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5 장
실화원고를 가져갔던 남편은 아닐세라 다음날 저녁에야 집에 들어왔다.
《미안하오. 내가 먼저 봐서… 어머니에 대한 실화라니 정말 참지 못하겠더구만.》
《덕분에 내가 푹 〈쉬〉지 않았어요.》
동자질을 하던 정옥이 토라진 소리를 하자 남편은 허허허 웃었다.
《뿔이 났구만. 이거 무얼로 풀어준다?》
《아이, 됐어요. 어서 들어가요. 저녁늦겠어요.》
왜서인지 여느때처럼 롱으로 남편의 말을 받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서 실화를 보고싶은 생각뿐이였다.
그날 밤 저녁식사를 끝내기 바쁘게 정옥은 조급한 마음을 안고 실화원고를 펼쳤다.
×
말파리는 저녁무렵이 다되여서야 압록강대안에 위치한 장백현 소재지 근방에 이르렀다.
《저기 건너다보이는 저 산 있는 곳이 조선땅이다.》
서봉삼이가 소재지에 들어서기 전에 멀리 우중충하게 솟아있는 강건너 눈덮인 산발들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정선화는 별로 가슴이 짜릿해옴을 느끼며 눈덮인 산발들을 바라보았다.
거의 재빛에 가까운 푸릿한 하늘이 음울히 드리웠는데 그아래 우줄우줄 물결쳐간 산발들은 지금 눈보라에 시달리우는듯 뽀얗게만 보인다. 하얀 눈판에 타다남은 성냥가치를 촘촘히 세워놓은듯 잎사귀를 다 털어버린 이깔나무들이 추위에 옹송그리고 서서 고스란히 눈바람을 맞고있다.
(저것이 그래, 노래처럼 외우던 조선땅이란 말인가?)
《저 산아래 혜산이 있다.… 이 장백땅과 압록강을 사이 두고 마주서있지.》
오빠의 말을 들으며 정선화는 까닭없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압록강…》하고 자기도 모르게 뇌여보았다.
몇해전 화룡에서 살 때 정선화는 두만강너머로 조선땅을 본적이 있었다. 여기는 압록강이 흐르고있다. 두만강과 압록강, 조국의 북변을 적시며 우리 겨레의 피눈물을 싣고 흐르는 강들이다. 그 두개의 강을 다 보게 되는 선화의 가슴은 별로 괴로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랑하는 내 조국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 조선》하고 아이들에게 배워주며 이제 기어이 빼앗긴 나라를 찾고 내 조국으로 돌아가자고 가슴 부풀리며 노래처럼 외워주던 선화였다. 조국을 찾는데 자기도 적으나마 기여를 했다는 긍지와 자부로 가슴을 부풀리며 사랑하는 그이와 나란히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리라 꿈도 아름답던 선화였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그대로 꿈일뿐이였다. 그 꿈을 깨고보니 보라빛 령롱하던 그 길은 온통 피로 얼룩진 가시덤불길이였다. 사랑의 힘만으로는 걸을 엄두도 낼수 없는 무자비한 《계급투쟁》의 길이였다.
그런것도 모르고 천진란만한 이 선화는 사랑을 찾아 그 길에 뛰여들어 섰었다. 그 길을 가면 사랑을 되찾을수 있으리라 믿었었다. 선화의 심장속엔 오직 그이만이 꽉 차있었다. 그 사랑으로 피가 끓었고 그 사랑으로 고동을 치던 심장이였다.
그런데… 바로 그이를 빼앗겼다. 그 사랑을 잃었다. 심장을 꽉 채웠던 사랑이 빠져나가자 심장은 빈껍데기만 남았다. 허울만 남았다.
그런데도 《숙반》지도부의 그자는 무자비하게 요구했다.
네가 그 길을 계속 가려면 량심을 버리고 사랑을 배반하고 정조를 바치라, 그러면 《혁명가》가 될수 있다.…
사랑이 없이 그런 《혁명가》는 되여선 무얼 하는가.
지철민이가 없는 생활, 그것은 선화에게 있어서 전혀 무의미한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이 무슨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가.
근거지에는 더는 이 선화를 믿고 보증해줄 사람이 없었다.
계순언니와 일환아저씨자체도 《민생단》혐의를 받고있지 않는가.
이 선화도 언제 《민생단》으로 몰려 죽을지 모른다.
억울한 루명을 쓰고 죽지 않으려면 인간으로서의 모든것을 버리고 내 품에 들어오라.
이것이 바로 《숙반》지도부, 그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마구 롱락하고있는 리억만이가 정선화 자기에게 내린 가혹한 판결이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그 생활… 세상에 그처럼 괴롭고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는 생활이 어디에 있는가.
혁명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하는것이라고 계순언니가 말했었지. 그는 내가 지철민이와 함께 처창즈의 그 밭으로 찾아갔을 때 그처럼 기뻐하며 밭머리에서 부채붓꽃 한송이를 꺾어주었었다.
《…축하해요. 둘이 영원히 변치 말고 이 혁명의 길에서 사랑을 꽃피우세요.》
그런 사람들까지 《숙반》지도부는 믿지 않고있다. 그러니 나같은거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돌아왔다. 꿈도 희망도 사랑도 다 잃고 허울만 남아 돌아왔다.
심장을 끓게 하던 그 소중한것들이 다시는 이 가슴에 깃들지 않으리라.
《뭘 그렇게 생각하니?》
오빠의 말에 정선화는 그제서야 생각에서 깨여났다. 자기도 모르게 량볼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빠도 선화의 심정이 리해되는듯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쩌!》
움씰 말파리가 떠났다. 그러고보니 지금껏 말파리가 서있은것이다. 선화 자기의 표정을 보고 오빠가 그렇게 하였던것 같다.
