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3 장
3
한미영은 미칠듯 한 흥분을 가까스로 누르며 경찰서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경찰서장이 늘 앉던 자리에는 여기 장백현내의 경찰서들을 맡아보는 경무국장이 앉아있었다. 리계순이네들을 체포한 그날부터 만사를 전페하고 여기 경찰서에 와 틀고앉은 경무국장이였다. 한미영이네 령사관패들에게 선손을 떼울가봐 신경을 몹시 쓰고있는 경무국장은 오늘도 경찰서장은 밀어제낀채 제가 직접 당직경관들로부터 지난밤에 있은 일들에 대하여 보고를 받고있었다. 어제 밤 과음을 했는지 얼굴이 부석부석해진 경무국장은 그 메돼지처럼 육중한 몸을 안락의자에 깊숙이 파묻은채 눈을 반쯤 감고있었다.
경찰서장과 고등계주임은 창문쪽에 놓인 난로옆에 앉아있었다.
한미영은 마른 명태처럼 빼빼마른 고등계주임이 앉아있는쪽으로 다가갔다. 고등계주임은 두손을 벌리고 불을 쪼이며 당직경관이 경무국장에게 하는 보고를 귀를 도사리고 듣고있다가 한미영을 보자 자기옆에 놓인 의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한미영은 눈인사를 하며 의자에 앉다가 마침 당직경관의 보고가 끝나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미소를 머금은채 《밤새 안녕하세요.》하는 뜻으로 경무국장에게 약간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마치 평범한 이야기나 꺼내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리계순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순간 고등계주임과 경찰서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 하는듯 고개들을 획 돌린채 멍청히 쳐다본다. 당직경관도 밖으로 나가다말고 주춤 멈춰서며 한미영을 돌아보았다. 어제 밤 한미영의 요구대로 정선화를 계순의 방에 넣어주었던 그 경관이였다.
한미영은 그 어떤 쾌감 비슷한 심정에 속이 요글거리는것을 느끼며 의자에 걸터앉아 은빛금속담배갑을 꺼냈다. 경무국장은 눈을 쪼프린채 물끄러미 쳐다본다. 경찰서장과 고등계주임의 눈길이 담배갑에 쏠리는것을 느낀 한미영은 야릇한 우월감을 입가에 담으며 그들에게 담배를 권했다.
둘다 고개를 흔들자 한대만 뽑아 담배갑에 툭툭 그루를 박고는 천천히 라이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모든 행동에는 너희들이 아무리 우월하다는 《야마도》인들이라 해도 역시 촌것은 촌것이고 자기는 비록 《반도인》이라 해도 령사관의 거물급들과만 상대하는 상류층의 한사람이라는 암시가 짙게 풍기고있었다. 한미영의 친아버지가 자기의 추행이 드러날가 두려워 끝까지 비밀을 지키여 이 가련한 녀자는 아직 자기 출신도 모르고있었다.
당직경관이 나가고 문이 닫기도록 한미영이가 집요하게 구미를 돋구는데 그만 참을성을 잃어버린듯 경무국장쪽에서 킁- 하는 소리가 났다.
한미영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채 곁눈질을 해보니 경무국장의 주독이 오른 주먹코밑에서 딱장벌레같은 수염이 쭝긋거렸다.
《리계순이가… 손을 들었다?》
한미영은 담배한모금 살짝 빨았다가 파란 연기를 호 내뿜었다. 이럴 때일수록 흥분을 감춰야 하는것이다.
《방금 그를 만나고 오는 길이예요.》
고등계주임의 뱁새눈에 미타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년이 뭐라고 하던가.》
한미영은 우정 피식 웃었다. 이쯤한건 자기 수완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시들한 어조로 말했다.
《뻔하지요. 그 애새끼를 놓아주라는거예요. 연설두 하겠다고 했어요.》
고등계주임은 고개를 기웃했다.
《그렇게 독한년이 어떻게…》
한미영은 약이 올라 톡 내쏘았다.
