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2 장

-영생하는 삶중에서-

3

 

말파리는 눈보라가 우우― 비명을 지르며 태질하는 무연한 등판우를 절렁절렁 달려가고있었다.

말파리우에서는 누런 개털모자에 역시 누런 개털외투를 입은 눈이 억실억실한 청년이 몸을 반쯤 솟군채 쩌― 쩌― 하며 련속 채찍을 휘둘러댔다.

눈만 내놓고 두건을 해씌운 두필의 말은 푸푸 입김을 내불며 모둠발로 내달렸다. 말도 사람도 말파리우에 실은 이사짐들도 모두 눈가루를 함뿍 들썼다. 그 이사짐들 한복판에 두툼한 양털외투를 입고 역시 하얀 양털목도리로 얼굴을 꽁꽁 감싼채 추위가 스며들세라 옹송그리고앉은 정선화는 방금 떠나온 려인숙쪽을 착잡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정선화는 려인숙에서 뜻밖에도 그처럼 만나고싶었던 리계순을 만났던것이다. 정선화는 자기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계순이에 대해 마음속에 늘 죄스러운 감정을 안고 살아왔었다.

며칠전에도 이 장백땅으로 떠나기 전에 화룡의 금곡촌을 찾아가 계순의 어머니 손증산을 만났댔었다.

《우리 계순이 말인가? 오지 않았네. 한번두 오지 않았어. 이젠 집을 떠난지 4년이 넘었는데… 글쎄 이게 무슨 일인가?》

손증산은 정선화의 두손을 붙잡고 울먹거렸다. 굵고 가는 주름살이 모인 눈귀엔 눈물이 슴새여나왔다.

《그렇게 훌쩍 떠나가고는… 이 어미가 눈이 까매서 기다리는데… 어디 가서 무얼하고있는지… 알수가 없구만.》

그런 리계순이를 여기 장백땅의 이름없는 려인숙에서 만나게 될줄이야.

 

×

 

실화를 보던 정옥은 리해가 잘 안되여 고개를 기웃했다.

실화가 너무 비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전 어머니가 어랑촌으로 가던 이야기를 쓰고는 대뜸 장백땅이라니.…

정옥은 무엇인가 혼돈되지 않았는가 하여 앞뒤장들을 번져보다가 다시 그 대목부터 글줄을 더듬어나갔다.

 

×

 

정선화는 방금전 려인숙에서 점심을 먹고 토방으로 내려서다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두사람을 보고 몸을 흠칫했다. 떠돌이살이를 하는 부부인듯 물난 회색로동복에 토목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인 남자와 총이 끊어진 미투리에 허줄한 베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자인데 그가 바로 자기가 그처럼 찾던 리계순이였던것이다.

《계순언니!》

선화는 너무도 놀랍고 뜻밖이여서 두팔을 벌린채 와락 달려나가 부둥켜안았다.

《아니, 이게 선화가 아니예요?》

계순이도 이 기이한 상봉이 믿어지지 않는듯 몇번이고 선화의 얼굴을 들여다보군 했다.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군요. 선화는 지금 어디서 살아요? 그리고… 어디로 가는 길이예요?》

정선화는 얼핏 마당가에 세워놓은 말파리쪽을 돌아보았다. 말파리우에는 먼저 나온 이모사촌오빠 서봉삼이가 앉아서 그 허줄한 차림의 녀인과 서로 붙잡고 돌아가는것이 달갑지 않은듯 《음― 으흠》하고 건기침을 톺고있었다.

《우린… 저 장백현소재지쪽으로 이사를…》

《험!》

요란한 기침소리에 선화는 몸을 흠칫했다. 자기도 모르게 다시 돌아보니 서봉삼이가 도끼눈을 하고 쏘아본다. 선화는 목을 찔끔 움츠렸다. 오빠는 어디에 가든, 누구를 만나든 함부로 이제 가는 위치를 말해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두었었다.

선화는 얼굴을 붉히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언니는 어떻게 된 일이예요. 집에서 어머니가 몹시 기다리던데…》

그러자 계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우리 어머니를 만났댔어요?》

정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휘익― 하고 눈보라가 불어치며 두사람의 얼굴에 찬 눈가루를 휘뿌렸다.

《어때요. 우리 집에서는 다 잘있어요? 집에 누구누구가 있던가요?》

계순이 성급히 물었다. 무엇인가 간절히 기대하는듯 한 눈빛이였다.

