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2 장

3

 

이튿날 아침, 선화는 자기가 한미영의 간계에 말려들고있다는것도 알지 못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날씨도 잔뜩 찌프린게 별로 음산했다.

선화는 두근두근 뛰는 가슴우에 손을 모두어쥐고 한참이나 숨을 고루며 지옥같은 정문안을 들여다보다가 큰마음을 먹고 보초에게 다가갔다.

당직경찰을 따라 어느 한 건물에 들어서는데 뜻밖에도 안에서 웬 아이의 숨이 넘어가는듯 한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선화는 놀라서 문가에 그대로 주춤 서버렸다. 속이 화들화들 떨렸다.

누가 저렇게 아이를 때릴가? 누구의 아이이길래 저렇게… 저 아이가 혹시?

《어서 갑시다.》

당직경찰이 재촉하며 팔소매를 잡아끄는 바람에 선화는 허둥지둥 따라 걸었다.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선화가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안내하는대로 방에 들어서니 그곳에서는 한 우직스럽게 생긴 놈이 네댓살밖에 안돼보이는 아이를 채찍으로 사정없이 때리고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저 아이도 공산당이란 말인가?

《엄마야! 엄마! 엄마야!》

아이는 감방바닥에서 대굴대굴 굴며 울어대는데 경관놈은 계속 채찍을 휘두르고있었다. 무엇에 맞았는지 아이의 이마에선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자, 이래도 대답을 안할테냐? 네년이 정 뻗대면 우린 저 애새끼를 때려죽이고말테다.》

다른 한놈이 지껄이는 말이였다. 선화가 겁질린 눈으로 소리나는쪽을 돌아보니 한쪽벽에 바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녀자가 기대앉아있고 몸이 뚱뚱한 경관놈이 그앞에서 몽둥이로 그의 턱을 툭툭 건드리고있었다. 선화는 그제야 그 녀자가 리계순이라는걸 알아보았다.

《계순언니!》

선화가 억이 막힌 소리를 내지르며 자기도 모르게 허둥지둥 달려갔다.

계순이가 놀란 눈길로 돌아본다.

《언니,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아니 선화, 선화가 어떻게 여길?…》

《언니!》

선화는 리계순을 부둥켜안으려다가 흠칫 굳어졌다. 온몸이 찢기고 터져서 다치면 더 아픔을 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그저 그의 손만 마주잡았다.

《아가씨, 잠간만 기다리시우. 한미영아가씨는 좀 있다가 올거우다. 그동안 우린 하던 일을 마저 아퀴를 지어야 하우다.》

땅딸보가 선화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러는 속에서도 한쪽에서는 계속 아이를 매질하고있었다.

《이건 무슨짓이예요? 저 어린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죄요? 죄는 바로 이년에게 있지요. 이년때문에 저 애가 대신 매를 맞고있지요. 어찌겠어요. 이년은 더 손을 댈 여지가 없으니… 자칫하다가는 꺼떡할수 있단 말이요. 그러니 할수없이 저 애새끼라도 매를 맞아야지요.》

그 애는 왜놈들의 《토벌》에 부모를 잃은 애였다.

《아가씨, 보시오. 저때문에 이 어린애가 매를 맞는데 이년은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하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드디여 리계순이 자리에서 일어선것이다. 리계순은 한걸음 또 한걸음 가까스로 걸어가 난로우에서 펄펄 끓고있는 물주전자를 들었다. 그 주전자를 아이를 때리는 경관놈에게 던졌다.

《이 짐승보다도 못한 놈들아!》하고 놈들을 절규하며 몸으로 아이를 덮었다. 정신을 잃었다.

 

×

 

《따르릉.》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실화에 심취되였던 정옥은 얼른 송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에서는 은경의 어리광을 부리는듯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이 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하루도 못 견딜것 같지요?》

《너두 참…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느냐?》

《오― 굴착기? 글쎄 그게 잘 안돼서 지금껏 시간을 끌었지요 뭐. 어디 공간이 있는 굴착기가 있어야지. 엄마가 좀 〈힘〉써주지 않을래요?》

《〈힘〉을 쓰다니… 나한테 무슨 〈힘〉이 있다구…》

《그래두 엄마가 나서기만 하면…》

《엄만 그런 〈힘〉이 없어.…》

《에참, 부주석할아버지만 살아계신다면… 그따위 굴착기 한대같은건 문제도 없겠는데…》

《부주석할아버지가 계셔두 굴착기를 내주시지 않을게다.》

《예? 그건 무슨 말이예요?》

은경의 놀라와하는 목소리…

《부주석할아버지는 아마 은경이가 자기 힘으로 맡은 과제를 제 기일내로 끝낼것을 바라실거야.》

《엄만 우리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있는지 알기나 하나? 이건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란 말예요.》

은경의 목소리는 대뜸 높아지고 날카로와졌다.

자기가 오죽했으면 굴착기를 구하러 다녔겠는가 하는 뜻일것이였다.

