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비슬나무

제 7 장

 

검푸른 밤하늘엔 애기별이 가득 널려 반짝거리고있었다. 그 어떤 거대한 손이 보석알갱이들을 한줌 집어 쫙 뿌려놓은듯싶다. 아니, 그것은 이땅을 내려다보는 신비로운 눈동자인듯싶다.

천천히 창가에 다가간 정옥은 이윽토록 그 별들을 바라보았다.

깜박거리며 이 땅을 내려다보며 무엇인가 열심히 속삭이는것만 같은 저 별들…

저 별들은 과연 언제 생겨났을가. 이 지구보다 먼저일가, 늦게일가.… 물론 먼저 생긴것도 있고 늦게 생긴것도 있을것이다. 저 하늘에서 이 지구가 어떻게 생겨나고 지구우의 생명체들은 어떻게 태여났으며 인간은 어떻게 진화발전하여왔는가를 낱낱이 내려다보고있는 별들도 있을것이다. 그것들은 원시사회로부터 계급분화가 생겨 노예사회로, 봉건사회로, 자본주의사회… 사회주의사회로 발전해오는 이 장구하고도 곡절많은 력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져있는 만단사연을 죄다 내려다보았을것이다.

문득 어머니가 어렸을 때 불렀다던 노래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작은 별들

구슬같이 어여쁘게 빛나요

저녁하늘 달도 없이 캄캄한데

금강석을 뿌려논듯 반짝거려요

 

저 별들은 보았을것이다. 오늘의 이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온 우리 가정의 력사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외삼촌… 과연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던가.

우리 후손들은 그 피의 자욱자욱들을 알아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하며 빛내여야 하는것이다.

정옥은 가슴이 뻐근해옴을 느끼며 책상앞으로 다가갔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다시 실화를 읽어나갔다.

 

×

 

정선화는 썩 후날에 리계순과 하루밤을 꼬박 밝히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것이 리계순의 마지막밤이 되리라는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리계순이 장백경찰서 감방에 갇혀있을 때였다.

그날 밤 정선화는 하많은 이야기를 나누던중에 자기가 어떻게 하든 가족들에게 갔다오려고 하니 부모님들이나 귀여운 딸애한테 전할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었다.

리계순은 미소를 지으며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머니에 있는것은 단추 한개와 꽁다리연필 한개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보낼만 한것은 없고… 부디 전해주겠다면 자기 마음이나 전해달라고 했다.

단추는 남편이 《숙반》지도부의 호출을 받고 떠나던 그날 밤 옷에 달아주려다가 인차 갔다오겠노라하기에 미처 달아주지 못했던 바로 그 단추였다. 남편이 오면 마저 달아주려던 단추였다. 남편이 《숙반》지도부로 가는 길에서 그 악당놈들에게 잘못될줄이야 어이 상상이나 했으랴. 그래서 가슴에 너무 맺혀 그때까지 품에 간수하고있었던것이다.

꽁다리연필은 산에서 싸울 때 공부도 하고 귀여운 딸에게 편지도 쓰군 하던것이라고 했다.

선화가 놀라서 산에서 싸우면서도 편지를 쓰군 했는가고 물으니 계순은 미소를 지었다.

《난 딸애와 헤여진 때부터 매일 그 애한테 편지를 썼어요. 어떻게 그 애를 잊을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선화의 말대로 어떻게 진짜 편지야 쓸수 있겠어요. 산에서 싸우는 사람이 주소는 어데 있구 부치기는 어떻게 부치구… 그래 마음속으로 쓰군 했지요. 딸애가 가있는 먼 남쪽하늘가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한자한자 적어나가군 했어요. 그러면 마음은 한결 더 정화되구 애를 위해서라두 더 잘 싸워야겠다구 마음다지게 되겠지요. 결국은 우리 애앞에, 우리의 미래앞에 자신을 총화하는셈이지요. 잊혀지지도 않아요. 내 어떤 편지들을 썼는지 들어보겠어요?》

계순은 그러며 꽁다리연필을 꼭 움켜쥐였다.

