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4 장
정옥은 점심시간이 되기 바쁘게 사무실에서 나와 무궤도전차에 올랐다.
남편이 실화원고를 가지고나가다나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소설도 그렇지만 실화나 수기나 일단 손에 쥐기만 하면 밤을 밝히는 성미인 남편은 저녁에 집에 들어오지 않고 직장에 눌러앉아 하루이틀사이에 끝장을 보고야말것이다.
정옥은 무궤도전차가 떠나자 차창쪽의자에 앉아 차창밖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실화를 보다가 중도에서 그만두었으니 온통 의문만 생긴다.
무엇보다 큰 의문은 정선화의 이모사촌오빠인 서봉삼이가 왜 남들의 눈을 피해다니는가 하는것이였다.
선화는 왜 그와 함께 이모네 집으로 가고…
선화도 남들의 눈을 피해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죄를 지었다면…
화룡이나 처창즈에서부터 먼 장백땅으로 온것도 역시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것이다.
혁명렬사릉에서 만났던 그 녀성도 나를 피해달아나다싶이 했다. 그리도 괴로와하면서… 그는 분명 정선화였다. 실화도 그 녀성이 썼고…
그는 과연 무슨 죄를 졌는가?
어쨌든 그 실화를 마저 읽어보면 사연을 알수 있을것이다.
실화원고를 통채로 가져간 남편이 야속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에도 일체 실화소리는 입밖에도 내지 않더니… 자기가 가져가려고 그런것 같다. 아예 관심도 없는척 해서 내가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게 《무방비상태》로 만들어놓고는 제꺽 손을 쓴것이다. 저녁에 원고를 가지고들어오라고 아무리 전화를 해야 남편이 들을리가 없다.
조급증은 불같지만 참는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남편이 실화원고를 다 볼 때까지 정선화를 찾는데 신경을 쓰기로 결심했다. 정옥은 오전에 전화로 서성구역과 형제산구역 인민위원회를 찾아 서성구역체신소와 그중 가까운 동과 리들에 정선화라는 중국에서 살다 나온 녀성이 없는가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지금은 김명화를 찾아가는 길이다. 김명화는 처창즈에서 유격대작식대원으로 있었기때문에 혹시 정선화에 대하여 알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에서였다. 정옥의 생각은 옳았다.
《뭐? 정선화? 정선화라… 정선화… 가만, 아니, 그 녀자가 지금두 살아있나?》
정옥이가 찾아가 사연을 말하자 김명화는 줄당콩을 두고 푹 퍼지게 삶은 통강냉이를 두사발에 갈라 담아가지고 들어와 상우에 놓으며 놀라서 마주 쳐다보았다. 강냉이사발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여올랐다. 그것이 김명화의 점심밥이였다. 투사들은 산에서 싸울 때 너무 고생해서인지 이런 강냉이 삶은것도 귀물로 여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 백두광야에 묻고 온 전우들이 생각나실 때면 잡곡밥이나 통강냉이죽을 드신다고 한다.
그래서 투사들도 더더욱 검박한 생활을 하고있는것 같다.
정옥은 투사들집에 갈 때마다 느끼는것이지만 오늘도 가슴이 쩡해옴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우리 집 막냉이는 이런 강냉이음식같은것은 맛도 보려 하지 않는다. 고급과자, 고급빵, 고급사탕… 떡도 골라가며 먹는다.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고있는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 애에게도 이런 삶은 통강냉이의 진맛을 느끼게 할수 있을가. 맛으로가 아니라 시련에 찼던 그 나날의 투사들의 혁명정신을 배우는 심정으로 먹게 할수 있을가.
《그 녀자가 살아있다고 딱히는 말할수 없지만 꼭 살아있는것 같아 그럽니다. 저한테 어제 아침 실화가 한편 들어왔는데 모두 정선화라는 녀성이 보고 듣고 느낀것을 쓴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에 대한 실화인데 그 녀성이 저의 어머니나 저의 외할머니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같아요.》
김명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묵묵히 통강냉이를 숟가락으로 떠먹다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도 있지, 임자 어머니와 가까왔댔다니깐. 내가 처창즈에 들어갔을 땐 그 녀자가 없었지만… 다들 말하더군. 그 녀자때문에 임자 아버지, 어머니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예?》
정옥은 통강냉이를 입에 문채 김명화를 쳐다보았다. 대충 씹어삼키고 성급히 물었다.
《그 녀자때문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피해를 입다니요?》
《참 기막힌 일이지… 그 녀자두 억울한 일을 당했구…》
김명화는 더는 무엇을 먹을 생각도 없는듯 슬며시 숟가락을 놓았다.
김명화는 추연한 눈길로 눈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임자두 알겠지만 그때 처창즈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라는 못된 바람이 불었댔네. 왜놈들의 간계에 속아넘어간 그 〈숙반〉것들이 우리 수령님께서 북만원정을 떠나시자 사람들을 마구 물어메치기 시작했는데 정선화의 애인도 걸려들었지.》
그것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였다.
지철민이가 《민생단》감옥에 갇히였다는 소식을 들은 정선화는 정신없이 뛰여다녔다.
《그이는 〈민생단〉이 아니예요. 그이는 정말 혁명밖에 모르는 순박한 사람이예요.》
근거지사람들은 선뜻 그를 보증해나설수가 없었다. 본인이 자백했다는데 그를 비호하다 자신도 《민생단》으로 몰릴수 있기때문이였다.
지철민이 《민생단》으로 몰린것은 식량공작을 나갔다가 부상을 당한채 빈손으로 돌아왔기때문이였다. 그때 유격근거지에서는 식량이 떨어져가고있어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벗겨 낟알과 버무려먹군 하였었다. 자위대 소대장인 지철민은 식량공작조를 책임지고 적구로 가던 도중 황구령을 넘다가 뜻밖에도 왜놈 한개 소대와 맞다들게 되였다.
그들은 얼른 길옆 숲속에 몸을 피했는데 공교롭게도 지철민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나왔다. 전날 밤에 앓아누운 대원의 입맛을 돋구게 하려고 고동하물속에 들어가 밤을 새우며 산천어 몇마리 잡았는데 그만 감기에 걸렸던것이다. 아무리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피나게 깨물었으나 터져나오는 기침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놈들의 추격을 받게 되였고 지철민은 부상까지 당하게 되였다.
《숙반공작위원회》에서는 그가 식량공작을 고의적으로 파탄시키기 위해 우정 공작조를 로출시키고 그 죄행을 교묘하게 은페시키기 위해 다리에 부상을 당한것이라고 걸고들었다. 현실적으로 그는 부상을 당하다나니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던것이다.
어떻게 고의적으로 부상을 당할수가 있는가고 되물으니 그걸 바로 《민생단》인 네가 대답해야 한다고, 너는 그렇게 부상을 당함으로써 더 깊이 은페하려 한다는것을 우리는 다 알고있다면서 악착스럽게 고문을 들이대였다.
그 《우리》란것이 바로 룡정에서 그에게 《처녀인가 혁명인가 립장을 똑바로 하라.》고 강요하던 현당부장 리억만이였다.
그는 동만특위에 가있다가 얼마전에 현당부장으로 내려왔는데 그토록 자기를 믿으라면서 데리고다니던 지철민을 오히려 《민생단》으로 몰아붙인것이다. 훌륭한 혁명가로 키우겠다던 사람이…
후에 리억만이 자백한데 의하면 그가 지철민을 《민생단》으로 몬것은 순전히 자기의 추행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어느날 현당서기 조아범이가 급히 전하라는 말이 있어 리억만이가 거처하고있는 집에 달려간 지철민은 여느때처럼 스스럼없이 토방에 올라 서며 그를 찾았다. 안에서 대답하는것 같은 소리가 나 문을 열었던 지철민은 눈을 흡뜬채 그대로 굳어지고말았다. 상상외로 리억만이 어떤 녀자와 침대에 함께 누워 히히닥거리며 너 한모금, 나 한모금 엇바꾸어 약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자기들끼리 놀아대는 소리를 대답소리로 착각했다는것을 느낀 철민은 슬그머니 문을 닫아주었다.
그의 뒤생활을 두고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에도 설마… 하면서 도리머리를 했던 철민이였다.
철민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획 돌아섰다. 그에 대한 환멸이 굴뚝처럼 뻗쳐일어났다. 그처럼 믿고 따르던 사람이여서 환멸이 더욱 큰것 같았다. 저 사람이 과연 저렇게도 더럽고 추한 인간이였던가. 침이라도 뱉고싶었다.
지철민이가 자기 추행을 알고있고 그래서 자기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는것을 느낀 리억만은 이를 갈며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좋은 구실을 찾은것이다.
리억만은 래일 지철민을 총살한다고 선포했다.
정선화는 억이 막혀 《숙반》을 책임진 리억만을 찾아갔다.
《그이는 〈민생단〉이 될수가 없어요. 그야 부장동지도 잘 알지 않나요. 아버지, 어머니와 형님까지 왜놈들에게 잃은 그가 어떻게 왜놈의 개가 될수 있어요.》
《그게 바로 문제란 말이요. 그래서는 안될 사람이 왜놈의 개가 된것이… 보시오. 자기 근본을 잊으면 어떻게 변질되는가. 내 원래 룡정에 있을 때부터 경고했댔지. 계급적원쑤와 동침을 하려 한다고… 그러니 그때부터 저 지철민은 계급적으로 탈선을 했단 말이요.》
정선화는 아연해졌다. 멍하니 리억만의 유들유들한 상판을 쳐다보았다.
리억만은 획 하고 고개짓으로 그 긴머리를 뒤로 넘겼다.
정선화는 자기가 지철민에게 어떤 큰 피해를 주었는지 이제야 똑똑히 알게 되였다. 그러니 이 리억만은 자기들의 사랑을 《계급적탈선》으로, 《사상적변질》의 시초로 본것이다.
정선화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 그래선 안된다. 그는 변질된것이 아니다. 그는 오직 혁명만을 생각해왔다. 그 순박하고 고지식하고… 그는 절대로 변질될 사람이 아니다. 나때문이라면… 내가 물러서면 되지 않는가.
정선화는 몸서리를 쳤다. 언제인가 꿈에서 이 비슷한 일을 체험했던 일이 생각났다.
아, 역시 나와 그이는 만나서는 안될 사람들이구나.
《난 아동단학교 선생도 좋게 보지 않았댔소. 누구의 소개를 받고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게 되였는지… 모호했단 말이요. 하지만 부녀부장의 보증을 받았다기에 더 캐보려다가 그만두었소. 부녀부장의 오빠는 지금 현당서기인 조아범동지의 길림사범학교 동창이니까… 금곡지구 공청책임자였고…
그러나 저 지철민은 다르단 말이요. 사실 그의 부모들이 왜놈들에게 희생되였다는것도 믿어지지 않소. 우리를 속여넘기기 위한 수작이 아닌지 의심스럽단 말이요.》
선화는 기가 막혔다. 울면서 하소했다.
《일가친척들이 다 희생된건 사실이예요. 그때 그의 아버지, 어머니장례를 부장동지가 치르어주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지철민의 부모들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요.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것이 아닌지 누구도 장담할수가 없지 않소.》
선화는 안타까이 도리머리질을 했다.
《그건 내가 장담해요. 난 그의 고향에도 가보았어요.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한생을 소작살이를 하면서 순박하게 살아왔어요. 그의 형님은 그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지주집에서 머슴살이까지 했어요. 이런 그들을 왜놈들이 총으로 쏘아죽이였어요. 그건 그 마을 사람들도 다 말했어요. 그이는 절대로 〈민생단〉이 될수 없어요.》
《그렇다?》
리억만은 눈을 치뜨고 정선화를 건너다보았다.
《동무가 직접 그의 고향에 가봤단 말이지?》
《그래요. 제발 그이를 살려주세요. 그이는 제가 보증하겠어요.》
정선화는 애타게 간청했다. 지철민과 함께 그의 고향에 갔던 일을 사실그대로 자초지종 말했다.
리억만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선화의 말을 듣다가는 애매한것이 있는듯 다시 처음부터 해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선화는 자기의 간청을 들어줄것 같아 또다시 그가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어떻게 혁명의 길에 들어섰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리억만은 고개를 기웃하더니 불시에 도리머리를 했다.
《아니, 믿어지지 않아. 이번에 식량공작 나가서 공작조를 고의적으로 로출시켰는데 그건…》
《고의적이 아니예요. 그는 그전날 밤에 앓는 대원의 입맛을 돋구어주겠다고 고동하의 찬물속에 들어가 산천어를 잡았어요. 그러다나니 감기에 걸린거예요. 저도 같이 나갔댔어요. 그래서 잘 알아요.》
《동무도 같이 나갔댔다구?》
《그래요.》
정선화는 안타까이 그날 밤 일을 또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날 저녁 정선화는 저녁밥도 드는둥마는둥하고 지철민을 찾아떠났다.
그를 만나 낮에 있었던 가슴벅찬 일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잠을 자낼것 같지 못했던것이다.
정선화가 총총히 자위대병실쪽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어딜 가오?》하는 귀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니 뜻밖에도 달수네 집 모퉁이로 반두를 든 지철민이가 돌아나오고있었다.
