴것이다.

선화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잔등이 무엇에 맞았는지 쿡쿡 쑤시고 온몸이 얼얼했지만 어차피 가야 할 길이였다.

《어머니, 정말 고마와요. 이 신세를 잊지 않겠어요.》

《고맙기야 무슨, 인사를 하려면 저 젊은이에게 하라구.》

밖에 나오니 청년은 토방에 서서 근심스러운 눈길로 비줄기로 가득찬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화는 얼굴이 화끈화끈해짐을 느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맙기도 하고 그한테 자기의 망측스런 꼴을 보인것이 창피하기도 했다. 누구한테도 보인적 없는 처녀의 순결한 그 모든것을 이 청년이 다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이 막히기도 했다.

선화는 고개를 들지 못한채 마당으로 황황히 내려섰다. 순간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도토리알만큼이나 큰 비방울들이 머리며 어깨를 두드려댔다. 쫘르륵 쫘르륵…

선화는 키높이 자란 수수대들이 비바람에 몸부림치는 밭사이길로 황황히 걸어나가다가 모퉁이에서 얼핏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도 청년은 토방에 우뚝 서서 선화 자기를 쳐다보고있었다.

선화는 또 한번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획 돌아섰다. 총총히 골목길을 걸어갔다.

얼마쯤 가다가 산굽인돌이에서 무심히 뒤를 돌아보던 선화는 깜짝 놀랐다.

바로 그 청년이 자기를 따라오고있었던것이다.

(아니, 저 사람이 어떻게…)

선화는 고개를 기웃했다.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그 사람은 더 빨리 따라왔다. 이상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오고있었다.

선화는 바싹 긴장해졌다. 저 사람은 분명 아까 마주오고있었었다. 그러니 룡정으로 가는 길이였다. 그런데 왜 날 따라오는가? 날도 저물어가는데… 의심스러웠다. 저 사람이 어쩌자고 이렇게…

《같이 갑시다. 나도 옥계동에 갈 일이 있는데…》

옥계동에 갈 《일》이란 바로 애어린 처녀가 밤길에 잘못될가봐 길동무를 해주는것이였다.

그들은 함께 밤길을 걸어 선화네 집까지 갔다. 그가 바로 지철민이였다. 그는 대성중학교에 다니고있었다. 밤새도록 함께 가면서도 지철민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화가 물어봐서야 한두마디 겨우 대답하는 정도였다. 이럭저럭해서 선화는 그가 아버지, 어머니, 형님을 간도대《토벌》때 다 잃고 지금은 삼촌네 집에서 삼촌어머니의 눈치밥을 먹으며 중학공부를 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원래 집은 남양평에 있었는데 어제가 아버지 생일제날이여서 묘에 갔다오는 길이였었다.

지철민은 선화를 위해 먼 밤길을 걸은것이다. 그 찬비를 다 맞으면서…

선화의 가슴속에서는 그때부터 지철민에 대한 신비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시인이 되기를 공상하면서 시적인 삶을 갈망해온 선화의 가슴속에서 신비스럽게 싹튼 그것은 걷잡을새없이 아지를 치며 자라올랐다.

달밝은 밤, 달빛이 물결우에서 수억만쪼각으로 부서지고 싱그러운 밤바람이 비릿한 물내를 싣고 불어오는 해란강가를 몇밤을 함께 거닐었는지 모른다.

한창 사랑이 무르익어가고있던 어느날 지철민이 몹시도 흥분해서 선화를 찾아왔다.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어준 고마운분을 찾았다는것이다. 알고보니 그는 대단한 《혁명가》라고 한다. 국제당과도 든든한 줄이 있고… 맑스주의에 대해서도 모르는것이 없다고 한다.

《그분은 나를 보고 유격근거지에 함께 들어가자는거요. 자기가 직접 나를 맡아 혁명가로 키우겠다면서…

난 선화 이야기도 했소. 애인이 있는데 함께 근거지로 가면 어떤가구… 그분은 애인과 혁명을 같이하는게 얼마나 리상적인가구 하면서… 우리들의 생활이 시적이라는거요. 가서 만나보기요.》

선화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선화가 지철민에게서 이렇게 많은 말을 듣기는 처음이였다. 대단히 흥분한 모양이였다.

선화는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철민이와 함께 그 《혁명가》를 찾아갔다. 동흥중학교옆에 있는 크지 않은 기와집 웃방에서 그 《혁명가》를 만났다. 머리가 류달리 크고 머리칼을 길게 기른 중년의 사나이가 손을 들어보이며 맞이했다. 손수 악수까지 청하는데 손바닥이 별로 말랑말랑했다.

