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2 장

2

 

이튿날 아침.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싯거리던 선화는 아침밥을 먹고 서봉삼이가 집을 나서자 무작정 따라나섰다. 어쨌든 계순이가 갇혀있다는데 가만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이거 정 이러겠니? 당장 돌아가라, 당장.》

서봉삼이 발까지 구르며 신경질을 냈다. 선화는 야속한 눈길로 오빠를 쳐다보았다. 할수가 없었다.

오빠가 경찰서 정문으로 들어가버리자 선화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멍하니 그 높다란 담장을 쳐다보았다. 바로 저안에서 리계순이 고문당하며 갇혀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그처럼 마음곱고 용모 또한 고운 그 언니가 그런 모진 고문을 받고있다니 가슴이 집게에 비틀리우는듯 아팠다.

어떻게 하면 그 언니를 도와줄수 있을가.

차디찬 바람이 가시돋친 눈가루를 몰아왔다. 그러나 선화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아까부터 어떤 녀자가 지나가다말고 자기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놀라운 표정을 짓는것도 알지 못했다.

《아이, 이게 누구야? 이게 국수집 아씨가 아니야?》

누구인가 호들갑스럽게 떠들며 다가오는 바람에 경찰서담장만 멍하니 쳐다보던 선화가 피끗 고개를 돌렸다.

순간 선화는 뱀이라도 본듯 화뜰 놀랐다.

뜻밖에도 까만 가죽잠바에 승마바지를 입은 한미영이가 앞에 서있었던것이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아유, 그렇게 말도 없이 집을 훌떡 떠나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 참, 아씨두… 내 얼마나 찾았다구.…》

정선화는 문득 서봉삼이가 《간도총령사관에서 온 계집년》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럼 그게 이 한미영이였는가?

《아씨는 어떻게 여기엘 왔어?》

징그럽지만 대답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찰거마리같은 년에게는 묻는대로 제꺽 대답해서 떼버리는게 상수일것이다.

《난 여기에서 살아요.》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래? 그거 반갑구만. 출가를 한것 같지는 않은데… 누구네 집에서 살아?》

《여기 경찰서에서 일하는 서봉삼이가 저의 이모 사촌오빠예요.》

《그래?》

한미영은 반색을 했다. 선화의 아래우를 쳐다보더니 또 얄밉게 웃었다.

《생활이 괜찮은 모양이야? 이제야 제곬에 들어선 모양이지?》

선화는 씁쓸히 웃었다.

《그것 보라구. 괜히 혁명이요 뭐요 하다가 일생을 망칠 필요가 어디 있겠어. 사람이 살아야 얼마나 산다구… 한번 태여났다가 그렇게 죽도록 고생만 하다 말겠어? 그런데… 아직두 제 갈길을 못 찾고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한미영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듯 선화를 돌아보았다.

《선화는 계순이가 여기 잡혀와있다는거 알아?》

정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아. 오빠가 여기 경찰서 잡부라고 했지.… 그래서 여기 와서 감방쪽만 보고있었구만. 마침 잘됐어. 우리 저기 좀 들어가자구.…》

한미영은 선화를 경찰서 정문쪽으로 이끌려다가 생각을 고쳐한듯 발길을 돌렸다. 선화를 돌아보며 해쭉 웃었다.

《우리 녀성들이야 저런 총칼이 있는데가 어울리지 않지. 저기 경찰서장네 집에 가자구. 내가 지금 거기에 들어있어.》

선화는 주춤주춤 그를 따라걸었다. 정말 이 한미영이가 마음만 쓰면 계순언니를 살릴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난 선화만 잘하면 능히 계순이를 구원할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 선화가 잘 설복하면 될수 있어. 처창즈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할게 아니야.》

선화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한미영은 량손을 가죽잠바주머니에 찌른채 옆에서 걸으며 말을 계속 했다.

《사실 계순이가 너무 불쌍해. 그 공산마귀들한테 홀려서 일생을 망치고있단 말이야. 남편두 잃구 부모두 집두 아기두 다 버리구 고생고생하다가 죽으면… 남는것이 뭐가 있어. 그런 허무한 인생이 어디에 있어. 선화가 한번 잘 설복해보라구. 난 정말 불쌍해서 못 보겠어.》

한미영은 리해가 안된다는듯 한숨까지 지었다.

선화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난 녀자들에게는 하기 힘든 말을 요구 안해. 사령부위치를 대라, 밀영위치를 대라 하구 요구하는건 너무해. 그건 자기네 사령관과 자기네 동지들을 배반하라는것과 같거던. 그게 통할게 뭐야. 우린 그건 단념하기로 했어. 그건 녀자가 할일이 아니야. 녀성은 애기를 키우는 어머니거던. 가장 선량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이젠 그저 나쁜 길로 들어선걸 바로잡아주자는것뿐이야. 한마디만 해주면 돼. 자기가 실지 겪은 사실을 이야기하는것이야. 〈여러분, 저의 남편도 공산당이였는데 그 공산당한테 죽었습니다. 《민생단》도 아닌데 《민생단》으로 몰아 죽였습니다.〉이거면 다야. 이 말이야 못하겠어? 그러면 당장이라도 놓아줄수 있어.》

한미영이 방안에 들어가 앉자 화로에 손을 녹이며 하는 말이였다.

《그러면 여기서 선화랑 함께 살아도 되고 또 집으로 갈수도 있고… 딸을 찾아갈수도 있고…

우린 리계순이라는 이름을 팔자는것도 아니야. 이름은 공개 안시키겠어. 그저 반성연설 한마디만 하면 된다니까… 우리 그를 잘 도와주자구. 》

그날 밤 선화가 오빠에게 그 소리를 하니 서봉삼은 기가 막히다는듯 꺼지게 한숨만 내쉬였다.

《정말 그런 녀자를 죽인다는건…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야. 그런 녀자를 도와줄수만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니, 네가 할수 있다면… 해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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