선화는 반색을 했다.
《아이, 마침 만났네. 지금 막 찾아가는 길이였어요. 그런데 그 반두는 뭘하려고 그래요?》
《좀 쓸데가 있어서…》지철민이 어줍게 웃으며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그 말에 선화는 투정질하듯 눈을 곱게 할깃하며 입을 쏙 내밀었다.
《철민동지는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찾아와요? 내가 보고싶어 우정 올생각은 없나부지요?》
철민은 어이없는듯 씩― 웃기만 했다.
선화는 어쩌나 보려고 또 토라진 소리를 했다.
《철민동지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오늘?》
철민은 눈을 껌벅껌벅하다가 고개를 기웃했다.
《글쎄…》
선화는 뻔하다는듯 호― 한숨까지 내쉬였다.
《하긴 그걸 알면 철민동지가 아니지. 오늘 저녁엔 날 위해 시간을 좀 낼수 있겠지요?》
철민은 난처한듯 반두를 들어보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좀…》
섭섭했다. 모처럼 찾아와 날 위해 시간을 내달라는데 무엇이 그리 바쁘담…
선화는 피뜩 떠오르는것이 있어 따져물었다.
《왜 그래요? 솔직히 말해요. 무엇을 하려고 그래요?》
철민은 할수 없다는듯 씩― 황소숨을 내쉬였다.
《사실은 우리 소대 오동무가 입맛을 잃었길래… 산천어를 몇마리 건져볼가 해서…》
선화는 동지를 생각하는 그의 진정에 코허리가 시큰해지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랬댔군요. 그런 좋은 일을 혼자만 하겠어요? 함께 가자요.》
선화는 철민이 만류했지만 초롱불까지 만들어들고 그를 따라나섰다. 달빛이 푸름푸름 깔린 마을길을 따라 고동하쪽으로 내려가느라니 고콜불빛이 희미하게 얼른거리는 집들에서는 웃음소리, 노래소리, 글읽는 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왜놈도 지주도 없는 세상이라 마음놓고 터치는 소리들이다.
선화는 미소를 지으며 그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나 좋은가. 근거지의 이 저녁은…
《산산 백두산, 강강 두만강…》하고 목청껏 읽는 애는 무산집 손자 삼돌이다. 장난꾸러기…
《혁명군은 왔고나 우리 마을에 왔고나…》하고 노래부르는 애는 분녀이다. 나이는 여덟살밖에 안되지만 엉뚱한 생각을 곧잘하는 애이다. 삼돌이도 분녀도 다 선화네 아동단학교에 다닌다.
《그래, 오늘이 무슨 날이라는거요?》
깔따구가 쏘는지 뒤덜미를 철썩 때리고 벅벅 긁으며 지철민이 궁금해서 묻는 말이다.
선화는 방긋 웃으며 철민을 돌아보았다. 대답을 하자니 벌써부터 목이 메여오른다. 선화는 길복판에 뿌죽 내민 돌부리에 발을 걸채이자 그것을 뽑아 길옆에 쌓아놓고 일어서는 철민을 기다렸다가 감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그건 나도 전혀 생각 못했댔어요. 그런데 오늘 오전에 공부를 마치자 삼돌이가 날 보고 다짜고짜로 〈선생님, 나하구 우리 집에 가자요.〉하는게 아니겠어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 할아버지가 공부를 끝내자마자 급한 일이 있으니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는거예요. 무슨 일일가 해서 찾아가니 글쎄 저의 생일상을 차려놓은게 아니겠어요.》
《생일? 가만,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지철민이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주먹으로 이마를 툭 쳤다.
《아차, 내가 그걸 잊었댔구만.》
선화는 그러는 철민에게 곱게 눈을 흘기고는 들으란듯이 뻐기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생일을 축하합니다.〉하고 삼돌이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는데 난데없이 아동단학교 학생들이 앞에 나란히 서서 손을 번쩍 쳐들어 아동단경례를 하면서 〈선생님, 축하합니다.〉하고 합창하는것이였어요. 난 그만 눈물이 쑥 나왔어요. 내가 〈아니, 생일은 어떻게 알구…〉 하고 의아해하자 삼돌이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삼돌이생일이 스무날전인데 그때 생일상을 받은 삼돌이가 그랬대요. 우리 선생님한테도 생일상을 차려주자구… 삼돌이에게 생일상은 생일날에만 차려준다고 하니 선생님생일은 언제인가구 묻더래요. 그래서 구정부에 가서 생일을 알아냈다나요. 아동단원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어떻게나 짜고들었는지 난 전혀 몰랐댔다니까요. 저저마다 꽃다발을 안겨주구 〈우리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드리자.〉하면서 노래도 부르구 〈우리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자.〉하면서 어떤 애는 〈곱새춤〉까지 추며 돌아가는데 정말 허리가 끊어질번 했어요. 〈우리 선생님의 말씀을 더 잘 듣구〉, 〈우리 선생님 말씀대로 공부도 더 잘하구〉, 〈우리 선생님 바라는대로 훌륭한 혁명가가 되자〉고 하면서 그저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하는데… 난 정말 난생처음 그런 기쁘고 행복스러운 일을 겪어보았어요. 인간다운 사랑, 인간다운 존경… 정말 이 하루를 위해선 일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겠구나, 이 애들, 이 애 부모들, 이 근거지를 위해서라면 돌을 갈아먹으면서라두 힘껏 일해야겠구나 하는 각오가 더욱 커지더군요.》
《결국은 이 애인도 생각 못했던 생일을 근거지사람들이 차려주었구만. 얼마나 좋소. 이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식량공작을 잘해야겠는데…》
《식량공작 나가요?》
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앓는 대원을 위해 나섰군요. 힘들지 않겠어요?》
《일없소. 이것도 다 내가 할 일인데… 이젠 다 왔구만. 여기서부터 시작하기요.》
지철민은 반두를 들고 찬물속에 들어섰다. 얼마나 찬지 자기도 모르게 헉― 하고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일없겠어요? 감기들지 않겠어요?》
선화는 초롱불을 들고 기슭을 따라가며 걱정을 했다. 그 걱정을 철민은 줄곧 웃음으로 받았다.
《걱정말라는데… 난 오동무만 병을 털고일어난다면 몇밤이라도 찬물속에서 새우겠소.》
그러다 종내 감기를 만난것이다.…
《철민동무는 이렇게 늘 동지들을 생각했구 근거지를 사랑했어요. 절대로 〈민생단〉이 될수 없어요.》
정선화는 리억만이가 잘 리해할수 있게 그날 밤의 일들을 빠짐없이 그대로 이야기해주면서 애타게 간청했다.
리억만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난 아직도 리해가 안되오. 〈민생단〉도 그런 정도는 얼마든지 할수 있으니까.》
《아니예요. 그건 진심이예요. 절대로 꾸며내서는 그렇게 못해요.》
《〈민생단〉이란 교활한자들이요. 믿을수 없어.》
하여 정선화는 지철민이가 《민생단》이 될수 없는 근거에 대하여 구체적인 생활세부까지 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필사적이였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저녁이 되고 밤이 깊어졌다. 리억만은 밤이 이슥해지자 오히려 자기의 음욕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기 시작했다. 선화의 요구를 들어줄듯말듯 하면서 거닐다가는 슬쩍슬쩍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선화는 그의 숨소리가 높아지고 눈길이 이상하게 번뜩이는것을 보자 온몸에 닭살이 돋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뇌리를 치는 예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얼른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오고말았다.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야 될지 알수가 없었다. 선화는 정신없이 마을을 방황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은가. 그토록 정이 가는 근거지인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우린 그토록 근거지를 사랑하는데 이게 과연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음날아침 지철민이 사형장에 끌려나갔다. 부상당한 다리는 치료를 받지 못해 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부상당했을 때 대충 붕대를 동여 맨 그대로였는데 온통 시꺼멓게 피덕지가 말라붙어있었다. 리억만이 그를 황철나무밑에 세워놓고 《판결문》을 읽었다.
지철민이 몸부림을 치며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나는 〈민생단〉이 아니요. 〈민생단〉이 아니란 말이요.》
그러자 리억만이 소리쳤다.
《저걸 보라. 저게 바로 〈민생단〉이다. 어제까지는 자기가 〈민생단〉이라고 자백하더니 사람들앞에서는 〈민생단〉이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소리쳐서 우리가 마치 〈민생단〉이 아닌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것처럼 뒤집어서 〈민생단〉투쟁을 못하게 하자는것이다.》
《아니요. 나는 한번도 내가 〈민생단〉이라고 자백한적이 없소.》
《저걸 보라. 저자는 죽는 순간까지 〈민생단〉을 하고있다. 보라, 〈민생단〉이 얼마나 교활하고 악질들인가 똑똑히 보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리억만은 게거품을 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사격준비!》
《가만!》
뒤에서 녀자의 새된 웨침소리가 났다. 모두의 눈길이 뒤로 쏠렸다.
그는 정선화였다. 정선화가 만사람의 눈길을 받으며 걸어나왔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정선화는 서슴없이 지철민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이 세상 모든것을 다 체념한듯 한 표정이다. 그는 지철민에게 다가가 이윽토록 그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스르르 무릎을 꿇었다.
지철민은 자기의 이런 꼴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는것이 괴롭고 창피한지 고개를 외로 돌렸다.
《선화, 내 선화만은 정말… 행복하게 해주자고 했는데…》
선화는 천천히 도리머리를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자신도 몰랐다.
그의 손에는 흰 천이 들려있었다. 사형장에 나선 사랑하는 사람이 부상당한 자리에 피덕지가 앉은 붕대를 그대로 감고있는것을 보고 속옷을 찢은것이다.
선화는 천천히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지철민의 부상당한 자리에 흰 천을 감기 시작했다. 두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손등에, 그 하얀 천에 떨어져내린다.
하얀 천을 다 감은 선화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으며 올라오다가 마침내 와락 그 넓은 가슴팍에 온몸을 던졌다. 몸부림을 치며 오열을 터뜨렸다.
《못 가요, 못 가요. 갈테면 나하고 함께 가자요.》
군중들속에서 또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리억만의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지시봉처럼 곧추 선화를 가리켰다.
《저 녀자를 빨리 끌어내라. 〈민생단〉을 동정하는자도 〈민생단〉이다.》
지철민이 목갈린 소리로 불같이 말했다.
《선화, 어서 물러나오. 저 비렬한자들에게 절대로 빌붙지 마오. 어두운 밤이 새면 해가 뜨는 법이요. 래일을 믿고 사오. 내대신 밝은 세상을 꼭 보시오. 내 이제 마지막싸움은 어떻게 떳떳하게 죽는가 하는것이요. 그걸 똑똑히 보아주시오.》
《안돼요, 그건 안돼요. 죽어선 안돼요.》
선화는 몸부림을 쳤지만 리억만의 패들에게 끌려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선화는 지철민을 총살하는 총소리도 듣지 못했다. 《사격준비!》하는 소리를 듣자 그만 기절을 했던것이다.
실패한 지철민이네 식량공작조대신 자진하여 식량공작나갔다가 돌아온 리계순은 그 소식을 듣자 억이 막혀 허탈상태에 빠진듯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더구나 선화가 다시 리억만에게 불리워갔다는것을 안 리계순은 결연히 리억만이 거처하는 귀틀집으로 찾아갔다. 선화까지도 《민생단》으로 몰려는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귀틀집앞에는 키가 꺽두룩한 보초가 서있었다.
《들어가지 못하오.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소.》
《난 식량공작조로 나갔던 사람이예요. 그 결과를 빨리 알려주지 않으면 〈민생단〉이 돼요. 그걸 알리지 못하게 하면 동무도 〈민생단〉이 돼요. 그래 〈민생단〉이 되고싶어요?》
계순이 맵짜게 들이대자 꺽다리보초는 눈이 둥그래졌다. 앞을 막을 생각도 못했다.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눅잦히며 문앞에 다가서서 문을 두드리려던 계순은 뜻밖에도 안에서 정선화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주춤 굳어졌다. 그 울음은 심장을 비틀어짜내는것 같은, 무딘 칼로 뼈짬을 에여내는것 같은 그런것이였다. 그 슬픔을 동정하는듯 한 리억만의 코멘 소리가 침중히 들려왔다.
《실컷 울라구. 다른데선 몰라두 내앞에선 마음놓구 울어두 돼. 그처럼 믿고 의지하던 기둥이 없어졌는데… 그처럼 귀중한 사랑을 잃었는데 그 심정이 오죽하겠소? 후유― 세상이란 참…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는 말라구. 난 선화의 그 심정을 다 리해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 같구 눈앞이 캄캄하구… 막 죽고싶을게야. 그러나 그래선 안돼. 간 사람은 간 사람이구… 산 사람은 살아야 할게 아니야. 눈물은 내리고 밥술은 올라간다구… 이겨내야 해. 난 선화가 지금껏 밥 한술 입에 넣지 않았다는 말을 듣구 어제 밤 한잠도 못 잤어. 너무도 가슴아파서…》
계순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리억만이 하는 말이 너무도 뜻밖이였던것이다. 슬픔이 극도에 이르러 몸부림치던 사람은 자기를 위로하고 동정하는 말 몇마디에도 쉽게 꼬꾸라지는 법이다.
