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2 장
―《영생하는 삶》중에서―
1
한낮무렵.
아름드리 물황철나무가 한그루 서있는 산굽이길을 에돌아 여라문살난 애들 서넛이 왁작 떠들며 막 뛰여오고있었다. 어떤 애는 주먹을 휘두르며 무엇이라 고아댔다. 제마끔 고아대서 처음엔 무슨 말인지 가려들을수조차 없었다. 어디서 무슨 큰일이 생긴것은 분명한듯 했다.
모지랑이호미로 가물타는 밭고랑을 벅벅 긁으며 수수밭김을 매던 리계순의 어머니 손증산은 무슨 일인가 해서 허리를 폈다. 손등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훔치며 벅적 고아대는 애들을 내려다보았다. 웃마을의 원동소학교에 다니는 딸 계순이또래 아이들이였다.
의아해서 내려다보던 증산의 쪼프렸던 눈이 삽시에 화등잔만큼이나 확 커졌다. 심장이 떡 멎는것 같다.
《계순이 엄마! 야단났어요. 계순이가 잡혀가요.》
《준옥이랑 은금이랑 다 잡혀가요.》
《자동차에 막 싣고가요.》
귀가 멍멍해졌다. 손에서 호미가 툴렁 떨어져 수수대포기속에 박혔다.
(우리 계순이가 잡혀가다니, 이게 무슨 변고인가?)
한동안 자신을 잊고 멍하니 애들을 내려다보던 증산은 이윽해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머리수건을 벗어쥔채 허둥지둥 내리달렸다. 수수잎사귀들이 무릎노리에 휘감겨들었으나 아랑곳 않고 허청허청 발을 헛짚기까지 하면서 달려내려갔다.
《어디로, 어디로 잡혀가던, 응? 무엇때문에…》
조무래기들이 오구구 증산을 에워쌌다. 저마끔 웨쳐댄다.
《자동차에 실려갔어요.》
《팔도하자쪽으로 갔어요.》
《그저 잡아갔어요. 그 애들은 오후에 산나물 뜯으러 갔댔어요.》
《학교에 막 들어오는데 그놈들이 붙잡았어요.》
증산은 눈앞이 아뜩해졌다. 준옥이와 은금이와 계순이는 여기 금곡마을에 태를 묻고 같이 자라는 소꿉동무들이다. 그 애들이 그저 나물 뜯으러만 가지는 않았을것이라는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분명 맏아들 지춘이가 무슨 심부름을 시켰을것이다. 길림사범학교에 다니다 중퇴를 하고 돌아온 리지춘이가 왜놈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잡아내려 하는 그런 일을 한다는것을 증산은 잘 알고있었다.
이 일을 어찌할가. 그 악귀같은 놈들이… 어린것들까지 잡아가다니…
소름이 끼쳤다. 진저리를 쳤다. 그 무지막지한 왜놈들에게 잡혀가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 어른이건 아이이건 늙은이건 녀자이건 가리지 않고 마구 총칼을 휘둘러대는 짐승같은 놈들이다.
증산은 더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무작정 팔도하자쪽으로 반달음을 놓기 시작했다.
증산에게 《중대사변》을 알려준 애들이 또 뛰여가며 이번엔 은금이며 준옥이 엄마들을 불러댄다.
증산은 가슴을 무딘 쇠호미로 벅벅 긁어내리는것 같았다. 옷고름이 풀어지는줄도 몰랐다. 이제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타산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딸이 자그마한 화라도 입지 않게 무작정 품어안고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모성으로서의 본능적인 걸음이였다. 자기는 온몸이 찢겨 죽을지언정 귀여운 딸애만은 손톱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강렬하고도 단순한 의무감이였다.
증산은 어떻게 산굽이를 에돌고 시내물을 건넜는지 알지 못했다. 온몸으로 땀이 좔좔 흘러내리고 숨이 헉헉 막혔지만 늦출수가 없는 걸음이였다.
눈앞에는 자동차적재함에 쪼그리고앉아 오돌오돌 떨면서 《엄마!》, 《엄마!》하고 애처롭게 울고있을 계순이 모습뿐이다.
고 풋병아리같은게 글쎄 무슨 일을 치자구…
증산의 가슴속에선 알지 못할 원망이 부걱부걱 괴여오른다.
그것은 어린 딸이 아니라 맏아들 지춘이에 대한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 모든걸 두둔하고있는 남편에 대한것인지도 모른다.
퍽― 왼발이 무엇엔가 부딪쳤다. 왼발가락끝이 금시 끊어져나가는듯 한 아픔에 소스라치며 몸을 떨었다. 돌부리를 걷어찬 모양이였다.
그대로 주저앉고싶다. 발가락들이 어떻게 되였는지… 다 물크러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내려다볼 마음의 경황도 없다. 허둥허둥 달려간다. 당장 딸애가 어찌될듯만싶어 마음은 급한데 발은 왜 이렇게 잘 움 직여주지 않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헉헉 단숨을 내뿜으며 발을 옮겨놓는다.
한굽이 또 한굽이…
《엄마, 엄마는 바다에 가보았나?》
몇해전 어느 가을날 빨래터에 따라나와 치마로 감싸내린 두무릎에 턱을 고이고 앉아 흘러가는 내물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쳐다보던 계순이가 물었었다.
일에 지칠대로 지친 증산은 방치로 투닥투닥 빨래를 두드리며 흥심없이 대답했다.
《우리야 원래 바다가에서 살았지. 우리 고향은 명천이란다, 바다가마을…》
《음, 맞아. 할아버지가 그랬댔어. 그러니 엄만 다 보았겠구나. 갈매기랑 파도랑…》
계순의 부러움이 실린 말에 증산은 쓸쓸히 웃었다. 불쑥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엊그제 아침에 집을 나간 애가 점심에도 안들어오고 저녁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어 안타까이 찾아헤매는데 어둑어둑해졌을 때에야 개울건너집 손원금의 할아버지가 후줄근해진 애들 셋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계순이와 소꿉동무들인 준옥이와 은금이였다. 《낚시질을 하고 돌아오는데 이 애들이 저 아래마을 합수목까지 와서 오돌오돌 떨고있지 않겠소. 바다구경을 가댔는데 량옆으로 큰 개울이 흘러와 합쳐졌으니 앞길이 막혀버린거요. 개울 저쪽기슭을 탔더라면 큰일날번 했수다.》 손원금의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하던 말이였다.…
증산은 방치질을 하다말고 계순이를 돌아보았다.
《너 바다가 그렇게두 보고싶니?》
계순은 고개를 까닥까닥했다.
《응, 바다는 얼마나 큰지 모른대. 거기엔 이렇게 큰 고기가 많구 하늘을 훨훨 나는 갈매기두 많구… 갈매기는 하얗대. 바다는 파랗구 바다기슭엔 모래불이 하얀데 고운 조가비랑 많대. 그래서 은금이랑 준옥이랑 바다구경 가자구 했댔지 뭐. 소꿉놀이할 조가비랑 많이많이 가져오자구.…》
계순은 멀리 파랗게 들린 남쪽하늘을 바라보고있었다. 언제나 새물새물 웃는듯 한 그 곱고 귀여운 눈가엔 꿈이 가득 실린듯 했다. 꿈도 많아 엉뚱한 일을 곧잘하는 딸애였다. 비록 팔굽을 기운 낡은 저고리에 몽당치마를 입고 풀죽으로 끼니를 에워가지만 깡충깡충 줄넘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딸애였다. 모진 가난속에서도 주접이 들지 않고 밝고 명랑하게만 자라는 딸애가 귀엽고 대견하면서도 제대로 못해내세우는것이 가슴에 걸린다.
