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3 장
9
김일환은 오늘 밭갈이를 하려고 아래마을에 가서 소를 빌려왔다.
밭은 밟기에도 부근부근한게 감이 잘 들었다. 저 아래 고동하쪽에서 불어올라오는 습기찬 바람엔 벌써 구수하면서도 시크무레한 냄새가 슴배여 풍겨온다.
김일환은 구수한 흙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소에 연장을 메우다가 뇌리를 스치는 예감에 흘깃 집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닌게아니라 쥐불을 놓아 꺼밋꺼밋 탄 자리가 아직도 력력히 남아있는 최뚝을 가로지르며 안해 리계순이가 걸어오고있었다.
일환은 후 하고 숨을 몰아쉬며 미간을 쪼프렸다.
(저 사람은… 그만큼 쉬라는데…)
요즈음 일환은 안해때문에 며칠째 혼자 속을 썩이고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반사발도 되나마나한 보리죽마저 한두숟가락 뜨다가 일어서는 안해를 보며 일환은 가슴이 덜컥했었다.
(저 사람한테 속탈이 생겼구나. 감기 한번 걸리지 않던 사람이…)
어디 아픈가고 따져물어도 그저 도리머리질뿐이였다. 병을 숨기려고만 하는것이 안타까왔다.
《오늘은 좀 쉬오. 밭은 내 혼자서도 갈수 있소.》
이렇게 엄하게 다짐을 두고 나왔는데 또 저렇게 따라나오는것이다. 현당서기를 할 때나 해임된 오늘이나 얼굴색 한번 변함없이 이 남편의 일을 돕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성실한 사람… 그래서 더더욱 아껴주고싶은 안해였다.
《왜 또 나왔소? 내 혼자 밭을 간다는데…》
계순은 다가와 소고삐를 잡으며 정답게 웃었다.
《당신이 밭을 혼자 간다구요? 호호호, 바로 그래서 나온거예요. 올해 농사를 혼자 다 지었다구 1년내내 자랑할가봐… 어서 밭이나 갈자요.》
계순은 소고삐를 당기며 왼손으로 소의 등을 가볍게 툭 쳤다.
소가 움씰 걸음을 뗐다.
일환은 황급히 《와, 와!》 하고 소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은 내가 성을 내는걸 보자고 그러오?》
계순은 일환을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마나, 당신도 성을 낼줄 알아요? 세상에… 원… 호호호, 됐어요. 어서 보습을 대세요.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대요. 이랴!》
소가 움찔 걸음을 떼자 일환은 황급히 보습날을 땅에 박았다.
할수가 없었다. 계순이 저쯤되면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밤새 내린 비로 감이 잘 든 땅은 보습날에 갈리워 슬슬 이랑을 지으며 나눕는다.
그우로 애기주먹만 한 메새들이 포릉포릉 날아다니며 먹이를 쫏는다.
《이젠 어머님을 모셔오자요.》
무슨 생각엔가 잠겨 소고삐를 끌던 계순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어머니 오옥경은 아직도 어랑촌에 그냥 남아있었다. 어랑촌이 정들어서 뜨기가 싫어 그런다지만 분명 아들 며느리 둘이 신혼살림 재미를 느껴보라고 그럴것이다.
《내가 갔다오겠어요. 어머니 혼자 얼마나 적적하시겠어요.》
김일환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어머니 고집이 정말 보통이 아니요. 어머니를 모셔오는 문제는 방법을 좀 연구해봅시다.》
휴식참에 그들은 밭머리등판에 나란히 앉았다.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도 계순의 눈길은 최뚝을 훑고있었다.
《뭘 그리 보오?》
김일환은 의아해서 계순이와 최뚝을 갈마보았다.
계순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머밋거리다가 혀아래소리를 했다.
《혹시 달래가 없나 해서… 싱아는 아직 돋지 않았겠지요?》
《싱아?》
일환은 대번에 입안에 신물이 도는것을 느끼며 진저리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피뜩 뇌리를 치는 생각에 안해를 쳐다보았다.