《아, 조선의 쟌 다르크가 될 녀성이로구만. 반갑소. 지철민동지의 애인이라지. 자, 어서 앉소.》

그 《혁명가》는 선화를 끌어다 쏘파에 앉히고는 흥분해서 팔짱을 끼고 방안을 오락가락했다.

《난 녀성들이 이렇게 혁명의 전초선에 뛰여들겠다고 탄원해나서는것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오. 이 얼마나 장한 일이요.

백마를 타고 부대의 앞장에서 오를레앙성을 탈환하기 위해 돌진하던 그 프랑스의 처녀영웅 쟌 다르크를 보는것만 같단 말이요. 조선이라고 왜 그런 녀성영웅이 못 나오겠소.》

한참 침방울을 튕기며 열이 나서 손세까지 써가면서 열변을 토하던 그는 자기딴에도 너무 흥분했다는것이 느껴졌는지 손을 들어보이며 말을 끊었다. 지철민에게도 앉으라고 권하고는 선화를 다시 돌아보았다.

《참, 부모님들은 어데 계시오?》

정선화는 수줍게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옥계동에 있습니다.》

《옥계동이라… 거기서 무슨 일을 하시오?》

《저… 정미소를…》

《정미소? 프로레타리아트요?》

《혁명가》는 선화에게 다가와 쏘파등받이에 한손을 얹고 몸을 굽히며 속삭이듯 물었다. 선화는 그의 더운 입김이 귀전을 간지럽히는것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아닙니다. 정미소… 주인입니다.》

《혁명가》는 얼굴이 굳어져서 선화를 새삼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다가 허리를 쭉 폈다.

《정미업자란 말이지. 그럼 유산자, 착취계급이 아닌가.》

《혁명가》가 지철민을 돌아보며 내뱉는 말이였다.

지철민이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서 두손을 맞비볐다.

《저, 착취계급이 아니라… 자그마한… 정미소를…》

《혁명가》는 《여보!》 하고 소리치며 고개를 획 쳐들어 긴 머리칼들을 뒤로 넘겼다.

《동문 계급성이 전혀 없구만. 난 전형적인 프로레타리아트가 애인이 있다길래 달리는 될수 없는 일이여서 상대가 어떤 계급출신인가 물어 볼 생각도 안했댔지. 동문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거요, 엉? 계급적원쑤와 동침을 하자는건가. 혁명대오가 뭐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드는 구락부인줄 아오? 공산당원이 되겠다는 동무가 이게 뭐요? 립장을 명백히 해야겠소. 처녀인가, 혁명인가. 우린 동무를 주시하겠소.》

수치, 모멸, 절망.

선화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선화!》

지철민이 황황히 뒤따라나오려는데 《철민동무!》 하고 엄한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주춤했던 철민이가 또 따라왔다.

《선화! 선화!》

선화는 허둥지둥 내달렸다.

철민이는 더 따라오지 못했다.

앞에서는 해란강이 솨솨 소리치며 흘러가고있었다.

그날 밤 해란강가의 버들숲에서 몸부림을 치며 밤새도록 운 후부터 선화는 며칠째 잠을 자지 못했다.

《계급적원쑤》라는 말이 계속 귀전에서 왕왕 울렸다.

사랑도 출신에 따라 길이 다르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게 된 선화였다.

《선화, 난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소.》

언제인가 해란강가에서 지철민이 심각하여 한 말이였다. 둘은 너럭바위우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학교를 그만두다니요, 그건 무슨 말이예요?》

오른손 집게손가락끝으로 바위돌우에 알지 못할 상형문자들을 그리던 선화는 놀란 눈길로 지철민을 쳐다보았다. 철민의 둥그스름한 철빛얼굴엔 결연한 그 무엇이 내비쳐있었다. 살멱이 꿀꺽 소리내며 턱밑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난 더는 공부만 하고있을수가 없소. 왜놈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부모님들의 령혼이 자꾸만 날 부르는것만 같소. 복수를 해달라고 말이요. 난 싸울테요. 혁명을 하겠단 말이요.》

그때 지철민이가 한 그 말이 오늘은 또 다른 심각한 의미를 띠고 채찍처럼 뇌리를 후려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지철민이 하겠다는 그 《혁명》이 결국은 《계급적원쑤》인 이 정선화네를 타도하는것이 아니겠는가. 가슴이 도끼에라도 마구 찍히는것 같았다. 고통스럽지만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랬다. 애초부터 지철민과 이 정선화는 갈길이 달랐다.