선화는 스르시 눈을 내리깔았다. 괴로왔다.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밀려다니는 거리는 추운 날씨여서 그런지 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못했다. 두툼한 솜옷에 팔짱을 찌르고 엉거주춤 담벽에 기대서서 옆에 가려놓은 장작을 사가라고 우들우들 떨며 웨치는 사람들, 누런 개털모자를 쓰고 역시 누런 외투에 보총을 메고 껑충껑충 뛰여가는 왜놈군대들, 까만 순사복을 입고 칼을 절컥거리며 거나해서 거리를 가로질러가는 왜놈순사들…
《엿 사시오, 엿 사시오.》
《호떡 사시오, 호떡 사시오.》하고 겨끔내기로 웨쳐대는 장사군들…
룡정보다는 비할바없이 거리규모도 작고 사람도 많지 않은 초라하고 한적한 산골 현소재지이지만 여기에도 왜놈들은 곳곳에서 눈에 띄웠다.
살벌하기는 룡정도회지나 산골촌거리나 마찬가지였다.
말파리는 높다랗게 담장을 쌓고 우에 철조망까지 두른 경찰서담장을 에돌아 좁은 뒤골목으로 빠져나갔다. 우동집이라고 간판을 머리에 인 기와집을 지나 그리 크지 않은 동기와집앞에서 멎었다.
《다 왔다. 여기가 우리 집이다.》
서봉삼은 선화를 돌아보며 한마디 하고는 방쪽에 대고 소리쳤다.
《어머니! 선화가 왔어요.》
선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래동안 쪼그리고 앉아와서인지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먼저 내린 서봉삼이가 선화의 손을 잡아 내리워주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로파가 달려나왔다.
《에그, 이제야 왔느냐? 추운데 고생들을 했겠구나. 아이구, 네가 선화가 옳긴 옳으냐. 참, 세월두…》
《이모!》
선화는 갑자기 목이 콱 메여와 이렇게 한마디 부르고는 두팔을 벌리고 다가서는 이모의 품에 와락 안겼다.
《조꼬말 때 봤는데…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 어른이 다됐어. 에그, 꽁꽁 얼었구나. 원, 무슨 날씨가 이 모양인지… 들어가자, 어서…》
이모는 서둘러 선화의 손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양을 바라보던 서봉삼이 빙긋이 웃더니 말파리에서 짐짝들을 부리우기 시작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웃방에서는 서봉삼이 차디찬 눈길행군에 지친듯 코를 드르릉드르릉 골아대고 옆자리에서는 이모가 숨소리도 고르로이 자고있건만 정선화는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자기의 일이 기가 막히기만 했다.
자기가 어떻게 되여 사촌오빠와 함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장백땅에까지 와서 이렇게 누워있게 되였는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문밖에서는 사나운 겨울바람이 우우― 소리치며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휘유― 휘유― 휘파람같은 소리도 들린다.
쫘르륵―
거세찬 바람이 눈가루를 몰아다가 문창호지를 바른 방문을 후려갈긴다.
정선화는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꼭 감았다. 기다렸다는듯 여느때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일들이 눈거죽을 뚫고 들어온다.
아, 내 인생은 왜 이리도 고달픈것인가.
2년전 그날.
리계순이네 집 문앞에 편지를 떨구어놓은 선화는 정신없이 고동하기슭을 따라 내달렸다.
가슴속에서는 걷잡을수없이 울분이 터져올랐다. 가자, 집으로 가자, 그 《숙반》사람들에게 잡히면 재판도 없이 총살당할것이다, 너절하기 짝이 없는 놈들… 짐승같은 놈들… 그이가 어떤 사람이길래 감히… 네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다시는 상대도 안할테다, 다시는…
캄캄한 야밤이라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엎어지고 나딩굴고 기면서 산을 넘고 개울을 건느고…
아버지, 어머니가 사는 옥계동 정든 고향집을 향해 허위단심 가고 또 갔다. 다시는 그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내 정든 보금자리를…
길은 끝이 없는듯 했다. 그렇게 날이 밝고 해가 저물고…
천신만고해서 집에 돌아온 선화는 아버지, 어머니의 놀란 눈길을 받으며 대문앞에서 쓰러졌다.
아버지, 어머니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여 때없이 까무라치고 헛소리를 치는 딸의 병구완때문에 정신없이 뛰여다녔다.
《아유, 혁명을 하러 탈가했던 아씨가 몸이 이게 뭐야?》
집대문앞에 와서 쓰러진 때로부터 다섯달, 다행히도 병차도가 좀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비다듬는데 뜻밖에도 한미영이가 찾아와 혀를 터는 소리였다.
한미영은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깔깔거리며 문지방에 까치다리를 하고 걸터앉았다.
《호호호, 이봐 아씨, 뱁새가 황새걸음 하려다간 가랭이가 찢어져. 혁명이 뭐 들놀이처럼 즐거운 길인줄 알았나부지?》
정선화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것을 본 때처럼 오싹 소름이 끼치는것을 느끼며 팩 돌아앉았다.
《보기 싫어요, 썩 나가요.》
한미영은 그게 더 재미난다는듯 깔깔 웃었다. 승마바지에 가죽잠바를 입고 까만 등산모까지 쓴 그는 더없이 요염해보였다.
《호― 그렇게 쉽게 갈것 같으면 이렇게 먼길을 왔겠어? 이봐, 선화아씨, 아씨네가 아는것처럼 난 그런 녀자인것만은 사실이야. 내가 어떤 녀자인가를 눈치챈 아씨를 죽이려 했던것두 사실이구. 난 숨기려 하지 않아. 무엇때문에 눈감고 아웅하겠어? 난 선화를 데려갔던 우리 사람들이 행방불명되구 선화두 계순이두 다 놓쳐버렸을 때 정말 미칠것만 같았댔어. 그런데 글쎄 아씨가 근거지에서 만신창이 되여 도로 뛰쳐나왔다고 하잖겠어? 실 엉킨것은 풀어두 노 얽힌것은 못 푼다구 난 처음엔 당장 찾아와 앙갚음을 하고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고 참았지. 이제야 공산당에 환멸을 느끼고 결별을 했는데 나까지 그러면 어찌겠는가 하구.