《싱아가 먹고싶소? 그때문에 앓는 병이요?》
계순의 량볼은 더욱 빨개졌다. 민망스러운듯 눈을 곱게 흘겼다.
《그랬댔구만, 허참 사람두…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할게지. 숱한 사람들을 대상해온 내가 그런것도 모를것 같소?》
일환은 움쭉 일어섰다.
《아니, 어딜 가요?》
《가만 앉아있소. 명령이요. 허허허, 이제야 진짜 남자가 할 일이 생겼구만.》
골짜기와 산기슭 비탈들을 다 훑었다. 아직은 이른 봄철이여서 새 싱아대들이 돋지는 않았지만 묵은 싱아뿌리들을 뽑으니 하야스름한게 벌써 물이 올랐다. 중둥이를 뚝 꺾어 씹어보니 제법 시큼했다. 김일환은 빙긋 웃었다.
《어마나, 벌써 이렇게 물이 올랐어요?》
김일환이가 서너웅큼 잘되는 싱아뿌리를 가지고 언덕으로 올라가자 계순이 반색을 하며 받아들었다.
《많이도 캐오셨군요. 정말 고마와요.》
《고맙긴… 겨우 싱아뿌리나 캐다주는 남편인데… 그간 이 덜퉁한 남편을 얼마나 원망했겠소.》
《귀가 가려웠어요?》
계순이 싱아를 입에 가져가며 새물새물 웃었다.
일환은 고개를 기웃하며 한 눈을 찡긋했다.
《아니, 가렵지는 않던데…》
《그랬으면 됐지요 뭐, 호호호.》
계순은 명랑하게 웃으며 싱아를 맛있게 씹었다.
김일환은 정겨운 눈길로 이윽토록 안해를 쳐다보았다. 한참이나 부지런히 싱아를 씹던 계순이가 그제야 생각난듯 남편을 흘깃 쳐다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왜 그렇게 자세히 보세요? 첨 보는것처럼…》
《당신이 너무 고와서…》
《아이참, 당신두.》
계순이 또 눈을 곱게 흘기며 냉큼 돌아앉자 김일환은 두손을 뒤로 뻗쳐 웃몸을 실으며 고개를 한껏 젖히고 껄껄 웃었다.
《좋구만,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단 말이지.》
《어마어마, 당신은 정말… 아직두 멀구두 멀었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멀다니?… 잠간이지.…》
김일환은 큰숨을 내뿜으며 팔베개를 하고 뒤로 벌렁 누웠다. 계순이 기겁을 했다.
《아이, 땅이 젖었는데… 어쩌자구 그래요?》
《그까짓 뭘하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겼는데… 애기라… 여보, 우리 애기는 이제 해방된 조국땅에서 살게 될게요, 해방된 우리 조국땅에서… 얼마나 멋있소. 참 그때 우리 애기는 무엇을 시킬가. 그렇지, 난 그 앨 축구를 시킬테요.》
계순은 어이없어 손등을 입에 대고 호호 웃었다.
《당신은 그저 축구, 축구…》
《왜, 축구가 어드래서? 채수항동무랑 동걸동무랑 우린 한때 사내가 축구를 못하면 축에 끼울수 없다고까지 단언했댔소. 참…》
남편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한팔에 몸을 싣고 계순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3년전 명월구회의때 말이요. 그때 김일성동지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오?》
《장군님께서요?》
계순은 놀란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온밤 나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는데 첫 대면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채수항동무가 말하기를 김일환동무가 축구를 잘해서 황소까지 탔다고 자랑하길래 꼭 만나보고싶었댔소.〉 하고 말이요. 〈채수항동무도 그렇구 김준동무두 오빈동무두 마치도 축구가 사람평가의 기준인것처럼 말하군 한단 말이요.〉 하시며 웃으시였소. 그 말씀에 난 10년지기나 만난것처럼 대번에 어려움이 없어지구 마음이 후더워져서 이렇게 슬그머니 비추었지.