정말 글을 쓰듯이…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정옥아, 귀여운 내 아가야,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정옥은 불시에 가슴이 쩡해옴을 느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정한 그 음성을 듣는듯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였다. 어머니에게 그 단추가 있었다는것도, 연필꽁다리가 있었다는것도 듣다 처음이였다. 더구나 자기에게 편지를 썼다는것은…

정옥은 서둘러 글줄을 더듬어나갔다.

실화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 첫 편지 ―

 

정옥아, 보고싶은 내 딸아! 지금도 이 편지를 쓰느라니 발쪽발쪽 웃으며 《음마》, 《아빠》, 《할매》하고 말을 배우던 너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구나. 이제는 얼마나 재간이 늘었니? 제대로 먹이지 못한 이 엄마때문에 너는 헤여지기 전에야 뒤뚝뒤뚝 겨우 걸음마를 떼더랬지. 그 외진 심산속에서 네 재간이 하나씩 늘 때마다 터치군 하던 잊지 못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선하다. 그때면 너는 더욱 신이 나서 입을 하 벌리고 웃군 했지. 그게 더 귀여워 우리 네 집 사람들은 귀틀집이 떠나가게 웃군 했단다. 그 산골에서 너마저 없었다면 어쩔번 했니.

넌 그대로 우리 네 집 식구들의 사랑동이였구 내 심장의 전부였단다.

정옥아, 그럼 이제부터 이 엄마가 너와 헤여져서 너에게 젖을 먹여주는것 못지 않은 선물을 주려고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말해줄게.

우리는 지금 장군님께서 계시는 백두산으로 행군해가고있단다. 눈보라가 하늘땅을 진동하구 원쑤 왜놈들은 도처에서 길을 가로막구…

얼마나 추운지 눈섭이 쩍쩍 맞얼어붙고 이마와 량볼과 턱에는 마치 판자쪽들을 붙여놓은것 같이 살이 얼군 한단다. 삭풍이 살을 에여내는 혹한에 허리치게 눈이 쌓인 준령을 넘고 또 넘는 행군은 그야말로 간고한 전투였어. 우린 너무 힘들어 내림받이에서는 누워서 데굴데굴 굴러내리기도 하고 그냥 퍼더앉아 줄줄 미끄러져내려가기도 하였단다. 하지만 치받이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 쌓인 눈의 겉층은 얼음이 져서 발을 디디면 좀 무게를 이겨낼듯 하다가 푹 꺼져들어가군 하는데 얼마나 맥을 뽑는지 모른단다. 가까스로 눈에 빠진 발을 빼서 내여디디느라면 다른 발이 또 푸석 빠져들어가고,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한치한치 걷느라면 전진은 고사하고 어느새 눈구뎅이속으로 빠져들고…

어떤 때는 서로 손을 맞잡고 두사람이 한자리에서 서로 번갈아 솟았다 빠졌다하는 가운데 날이 저무는 때도 있었단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운 장군님 계시는 백두산으로 간다는 한생각으로 그 모든걸 이겨나가고있어. 이 엄마는 남들이 휴식할 때에도, 정말 꼬꾸라져 한잠 자고싶을 때에도 이를 악물고 일어나군 한단다. 너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군 해, 너의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서…

후날 너는 이 엄마가 남들의 짐이나 되였다는걸 알면 이렇게 탓하겠지.

《제 젖먹이딸을 떼버릴 땐 큰일을 칠것 같더니 남의 짐이나 되고… 그게 도대체 뭐예요?》하고 말이야.

그래서 난 오늘도 힘들지만 박덕산아저씨하고 자진해서 식량공작을 나갔댔단다. 박덕산아저씨를 너두 알지?