정선화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계순은 온몸의 신경이 팽팽히 긴장해지는것을 느꼈다. 저 리억만은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것인가.
《선화, 난 솔직히 말해서 선화를 마음에 둔지 오랬어. 선화의 사랑에 방해될가봐 내색을 안했을따름이지. 용서하오. 지금껏 내 선화를 좋지 않게 대한것은 선화에게 쏠리는 내 마음을 다잡느라고… 우정… 그랬던거요.》
계순은 몸서리를 쳤다. 저게 무슨 말인가, 저게?…
《선화, 나도 정말 괴로왔소. 솔직히 말해서 내 지금껏 살아오면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건 이 세상에 오직 정선화라는 한 녀성밖에 없었소. 지금껏 오로지 혁명사업에 헌신분투하느라 언제 한번 애틋한 감정에 잠겨있을새가 없어 그랬지 이 가슴속엔 언제나 선화가 들어있었소.》
문득 울음소리가 그쳤다. 무엇인가 뿌리치며 일어서는듯 했다.
《다치지 말아요. 그럼… 당신이 혹시… 그래서 철민동무를…》
《아―아― 오해하지 마오. 그건 혁명의 원칙이였소. 절대로 달리 생각지는 마오. 내가 정선화를 그렇게 마음에 두고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찢는 무례한 일을 어떻게 감히… 하지만 혁명의 원칙은 어쩔수가 없는것이요. 사랑하는 처녀의 애인을 처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심정은 오죽했겠소? 앉소. 선화, 날 리해해주오. 그리고 한생 혁명에 시달리고 포연에 거칠어진 이 사나이의 마음을 좀 위로해주오. 응, 선화. 이젠 나만 믿소. 난 선화를 그 누구도 못다치게 할테요.》
《다치지 말아요. 싫어요, 놓으라요. 소리치겠어요.》
《소리쳐야 들을 사람도 없어. 선화, 선화는 이젠 내 사람이야. 가만있으라는데… 내 사람이 되면 우리 둘은 영원히…》
《무서워요. 당신같은 사람이 어떻게 간부를…》
《간부도 사람이야. 남자이고… 그 사람은 진짜 〈민생단〉이야. 그래 선화도 〈민생단〉으로 죽고싶어? 내 말을 들으면 당당한 혁명가가 될텐데 뭘 그래. 자, 어서 한번만…》
계순은 눈을 감았다. 아,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한개 현의 부장까지 할수 있는가.
더러웠다.
이때에야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던 리억만의 지시가 생각났던지 계순을 막아서려 급히 다가왔던 보초도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들었어요? 동무가 저런짓을 하라고 보초를 서주어요?》
계순은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어쨌든 둘다 《죄》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하는것이다.
그 순간 안에서 와지끈 퉁탕 무엇인가 넘어지는듯 한 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머리를 풀어헤친, 저고리고름까지 풀린 정선화가 정신없이 달려나가고 그뒤를 따라 리억만이 달려나왔다.
《저 녀자를 붙잡으라!》
리억만은 문앞에 서있는 계순이와 보초를 보고 우뚝 멈춰섰다. 천연스럽게 둘을 번갈아보았다.
《뭐요?》 목소리도 천연스럽다.
《식량공작조가 돌아왔어요. 그걸 보고하려구…》
《아, 그렇소? 그래 어떻게 됐소?》
《강냉이 120키로와 수수 50키로 구해왔어요.》
《됐소. 그것만 해도 성과요. 보란 말이요. 〈민생단〉놈들은 식량공작을 나가 죽을 쑤어놓았지만 동무넨 해냈거던. 허허허.》
리억만은 자기가 모순되는 말을 한다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보초에게 눈을 찔 흘겼다.
리계순을 저리 막지 못하고 정선화를 붙잡지 못한데 대한 추궁일것이다.
《그럼 전 가보겠어요.》
《좀 들어가 앉았다 가지 않겠소?》
《전 그만… 너무 피곤해서…》
계순은 고개를 약간 숙여보이고 돌아섰다. 순간 속에선 참을수 없는 분노가 화산처럼 솟구쳐올랐다. 녀성들은 이성관계문제에서는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있다. 계순은 부녀부장이였다.
리억만이가 직권을 리용해서 일부 녀성들과 치정관계를 맺고 약담배까지 피우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고있다는것을 눈치채고있었다.
(모든게 사실이였구나. 저게 무슨 사람이고 현당부장인가. 어쩌면 엊그제 애인을 잃은 녀성까지 저렇게…)
계순이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선화가 따라들어왔다. 계순의 무릎에 쓰러져 오열을 터뜨렸다.
《언니, 난 이젠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아요.》
선화는 리억만에게 갔던 소리를 하지도 못했다. 치욕스러워 입밖에 내기조차 수치스러운 모양이였다. 계순이 역시 같은 심정이였다. 그저 마구 떨며 우는 그가 속에 쌓이고쌓인 억울하고도 원통한 모든것을 한껏 다 쏟아놓으라고 말없이 머리며 잔등을 쓰다듬고있을뿐이였다.
리억만의 이날의 추행에 대한 소문은 이들 계순이나 선화가 아니라 그 꺽다리보초를 통해서 퍼지게 되였다. 그 보초는 리억만이가 계순이 들어오는것을 막지 못하고 선화가 도망치는것을 잡을 생각도 못한데 대해 욕설을 퍼붓자 화가 나서 그날 밤 일을 사람들앞에 공개해버리고 마을에서 도망을 쳤던것이다.
자기가 그런 추행을 하는 리억만의 보초를 서준다는것을 리계순이 보았으니 생각이 복잡했을것이다. 리계순의 남편이 아직도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있는, 현당서기로 일하던 원칙이 강한 사람이라는것을 그리고 리계순이도 현정부 부녀부장이라는것을 알고있는 그는 자기가 결코 머저리가 아니였다는것을 증명하고싶었을것이다. 자기는 리억만의 방에서 그런 추행이 일어나군 하는것을 몰랐다가 그제야 알았다는것을 보여주고싶었을것이다. 선화는 마을에서 그런 소문까지 돌자 더 견디기 어려워했다.
《언니, 난 가요. 이제는 모든것이 다 신물이 나요. 사랑을 찾아서 왔다가 사랑을 잃고가는 나예요. 언니, 이게 진짜혁명인가요? 녀자도 네것내것이 없는게 공산당인가요? 물론 아니겠지요. 언니가 말하던 그 공산주의, 그 혁명… 난 그에 반했댔어요. 그 길에 들어서면 사랑을 되찾을수 있으리라 생각했댔어요. 믿었어요. 그이를 사랑하려면 그이가 가는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는걸… 그래서 그 길에 들어섰는데 그이는 다시는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갔어요. 아니, 그 비렬한들이 강제로 쫓아버렸지요,영원히 오지 못할 그 길로… 난 이젠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요. 내 한생 믿고 사랑하며 함께 가려던 그이를 빼앗겼는데… 내 사랑은 영원히 빼앗겼어요. 난 이젠 허울만 남았어요. 사랑이 없는 인생이 무엇에 필요한가요.
그런데도 그 비렬한자는… 아이, 더 말도 못하겠어요. 너무두 가슴아프구 너무도 억이 막히구 너무두 치욕스러워서… 한때는 녀류시인이 돼보려 꿈까지 꾸던 내가 어떻게 그런…
난 더는 견디기가 어려워요. 더는 못 참겠어요.
날보구두 〈민생단〉이라는데… 마지막길을 가는 그이에게 붕대를 감아주고 그를 사랑했다구… 그리구 〈유산계급〉출신이 우연히 혁명대렬에 끼여들었으니 〈민생단〉이라고 해요.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인정받을수 있는 길은 단 한길뿐인데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할수 없는짓이니 어떻게 하겠어요. 당장 죽는다 해도 언니, 난 그런짓은 못해요. 그래서 떠나요. 더는 찾지 마세요. 역시 우리는 한길을 걸을수 없는 사람들이였어요. 그러나 난 한생 그이만을 사랑하며 살겠어요.》
아침에 밥을 지으러 나갔다가 문밖에 떨어져있는 그 편지를 발견한 계순은 그만 아연해졌다. 그냥 말로 하면 계순이가 붙잡을가봐 이렇게 글로 남기고 갔는지도 모른다.
그 편지를 본 김일환은 격분을 금치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내 그 억만이를 만나야겠소.》
계순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를 만나선 어쩌려구요?》
《이야기를 좀 해주어야겠소.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영상을 다 흐려놓고있단 말이요. 종개 한마리가 온 강물을 다 흐린다더니…》
계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 사람이 뭐 당신 말을 듣기나 하겠어요? 그 사람은 간부구 당신은 이젠…》
《서기에서 떨어졌다구 비판할 권리까지 빼앗긴건 아니요.》
계순은 남편이 불의에 참을줄 모르는 성미라는것을 잘 알고있지만 동의할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저 조아범이나 동만특위 간부들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더군요. 가뜩이나 당신을 〈민생단〉으로 몰지 못해 몸살이 나하는 사람들인데 무슨 화를 입자구…》
김일환은 열이 올라 정선화의 편지를 쥔 손을 내흔들며 격해서 말했다.
《물론 피해를 입을수도 있지. 그러나 내 한사람 피해입어도 그 사람이 고칠수만 있다면 혁명에야 리로울게 아니겠소. 지금이 어느때인데 간부라는 사람이 약담배를 피우구 녀성들과 치정관계를 맺구 하는거요. 비판해주어야 하오.》
계순은 종시 남편의 그 걸음을 막을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야말로 어디서나 《공격수》였다.
김일환은 그길로 리억만을 찾아가 따끔히 충고했다.
《난 억만동무가 개인생활에서부터 뒤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하오. 동무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간부일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지휘성원들에 대한 비난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보오. 녀성문제도 그렇고 약담배도 그렇고…》
리억만은 얼굴이 불카해서 씩씩거리며 듣기만 할뿐 한마디도 대꾸를 못했다. 책상앞에 앉은채 뙤창밖을 쏘아보며 손가락마디만 딱딱 소리나게 꺾었다. 다음날 리억만은 정선화가 근거지에서 떠난 문제를 두고 구정부 회의장에 나타나 침방울을 튕기며 기염을 토했다.
그년은 《민생단》이고 혁명의 우연분자다, 그년은 유격근거지비밀을 다 걷어가지고 적구로, 제 상전들의 품으로 찾아갔다, 유격근거지에는 바야흐로 더 엄혹한 시련이 닥쳐오게 되였다, 이를 누가 책임지겠는가, 이 유격근거지의 수천의 생명들을 범의 아가리앞에 내맡긴자가 그래 《민생단》이 아니란 말인가, 그를 추종한자, 그를 끼고돈자, 그를 보증한자, 그를 끌어들인자, 그를 놓아준자, 그 어떤자도 용서해서는 안된다.
리계순은 입술을 피나게 깨물고 그자를 쏘아보았다.
그것은 명백히 리계순 자기네 부부를 념두에 둔 악설이였다. 리억만은 자기를 충고해준 김일환에 대해 그리고 자기의 추행들을 잘 알고있는 계순이에 대해 무서운 독을 품고있었다.
(비렬한…)
부르쥔 두주먹이 푸들푸들 떨렸다.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불안의 뭉게구름이 걷잡을새없이 떠올라왔다.
(저게 우리를 복수하려드는구나. 하지만… 설마…)
설마가 아니였다. 리억만은 조아범과 동만특위의 모모한 간부들과 짜고 김일환에게 《민생단》감투를 씌우는데 성공했다.
《김일환은 〈민생단〉이 분명하니 검열을 해봐야겠다. 구국군공작을 계속 시키다가는 그 총을 잡은 사람들을 다 〈민생단〉으로 만들수 있으니 당장 소환해서 탄광에 보내라. 탄부들과 같이 굴속에 들어가 탄을 캐면서 로동자공작을 하게 하라.》
리억만이 《숙반》지도부에서 지껄였다는 말이다. 계순은 기가 막혔다. 고개너머 개인자본가가 운영하는 탄광으로 갈 준비를 하느라 주섬주섬 배낭을 꾸리는 남편을 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리억만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꾸역꾸역 밀려올라왔다. 얼마나 유치하고 비렬하고 야비한 멸시와 모욕인가, 무서운 야심가…
《너무 마음쓰지 마오. 로동자공작도 중요한거요. 로동계급이야말로 혁명의 령도계급이 아니요.》
김일환이 다 꾸린 배낭을 한옆에 놓고 담배를 말아피우며 헌헌하게 말했다.
《우린 공산당원이요. 그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 혁명에 리익을 주는 일을 하면 되는거요. 로동자들을 장군님의 사상과 뜻으로 일깨워주고 묶어세워 령도계급으로서의 자기 구실을 하게 한다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요.》
계순은 갑자기 뜨거운것이 왈칵 치밀어올라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 어떤 시련이 가로막아도 혁명만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이였다. 절해고도에서도 일감을 찾을 남편이였다. 이런분을 그것들은 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편이 푸른 창공을 훨훨 나는 대붕이라면 그것들은 악취풍기는 오물장에서 구불떡거리는 버러지보다도 못한것들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꽉 메우며 밀려들었다.