〈김일성동지는 축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이께선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소.
〈축구야 대단히 인기있는 체육종목이지. 나도 축구를 좋아하오.〉
난 무릎을 쳤소. 글쎄 김일성동지가 어떤분이시오? 그분은 이제 삼도왜적을 쳐물리치구 나라를 해방해주실 위인중의 위인이시란 말이요. 우리민족이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셔야 할 태양과 같은분이시란 말이요.
그러신분께서 축구에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계시니 내 왜 기쁘지 않겠소.
그래서 이제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축구를 시키자는거요. 내가 못한 봉창을 해야지.》
김일환은 만족한듯 또다시 팔베개를 하며 뒤로 벌렁 누웠다.
계순은 자기도 가슴이 후더워옴을 느끼며 눈을 삼박거렸다. 그러면서도 말은 다르게 나갔다.
《아이참, 이제 생기는 애가 아들인지 딸인지 어떻게 알아요?》
《뭐, 딸?》
일환은 또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계순을 쳐다보다가 눈을 껌벅거렸다. 그렇게까지는 전혀 생각을 못해본듯싶다. 그때까지는 아직 녀자축구가 없던 때였다.
《하긴 그렇지, 그럼 어쩐다? 딸이면… 무엇을 시킬가. 당신 생각엔 어떻소?》
계순은 숨을 들이그었다. 행복에 겨운 어조로 속삭였다.
《난… 애기를 낳으면… 공부를 시키고싶어요. 난… 공부하는게 제일 부러웠댔어요. 어렸을 때부터 난… 이제 크면 선생이 될 꿈까지 꾸었댔어요. 그런데 선생은커녕 그렇게도 배우고싶었지만 소학교도 못 나왔거던요. 왜놈들때문에… 난 나라가 해방되면 우리 앨 마음껏 공부시키고싶어요. 소학교, 중학교, 대학까지두…》
그것은 지금껏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말이였다.
《대학이라… 그것도 찬성이요. 그럼 우리 이렇게 합시다. 아들애를 낳으면 축구선수를 시키구 딸애를 낳으면 대학공부를 시키구…》
《아이참… 아들앤 뭐 공부를 안시키구 축구만 시키겠어요?》
《왜? 공부도 시키면서 축구도 시키지. 난 한때 세계적인 축구명수가 되려는 꿈까지 꾸었댔소. 하지만 나라를 빼앗겼는데야 무슨 축구명수요? 어느 나라 선수로 된단 말이요? 그래서 단념했지. 그러나 우리 애는 해방된 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될거란 말이요. 이제 조선팀이 우승컵을 탄다고 생각해보오. 우리 애가 나가서 우승컵을 받고 그 우승컵을 높이 들어 흔들 때… 허허허.》
김일환은 제 말이 너무 떴다고 생각되였는지 껄껄 웃으며 다시 그 젖은 땅에 털썩 누웠다.
《우린 빼앗긴 내 나라를 되찾구 우리 애는 다시 찾은 내 나라를 온 세상에 빛내이구… 그게 얼마나 좋소. 인디아의 한 시인은 이렇게 시를 썼다고 하오. 타고르라고 했던가.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계순은 남편이 바라보는 하늘가로 눈길을 들었다.
맑고푸른 봄하늘가에 종달새 한마리가 높이 떠서 지종지종 지르르하고 지저귀고있었다.
아, 우리 애기가 살게 될 앞날은 얼마나 휘황할가. 그래, 그날을 위해 더 힘껏 싸워야 해.
계순은 두주먹을 꼭 부르쥐였다.
그해 여름 처창즈로는 숱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랑촌유격근거지를 비롯해서 여러곳에서 적들의 《토벌》공세에 대처하여 주동적으로 군중들을 소개하기 시작한것이다.
부침땅이 작아 먹을것은 부족했지만 《우리 세상》이라 마음편히 살수 있으니 다들 좋아했다.