아씨가 잘 생각했어. 혁명이라구 따라나섰다가 얻은게 뭐야.
혁명이란게, 공산당이란게 뭔지 선화아씬 아직두 다 모를게야. 선화아씨는 그 리계순의 남편인 현당서기를 하던 김일환이가 〈민생단〉으로 몰려죽은거 알아?》
《뭐예요?》
선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 그 아저씨가 어찌되였다구요?》
《흥.》
한미영은 비양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보란듯이 호주머니에서 항간에서는 보기 드문 은빛담배갑을 꺼내더니 절컥 소리나게 열고 담배를 한대 꼬나물었다. 역시 은세공을 한 고급라이타를 꺼내 담배를 붙여물고는 눈을 쪼프리고 라이타불을 들여다보며 뱅글뱅글 돌리다가 이윽해서야 샐쭉 웃으며 훅 불어껐다. 한껏 속을 태우려는듯 담배만 몇모금 맛스레 빨아대다가 슬쩍 선화를 곁눈질하고는 오른손 지시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흉내를 냈다.
《덜커덕 했단 말이야. 〈민생단〉에 몰렸거던. 믿어지지 않을테지. 하지만 그건 죄다 사실이야. 처창즈라고 우리 사람들이 없겠어? 우린 다 알구있어. 바로 선화가 도망치자 선화와 제일 가까왔던 그 사람들이 〈민생단〉으로 안 걸릴수가 있어? 믿어지지 않으면 가보라구. 내 차까지 대줄게.》
《그… 그럼… 나때문에?》
선화는 멍하니 한미영을 쳐다보았다.
《그럼… 그 사람들이 무사할줄 알았어? 선화때문에 김일환이와 계순이가 걸려들구, 그때문에 김일환이를 구해주려던 박덕산이란 사람두 걸려들구. 그 두 집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박영순이라는 병기창책임자네 집두 걸려들구… 믿겠으면 믿구 믿지 않겠으면 믿지 말라구. 하지만 그건 죄다 사실이야. 이제 계순이도 언제 죽을지 몰라. 박덕산이네, 박영순이네, 권일수네 다 같애. 난 선화에게 뭐 어떻게 하라고 말은 안하겠어. 량심이 있다면 자기때문에 그렇게 숱한 사람이 잘못되는걸 보고만 있겠어? 그럴바엔 난 그들도 다 데려왔으면 좋겠다는거야. 아까두 말했지만 난 선화가 집에 온걸 알면서도 그냥 두었어. 혁명이 싫다고 온걸 뭣때문에 못살게 굴겠어. 그 사람들이 내려와도 같애. 가만 놔두어달라고 하면 제 마음대로 살라고 놔두고 도와달라고 하면 돈도 주고 일자리도 주고… 난 그저 허망하게 죽지 말라는거야. 글쎄 혁명가가 돼서 영웅적으로 죽으면 그런대로 이름이라도 남을지 모르지만 〈민생단〉이 뭐야, 〈민생단〉이… 현당서기를 하던 사람까지 그렇게 죽이구 그의 안해인 부녀부장까지 〈민생단〉으로 몰아 죽이려 하구… 〈민생단〉으로 죽으면 치욕밖에 남을게 있어? 가서 계순이보고 내려오라고 했으면 좋겠어. 그 아까운 녀자를 죽일수야 없지 않아.》
정선화는 그만 미칠것만 같았다. 한미영의 말이 절대로 꾸며낸것 같지는 않았다.
나때문에 그 일환아저씨가 《민생단》에 몰려 죽다니. 그리고 계순언니까지… 박덕산이네와 박영순아저씨네까지?…
정선화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몸부림을 쳤다. 아, 세상은 왜 이렇게도 점점 나를 못살게만 구는것인가. 난 이젠 어쩌면 좋은가. 나때문에 나를 구원해준 계순언니까지 잘못된다면… 그처럼 마음고운 언니까지 잘못된다면 난 못살아, 못살아. 죽고말테야…
정선화는 한미영이가 언제 돌아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정선화는 처창즈로 떠났다. 입술을 깨물며 허위단심 걸었다.
(언니를 데려와야 해. 아저씨까지 잘못되였다는데 무엇때문에 거기 남아있다가 애매하게 죽겠는가.)
선화는 계순이를 데리고 어딘가 멀리로 가고싶었다. 그 《숙반》의 검은 마수가 미치지 않는 곳에 가서 혁명을 하면 될것이 아닌가. 룡정에서처럼… 계순이만 함께 가면 선화는 무엇인가 할수 있을것 같았다. 거기에 필요한 자금은 얼마든지 구할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마다하지 않을것이다, 룡정이모도…
선화는 고동하기슭을 따라걷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근거지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던 선화는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다. 저앞에 지팽이를 짚으며 허위허위 걸어오는 한 늙은이가 별로 낯이 익어보였던것이다. 조금만 센 바람이 불어도 훌 날아가버릴듯싶은 체소한 늙은이였다. 정선화는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야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하고 별로 꺼칠해진 그 늙은이가 바로 리계순의 시어머니 오옥경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
선화는 달려가 오옥경의 손을 잡았다. 불시에 목이 꺽 메여올랐다. 선화는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무릎을 꿇었다. 두눈에서는 어느새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옥경이도 저으기 놀란 표정이였다.