증산은 한숨을 내쉬며 오금을 박아 말했다.
《바다는 너무 멀어서 못 가. 다시는 그런 생각을 말아.》
《응… 우린 원래 거기서 살다가 왜놈들이 못살게 굴어서 멀리 여기루 쫓겨왔대. 왜놈들을 몰아내야 다시 명천에 가서 살수 있대.》
증산은 어린애의 말이 너무도 놀랍게 번져져서 빨래를 헹구다가 흠칫 손을 멈추기까지 했다.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건 누가 그러던?》
《할아버지가…》
계순의 할아버지는 의병출신이였다.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침범하자 호미를 화승총으로 바꿔쥐고 집을 떠나갔다. 몇해전에 다리에 부상을 당하고 돌아왔는데 계순이는 할아버지를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할아버지는 잘 때에도 계순이를 팔베개에 베워 잠재우고 일어나서도 쌔근쌔근 자는 손녀의 모습을 한참이나 사랑스레 들여다보다가 도마도살같은 볼을 살짝 눌러주고야 지척지척 발을 절며 밭으로 나갔다. 계순은 잠에서 깨여나면 손등으로 눈을 부비며 《할아버지 어디 간?》하고 할아버지부터 찾았고…
증산은 빨래를 판돌우에 철썩 올려놓았다.
《그런 말 아무에게나 막 하지 말아라. 큰일난다. 왜놈들한테 잡혀가. 알겠니?》
증산은 딸애의 다짐을 받아내고서야 가슴속의 불안을 다 씻어버리려는듯 빨래를 활활 개울물에 마저 헹구었었다.…
그때 일은 왜 어제일처럼 이렇게 생생히 떠오를가. 발은 왜 이렇게 허청거리고…
갑자기 왼발이 쭈르륵 뒤로 밀리는 바람에 앞으로 꼬꾸라질번 한 증산은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굵은 마른 나무토막을 밟은것이다. 그 나무막대기에 걸린듯 오른발복사뼈가 뜨끔하면서 미투리가 벗겨졌다.
증산은 미투리를 신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뽀얗게 먼지 오른 오른발복사뼈밑으로 피가 흘러내린다. 막대기에 찔린것이다. 증산은 언제 상처를 돌볼새도 없이 황황히 미투리를 꿰신고는 또 허둥허둥 달음질을 쳤다.
(애들이 지금 어디쯤 갔을가? 그 악귀같은 놈들이 마구 때리지는 않을가?)
목에서 쇠비린내가 난다. 그래도 속이 떨려 걸음을 멈출수가 없다.
또다시 눈앞에 떠오르는것이 있다.
솨솨 설레이는 백양나무… 그 백양나무를 태워버릴듯 타오르는 불길, 불길… 그 불길속에 계순의 할아버지가 거인처럼 서있다. 왜놈들은 계순의 할아버지가 제놈들을 반대하여 싸운 의병출신이라고, 3. 1인민봉기때 마을사람들의 앞장에 섰던 주모자라고 마을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불태워죽이려는것이다.
계순은 할아버지한테 가겠다고 떼를 쓰며 울었다. 사람들이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그 팔을 물어뜯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그날 밤도 또 다음날 밤도 자다가도 일어나 《할아버지!》, 《할아버지!》하고 울며 찾았다. 계순이가 다섯살 나던 퍽 오래전 일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세월이 흐른다고 아물 그런 상처가 아니였다. 그래서 계순이 벌써부터 왜놈들을 반대하는 일이라면 기를 쓰고 나서는것 같았다. 그 무슨 아이들의 조직에도 들고…
하지만 계순은 아직 너무 어리다. 철들 나이도 안되였다. 그런데도 제오빠는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왜 자꾸 시키는지 모르겠다.
푸드드득― 길옆 풀숲에서 꿩 한마리가 놀라서 꿔겅― 하며 날아올랐다.
증산은 숨이 차서 더는 견딜수가 없었다. 가슴이 통채로 타드는것만 같다. 까맣게 재가 되고 그 매운재가 목구멍을 메우며 솟구치는것 같다.
아 계순아, 너는 지금 어쩌고있느냐. 내 딸아―
허덕허덕 걸음을 옮기던 증산은 갑자기 우뚝 서버렸다. 눈을 흡뜬채 멍하니 앞을 쳐다보았다.
(이게… 꿈은 아닌가? 이게?)
저앞 고개길로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내려오고있었다. 틀림없이 계순이와 은금이, 준옥이였다. 바구니들을 하나씩 옆에 낀 그 애들이 깡충깡충 뜀박질을 하다가 또다시 까르르 웃는다. 뒤이어 들려오는 명랑한 노래소리…
반짝반짝 아름다운 작은 별들
구슬같이 어여쁘게 빛나요
저녁하늘 달도 없이 캄캄한데
금강석을 뿌려논듯 반짝거려요
허― 증산의 입에선 김빠진 소리가 새여나왔다. 맥은 발끝으로 다 새여나간듯 온몸이 나른해와 스르르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고말았다. 또다시 안도의 숨이 후― 하고 폭포처럼 쏟아져나왔다. 왜서인지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
증산은 뿌옇게 흐려드는 눈길로 넋없이 애들을 쳐다보았다.
애들은 어미의 속이 새까맣게 탄줄도 모르고 활짝 웃으며 신이 나서 노래만 부른다.
소곤소곤 사이좋게 노는 별들
무슨 얘기 그리 재미날가요
호랑해님 무선 얼굴 들기 전에
졸지 말고 어서 바삐 놀다가시오
《이년들아, 너희들은 무엇이 그리 좋아 지절대느냐.》
길옆에 주저앉았던 증산은 애들이 굽인돌이를 돌아서자 버럭 화를 냈다.
《어마나!》
깜짝 놀랐던 애들이 증산을 알아보자 환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엄마, 왜 여기에 왔나?》
계순이가 방글거리면서도 의아한듯 빤히 올려다보며 묻자 증산은 자기도 모르게 허구프게 웃었다.
《너희들이 잡혀간다구 해서 따라오댔다. 대체 어찌된 일이냐?》
애들은 서로 마주보더니 또다시 까르르 웃었다.
《그깐 놈들에게 우리가 잡혀가겠어요? 멍텅구리같은것들인데…》
준옥이가 으시대며 지나온 뒤쪽에 대고 입을 비쭉해보였다.
《그래, 정말 잡혀가댔니?》
《응.》
계순이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증산은 근심어린 눈길로 딸애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놓여나왔니, 쉽게 놓아주던?》
은금이가 빨쪽거렸다.
《꾀를 썼지요 뭐, 계순이가…》
《계순이가?》
증산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커졌다.
《얜… 그야 너희들이 함께 꾀를 썼기때문이 아니냐.》
계순이가 제법 점잔을 빼며 동무들에게 눈을 할깃했다.
증산은 애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오며 사연을 들었다.
오빠의 지시로 통신련락을 갔던 계순이네들이 학교마당에 들어서기 바쁘게 학교에 와서 행패질을 하며 돌아가던 경찰들이 대뜸 그들을 붙들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온다는것이 수상해보였던것이다.