일전에 너를 둥게둥게 추어올리면서 《정옥아, 너의 아버지가 진짜 혁명가라구 장군님께서 높이 내세워주셨단다.》하시던분 말이야. 그 아저씨가 우리 책임자란다. 유능한분이야. 우리는 이삭강냉이를 한짐씩 지고 돌아왔어. 박덕산아저씨하고는 무슨 일을 하건 랑패가 없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저씨가 나서면 마음을 놓군 해. 그러면 그 아저씨는 웃으면서 《난 정옥이 아버지한테서 일하는것을 배웠소. 일환동지는 정말 로숙하고 경험많은 정치일군이였소.》하고 너의 아버지를 내세워주군 했단다.

그것은 동지에 대한 의리인 동시에 이 엄마더러 아버지를 따라배우라는 깨우침이겠지.

어쨌든 이제는 식량문제가 풀려 모두들 좋아한단다. 제창 둘러앉아 이삭강냉이를 다 뜯고는 우등불을 피우고 법랑소랭이로 강냉이를 끓여먹었어. 이 엄만 처음으로 눈을 녹여 음식을 끓여봤단다. 글쎄 소랭이에 눈을 가득 담아 녹였는데 물은 밑창에 깔린게 한모금도 안되겠지. 그렇게 몇번을 녹여서야 겨우 강냉이를 삶을 물을 마련할수가 있었어. 동지들은 다음부터는 강냉이를 닦아가지고 강냉이 한알에 눈을 한웅큼씩 먹으면서 행군하자고 하더구나. 동지들은 웃으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하는말 같았지만 이 엄마는 얼굴이 뜨거웠어. 이 소부대에 녀자는 나 하나뿐이여서 작식을 스스로 맡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엄마가 제구실을 못해서 하는 말 같았기때문이야. 사람들은 흔히 닦은 강냉이는 간식이구 삶은 강냉이는 주식으로 생각한단다. 삶은 강냉이보다 닦은 강냉이가 분한도 없구…

난 결심했단다. 이제 물만 만나면 강냉이를 불구어가지고 다녀야겠다구 말이야. 그러면 강냉이를 삶기가 한결 빠르겠지. 물론 짐은 좀더 무거워지겠지만… 그건 일없어. 동지들의 식사만 제대로 보장할수 있다면야 무얼 힘들게 있겠니.

정옥아, 이 엄마를 믿어줘. 엄마는 꼭 동지들이 믿고 아끼는 필요한 사람이 될테야.

그럼 오늘은 그만 자거라. 밤중에 배고프다구 칭얼대서 할머니를 깨우지 말구. 네가 그러면 할머니는 더 속상해한단다. 자장 자장 아가야, 내 딸 정옥아, 잠 잘 자거라.

 

정옥은 코등이 시큰했다. 저절로 눈앞이 뿌예졌다. 목이 메여올랐다.

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정옥은 손수건을 찾아 눈굽에 가져갔다.

 

―두번째 편지―

 

귀여운 정옥아, 그동안 잘있었느냐. 이제는 몇발자국을 걷니? 말은 또 어떤걸 배웠구. 할머니하고 말해봐. 뭐, 할매? 아니, 할, 머, 니, 그래그래, 우리 정옥이 용쿠나. 우리 정옥이 엄마하고 입맞추자요, 호호호.

정옥아, 오늘도 이 엄마는 힘겨운 행군을 했단다. 벌써 보름째야. 오늘 아침에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반갑게도 큰 샘물을 만났댔어. 이 강추위속에서도 얼지 않구 콸콸 솟구치는게 아니겠니. 한 댓메터 흘러내리다가야 얼더구나. 샘물터에선 김이 문문 피여오르구… 내가의 메버들가지엔 서리꽃이 하얗게 피구… 그림같은 전경이였어. 날씨도 잠풍했단다.

물을 만나기를 애타게 기다려오던 엄마는 제꺽 배낭을 풀고 법랑소랭이를 꺼내 물을 가득 담았어. 그리고는 강냉이를 쏟아넣었지. 큰 물통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내 심정을 잘 아는 박덕산아저씨는 여기서 좀 쉬여가자고 하더구나.