《아니, 임자가?…》
《어머니, 절 욕해주세요. 저때문에, 이 미련한년때문에 아저씨가 잘못되였다니 이 죄를 어쩌면 좋아요.》
오옥경은 말없이 눈물범벅이 된 선화를 내려다보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여위고 거칠어진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게 어떻게… 어떻게 꼭 선화때문이라고만 하겠나. 사람을 잡자니 선화를 걸었던게지…》
《어머니!》
선화는 마침내 오옥경의 가슴에 와락 안겼다. 그 말에, 그 리해해주는 말에 더더욱 설음이 북받쳤던것이다. 보통 어머니라면 뺨을 치고 침을 뱉아주어도 씨원치 않을년에게… 이 어머니는…
문득 선화는 이 오옥경이도 공산당원이라는것을 생각했다. 남편과 자식들을 모두 혁명에 바치고 자신도 공산당원으로서 혁명가들을 뒤받침해주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이기에 이런 철없고 죄많은 녀자도 용서해주는것이리라.
《진정하라구. 선화가 오죽하면 근거지를 떠났을라구… 그런데 선화는 지금 어디로 가나?》
선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계순이를 데리러 간다고 차마 말을 할수가 없었다. 오옥경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임자 근거지로 다시 가는게 아닌가?》
《저… 글쎄…》
선화는 대답을 미처 못했다.
오옥경은 선화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도리머리를 했다.
《임자는 무엇인가 다 알고 그걸 해명하자고 오는것 같은데… 그렇다구 그 사람들이 우리 애어미한테서 〈민생단〉루명을 벗겨주겠나? 괜히 임자만 또 잘못되네.》
《애어미라니요? 그럼 계순언니가?》
오옥경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유복녀를 낳았다네. 그런데 근거지에 기근이 들다나니… 몸이 약해서 젖이 나와야지. 애기는 배고프다고 자꾸만 울지, 애엄마는 속상해서 제 혼자 몰래 울지… 그래 보다 못해 떠난 길일세. 뭘 좀 얻어볼가 해서…》
선화는 그 누구인가 불시에 무딘칼 같은것으로 가슴을 마구 허벼내는것만 같았다. 오옥경이가 말한 그 정상이 그대로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어디 가보실데는 있어요?》
《그저 무턱대고 떠난 길이지. 속수무책으로 그냥 보고만 있을수야 없지 않나.》
선화는 잠시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키우는것이 있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어디 정하고 떠나신데가 없으면 제가 가보라는 곳에 좀 가보세요. 제 학교때부터 잘 아는 동무가 저 오도양차쪽에 있어요.》
선화는 품속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 급히 몇자 적었다.
《아니, 임잔 그예 근거지에 갈셈인가?》
선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좀 만나보겠어요. 계순언니만이라도…》
오옥경은 선화가 써주는 편지를 내려다보다가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우리 애엄마를 만나겠다면 더 막지는 않겠네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구. 그 〈숙반〉것들은 사정이 없어… 허, 밖에서는 왜놈들이 달려드는데 안에서는 〈숙반〉것들이 제사람들을 마구 죽이고있으니… 그짓이 언제까지 가겠는지.》
오옥경은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터벌터벌 힘겹게 걸어갔다. 바람이 불면 날려갈듯 휘친거리는, 별로 체소해진듯 한 그 모습을 보노라니 가슴이 울컥해졌다.
근거지에 기근이 들어 며느리와 손녀애의 앞날도 기약할수 없는 형편이니 할머니의 저 가슴속에는 재만이 가득찼을것이다.
정선화는 주먹을 꼭 움켜쥐며 입술을 옥물었다.
지체할수가 없었다. 그 무서운 기근에 산모가 어떻게 견딜수 있단말인가. 오죽하면 저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먹을것을 구해주려 그 먼길을 떠났겠는가, 그것도 위험천만한 적구로…
가자, 빨리 가서 어떻게 해서나 계순언니를 설복하자.… 더 늦으면 그 애기마저 잘못될수 있다.
선화는 돌아섰다. 나무뿌리, 돌부리에 자꾸만 발이 걸채였지만 쉴념을 안했다.
또 한 고개를 넘어섰다. 이름모를 산새들이 푸득푸득 날아옜다. 이깔나무, 봇나무, 전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선 숲속 오솔길은 어딘지 모르게 음침해보였다.
별로 괴괴한것이 도깨비라도 나올듯싶다. 가슴이 후둑후둑 뛴다. 머리칼이 쭈볏 일어선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였다. 생명의 은인인 계순언니를 위한 길인것이다. 지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둥지둥 숲속길을 가던 선화는 갑자기 길옆 풀숲에서 두억시니 같은것들이 벌떡 일어서며 《서라.》하고 총을 내대는 바람에 기절초풍해서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고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두손으로 가슴을 감싸안으며 겁에 질린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히히히… 이건 어디서 이런 고운 기집이 나타났어?》
상판대기가 온통 털로 뒤덮인 놈이 징그럽게 웃으며 걸어나왔다.
《야, 너 어디 사는 기집이야!》
선화는 몸을 옹송그린채 바들바들 떨며 떠듬거렸다.
《난… 난… 저… 옥계동…》
《옥계동? 그 멀리서… 날 찾아왔구만, 히히히.》
뒤에 섰던자들도 낄낄 웃었다. 토비들이 분명했다.
정선화는 애처로운 눈길로 그들을 둘러보며 애원했다. 두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돋아올랐다.
《제발 절 놓아주세요. 난 죄가 없어요. 난… 난… 꼭 가야 할데가 있어서…》
《죄가 없으니 보살님이 우리에게 점지하셨지. 임자를 놓아주었다간 보살님의 노여움을 타서 지옥의 류황가마에 들어가요. 자, 그럼 우리 집에 가자구.》
뒤에 섰던자들이 달려들어 팔을 묶더니 눈에 검은 천을 싸맸다.