계순은 자기의 심장도 부쩍 커지는듯 한감을 느꼈다. 커진 심장이 쿵쿵 흉벽을 두드리는듯 했다. 힘든 곳으로 떠나는 남편에게 힘을 줄 대신 오히려 힘을 받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계순은 마음을 다잡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힘들거예요, 탄광일이…》
일환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마오. 탄부들은 한생토록 그런 일을 하오.》
계순이 남편에 대한 긍지와 자부를 더욱 가슴뿌듯이 느낀것은 작업장갑들과 음식들을 싸가지고 탄광에 찾아갔을 때였다.
계순이를 만난 탄부들은 진심어린 어조로 말해주었다.
《일환형님은 우리와 꼭같이 질통을 지고 두더지굴같은 갱안을 무릎걸음으로 기여다니면서 하루종일 탄을 캐면서두 쉴 땐 우리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우쳐주러 다니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고 누워보는적이 없시요.》
《일환동생은 우리가 왜놈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배워주군 하는데 나이는 젊었어두 모두 선생처럼 따른다우.》
《일환동지는 우리에게 장군님뜻대로 사는 법을 깨우쳐준 혁명동지이구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고락을 함께 할줄 아는 진짜배기친구이구 형이구 동생이랍니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래일을 알게 해주었지요, 래일을…》
계순은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개울가에 나가 빨래를 해주고 옷을 기워주기도 하고 돌아오려는데 김일환이 따라나왔다.
《찾아와주어 고맙소. 탄부들이 좋아하더구만. 집에 뭐 없겠는데 어데서 그렇게… 음식까지…》
계순은 방긋이 웃었다.
《그런건 남자들이 몰라도 되는거예요. 그저 앓지만 마세요.》
그들은 굽인돌이까지 함께 걸었다.
《이젠 그만 들어가세요.》
《알겠소. 어머니를 잘 모셔주오. 건강에 특별히 주의하고… 당신은 언제나 자기가 혼자몸이 아니라는걸 잊지 말아야 하오.》
《걱정마세요.》
계순은 길가에 서서 손을 저어주는 남편을 몇번이고 돌아보며 눈시울을 적시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였다.
(기다려주세요. 뭐가 좀 준비되면 인차 또 오겠어요.)
리계순은 총총히 처창즈로 걸음을 다그쳤다. 근거지엔 또 부녀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있는것이다.
김일환이 《숙반》의 호출을 받은것은 그로부터 한달이 지나서였다.
리계순이 남편에 대한 사랑과 정성과 긍지와 자부를 안고 오가던 길을 일환은 근엄한 표정으로 걷고있었다.
(끝내… 그것이 오고야말았구나…)
김일환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함께 일하며 정들었던 로동자들과는 후에 다시 만나자고 웃으면서 헤여졌지만 일환은 이 길이 마지막길로 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찬바람이 우수수 불어왔다. 락엽이 날렸다.
김일환은 성큼성큼 바람을 맞받아 걸었다. 전장으로 나가는듯 한 심정이였다.
집에 들렸다가려고 웃마을쪽으로 가는데 연자방아가 있는 곳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흰 무명수건을 머리에 쓴 안해가 고리버들로 결어만든 키로 쏴 좌르르쏴 좌르르 하며 낟알을 까불리고있었다.
김일환은 그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안해를 쳐다보았다. 자기가 조직부장을 할 때나 현당서기를 할 때나 또 해임되여 구국군공작을 할 때나 탄광에 나가 로동자들과 함께 갱에 들어가 일할 때나 변함없이 낯색 한번 흐리지 않고 오히려 이 남편의 마음속에 그늘이 질세라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충실하게 받들어주고 떠밀어준 고맙고도 미더운 안해…
문득 결혼해서 불과 몇달 되지도 않았을 때 저 안해가 룡정으로 가겠다고 자진해나서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일환의 눈을 지진것은 짧게 자른, 어깨에 닿을가말가한 중발머리였다. 그것이 가슴을 불처럼 달구었었다. 언제 어느 시각에 잘못될지 모르는, 독기어린 눈들이 골목마다에서 지키는 위험천만한 적구로 떠나면서도 생긋 웃으며 《…누가 그러던데 신혼부부도 좀 떨어져 살다가 만나야 더 정이 든대요. 그래야 더 깨가 쏟아지구… 호호호.》하고 어머니를 위안하던 안해… 그 어떤 고난과 시련앞에서도 오늘보다 래일을 내다보며 락천적으로 언제나 웃으면서 자신있게 살아가는 사람, 기지있고 지혜롭고 명랑하고… 저 사람에게는 애당초 우울과 비관과 고민과 같은 어두운 그늘이 비껴들지 못할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내가 죽으면 저 사람은…
갑자기 가슴속에서 격한 그 무엇이 욱 치밀어오른다. 격해질대로 격해진다.
두해전 가을 그처럼 사랑하던 오빠가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듣고 쓰러졌던 일이 떠올랐던것이다.
저런 불같은 사람일수록 그런 비보로 하여 받는 심리적타격은 더욱 큰 법이다. 그걸 참고 이겨내기 위해 남들보다 몇배로 더 모지름을 쓴다. 끝내는 슬픔을 딛고 일떠서지만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남몰래 삼켜야 하는지 여느 사람들은 다는 모를것이다.
일환은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지난봄 어느날 밭을 갈다가 최뚝에 앉아 이제 태여날 새 생명을 두고 밝은 미래를 꿈꾸던 일이 떠오르며 목까지 꽉 메여왔다. 숨이 막혔다.
김일환은 돌덩이같이 땅땅한 그것을 주먹을 부르쥐며 애써 넘겼다.
그렇다, 그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엇을 주저하랴. 무엇을 서슴으랴. 혁명이란 결국은 미래를 위한것이다. 지금껏 혁명에 모든것을 다 바쳐온것처럼 이제 남은 생도 오직 혁명에 리롭게만 바쳐갈것이다. 안해도 그렇게 살것이다.
김일환은 성큼성큼 안해에게로 다가갔다.
안해는 키를 연자방아밑 돌턱에 대고 날랜 솜씨로 으깨여진 수수쌀을 그러담는다. 그리고는 얼른 쪼그리고앉아 또다시 쏴 쫘르르― 하고 키질을 한다. 으깨여진 수수알들이 허공중에 떴다가 떨어져내리며 껍데기와 북데기, 먼지들을 불어버린다.
《여보!》
일환은 가까이 다가서며 나직이 불렀다. 수수쌀을 까불리던 계순이 얼핏 돌아보더니 방싯 웃었다. 눈언저리부터 웃는 정겨운 그 모습…
《아이, 당신이군요. 언제 오셨어요?》
《방금 오는 길이요.》
《그런걸 난 또… 이 수수로 뭘 좀 만들어가지고 당신을 찾아가려댔어요.》
《당신두 참… 어머님은 무고하시오?》
《예, 이 수수도 어머님이 얻어오셨어요. 저 덕산오빠네랑 영순오빠네랑… 그 집들에서 보태주었어요.》
김일환은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도 여기 근거지 식량형편이 지금 얼마나 어려워졌는가 하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랑촌, 왕우구, 삼도만의 주민들 수천명이 이 좁은 처창즈골안에 모여들다보니 지금이 마가을인데도 벌써부터 송기를 벗기는 집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저 고동하로 흘러가는 내물은 송기를 어찌나 우려내였는지 피빛처럼 벌거우리하다. 무서운 기아를 예감하면서도 고마운 사람들은 이렇게 한줌두줌 수수쌀을 모아준다. 일환은 그것이 저 임신을 한 안해를 위한것임을 알고있다. 그러나 안해는 그것으로 이 남편을 위해 음식들을 만들어오군 하는것이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눈물나게 고마운 안해였다.
일환은 쩡―하니 코안이 매워오고 눈부리가 시큰해져서 갈린 어조로 말했다.
《자, 어서 집에 올라갑시다. 내 급히 할말이 있어서 그러오.》
계순은 남편의 어조와 낯빛에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윽히 남편을 올려다보다가 다 까불린 수수쌀을 자루에 넣었다. 한되가 좀 넘을가한 량이였다.
계순은 그 자루를 키에 담아 옆구리에 끼였다. 남편과 나란히 걷다가 조심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숙반〉지도부의 호출을 받았소.》
일환은 범상한듯 한 어조로 말했지만 계순은 벼락이라도 친듯 와뜰 놀라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뭐… 뭐라구요? 〈숙…숙반〉의?…》
너무도 끔찍한 말이여서 떠듬떠듬하다가 종내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조차 못한다.
《그렇소. 〈숙반〉의 호출이요.》
계순은 경악한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푸들푸들 떨면서 더 말을 못한다.
《자, 어서 갑시다.》
일환은 흔연히 안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계순은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다 새여버린듯 맥없이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숙반》의 호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는 계순이였다. 계순의 옆구리에서 수수쌀자루를 담은 키가 저절로 떨어졌다.
계순은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자기도 모르게 흐으흑 소리내며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점점 세차게 떨고있는 안해의 어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일환이 나무라듯 독촉했다.
《남들이 보겠소. 어서 갑시다.》
김일환은 안해를 데리고 집에 올라오자 어머니도 앉은 자리에서 조용한 어조로 안해에게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오. 내가 일본놈의 주구단체인 〈민생단〉과 관련이 없다는건 세상이 다 알것이요. 하지만 난 이제 가면 살아나지 못할것이요. 그러나 나는 떳떳이 가겠소. 그것은 내가 혁명가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다가 이곳에서 〈민생단〉으로 몰려 죽는것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생각하기때문이요. 만약 내가 살기를 원하여 적에게 투항하여 변절한다면 혁명에 더 큰 손실을 줄게 아니겠소. 이렇게 되면 혁명을 배반한 나의 죄악은 천추만대에 씻을수 없게 될것이요.
마지막으로 내가 부탁할것은 온 가족이 우리 나라가 해방되고 독립되는 날까지 변치 말고 잘 싸워달라는 그것뿐이요.》
김일환은 그길로 《숙반》지도부로 갔다.
리억만이네들은 김일환을 《민생단》감옥에 가두고 별의별 고문을 다 들이댔다. 김일환은 그것들이 내드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까밝히며 맞서싸웠다. 뒤가 켕기우자 그것들은 《민생단》이라고 자백하라는 그 한마디만 뇌까리며 리성을 잃고 발광했다. 자기의 추행을 다 알고 추궁까지 한데 대한 무자비한 복수였다. 그렇게 실컷 독이 요동치는대로 분풀이를 하고는 재판장에 끌어냈다.
김일환에 대한 재판소식은 그가 가서 공작을 하던 이웃마을의 손장산 반일부대에도 알려졌다. 그곳에는 김일환이 대신 박덕산이가 가서 공작하고있었다.
《그 형님같은분이, 그 선생같은분이 〈민생단〉이라니 도대체 웬말인가.》
덕산은 물론 반일부대 대원들까지 재판장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뭐라고 재판하는가 보자며 든든히 틀고앉았다.
아닌게아니라 리억만의 악의에 찬 론고는 온통 허위와 날조로 차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침방울이 마구 튀여나왔다.
《이자는 반동치고도 아주 지독한 반동이다. 오래동안 심문했으나 한마디도 불지 않았다. 속에 구렝이가 있는지 독사가 있는지 알수가 없다. 이런 놈들을 그냥 살려두면 우리 혁명이 10년안팎에 넝마쪼각처럼 거덜날수 있다. 살려야겠는가 죽여야겠는가?》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입은 옷이 성한 곳이란 하나도 없이 된 김일환의 모습을 억이 막혀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아니, 저런 사람들까지 죽이면 혁명은 어떻게 한다는거요?》 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밤바다처럼 움씰움씰 설레인다, 분화구를 찾지 못해 끓어번지며 소용도는 용암처럼…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듯 리억만이 서둘러 종이장 같은것을 펼쳐들고 뇌까렸다.
《이런 〈민생단〉우두머리는 절대로 살려둘수 없다. 판결문을 읽겠다. 에, 〈숙반공작위원회〉는 〈민생단〉우두머리 김일환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순간 쩡― 하고 장내를 얼구는 정적… 정적…
계순은 억이 막혔다. 눈앞에서 별찌같은것이 막 떠다녔다. 사형이라니… 저것들이 끝내 저이를… 심장이 통채로 떨어져내리는듯 해서 계순은 가슴을 주먹으로 꽉 눌러대며 리억만을 쏘아보았다. 저자는 왜 아까운 사람들을 마구 잡아죽이는가, 정말 《민생단》이라고 믿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직위욕, 권세욕때문인가? 이것은 분명 왜놈들의 간계이다, 저 리억만이가 왜놈들과 내통하는건 아닐가? 왜놈들은 무력으로는 혁명을 말살할수 없으니 이런 악랄한 간계를 꾸미고있는것이 분명하다, 교활하고 악착한 왜놈들이 무슨짓인들 꾸며내지 못하겠는가, 천추에 용서 못할 오랑캐놈들…
왜놈들의 간계에 놀아나는 저 우둔하고 무지막지한 리억만이네들은 또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사랑하는 남편을 죽이려드는 왜놈들과 리억만이네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갑자기 남편이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순은 놀란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두팔을 묶이운 남편은 리억만이네는 상대도 안된다는듯 고개를 돌리고 웃고있는것이다.
