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  산 유령들

 

3

 

특별수사실 심문실은 문이 달린 지하에 자리잡고있었다.

폭신한 의자에 등을 붙인 대산은 문건들을 뒤적거렸다. 습하고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방안의 전등은 그닥 밝지 못했다.

얼마전부터 특별수사실 실장으로 승급한 그는 검소로 넘길 대상들가운데서 젊은 로동자들의 문건들을 다시 검토하였다.

날씨가 스산했던 그날 밤에 인천부두에서 을 익힌 통역관이 관심한 주원사건을 스쳐버릴수가 없었다. 그는 수사일군다운 눈초리로 문건들을 조사해나갔다. 통역관과 관계되는 연고자만 찾게 되면 그를 통하여 스미스참사관과 접근하는 길이 더 활짝 열리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통역관인 양가의 성은 하나도 없었다. 실망한 대산은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적시고 재차 훑어보았다. 그러는 과정에 뜻밖에도 현구라는 두자 이름이 눈길에 밟혀왔다.

《현구? 현구라.》

대산의 두눈에 광가 돌았다.

《부친명 현구, 직업 농업, 학력 중졸…》 성급히 필요한 항목을 읽어가던 그는 문건을 책상우에 내던졌다. 찾자는 사람과는 이름만 같뿐 경력이 이했다. 친척친우란에는 사망자가 아니면 주소가 이북으로 적혀있었다. 현수일은 공장파업가자이고 농민소요의 선동자이며 경찰들의 질서유지를 란폭하게 방해한 불순분자로서 엄벌에 처하도록 제기되여있었다.

대산은 헛수고같아 손맥이 풀렸지만 자기의 예감과 욕망을 버릴수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수단으로 현수일을 호출했다. 감히 부친의 땅 걸고든 젊은이에게 다시한번 혼쌀을 내주는 동시에 현구의 모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얼마 현수일이가 나타났다. 키는 보통이고 몸체는 실한 축이 아니였다. 양복의 굽이 터지고 이마와 에 피멍이 든 적이 있었다.

《젊은이가 현수일인가? 거기에 앉게.》

수일은 그냥 서있었다. 수일의 백한 얼굴은 둥그스름했고 두눈에는 적의가 가득차있었다.

《시키는 로동이나 할노릇이지 농민들을 부추겨서는 어쩌자는거야- 법이 무섭지 않아?》

대산은 버티고선 수일의 기를 꺾자고들었다.

《나는 일제통치가 끝장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심문을 죄인 다루듯이 하겠습니까?》

수일의 어조는 당돌하고 신랄했다.

《덜되먹은녀석같으니라구, 어디에 일본사람이 있다구 그따위 소릴 함부로 줴치는가.》

도발에 걸린 대산은 화를 벌컥 냈다.

《왜놈은 없어도 그 악습은 엄연히 남아있소! 이걸 보시오.》

수일은 고문당한 상처와 찢어진 팔굽을 내밀었다.

대산은 눈알을 부라렸뿐 고함은 치지 않았다. 요즘같은 동란기에는 자제할줄도 알아야 했다. 더군다나 뒤가 든든치 못한 처지에 출신과 사회적배경이 각이한 젊은이들을 잘못 다쳤다가는 환을 입을수 있었던것이다.

《고문당했는가? 주원경찰서에서 그랬는가?》

《보고도 모르겠소?》

《아니다, 그건 촌에서 란동을 부릴적에 다친거다. 우린 상급의 지시대로 인권을 존중한다.》

대산은 힘껏 참을성을 발휘했다.

《심문이 결속됐는데 무엇때문에 데려왔소. 빨리 넘기시오.》

수일은 검찰소로 넘어가서 해보겠다는투로 말했다.

《끝난건 사실이다. 젊은이 아버지의 이름이 뭔가?》

《조서에 쓴대로요.》

수일은 싱거운 질문같아 비양조로 뇌까렸다.

《현구란거지. 헌데 중학을 나온 부친이 왜 농사를 짓고있는가? 다른 직업은 없는가?》

대산은 수일에게 시선을 던진채 젊은이의 부이 자기가 아는 조사실실장의 이름과 같아서 그런다고 했다.

《우린 할아버지대부터 농사를 해왔소. 아버지도 같소.》

수일은 더 묻지 말라는 태도를 취했다.

《지금도 촌에 있는가, 어디인가?》

대산은 바른대로 실토하면 부친과의 관계를 봐서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고향에 그냥 계시오. 다른게 없으면 물러가겠소.》

대산은 수일의 거동을 주시하다가 돌려보내고 눈귀를 찌프렸다. 그는 애비가 상기시킬적만 해도 현구의 존재가치를 그닥 중시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의외에도 쯔시마가 나타났고 그가 스미스의 휘하에 들게 된다고 가정할 때 쯔시마가 누구보다도 현구를 요구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자기가 현구를 찾게 되면 자기네와 쯔시마는 물론 쯔시마를 통하여 스미스참사관과의 접촉도 가능하게 되는것이다.