《아무리 독종이라 해두…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같은건 다 있는 법이예요.》
《아킬…레?》
경찰서장이 그 큰눈을 뜨부럭거렸다. 말도 변변히 번지지 못하는 그를 피끗 돌아본 한미영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바보!)
남들의 머리 두배나 될 저 수통마개같은 대가리엔 지적인것은 없고 온통 야수의 기질만 꽉 차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면서 허구픈 웃음까지 나갔다.
고등계주임이 경찰서장에게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했다.
《고대 그리스에 그런 신화가 있습니다.》
경찰서장의 얼굴이 대번에 벌개졌다. 얼결에 말을 받아외우다가 대망신을 당한 그는 도끼눈으로 한미영을 쏘아보았다.
경무국장은 이윽토록 한미영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메밀눈을 팡끗거렸다. 그러나 말소리는 유순하게 나갔다.
《그래, 그년의 〈아킬레우스 발뒤꿈치〉는 뭐요?》
《모성애지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속담을 아시겠지요? 인간이건 짐승이건 제 새끼들에 대한 정은 어쩔수 없는거예요. 본능적이지요. 더구나 조선녀성들은 모성애가 더 강하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더욱 그렇고…》
고등계주임이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렸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애새끼야 자기 자식이 아니지 않소. 그런 애를 살리겠다구 자기 신조를 꺾는단 말이요?》
《주임님은 그네들의 생활관을 투시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요? 그네들은 자신보다 동지와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그를 위해선 자기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특종들입니다. 그네들은 오늘보다 래일을, 미래를 더 귀중히 여기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빙천설지에서 풍찬로숙하면서 사생결단하고 대일본제국과 맞서 싸우는것입니다. 그게 과연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서일가요? 아닙니다. 그네들은 자기들은 그렇게 고생하고 피흘리고 목숨까지 바친대도 기어이 나라를 다시 찾고 후대들이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그 한가지 일념으로 그런 혈전을 벌리고있는거예요.》
고등계주임이 쓰거운듯 입을 쩝쩝 다셨다.
《미영씨는 우리에게 빨갱이들의 인생관을 선전하자는건 아니겠지요?》
한미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교활하면서도 우둔하고 악착하면서도 몽매하기 그지없는 이 섬나라족속들에게 얽매여 살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이 분하기도 하고 가련하게도 느껴졌다. 아마도 이때 한미영이 자기가 일본녀자라는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하였을가.
《난 그저 왜 그년이 손을 들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하는 그 원인을 말했을뿐이예요. 계집들이란 더구나 애어미들이란 애들의 불행을 보면 동정이 생기기 마련이랍니다. 감방에 갇힌 그년에겐 바로 그게 심리적약점인것이예요. 그건 본인자신도 어쩔수 없는것이예요.》
《그럼 미영씨가 바로 그 〈발뒤꿈치〉를 쏘아 맞힌셈이군?》
한미영은 그의 비양조에 화가 났다. 자초지종을 다 말해주어야 이들이 리해할것 같았다.
방금전 계순이를 만났던 일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철없는 어린것을 끌어다가 죽이려는가고 분노를 터뜨리던 리계순의 그 목소리…
한미영은 응당 그럴줄 알았다는듯 야질야질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건 바로 너희 빨갱이들의 간을 말리자고 그러는거지. 우린 그애를 바로 네 눈앞에서 죽이자는거야. 그것도 순순히 죽일줄 알어? 천만에… 처음엔 요 엄지손가락을 한마디 잘라내겠어.》
한미영은 자기의 왼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해죽 웃었다.
《그게 얼마나 아프겠어. 아마 대굴대굴 굴거야, 엄마를 찾으면서… 다음날엔 또 이 오른쪽엄지손가락 한마디를 잘라내겠어.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씩 열손가락을 다 자르고는 다음엔 발가락들을 잘라내고 그다음엔 팔목을 또 그다음엔 팔굽을… 눈을 파내고 코를 도려내구…》
《그만하라!》
계순이 진저리를 치며 노성을 터뜨렸다.
