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3 장

2

 

감방은 벽마다 성에가 하얗게 불리여있었다. 계순은 추위를 느끼는 감각마저도 다 마비되여버린듯 그 성에불린 벽체에 기대여 선화의 말을 듣다가 어이가 없는듯 한참이나 건너다보았다.

《반성연설을 하면 살려주겠다고 한단 말이지요? 그래 선화가 그걸 나한테 권고하러 왔어요?》

《언니, 그럼 어떻게 해요. 그렇지 않으면 래일 당장…》

리계순은 얼굴을 이그러뜨렸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정선화를 쳐다보다가 서운한 어조로 말했다.

《난 선화가 이런 말을 하러 올줄은 정말 몰랐군요. 나한테 한미영의 말을 들고오다니… 어쩌면 정선화가 이렇게까지 되였어요? 이것이 나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욕이 된다는걸 생각 못했어요?》

《언니!》

정선화는 목메여 부르며 계순의 손을 잡았다.

《날 용서해줘요. 난 그저 한미영이가 언니를 당장 총살한다길래 겁이 나서… 언니두 아저씨두 나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어요. 아, 내가 언니를 위해줄 일은 뭘가요, 예?》

《됐어요. 나도 선화가 한미영이와 진심으로 공모했다고는 믿지 않아요. 선화, 우리가 죽는게 겁난다면 왜 이 길에 나섰겠어요. 내가 죽는것보다 우리 혁명이, 조국의 래일이 더 귀중하기때문이 아니겠어요. 차라리 잘됐어요. 이렇게 만난김에 우리 지나온 일이나 이야기해보자요.》

선화는 눈물을 흘리며 계순의 손을 어루쓸었다.

《정말 죄송해요. 난 아저씨가 나때문에 〈민생단〉에 몰려 잘못되였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제정신이 없었댔어요.》

《그게 무슨 선화의탓이겠어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그것들이 우리 정옥이 아버지랑 어째보려고 하댔는데 마침 선화가 떠나갔으니 그걸 또 우리에게 들씌운거지요. 선화가 가지 않았어두 그것들은 한사코 우리에게 그런 〈민생단〉감투를 씌웠을거예요.》

《그렇지만… 참, 그 정옥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그건 나도 몰라요. 할머니가 업고 갔으니까.》

《정말 언니는… 애기까지 있는 몸으루 이렇게…》

계순은 선화의 손을 어루쓸었다.

《선화, 난 애기가 달린 몸이기에 더 왜놈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애에게 왜놈들이 없는 새세상을 안겨주기 위해서 말이예요.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가 하구 생각하군 해요.》

《그래두… 그런 리억만이 같은 놈들을 생각하면…》

《그따위놈들은 한둘이예요. 우연히 우리 혁명대오에 끼여들었던 자들이지요. 그놈도 마침내는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어요.》

《그래요? 정말 그놈은…》

《못된짓을 정말 많이 했지요. 아까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어요. 제놈은 오히려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혁명에 충실한 견실한 사람들을 마구 잡아죽였으니… 지철민동무만 해도 그렇지요. 그 동문 총살당하면서도 〈조선혁명만세!〉를 불렀어요. 그런 동무를 글쎄 〈민생단〉이라고…》

선화는 가슴이 찢기는듯 했다. 지철민은 쓰러지면서도 《조선혁명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선화는 사형장에 가있으면서도 그의 마지막웨침소리를 듣지 못했다. 리억만의 《사격준비!》하는 소리를 듣자 그만 기절해서 쓰러졌던것이다.

선화는 그 마지막심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지철민에게 정말 죄스러웠다. 마지막까지 어떻게 싸우는가를 똑똑히 보라고 했는데…

그래서 지금껏 그만을 생각하며 시집을 가라는 권고를 뿌리쳐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혁명은 그런 억만이 같은 놈들때문에 큰 손해를 보았어요. 우리 장군님께서 북만원정에서 돌아오시여 일을 바로잡아주시였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일날번 했어요.

