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3 장
5
정선화는 집에 돌아오자 조용한 웃방에 올라가 문을 꼭 닫고는 그 자리에 어푸러졌다. 몸부림을 치며 주먹으로 방바닥을 탕탕 치기도 하고 방바닥을 마구 긁기도 했다. 두눈에서는 눈물이 좔좔 흘러내렸다.
(언니,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이제는 어쩌면 좋아요, 예? 언니!)
저 왜놈들이 이제는 절대로 가만있자고 하지 않을것이다. 한미영도 펄펄 뛸것이다. 그 구미여우같은년이 무슨짓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정선화는 가슴을 쥐여뜯었다. 그처럼 마음곱고 선량하고도 아름답고 이악한 계순언니가 잘못될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싶었다.
이 정선화때문에 그 귀중한 남편을 잃고 자기자신까지 《민생단》에 몰려 갖은 천대와 구박을 다 받은 언니이다. 그런데 이제 또 나때문에 그가 잘못되는것을 속수무책으로 뻔히 보고만 있을수야 없지 않는가.
그를 어떻게 구원해낼수는 없을가?
정선화는 점심때 집에 들어온 오빠에게 무릎을 꿇고앉아 눈물을 머금고 절절하게 호소했다.
《오빠, 그〈형제〉들과 잘 의논해보세요. 저 한미영이랑 왜놈들이 계순언니를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거예요. 래일이라도 당장 총살하자고 할거예요. 오빠, 좀 도와주세요.》
서봉삼은 뻐금뻐금 담배만 빨았다. 한숨과 함께 연송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생각이 깊은 모양이였다. 그도 소학교마당에 나갔다가 계순의 연설을 들었던것이다.
《오빠, 무슨 방법이 정 없을가요? 그 언니는 정말 죽어서는 안될사람이예요.》
서봉삼은 아래입술을 몇번 감빨다가 결심한듯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껐다. 후- 하는 모두숨과 함께 검푸른 담배연기가 뿜어나왔다.
《알겠다, 내 잠간 나갔다 오겠다.》
서봉삼은 움쭉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선화는 고마운 눈길로 문을 벌컥 열고 나가는 오빠의 뒤모습을 눈물이 그렁해서 쳐다보았다. 오빠가 자기의 《동생》들을 찾아나간다는것을 느꼈던것이다.
정선화는 문을 열어잡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씨엉씨엉 걸어가는 오빠를 간절한 눈길로 배웅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방문으로 쫘르륵 눈가루를 뿌려대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제발 계순언니를 구원할수만 있다면…
정선화는 호- 하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오빠에게 간절한 기대를 걸었다. 사실 오빠는 지금껏 무슨 일이나 쉽게 된다, 안된다 단정을 해본적이 없었다.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너야 한다는것이 오빠의 지론이였다. 가망이 없는 일에는 나서야 손해밖에 보는것이 없었던것이다.
오빠는 속으로 먼저 다 타산해보고 가망이 있을 때에야 저 정도라도 대답하군 했었다.
눈보라는 여전히 쫘르륵쫘르륵 눈가루를 온몸에 들씌웠으나 정선화는 그대로 그 모든것을 고스란히 맞으며 이윽토록 서있었다.
계순언니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가슴이 떨렸다. 언니가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있을가. 한미영의 간계에 말려들었던 미련한 녀자, 그 언니와 하루밤을 밝히면서도 그의 마음을 모르고 한미영을 만나겠다니 안도의 숨을 내쉬기만 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하였다는것을 왜 몰랐을가. 그 아이를 부탁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지막까지도 그 언니의 불같이 뜨겁고 아름답고 순결한 마음을 리해하지 못하고 한미영이와 공모까지 했으니 내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 언니한테 영영 씻지 못할 그런 죄로 되는것은 아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