《악귀… 치마두른 악귀…》
《호호호.》
한미영은 재미난다는듯 깔깔거리며 담배곽을 꺼내 보란듯이 한대 피워 물었다. 담배연기를 허공중에 호- 불어내보내고는 계순에게 눈도 돌리지 않은채 말을 계속했다.
《그쯤한건 아직 약과야. 잘 들으라구. 그 애녀석을 그렇게 실컷 데리고 놀면서 고통을 주다가 죽일 때쯤이면 계순이 너의 가슴도 온통 상처투성이가 될테지. 또 그러는 사이에 우린 너의 딸을 찾아 여기로 끌어올테야. 말하자면 2회전이 련속 시작되는셈이지. 우린 너의 딸년도 꼭 그렇게 죽이겠어, 바로 엄마인 너의 눈앞에서…》
계순은 입술을 꽉 깨물고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한미영을 쏘아보았다.
계순의 입귀로 한가닥 피줄기가 흘러내렸다.
한미영은 의자에 까치다리를 하고 앉아 담배연기를 혀끝으로 딱딱 소리내여 고리모양으로 내보내며 장난을 했다. 한참 그러다가야 호- 하고 입김을 불어 그 고리모양의 담배연기를 흐트러뜨렸다.
《계순이, 사람은 현실을 랭정하게 볼줄 알아야 해. 계순이때문에 저애가 죽으면 사람들이 계순이를 두고 뭐라고 말하겠어. 너희들은 미래를 사랑한다고, 후대들을 위해선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또 딸애를 그렇게 죽이면… 뭐가 남겠어? 나중엔 계순이 너 자체도 그렇게 죽고말지. 그래 죽인다면 그냥 죽일줄 알아? 사령부를 배반하구 동지들을 배반하구… 그래서 동료들의 규탄이 두려워 자살했다구 할테야.
어떻게 하겠어? 잘 생각해보라는데… 솔직히 말하는데 너의 딸을 찾아내는것두 그리 힘든 일이 아니야. 제 친할미 등에 업혀 금곡촌 외가집에 왔다 간걸 모르는줄 알아? 불쌍한 애지… 외가집 방안에도 들어가보지 못하고 떠났으니까…》
계순의 눈이 놀람으로 해서 더욱 커지는것을 한미영은 낱낱이 보면서도 모르는척 또 담배연기로 장난질만 했다.
《넌 그것도 모를테지? 온밤 마당에서 모기에 물어뜯기다가 갔어. 믿어지지 않을테지. 그러나 그건 죄다 사실이야, 우리가 지키고있었으니까…
너의 아버지, 어머닌 무서워서 외손녀를 들여놓지 못했지. 그 애가 김일환의 딸이라는걸 알면 무슨 행패질을 할지 모르니까… 울었을거야. 이젠 알만하겠지? 너의 딸도 할미도 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있다는걸… 우린 계순이한테서 힘든건 바라지 않아. 어제도 말했지만 근거지에 들어가 자기가 겪은 그대로만 이야기하라는거야. 그러면 너의 요구대로 저애도 내보내고 딸애도 데려오지 않겠다는데…》
계순이 한미영을 쏘아보다가 피덩이같은것을 가까스로 삼켰다.
피흐르는 입술을 감빨다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내가 겪은 그대로만 연설을 하라구?》
한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현당서기를 하던 남편까지 〈민생단〉으로 몰리워 죽구 자기자신도 〈민생단〉으로 몰리우구… 혁명을 하겠다구 나섰다가 뭐가 남은게 있어? 뭐 혁명군이 좋다, 나쁘다 그런 말을 하라는게 아니야. 난 이렇게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는것만 말하고 그만두면 돼. 그 누구를 배신하는것두 아니니 후에 동지들을 만난다 해두 그들이 크게 탓할것두 없을거야. 사실대로 말했는데 뭐 어쨌다는거야. 우린 사람들앞에서 리계순이란 이름을 공개하지도 않겠어. 남편이름과 남편이 무엇을 하댔다는 말은 안해도 좋구… 그저 겪은 사실만 말하라구. 길게 말 안해두 돼.
