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달 비

제 3 장

5

 

《현당은 물론 동만특위에서도 계순동무가 용케 발을 붙이고 지하조직들을 복구해놓았다고 대단히 기뻐하고있소. 계순동무가 이번에 정말 큰 일을 했소.》

현위통신련락원인 리동걸이 길쑴한 얼굴에 서글서글 웃음을 담고 하는 말이였다. 련락장소인 은진중학교뒤 녹두지짐집 안방에서 리동걸이와 마주앉은 계순은 수집은 미소를 지었다.

《그곳 형편은 어때요. 여전히 힘드시겠지요?》

리동걸은 도리머리를 했다.

《이번에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반일부대와 련합하여 동녕현성전투를 벌리시였소. 동녕현성은 이시다가 지휘하는 500여명정도의 일본관동군병력과 위만군 한개 련대무력이 둥지를 틀고있는 곳이요. 그밖에도 위만경찰과 자위단무력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여있었소. 놈들은 대포를 비롯한 현대적무기들로 장비된 견고한 성새속에 들어박혀있었지만… 여지없이 패하고말았소. 우린 큰 승리를 거두었지.

현당에서는 계순동무가 발을 든든히 붙인것만큼 이젠 룡정에서도 한번 소리를 내야겠다고 하였소. 지금 왜놈들의 폭압과 검거선풍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위축된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신심을 주는것이 좋다고 하였소.》

계순은 자기도 흥분되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어요. 장군님의 승전소식을 들으니 힘이 막 생기는군요. 삐라공작을 좀 해보겠어요.… 참, 유격구에서는 다 잘 있어요?》

계순이 조심히 묻자 중요한것을 놓쳤댔다는듯 리동걸은 주먹으로 자기 이마를 툭툭 치며 껄껄 웃었다.

《내 그걸 인차 말한다는게 허허허… 서기동지는 여전히 건강하오. 아 이름난 축구선수가 어련하겠소. 뽈만 보면 발이 근질거려서 못 견디는 성미요. 글쎄 아동단원들이 학교운동장에서 짚뽈을 차는데까지 뛰여들지 않았겠소. 허허허… 시어머님도 여전하시고… 이제는 햇곡식들이 나와서 당장은 식량형편도 그닥 긴장하지는 않소.》

계순은 허우대가 큰 남편이 조무래기들속에 뛰여들어 뽈을 차는 모습을 그려보며 자기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고 호호 웃었다. 아이들을 남달리 사랑하는 남편으로서는 응당 있을만 한 일이였다.

불시에 눈굽이 쩡 달아올라 계순은 헉 숨을 들이그으며 눈을 슴벅거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봄물처럼 차오르며 가슴가득 채워준다.

작별은 정을 배로 크게 해준다던 옛사람들의 말이 그른데 없는것 같다.

언제까지건 정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에 심취되여있고싶었지만 계순은 인차 마음을 다잡았다.

삐라공작에 대해 생각하자 인츰 떠오르는것이 있어 동걸에게 래일 저녁 령사관 뒤골목에서 사는 최순사네 집에서 연회가 있다는데 그 기회를 리용하여 삐라를 뿌리는것이 어떤가고 물었다.

《최순사네 집에서 국수를 주문해왔어요. 국수를 나르는 기회에 령사관안에도 뿌리겠어요.》

리동걸이 긴장해서 물었다.

《령사관안에 뿌리는건 위험하지 않겠소?》

계순은 방싯 웃었다.

《위험하기때문에 그 효과는 더 클것이 아니겠어요. 그놈들에게도 우리가 결코 다 죽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줘야겠어요. 이제 가다가 삐라뭉치들을 좀 보내달랜다고 전해주세요. 안동무네 아지트에 있어요.》

리동걸은 미더운 눈길로 계순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소. 참, 국수배달원자리를 떼웠다고 하더니 어떻게 다시 되였소?》

계순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괴롭게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이번에 큰 과오를 범했댔어요. 아직 수준이 어리다나니… 그런걸 우리 부녀회원동무가 도와주어서…》

계순은 상기하기조차 괴롭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국수목판을 떨구던 일로부터 배달원자리를 떼우고 자책에 몸부림치던 일들을 사실대로 다 털어놓았다.

…정선화는 부녀회에 들던 날 저녁 이모부를 찾아들어갔다.

《이모부는 지금 밤마다 뒤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알아요?》

어떻게 해서나 국수집일을 펴나가보려고 수판알을 튀기며 무엇을 계산하던 이모부가 의아해서 눈길을 돌렸다.