《여러분, 겨울이 아무리 사납다 해도 봄이 오는것은 막지 못하는 법입니다. 력사는 반드시 흑백을 갈라줄것입니다. 오늘의 이 현실에 신심을 잃지 말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래일을 내다보며 억세게 싸워주십시오.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조선은 반드시 독립됩니다.》
쿵쿵쿵 남편의 말은 계순의 흉벽을 북처럼 두드렸다. 그것은 남편이 바로 계순이 자기에게 하는 말이였다.
리억만이 게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야, 빨리 사형판결… 집행하라, 총살하라!》
《그래선 안되오.》, 《안되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리계순은 놀랐다. 《악질 민생단》을 비호했다간 자기들도 《민생단》으로 몰린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불의를 참지 못해 일떠서는 사람들… 눈물이 쑥 나왔다. 재판장한가운데 틀고앉았던 반일부대 대원들도 일어났다. 키가 억대우같은 한 대원은 앞으로 씨엉씨엉 걸어나가더니 총구를 리억만의 턱밑에 들이댔다.
《야, 네놈은 뭐야. 네가 진짜〈민생단〉이 아니야? 김일환선생을 왜 죽이려 하는가. 그분은 우리의 선생이고 은인이다. 내가 앓아죽게 되였을 때 전염병이라고 다들 가까이 오기 꺼려했지만 저분만이 약을 가져다 치료해주었다. 사흘밤을 내 머리맡에서 꼬박 밝히면서 나를 살려주었어. 내가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은가고 하니 저분은 내 손을 꼭 잡고 그저 건강해서 왜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낼 때까지 유격대와 함께 싸우는것이 보답하는거라고 했다. 저런 혁명가가 〈민생단〉이라면 도대체 〈민생단〉이 아닌 사람이 누구인가. 김일환선생은 우리가 보증한다. 총살형을 취소하지 않으면 네놈부터 가만두지 않을테다.》
《옳소. 그놈이 진짜〈민생단〉이요. 왜놈의 개요.》
《김일환형님을 손가락 하나라도 다쳐만 봐라. 네놈들을 몽땅 요정낼테다.》
계순은 눈앞이 뿌예지고 목이 자꾸 메여올랐다.
한 반일부대 대원은 절컥 장탄까지 한 총을 앞으로 내뻗쳤다. 리억만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어느 놈이냐. 네가 〈민생단〉이야? 당장 나서라. 개처럼 쏴죽일테다.》
《아… 아, 이러지들 마시오. 취소요, 사형은 취소요.》
리억만은 두손을 내저으며 제발 자중해달라고 애원했다.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뒤걸음질쳤다.
김일환은 구원되였다. 마을사람들과 반일부대 대원들은 김일환을 옹위하여 집에까지 데려다주었다.
리계순은 사람들에게 목메여 말했다.
《정말 고마와요.》
반일부대 대원들과 함께 왔던 박덕산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건 우리한테 할 말이 아니요. 일환동지가 평시에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했기때문이요. 친혈육처럼 돌봐주고 깨우쳐주고… 반일부대에도 일환동지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오.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고… 일환동지를 잘 치료해주오. 그것들이 다시는 〈재판〉놀음을 벌리지 못할게요.》
그들이 돌아가자 계순은 시어머니와 함께 상처를 씻어낼 물을 덥힌다, 어혈에 좋다는 약을 구해온다 하며 뛰여다녔다. 더운물에 소금을 풀어 상처부위를 깨끗이 씻어내고는 유격구병원에서 얻어온 고려약을 붙였다.
남편은 그렇게 험한 상처를 다루는데도 신음소리 한번 없었다. 벽에 기대앉아 눈을 감은채 얼굴 한번 찡그리지도 않는다. 꼭 잠에 든것 같다.
계순은 피범벅이 되고 너덜너덜 찢겨진 남편의 옷을 빨아 아궁의 불에 말리웠다. 가슴이 무딘칼로 허벼내는듯 쓰리고 아파 아궁앞에서 소리없이 울었다. 옷이 마르자 방안에 올라가 단추 두개와 바느실을 가지고 내려왔다. 자꾸만 눈물이 나와 방안이 아니라 남편이 보지 못하는 아궁앞에서 단추를 달고 옷을 기우려는것이였다. 찢겨진 옷을 한뜸두뜸 깁노라니 이 자리로 남편의 그 귀중한 몸에 매가 날아들었으리라 생각되면서 손이 떨렸다. 또다시 눈이 쓰려왔다. 손등으로 눈굽을 훔치는데 밖에서 찾는 소리가 났다.
《누구예요?》
옷을 다 깁고 단추를 달던 계순은 의아해서 부엌문을 열었다. 순간 계순은 몸을 흠칫했다. 문밖에는 키가 작달막하고 턱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텁석부리사나이가 서있었다. 《숙반》에 다니는자였다.
《어떻게… 왔어요?》
계순의 목소리가 맵짜졌다.
그자는 잠시 쭈밋거리다가 어물어물 말했다.
《〈숙반〉에서 찾수다. 재판은 잘못되였다고 했수다. 그래서 문건을 다시 정리하다가 급히 확인해야 할것이 있어서… 제꺽 왔다가라고 하우다. 잠간이면 된다면서… 지금 사람들이 기다리고있수다.》
계순은 가슴이 서늘해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자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방금 잠드셨는데… 래일 아침에 가면 안되겠어요? 옷도 이렇게 한창 깁던중인데…》
그자는 대뜸 큰일이나 난듯 눈을 뜨부럭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우? 〈숙반〉에서 지시하는 일인데…》
지금은 《숙반》지도부가 근거지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있었다.
지도부의 말은 곧 《법》이였다. 금방 잠에 들었던듯싶던 남편이 《음―》 하고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무슨 일이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저 좀…》
계순이 서둘러 말을 얼버무리며 텁석부리를 밖으로 떠밀려는데 그자가 먼저 말했다.
《〈숙반〉에서 잠간 왔다가라우다. 제꺽 확인할것이 있다면서…》
《〈숙반〉?》
남편은 그자를 쳐다보며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움쩍 몸을 일으켰다.
《갑시다.》
계순은 그 순간 번개같이 뇌리를 치는 한 생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자들이 혹시?…
남편이 아직 문가에 서있는 계순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옷을 주오.》
계순은 또다시 몸을 떨며 옷을 꽉 그러안았다.
《안돼요. 가선 안돼요. 못 가요.》
웃목에 쪼그리고 누웠던 오옥경이 벌떡 일어나앉으며 두손으로 머리를 비다듬어 넘겼다.
《못 간다. 정 그렇다면 내가 갔다오마.》
《숙반》에서 온 텁석부리가 퉁방울눈을 또다시 뜨부럭거렸다.
《이거 왜들 이러시우? 급히 확인할게 있다는데… 〈숙반〉지도부사업을 방해하려는거요?》
《동문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김일환은 무엇인가 더 지껄이려는 텁석부리의 말을 엄하게 막고는 어머니에게 돌아섰다.
《어머니, 내가 이제 안 가면 그들이 또 별의별 보자기를 다 씌울겁니다. 〈숙반〉의 일을 방해한다느니 도망을 치려 한다느니 하고 말입니다. 난 그런 말을 듣고싶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흠이라도 잡히고싶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욕하실줄 알지만… 난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내 한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비정상적인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싸워야 할 사람입니다. 이제 장군님께서 원정에서 돌아오시여 여기 실태를 아시게 되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습니까. 제가 살아있는 한 막을수 있는껏 막아야 합니다.》
남편은 이러며 계순에게 옷을 빨리 달라고 손짓을 했다. 계순은 더는 남편의 걸음을 막을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하지만…
계순은 옷을 꼭 가슴에 그러안은채 애원하듯 말했다.
《여보, 그럼 잠간만이라도… 단추라도 마저 달게… 조금만 더 앉아계셔요, 예? 한개만 더 달면 되는데…》
《됐소. 그냥 주오. 갔다와서 마저 답시다. 그들이 기다린다는데 공연히 시간을 끌 필요가 있겠소. 사람은 존엄이 있어 사람이라 하는거요. 제꺽 갔다오겠소.》
계순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방안으로 올라가 옷입는것을 도와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함께 가겠어요.》
일환은 옷을 다 입자 빙긋 웃으며 안해의 어깨를 눌러앉혔다.
《당신은 밤길을 걸어선 안되오. 자기 몸을 생각해야지. 나야 운동선수가 아니요. 한때는 소문을 내면서 운동장이 좁다하게 뛰여다닌 축구선수였단 말이요. 공격수! 알겠소? 허허허… 걱정하지 마오. 어머니,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일환은 껄껄 웃으며 문밖으로 나서다가 얼핏 계순을 돌아보았다. 계순은 얼른 그를 따라나갔다.
일환은 또다시 계순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불같이 뜨거운 어조로 속삭였다.
《여보,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신심을 잃지 말고 잘 싸워주오. 이제 장군님만 원정에서 돌아오시면… 다 잘될거요. 내 늘 말하지만 장군님만 계시면 우린 꼭 승리하오. 내 문제두 풀리구… 조국두 해방되구… 그건 진리요. 우리에겐 그런 밝은 래일이 있소. 래일을 믿구 살아갑시다. 그러면 힘이 생기는 법이요.》
계순은 그 말이 유언처럼 들려와 가슴이 섬찍했다. 자기도 모르게 와락 남편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여보, 돌아오지 못하다니요. 안돼요. 절대로 그래선 안돼요. 당신은 꼭 돌아와야 해요.》
저앞에서 텁석부리가 우뚝 서서 기다리다가 《헝.》하고 기침을 한번 하고는 돌아서서 스적스적 걸어갔다. 그를 피끗 바라본 김일환은 안해의 어깨를 다정히 도닥였다.
《돌아오오, 돌아오지 않구. 내가 어떻게 당신과 헤여질수 있겠소. 난 그저 천번중 단 한번이라도 그런 일이 생길가봐 이야기하는거요. 어떤 일이 있어두 변치 말라구 해서… 마음놓구 기다리오. 인차 갔다온다니까.》
계순은 눈물이 핑 돌았다.
《꼭… 꼭 와야 해요.》
《걱정말구 기다리라니까. 어머니가 기다리겠소. 어서…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오.… 늦어질수도 있으니 먼저 주무시라고 하오.》
일환은 안해를 집안으로 떠밀어 들여보내고 문까지 닫아주고서야 마당에 내려섰다.
계순이가 어머니에게 먼저 주무시라고 자리를 보아드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남편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계순은 남편이 간 《숙반》지도부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길한 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바줄처럼 마음의 허리를 휘감고 점점 죄여든다. 남편의 그 성미에 그자들과 맞서싸우다가 혹시… 장군님께서 여기 일을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고 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 이 비정상적인 일을 막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서 《숙반》지도부로 간 남편이다. 그래서 위험한줄 알면서도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자나깨나 장군님만을 생각하는 남편… 죽어도 장군님을 받들다 죽겠다는 남편…
그런 남편을 두었다는 긍지와 함께 불안은 더욱 커진다.
차거운 마가을 밤바람이 우수수 불어왔다. 머리우에서 찬이슬을 머금은 황철나무잎사귀가 팔랑거리며 떨어져내려 어깨우에 올라앉았다. 남편이 다독여주던 그 어깨였다.
계순은 그 락엽을 생각없이 쓸어 떨어뜨리며 호― 하고 한숨을 내그었다. 또다시 찬바람이 불어왔다.
《새아가야, 추운데 이젠 그만 들어오려무나. 그러다 감기들면 어쩔려구 그러니.》
방문을 열며 시어머니가 근심스레 하는 말이였다. 며느리의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누구보다도 걱정이 많은 시어머니였다. 남편과 둘째아들을 왜놈들의 《토벌》에 잃고 맏아들마저 현당조직부장이요 현당서기요 하며 집을 나가살다싶이 하여 늘 사람을 그리워하던 오옥경은 며느리를 끔찍이도 귀애하였다. 머지않아 두벌자식을 안아볼 기쁨을 남모르게 체험해보고있는 그로서는 며느리의 건강에 더더욱 큰 관심을 돌리고있었다.
《예, 이제 곧 들어가겠어요.》
계순은 그러며 남편이 간쪽을 한번 더 바라보고서야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들이 왜 그이를 불렀을가? 무엇을 더 확인해보자는것일가?)
시어머니의 옆에 쪼그리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잠이 든듯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고르롭지 않은 숨결소리로 보아 잠들지 못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하긴 잠에 들리가 없다. 아들이 《숙반》지도부에 갔는데 마음이 편할수가 없는것이다.
계순은 시어머니가 듣지 못하게 또 한숨을 내그었다. 자꾸만 속이 떨리고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문밖에서는 바람소리가 솨―솨― 들려왔다. 이밤따라 별로 바람이 갈개는것 같다. 마당밖의 황철나무가 몸부림을 치는듯 한 뒤설레이는 소리가 났다.