《옳지, 요것들이 통신련락을 갔다오는구나, 뭐? 산나물? 거짓말 말아. 이제 가면 다 실토하게 될게다.》
놈들은 타고온 자동차에 무작정 그들을 들어올려던졌다. 텁석부리의 우악스런 손에 들려 쿵 하고 적재함바닥에 떨어진 계순은 눈앞이 아뜩했다. 은금이도 준옥이도 적재함에 쿵쿵 나떨어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계순은 기가 막혔다. 이대로 잡혀갔다가는 무슨 화를 입을지 몰랐다. 엉치가 얼얼했지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급히 생각을 굴렸다. 오빠가 이럴 땐 어떻게 하고 저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많이 대주기도 하였고 소년회모임때도 서로 자기가 생각한 꾀들을 내놓으며 이런저런 경우를 토론해보기도 하였지만 이런 일이 생길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계순이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가. 계순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분명 놈들이 그 무슨 단서를 잡아 이러는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잡혀가면 큰일이다. 오빠가 말한데 의하면 놈들은 이럴 땐 따로따로 가두어놓고 얼리고 때리고 떠보고 한다는데 그러면 서로 차이나는 말이 나올수 있고 그렇게 단서를 잡히기 시작하면 점점 헤여날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했다.
자동차는 계순이가 무슨 생각을 해내기도 전에 부르릉― 떠났다. 그 바람에 몸이 왈칵 뒤로 쏠리여 그들은 아우성을 치며 적재함바닥에 나딩굴었다. 애들을 단속하자고 적재함에 올랐던 텁석부리가 낄낄 웃었다. 이발 누런 입에서 술내가 확확 풍겨나왔다.
계순이네는 얼른 적재함 모서리에 가붙었다. 눈앞으로 학교앞에 심은 백양나무가 획 스쳐지나갔다. 마당에 나와 구경하던 애들이 무어라 소리쳤다. 뒤이어 길옆 집들과 수수밭들이 빙글빙글 돌아앉는다.
이러나저러나 계순이로서는 처음 타보는 자동차였다. 자동차만 보아도 얼마나 신기해하였던가.
바로 그 순간 계순의 머리속에 한가지 꾀가 피뜩 떠올랐다.
《어야나!》
계순은 바구니를 내던지며 두손을 짜락 박수치듯 마주쳤다. 탄성을 올리며 얼핏얼핏 지나치는 집들을 가리켰다.
《얘들아, 저것 봐. 저 집들이 막 뒤로 달아나는구나.》
《뭐?》
은금이와 준옥이가 의아해서 돌아보자 계순은 텁석부리가 못 보게 한눈을 쨍긋했다. 그리고는 연방 환성을 올렸다.
《호호호, 저것 봐. 최주사네 오좀싸개(최주사네 아들)가 멍청해서 쳐다보는걸… 호호호, 용용, 부럽지? 너 이런거 한번도 못 타봤지?》
계순이가 이렇게 소리치자 령리한 은금이와 준옥이도 눈치를 채고 환성을 올렸다.
《저따위가 이런걸 타봤을게 뭐야.》
《꿈도 못 꾸어봤을거야. 야, 멋있구나.》
계순은 얼핏얼핏 지나치는 집들과 웬일인가 해서 쳐다보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깔깔거리다가 텁석부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우리 언제까지 이런 차를 타고가나요, 저녁때까지 탈수 있나요?》
텁석부리는 아연해져서 뻥해진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너 이런 차 처음 타보는가?》
《그럼요, 우리같은 촌뜨기가 언제 타보겠어요. 저녁때까지만 좀 태워주세요. 우리가 맛있는 나물을 한바구니씩 뜯어다줄게.…》
《그래요, 참나물이랑 취나물이랑 고사리랑 많이많이 뜯어다주겠어요.》
《저 오좀싸갠 자기네 집에 자전거가 있다구 우쭐거리는데… 꼴보기 싫어서 그래요. 좀 태워주세요. 우리도 좀 뻐기여보게.…》
은금이와 준옥이도 그놈의 량팔소매를 잡으며 졸라댔다.
텁석부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한 눈길로 애들을 흘겨보았다.
사실 그놈은 학교에 가기 전에 최주사네 집에서 술대접을 받았었다. 그때 그 집 아들놈(오좀싸개라고 놀려주는 아이)에게서 계순이네가 공부시간에 자꾸 어디론가 몰래 갔다오군 한다는 말을 듣고 수상하게 여기였었다. 아닌게아니라 학교에 왔다가 마침 나물바구니들을 들고 들어서는 그들을 붙잡았던것이다.
《너희들, 정말 나물 뜯으러 갔댔어?》
《그럼 왜 갔겠어요. 이걸 보구두 몰라요? 당장 저녁에 끓일것이 없는데 계집이 무슨 공부냐면서 엄마가 나물해오라구 해서.…》
《제길.》
텁석부리는 시누런 이를 내보이며 이새로 침을 찍 내쏘았다. 술이 얼근한김에 최주사네 아들 《오좀싸개》가 하는 말을 곧이듣고 이런 철부지 《코흘리개》들을 특별한 단서도 없이 잡아갔다가 서장한테 오히려 경을 칠것 같았던 모양 홱 돌아서서 운전칸우를 쾅쾅 두드렸다.
차가 덜컥 멈춰서자 놈은 제풀에 화가 나서 다짜고짜로 애들의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요 쌍것들, 당장 내려, 어서!》
계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마나, 왜 그러시나요. 우린 정말 나물 뜯으러 갔댔어요. 이 나물을 다 줄게 조금만 더 태워주세요.》
텁석부리는 눈을 부릅뜨며 발까지 굴렀다. 그리고는 애들의 엉치까지 걷어찼다.
《썩 내리지 못하겠어?》
계순은 억울한듯 눈물이 글썽해져서 사정하는척 하다가 《마지못해》 엉엉 울며 차에서 내렸다.
부르릉―
차가 떠나 굽인돌이를 돌아서자 매맞은 볼과 엉치를 슬슬 쓸며 마주보던 애들은 차가 사라진쪽에 주먹질을 하다가 까르르 웃었다.
계순이가 텁석부리의 흉내까지 내면서 발을 구르자 은금이와 준옥이는 허리를 꼬부리며 죽어라고 웃어댔다.…
애들의 조잘대는 말을 들은 증산은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였다.
자칫하면 큰 봉변을 당할번 했는데도 경찰놈을 속여넘긴것이 우스워 깔깔대기만 하는 애들을 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것이다.
《너희들은 무엇이 좋아 그러느냐. 이 어미속을 까맣게 태워놓구선…》
《아이참, 엄만 우습지 않나? 그깐놈들은 다 밥통들이야. 엄만 절대 걱정하지 말어.》
마을로 돌아오는 계순이네들은 다들 개선장군들같은 기분이였다.
…
먼 추억이였다.
그때 솜털이 까시시하던 계순이가 이제는 처녀꼴이 다 잡혔다. 그런데 왜 그때 일이 불쑥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잠자리에 누워 궁싯거리던 증산은 호― 하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푸름한 달빛이 비낀 뙤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마음은 왜 그리도 불안스럽고 머리속엔 왜서 이것저것 두서없는 생각만 떠오르는지…
온종일 밭일에 시달린 남편과 막내아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푸푸 입김, 코김을 내불며 굳잠에 든지 오랬고 부엌틈새 어디선가 씨륵씨륵거리던 귀뚜라미도 지친듯 울음을 그쳤다.