삭정이를 주어다가 불을 피웠어. 그우에 강냉이를 가득 담은 소랭이를 올려놓았지. 물이 더워지면 강냉이가 빨리 불구어지거던.

그런데 글쎄 그때 공교롭게도 우리가 왜놈 《토벌대》의 수색에 걸려들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니.

보초를 서던 림모라는 아저씨가 신호로 알려주었단다. 급히 불을 끄고 자리를 피해야 했어. 박덕산아저씨가 명령하더구나. 누구누구는 어디로 빠지고 누구누구는 어떻게 하고… 이 엄마에겐 빨리 강냉이를 건사하고 웃골짜기로 빠지는데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서 만나자고 방향을 대주었어. 모두들 적들을 유인분산시키면서 빠지게 하구 이 엄마만은 안전하게 행군하게 하자는것이였어. 그렇게 급히 명령을 내리고는 모두 자기 방향으로 헤쳐갔어.

엄마도 황황히 소랭이의 물을 대충 찌워 강냉이를 담은채 배낭에 쓸어 넣고는 웃골짜기로 들구뛰였어. 그렇게 5리, 10리…

왜놈들의 총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는 곳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만 녹초가 되고말았단다. 그런데 더 큰 야단은 젖은 강냉이를 담은 소랭이의 물이 줄줄 흘러내려 장딴지아래로 다 젖었는데 그게 쩡하고 얼어버린거야. 발이 막 아리고 아픈게 잘 움직일수가 없더구나.

그러나 난 또 떠났어. 행군은 정말 힘들었단다.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서고 그랬다가는 몇걸음도 못 가서 또 쓰러지고… 몸도 가누기 힘들었단다. 그래도 걸었어. 한시라도 빨리 장군님품에 안기고싶었어. 정옥이 아버지랑 어떻게 마지막까지 혁명에 충실했는가에 대해 장군님께 아뢰는것이 이 엄마의 본분이 아니겠니. 장군님께서 믿으시는 한 전사가 실지로 어떻게 살며 싸웠는지… 이 엄마만이 아는 일들을 죄다 아뢰이기 전에는 난 쓰러질 권리도 없는거야.

그런데 발은 왜 점점 남의것처럼 말을 안 들을가, 아리기만 하구…

마음은 자꾸 앞으로 향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진대통을 넘다가 어쩔새없이 꼬꾸라지고말았어. 더는 걸을 맥이 없었단다.

안타까왔어. 이러다 영영 눈속에 묻힐것 같았어. 걸을 맥이 없는데야 어떻게 하니.

난 그대로 눕고말았어. 저 멀리 이깔나무우듬지에 까치 한마리가 앉아 있더구나. 저 새는 왜 저기 앉아있을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 내게 반가운 손님이란 누굴가…

갑자기 정옥이, 네가 생각나더구나.

《음마, 음마.》하고 빨쭉거리면서 뒤뚝뒤뚝 걸음마를 떼던 모습이 떠올랐어.

두팔을 벌리고 뒤뚝거리며 한발 또 한발…

그러던 네가 글쎄 왜서인지 오똑 서서 이 엄마를 말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는구나.

《엄만 왜 그러나. 왜 누워만 있나. 내가 보구프지 않나?》

나는 입술을 깨물었어. 기를 쓰고 또 일어났단다. 이 길이 바로 사랑하는 너에게로 가는 길을 앞당기는것이라 생각했어. 그러니 너처럼 걸어서라도 너를 마중가야겠다고 말이야.

한걸음, 두걸음…

바로 그때 박덕산아저씨랑 나를 찾아왔어.

정옥아, 내가 오늘 그렇게도 힘든건 사실 발에 동상을 입은탓이였어.

하지만 동지들에게는 그걸 감추었단다. 동지들에게 부담을 줄가봐 그런거야. 내가 동상을 입었다는것을 알면 동지들이 걱정하구 내 배낭까지 자기네들이 메겠다고 할게거던.… 지금 모두가 다 힘들게 행군하는데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어서야 무슨 체면에 너에게 편지를 쓰겠니.

