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10 장
확실히 기자들이 하는 잡도리가 달랐다. 그들은 실화를 읽자 먼저 부채붓꽃을 재배하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것이다.
식물원과 온실들을 찾아다니며 부채붓꽃을 가꾸고있는가 알아보았고 누가 부채붓꽃에 관심을 가지고있는가를 탐문했다.
주변농장 작업반들까지 다 훑었다.
마침내 형제산구역의 한 농장에서 그런 사람을 찾았다. 집에서 자그마한 온실을 차려놓고 여러가지 꽃을 가꾸는데 특히 부채붓꽃이 기본이라고 했다.
체신소의 그 처녀를 데려다 맞대면을 시켜보았더니 바로 그가 실화를 보낸 남자였다.
이름은 진두일, 나이는 쉰한살… 어머니는 리정애…
기자들의 전화를 받은 정옥이는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자기가 짐작하기에는 어머니가 정선화이고 아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자기보다 서너살아래여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보다 우였던것이다. 모든게 다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여 그 진두일이라는 사람이 이런 실화를 쓰게 되였는가. 기자들의 말에 의하면 진두일은 자기 어머니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는것이였다.
그 어머니는 정선화에게서 들었다고 했고… 정선화에게서는 오래전에 들었기때문에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는것이였다.
정옥은 여하튼 자기에게 어머니에 대해 알려준 고마운분들이라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아담한 농촌문화주택인데 마당 한귀퉁이에 자그마한 온실을 차려놓았다.
마가을이지만 지금 한창 부채붓꽃들이 키를 솟구고있었다. 아마도 어머니의 생일을 맞춰 피우려고 조절을 했을것이다.
벼단 실어들이느라 논벌에 나갔던 진두일은 점심시간이 다 되였는데도 동안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아들 둘은 군대에 나가있고 막내딸은 농장에서 일하고 안해는 탁아소 소장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못해서 칠보산황진온천 료양을 갔다고 한다.
방안에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찍은 대회사진이 세상이나 모셔져있고 리정애가 받은 농근맹중앙위원회 표창장도 걸려있었다.
《대회에도 여러번 참가했군요.》
정옥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찍은 대회사진들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세상이 다 전국농업대회사진인데 두상은 진두일의것이고 한상은 리정애의것이라고 했다.
가족사진은 걸려있지 않았다.
《사진첩을 좀 보여줄수 있어요?》
대회사진들을 보고나서 진두일과 마주앉아 가정형편을 알아보던 정옥은 정애어머니의 얼굴이라도 보고싶어 이렇게 물었다.
진두일은 어줍게 웃으며 막내딸에게 사진첩을 가져오라고 했다.
《사진첩이란게 전부 애들 사진뿐입니다. 어머니도 그렇고 우리들도 사진을 그닥 좋아하지 않다보니…》
하늘색뚜껑에 약간 사선으로 사진첩이라고 쓴 얼마전부터 나돌기 시작하는 신식사진첩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결혼식사진 몇장을 내놓고는 전부 자식들의 사진이였다. 자기들끼리 평양시내에 나가 만경대와 대성산유원지, 모란봉공원, 대동강의 뽀트놀이장들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과 야영가서 찍은 사진들, 졸업사진들, 인민군대에 입대하면서 찍은 사진들, 군기앞에서 찍은 영예사진들… 하여튼 사진첩 세권이 빼곡이 찼다.
정옥은 결혼식사진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바로 렬사릉에서 만났던 그 어머니가 은근한 미소를 짓고 내다보고있다.
《여기 가운데 앉은분이 어머니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참 리해되지 않는군요. 어머니는 왜 저를 피했고 또 두일동무는 어째서 자기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았는지…》
두일은 어줍은 표정을 지으며 볼을 슬슬 긁었다.
《그게 무슨 저의 글입니까? 전 그저 어머니가 이야기해준 그대로 썼을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실화에 어머니이름을 달자고 했더니 자기도 들은 이야기이니 이름을 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럼 정선화라는 이름이라도 달자고 했더니 그 녀자도 절대로 자기 이름을 내지 말라고 했다는것입니다. 자기는 리계순렬사앞에 정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은사람이라면서… 그래서 그렇게 된겁니다.》
《어쨌든 그 글은 두일동무가 쓰지 않았어요. 우린 두일동무의 이름을 달기로 했습니다.》
두일은 뒤더수기를 긁으며 어줍게 웃었다. 《저야 뭐 농사군인데… 어떻게… 글이 한심한데…》
《문장이나 표현이 맞지 않는거야 출판사에서 편집하면서 바로잡겠지요. 문제는 사상이고 내용이 아니겠어요. 정말 고마와요.》
《고맙기야 뭐… 저는 리계순렬사에 대해 쓰면서 몇번이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들의 자식들에 대한 참사랑이 어떤것인지… 그리고 사람이 혁명앞에 어떻게 충실해야 하는가 하는것을 사무치게 느꼈습니다. 정말 훌륭한 어머니를 두셨습니다.》
《두일동무의 어머니두 훌륭한분이군요. 저 수령님을 모시고 찍은 농업대회사진이랑 저 표창장이 다 말해주지 않아요.》
《우리 어머닌 해방전에 정선화녀성처럼 떳떳치 못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중요한거지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평가해주셔서…》
정옥은 웃었다.