밤은 점점 깊어가건만…
증산은 가을달빛이 어린 뙤창너머에서 갑자기 수수잎사귀들이 밤바람에 설렁거리자 행여나 해서 귀를 바싹 강구었다. 가슴이 함께 설렁거렸다. 수수잎 설레이는 소리는 인차 잦아들었다. 대신 멀리에서 수얼대는 개울물소리가 들려왔다. 사위는 또다시 괴괴해졌다. 가슴은 다시 허전해졌다.
증산은 끙― 하며 몸을 뒤채였다.
오늘 저녁무렵에 왜놈경찰들과 자위단놈들이 마을에 달려들어 누구인가를 찾아낸다며 발칵 뒤지다가 웃마을로 우르르 밀려갔다. 그때부터 괜히 속이 활랑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와서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놈들이 꼭 맏아들 지춘이와 외딸인 계순이를 잡지 못해 저렇듯 피눈이 되여 아무곳이나 막 뒤지고 돌아가는것 같았다.
지춘은 여기 화룡현 덕신사 금곡지구 공청책임자이고 계순은 공청에서 무슨 선전사업을 한다던가… 하여튼 지춘이도 계순이도 이 마을 저 마을 안 다니는데가 없는 모양이다. 늘 나가살다싶이 하고있다. 그러니 《공산당은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돌아치는 저 원쑤놈들의 손에 언제 걸려들지 알수가 없다. 단 한시도 마음을 놓고 살수가 없다.
(이 애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있누…)
증산은 또 장지문쪽으로 돌아누웠다.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계순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편인 리원백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면서 총을 메고 독립군을 따라다닐 때에도 증산은 늘 불안속에 잠을 편히 자보지 못했었다. 남편이 어느 전투에서 부대가 전멸된 후 구사일생으로 집에 돌아와 끙끙 앓다가 농사를 시작했을 때부터야 발편잠을 잘수가 있었다. 풀죽을 먹어도 남편이 곁에 있으니 좋았다. 《이제는 자식들이라도 잘 키워 내세우리라.》 이것이 증산의 소원이였다.
그들은 등뼈가 휘도록 땅을 뚜지며 소작살이를 하면서도 맏아들 지춘이만은 학교에 보냈다. 풀죽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면서도 지춘이를 길림사범학교에까지 입학시켰다. 딸 계순의 가슴속에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렬하게 타오르고있는지는 생각도 못했다. 어느날 땔나무를 하려고 마당에서 남편이 낫을 썩썩 갈고있는데 계순이가 큰일이나 난것처럼 달려들어왔다.
《아부지, 나두 공부시켜줘, 응. 저 원금오빠두 공부하러 가는데…》
낫을 갈던 남편이 아연해서 딸애를 쳐다보았다. 계순은 할딱거리며 울밖으로 손가락을 내뻗쳤다.
《저기 원금오빠가 지금 막 학교에 가. 나두 보내줘, 응? 나두 학교에 갈래.》
계순은 안타까와 발까지 동동 굴렀다. 개울건너편집에 사는 손원금은 계순이보다 한살 우였다. 계순은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면서도 그에게 언제한번 지려 하지 않았다. 그런 손원금이가 방금전에 책보자기에 학습장 두권과 연필 한자루를 싸들고 원동소학교에 입학한다면서 자기 할아버지를 따라간것이다.
계순의 아버지는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도리머리를 했다.
《어찌겠니, 조금만 참아라. 원금이는 너보다 나이가 한살 많지 않니. 한해만 참아보자.》
차마 학교에 보낼 처지가 못된다는 말을 어린 딸에게는 할수가 없었다. 돈이 있어야 공부를 할수 있다는 세상리치를 애어린 자식이 알아들을리가 없는것이다.
계순은 학교에 다니는 원금이를 부럽게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뻐기군했다.
《울아버지가 나도 학교에 보내준댔어. 오빠만큼 큰담에…》
계순은 다음해에도 학교에 갈수가 없었다.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있었다. 한해동안 뼈빠지게 일했건만 타작을 하고나니 남은것이 한말도 되나마나한 피수수가 전부였다.
《울아버지가 한해만 더 참으래. 다음해엔 진짜 보내준댔어.》
조꼬마한 애기바구니를 들고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올라가던 계순이가 2학년생이 되였다고 우쭐대는 원금이에게 시무룩해서 내쏜 말이였다.
그러나 다음해에도 사정이 달라지지 못했다. 손원금이 소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순은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했다.
손원금이가 소학교를 졸업하던 날 계순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온종일 방바닥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잠결에는 할아버지까지 찾았다. 그런 외딸을 차마 볼수가 없는듯 머리맡에서 등을 돌려대고 앉아 밤새 애꿎은 담배만 태우던 계순이 아버지는 날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지금껏 애용하던 손때묻은 판자로 짠 써레기통과 재털이를 들고 움쭉 일어섰다. 담배가 있는채로 써레기통과 재털이를 부엌아궁이에 쓸어넣은 계순이 아버지는 큰맘을 먹고 어디로 가서 돈을 변통해왔다. 손증산이 돈을 내놓는 애아버지를 놀란 눈길로 쳐다보며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진 빚도 많은데 이건 왜?》
계순이 아버지가 큰숨을 내쉬였다.
《애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면 저렇게 두었겠소? 저 애의 어린 가슴에 한생토록 갈 한이 생기겠소. 빚더미우에 올라앉더래도 소원을 풀어줍시다.》
밥은 굶어도 담배는 안 피우고 못 견디겠다던 계순이 아버지는 그날부터 담배까지 끊었다.
《원금오빠, 나 래일부터 학교에 간다. 얘 원숙아, 나 래일부터 학생이 돼. 알겠니?》
계순은 원금이와 그의 누이동생 원숙이에게는 물론 동네방네 다니며 제또래 동무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날 밤늦게 돌아온 계순은 너무 좋아 밥도 먹지 않았다. 백로지로 묶은 학습장과 연필 한자루를 가슴에 꼭 안고 잠을 자며 꿈결에서도 발씬발씬 웃었다. 첫닭이 울 때부터 일어나 들락날락하며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계순아, 배고프지 않니? 어제 저녁도 안 먹구…》
계순은 고개를 가로 흔들며 방실 웃었다.
《난 밥 안 먹어두 돼. 학교만 가믄 돼.》
《애두 참,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어서 들어가 자렴. 내 밥을 해놓구 깨울게…》
《그러다 학교 늦으믄 어떻게 하니…》
계순은 학습장과 연필을 껴안고 부뚜막우에 쪼그리고 앉았다.
《엄마, 나 학교가믄 공부 잘할래. 난 은금이랑 준옥이한테두 이길수 있어.》
《아무렴, 그래야지. 우리 계순이가 누구라구…》
《엄마, 엄마, 나 창가두 많이많이 배울래. 집에 오믄 아빠, 엄마한테 불러드릴래.…》
《우리 계순이가 용쿠나.》
그날부터 계순의 얼굴엔 늘 웃음이 남실거렸고 어려운 살림에도 집안에선 언제나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엄마, 우리 나라는 동쪽, 남쪽, 서쪽 다 바다로 둘러싸여있대.