《둥지까지 털어먹는인데 놓칠수 없지.》

대산은 수일의 이상스런 행동을 지목하고 접수실에 부탁해두는 한 전화에도 관심을 돌리였다. 자기의 추리가 어김없다면 현구가 아때문에 들릴것으로 믿어졌다.

대산은 어느날 《군정청》의 긴급회의에서 돌아오는 길에 익은 사람을 보았다. 너부죽한 얼굴과 약간 큰 키, 시름에 겨운듯 수그린 머리가 현구를 련상시켰다. 대산은 차를 세우고 인도로 달려갔다.

《실례합니다. 현구형이 아니시오?》

길가던 중년이 머리를 들었는데 딴사람이였다.

《안됐습니다. 아는분인가해서 그랬습니다.》

전대산은 섭섭해서 한숨을 내불었다.

《하긴 지방으로 나갔으니까 아직 못 올라왔을수도 있지.》

대산은 를 보내고 걸어서 백화점으로 갔다. 은실에게 화려한 야회복을 둬벌 사줄 생각이였다. 앞으로 외국손님을 영접하자면 그런 준비쯤 해두어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은실은 저녁에 학습을 하다말고 창가에서 피아노를 타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은근한 선률이 방안의 고요를 잠재우며 상념의 나래를 펼쳐주었다. 명상에 잠긴 처녀의 갸름한 얼굴에는 홍조가 어리고 살눈섭에 가리운 눈동자엔 애원에 갈망의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처녀는 목가적인 음향속에서 한 남학생을 애타게 그리고있었다. 세해어간에 고작해서 몇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잊을수 없는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는 입은 옷도 수수하고 얼굴생김새도 남다르지 않았다. 광대뼈가 진 순박한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그의 리지적인 성격을 대변하듯이 날카롭게 정기를 내뿜군 했다.

은실은 삼년전 서울역두에서 그 남학생과 류별난 관계속에서 서로 알게 되였다. 그때 역구내에서는 《학도병》환송모임이 있었다. 《일장기》가 펄럭이고 《군가》와 환호성이 소란을 피웠다. 남방전선으로 떠나는 렬차가 움직이자 석별의 정을 못 이긴 은실은 동무들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가다가 길우에 떨어질번 하였다. 옆의 남학생이 아니였다면 은실은 다리를 상했거나 팔을 다을것이였다. 은실은 낯을 붉히며 다시 달려가려는데 그 학생이 앞을 막았다.

《눈물이 그렇게 값이 없소?》 그 학생이 금지된 조선말로 시까슬렀다.

《찔금찔금 흘릴것 없이 수도물처럼 쏟구려.》

은실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례한 언행이 귀에 거슬렸던것이다.

《눈물을 거두오. 남들이 보면 웃겠소.》

은실은 지나치게 깔보는 그에게 눈총을 쏘았다. 청년도 그를 마주보았다. 은실은 강렬한 눈빛에 못 이겨 기다림칸으로 피하였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때문에 은실이가 머뭇거리는데 그 학생이 《바께쯔로 붓는것 같지요.》 하면서 다가왔다.

《친한 동무가 걸려들었습니까?》

의외에도 그의 어조에서는 동정기가 풍기였다. 불손했던 자기의 행동을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헤여지니까 눈물이 나더군요. 난 그런줄 몰랐어요. 정말 용감한 동무예요. 》

《부럽습니까?》

《그럼요. 일선용사의 영예를 차지한걸요. 그런 녀학생들은 양받만 해요.》

《거, 축하연설의 한 대목같군요. 진정입니까?》

《예?!》 은실은 또다시 빈정거리는 그가 미워 비 걷힌 거리로 나갔다.

그 학생이 지게 따라왔다.

《용감성이니, 영예니 하는 용어를 어떤 경우에 씁니까? 그런걸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어쩌, 실례되는 말씀을 막 하는가요.》

무시당한 자존심에 은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학생은 싱긋 웃더니만 갑자기 은실의 수첩을 가로채서 이름을 보며 가로수밑으로 나섰다. 그뿐아니라 은실이가 수을 내라고 내민 손을 이번에는 잡아서 주먹을 안기고야 수첩을 돌려주었다.

《어떻습니까, 은실씨. 낮모를 녀학생의 손을 주먹으로 으니 이야말로 남아답지 않습니까?》

은실은 웃어야 할지, 성을 내야 할지 놀랍기만 하였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남의 집 재물을 략탈한 강도행위말입니다. 대단히 용감한 행동이 아닐가요?》

은실은 그가 정신나간 사람이 아닌가싶었다.