솔직히 말해서 이 장백땅에 계순이를 알 사람이 누구 있겠어? 설사 안다 한들 사실그대로 말했는데 누가 뭐라겠어.》
《좋다, 내가 겪은 사실을 말하라면 그건 말해주마.》
계순은 큰숨을 내쉬였다. 비장한 결심을 한듯 입술을 다시 꽉 깨물었다.
한미영은 자기가 잘못 듣지나 않았나해서 계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자 뭐라고 했어. 그게… 헛말은… 아닐테지?》
계순이가 이제라도 결심을 달리 할가봐 떨리는듯 조심스레 물었다.
계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박또박 그루를 박아 말했다.
《연설을 하겠다, 사람들앞에서…》
한미영은 하마트면 손벽이라도 칠번 했다. 만세라도 부르고싶었다. 날듯이 기뻤다. 그러나… 감정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하는것이다.
《잘 생각했어. 솔직히 말해서 일본에 저항한다는건 닭알로 바위치기야. 강승약패는 어쩔수 없는 세상리치인데 승산도 없는 산생활을 뭣때문에 계속하겠어. 지금 일본은 만주를 먹고 중국본토를 먹구 남아시아는 물론 아시아전체를 먹겠다는거야. 대아시아를 건설하자는거지.
됐어, 잘 생각했어. 솔직히 말해서 사람이 태여나 몇년 살지도 못하는데 뭣때메 고생고생하다 죽겠어. 그것도 한번밖에 없는 생을… 단 한번밖에 차례지지 않는 생인데 그렇게 막 버릴수야 없지 않아. 미래가 중하다구 제 생명까지 바칠수야 없잖아.》
계순은 크게 숨을 들이그었다가 내쉬였다.
《그 말만은 옳아. 한번밖에 없는 생인데 막 버릴수야 없지. 아껴야 하구말구.》
《좋아, 그럼 약속대로 하자구. 내 당장 그 애부터 내보내겠어.》
한미영은 솟구쳐오르는 기쁨을 억제 못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되여 그달음으로 경찰서장의 방으로 달려온 한미영이였다.…
한미영의 말을 들은 경무국장은 장지손가락으로 수염끝을 슬슬 쓸어붙였다.
끝이 왕딸기 설익은것처럼 벌겋고 땀구멍이 숭숭한 코가 흉측스레 벌름거렸다.
《음… 그러니 진짜 반성연설을 하겠단 말이지?》
《그래요. 래일이 마침 장날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경무국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존것이다.》
그는 두손을 뒤짐지고 성급히 난로주위를 거닐었다.
《존것이… 존것이다.》
메돼지같은 몸집이 움직일 때마다 널마루바닥이 삐걱거렸다.
몹시도 흥분해서 씩씩 거친숨을 몰아쉬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한미영은 가슴이 은근히 부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이제 래일일만 제대로 되면 나를 다 파먹은 김치독처럼 여기는 다나까도 생각이 달라질것이다. 그러면… 철없던 그 시절부터 싹틔우고 자래우며 꿈꾸던 그 상상봉에로의 길이 열릴수도 있지 않을가.
한미영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되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또다시 담배를 꺼내물었다.
담배갑을 닫으려다가 호─ 하고 짧은 숨을 내불었다.
(다나까씨, 래일이면 저 리계순이가 반성연설을 할거예요. 물론 애새끼때문에 마지못해 하는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공산마귀》를 굴복시킨것이나 같지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내 나이도 이젠 스물여섯이예요. 무측천이 궁성으로 되돌아가던 그 나이보다는 아직 어리지요, 어때요.
다나까씨, 한번만이라도 어떻게 기회를 또 마련해보지 않겠어요?)
한미영은 물끄러미 담배갑을 쳐다보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절컥 닫아 호주머니에 쓸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