《뒤마당? 무슨 일이게?》

《한번 나가보라요. 그 녀자가 목판에 돌을 담아이고 국수배달하는 련습을 하고있어요. 그런 녀자에게 잡부일을 시킨다는게 너무 모진것 같아요.》

《국수배달련습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모부는 눈을 껌벅거리다가 믿어지지 않는듯 허허허 웃었다.

《믿어지지 않으면 어디 나가보자요.》

선화는 다짜고짜로 이모부의 손을 잡아일으켰다.

선화의 손에 끌려 뒤마당에 나가본 선화의 이모부는 눈을 화등잔처럼 크게 떴다. 계순이가 푸릿한 달빛아래서 목판을 이고 돌다리를 건느는 련습을 하고있었던것이다. 계순이가 《돌다리》를 다 건느고나서 이번엔 《외나무다리》에 올라서려 하자 그는 《가만 있으라구.》 하고 소리쳤다. 깜짝 놀란 계순이 흠칫 멈춰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주인은 성큼 한걸음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그럴것 없이 나를 따라오라구.》

그는 앞장서 밖으로 나갔다. 계순이도 선화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쳐다보며 그를 따라갔다.

국수집주인은 한참 가다가 개울가에서 멈춰섰다. 그 개울을 가로 질러 외나무다리가 놓여있었다. 그제야 계순이도 선화도 주인의 속심을 짐작했다.

《자,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보라구. 그러되 목판을 잡지 말구. 손을 놓구 건너야 하네.…》

말하자면 《실기시험》이였다. 어쨌든 국수배달원의 자리를 다시 딸수있는 기회가 생긴것이다. 계순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국수집주인의 마음을 이쯤 움직여놓았으니 이제는 신심이 생겼다.

계순은 주저없이 외나무다리우에 올라섰다. 주인이 보는 앞이여서 온몸에 진땀이 내배이기는 하였지만 자신있게 발을 내짚었다. 목판에 돌을 올려놓지 않아서인지 무엇을 인것 같지도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순간에 건너가버리자 국수집주인이 선화를 돌아보았다.

《이모에게 말해라, 국수배달을 시키라구.》

선화는 너무 기뻐 환성이라도 올릴번 했다. 이모부가 자리를 뜨기 바쁘게 계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계순은 선화에게 손을 맡긴채 마주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정말 선화동무가 아니였다면… 힘들번 했어요. 가서 조직에 보고 해주세요. 다시는 그런 실수를 안하겠다는것도…》

리동걸은 자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고 조직에 보고해달라고 하는 계순을 미더운 눈길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날 저녁 삐라뭉치들이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였다.

계순은 부지런히 국수를 나르면서 조직원들에게 분공을 주었다. 시내를 세개 구역으로 나누어 삐라를 뿌리기로 하고 자기는 제일 위험한 령사관을 맡았다. 은진중학교쪽은 선화가 맡기로 했다. 명의조선생에게서 빌려왔던 소설책들을 가져다주고 다른 책들을 빌려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계순은 선화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선화, 조심해요. 전번 통신련락과는 또 달라요.》

선화는 그저 고개만 까딱까딱했다.

계순은 선화를 떠나보내고 동안이 지나서야 국수집을 나섰다. 최순사네 집에 국수를 날라간 그릇들을 가지러 갈 시간은 아직 일렀지만 약속된 삐라살포시간이 가까와왔기때문이였다.

검푸른 하늘에선 쟁반같은 보름달이 밝은빛을 뿌리고있어 삐라에 적힌 글을 능히 읽어낼것 같았다.

계순은 돌멩이를 매단 삐라뭉치를 품속에 넣고 국수목판을 그우에 안은채 령사관담벽을 따라 총총히 걸어갔다. 삐라를 뿌리기에 맞춤하다고 생각되는 곳인 나무전주대를 막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저앞에서 《야, 넌 누구야.》 하는 혀꼬부라진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쳐다보니 한 사나이가 뚝 버티고 서있었다. 계순은 가슴이 섬찍해졌다.

《밤에… 계집이… 뭘하러 나다녀? 너… 밤사냥 다니는거… 아니야?》

비틀비틀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입에서 술내가 확 풍겼다. 계순은 호- 웃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유, 마침 잘 만났네. 나 무서워 그러는데 함께 가주지 않을래요? 최순사네 집에 국수그릇 가지러 가는데…》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끅- 하고 딸꾹질도 했다.