《물론 나는 너희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다는 모른다. 난 네가 리계순렬사의 손녀라는것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할머니가 어떤 고난과 시련을 어떻게 이겨내군 하였는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너도 실화를 눈물을 흘리며 보았지?》

《그래요.이젠 암송하다싶이 했어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때문에, 바로 리계순렬사의 손녀이기때문에 모든 일에 앞장서야 하는거예요. 조건이 어렵다고 해서 기초파기를 제 날자에 못하면… 그땐 어떻게 우리가 얼굴을 들고다닐수 있겠어요. 일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게 아니예요. 〈조건이 이래서 못했다. 아무리 죽을기를 써도 안되는거야 어찌겠는가.〉하는 변명이 아니라〈굴착기를 빌려다가라도 기초파기공사를 끝냈다, 제 기일을 보장했다.〉가 중요하단 말이예요. 문제는 하루빨리 광복거리를 일떠세우는데 있는게 아니겠어요.》

은경의 불만에 찬 목소리는 정옥이가 미처 말을 할새가 없이 기관총을 련발로 쏘듯 튀여나왔다.

정옥은 가슴이 아팠다. 은경이가 오죽하면 저러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난 어떻게 하나 네가 자기힘으로 제 기일내에 맡은 일을 훌륭히 해내리라고 믿는다.》

《알겠어요. 그럼 전화를 놓겠어요. 잘 주무세요, 안녕히.》

은경은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속은 좋지 않을것이다.

말이야 누구인들 그렇게 못하겠는가 하는 뜻이 그 억양에 들어있었다. 정옥은 그것을 느끼고있었다.

정옥은 수화기에서 삐― 하고 전류흐르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 소리도 못 듣고 그냥 송수화기를 들고있었다.

문득 은경이가 《부주석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하던 말이 고막을 아프게 두드린다.

《살아계셨다면…》라고 한 말이 별로 가슴을 허비고든다.

물론 김일 부주석동지는 이미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지금 혁명렬사릉에 안치되여있다.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오직 혁명만을 위해 한생을 깡그리 바쳐온 그를 영생의 언덕에 높이 세워주신것이다. 그렇다, 영생이다.

육체는 잠들었으나 넋은 잠들지 않고 더 억세게 태동하며 후대들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고 떠밀어주고있는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영생의 언덕에 오를수 있는가. 투사들을 보라, 너의 할머니를 보라.…

이튿날 정옥은 우정 시간을 내여 은경이가 일하는 기초파기전투장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은경의 일이 마음놓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은경이는 전투장에서 땀을 흘리며 감탕을 등짐으로 져올리고있었다. 자기네 동무들과 힘겹게 사다리를 톺아오르던 은경이는 엄마를 보자 일순 놀라운 표정을 짓더니 성이 났는지 팩 돌아섰다.

정옥은 감탕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그가 안아주고싶도록 대견하였지만 꾹 참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원자들과 함께 그들속에 끼여 감탕을 퍼담아주던 정옥은 휴식시간에 은경이와 나지막한 언덕우에 나란히 앉았다. 여기저기서 용접불꽃이 날리고 기중기들이 부재들을 물어올리고 넓디넓은 대통로로 혼석과 강재와 부재들을 실은 차들이 줄을 지어 달려가고 달려온다.

문득 언제인가 이 자리에서 은경이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이 광복거리가 완공되면 정말 멋있겠지? 시원하게 뻗은 저 대통로로 각종 뻐스와 승용차들이 줄지어 달리구 저 구름을 허리에 휘감고 솟아오른 초고층살림집 창가마다에선 노래소리, 웃음소리 쏟아져내리구… 청년호텔, 교예극장, 만경대학생소년궁전… 히야… 이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시작되면 세계5대륙청년학생들이 다 모여올텐데… 굉장할거야. 그때 그들을 만나면 난 이렇게 말해줄테야. 이 세계적인 거리도 바로 우리들의 이 손으로 건설했다고…》

환희에 넘친 그 목소리, 아름답고도 벅찬 래일에 대한 꿈…

《엄마, 사람은 다들 이런 멋에 살겠지?》

그러던 은경이가 오늘은 고개를 외로 돌리고 먼 하늘만 쳐다본다.

정옥은 미소를 지으며 은경의 어깨를 다정히 그러안았다.

《은경아, 넌 부주석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하고 말했는데 난 그분이 돌아가셨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저 혁명렬사릉에서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계신다고 생각한다. 선렬들처럼 그 어떤 고난속에서도 웃으며 뚫고나가고있는가를 지켜보면서 그들처럼 살기를 바라고있지. 넌 이제 광복거리가 완공되구 축전이 열리구… 땀흘린 보람이 꽃필 그날을 생각하면 힘들어두 긍지가 생기구 힘이 생긴다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그걸 잃지 말아야 해.》

은경은 여전히 대답을 안했다. 아직도 고까운것이 있는 모양이였다.

《난 너를 믿는다. 경쟁에서 이기는것도 일을 더 많이 하자는것이여야 해. 절대로 명예를 가까이해선 안돼. 수고하는 너에게 칭찬 한마디 안하고 훈시만 한다고 탓하지 말아라. 우린 순간도 자기를 위해서 살아서는 안될 렬사의 후손이란걸 잊지 말아야 해.》

정옥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은경이네 일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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