또다시 마차쪽에서 《흠―》하는 헛기침소리가 났다. 몹시 불안해하는 기침소리였다.

《집에서는 모두 잘있더군요. 아버지하구 어머니하구 막내동생하구… 있었어요.》

《애기는… 요만한… 젖먹이애기는… 없던가요?》

선화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없었어요. 그저 모두들 언니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었어요. 그런데… 처창즈에서는 언제 나왔어요.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예요?》

계순은 얼핏 마차쪽을 쳐다보고는 지나가는 소리처럼 말했다.

《처창즈에서 나온지는 오래 돼. 그저… 살길을 찾아 이렇게 떠돌아다니지.…》

《살길을 찾아서?…》

정선화는 그의 말이 리해되지 않아서 물끄러미 건너다보다가 계순언니와 같이 온 그 남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토목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인 그 청년은 퇴마루에 앉아 힘겨운듯 주먹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리고있었다.

《그럼 집에는 왜 안 가요? 그렇게 기다리는데.》

계순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갈 면목이 없어서…》 하며 힐끗 그 청년쪽을 돌아본다.

선화는 묻고싶고 알고싶은것이 많았으나 그의 가슴속 상처만 허벼줄것같아서 침을 꼴깍 삼켰다. 오빠가 그렇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장백현성에 오게 되면… 들리라요. 장백경찰서뒤에 우동집이 있는데 그 옆집이 우리 이모네 집이예요. 당분간은 거기서 살아야 할것 같아요.》

선화는 할 이야기는 끝이 없었지만 오빠가 자꾸 독촉하는 바람에 할수 없이 헤여지고말았다. 하긴 오빠도 피해야 할 무서운 눈길들이 있어서 한곳에 오래 지체해서는 안되는것이다.…

말파리는 여전히 절렁절렁 방울소리를 울리며 열심히 달리고있었다.

선화는 멀리 사라져가는 려인숙의 동기와지붕과 구새굴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리계순이가 들어간 그 려인숙이 점점 멀어져간다. 눈보라속에 뽀얗게 희미해져간다.

그럴수록 선화의 눈앞에는 계순의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서는듯 했다. 늘 새물새물 웃던 그 고운 눈,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안고 늘 뛰여다니다싶이하던 그 경쾌한 걸음… 하지만 방금전에 본 그 초췌한 행색은?…

《이젠 집을 떠난지 4년이 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하며 울먹울먹하던 계순이 어머니의 얼굴도 떠오른다.

집을 떠나 4년… 그 4년에는 얼마나 보람차고 긍지높고 행복했던 일들과 또 얼마나 기막히고 가슴아프고 원통한 일들이 돌기돌기 엮어져있는가. 그 4년속에는 이 정선화때문에 생긴 영영 아물수 없는 아픈 상처도 크게 자리잡고있다.

계순언니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있을가. 그 토목수건을 걸친 남자는 누구일가? 혹시 그 사람이?…

선화는 갑자기 무엇인가 심장 한끝을 물고 비틀어대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계순이와 함께 김일환의 서글서글 웃는 얼굴이 불쑥 떠올랐던것이다. 그 어디에 간대도, 열백번 죽는대도 잊지 못할 사람들…

그래서 지금껏 금곡촌에서 들은 계순의 어머니 손증산이 들려준 그 이야기가 현실처럼 눈앞에 떠올랐던지도 모른다. 계순이가 집을 떠나던 그날의 이야기가… 그리고 언제인가 계순이에게서 들은 김일환이와 함께 어랑촌으로 가던 이야기가…

그처럼 기다리는 어머니… 그처럼 다정하던 두사람…

정선화는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 이 죄를 나는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

절렁 절렁 절렁.

말파리는 방울소리를 울리며 허위허위 눈보라길을 달리고있었다.

 

×

 

정옥은 무엇인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지나가는것을 느꼈다. 실화가 왜 이렇게 비약했는지 알게 되는것과 함께 정선화에 대한 의문이 부쩍 커진것이다. 외할머니를 그리도 잘 아는 사람, 어머니에게서 사랑담까지 들은 녀자, 이 실화를 쓴 녀자는 정선화, 분명 그 녀자이다. 실화가 곧 그 녀자가 보고 듣고 체험한 그대로인것이다.

정옥은 오후에 시간을 내여 서성구역체신소로 찾아갔다. 소포취급자처녀를 만났다.