마침내 선화는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지철민을 끝없이 사랑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와 갈라지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그마한 티라도 생기게 하고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사랑을 희생시켜야 했다.

 

음침한 날이였다. 하늘은 무엇이 마뜩지 않은지 잔뜩 찌프린 얼굴로 이땅을 흘겨보고있었다.

둘은 천천히 룡정시가 한복판을 걸어갔다. 이제 헤여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것이다. 지철민은 그 《혁명가》를 《모시》고 어딘가 멀리로 떠난다고 했다.

지철민의 얼굴도 구름낀 하늘처럼 침침했다. 처녀도 버릴수 없고 혁명도 버릴수 없는 그였다.

이 순간만 지나면 정선화는 영영 그와 헤여지고말것이다. 그의 품속에는 지금 결렬을 선포하는 칼날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가 들어있다. 다시는 이 정선화를 찾지 말라, 나와 당신은 한길을 걸을수가 없다, 난 이미 결심했다, 부디 안녕히 가시라.

그는 헤여질 때 이 편지를 넘겨줄것이다. 바로 그 《혁명가》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면서… 그러면 그 《혁명가》에게 갔던 편지는 다시 임자를 찾아 지철민에게 돌아올것이고…

그가 이 편지를 읽게 될 때 나는 이미 집이 아니라 둘째이모네 집이 아니면 명월구에 있는 맏이모네 집에 가있을것이다.

맏이모네 집에는 맘좋은 사촌오빠도 있고 생일이 나보다 한달 앞섰다고 하여 언니라 뽐내던 봉숙이도 있을것이다. 그러면 말동무도 되고… 이젠 가본지 퍼그나 오래되였지만… 어릴 때 엄마를 따라가보고는 못 갔댔지, 그래서 더더욱 반가와할것이다.

어쨌든 철민은 나를 찾지 못하게 될것이다.

길거리에는 잡화점과 료리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싸구려소리, 서로 욕질해대는 소리, 자동차경적소리가 소란스레 울렸다. 람루한 옷차림을 하고 조심스레 걸어다니는 사람들사이로 경찰들과 헌병들이 비린내를 맡은 도적고양이마냥 두눈을 패뜩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쏘다닌다.

해란강상류의 충적평원중심에 자리잡고있는 룡정은 《9. 18사변》이후 일제의 통치중심지로 되고있다.

예로부터 용드레우물을 가진 마을이라 하여 룡정이라 부른다고도 하고 우물에서 룡이 날아올라 룡정이라고도 한다는 이 마을은 원래 조용한 곳이였다고 한다. 소박하고도 근면하고 형제간에 의가 좋고 이웃간엔 화목하기 그지없는 조선사람들의 품성그대로 고조선때부터 고구려, 발해를 거쳐 면면히 조용하게 흘러오던 이 룡정의 력사는 청화사요, 삼화사요, 덕신사요 하는 말단통치기구를 이 간도땅에 두었던 리조말엽까지만도 평범한 농촌마을의 하나로 순탄하게 이어가댔는데 일제의 조선강점으로 하여 갑자기 부산스러워지고 소란스러워지고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1907년 8월 누가 어쩌지도 않는데 소위 조선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걸고 룡정에 기여든 일제는 처음엔 《조선통감부간도파출소》를, 다음엔 《간도일본총령사관》과 경찰서를 설치하고 연변지구에 18개의 경찰분소와 거류민회를 만들어놓았다.

일제는 또한 룡정에 《조선은행출장소》와 《간도구제회》, 《동양척식회사간도출장소》를 설치하여 연변에서 가장 큰 《고리대금업자》와 《지주》로 되였으며 연변의 금융시장을 독점하고 경제동맥을 틀어쥐였다.

1924년 천도경편철도가 개통된 후부터 룡정은 연변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되였다. 눈을 껌벅껌벅하는 사이에 거리의 곳곳에는 잡화점, 양행, 려관, 국수집, 료리집들이 가득 생겨났고 병원, 학교, 우전국, 세관분관, 전매국, 신문사, 공장 등이 일떠섰다.

인총이 끓어번지기 시작하자 경찰들과 헌병들의 수도 곱절이나 늘었고 친일주구들이 곳곳에서 득실거렸다.