《소리쳤다간 죽여버리고말겠어. 순순히 말을 듣는게 좋아. 알겠어?》
선화는 억이 막혔다.
그는 어쩔수없이 토비들의 소굴로 끌려갔다.
토비들은 자기들의 소굴에 다 가서야 눈을 싸맸던 검은 천오래기를 풀어주었다.
전나무숲 여기저기에 귀틀집들이 널려있는데 선화가 끌려간 귀틀집앞에서는 모닥불이 타오르고있었다. 그 주위에는 대여섯놈의 토비들이 둘러앉아 술추렴을 하고있었다.
머리에 흰 광목수건을 질끈 동인 그중 젊어보이는자는 그옆에서 전나무밑둥에 열심히 장도칼을 던지고있었다. 칼이 나무에 꽂히지 못하고 자꾸 떨어져내리는것을 보면 햇내기가 분명했다. 그래서 술추렴에도 끼우지 못하고 《훈련》을 하는것인지… 아니면 술추렴에 싫증이 난 놈인지…
《저건 어떤 년이야?》
술추렴을 하던자들이 선화와 그를 끌고온자들을 갈마보며 묻는 말이였다.
《벌이가 꽤 될만 한 년이야?》
그때 쇠꼬챙이에다 고기점들을 꿰고 불에 굽던자가 선화를 찬찬히 보더니 환성을 올렸다.
《어랍쇼. 이게 처창즈 아동단학교 선생이 아니시오? 허, 맞구만. 응? 하하하.》
그자는 너털웃음을 쳤다. 놀라서 바라보니 그자는 뜻밖에도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선화가 리억만에게 불리워갔을 때 보초를 서던 그 꺽다리자위대원이였다.
《여기서 우리 다시 만났구만. 참, 운명두… 그런데… 가만있자. 진짜 선생의 부친이 〈유산자〉라고 했던것 같은데… 맞았어. 리억만이가 그랬지. 그런데 근거지엔 뭣하러 들어가 그 고생을 했소? 그 치사한 놈에게 끌려다니면서…》
그자의 옆에서 병나발을 불던 말상을 한자가 입에 물었던것을 꿀꺽 삼키고 눈을 떴다.
《뭐? 〈유산자〉? 돈 있어?》
《돈보다두 쌀이 있겠지요. 정미업자니꺼니… 옥계동에서 산다나?》
《쌀이자 돈이지. 흐흐흐, 그렇단 말이지.》
칼던지기련습을 하던자가 피끗 선화쪽을 돌아보았다.
《말상》이 술병을 그 자위대원을 하던자에게 안겨주고 움쭉 일어났다.
《자, 임자들두 여기 와서 한잔씩 하라구. 내 얼떵 갔다올게…》
선화를 끌고온자들이 모닥불옆에 가 비집고 앉았다. 《말상》에게서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싶었다.
《저자가 또 두령에게 가는군. 점수따는데는 선수란 말이야.》
《두령의 친척이라니 어찌겠나. 인차 부두령이 될걸세. 벌써부터 위험한 일은 우리를 시키구 열매는 제가 따먹구…》
《두령이 이번엔 무엇을 줄가?》
《약담배를 줄게야.》
《제길… 저 계집네 집엔 또 누구를 보낼가?》
《옥계동이라고 했지? 정미업자라… 어쨌든 뭐가 좀 생기긴 생기겠구만… 신통치는 않아두…》
선화는 그자들이 지껄이는 말뜻을 다는 알수가 없었다.
그저 공포에 질려 화들화들 떨기만 할뿐이였다.
이놈들이 날 어떻게 하려는걸가. 난 이제 어떻게 될가…
광목수건을 쓰고 칼던지기를 하던자가 장도칼을 손에 든채 선화에게 다가왔다.
그자의 눈이 이상스레 번뜩거려 선화는 소름이 끼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모색이 어딘가 낯이 익은것 같기도 했다.
그자는 장도칼로 선화의 얼굴을 곧추 겨누었다. 당장 이마빡에 칼을 박기라도 하려는듯…
《너 아버지가 옥계동 정미업자 맞아?》
선화는 진저리를 치며 눈을 감았다. 어디서 이런 얼굴 보았던가.… 어디서?… 그자가 또 꽥 소리쳤다.
《맞아?》
이놈은 왜 성을 내는걸가, 내가 어쨌다고?
선화는 대답을 안했다.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당장 터질것만 같았다.
《저 〈빼또칼〉이 이제야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군…》
그것은 이미 귀익은 소리였다. 그 처창즈에서 자위대원을 하던 꺽다리였다.
《저 녀자는 내가 잘 알아. 이름은 정선화… 그 리억만이한테 멋있게 혼날번 했지, 흐흐흐… 마음들면 이번엔 〈빼또칼〉이 나서보게… 정말이야. 옥계동에 사는 정미업자…》
옆에서 술마시던 놈들도 저마끔 지껄여댔다.
《해보라구, 〈빼또칼〉! 우리가 〈양보〉해줄테니… 하하하.》
《겁낼건 없어. 해보면 미립이 튼다니… 술값이야 해야 할게 아닌가.》
《용기를 내게. 일확천금의 기회라니깐…》
보매 《빼또칼》이라는 이자는 토비들속에 끼여든지 며칠 되지 않는것 같았다. 략탈질도 한번 못해보고… 그래서 칼 던지는 련습을 부지런히 하고있는 모양이였다. 토비들은 《빼또칼》에게 한번 솜씨를 보이라고 자꾸 부추겨댔다.
이름이 나지 않은 촌마을의 정미업자여서 크게 돈벌이가 되지 않을것 같으니 햇내기인 이 《빼또칼》을 부추기는것 같았다.
이윽고 《말상》이 돌아오더니 그 자위대원을 하던자에게 소리쳤다.
《임마, 넌 빨리 두령님께 가봐.》
키꺽다리가 뒤통수를 슬슬 쓸며 일어섰다.