범죄행위와 《학도병》진출을 같은 의미로 대비하다니?

《일본군대가 된 조선청년을 내가 모욕했다는겁니까?》

《아닙니다. 우리 조선청년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에 끌려가선 안됩니다. 그건 치욕입니다. 왜놈의 기만선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분노를 터뜨리며 가로수를 주먹으로 쥐여박았다.

《어린 녀학생들이 나가서 뭘 한다는겁니까? 말이 <학도병>이고 <정신대>이지 그게 자신의 깨끗한 몸을 망치게 되는 비극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난 속히운 녀학생들이 녀동생들같아 억이 막히고 분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은실의 가슴이 두둑하고 높뛰였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겁에 질린 은실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길가던 사람들이 엿듣는 날에는 그의 신변이 위태로왔다.

《갑시다. 학교로 가는 길이지요? 우리 학교도 그쪽입니다.》

남학생은 가로수를 벗어나며 자기의 이름을 대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은실은 자석에 끌리듯 주춤주춤 걸음을 옮기였다. 은실의 작은 심장이 밖으로 튀여날듯이 무섭게 두근거리였다. 금지된 조선말을 거침없이 쓰는 수일의 담대한 기질과 조선청년다운 정신이 그를 크게 놀래웠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훌쩍 달아나게는 되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의 몸에서도 동족의 피가르기때문인지 몰랐다.

《저, 집에 동생이 있다지요. 녀동생인가요?》

은실은 얼마간 가벼워진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예, 소학생인데 여간 심술쟁이가 아니랍니다. 내 말은 언제나 거꾸로 들으니까요.》

《오빠니까 그러는거지요 뭐.》

《좌우간 내가 들어가라면 그 앤 밖으로 나간답니다. 그래서 난 공부시키려면 일부러 <수야, 나가서 실컷 놀지 않겠니?> 하고 놀려주지요. 그러면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는 제방으로 간답니다. 하…》

《호호, 녀동생하고 사이가 좋겠어요.》

은실은 오누이의 다정한 관계에 선망어린 웃음을 지었다. 자기에게도 살뜰한 오빠가 옆에 있어준다면 얼마나 생활이 즐겁고 재미나겠는가. 은실은 혈육의 정을 모르고 외롭게 자랐다.

《오빠가 있는 동생들은 행복하겠어요.》

《은실씨에겐 형제가 없습니까?》

《 예, 저혼자뿐이예요. 》

은실은 가족의 래력을 몰라서 더 할 소리가 없었다.

《그렇습니까! 내가 그것도 모르고 지나치게 굴었군요. 안됐습니다. 》

수일은 뒤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예요, 전 오늘 누구한테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

《내가 한 소리가 무섭지 않습니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두고두고 생각해보겠어요.》

《그래요! 그럼 내가 오빠노릇을 할가요. 이왕 이렇게 된바엔…》

《그래요?》

은실은 수일의 겸허하고 씨원씨원한 성격과 웅심깊은 태도에 마음이 움직이고 그의 따스한 인정이 고마왔다.

은실은 우연히 사귀게 된 그날로부터 드문히 수일을 만났는데 그것이 반복되면서 친분관계가 남매지간처럼 두터워졌다. 외로운 은실에겐 수일이가 친 오빠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은실은 수일이가 보낸 몇권의 조선력사책을 통하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란한 문화를 알게 되면서 조선사람된 자각과 긍지감을 가지게 되였다.

은실은 해방되기 두해전부터 수일을 만나지 못했다. 약속된 고서점으로 책을 가지고 여러차례 달려갔는데 매번 헛걸음이였다. 중학을 졸업했을 수일이가 사회로 진출했는지, 대학으로 갔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러던중 지난해 늦가을 군중집회장소에서 뜻밖에도 수일을 먼발치로 보게 되였다. 연탁에 서서 열변을 토하는 젊은이가 수일임에 틀림없었다. 모자를 쥔 억센 주먹과 광를 띤 눈동자, 훤칠한 이마우에서 물결치는 머리칼… 수일이였다.

은실은 무작정 앞으로 비집고 나갔다. 운집된 남녀군중을 헤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모임이 끝났다. 은실은 종시 현수일을 만나지 못하였다.

(내가 맹꽁이지. 사정없이 뚫고나갔어야 하는건데…)

은실은 지금도 자기의 실책이 회되여 호 하고 한숨을 쉬였다. 직장명도 주소도 모르는 형편에 마음만 안타까왔다.

은실은 애석하고 서글픈 심정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렸다. 그러나 불이 꺼진 큰방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음악이 멎은 방안에는 갑자기 쇠덩이같은 정적이 깃들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가정의 단란한 분위기와 인정에 굶주린 그에겐 끝없는 정적과 고독만이 유일한 벗인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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