《그런 소포를 보낸분이 있어요. 보내는 사람이름을 밝히는건 규정이라고 그만큼 말했는데도 끝내 말을 듣지 않고 사정을 하더군요. 자기는 그저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자기는 받을 사람한테 누가 보낸다고 떳떳이 말할 사람이 못된다고…》

처녀는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하였다.

정옥은 혁명렬사릉에서 만났던 그 늙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반색을 하며 확신성있게 물었다.

《나이많은 어머니이지요?》

처녀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예요, 남자예요. 나이는 한 50살쯤 됐을가.…》

정옥은 놀라서 처녀를 건너다보았다. 뜻밖이였다.

《남자요? 이름은… 물론 모르겠지요? 어디서 산다는것도 모르고?》

처녀는 더욱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만 흔들었다.

《무슨 특별한 표상은 없었어요?》

처녀는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얼굴은 둥글넙적하고 눈이 어글어글한게 꼭 배우같은 모상이였어요. 이마엔 왼쪽에 불에 덴 흔적같은 흠집이 있었어요. 이렇게 손가락 두마디만 한 흠집이…》

《흠집이?》

《예, 얼굴은 검실검실하게 해볕에 타고 손은 투박한데 왼손약손가락을 붕대로 감았댔어요. 그 손을 봐선 농사군 같았어요.

아― 정말 생각이 나요. 그 손님은 내가 정 안된다고 딱 잘랐을 때 자기는 농장적으로도 소힘줄처럼 질기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는 못 견딘다면서 조르더군요. 정말… 얼마나 질군이던지… 그래서 제가 그만 규정을 어기고…

그런데… 그 소포가… 보내선 안될것입니까?》

처녀가 얼굴을 붉힌채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그런건 아니예요. 그건 아주 귀중한것이예요. 그래서 소포를 보낸 사람을 꼭 찾고싶어 그러는거예요.》

정옥은 틀림없이 소포를 보낸 그 남자와 혁명렬사릉에서 만났던 늙은 녀인이 서로 련관되여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찾아야 했다.

정옥은 그 늙은 녀인이 꼭 정선화라고 믿어졌다.

정옥은 문득 투사들의 이야기속에서 정선화라는 이름을 얼핏 들은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들었다. 하지만 얼핏 스쳐지나가는 이름이였었다.

(왜 그이들의 추억속에는 그 정선화라는 이름이 지나가던 나그네처럼 잠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정도일가?)

정옥은 의문을 금치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녀가 죄스러운듯 따라일어서며 자기가 어떻게 해서든 그 소포의 임자를 찾아내겠노라고 다짐했다.

정옥은 미소를 지으며 처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마와요.》

정옥은 체신소에서 나오자 곧장 김일부주석을 찾아갈가 하다가 그가 지금 청천강화력발전소건설장에 전권대표로 나가있다는것을 상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김일부주석은 어머니와 함께 처창즈에서 백두산으로 나온 사람이다. 정선화를 만난것은 분명 어머니가 백두산으로 나올 때였다. 그때 김일부주석이 어머니와 함께 식량공작을 나갔댔다는 말을 들었었다. 식량공작을 나갔다가 정선화를 만났을것이다.

정옥은 평양역행 무궤도전차에 올라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아빠트들과 상점들과 극장, 려관들과 물결쳐흐르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이다. 문득 아버지, 어머니의 손목을 량손에 잡고 깡충거리며 뛰여가는 네댓살 났음직한 소녀애의 모습이 눈에 띄운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제비초리처럼 쌍태머리를 땋은 처녀애였다.

그뒤로는 처녀, 총각이 나란히 걸어간다. 무엇인가 다정히 속삭이며 걷는데 그들의 머리우에서는 실실이 휘늘어진 버드나무아지들이 가볍게 흐느적인다.

총각이 무슨 희떠운 소리를 했는지 처녀가 손등을 입에 가져다대며 죽겠노라 웃어댄다.

정옥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문득 아버지, 어머니가 어랑촌으로 함께 가며 사랑을 속삭이였다는 그 실화가 떠오른다.

누구도 보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사이에 있었던 일들… 가슴이 울렁거려진다.

정옥은 그후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어떻게 더 깊어졌는지 그것이 어떻게 결혼으로 이어졌는지 김일이며 박영순에게서 들어 잘 알고있었다.

정옥의 상념은 어느덧 아득히 먼 그날의 어랑촌유격근거지로 나래를 폈다. 외할머니가 말했다는 4년, 정선화가 못 잊어하는 그 4년의 첫해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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