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3 장
6
장백현성에서 이도강으로 가는 길에 자동차 한대가 서있었다. 네면을 다 철판으로 둘러막고 살창달린 뙤창들만을 낸 수인차였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나지막한 산등성이에는 아름드리비슬나무가 눈보라에 시달리우며 서있었다. 눈이 하얗게 덮인 그 언덕으로 리계순이 중발머리와 옷자락을 기폭처럼 날리며 천천히 오르고있었다.
뒤에서는 까만 털깃을 댄 두툼한 털외투에 승마바지를 입고 목이 긴 털가죽신을 신은 한미영이 두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찌른채 따라가고있었다. 또 그뒤에는 역시 털가죽으로 무장한 고등계주임과 두명의 경찰이 총을 꼬나들고 따라가고있었다.
한미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앞서걷는 리계순을 쏘아보았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리계순이 그런 폭탄같은 연설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한미영이였다.
경무국장은 경찰서에 돌아가자마자 리계순을 당장 총살하겠다고 선불맞은 승냥이처럼 펄펄 뛰였었다.
당장 사람들을 모아놓고 본때를 보이겠다는것이였다.
한미영은 그에게 면목이 없었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그를 죽이는데는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총살한다면 저 녀자는 또 그 기회에 반일연설을 할것이다. 오죽하면 당신네 경찰들이 저 녀자를 두고 《도저히 손을 댈수 없는 괴짜》라고 했겠는가.
다치면 고무공이나 용수철처럼 더 세게 반발하는 저런 녀자는 조용히 죽여야 한다. 죽이되 될수록 빨리 죽이는것이 좋다.
저 리계순이 여기 경찰서감방에 갇혀있다는것을 오늘 소학교운동장에 모였던 수천의 군중이 다 알았겠는데 지금쯤 그 소문이 어디인들 퍼지지 않았겠는가.
그 소문을 인민혁명군 공작원들이 들으면 가만있겠는가. 당장이라도 이 경찰서로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러니 저 녀자를 이도강경찰서로 빼돌리는것처럼 하다가 중도에서 적당한 자리를 골라 총살해야 한다. 총살은 내가 집행하겠다.
난 저 리계순이와 따로 결산을 할게 있다. 저 리계순이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걸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내가 죽이겠다.…
경무국장은 한미영을 비웃는듯 한 눈길로 스쳐보고는 무뚝뚝하게 툭 내쏘았다.
《총살은 고등계주임이 할것이요.》
한미영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 경무국장이 자기까지 믿지 않는다는것을 직감했던것이다. 바보처럼 취급하던 저것들이 오히려 나를… 억이 막혔지만 할 소리가 없었다.
한미영의 낯색이 하얗게 질리자 경무국장이 너그럽게 선심 쓰듯 말했다.
《미영씨도 함께 가겠으면 가오.》
이렇게 되여 한미영이 이 길에 따라나서게 된것이다.
눈보라가 솨― 솨―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뱀꼬리같은 눈갈기가 이리저리 눈판을 핥으며 기여다닌다.
한미영은 눈가루가 얼굴에 덮씌우자 으시시 몸을 떨며 목을 움츠렸다.
리계순은 전혀 추위를 못 느끼는듯 했다.
중발머리가 기폭처럼 흩날린다. 찢겨진 군복치마자락도 세차게 펄럭인다. 퍼렇게 언 두발은 눈속을 거침없이 내짚는다.
저 녀자에겐 살을 베여내는 이 눈얼음이 정말 봄날의 잔디밭처럼 푸근하게 여겨지는건 아닌가.
과연 저 녀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는가. 생에 대한 애착이 그리도 없단 말인가. 애어린 딸에 대한 모성애마저 다 얼어붙었는가?
한미영은 도리머리를 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생명체란 그 어떤것이나 자기를 보존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한다. 생존법칙이 생겨난것도 그때문이 아니겠는가. 양육강식도 그래서 생겼다. 먹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그 어디서나 벌어지고있다.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고 약한 놈은 풀이며 산열매를 뜯어먹고 나무며 풀은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해빛을 받으려고 서로 키를 솟구고 아지를 펼친다.
하물며 사람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오래오래 그리고 더 잘살기 위한 욕망이 바로 이렇게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있는것이 아닌가.
살고싶은것, 이것은 인간의 본성적요구이다. 저 리계순이라고 어찌 그것이 없겠는가.
너와 나는 단지 리념이 다를뿐이다.
너도 역시 살고싶은 마음은 간절할것이다.
어디 보자, 나는 어떻게 하든 네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게 할것이다, 어떻게 하나 너한테는 이겼다는 쾌감이라도 맛볼것이다.