《알겠어유. 한데… 저 〈빼또칼〉하구 함께 가면 안되겠소? 수태 맘들어 하는데…》
《그래?》
《말상》이 《빼또칼》을 피뜩 돌아보았다.
《사실이야?》
《빼또칼》이 《말상》을 쳐다보더니 코김을 씩 내불었다.
《글쎄요. 한번 해보겠수다.》
《그럼 함께 가… 내 인차 따라갈테니… 넌 가자.》
《말상》은 이러며 선화를 발로 툭 찼다.
선화는 또 끌려갔다. 이번엔 귀틀집안에 갇히웠다. 그 순간에 선화는 한생각이 피뜩 뇌리를 치는것을 느꼈다. 그럼 저 《빼또칼》이 혹시?…
《빼또칼》은 자기가 무슨 타산이 생겨 이 《일감》을 맡아안았는지 자신도 몰랐다.
《빼또칼》은 선화가 끌려온 그길로 해서 옥계동 그의 집으로 허둥대며 걷고있었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두령이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당신네 딸 정선화가 우리에게 와있다. 딸을 살리겠으면 래일모레 저녁 다섯시까지 돈 3 000원을 가지고 황구령으로 오라. 세번째 굽인돌이 곰바위우에 돈을 놓고 가라. 주먹만 한 돌로 돈을 눌러놓고 가라. 그러면 당신을 따라 딸을 보낼것이다. 만일 모레 저녁 다섯시까지 오지 않거나 경찰을 달고오거나 다른 맘을 먹으면 당신 딸을 우리 사람들에게 맡겨 마음껏 데리고 놀게 하다가 죽여버리고말것이다.…》
《빼또칼》은 이 협박편지를 가지고 떠나기 전에 다시한번 주소와 이름을 확인하고싶어 선화가 갇혀있는 귀틀집에 들렸었다.
처녀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운채 구석에 옹송그리고앉아 울고있었다.
이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느라니 가슴속에서 불시에 련민의 정이 북받쳐올랐다. 주먹같은것이 목구멍을 툭툭 치받는다.
《그래 너의 집이 옥계동… 정미소집이라 했지. 네 이름은 정선화구?…》
선화는 대답이 없이 울기만 한다.
《빼또칼》은 눈을 감았다.
불쑥 떠오르는 하나의 모습…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
《오빠… 나… 살고파… 나… 죽지 않지?》
병에 걸려 죽은 누이동생의 목소리다. 돈이 없어 약도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죽은 사랑하는 누이동생… 왜 동생이 갑자기 생각났을가.
《빼또칼》은 더 물어볼념을 않고 돌아섰다. 허청거리며 귀틀집문을 나섰다.
여기 토비들은 사람을 잡으면 그를 미끼로 돈벌이를 하고는 가차없이 죽이는 잔악하기 그지없는자들이였다.
이 토비들속에 들어온지 한달밖에 안되는데 벌써 두번씩이나 그런 참경을 보았다.
이번에는 바로 이 《빼또칼》이 자청해서 그 일에 나섰다. 이제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이 협박편지를 가지고 가서 어떤 수를 써서든지 선화의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오게 하는것이였다.
토비들은 이 협박편지를 《황천출입증》이라 부른다. 이런 편지를 가지고 다니다 들키면 그길로 류치장으로 끌려가거나 죽어야 하기때문이였다. 그것은 또한 편지를 받는 사람이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와도 어차피 죽음을 피할수 없기때문이기도 했다. 두령이 지시한대로만 하면 선화도 그의 아버지도 다 죽어야 한다. 그게 바로 토비들의 생존방식이다.
사실 이거야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돈만 빼앗으면 그만이지 왜 애꿎은 사람들까지 죽인단 말인가.
《빼또칼》은 나무뿌리에 걸채이고 가시덤불에 할퀴우며 허덕허덕 걸었다. 자기도 모르게 울분이 솟구쳤다.
(그건 너무하다. 야만의짓이야. 아, 나는 어쩌다 이런 판에 끌려들었느냐.)
《빼또칼》은 울분을 걷잡지 못하고 수풀을 와락와락 헤쳐나갔다.
《빼또칼》의 집은 명월구에 있었다. 앓는 어머니를 두고 친척집을 찾아가다가 이 토비들에게 걸려들었다. 《빼또칼》이란 별명은 집을 나설 때 보신용으로 장도칼을 품고 떠났는데 그가 늘 그걸 가지고 다닌다고 해서 토비들이 붙여준것이였다. 남자들은 일단 이 토비들에게 걸려들면 같이 토비가 되든가 아니면 죽어야 했다. 처창즈에서 자위대원을 하던 그 자도 이 토비들에게 걸려 한무리에 들게 되였다. 토비가 되면 절대로 발을 뽑을수가 없다. 발을 뽑는 날이 저승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가족까지 몰살시킨다. 그 어디를 가도 반드시 찾아내서 그 《맛》이 어떤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일에 성공하여 돈을 벌면 그 돈을 집에 보내줄수가 있다. 이 토비들의 《륜리》라 할가 어쨌든 여기서는 빼앗아낸 돈의 10분의 1할을 《황천출입증》을 가지고 갔던 사람에게 주게 되여있다.
사실 이제 이 일이 성공하면 《빼또칼》도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줄수 있다. 그러면 병도 고칠수 있고…
마을에서는 《빼또칼》을 효자라고 하고있다.
하지만 《빼또칼》은 아직까지 《황천출입증》을 가지고 나서본적이 없었다.
그것은 저 선화와 같은 그리고 자기 누이동생같은 처녀를 죽이는 대가로 차례지는 돈이기때문이다. 그런 돈은 약을 살수가 없다.
그걸 알면 어머니는 약이 아니라 양재물을 마실것이다.