문득 저 멀리서 발자국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여럿의 발자국소리였다.
계순은 금시 심장이 멎는듯 했다. 자기도 모르게 가슴우에 두주먹을 꼭 눌러대며 숨을 들이그었다.
(혹시 그이가?…)
계순은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오자 더 참지 못하고 일어나앉았다. 고콜불을 다시 켰다. 발자국소리가 마당안에 들어섰다. 계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오세요?》
대답대신 누구인가 문을 왈칵 잡아당겼다. 고콜불이 꺼질듯 뒤로 누웠다.
《여기 김일환이 오지 않았어?》
그자는 뜻밖에도 리억만이였다. 그의 뒤에는 바로 아까 왔던 텁석부리가 서서 퉁방울눈을 이리저리 굴리고있었다.
리계순은 놀라서 떨리는 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 주인이야 당신들이 데려가지 않았어요?》
《데려갔다구? 그자는 우리 〈숙반〉지도부로 오다가 도망쳤단 말이요. 우리가 급히 확인할것이 있어서 불렀는데 오는 도중에 무엇이 께름한지 도망을 쳤어!》
《뭐라구요?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그건 사실이야. 이 사람보고 물어보라.》
리억만이 게거품을 물고 소리치다가 뒤에 선 텁석부리를 가리켰다.
계순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처음엔 제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심장이 화들화들 떨리는게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다.
《아니예요. 그럴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럴수가 없어요.》
리억만이 발을 구르며 기염을 토했다.
《허튼소리말어. 뭐, 〈민생단〉이 저 죽을줄 모르구 순순히 찾아오겠어? 당장 빵크날것 같으니 도망쳤단 말이다. 순순히 내놓아. 남편이 어디로 갔어, 엉? 로친! 아들이 어디로 갔나 말이야.》
어느새 일어나앉았던 오옥경이가 무엇인가 짐작한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옳다, 너희들이 그랬댔구나. 저희들이 잡아가구 뭐 우리보구 내놓으라구? 그래, 내놓아라. 내 아들을 어쨌느냐, 응? 내 아들을 내놓아.》
계순이도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고 텁석부리앞으로 다가섰다.
《당신이 우리 남편을 데려가지 않았어요? 똑똑히 말해요. 우리 남편을 어떻게 했어요, 예?》
텁석부리가 황황히 손을 내저으며 뒤걸음질을 쳤다.
《아… 아, 난 모르오. 난 앞에서 가댔으니까… 한참 가다가 따라오는것 같지 않아 돌아보니 없어졌드란 말이요.》
계순은 억이 막혀 따지고들었다.
《거짓말말아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우리 남편이 어떻게 도망을 칠수가 있어요? 똑똑히 말하세요. 우리 주인을 어떻게 했어요?》
《아, 아, 그건 사실이요. 난 정말 모르오.》
뒤걸음치던 그자가 발을 헛짚고 토방에서 뒤로 벌렁 넘어졌다.
리억만이 《아이쿠.》하고 비명을 지르는 텁석부리를 흘깃 돌아보더니더 승이 나서 삿대질을 했다.
《너희들이 진짜 몽땅 〈민생단〉이구나. 좋다. 어디 두고보자. 김일환이를 내놓지 않으면 너희들도 다 〈민생단〉감옥에 끌어갈테다.》
오옥경이가 리억만에게 다가들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했다.
《좋다. 다 잡아가라. 내 아들이 가있는 곳에 이 어머니가 가는게 천만번 옳지. 가자, 어서 가자. 내 아들을 어쨌는지 난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이 로친이? 좋다, 어디 두고보자!》
리억만은 어쩔수 없는듯 뒤걸음치다가 휙 돌아서서 황황히 달아났다.
그것들이 가버리자 둘은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침묵… 침묵… 꼭 꿈을 꾸고난 사람들같았다.
《새아가야… 우리 집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되였다는거냐, 응?》
오옥경이 떨리는 어조로 기연가미연가해서 조심스레 묻는 말이다.
계순은 그 누구인가 돌덩이로 가슴을 쥐여박는듯 한 충격에 몸을 흠칫했다. 그제야 남편이 잘못되였을수 있다는 현실적감각이 든것이다. 무딘쇠붙이로 가슴을 훑어내리는것 같이 뻐근해왔다.
계순은 대답을 못하고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목놓아 불렀다.
《여보!》
남편이 어둠속 어딘가에 쓰러져있는것만 같았다.
《민생단》감옥에서 받은 고문상처자리에 그 어떤 치명적인것이 숨겨있는것을 모르고있은것은 아닌지… 마음이 급했다. 한걸음이라도 늦으면 그만큼 위험할것 같았다. 결코 도망을 칠 남편이 아니였다. 분명 고문받은 상처가 독을 써서 쓰러져있을것이다.
앞산에는 하현달이 허리를 꼬부리고 푸릿한 얼굴로 대지를 굽어보고있다.
계순은 《숙반》지도부가 있는 아래마을까지 정신없이 뛰여갔다. 그러나 남편이 《숙반》지도부에는 아직도 가지 못한것 같다. 계순은 길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푸릿한 달빛속을 헤매이였다. 경황이 없었다. 오직 한시바삐 남편을 찾아야 한다는 그 생각뿐이였다.
남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없이 온 마을을 다 찾아다니였다. 오솔길, 숲속… 개울가… 나중엔 고동하기슭까지 다 훑었다.
처음엔 남편이 분명 어디에 쓰러져있을거라는, 절대로 도망쳤을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찾기만 하면 남편을 업고가서라도 《숙반》지도부의 그 억측을 뒤집어엎으리라 마음다졌었다. 그러나 남편이 현실적으로 근거지에 없다는것이 확인되자 더럭 겁이 났다.
혹시 저것들이 우리 남편을?
계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완강하게 도리머리를 했다.
아니, 아니야. 설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그럼 그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도망을 쳤는가 하고 생각하는것자체가 그이에 대한 모욕으로 될것이다.
그렇다면…
계순은 안타까이 남편을 찾아다녔다. 그날도 또 다음날도…
여보, 당신은 정녕 지금 어디에 가있어요, 예? 한마디라도 해주세요, 예? 여보…
《후에 다 탄로가 났지만 그 리억만이네 패들은 그날 임자 아버지를 불러놓고는…》
김명화는 분격을 참을수가 없어 주먹을 가슴에 꽉 대고있다가 한참 만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숙반〉지도부로 가는 길목에 숨어있다가 철퇴로 임자 아버지를 글쎄… 아, 세상 어디에 그렇게 비렬하구 악한 놈들이 또 있겠나. 그놈들은 아버지시체를 끌어다 고동하 깊은 물에 던져넣고는… 그렇게… 도망을 쳤다고 소동을 일으켰던거네. 제놈들의 죄행도 가리우구… 그리구 임자 어머니네까지 〈민생단〉으로 몰자는거지.
다음날부터 그것들은 정말 임자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민생단〉으로 몰아댔다네. 정선화두 도망치게 하구 임자 아버지두 도망치게 하구… 그러니 〈민생단〉이라는거지. 이 얼마나 억이 막히구 분통이 터지는 일인가. 정말 지금 생각만 해두… 원통한 일이야.
그때 임자네 가정은 물론이구 임자네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민생단〉으로 몰렸네. 〈민생단〉을 구원하자구 반일부대 대원들까지 데리고와서 그를 빼내서는 도망을 치게 했다구… 김일동지네 가족두 〈민생단〉으로 몰렸구 화룡의 덕신사 금곡촌에서 함께 살았다고 해서 박영순동지네두 〈민생단〉에 몰리구… 정말 터무니가 없었지.… 그때 반〈민생단〉투쟁이란게 그런거였어. 그런데 임자네 그 불행의 시초가 바로 그 정선화라는 녀자가 도망간것으로부터 시작된거나 같다구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란 말일세. 아니야. 그래서만은 아니야. 그 녀자일이 아니라 해두 원칙이 강하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임자 아버지나 어머니를 언제나 두려워하던자들이니 무슨 다른 트집을 잡아서라도 〈민생단〉으로 몰았을게야.
근거지사람들은 임자 아버지를 학살한 〈숙반〉지도부를 한결같이 저주하고 증오했어. 임자 어머니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정하구.
그때 임자 어머니는 만삭이 된 몸이였댔네. 바로 임자를 임신했댔어.
하지만 유격근거지에 기근이 들었을 때라 임자가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을 제대로 섭취할수가 없었네. 그런데다 그런 불행까지 당했으니… 사람이 어떻게 견디여내겠나. 몸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데다가 그런 가슴터지는 일까지 당했으니… 끝내 쓰러지고말았지.
사람들이 모두 걱정했네.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할가봐서 말이네.… 하지만 임자 어머닌 일어났어. 얼마나 울었는지… 다음다음날 부녀부에 나타난걸 보구는 모두 눈물을 삼켰다네. 이틀사이에 얼마나 얼굴이 못쓰게 되였는지… 아예 반쪽이 되였더라는거야. 후에 임자 어머니가 말하더군.… 임자때문에 더더욱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고…
그날부터 임자 어머니는 제 걱정이 아니라 배고파서 운신조차 못하는 근거지사람들을 걱정하면서 매일같이 산에 올라가 송기를 벗기고 눈속을 헤치고 도토리알을 줏구… 어떻게 하나 혁명에 보탬을 주려 했구 남편이 혁명앞에서 한점 부끄러움도 없는 결백하고 량심적인 인간이였다는것을 증명해보이려고 했어. 사람들이 그러다 쓰러진다면서 그렇게도 만류했지만 만삭이 된 몸으로 아글타글 뛰여다녔어.
그러다 임자를 낳았는데… 글쎄 젖을 제대로 낼게 뭔가. 몸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졌는데…
임자는 배고프다고 늘 애처롭게 울어대지, 여윌대로 여윈 임자 어미는 젖이 나오질 않아 임자를 붙안고 안타까와 울지… 다들…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다들 울었어. 다… 아… 이거 눈에 뭐가 들어간것 같구만.》
김명화는 갑자기 목메인 소리를 하더니 얼른 옷고름을 눈가에 가져다댔다. 옷고름을 눈에 꼭 눌러댄채 울음을 참는듯 했으나 더는 어쩔수 없는듯 몸을 돌리더니 흑― 흐윽― 하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흠칫흠칫 떨었다. 한참이나 눈물을 들이마시며 진정을 못했다.
정옥이도 목이 꽉 메여올랐으나 애써 누르며 김명화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너무 그러시면… 건강이…》
《음― 진정해야지, 진정해야 하구말구.》
물먹은 소리를 하며 눈물을 훔쳐내던 김명화가 갑자기 또다시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으흥―으흥― 소리를 삼키며 어깨를 세차게 떨었다. 토막토막 이런 울음섞인 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런데두 글쎄… 그런 사람을… 〈민생단〉이라구… 그 못된것들이 글쎄… 그렇게 마음고운 사람을…》
정옥이도 더는 참아낼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았다.
김명화는 한참만에야 마음을 진정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젖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 왜놈 〈토벌대〉놈들이 매일같이 기여들었는데… 임자 어머닌 배고파 우는 임자를 업구… 전호가로 뛰여다니면서… 총도 쏘구… 돌도 굴리구… 먹을것도 쥐여주구… 노래도 불러주구… 세상에 임자 어머니같은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나.》
…하루는 김명화가 일하는 작식대로 바구니를 든 리계순이 찾아왔다.
《언니… 나물을 좀 뜯어왔어요.》
개울가에서 양재물에 우린 송기를 돌판우에 놓고 빨래방치로 두들겨대던 명화는 의아해서 계순을 쳐다보았다.
계순은 방긋 웃으며 옆에 끼고있던 바구니를 내보였다. 거기엔 정말 실오리같은 달래며 참쑥, 메쑥, 무수해 같은 산나물들과 이름모를 풀들이 골숨히 차있었다. 그야말로 파릇파릇 돋기 시작한 햇풀들이였다.
김명화는 환성을 올렸다.
《어마, 이 나물이 어디서 났어요. 벌써 이렇게 돋았어요?》
《예. 양지쪽엔 벌써 이렇게… 그래서 우리 부녀회원들이 유격대원들에게 주자구 뜯어모은거예요.》
김명화는 더운것이 울컥 치미는것을 느끼며 감심한 눈길로 계순을 쳐다보았다.
《이거 번번이 부녀회원들 신세를 지는군요. 부녀회원들도 정말 먹을게 없어 큰 고생을 한다는데…》
계순은 무슨 말을 하느냐는듯 눈을 곱게 흘겼다.
《고생은 무슨 고생이겠어요. 근거지에서야 다 같지요. 진짜고생이야 왜놈들과 직접 총을 내대고 싸우는 유격대원동무들과 그들을 돌봐주는 작식대언니들이지요. 우리야 유격대동무들이 근거지를 지켜주니 마음이라도 편하잖아요. 우린 일없어요. 이겨낼수 있으니 유격대동무들이나 잘 대접해주세요.》
김명화는 연하고 야들야들한 산나물들을 만져보며 목메인 소리를 했다.