동해, 서해, 남해… 산좋구 물맑구 땅은 기름지구… 정말 살기 좋은 나라래. 그런데 왜놈들이 빼앗았지 뭐. 왜놈들만 내쫓으믄 잘살수 있대.》
《엄마, 우리 나라는 력사가 5천년이나 된대. 고조선이랑 고구려랑 옛날엔 우리 나라가 참 강했다나. 왜적들은 꼼짝도 못했대. 우리 나라도 힘만 다시 키우면 된대.》
《엄마, 나 노래 또 하나 배웠다. 부르라니?
도레미화쏠라씨도
동리애들 학교갔다 집에 돌아오더니
손짓발짓 춤을 추어가며 쏠도 쏠미 레쏠도》
계순이가 나풀나풀 춤까지 추어가며 노래부르는 모양을 보면서 손증산은 하루피곤이 다 풀리는것을 느끼군 했었다. 사는 보람을 느꼈다.
《엄마, 엄마, 나 선생님이 그러는데 공부도 제일 잘하구 노래두 제일 잘 부른대. 나 이제 크면 선생이 될수 있대.》
증산은 놀란 눈으로 딸애를 내려다보았다.
《너 선생이 되고싶니?》
《응, 선생님이 우릴 보구 이제 크면 무엇이 되고싶은가 한사람한사람 물어보잖겠어? 그래서 선생이 되고싶다고 했지 뭐. 엄마, 내가 정말 선생이 될수 있을가?》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는 계순의 그 고운 눈엔 꿈이라도 꾸는듯 미소가 사물사물 피여올랐다.
증산은 가슴이 뭉클했다. 딸애의 작은 가슴에 앞날에 대한 소중한 꿈이 싹트기 시작한것이다.
그들의 생활에 파동이 생기기 시작한것은 왜놈경찰들이 계순이네 학교에 불을 지른 때부터였다. 조선력사와 조선글을 배워준다는것이 《죄》였다.
계순은 운동장 한귀퉁이에 서서 불이 황황 타번지는 학교를 억이 막혀 쳐다보았다. 꼭 움켜쥔 조그마한 주먹은 파들파들 떨렸고 량볼로는 진하디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놈들, 나쁜 놈들…》하는 저주의 목소리가 그의 작은 입에서 몇번이고 터져나왔다.
그처럼 배우고싶어하던 계순이였다. 그처럼 가고싶던 학교였고 마침내 학교에 가게 된 그날부터는 아침일찍 나가 마당도 쓸고 교탁도 닦던 계순이였다. 그처럼 소원의 전부이던 사랑하는 학교가 불타고있었다. 황황 타오르는 불길… 계순은 그 불길속에서 학교와 함께 할아버지를 보았다. 자기를 그처럼 귀여워하고 애지중지 사랑해주던 못 잊을 할아버지를… 왜놈들은 할아버지도 학교도 그 작은 가슴의 꿈도 다 태워버렸다. 계순은 치를 떨었다.
그후 지춘이네가 세운 야학에 다니던 어느날 계순은 집에 와서 《엄마, 래일 우리 야학에서 연예대공연을 해요. 꼭 보러 와야 해.》하고 다짐을 받았다.
연예대공연이 무엇인가 해서 일을 끝내고 야학에 가보니 야학방 두칸을 통방으로 만들고 남포불로 환하게 밝힌 무대에 어린것들이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새장고에 맞추어 춤을 당실당실 추기도 하는것이였다.
공연이 한창 고조될무렵 한 청년이 성큼 무대에 나섰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더는 고향에서 살수가 없어서 쪽박을 차고 눈물을 흘리면서 두만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모진 학대와 굶주림속에 죽지 못해 살아가고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짐승같이 짓밟히기만 하겠습니까. 예로부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모두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싸우기만 하면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때려부실수 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내흔들며 불같이 웨치는 청년은 놀랍게도 지춘이였다. 증산이 더욱 놀란것은 그다음이였다. 뜻밖에도 계순이가 무대가운데로 뛰여나오더니 두주먹을 부르쥐고 이렇게 웨치는것이였다.
《왜놈들은 숱한 조선사람들을 죽이고 우리 학교까지 불사른 원쑤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왜놈들이 불태워죽였습니다.… 원쑤 일제놈들을 타도하자!》
순간 온 장내가 《타도하자!》, 《일제를 타도하자!》고 화답해나섰다. 장내는 조선독립 만세의 함성으로 한참이나 들끓었다.
증산은 가슴이 후둑후둑 뛰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깃을 펴려던듯싶던 소중한 생활이 움켜쥔 물처럼 손가락짬으로 다 새여나가는듯 싶었다.…
그때부터 증산은 늘 풀끝에 앉은 새처럼 불안해서 발편잠을 자지 못했었다.
또다시 수수잎 설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가슴속에서 머리를 쳐드는 불안을 더욱 부채질해주었다.
저 지춘이며 계순이네들이 너무 엄청난 일을 하는것만 같았다. 저 어린것들이(증산에겐 그들이 아직 어린애들처럼만 생각되였다.) 어떻게 발톱까지 철갑을 두른 왜놈들과 맞서싸운단 말인가. 증산에겐 지금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왔던 시아버지가 눈에 선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증산은 이번에 계순이가 집에 오면 무조건 집에 잡아두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시아버지, 남편이 대를 이어가며 싸웠어도 못 이룬 뜻을 조그마한 처녀애가 나서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더우기 계순은 지금 한창 피여나는 꽃같은 처녀이다. 저 흉악한 왜놈들에게 잡히면 그 짐승같은 놈들이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 달포전에 팔도하자쪽에서 왜놈들에게 잡혀갔던 녀자가 시체가 되여 나타났다고 한다. 왜놈들은 집단적으로 달라붙어 짐승도 낯을 붉힐 그런짓을 하고는 음부에 말뚝을 박아 죽인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속수무책으로 계순이가 하겠다는대로 내버려둘수가 없다. 호박넝쿨과 처녀들은 돌려놓은대로 뻗는다고 애초에 길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어미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바깥일은 남자들이 해야 하고 녀자들은 집안일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남자들은 바깥주인, 녀자들은 안주인이라 하는것이다. 바람이 지나갔는지 수수잎 설레이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또다시 들려오는 시내물소리…
이제는 자정도 훨씬 넘은것 같다.
오늘도 오지 않는구나.
증산은 마음이 허전해짐을 느끼며 끙― 하고 돌아누웠다. 마음을 눅잦히며 눈을 꼭 감았다.
(이 애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누.)
이렇게 밤마다 잠을 못들고 기다리고있는줄 알기나 하는지. 증산은 마침내 선잠에 들었다. 아슴푸레한 속에서 무슨 소리인가 들었다. 무슨 소리일가 하며 다시 돌아눕던 증산은 눈을 번쩍 떴다. 바싹 귀를 강구었다. 순간 심장이 뚝 멎는듯 했다. 저 언덕아래 개울가쪽에서 자박자박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발자국소리는 밭머리를 에돌아 어느새 삽짝문쪽으로 가까와지고있었다. 증산은 그것이 성큼성큼 시원스레 걷는 맏아들이 아니라 언제나 종종걸음을 하군 하는 딸의 발자국소리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가려들었다. 그 발자국소리는 가슴속에서 머리를 쳐들었던 그 불안의 싹들을 걸음걸음 꽁꽁 눌러밟는듯 했다.