장군님께서는 우리 처창즈일을 두고 얼마나 가슴아파하시였는지 몰라요.

장군님께서는 정옥이 아버지 일도 다 알고계시였어요, 나에 대해서도…》

선화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계순을 쳐다보았다.

《언니는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왔어요?》

계순은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님께서는 반〈민생단〉투쟁을 다 바로잡아주시고 우리를 오히려 친솔부대에 받아주시였어요. 그래서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게 되였지요. 장군님께서는 내가 젖먹이를 떼두고 유격대에 들어왔다고 사람들앞에 높이 내세워주시구… 각근히 돌봐주시였어요. 그런데도 난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리기만 하구있으니…》

계순은 괴롭게 한숨을 호 하고 내그었다.

선화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계순이에게서 처음으로 한숨소리를 들었던것이다.

선화는 숨소리마저 죽인채 조심히 계순을 건너다보았다.

계순은 깊은 생각에 잠긴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군님을 잘 모시자는건 우리 오빠의 소원이였구 우리 애아버지의 소원이였구 저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린 한번도 그 소원을 이루어본적이 없었어요. 오빠도 너무 일찌기 왜놈들에게 잡혀 희생되는 바람에 그 소원을 실현할수 없었구 우리 애아버지두 그저 소원으로만 품은채 억울하게 희생되였지요. 그래서 오히려 그분께 아픔만을 드리구… 그분께서 그렇게 우리 일을 두고 가슴아파하시는데 난 또 그분을 뵙자 억울하던 심정을 죄다 말씀드려 더 가슴아프게 해드렸으니 이 얼마나 철없구 죄스러운 일이예요. 다시는 장군님께서 우리 일을 두고 마음쓰시지 않게 하자구 맹세를 몇번이고 다졌지만 또 이렇게… 동상을 입어 마음쓰시게 하구, 병원생활을 하여 걱정하시게 하구… 이번엔 왜놈들에게 잡혀오기까지 했으니 장군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또 얼마나 가슴아파하실가요. 그처럼 인정많은분이신데…》

정선화는 가슴이 찌르르해옴을 느끼였다.

계순의 가슴속엔 온통 그분에 대한 생각만 꽉 차있는듯싶었다.

정선화는 살며시 그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언니, 너무 괴로와하지 말아요. 앞으로 소원을 성취할 때가 있겠지요 뭐.》

계순은 묵묵히 선화를 돌아보더니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니, 그런 날은 꼭 올거야. 우리 애가 있잖아요. 내가 못하면 우리 애는 우리의 소원을 풀어줄거야.》

《정말 애기가 보고싶겠어요.》

계순은 또 고개를 끄덕이며 큰 숨을 몰아쉬였다.

《보고싶어요. 지금도… 난 늘 그 애를 그려보면서 힘든 시련두 이겨내군 했어요. 그 애와 맘속으로 무엇인가 속삭이고나면 나도 모르게 힘이 생기군 했어요.》

계순은 딸애소리가 나오자 또다시 방긋이 웃었다. 찢기고 터지고 피멍들고 해서 온몸이 만신창이 된 사람같지 않았다.

《난 가끔 우리 애가 살게 될 그날을 그려보군 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찾아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내 나라를 말이예요. 방금전에도 난 그날을 그려보았어요. 일제도 지주도 자본가도 다 없고 우리 인민이 주인이 되여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내 나라, 농민들은 기름진 제땅에서 황금나락을 가꾸구 로동자들은 공장의 주인이 돼서 자동차두 만들구 천두 짜구… 아이들은 돈 한푼 안 내고 학교에서 마음껏 배우며 뛰놀구… 병원에선 무상으로 치료해주구… 멋있는 집들도 많이 짓게 될거예요. 바다에선 배들이 맛있는 고기들을 잡아들이고… 얼마나 멋있는 세상이예요. 그때 우리 애는 대학생이 될거예요. 이 엄마가 못 배운걸 다 봉창해야지요. 그렇게 마음껏 배우구는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지도 몰라요. 엄마처럼 못 배운 사람들을 다 배워주어야지요. 학자가 될수도 있지요. 마음먹으면 무엇이나 다 할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그날은 멀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거던요. 선화도 유격근거지에서 그런 생활을 체험해보지 않았나요.》

계순의 환희에 찬 그 얼굴, 별처럼 빛나는 그 눈빛… 선화는 가슴이 뭉클해왔다.