《평가야 제가 아니라 저렇게 당에서 하지 않나요.》
정옥은 그러며 농업대회사진과 표창장을 가리켰다.
《그런데 리해 안되는건 어머니가 왜 절보구 피했는가 하는거예요. 무슨 말씀이 없었어요?》
《어머닌 그때 무슨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뭐 사람을 어떻게 잘못 보았다던지… 왜서인지 집에 와서 마음안정을 못 가지더군요. 그러다 앓기 시작했는데 나이든분이니 인차 낫지 않는군요.》
정옥은 고개를 기웃했다.
분명 정애어머니는 자기를 보고 《리계순!》라고 하며 놀랐었다.
그렇다면 정애어머니도 정선화처럼 우리 어머니를 잘 알고있는것은 아닐가.
정선화와 함께 장백에서 살았다니 우리 어머니를 만나보았을수도 있다. 정선화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얼마든지 우리 어머니를 만나볼수 있는것이다.
그 장백소학교에서 우리 어머니가 연설할 때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인상이 너무 깊어서 그럴수 있지 않을가? 지금껏 선화가 들려준 이야기를 잊지 않고있는것만 봐도 기억력이 좋다는것을 알수 있지 않는가.
혹시 리정애어머니가 정선화녀성과 함께 우리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것은 아닐가?
실화를 보면 그런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이 리정애어머니도 우리 어머니를 알고있는것만은 틀림없다.
《저… 어머님이 우리 어머니의 시신에 대하여서는 무슨 말이 없었습니까?》
진두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말은 없었는데요. 그런데…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우리 어머니의 최후에 대하여 잘 아신다면… 혹시 시신을 어디에 안치했는지 아실수 있지 않을가 해서?…》
진두일은 생각깊은 눈길로 정옥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외로 돌리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니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했군요.》
《전 어머니의 최후에 대해서도 이 실화를 보고서야 정확히 알게 되였어요. 투사동지들도 어머니가 놈들에게 총살당했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모르고있었어요. 실화에서처럼 그렇게 외진 곳에서 총살했으니 볼 사람이 없었지요.》
《예―》
진두일은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또다시 도리머리를 했다.
《어머니는 그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었습니다. 그 선화라는 녀성한테서 듣지 못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부채붓꽃은 언제부터 키우게 되였어요?》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이 건립된 다음부터였습니다. 아마 정선화녀성이 그 꽃을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였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그꽃을 좋아하고…》
《어머님이 정선화녀성과 무척 가까왔던 모양이지요?》
《예, 서로 숨기는게 없이 가까왔답니다. 친자매보다 더…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그 정선화에 대해 그리도 잘 알게 된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우리 어머니를 직접 만나보신적은 없었답니까?》
정옥은 혹시나 해서 진두일을 건너다보았다.
진두일은 어줍게 미소를 지었다.
《그 소학교운동장에서 정옥동지 어머님이 연설을 하실 때… 그때 보았답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이 크고 인상적이였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습니다.》
정옥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959년도에 혁명사적지답사단을 이끌고 장백에 갔던 박영순의 말에 의하면 장백사람들도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신에 대해서는 모르고있더라고 했다.
《정선화녀성이 지금 어디서 살고있을가요? 혹시 장백에서 살고있지 않을가요?》
《글쎄요. 우리 어머닌 그 선화녀성이 계순동지가 희생된 후 인차 어디론가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젠 죽었을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유해를 찾을수 있는 길은 영영 막혀버렸단 말인가.
정애어머니도 모르는것이 분명했다. 정애어머니는 정선화의 이모사촌오빠 서봉삼이가 《결의형제》를 맺았던 어느 《형》이나 《동생》의 안해인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를 구원해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나를 보고도 죄스러워했을것이다. 서봉삼이처럼 남편이 경찰서에서 일했다면 마음고운 녀성으로서는 능히 그럴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였다.