증산은 멎었던 심장이 다시 쿵쿵 뛰는듯 한감을 느끼며 벙긋이 웃었다. 얼른 일어나 고콜불부터 켰다. 아닐세라 삽짝문이 열리고 토방에 올라서는 소리가 났다.
《엄마!》
조심스럽게 찾는 딸의 정겨운 목소리!
증산은 얼른 문고리를 벗겼다.
《계순이냐?》
문을 열자 선선한 바깥 밤공기와 함께 깜장치마에 하얀 적삼을 입은 계순이가 성큼 방안에 들어섰다.
《아직 안 자댔어요?》
집식구들을 깨울가봐 저어하면서도 맑게 울리는 소리, 말하기 전에 새물새물 웃기부터 하는 정이 가는 별같은 눈…
증산은 대뜸에 가슴이 흐뭇해졌다.
《방금 누웠댔다. 그런데… 혼자 오느냐? 오빤 못 봤니?》
계순은 량볼에 볼우물을 피우면서도 질투하듯 눈을 곱게 흘겼다.
《음, 엄만 그저 오빠 생각뿐이야. 만나자부터 오빠, 오빠…》
증산은 그러는 딸의 투정이 사랑스러워 그저 흐흐 웃었다.
《너야 이렇게 왔으니 그러지. 다 큰게 시샘은, 원… 흐흐흐.》
증산은 아래목에 네활개를 펼치고 코를 골아대는 막내아들을 웃쪽으로 조금 올려밀었다.
《어서 이 아래목에 앉아라. 여긴 아직 뜨뜻하다.》
《일없어요, 내내 걸어왔더니 막 땀이 나는데요 뭐.》
《그런데 정말 오빠를 못 만났니?》
《오빠가 보내서 왔어요. 오빠가 가보라구 해서.…》
증산은 흡족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역시 맏이는 맏이이다. 더구나 숱한 젊은이들을 거느린 공청책임자인데 속이 오죽 넓으랴. 자기들때문에 마음을 못 놓고 사는 이 어미를 걱정해주는 맏이가 대견스럽고도 고마왔다. 코허리가 다 시큰해졌다.
《넌 오빠가 꼭 가라고 해서야 오니? 집생각은 전혀 없이… 언제 가야 철이 들겠는지, 쯧쯧. 이제 시집가면 이 어미를 다 잊어버리고말겠구나.》
증산이 이렇게 탓하자 계순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소리죽여 웃었다.
《엄마도 참, 누가 생각이 없어 못 오나? 시간이 없어 그러지.》
《그래 열흘에 한두번 올새도 없다드냐?》
《엄만 다 몰라서 그래.》
《됐다, 너 저녁밥 못 먹었겠구나. 내 얼른…》
《난 먹고왔어요. 참 물이 좀 있나?》
《왜? 먹을려구?》
《아니… 머리를 감을려구.》
《오…》
집에 오면 머리부터 감는 딸이였다.
《가만있거라. 내 얼른 물을 좀 덥혀줄라.》
《덥히기나새나. 일없어요, 밖에 나가선 늘 찬물에 머리를 감는데 뭐.》
《그래도 요샌 밤날씨가 차져서 감기걸려. 잠간이면 된다. 그사이 다리쉼이나 좀 하렴.》
증산은 몸을 일으키는 딸의 어깨를 눌러앉히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자기도 모르는새에 가슴이 알알해지며 눈굽이 매워났다. 고콜불에 비추인 딸의 얼굴이 별로 수척해보였던것이다. 집을 떠나 생활하자니 고생이 오죽 하랴싶었다. 이번엔 아까 결심한대로 딸을 집에 잡아두어야겠는데 정작 만나고보니 생나무꺾듯 할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녀자를 집에 붙들어두는 제일 좋은 방법은 시집을 보내는것이였다. 예로부터 부모들이란 자식을 낳아키워 시집장가를 보내고 그 애들이 살아갈 밑천을 마련해주어야 제구실을 했다고 하는것이다. 래일은 품을 놓고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증산은 아궁에 불을 지펴넣었다. 계순이 부엌에 따라내려오더니 함지를 내려놓고 망틀을 차려놓았다.
《그건 무얼 할려구?》
《강냉이를 갈려구.… 물이 더워질 때까지 멍청히 그냥 앉아있겠어요?》
《애두 참.》
증산은 혀를 찼다.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딸이였다. 어느 집에 가건 그냥 앉아있는 법이 없이 물을 긷고 길쌈을 하고 빨래도 함께 하고 설겆이도 잽싸게 하군 해서 동리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계순이였다.
《얘야, 래일도 날인데 어서 들어가 좀 쉬려무나. 피곤하겠는데.…》
《괜찮아요, 잠간이면 될걸 뭐.》
계순은 강냉이자루를 가져다놓고 망질을 시작했다. 망돌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드르르릉 드르르릉.
계순은 입술을 옥물고 한손은 망돌을 잡아돌리고 한손은 강냉이를 쥐여 망입에 넣으면서 살며시 어머니쪽을 쳐다보았다.
사실 계순은 지금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하려 집에 들린것이다.
금곡지구 공청책임자인 오빠는 계순에게 놈들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니 어랑촌으로 자리를 빨리 옮기라고 지시했다. 마침 금곡에 왔던 화룡현당 조직부장 김일환이와 함께 가게 되였다. 그리하여 김일환이와 래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수리바위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집에 들린것이다.
계순은 나직이 한숨을 내그었다. 집에 며칠만 들어오지 않아도 이렇게 걱정하며 잠을 못 이루고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 말을 할가 생각하니 가슴이 아릿했다. 오늘도 잠 못들고있은것이 분명한데.…
드르르릉 드르르릉.
망돌은 빙글빙글 쉬임없이 돌아간다.
《이젠 물이 더워진것 같다. 어서 머리를 감자.》
증산은 나무함지를 내려놓고 김이 문문나는 물을 가득 퍼담았다.
계순은 망을 치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적삼을 벗고 머리태를 풀었다.
《이리 오너라. 내가 머리를 감겨주지.》
증산은 방안에 올라가 비누를 들고나오더니 함지의 물에 머리를 담그고 설레설레 흔드는 딸과 마주앉았다.
계순은 가슴이 짜릿해짐을 느끼며 두손으로 함지운두를 잡고 어릴때처럼 어머니가 하자는대로 머리를 내맡겼다.
증산은 딸의 젖은 머리에 비누칠을 했다. 부걱부걱 거품이 일기 시작하자 계순은 가볍게 탄성을 올렸다.
《아이, 비누냄새가 참 좋네. 이건 어디서 났어요?》
《널 주려구 사왔다.》
계순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요? 에이, 이 비싼걸 뭘 다…》
《비싸도 쓸데야 써야지. 네가 이렇게 다 큰 처녀가 되도록 비누 한장 온전한거 사다주지 못한게 늘 속에 걸렸댔다. 게다가 너야 늘 나가 총각들과 함께 다니는데.…》
증산은 비누칠을 한 머리칼을 비벼주기 시작했다.
《피, 총각들이 뭐 비누냄새를 좋아하나?》
《그래두 녀잔 그렇지 않아.》
머리를 다 감자 증산은 수건으로 물을 찌우고 얼레빗과 참빗으로 곱게 빗겨주었다. 그리고는 머리채를 꽁꽁 땋아주기 시작했다.