한미영은 아름드리 비슬나무가 눈보라에 솨솨 몸부림치고있는 둔덕에 이르자 고등계주임을 돌아보았다.
《여기가 좋지 않을가요?》
고등계주임은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서라!》
한미영이 계순에게 소리쳤다.
계순은 한번 뒤를 피끗 돌아보더니 몇걸음 더 가서 비슬나무아래에 멈춰섰다. 서서히 돌아섰다.
아마 이 나무아래가 자기가 최후를 마칠 장소라고 생각되는듯 나무우듬지를 올려다보고는 멀리 남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미영은 고등계주임을 돌아보았다.
《내가 저년과 말을 좀 해보겠어요. 한번 더 기회를 주세요.》
고등계주임은 미덥지 않은듯 경멸하는 눈길로 치떠보더니 마음대로 해보라는듯 턱으로 계순이쪽을 가리켰다.
《고마와요.》
한미영은 두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찌른채 계순이 앞으로 다가갔다.
《계순이, 뭘 그렇게 보나?》
계순은 한미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내 조국산천을 보고있다. 죽어서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말이다.》
한미영은 얄밉게 웃었다.
《마지막이라구?… 계순인 그렇게두 살고싶지 않나?》
《왜 살고싶지 않겠느냐. 살고싶다. 살아도 오래오래 살고싶다.》
한미영은 또 소리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호―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내 그럴줄 알았어. 사람이 한번 태여났다가 그렇게 빨리 죽는다는게 너무도 허무하잖아. 계순인 올해 나이가 겨우 스물네살에 들어서고있지. 너무도 아까와. 게다가 계순에게는 사랑하는 딸도 있잖아.》
순간 계순이 피끗 한미영을 돌아보았다.
한미영은 딸애소리가 나오자마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계순이를 보자 얄궂은 웃음을 띠였다.
《난 계순이한테 큰걸 바라지도 않겠어. 여긴 나와 계순이뿐이야. 저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도 못해. 또 계순이가 한말을 누구에게 옮기지도 않겠어. 그건 목숨걸고 담보하겠어. 계순이, 난 솔직히 말해서 내 자존심때문에 그래. 계순인 이걸 저속한 욕망이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라도 자기 위안을 하고싶어 그래. 계순이때문에 이 무지한 촌경찰들한테까지 망신했는데… 그 피해에 비하면 너무도 단순하고 작은 요구라고 할수 있지. 정말이야.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주겠어, 응? 정말 못하겠으면 고개만이라도 한번 끄덕이면 돼. 》
《그래, 넌 나에게서 무얼 바라는거냐?》
계순이 역겹다는듯 물었다.
《그건 아주 간단한거야. 오늘 연설이 잘못되였다는것만 인정하면 돼. 사실 숱한 사람들앞에서 혁명군 체면에 어떻게 다른 연설을 할수 있겠어. 그속에 혁명군이 없다고 어떻게 장담해. 반성연설을 한다고 총을 쏠수도 있어. 그러나 여긴 아무도 없어. 나 하나뿐이야. 저 고등계주임이나 경찰들은 듣지도 못해. 뭐 걱정되는게 있으면 고개만이라두 끄덕이라구. 어때, 잘못했지?》
《어리석게 놀지 말아. 우리 혁명가들을 모욕하지 말란 말이다.》
리계순이 추상같이 소리치는 바람에 한미영은 몸을 흠칫했다. 얼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고등계주임이 그 소리를 듣지 않았는가 해서였다. 고등계주임은 두손을 주머니에 찌른채 우들우들 떨면서 무슨 말을 그리 오래 하느냐는듯 이쪽을 쳐다보고있었다.
한미영은 고개를 돌렸다. 리계순이 불이 번쩍이는 눈길로 쏘아보고있다. 한미영은 소름이 끼쳤다. 문득 석달전 금곡촌에서 한 혁명가를 사형하던 일이 떠올랐다. 병기창에서 두눈을 잃었다는 사람… 바이올린을 메고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는 보천보전투며 간삼봉전투이야기를 해주고 모두다 반일항전에 떨쳐나서자고 호소하군 했다는 철의 인간… 그는 화형을 당하면서도 《조선혁명 만세!》를 웨쳤다.
이 리계순이도 바로 이 금곡촌에서 나서 자랐다. 그러니 손원금이를 잘 알것이다.
어쩌면 저 눈은 눈없는 손원금의 증오까지 다 담고 저리도 펄펄 불을 내뿜는것은 아닌가.
한미영은 자기가 지금 부질없는짓을 한다는것을 통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서고싶지도 않았다.
한미영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색이 점차 풀렸다.