그래서 내 힘으로 걸었어. 이렇게 떳떳이 오늘 행군을 끝내고 너에게 편지를 쓰자니 마음이 편하구나. 그럼 잘 자거라. 정옥이, 안녕!

 

정옥은 가슴이 무엇엔가 선득 베이는듯 한감을 받았다.

어머니는 바로 그래서 그때 동상을 입었구나.

어머니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일이였다.

그래서 누구도 정옥에게 어머니가 어떻게 되여 동상을 입었다는것은 말해주지 못했었다. 지어 김일 부주석도… 다만 령하 4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속에서 행군을 하느라 동상을 입었댔다고 하였을뿐이였다.

딸에게만은 숨기는것이 없는 어머니이다.

정옥은 갑자기 목이 마르는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솔직한 심정, 지금까지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진실한 심정을 가슴 뻐근하게 느껴보게 되는 정옥이였다.

정옥은 얼른 보온병을 기울여 고뿌에 물을 따랐다.

한모금, 한모금 천천히 물을 마시면서도 눈길은 실화에서 떼지 못했다.

 

― 세번째 편지 ―

 

정옥이, 오늘 할머니말씀 잘 들었나요? 어디 안아보자요. 우리 정옥이 얼마나 더 무거워졌나…

정옥이, 오늘 엄마가 정말 좋은 소식을 전해줄게요.

정옥이, 오늘 이 엄마는 영광스럽게도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웠어요.

우리는 멀고도 간고한 행군끝에 이 영광을 지니게 된거예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박덕산아저씨가 목메인 소리로 《장군님, 이 동무가 바로 김일환동무의 안해 리계순동무입니다. 장군님친솔부대에서 싸우겠다고 젖먹이를 떼여놓고 이렇게 장군님을 찾아왔습니다.》하고 말씀드리자 놀라와하시며 《아니, 그럼 젖도 안 뗀 피덩이같은 애기를 떼여두고 왔단 말이요?》하시고는 이 엄마 두손을 꼭 잡으시고… 더 말씀을 못하셨단다.

정옥아, 이 엄마는 글쎄 그처럼 뵙고싶고 아뢰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제 뵈오면 인사를 어떻게 드리자고 생각도 많이 해왔었지만 이때는 그저 그분에게 손을 맡긴채 눈물만 왈칵 쏟고말았단다.

장군님께서는 이 엄마의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리계순동무에 대해 말은 많이 들었는데 만나고보니 듣던바 그대로구만. 정말 헐치 않은 각오를 했소. 부부일심동체라더니 그 남편에 그 안해요. 젖먹이를 떼여놓고 오자니 얼마나 눈물을 흘렸겠소. 애는 또 얼마나 울었겠소.…》하시며 가슴아파하시였단다.

이 엄마는 우리의 심정을 그리도 다심히 헤아려주시는 그 은정에 목이 꽉 메여 그저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만 하였단다. 우리들을 데리고 우등불가에 가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박덕산아저씨를 보시며 우리 항일의 력사는 이렇게 피눈물로 이루어지고있다고, 나라를 찾자면 이렇게 모든것을 다 바쳐야만 하는, 피어린 투쟁을 해야 하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어.

그러시고는 《김일환동무는 내 오래전부터 잘 알고있는 견실한 혁명가였소. 31년 겨울 명월구회의때는 긴긴밤을 꼬박 밝혀가며 우리 혁명에 대해 의견을 나눈적도 있소. 박덕산동무는 그 동무 손탁에서 자랐지. 박영순동무도 그렇고… 잊혀지지 않는 동무요. 그런 사람이 그렇게 가다니… 정말 분해서 못 견디겠소.》 하시면서 얼마나 통분해하시였는지 모른단다. 그분의 눈가에서 번쩍이는 눈물을 보는 순간 이 엄마는 그만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았단다.