《참, 너 전번에 같이 왔던 그 남자 말이다. 지금두 자주 만나겠지?》
순간 계순은 얼굴이 화끈해지는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말한 《그 남자》란 바로 현당 조직부장 김일환이였다.
《어머니도 참… 그 사람은 우리를 지도하는분이예요. 나이두 많구.… 나보다 몇살이나 우인지 알아요?》
《나이가 무슨 대수냐. 나이가 많으면 듬직하구… 더 좋지.》
《엄만 정말 엉터리야.》
계순은 눈을 곱게 흘겼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설레이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이 어미눈은 못 속인다. 내 보기에두… 그 사람이 참 인정이 있어 보이드라.》
《됐어요, 어머닌 그저… 그분은 이 화룡현을 다 쥐락펴락하는분이야요. 엄격하구… 원칙이 강하구… 그런분이 나같은 조꼬만 처녈 보기나 하겠대요?》
《그래두 눈치가 다르던데? 나 같으면 이 머리태만 봐두 반하겠다, 흐흐흐.》
증산은 만족한듯 남자처럼 웃었다.
《아유, 이따위 머리태 같은게 다 뭐라구.…》
《왜? 옛날부터 녀자의 머리태는 자기 몸값과 같다고들 했단다. 그래서 머리태를 목숨처럼 귀히 여겨왔지.》
계순은 픽 웃었다. 그런 가위에도 문득 달비전설이 생각났다. 언제인가 어머니가 이렇게 머리태를 땋아주면서 《네 머리태를 보니 할머니가 해준 옛말이 생각나는구나.》하며 이야기했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버지, 어머니를 일찍 잃은 달비라는 처녀애가 백가라는 지주집의 머슴을 살고있었다. 마음씨 곱고 착하기 그지없는 달비를 마을사람들이 다 동정하고 사랑하였지만 지주녀편네만은 여간만 못살게 굴지 않았다. 자기는 모주먹은 수돼지처럼 머리칼이 점점 빠져 호박대가리인양 흉하게 돼가는데 달비는 날을 따라 머리태가 치렁치렁 탐스럽게 드리워지며 점점 예뻐지기만 하는것이 배가 아프고 심술이 났던것이다. 심보가 놀부보다 더 고약한 지주녀편네는 하루에도 몇번씩 트집을 잡아 달비의 머리끄뎅이를 쥐여 흔들어대군 하였는데 매번 머리칼을 한줌씩 뽑아내고서야 그만두군 했었다.
달비는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너무도 연약한 머슴의 몸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느날 물동이를 이고 샘물터에 갔던 달비는 물을 푸려다가 물에 비낀 자기의 얼굴을 보고 그만 깜짝 놀랐다. 자기의 그 탐스럽던 머리태가 다 뽑히워 아예 없어지고말았던것이다. 머리태가 없어지고 잔머리칼들만 남아있으니 얼마나 보기 흉한지 자기 얼굴같지 않았다.
달비는 너무도 억이 막혀 얼굴을 싸쥐고 울다가 사람들이 물길러오는 소리가 들리자 정신없이 강가로 달려나갔다.
달비가 강물에 몸을 던지려는데 뜻밖에도 강물우로 옷도 수염도 머리도 다 하얀 신선할아버지가 걸어나왔다.
《랑자는 어이하여 꽃같은 나이에 이승을 하직하려는고?》
신선할아버지의 엄한 물음에 달비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채 울먹울먹 대답했다.
《소녀는 더는 인간세상에서 살아갈수가 없어 그러오이다. 랑자가 이런 머리로 부끄러워 어떻게 세상을 살수 있겠소이까?》
그제야 달비의 머리를 본 신선할아버지가 노해서 되물었다.
《랑자는 머리태가 있어 더욱 아름다와지거늘 그대 아버지, 어머니가 물려준 고운 머리태는 어찌했는고?》
달비는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아뢰였다.
신선할아버지가 도리머리를 했다.
《아무리 그러기로서니 목숨처럼 여겨야 할 그 머리태를 다 뜯기우다니. 저승에 가면 부모님들이 그 몰골을 보고 얼마나 가슴아파하겠느냐. 저승에 가서까지 부모님들의 속을 태우는 그런 불효자식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
《할아버님, 그럼 소녀는 어찌하면 좋소이까?》
달비가 울고 또 우니 신선할아버지는 측은히 쳐다보다가 갈린 소리로 말했다.
《너의 마음이 하도 고와 내 이번만은 머리태를 주겠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
랑자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목숨으로 지킬줄 알아야 하느니라.》
신선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달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기 머리에 치렁치렁한 머리태가 다시 생겨나는것이였다.
《이 머리태는 잠잘 때에는 따로 건사했다가 일어날 때 이미 있는 머리칼에 덧드려야 하는것이니 잘 간수하거라.》
《할아버님, 고맙소이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이다.》
달비는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절을 올리며 이 머리태만은 누구도 어쩌지 못하게 지키리라 굳게 마음다졌다.
달비는 동이에 물을 담아 이고 지주집으로 들어갔다.
지주녀편네는 대문안으로 들어서는 달비를 보자 눈이 화등잔만큼이나 커졌다. 달비의 뒤머리에 치렁치렁한 머리태가 드리워있었던것이다. 함치르르하고 윤기가 도는 탐스러운 머리태를 보자 지주녀편네는 눈이 뒤집히고말았다.
《아니, 이년이 물을 왜 이제야 길어와. 그리고 이 머리태는 어떻게 또 생겼어?》
지주녀편네는 씽하니 달려나와 달비의 머리태를 거머쥐려고 했다.
이때였다.
《다치지 말아요.》하는 맵짠 소리가 공기를 쩡 얼구는듯 했다.
지주녀편네는 깜짝 놀라서 우뚝 굳어졌다. 달비가 자기를 쏘아보며 이렇게 맵짜게 소리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던것이다.
《아니, 이년이 제법 소리까지 친다.》
지주녀편네는 어처구니없는듯 코방귀를 뀌더니 더 승이 나서 달려들었다. 달비는 지주녀편네의 팔을 뿌리쳤다.
《아구구구, 나 죽는다. 아이쿠, 이년이 사람을 친다.》
지주녀편네는 왼손으로 달비가 뿌리쳐버린 오른팔을 부둥켜잡고 대굴대굴 굴었다. 엄살이 아니였다. 머슴살이를 하느라 궂은일, 마른일 다 도맡아하다나니 달비의 힘이 세여졌던것이다. 그런데다 지주녀편네와 맞서기 시작하자 힘이 더더욱 세지였던것이다.
지주녀편네는 힘으로는 달비를 당해낼수 없다는것을 알자 그가 잠들었을 때 머리태를 뽑아버리리라 마음먹었다.
지주녀편네는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야밤삼경이 되자 도적고양이처럼 달비가 자고있는 외양간으로 살금살금 기여들었다.
달비는 그 머리태를 소중히 가슴에 그러안은채 잠을 자고있었다.
지주녀편네는 살그머니 그 머리태를 움켜쥐였다. 순간 지주녀편네는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달비의 그 머리태를 쥐자마자 손이 썩어문드러지는듯 아파났던것이다.
다음날 밤 제 남편까지 끌고 달비에게 덤벼들었지만 역시 같았다.
지주놈과 지주녀편네년의 손들은 정말로 썩어문드러지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온몸이 썩어들어가 며칠후에는 황천길을 가고야말았다.