누구보다도 마음이 깨끗하고 선량하면서도 존엄과 인격을 귀히 여기는 어머니이다. 동생네들이 그리 못사는 축들은 아니지만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언제한번 그들에게 그런 내색을 내본적이 없다. 손을 내밀지 않는다. 맏언니의 체면때문만도 아니다. 동생들이 주는 돈에는 자기의 땀이 스며있지 않기때문이다. 어머니에게는 오직 이 아들의 성실한 땀과 노력이 슴배인 깨끗한 돈이 필요한것이다.
《빼또칼》은 가쁜숨을 톺았다. 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린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가, 왜? 왜?
《빼또칼》의 눈앞엔 또다시 귀틀집 한구석에 옹송그리고앉아 슬피 울고있는 처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우로 자리에 누워 애절한 눈길로 자기를 올려다보던 누이동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도 《오빠!》, 《오빠!》하며 따르던 동생 봉숙이…
《오빠… 나… 살고파. 나… 죽지 않지?》
《빼또칼》은 그만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쳤다.
(아, 이젠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은가.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억이 막혔다. 사실 저 처녀는 남남이 아니였다.
정선화는 바로 그의 이모사촌동생이였다. 서로 어렸을 때 보고는 오래동안 잘 다니지 않아 첫 순간엔 몰라보았던것이다. 자라면서 서로 몰라보게 번진탓도 있었다.
《빼또칼》―서봉삼은 아까 처음 선화의 이름과 옥계동정미소집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거듭거듭 확인을 했었다.
(이 처녀가 언제인가 내가 옥계동에 갔을 때 엿가락을 주면서 소꿉놀이를 하자고 조르던 그 선화가 맞단 말인가?)
보면 볼수록 어릴 때 모습이 살아올랐다.
사촌누이동생이 옳다는것이 확인될수록 서봉삼은 미칠것만 같았다.
어쩌다가,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걸려들었단 말이냐.
서봉삼은 제정신이 없었다. 《이 정선화가 나의 사촌동생이요.》하고 나설수도 없었다. 자기도 이 토비들속에 들어와 지금까지 한일이 없어 눈밖에 났는데 사촌동생이 다 무어냐 할것 같았기때문이였다. 돈 3 000원이 왔다갔다하는 판에… 이 짐승같은 놈들에게 친척이라는것을 로출시켰다가는 더 큰 랑패를 볼수 있었다. 그렇다고 선화를 내버려둘수도 없었다. 누구든 《황천출입증》을 가지고 가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면 진짜 마지막이였다. 그래서 누가 나서기 전에 황황히 자기가 맡아 나선 서봉삼이였다. 어쨌든 일은 막아놓고보려고…
그렇다고해서 무슨 방책이 있는것도 아니였다. 처음엔 옥계동 이모부한테 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무슨 수를 써볼가 했었는데 그것도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땅을 치고만 있을수도 없었다.
서봉삼은 이를 사려물며 벌떡 일어났다. 무작정 저 선화를 데리고 도망을 쳐야겠다고 생각한것이다. 자기가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선화가 무슨 피해를 볼지 몰랐다. 모험을 하는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겠다고 선화를 죽일수야 없지 않는가.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
성공할수도 있었다. 그를 빼내기만 하면… 이놈들이 찾아낼수 없는 그런 먼 곳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가자. 선화네 집도 빨리 피신시키고…
그길밖에 없었다. 죽지 않으면 사는 길… 생사판가리길이다.
서봉삼은 토비들의 소굴로 되돌아갔다.
자정이 넘도록 기다리다가 다들 곯아떨어졌을 때 두령의 방으로 뛰여들어가 《빼또칼》로 서슴없이 그놈의 목을 땄다. 숱한 죄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귀이니 주저할것도 없었다. 그달음으로 선화가 갇혀있는 귀틀집으로 달려가 문앞 나무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끄덕끄덕 졸고있는 보초놈의 가슴에도 《빼또칼》을 박았다.
《선화, 빨리 뛰자. 여기 있다가는 너도 너의 아버지도 다 죽는다.》
귀틀집문을 열어제낀 서봉삼은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무작정 선화의 손을 잡아끌며 내뛰였다.
《그… 그럼… 거긴?…》
선화가 끌려오면서도 당혹해서 묻는다.
《내가 네 사촌오빠야. 아직두 모르겠어? 명월구 맏이모네… 서봉삼이라구… 너 나 정말 모르겠니?》
《그럼… 봉삼오빠가 정말 맞아요? 분명…》
《맞는다는데… 빨리 뛰자.… 여기 있다가는 다 죽어.》
언제 어떻게 발각되였는지 소굴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토비들이 따라왔다.
《서라! 서라!》
그들은 죽기내기로 달렸다.
《땅! 땅!》
총소리, 총소리.
봉삼은 갑자기 허벅다리가 선뜩하는것을 느꼈다. 누가 뒤에서 콱 밀치기라도 한듯 앞으로 꼬꾸라졌다. 총탄이 허벅다리를 뚫고나간것이다.
(이젠 다로구나.)
《오빠, 왜 그래요. 예? 오빠?》
앞으로 몇걸음 뛰쳐나갔던 선화가 황급히 돌아와서 일으켜세우려고 안깐힘을 썼다.
봉삼은 도리머리를 했다.
《안되겠다. 총에 맞았어. 어서 뛰거라. 이 길로 곧장 가면… 돼.》
《안돼요, 안돼요. 함께 가자요.》
선화가 결사적으로 서봉삼을 일으켜세웠다. 겨드랑이에 어깨를 들이밀고 한걸음, 두걸음 가까스로 발을 옮겨놓았다.