이런 계순이를 어찌 감방에 갇힌, 이제 자고나면 사형장으로 나가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이나 할수 있으랴.

철창너머 별들이 깜박이는 밤하늘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던 계순이가 선화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방긋이 웃었다.

《선화, 사람은 언제나 앞을 내다보면서 살아야 해요. 난 선화도 그러리라고 믿어요.》

선화는 눈뿌리가 따가워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슴벅이며 물먹은 소리를 했다.

《글쎄 나두… 그럴수만 있다면… 난 아무래두 언니처럼은…》

계순은 선화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선화, 그건 마음먹기탓이예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하고 주저하면 백날가도 못하고 내가 고걸 못해? 하고 달라붙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다할수 있어요.…》

《그래두… 나같은건… 너무 연약해서… 그리구 뭐 나 하나 없다구…》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선화, 속담에도 있지요. 〈소힘도 힘이고 새힘도 힘이다〉라는 속담 말이예요. 나라를 찾는 일엔 그 누구든 힘을 깡그리 다 바쳐야 해요. 그 힘을 모아야 해요. 저 울창한 숲도 근본은 개개의 나무라고 하잖나요. 저마다 나같은 녀자가 무슨 큰일을 치겠는가구 하면서 돌아앉아 제 살궁리만 한다면 나라는 언제 찾겠어요. 나라를 찾은 다음엔 또 어떻게 머리를 들구 살겠어요.

선화, 우리 인민혁명군엔 녀대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있어요. 난 선화가 룡정때처럼 그리고 어랑촌때처럼 그런 열정을 안고 살았으면 해요.》

선화는 계순의 손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를 떨며 물먹은 소리를 했다.

《언니, 난 이젠 다예요. 혁명두 사랑두 다 잃었어요. 난 이젠 나쁜 녀자가 되였어요.》

《그건 무슨 말이예요? 선화, 울지 말아요.》

《언니… 제 오빠는… 여기 경찰서에서 왜놈들을 위해 일해요. 이모사촌오빠인데 량반출신이고… 난 또…》

《선화, 그러지 말아요. 출신이 무슨 문제예요. 내 전에도 말했지요? 왜놈들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다 혁명가가 될수 있다고… 우리 인민혁명군엔 봉건왕조의 후예도 있어요. 장군님께서는 그를 믿고 중대장임무까지 맡겨주시였어요. 난 선화의 오빠도 좋은 사람이 되리라 믿어요.》

《언니!》

《지철민동문 그렇게 혁명밖에 몰랐는데 억울하게 희생되였어요. 난 선화가 그를 사랑했다면 그가 못다한 일을 하는게 옳다고 봐요. 그게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어요. 그를 잃었다고 앉아서 한탄만 하면서 울것이 아니라 주먹을 부르쥐고 일어나서 그의 념원을 꽃피워야 해요. 선화가 이렇게 비관에 빠져 모든걸 포기한다면 지철민동무의 생은 정말 허무한것으로 되는거예요. 그래서는 안돼요. 혁명이란 가장 성스러운 위업이기에 그 길에 나선 사람의 생은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거예요. 선화가 주저앉으면 지동문 두번 죽는것으로 돼요. 난 언제이건 선화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싶었댔어요.》

《언니!》

선화는 더 참지 못하고 계순의 가슴에 와락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왜서인지 자꾸만 눈물이 나와 견딜수가 없었다.