하지만 각곳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들다나니 통일적인 조직체계를 미처 내올수가 없었다. 그래서 림시로 지방별로 자리를 정하고 자기네 사람들로써 계속 조직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연길현혁명정부는 처창즈유격근거지 입구에 자리잡았고 동남차골짜기로 조금 더 들어가서는 화룡현혁명정부가 자리를 잡았다.
정선화는 처창즈에 도착하자바람으로 지철민이와 함께 생명의 은인인 리계순이를 찾아갔다.
어랑촌을 떠날 림박에야 선화는 지방공작에서 돌아온 지철민을 만났던것이다.
밭에서 김을 매던 리계순은 이들을 보자 반색을 하며 달려나왔다.
어느새 밭머리를 감돌아흐르는 개울가 풀밭에서 부채붓꽃 한송이를 꺾어들었다.
《이렇게 혁명의 길에서 다시 만났군요. 어쩔가, 축하해주어야겠는데… 이런 들꽃밖에 없으니… 그래도 이 꽃은 고산지대, 추운 지방의 꽃이예요. 겨울의 강추위를 이겨내고… 드디여 싹을 틔우고 억세게 자라 꽃을 피우는 부채붓꽃, 호호호… 축하해줄게 없으니 꽃 한송이를 놓고 별의별 의미를 다 붙이지요? 어찌겠어요, 이것밖에 없으니… 하지만 이건 나의 진심이라는걸 알아주세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둘이 영원히 변치 말고 이 혁명의 길에서 사랑을 꽃피우세요.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되세요.》
부채붓꽃을 안겨주는 계순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빛나고있었다.
×
《아니, 당신은 밤을 밝히였소?》
갑자기 등뒤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 정옥은 눈길을 들었다. 잠옷차림의 남편이 서재로 들어오는 문가에 눈이 둥그래서 서있다.
정옥은 얼결에 탁상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계는 벌써 다섯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방송에서는 한창 《애국가》의 선률이 울려나오고있었다.
새날의 방송이 시작된것이다.
《호- 시간이 이렇게까지 된줄은 몰랐군요.》
《무슨 급한 일감이 제기되였소?》
《아니, 어머니에 대한 실화를 누가 써왔군요. 그걸 좀 보느라고…》
《그렇소?》
남편은 그제야 영문을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로 들어왔다.
정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것이다.
남편은 책상옆에 놓인 팔걸이의자에 걸터앉아 등받이에 몸을 실으며 실화원고를 집어들었다.
《이건 원고지가 아니라 학습장에 썼구만. 이거 깨알같아서 읽어보겠나.》
남편은 책상우에 놓인 자기의 돋보기를 찾아 끼였다.
《〈영생하는 삶〉이라, 제목이 좀 일반적인것 같구만.》
문학에 대한 조예가 좀 있는 남편은 남의 작품을 보고 곧잘 평가를 하군 했다. 웬만한 작가들의 작품도 사정없이 혹평을 하군 하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으로서는 원고지도 아니고 제목도 범박하니 그저 그러루한 작품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가만, 이건 작가이름도 없구만. 저자가 누구요?》
《글쎄…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보내왔군요.》
남편은 고개를 기웃했다.
《그래! 뭐 새로운 내용이 있습데?》
정옥은 부엌으로 나가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 대하여 잘 아는것 같애요. 아버지, 어머니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정옥은 자기가 그만 안할 말을 서뿔리 했다는것을 출근을 할 때에야 깨달았다.
남편이 《아버지, 어머니의 첫사랑》이란 말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아침밥을 먹고 설겆이를 하는 사이에 원고들을 다 걷어안고 부랴부랴 제먼저 출근을 해버린것이다.
별로 오늘은 빨리 출근을 하신다 하고 생각하며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출근준비를 하려 서재로 들어갔던 정옥은 깜짝 놀랐다. 책상우에는 실화원고대신 종이 한장이 놓여있었다.
《여보, 어제 밤 밝혔는데 오늘은 좀 쉬오. 너무 무리하는것 같아서 원고는 내가 건사했소.》
정옥은 어이없어 호- 하고 김빠진 소리를 내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