《이러지 말아. 이러단 다 죽는다는데… 어서 뛰라, 어서!》
《안돼요, 싫어. 오빨 두구 내가 어딜 간단 말이예요.》
선화는 서봉삼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만 벼랑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면서도 꽉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다. 그에게서 떨어지면 오히려 자기가 죽을것 같았다.
벼랑밑에까지 굴러내려오자 서봉삼은 더 참기 힘든듯 신음소리를 냈다.
《여기를… 여기를 좀 동여주렴.… 피가… 계속 나오는구나.》
봉삼이가 제 웃옷자락을 찢어서 선화에게 내밀었다.
《어찌나 아픈지 내 손으로는 동여매지 못하겠구나.》
상처는 험상했다. 바지가랭이가 온통 피에 젖어 질벅했다.
선화는 떨리는 손으로 허벅다리를 꽉 매주었다. 봉삼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면서도 말했다.
《좀더… 꽉… 그렇지, 좀더 힘껏. 아― 아― 됐다, 됐어.》
선화는 또다시 그를 부축하고 걷기 시작했다. 다행하게도 자연동굴이 앞에 나졌다.
봉삼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우리… 저기… 좀… 들어가보자.》
봉삼은 동굴속에 들어가자 그 자리에 쓰러졌다. 토비들은 추격을 단념한듯 아니면 방향이 바뀌운듯 다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박쥐들이 푸득푸득 날아옜다.
인차 날이 밝았다.
서봉삼은 선화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저 토비들은 무서운 놈들이야. 가족들에게까지 행패를 할수 있어. 빨리 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잠시 피신을 하게 하구… 우리 집에두 좀 들려주렴.》
선화는 놀라운 소리로 물었다.
《그럼 오빠는 어떻게 하겠어요? 심하게 상했는데…》
《내가 중요한게 아니야. 빨리 떠나. 부모님들이 위험해.》
《그럼… 그럼 갔다오겠어요. 어디 가지 말구… 제가 약도 가져오겠어요.》
선화는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에게 사연을 죄다 말해주고는 명월구의 큰이모네 집으로 사람을 띄우게 하였다. 그리고는 총상에 좋다는 약을 구해가지고 동굴로 돌아왔다.
서봉삼은 몸이 완쾌되자 아버지쪽으로 먼 친척벌이 되는, 장백땅에서 목재상을 한다는 사람을 찾아갔다.
그의 주선으로 집을 얻고 직업까지 구하게 된 서봉삼은 어머니부터 몰래 모셔다놓고 오늘은 당분간 큰이모네 집에 피신해있기로 부모들과 토의된 선화를 데려온것이다.
토비들은 서봉삼이가 선화까지 데리고 안도도 아니고 왕청, 화룡도 아닌 백두산서남부 완전히 반대쪽인 이 장백땅끝으로 거처지를 옮겼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것이다.
그러나 안심할수는 없었다.
목재상은 서봉삼을 장백현 경찰서 잡부로 주선했다.
《토비들의 눈을 피하는데도 그렇고 또 먹고살기 위해서도 경찰서에 들어가는게 낫다. 토비들도 경찰서만은 함부로 어쩌지 못할게다.》
그 목재상의 말이였다.
《오빠! 정말 경찰서에 들어가겠어요?》
선화가 눈이 올롱해서 도리머리를 했지만 서봉삼은 한숨을 내쉬였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슨 맘을 먹고 어떻게 일하는가가 중요한거다. 무슨 일을 하든 제정신을 가지고 살면 되는거지.》
선화는 어쩌는수가 없었다. 더 오빠를 막아설 용기도 없었다. 모든것을 체념해버리고말았다.
경찰서 잡부의 동생…
어이가 없다. 혁명가를 사랑하며 혁명가가 되겠다고 하던 자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생활은 이미 자기를 배반했다. 생활은 자기에게서 고상하고 순결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온것들을 죄다 앗아가버렸다.
아니, 이것이 원래부터 자기의 운명이였는지도 모른다.
정미소 주인, 《유산자》, 국수집주인《마님》, 《아씨》, 경찰서잡부… 이것이 자기가 사는 기슭이다.
무산계급, 프로레타리아, 혁명… 이것이 지철민이가 살던 강건너 저쪽 기슭이다.
그가운데로 계급투쟁이라는 거세찬 강물이 흘러가고있다. 저쪽 강기슭에 건너가보려고 강물에 뛰여들었다가 밀려나오고말았다.
그런데… 저쪽 지철민이네 대안은 과연 어떠한가. 보라빛무지개가 비끼고 들꽃이 아름다운줄 알았던 그곳이 과연 어떠했던가.
문득 계순언니가 꺾어주던 부채붓꽃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런데 왜 현실은 계순언니가 말하던것과 그리도 다를가.
계순언니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가.
불쑥 려인숙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도 떠오른다.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 애기는 어떻게 했을가.
선화는 동굴속에서 서봉삼을 치료할 때 마을에 약을 구하러 내려갔다가 처창즈유격근거지가 해산되였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처창즈는 온통 불바다로 되였다고 했다. 왜놈들이 타고앉아 모조리 불질렀다는것이다.
그래서 계순언니를 더 찾을 생각을 못했던 선화였다.
그 언니는 무엇때문에 려인숙에 왔댔을가. 애기는 정말 살아있을가? 아니면 혹시?…
선화는 이 장백으로 나오기 전에 우정 시간을 내여 계순언니네 친정집을 찾아갔었다. 계순언니의 소식이라도 알고싶었던것이다.
집에서는 계순언니를 무척 애타게 기다리고있을뿐 전혀 그의 소식을 모르고있었다.
정녕 그는 무엇때문에 떠돌아다니는것일가. 근거지들이 다 해산되였다는데 왜 집에 가지 않을가. 려인숙에 함께 왔던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가, 애기는?…
선화는 이날 종시 한잠도 자지 못하고말았다.
정선화가 리계순이와 그의 딸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것은 썩 후의 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