《어쩜 마음들이 이렇게도 비단같을가. 내가 뭐 근거지사정을 모르는줄 알아요? 녀인들은 더하지요. 자기네들은 굶으면서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죽 한숟가락이라도 더 놓아주려고 애쓰는게 녀인들이 아닌가요. 그런데도 자신들은 생각지도 않고 이렇게 여기부터 가져오니…》
《아이참, 유격대가 든든해야 근거지가 튼튼하구 근거지가 튼튼해야 우리 녀인들도 마음놓고 살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우리 걱정은 말아요. 더구나 이젠 햇풀이 돋기 시작했으니 마음이 놓여요.》
계순은 이러며 또다시 방싯 웃었다.
김명화는 바구니를 쥔채 부황기가 도는 계순의 얼굴을 짜릿한 아픔을 안고 쳐다보다가 등에 업은 애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애기는 머리를 엄마의 잔등에 박은채 자고있었다. 배고파 울다가 지쳐버린듯 했다.
《애기가 잠들었군요.》
김명화는 포단을 들치고 이윽토록 까칠한 애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눈굽이 짜릿해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젖이 적다는 말을 들었는데…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뭐니뭐니해도 산모가 영양이 좋아야겠는데… 오히려 뭐가 생기면 남들부터 생각한다니…》
《아이참, 나야 부녀부장이 아닌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부녀부장네 집이라고 다들 도와줘서 우린 일없어요.》
계순은 이러며 옆에 놓인 소랭이에 산나물을 쏟아놓았다.
《얼마 되진 않지만 국에 넣어 맛이라도 보게 보태쓰세요.》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가만… 요거 한줌이라도 넣고 가세요.》
명화가 나물을 한줌 집어 바구니에 넣어주려 하자 계순은 한사코 만류하며 도리머리를 했다.
명화는 난처해서 한숨을 내쉬였다.
《정말 인사가 안됐어요. 우리가 오히려 산모를 도와야 할텐데… 우리에겐 이 송기밖에 없으니…》
《아이참, 무슨 말을 해요. 그럼 난 가겠어요.》
계순은 이러며 돌아섰다. 코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권리를 박탈한 자본사회에
청춘의 붉은 꽃 못 피운 원한
아느냐 그대여 녀성동무들
명화는 물끄러미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애기를 업고 바구니를 옆에 낀채 개울길을 따라 내려가는 중발머리 그의 모습을 보느라니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계순은 방금전에 자기가 부녀부장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하였지만 그것이 바로 명화 자기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지금 남을 도울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계순은 남을 도와주면 주었지 도움을 받고있을 사람은 더구나 아니였다. 설사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계순이가 지금 《민생단》혐의를 받고있어 마음놓고 도와줄 형편도 못된다. 자칫하면 자기들도 《민생단》에 몰릴수 있기때문이였다.
계순이 《민생단》혐의를 받으면서도 부녀부장을 계속하고있는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들리는 말에는 리억만이 당장 리계순을 《민생단》으로 몰아 죽이고싶지만 자기의 상급인 화룡현당 서기 조아범이때문에 그러지 못하고있다고도 했다. 조아범이 길림사범학교 다닐 때 리계순의 오빠 리지춘이와 함께 공청소조를 조직했는데 지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것이다. 그 리지춘이가 왜놈들에게 어떻게 희생되였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조아범으로서는 리계순이를 차마 《민생단》으로 몰아죽일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쉬쉬 들려오는 말에는 조아범이가 직위욕때문에 즉 자기가 현당서기를 하려면 김일환이를 제거해야 하기때문에 그를 모해하였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려고 계순이가 《민생단》혐의를 받고있지만 계속 부녀부장을 시키고있는지도 모른다는것이다. 아무리 야심가라 해도 자기의 《적수》가 없어진 이상에는 오히려 자기를 위장하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하는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명화는 산모의 일이 걱정스러웠다.
어느날 김명화는 유격대원들이 가져온 전리품속에 미역이 조금 있는것을 보고 군수관에게 말하여 그것을 두묶음 달래였다. 미역을 보자기에 싸쥔 명화는 저녁식사를 보장한 후 서둘러 계순이네 집으로 향했다.
계순이네 집에서는 시어머니 오옥경이가 혼자 부뚜막에 걸터앉아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어머니, 산모에게 주라고 미역을 좀 가져왔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예요. 계순동무는 어디 갔어요?》
오옥경은 눈물을 훔치며 푸념하듯 말했다.
《애 어민 저 정금이 엄마네 집에 갔다네. 어히유, 작식대아지미 마음은 고맙네만 애 어미가 그 미역을 먹기나 하겠는지 모르겠네.》
명화는 미역을 바가지에 담다가 놀란 눈길로 오옥경을 쳐다보았다.
《산모가 미역을 먹지 않다니요?》
오옥경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애 어민 방금전에두 저 먹으라고 이 할미가 얻어온걸 다 들고나갔다네. 며칠밤을 애 어미가 자지 못했네. 애기는 젖이 작다구 배고파서 울구 애 어민 그게 속상해서 울구… 보다보다못해 내가 뭘 좀 얻어왔는데 글쎄 그걸 몽땅… 임자가 좀 말해주라구. 그러단 애기두 애 엄마두 다 죽고말거네, 응?》
오옥경은 안타까와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다 가져가구 밑창에 조금 남은 국물을 겨우 애기에게만 먹이고말았네. 이 할미가 가져온게 겨우 애기배 한번 채워보았어. 어허이구…》
명화는 가슴이 쩡해오는것을 느꼈다.
《알겠어요. 내 말하겠으니 이 미역이라도 꼭 쓰게 하세요.》
명화는 이렇게 약속하고 집을 나섰다.
정금이 엄마네 집에 가서 꼭 계순이를 만나고 가야겠다고 생각한것이다. 이제 만나지 않고가면 오늘 밤에 집에 돌아와보고 그 미역을 당장 또 다른 집으로 들고갈것 같았던것이다.
하늘에서는 얼레빗같은 달이 푸름한 빛을 누리에 맥없이 뿌려주고있었다. 김명화는 개울건너에 있는 정금이 엄마네 집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무렵 계순이도 지친 다리를 끌고 한걸음두걸음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이제 돌아가면 자리에 누울수 있다고 생각하니 탕개가 탁 풀려버린것이다.
배속에선 쪼르륵쪼르륵 위액흐르는 소리가 나고 가슴이 쓰려왔다. 온몸에 식은땀이 돋는게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고만싶다.
계순은 잠간만 쉬여갈가하다가 집에 두고온 애기가 깨여나면 엄마를 찾으며 울가봐 그대로 발을 옮겨놓았다. 타박타박… 휘뿌연 공간엔 오직 자기의 발걸음소리뿐인듯 했다.
여느때라면 개구리울음소리라도 들리기 시작할 늦은 봄철이지만 쥐죽은듯 고요하기만 하다. 개구리가 정말 한마리도 남지 않았을가? 그렇게도 몽땅 잡아먹었는가? 그럴수도 있다. 정말 무서운 기근이 이 처창즈유격근거지를 휩쓸고있는것이다.
처음엔 송기를 벗겨다 재물에 우려먹었다. 아이들은 홍문이 메여 고통스러워했고 어머니들은 나무꼬챙이로 자식들의 뒤를 파주며 울면서도 또다시 송기를 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눈속을 헤치고 묵은 풀을 걷어다가 죽을 쑤어먹기도 했다. 목구멍이 깔깔해서 넘기기가 힘들었지만 끝까지 살아 근거지를 지키기 위해 악을 쓰며 먹었다. 마침내 해토가 시작되고 풀잎, 나무잎들이 뾰족뾰족 순을 내밀기 시작하자 그것도 닥치는 대로 뜯어먹었다. 땅을 파고 동면에서 채 깨나지 않은 뱀까지 잡아먹었다. 엊그제부터는 개구리알까지 건져다 삶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수천명이나 되는 근거지사람들의 끼니를 충족시킬수가 없는것이다. 개구리알도 순간에 들장이 났다. 이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신고 일하던 도로기까지 삶아먹었다. 보복전진을 하듯이 배밀이를 해가면서 파종한 보리도 이삭이 패려면 아직 멀었다.
지금 근거지인민들은 일어서서 걸어다닐 기력조차 없어 밭고랑을 기여다니면서 김을 매고있다. 손으로 땅을 우비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또 일어나 손톱끝이 모지라지도록 땅을 우비면서 잔풀을 뽑았다.
그러다 오늘 정금이 엄마가 끝내 쓰러졌다. 다음엔 또 《갑산집》며느리, 달수의 어머니… 련이어 세명이나 쓰러져 밭고랑에 아예 누워버렸다.
《정옥이 엄마, 난 이젠… 안될것 같애.…》
그처럼 괄괄하고 몸좋던 정금이 엄마가 밭고랑에 누워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자 그의 까풀이 진 입술을 보며 계순은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정금이 엄마, 무슨 말을 해요? 맥을 놓아선 안돼요. 기운을 내야 해요. 이렇게 맥을 놓는건 왜놈들한테 지는거예요.》
계순은 가까스로 그들을 끌고 집들에 데려다 눕혀놓았다. 처음엔 정금이 엄마, 다음엔 《갑산집》며느리… 다음엔 달수 어머니…
《절대로 죽어선 안돼요. 어떻게 하나 살아서 이 근거지를 지켜야해요. 내 먹을걸 좀 얻어보겠어요.》
계순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애기가 울기 시작했다. 기력도 없어 울음소리도 쇅쇅하는것이 마치도 공기빠지는 소리같다. 계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른 젖을 물리였다. 애기는 몇모금 빨지 못하고 도리머리를 하며 또 울음을 터뜨린다. 계순은 울며 정옥이를 꼭 껴안았다.
《정옥아, 제발 날 용서해주렴. 너까지 이러면 이 엄만 어떻게 살라니… 우리 배고파두 이겨내자, 응? 우린 이래서는 안될 사람들이야.》
계순은 배고파 우는 애기를 그냥 업었다. 애기는 젖을 내라고 발버둥 질을 치며 울어댔다. 그런대로 걸었다. 언제 애기를 달래이며 앉아있을새가 없었다. 눈앞에는 허기져 쓰러져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얼른거렸다. 푹 꺼져들어간 눈, 훌쭉해진 볼… 생기를 잃은 초점없는 눈… 당장 숨이 넘어갈것만 같아 잠시라도 지체할수가 없다. 이러다가는 무리죽음이 날것만 같다.
계순은 마음이 급했다. 등에서는 애기가 계속 울었다. 계순은 두손을 뒤로 돌려 아이를 추썩이며 속삭였다.
《우리 정옥이 용치요. 이제는 그만 울고 노래를 할가요? 무슨 노래를 할가요. 그래, 정옥인 어서 커서 아동단이 되겠지요. 아동단노래를 할가요?
목에다 두른것은 붉은넥타이
등에다 짐을 지고서 훈련을 나간다
장하다 그의 이름 아동단 아동단 아동단
세상이 모두다 칭찬한다 아동단 아동단
아니, 이제 정옥인 해방된 새 나라에서 살게 될거예요. 우리 함께 노래를 부르자요.
자유의 강산에서 우리 자라고
평화의 락원에서 꽃피려 하는
새 나라 어린 동무 노래부르자
세상에 부러울것 그 무엇이냐
정옥이, 우리 그날을 하루빨리 당겨오자요.》
계순은 이렇게 정옥이와 속삭이며 집집에 들려 풀뿌리 우린 물, 가죽혁띠 삶은 물, 솔잎을 가루내여 만든 죽이며 하는것들을 얻어왔다. 어느 집에서나 서슴없이 제 죽그릇을 덜어주었다. 아침, 점심을 다 굶고 저녁에야 겨우 차례졌던 가죽혁띠우린 물도 기꺼이 갈라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집집에서 모은것들을 달수 어머니네와 《갑산집》며느리에게 나누어주고 마지막으로 정금이 엄마네 집으로 향하던 계순은 집앞을 지나다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뜻밖에도 자기네 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던것이다.
계순의 얼굴엔 순간에 미소가 확 피여올랐다.
(어머님이 오셨구나.)
나흘전에 《먹을것을 좀 얻으러 갔다오겠다.》는 글쪽지를 남겨놓고 어디론가 떠나갔던 시어머니였다.
《정옥아, 할머님이 오셨다. 응? 우리 할머니…》
계순은 저리 집에 들렸다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정금이 엄마한테 들고 갈것이 작은것 같아 걱정했는데 마침이라고 생각되였다. 허우대가 크다는것을 생각 못하고 꼭같이 세등분을 했던 실수를 봉창할수 있게 된것이다.
할머니가 빈손으로 돌아오시지는 않았을것이다. 저 굴뚝으로 기세차게 솟구쳐오르는 흰 연기가 그걸 말해주는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집앞 가까이에 이르자 구수한 고기국냄새가 풍겨왔다. 순간 계순은 내장이 다 뒤집히는듯 앞이 휘돌리우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어 마당가에 있는 잔솔나무를 휘여잡고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어머니!》
그러나 목소리는 입안에서만 감도는듯 했다.