그러니 사실 지철민이가 큰 《혁명가》가 되면 다시 이 룡정땅에 와서 정선화를 찾아다니기가 어렵게 될것이다. 도처에서 경찰, 헌병, 특무, 주구, 변절자들이 눈을 밝히고있는데 자칫하다가는 잡혀갈수 있는것이다.

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마치 서로 다투고난 사람들처럼 상대가 아니라 흘끔흘끔 반대쪽을 보군 하였다.

어느 골목에서인지 지짐을 지지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왔다.

《지짐 사시오, 따끈따끈하고도 구수한 녹두지짐 사시오.》

싸구려소리와 함께 꾀죄죄한 옷을 입은 애들이 그리로 욱 밀려갔다. 무심히 고개를 돌려보니 풍을 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지짐을 부쳐내고있는 장사군앞에 아이들이 서있는데 돈이 없어 사먹지는 못하고 코를 벌름거리며 녹두지짐냄새만 걸탐스레 들이키고있다. 그야말로 무산자들이다. 혁명을 할 《자격》이 있는…

정선화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해란강가 길어구에 있는 《룡원거식당》 앞을 지나 토성포다리를 건너갔다.

《이젠 그만 들어가오.》

정선화는 주춤 멈춰서며 애모쁜 눈길로 철민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목소리가 바람맞은 초불처럼 떨렸다.

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화를 마주보는 두눈에서는 불이 황황 일었다.

《선화, 누구가 뭐라 하든 어쨌든 난 선화를 잊지 못해.》

철민은 선화의 두손을 꽉 움켜쥐였다. 선화는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 뜨거운 아귀센 손에 자기 손을 언제까지나 맡기고싶었다.

그러나… 선화는 랭철하게 자신을 다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선화는 살며시 자기 손을 뽑았다. 입술을 깨물며 품속에서 편지를 꺼냈다.

《참, 이 편지를 그 〈간부〉에게 주세요.》

철민은 편지를 받아 앞뒤를 뒤집어보며 의아해서 물었다.

《이 편지는… 누가 보내는거요?》

선화는 얼굴을 붉혔다.

《우리 학교 선생이…》

선화는 난생처음 거짓말을 해보았다.

《학교선생?》

《예, 우리 은진중학교에 명의조선생 있잖아요. 력사교원…》

《그 선생이 어떻게 이 편지를…》

《아이참, 철민씨는 뭘 꼬치꼬치 따져물어요? 내가 계급적원쑤가 돼서 믿지 못하는가요?》

철민이 눈을 화등잔같이 떴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정신이 있소? 무슨 그런 소리를 함부로…》

《됐어요, 그럼 난 돌아가겠어요.》

《아니, 저… 선화, 난 그래서 물은게 아니요. 나도 모르게 괜히… 정말 난 그만 얼결에… 제발 성내지 마오.》

《알만해요. 일상시에 믿지 않았으니 얼결에도 캐묻게 된거겠지요. 그럼 잘 가세요.》

철민은 더욱 당황해서 선화의 손을 움켜쥐였다.

《선화, 그러지 마오. 내 말을 좀 듣소.》

선화는 손을 잡아챘다. 우정 신경질까지 부렸다.

《이거 인사를 몇번 해야겠어요? 난 가겠어요.》

선화는 황급히 발을 옮겨놓았다. 그가 다시 붙잡을가봐 반달음을 놓다싶이했다. 멍하니 쳐다보고있을 철민의 시선을 등뒤로 느끼며 허둥지둥 걸었다. 그때에야 비로소 코안이 쩡해지더니 두눈에서 짜디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참고참았던 억울한 눈물이, 원통하고도 분한 눈물이 걷잡을새없이 흘러내렸다.

아, 우린 왜 사귀였댔을가. 왜… 왜… 이렇게 헤여질줄 알았으면야… 아, 아… 철민씨, 난 어쩌면 좋아요…

침침한 재빛구름이 낮게 드리운 해란강우로 물새 한마리가 삐유-삐유- 하고 구슬프게 울며 외로이 날아가고있었다.

그날부터 선화는 이 이모네 집에 와 틀어박혔다. 하는일없이 낡은 소설책들만 뒤적이고있다. 시를 써본답시고 끄적거리던것도 다 집어던졌다. 사는 의미를 잃어버린것이다. 래일이 없는 생활…

이 역시 얼마나 허무한가.

정선화는 그 람루를 걸친, 빌어먹으며 떠돌아다니던 불쌍한 처녀 방영순이가 한미영《어멈》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자 호- 하고 까닭모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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