《계순이, 그러지 말고 깊이 생각해보라구. 인생이란 한번 가면 다야.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것이 끝난단 말이야. 죽은 다음엔 야, 그때 내 왜 그랬던가, 그 말만 들었어도 죽지 않는건데 하고 후회할수도 없는게 인생이야. 죽은 량반 산 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줄 알아? 잘 생각해보라는데…》
《그러지 않아도 예까지 오면서 난 많이 생각했다. 지금껏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최후를 빛내였는가를… 우리 오빠가 어떻게 떳떳하게 최후를 마치였고 우리 남편은 또 어떻게 한생을 빛내였는가를 말이다. 남편이 네놈들의 간계에 넘어간 어리석은자들때문에 잘못되기는 하였지만 마지막까지 우리 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하시지 않게 일을 바로잡자고 투쟁하다가 잘못되였다. 우리 동지들중엔 살아서 끝까지 혁명을 해야 하겠다면서 제 손으로 양철톱을 만들어 자기 손으로 제 발을 자른 불사신같은 사람도 있었다. 두발을 자르고도 동지들을 구원하기 위해 네놈들을 유인하였고 한놈이라도 더 죽이자고 달려드는 놈을 붙안고 벼랑에 몸을 던져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똑똑히 알겠느냐?》
한미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죽음을 각오한 계순이라 도저히 어쩔수 없다는것을 사무치게 느끼면서도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계순이, 넌 녀자야. 애기어머니야. 이렇게 가면 아이는 또 어떻게 하겠어? 귀여운 딸애가 보고싶지 않아? 그 애가 얼마나 엄마의 사랑을 기다리겠어. 자, 마음을 푹 가라앉히구… 다시한번 딸애를 생각해봐. 딸애 생각이 영 없는건 아니겠지?》
《그렇다. 난 지금껏 짬만 있으면 딸애를 생각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밀영의 그밤 우등불을 가운데 놓고… 오락회를 할 때 … 아름드리 전나무에 잔등을 대고서서 달빛흐르는 먼 고향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던 일들이… 그때마다 딸애는 엄마, 엄마 하면서 품에 안겨드는것만 같고… 전투와 행군으로 날이 어두워 밀림속에 눈을 깔고 잠시 잠을 청할 때에도 멀리 두고온 애기와 앞날을 속삭이며 마음을 가다듬고… 이게 나뿐인줄 아니?
똑바로 알아둬라. 우리가 왜 애기들을 떼여놓고 이 길에 나섰는가를 말이다.
뭐? 우리 애기가 엄마의 사랑을 기다린다구? 그건 옳다. 그러나 어떤것이 가장 값높은 사랑인지 그 애는 이제 다 알게 될것이다. 그 사랑을 위해서 우리 애어머니들은 목숨도 아끼지 않는단 말이다. 네따위가 그것을 알기나 하느냐. 네가 만일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애는 너를 두고두고 저주하게 될것이다.》
한미영은 전률했다. 온몸의 피가 일시에 꺼꾸로 흐르는듯 그래서 피줄들이 튀여나가고 심장이 터져나가고 머리가 뻐개져나가 당장 미칠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간이, 그것도 녀성이 저렇게까지 강할수 있단 말인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자기를 쏠 총구앞에 선 녀성이 밀영의 밤에 전나무에 등을 기대고서서 노래를 부르며 애기를 그려보던 일을 추억하고 동지들이 어떻게 최후를 마쳤는가를 되새겨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 저 녀자의 심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저 녀자의 정신력은 도대체 무엇으로 꺾을수 있단 말인가.
저런 녀자를 굴복시켜보겠다고 달라붙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난 졌다. 우린 졌어. 우린 저 사람들을 이기지 못해. 한미영은 중풍에라도 걸린듯 후들후들 떨며 맥없이 돌아섰다. 허탈에 빠진 년처럼 허덕허덕 걸어갔다. 얼이 다 빠진것 같은 한미영을 멍청히 쳐다보던 고등계주임놈이 부르르 몸을 떨며 발작적으로 권총을 빼들었다. 경찰놈들도 황황히 총을 겨누었다.
계순은 백두산쪽으로 돌아섰다. 눈보라가 이는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러는 그의 눈에 그리움의 빛이 한껏 어린다.
《장군님, 이 계순이는 갑니다. 해방될 래일을 믿기에 웃으며 갑니다. 장군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깁니다.》
눈보라가 그를 감싸안으려는듯 비슬나무주위에서 회오리를 일으킨다. 중발머리가 힘있게 나붓긴다. 찢어진 옷자락도 기폭처럼 나붓긴다.
계순은 포승을 진 두손을 높이 추켜들었다.
《김일성장군 만세!》《조선독립 만세!》
계순의 마지막웨침소리가 총소리를 누르며 백두산을 향해 메아리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