안에서도 무슨 기미를 느낀듯 부엌문이 벌컥 열렸다.
《애어미냐! 늦었구나. 어서 오너라.》
오옥경이 반색을 하며 마중나와 정옥이를 받아안았다.
《어이구, 우리 정옥이 잘 있었느냐?》
오옥경은 정옥의 볼에 입을 쪽 맞추더니 머리우에 올리고 둥게둥게 했다. 부엌안에서는 휘뿌연 김과 함께 고기삶은 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어머니, 어디에 가셨댔어요? 정말 고생을 하셨겠군요.》
《고생이야 무슨…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 그래도 쉽게 가져왔지. 자, 어서 들어가자구.》
오옥경은 자기가 근거지에서 떠나간 정선화를 만났댔다는 소리를 할수가 없었다.
계순이가 정선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자초지종을 말해줄수가 없었던것이다. 말을 해도 계순이가 무얼 좀 든 다음에 해야 했다.
오옥경은 리계순을 앞세우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난 어머니가 갑자기 어디로 가셨는가 해서 걱정했댔어요.》
부엌으로 들어가던 계순이가 미역말리운것과 좁쌀을 담아놓은 소랭이를 보고 반색을 했다.
《어마나, 미역과 좁쌀까지 구해오셨군요. 어디서 이런 귀한것을…》
오옥경은 마음이 좀 흥그러워져서 정옥이를 계순이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애를 데리고 방안에 들어가거라. 젖이 나오지 않는데는 돼지발쪽이 좋다고 해서 그걸 좀 구해왔다.》
순간 계순은 코안이 쩡― 하니 매워오고 눈굽이 따가와올라 눈시울을 슴벅거리였다. 어머니의 사랑이 눈물겹게 안겨왔던것이다.
《어머님, 정말 고마와요.》
《고맙긴, 어미한테는 그런 소리를 하는게 아니다. 어서 들어가거라.》
계순은 차마 방안으로 들어갈념을 못했다. 부뚜막언저리에서 머뭇거리며 끓고있는 가마와 오옥경을 갈마보았다.
《어머니!》
《왜?》
계순은 갑자르기만 하며 더 말을 못했다. 오옥경은 그것이 정선화를 만난 일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선화라는 그 녀자때문에 그러느냐?》
《선화라니요?》
계순이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
오옥경은 더욱 의아해졌다.
《아니, 그럼 그 녀자를 만나지 못했느냐?》
계순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은채 천천히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오옥경은 바가지에 돼지발쪽을 퍼담다말고 물끄러미 계순을 올려다 보았다.
계순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선화를 만나셨댔어요?》
오옥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 만났댔다. 임자를 만나러 오는 길이라구 하댔는데…》
《그래요? 여긴 안 왔댔는데… 틀림없이 여기로 온댔어요?》
《그럼, 그래 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구까지 했다네. 사실 이 돼지발쪽과 미역도 선화가 편지를 써주어서 그가 아는 사람네 집에 가 가져온거라네.》
《그래요?》
계순은 가슴이 뭉클했다. 선화가 이런 귀한것들까지 구해주었다니
고마왔다. 그는 아직 이 유격근거지생활을 못 잊어하는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 근거지로 와서 나를 만나겠다고 했을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럴수록 그를 더 잘 보호해주고 이끌어주지 못한 자책감이 가슴을 아릿하게 허벼준다.
중학교공부까지 하고 한때는 녀류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던 처녀, 그처럼 사랑을 갈망하던 처녀, 그래서 사랑을 찾아 혁명의 길에까지 들어섰던 처녀였다. 그 사랑을 혁명을 위한 길에 바쳐가는 참다운 인생길을 깨닫기 전에 사랑을 빼앗긴 처녀, 아까운 처녀였다. 그리도 빨리 된서리를 맞을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아직은 혁명을 시처럼 생각했던 처녀에게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 덮씌워졌다. 그래서 꽃이 피여보지도 못하고 꺾어졌다. 떨어졌다. 그를 어떻게 하면 도와줄수 있을가. 이젠 아예 혁명을 포기해버리지는 않았을가? 제발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으면…
《정말 그를 한번이라도 조용히 만났으면 좋겠는데…》
《이제 오겠지. 지금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 그러는지 어떻게 알겠나. 아니, 왜 그렇게 서있나. 어서 들어가라는데… 돼지발쪽이 그만하면 잘 물렀어.》
오옥경이가 흐물흐물해진, 김이 문문 나는 돼지발쪽들을 마저 퍼담았다.
계순은 방에 들어갈 생각을 않고 도로 부엌으로 내려왔다. 정옥이를 부뚜막옆에 눕히고 오옥경의 두손을 잡았다.
《어머니, 오늘 정금이 엄마랑 〈갑산집〉며느리랑 허기를 더 이겨내지 못하고 밭에 쓰러졌댔어요. 그래서 방금 집에 데려다 눕혀놓았는데… 어머니, 이걸 그들과 함께 나누어먹는게 어때요?》
《뭐, 뭐라구?》
오옥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서야 계순이가 왜 방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있었는지 깨도가 되였던것이다.
《그건 안된다, 안돼. 이건 널 주자구 내 죽기를 무릅쓰구 가져온거야. 이것만은 절대로 안된다. 이건 산모만이 먹어야 하는거야.》
오옥경은 결이 난듯 바가지를 한쪽옆으로 획 밀어놓았다.
순간 계순은 눈물이 쑥 나왔다. 시어머니의 진정이 가슴을 불로 지지는듯 뜨겁게 해준다. 계순은 눈을 슴벅거리며 물먹은 소리를 했다.
《제가 왜 어머니의 그 마음을 모르겠어요. 전 어머니의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난 어머니가 그저 곁에만 계셔도 마음이 든든해요.》
오옥경이가 획 몸을 돌렸다. 주름깊은 얼굴엔 벌써 눈물이 질벅해졌다.
《이것아, 마음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산모는 마음이 아니라 먹어야 젖이 나와. 봐라, 저 정옥이가 또 울지 않느냐.》
아닌게아니라 부뚜막옆에서 정옥이가 두팔을 내뻗치고 발을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빨리 내 작은 창자를 채워달라는 강렬한 호소였다. 오옥경은 얼른 정옥이를 부둥켜안았다.
《어머니.》
계순이 어머니에게 정옥이를 달라고 손을 내밀며 목멘 소리로 하소를 했다.
《지금 사람들이 다들 굶어 쓰러지고있어요. 그런데 부녀부장인 내가 어떻게 이런걸 혼자 먹을수가 있겠어요. 먹어도 넘어가지 않을거예요. 난 그렇게 못해요. 어머니야 저의 마음을 잘 아시지 않나요.》
오옥경은 정옥이를 안으려는 계순의 손을 뿌리치며 성을 냈다.
《그래, 남들은 그렇구 넌 뭐 일없는줄 아니? 네 몸이 어떤 꼴이 되였는지 알기나 해? 부녀부장은 뭐 쇠로 만들었느냐. 난 〈8련발〉이라는 사람이 굶어서 죽는걸 보구 억이 막혀서 온밤 잠도 못 잤다. 그렇게두 든든하구 사람좋던 혁명정부간부가 다른 사람들만 위하다가 제 먼저 쓰러…》
《어머니!》
계순은 《8련발》소리가 나오자 급히 어머니를 부르며 그의 팔을 잡았다. 목메인 소리로 간청을 했다.
《제발 그 말씀만은… 그 말씀만은…》
《왜 하지 말라는거냐. 난 가슴이 터져나가두 그 말만은 해야겠다. 그 말만은…》
갑자기 오옥경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끅끅 어깨를 떨며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계순이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8련발》이란 어랑촌근거지방어전투때 적기관총탄알을 여덟군데나 맞고 두개골이 빠개져서 뇌수까지 드러났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였다. 그 검질긴 생명때문에 《8련발》이라 불렀는데 이런 사람까지 혁명정부에서 일하다가 며칠전에 굶어죽었다.
《차라리 적의 탄알을 여덟발 맞았을 때 죽었더라면 영웅이라고 이름이라도 남겼을게 아니요. 그런데 이게 뭐요. 글쎄 내가 굶어죽다니 이런 분통이 터질 일이 어디에 또 있겠소.》
그가 죽기 전에 동지들에게 남긴 절규였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생살에 소금을 뿌리는듯 가슴이 쓰리고 아프군 했는데 시어머니가 오늘 또 그 아픈 상처를 헤쳐놓은것이다. 그러고보니 바로 그 《8련발》이 굶어죽은 다음날 오옥경이가 먹을것을 구하러 떠났댔다는 생각이 들었다.
《8련발》처럼 자기보다 동지들과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며느리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일점혈육인 귀여운 손녀애 걱정으로 황황히 그 어렵고 힘든 길을 다녀왔을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아, 고마운 어머니!
더구나 오옥경의 입에서 《너》라는 말이 나오기도 정말 처음이였다. 오죽 안타까왔으면 그러랴.
오옥경이 먼저 울음섞인 소리로 원망하듯 말했다.
《내가 너의 착한 마음을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절대로 안된다. 그러니 더이상 이 어미속을 태우지 말거라.》
계순이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운채 어깨를 떨며 안타까이 말했다.
《어머니, 난… 그래선 안돼요. 어머니도 그걸…》
오옥경이 얼마나 속상한지 발까지 구르며 야단을 했다.
《너 정말 죽자구 그러니? 응? 너두 죽구 애기두 죽이자는거냐?》
계순은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어머니, 난 정말 일없어요. 난 죽을래도 죽을수가 없는 사람이예요. 설사 난 죽는다 해도 이 애 아버지의 루명을 꼭… 죽어두 벗겨드리고야말겠어요. 우리 정옥이도 죽지 않아요. 절대 죽지 않아요, 어머니!》
《어허이구.》
오옥경은 그대로 그 자리에 물러앉으며 채머리를 저었다. 두눈에서는 눈물이 좔좔 흘러내렸다.
《이제 이 집안에서두 무리죽음이 나겠구나. 네 어미가 어쩌면 그리도 모질단 말이냐. 제 생각, 제 딸생각은 전혀 할줄 모르니… 어허이구!》
오옥경은 정옥이를 안고 황황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엎드려 꺼이꺼이 소리내여 울었다.
계순은 이윽토록 어머니를 올려다보다가 목갈린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제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어머니의 그 진정을 잊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계순은 퍼담아놓은 돼지발쪽들과 한옆에 놓인 좁쌀과 미역까지 갈라 들고 정금이 엄마네 집으로 갔다.
정금이 엄마는 몹시도 놀라와했다. 그도 계순이 젖이 적어 고생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런 산모의 손에 들린 돼지발쪽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한 그는 계순의 손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갑산집》과 달수네 집까지 돌아서 오는 계순이였던것이다.
《임자 어머닌 이런 사람이였어. 그날 밤 난 임자 어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속상한 심정과 함께 아이를 낳아키워본 년장자로서 단단히 말해주었지.》
김명화는 그때 일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한듯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람의 육체란 어쨌든 한계점이 있는게 아니겠나. 나이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을줄도 알아야 한다구 가슴아픈 말두 해주었지. 임자 어머닌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명화언니, 나라구 왜 그런 생각이 없겠어요. 나두 허기져서 그대로 쓰러지고싶은 때두 있고 앉았다가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 같은 생각도 들구, 애가 배고파 울 때는 정말 가슴이 터지는것만 같아요. 그때면… 보리알 몇알이 생겨두 그걸 씹어서 애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구 어떨 땐 맹물을 끓여 먹여주기도 하구… 그러면서도 애기와 이렇게 속삭이군 한답니다. 《정옥아, 너는 기어코 살아야 한다. 기어코 살아서 아버지, 어머니의 뜻을… 기어이 꽃피워야 한다.》라고 말이예요. 명화언니, 언니야 유격대원이 아니나요. 그러지 말구 날 좀더 채찍질해주세요. 난 기어이 이 애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를 증명하고야말겠어요.〉하구 오히려 날보구…
임자 어머닌 그렇게 싸웠어.
그런데… 참 아까 정선화에 대해 물었댔지. 그런데 선화는 그때 유격근거지에는 나타나지 않았던것 같애. 그렇다면야 임자 어머니가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겠나. 임자 어머닌 그때부터 나와 더 가까와졌댔으니깐… 속에 있는 말도 다 하군 했댔어. 지어 임자 아버지하구 사이에 있었던 일까지두… 정선화 그 녀자는 정말 그후엔 무소식이였어. 임자 엄마는 자주 그 녀자소리를 하군 했어. 아까운 사람인데… 그렇게 되였다구…》
정옥은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고개를 알릴락말락 끄덕였다. 김일 부주석이 왜 정선화에 대하여 사연이 있는 불쌍한 녀자라고 말했는지 리해가 되였다. 정선화는 혹시 지금도 본의는 아니더라도 자기때문에 우리 가정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은 아닐가.
그래서 그가 나를 피하는것이 아닐가. 자기는 우리 어머니에게서 구원 받았는데… 오히려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면서…
한생을 그런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그는 정녕 어디에서 살고있을가.
정옥은 아픈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