이렇게 다 아시는분께, 이렇게 가슴아파하시는분께 이 엄마는 지금껏 너의 아버지일에 대해 품었던 억울한 심정 다 말씀드리려 했댔으니… 그걸 다 아뢰인다면 우리 장군님의 가슴은 얼마나 더 아프시겠니? 나는 눈물을 삼키며 자신을 질책했단다. 그런데 글쎄 우리 장군님께선 이 엄마의 마음속을 다 헤아려보고계시였구나. 너의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 하나하나 죄다 물으시였단다. 장군님께서는 모든걸 다 알고계시였지만 바로 이 엄마속을 시원히 풀어주시려고 그 가슴아프신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였어. 이 엄만 자기도 모르게 그간 괴롭고 안타깝고 억울하던, 가슴에 맺혔던것을 다 말씀올렸어.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서 그분을 우러르니 그분께서는 너무 가슴아프시여 침통한 안색으로 언제 손에 드셨는지 모를 삭정이를 자꾸만 토막토막 꺾고계시였단다. 글쎄 군복바지가랭이에 불찌가 튀여 타는것도 모르시구…

엄만 황황히 무릎을 꿇고 그 불찌를 털어드렸단다. 손으로 비벼끄고는 그만 무릎을 꿇은채 울음을 터뜨렸어.

《장군님, 용서하십시오. 장군님께서 그렇게 가슴아파하시는데 제가 또…》

장군님께서는 이 엄마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셨어.

《일없습니다. 마음껏 속을 터놓으십시오. 그처럼 터무니없이 생떼같은 남편을 빼앗기구… 그처럼 혁명만을 위해 아글타글했는데도 〈민생단〉이라고 그 안해까지 잡으려고 했으니 얼마나 원통했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우매와 무지와 몰상식에 무서운 권력야심까지 겹치였으니 왜놈들의 간계에 그렇게 쉽게 놀아나 류혈참극을 빚어낸것입니다. 견실하고 능력있는 혁명가들부터 먼저 없애버리는 방법으로 우리가 다년간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힘들게 축성해놓은 혁명의 기초를 거의다 허물어버리였습니다. 이 얼마나 분하고 가슴아픈 일입니까.》

장군님께서는 격하시여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단다.

엄마는 장군님의 그 아픈 가슴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할지 알수가 없었어.

장군님께서는 이 엄마를 위해 오늘 정말 오랜 시간을 보내시였어. 그렇게 엄마의 맺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다 풀어주시였어.

그러시면서 우리 집안사람들은 모두가 혁명을 하다가 순국한 애국자들이라고, 너의 아버지는 본보기로 내세울수 있는 가정혁명화의 선구자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단다.

장군님께서는 이 엄마가 떼여두고 온 너를 그리도 가슴아프게 그려보시면서 《계순동무, 우리 정옥이의 앞날을 축복해줍시다. 그 애는 이제 계순동무가 바란대로 해방된 새 나라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내 나라에서 살게 될게요.》라고 너의 앞날을 축복해주시였어. 나는 그만 너무도 눈물이 솟구쳐올라 두손으로 얼굴을 덮고 울음을 터뜨렸어.

정옥아, 세상에 이런분이 또 어디에 계시겠니.

나는 장군님앞이라는것도 잊고 울고 또 울었어.

내가 그리도 바라는게 바로 너의 밝은 앞날인데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 모든걸 다 헤아리고계시였구나.

정옥아, 이 엄마는 이제는 정말 유한이 없다.

이제는 그저 우리 장군님을 위해 나의 모든것을 바치는 일만이 남아있을뿐이다.

이 엄마를 믿어다오. 이 엄마는 장군님께서 믿어주시는 가정의 한사람답게, 너의 어머니답게 싸우겠다.

그처럼 뵙고싶던 장군님을 오히려 가슴아프게 해드렸으니 내 꼭 기쁨을 드리는 그런 사람이 되겠어. 아버지의 그 소원까지 합쳐, 정옥이 너의 몫까지 합쳐 꼭 기쁨을 드리겠어. 그 소식을 기다려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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