《저… 진두일동무는 어머니에게서 우리 어머니와 관련한 무슨 생활적인 말들은 더 들은것이 없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리계순렬사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속에 깊이 품고있는것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여느때는 몰랐댔는데 우리가 조국으로 나오면서 장백현에 갔을 때… 그걸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수백리나 넘는 그곳에 들렸다가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댔습니다.
어머니는 장백현 소재지에서 이도강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나지막한 둔덕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군요.
그 둔덕우에는 아름드리비슬나무 한그루가 서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나무앞에 서서 오래도록 나무를 쳐다보다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바로 이 나무아래에서 한 빨찌산녀투사가 희생되였다. 그분은 정말 훌륭한분이였다. 아까운분이였다. 그런데 글쎄 그 악귀같은 놈들이… 그분을 학살했다. 그분이 살았다면 정말 큰일을 할분이였는데…〉
그러면서 바로 리계순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비슬나무밑에 우리 가족이 와있는것을 이상하게 여겼던지 한 로인이 우리한테 다가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무엇을 하는가고 묻더군요.
제가 어머니로부터 한 항일투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있는중이라고 하자 그 로인은 반색을 하면서 리계순렬사를 어떻게 아는가고 묻더군요.
우리 어머니가 그저 좀 안다고, 오래전에 장백소학교운동장에서 리계순렬사가 반일연설을 하는걸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로인은 그럼 리계순렬사의 시신을 어디에 안치했는지 아는가고 묻더군요.
어머니는 당황해하면서 자신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로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 렬사의 유해를 찾겠다고 조선에서 벌써 몇번이나 사람이 왔댔다고, 지난해에도 조선의 당과 정부에서 사람들을 보내왔댔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마음쓰고계신다고 하더라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 장백의 조선사람, 중국사람 다 떨쳐나 리계순렬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그처럼 노력을 하고있지만 아직은 알수가 없다는것이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무척 흥분되였댔습니다.
세상을 떠난지 20년도 더 되였는데… 아직까지 유해를 찾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마음을 쓰시고있다니 그렇게도 감동되였던것입니다.
어머니는 조선으로 나오는 길에서도 자주 〈그분께서 리계순렬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그렇게도 애쓰시다니…〉하고 외우군 했습니다.
어머니는 몇년전에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이 건립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가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바로 혁명렬사릉에서 리계순렬사를 보았다는것이였습니다. 얼마나 모색이 신통한지 꼭 살아있는 렬사를 보는것 같았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리계순렬사를 환생시켜 내세워주셨다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잠을 못 잤습니다. 자꾸만 궁싯거리길래 왜 그러는가고 물으니 그저 잠이 오지 않아 그런다고만 하더군요.
며칠을 그렇게 못 잤습니다.
후에야 나는 어머니가 렬사릉에 리계순투사의 유해가 없는것때문에 그런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정선화란 녀성은 바로 자기가 리계순렬사의 시신을 안치하지 못한것때문에 그리도 괴로와했다는것이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부채붓꽃을 아는가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은 들어봤어도 보지는 못했다고 하자 어찌어찌하게 생긴것이라고 알려주더군요. 말만 듣고서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식물사전을 들추어보고서야 알았지요. 어머니는 집에서 부채붓꽃을 키우자고 했습니다. 그것도 12월초와 1월초에 꽃을 피울수 있게 온실을 만들고 거기에서 키우자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부채붓꽃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또 글을 한번 써보라는것이였습니다.
농장원이 무슨 글을 쓰라는가고 하니 이건 꼭 써야 한다는것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리계순렬사를 환생시켜 내세워주신걸 보니 자기가 죄스럽다는것이였습니다. 이제라도 렬사를 위해서 미흡하나마 기여하자는것입니다.
그래서 저 실화를 쓴것이지요. 글재간은 없지만 어찌겠습니까. 어머니가 그리도 간절히 요구하는데… 부끄럽습니다. 투쟁내용은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데 내 글재간이 따라가지 못하다나니…》
정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글을 참 잘 썼어요. 정말 감동적이였어요.》
진두일은 시무룩이 웃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글이 감동적이라면 계순렬사의 삶과 투쟁이 그처럼 훌륭하기때문이지요.》
정옥은 한동안 더 있다가야 자리를 일었다.
《어머님을 잘 돌봐드리세요. 어머님이 료양을 마치고 돌아오면… 알려주세요. 제가 오겠어요. 그리고 우리 집에도 한번 오세요. 어머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친척처럼 여기고… 참, 형제분들도 있습니까?》
《예, 동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머니가 가있는 그 온천주변에 있습니다.》
《그래요?》
《정옥동지가 왔댔다는걸 어머니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진두일은 멀리 동구밖까지 나와 바래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