《뭐 같이 가자구? 최순사네 집에? 에, 싫다싫어.… 최순산 너무 고약하게 군단 말이야.》

예견했던 그대로 사나이는 두손을 내저었다. 계순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사나이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옆을 지나쳤다. 그가 얼마쯤 멀어지자 계순은 담벽밑에 바싹 다가서서 귀를 강구었다.

령사관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계순은 다시한번 사위를 둘러보았다. 술취한 사나이는 벌써 저쪽 골목을 돌아섰다. 계순은 얼른 목판을 내려놓고 품속에서 삐라를 꺼내여 담장너머로 힘껏 올려던졌다. 돌멩이를 맨 노끈고리에 달린 삐라뭉치가 바람개비처럼 뱅글뱅글 날아갔다.

계순은 긴장해서 삐라뭉치를 쳐다보았다. 저절로 숨이 멎었다. 심장까지 멎는듯 했다. 삐라가 제대로 뿌려질가. 극히 짧은 그 한순간에 떠오른 생각이였다. 밤새도록 생각해낸 방법인데…

다음순간 계순은 방긋 웃었다. 노끈에 묶었던 삐라뭉치가 공중에서 풀려나 꽃잎처럼 팔랑팔랑 날아내리기 시작했던것이다. 그와 동시에 《딱》하고 기와장에 떨어진 돌멩이가 데구루루 굴러내렸다. 그 소리가 별로 큰것 같았다.

《꼬라, 다레까?》

정문쪽에서 왜가리청이 날아왔다.

계순은 픽 웃었다. 버릇처럼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얼른 큰길에 나섰다. 일부러 큰길을 택했다. 령사관 안쪽에서 뭐라고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계순은 태연히 최순사네 집으로 들어갔다.

저절로 웃음이 나갔다. 네까짓것들이… 어디라구…

최순사네 집에서는 아직도 한창 추렴들을 하고있었다.

계순은 부엌에 들어가 한옆에 쪼그리고앉아 그릇들을 하나둘 거두기 시작했다.

자기의 일은 비교적 멋있게 된셈인데 선화랑 다른 동무들이 어떻게 되였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되였을가, 이젠 령사관 경찰들과 헌병놈들이 다 떨쳐나서서 거리를 발칵 뒤집을텐데… 가슴이 조여들었다.

바로 이때 밖에서 순사 한놈이 헐레벌떡 뛰여들어오며 소리쳤다.

《비상소집! 빨리… 거리에 삐라가 하얗게 깔렸네!》

《뭐? 삐라가?》

게걸스레 국수를 처먹던 놈들이 고개를 번쩍 든채 눈들을 뜨부럭거렸다. 국수를 한입 가득 문채 눈을 치뜬 놈도 있다. 놈들은 입에 문것들을 가까스로 꿀꺽꿀꺽 삼키더니 왱강쟁강 수저들을 줴뿌리고 벌떡벌떡 일어났다. 황황히 벽에 걸어놓았던 환도며 모자들을 벗겨들고 밀려나갔다.

계순은 서둘러 그릇을 모아가지고 거리로 나섰다. 밤거리엔 아직 사람들이 웅성거리고있는데 여기저기 몇명씩 몰려있는걸 보니 삐라를 주어보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집들에서 쏟아져나오는 불빛과 장식등빛에 비추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라!》

《조중인민들이여, 공동의 원쑤 일제를 쳐부시자!》

(됐구나. 성공이구나.)

문득 뒤에서 호각소리와 함께 놈들의 구두발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렸다.

《야야. 누구야, 삐라를 보는 놈이…》

《야, 너 삐라뿌린 놈 못 봤어?》

《저놈 잡아라. 저놈이 수상하다.》

악에 받친 놈들이 여기저기서 제마끔 고아댄다.

계순은 그릇들을 고여얹은 목판을 머리에 인채 유유히 걸어갔다. 거리의 여기저기에 희끗희끗 삐라장들이 보인다. 가슴이 그들먹해진다.

(동무들 장해요. 선화동무, 정말 용해요.)

 

×

 

실화를 읽어가던 정옥은 고개를 기웃했다. 불쑥 김일 부주석이 하던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어머니가 정선화를 만나본 다음 괴로와했다는 말이였다.

실화를 보면 정선화는 어머니의 교양을 받아 부녀회원이 되고 혁명의 길에 들어선 녀성이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어머니와 헤여지게 되였고 전혀 소식을 모르다가 장백으로 나오는 길에서 만났댔을가, 지철민은 어디로 가고?… 사촌오빠라는 서봉삼은 어떤 사람일가? 죄는 어떤것이고?…

정옥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급급히 실화의 글줄들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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