《언니, 난 그럼 어쩌면 좋아요. 너무도 많은 죄를 졌는데… 근거지에서 도망까지 쳐서 언니네랑 그렇게 피해를 입히구… 사람들이 날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계순은 세차게 물결치는 선화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선화, 난 누가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가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누가 어떻게 보건, 누가 알아주건말건 자기 량심만 깨끗하면 되는거예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선화, 억울하게 죽은 지동무를 더 욕되게는 하지 말아요. 수절하는게 중요한것이 아니예요. 설사 그 어디에 시집을 간다 해두 그가 한몸 바쳐나섰던 그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면 그 동무에게도 떳떳한거예요. 이건 단순히 지동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나서서 이룩해야 할 성스러운 위업에 대한 문제이기때문이예요.》

《언니, 날 믿어주는건 정말 고마운데… 나 혼자 무슨 힘이 있어서…》

《조직을 찾아야 해요. 그러면 더욱 좋구… 못 찾아두 량심을 깨끗이 지켜내야 해요. 자칫하면 오늘처럼 한미영의 간계에 놀아날수 있어요. 난 선화가 이런 모양으로 날 찾아온것이 정말 가슴아팠어요.》

《언니, 내 다시는, 다시는 한미영의 말을…》

《됐어, 난 선화가 이러리라 믿었댔어요, 호호호. 자, 이젠 울지 말구 실컷 지나온 이야기나 하자요.》

계순은 선화의 머리며 어깨를 다정히 쓰다듬어주며 밝게 웃었다.

 

그밤은 길었던가, 짧았던가.

선화는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은 풀끝에 앉은 새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래일 당장 리계순이를 총살하겠다는데…》하던 한미영의 목소리가 가위로 심장을 썰어내는듯싶다.

이 계순언니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걸가?

계순은 래일 당장 총살하겠다는 말을 들은 사람같지 않게 소곤소곤 속삭이다가는 조용히 웃기도 하고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감방에 갇혀있다는것도 잊은듯싶다. 그처럼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같지도 않았다.

《내 딸 정옥아!》하며 딸에게 편지를 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코마루가 찡해져서 눈을 슴벅거리며 들었다.

계순이가 그밤 왜 장군님께서 또 가슴아파하시리라 괴로와하며 안타까와했는지, 왜 그리도 딸을 절절히 그리며 《귀여운 내 딸아!》하고 속삭였는지 선화는 하루후에야 다 알게 되였다.

날이 밝아오자 계순은 이제는 헤여질 때가 되였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물었었다.

《참, 엊그제 억울하게 잡혀와 매를 맞던 그 애가 어떻게 되였는지 몰라요?》

선화는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듯 한 아픔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였다.

《아직은 살아있는것 같더군요.》

《정말 불쌍해요. 그러다가 진짜 죽일것 같아요.》

《왜군의 〈토벌〉에 부모를 잃은 애라는데…》

《왜놈들은 그 앨 미끼로 나를 돌려세워보려 하고있으니 세상에 그런 악귀같은 놈들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그런 애들 하나쯤 죽이는것은 눈도 깜박 안할 놈들이니… 그 연약하고 어리디 어린것을 글쎄… 그 앤 이제 해방된 내 나라에서,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자유의 강산에서, 평화의 락원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나야 할 우리의 미래예요. 우리의 뒤를 이어갈 앞날의 주인공이예요. 저 애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우리가 있는것이 아니겠어요.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한미영에게 내가 좀 만나잔다고 하세요.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될것 같아요. 이제 또 매를 맞으면 그 애가 더 견딜것 같지 못해요.》

선화는 의아한 눈길로 계순을 돌아보았다.

《그럼 언니는?》

계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그런 애를 잘못되게 할수야 없잖아요. 세상에 태여나서 도제 몇년밖에 안된, 세상이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가 나때문에 애매하게 죽는다는게 얼마나 기막힌 일이예요. 한미영에게 그저 그렇게만 전하세요. 내가 할말이 있단다구…》

《알겠어요.》

선화는 자리를 일었다. 한숨이 나갔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이 하나 있는데… 그 애를 찾아 꼭 좀 잘 키워주어요. 나때문에 억울한 매를 맞은 애인데 나를 생각해서라도 잘 키워주어요.》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