달비는 그후 마음어진 총각을 만나 행복하게 잘살았는데 마지막까지 그 머리태를 고이 간직했었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은 달비의 머리태처럼 녀자들의 머리에 보기 좋게 덧드리는 딴 머리태를 《달비》라고 부르게 되였다.…
계순의 머리를 끝까지 정히 땋아내린 손증산은 두손으로 딸의 어깨를 꼭 그러쥐며 속삭였다.
《그 사람을 한번 데려오렴.》
《엄만… 자꾸 그런 말 하겠어요?》
계순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눈을 곱게 할깃했다.
《왜, 엄마야 그런 말밖에 더하겠니? 난 그저 그런 말이 제일 좋더라, 흐흐흐.》
《엄만 정말 락후해.》
계순은 그러면서도 마디마디 정이 폭폭 안겨오는 어머니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굽을 적시였다.
이렇게 사랑해주는 어머니곁을 오래동안 떠나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릿하게 해주었다.
《자, 이젠 올라가 자자. 자정이 넘은것 같구나.》
《응.》
잽싸게 부엌안을 말끔히 거둔 어이딸은 방에 올라가 나란히 누웠다.
《오빠는 앓지 않던?》
《일없어요, 앓지 않아요. 오히려 집걱정을 하는데 뭐.》
《매사에 조심하거라. 난 너희들 걱정에 잠이 다 안 온다.》
《알겠어요.》
《그 사람은 언제 한번 데리고 오려니?》
《엄만 또 또…》
《됐다, 이젠 자자.》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옆에 누운 어머니는 마음이 놓이는듯 인차 잠이 들었다. 고르릉고르릉 가느다란 코고는 소리까지 들렸다.
계순은 눈을 꼭 감은채 집식구들의 숨소리를 듣고있었다. 이제는 몸에 배일대로 배인 혈육들의 체취이건만 이밤따라 더더욱 깊이깊이 새겨두고 싶었다. 한참이나 숨소리마저 죽인채 누워있던 계순은 떠나기 전에 집식구들을 위해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해주고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와 동생의 낡은 옷들을 걷어가지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광솔불을 켜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닌게아니라 해지고 터진 자리들이 있었다.
계순은 아궁이에 광솔을 서너개 놓고 불을 붙인 다음 땀내가 배인 옷을 비추어보며 한뜸한뜸 그대로 기워나가기 시작했다. 지주놈의 소작살이로 등뼈가 휘도록 일하면서도 단벌옷들밖에 해입을수가 없는 가난한 살림이라 옷을 빨아도 이밤으로는 말리울수가 없는것이다.
무릎과 팔굽마다 덧천을 대고 기운 낡은 베옷들… 언제 이 옷들을 해입었는지 이제는 눈에 익을대로 익은 옷들이다.
팔소매며 바지가랭이슬가리가 너무 닳아 나슬나슬해지고 땀에 곰삭아 조금만 세게 잡아당겨도 풀풀 찢어질 옷들이다.
그런데도 새옷 한벌 해올리지 못하고 그나마 빨지도 못한채 기워주기만 하자니 가슴이 알찌근해진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이렇게 아버지와 동생의 옷을 기워줄 날이 올가 하고 생각하니 가슴속 밑굽에서 매운 연기가 자꾸만 피여올라 눈을 쓰리게 해준다. 기본적으로 다 손질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불빛에 비쳐보니 또다시 바느질을 해야 할 곳이 보인다.
아버지옷은 어깨에 덧댄 천이 닳아 판이 나가기 시작했고 동생의 옷은 왼쪽겨드랑이가 터졌다.
동생은 한창 자라는 때이니 옷이 작아지는 모양이고 아버지는 지게로 무거운 짐을 많이 져서 그리 되였으리라.
아, 고생도 많으신 우리 아버지, 내 동생… 우리 어머니.…
그러면서도 이 딸에게만은 하나라도 더 해주지 못해 마음을 쓴다.
다 큰 처녀라고 옷도 남부끄럽지 않게 해주고 오늘은 없는 살림에 그 비싼 고급비누까지 사왔다.
눈물이 나왔다.
해질대로 해진 아버지와 동생의 옷을 손질하자니 식구들의 사랑이 더더욱 목메이게 안겨왔다.
나는 언제면 이 사랑에 보답하게 될가.
《꼬끼요.》
어딘가 멀리에서 첫닭이 울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해서 바느질손을 멈추고 귀를 강구었다. 또다시 잠에 취한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꼬끼요―오.》
계순은 몸을 흠칫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다니.…
이제는 떠나야 했다.
옷을 다 기운 계순은 살그머니 방에 올라가 장농에서 자기 옷가지를 꺼내여 보자기에 쌌다. 그리고는 여전히 고르릉고르릉 코를 골며 자고있는 어머니를 흔들어깨웠다.
《엄마! 엄마!》
《응?》 어머니가 돌아누우며 잠내나는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니?》
계순은 막상 떠나겠다고 말하자니 주저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더운 침을 꼴깍 삼켰다.
《엄마, 나 일이 바빠서 이제 떠나야 해요.》
어머니는 벌떡 일어났다. 삽시에 잠이 깬듯 눈이 커다래졌다.
《이밤에… 또 떠난단 말이냐?》
《쉬!》
계순은 집게손가락을 입앞에 곧추세우며 눈길로 잠든 아버지쪽을 가리켰다.
《조용하세요. 이제 꼭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뭐라구?》
어머니는 어이가 없는듯 멍하니 계순을 쳐다보다가 흠― 하고 코소리를 냈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는듯 입을 다시며 두손으로 머리를 비다듬어넘겼다. 또박또박 그루박듯 말했다.
《난 너에게 할 말이 많다. 래일 너하구 품을 놓구 이야기를 하자구 생각했댔다. 그런데 이렇게 가겠다니 웬말이냐. 그렇게는 못한다, 안돼.》
《어머니, 품을 놓는건 후에 하구… 오늘은 용서하세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기다리는 사람?》
어머니는 기가 막힌듯 다시 계순을 돌아보았다.
《그럼 아침밥두 안 먹구 가겠다는거냐?》
《아침은 다른데 가서 먹기로 했어요.》
어머니는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하면서도 행여나 하는 눈길로 딸을 건너다본다. 집에 잡아두기는커녕 하루밤도 같이 자지 못하는 애모쁜 마음에서인지.…
《그 사람이 기다리느냐?》
계순은 수집게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할수 없는듯 또 한숨을 내쉬였다.
《그럼 가거라. 앞으로는 우정 시간을 내서라두… 좀 들리군 하거라.》
《알겠어요. 그런데 엄마, 일이 정 바쁠 땐 자주 못 올수도 있는데 그래도 너무 근심하지는 마세요.》
어머니는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허거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순은 조심히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따라나왔다.
계순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옷가지를 든 자그마한 보자기를 옆에 끼고 삽짝문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잠간만 기다리거라.》하더니 집안에 들어가 비누를 들고나왔다.
《이걸 넣고 가거라.》
《엄마!》
계순은 와락 어머니품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태며 어깨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살뜰한 손길을 느끼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더 시간을 지체할수가 없었다.
《그럼 어머니!》
계순은 다시한번 허리굽혀 인사를 올리고는 총총히 오솔길을 따라 수리바위쪽으로 향했다.
삽짝문밖에서는 어머니가 한손을 들어 저어주며 오래도록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