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3 장

4

 

눈보라는 압록강반을 휩쓸며 우우-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소학교운동장에는 강제로 끌려온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움씰움씰 바다처럼 설레이고있었다. 압록강건너 혜산에서 장을 보러 왔다가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조용들 하라!》

코밑에 딱장벌레수염을 붙인 경무국장이 일본도자루를 붙잡고 연단에 올라갔다. 메돼지처럼 몸이 뚱뚱한 그는 칼집끝으로 연단을 쿡쿡 박으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에또- 정숙히 들으라. 여기 서있는 이 녀자는 한때 생각을 잘못 먹고 유격대소굴에 들어가 기만당해오다가 그 지옥같은 생활과 흉악한 행위들을 보고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우리에게 찾아온 녀자다. 이제 이자리에서 보고들은것을 연설할테니 제군들은 엄숙히 들어보라. 이 녀자의 남편도 공산당간부였는데 〈민생단〉에 몰려 공산당한테 죽었다. 야, 저기 도망치려는 놈이 누구야. 어느 놈이 휘파람을 불었어? 조용하지 못하겠는가, 앙?》

순간 여기저기에서 경찰들이 땅땅 총을 쏘았다. 웅성대던 군중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럼 똑똑히 들으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정적 또 정적…

휘유- 군중들의 머리우를 휩쓰는 눈바람소리-

리계순은 이를 사려물고 천천히 연단에 올라갔다. 바람에 머리칼이며 옷자락이 흩날렸다.

그 옷은 비록 찢기고 피자박이 되였으나 두눈에서는 불같은것이 뿜어나오고있었다.

계순은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한동안 입술을 감빨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이신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들! 이렇게 여러분을 뵈옵게 된 나는 한없이 기쁩니다.》

갑자기 목이 콱 메이는듯 계순은 잠시 말을 못하다가 이윽해서야 말을 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선혁명에 뜻을 품고 혁명의 길에 나섰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여난 나는 이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모든 불행은 일제가 조선과 만주를 점령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옆에 서있던 고등계주임이 얼굴을 찌프리며 어서 본론을 말하라고 재촉했다.

계순은 들은척도 않고 연설을 계속했다.

《그래 우리가 잘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일제를 조선과 동북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지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들어가보니 내 생각이 옳았는가?》

경무국장과 경찰서장, 고등계주임과 한미영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자기들이 바라는대로 연설이 진행될것이라 생각한것이다.

군중들은 더더욱 조용해졌다.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한껏 긴장해서 계순을 지켜보았다. 계순은 목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

《그렇습니다. 과연 김장군님이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선민족을 해방시키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우는 진정한 우리의 혁명군대였습니다.》

왜놈들은 뜻밖의 말에 빗듣지나 않았나 하고 또 마주보았다. 둥그래진 눈들을 떼굴떼굴 굴렸다.

계순은 자기 연설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의 사령관이신 김일성장군님은 우리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여러분을 위하여 싸우시는 조선혁명의 위대한 령도자이십니다.》

독이 머리끝까지 뻗친 경무국장이 소리를 질렀다.

《끌어내렷!》

경찰들이 연단으로 달려올라갔다. 군중들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계순은 놈들을 뿌리치며 묶인 두손을 높이 쳐들었다. 눈바람에 검은머리가 기폭처럼 나붓겼다.

《여러분, 오늘 일제놈들이 아무리 강한것 같애도 반드시 멸망할것이며 조선은 독립되고야말것입니다. 장군님은 건강하시여 지금도 왜놈들을 족치고계십니다.》

계순은 놈들에게 끌려내려오고야말았다. 그러나 놈들을 뿌리치면서 계속 웨쳤다. 마치 불을 토하는듯 했다.

《여러분, 일제놈들을 반대하여 모두 일어납시다. 조선독립을 위하여 끝까지 싸웁시다. 승리는 우리의것입니다.》

군중들은 움씰움씰했다. 당장 무슨 일이 터질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경찰들이 황황히 공포를 쏘아댔다.

《헤쳐가라. 빨랑빨랑 헤쳐가란 말이다.》

군중들은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날줄 몰랐다. 경찰들의 총대에 밀리우면서도 연단쪽을 자꾸 뒤돌아보았다. 금시라도 그 빨찌산녀대원이 다시 나타나 불같은 연설을 계속할것만 같았기때문이였다.

리계순은 다시는 나타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한 연설은 사람들의 가슴을 계속 쿵쿵 울려주고있었다.

《여러분, 일제놈들을 반대하여 모두 일어납시다. 조선독립을 위하여 끝까지 싸웁시다. 승리는 우리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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