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산 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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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없고 별도 없는 밤이였다.
하늘땅이 맞붙은 흑막속에서 사나운 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남산의 눈덮인 나무숲이 파도치듯 설레고 전선줄이 윙윙 아츠러운 비명을 질렀다. 립춘계절을 넘겼는데도 바람끝이 동삼처럼 맵짜고 차거웠다.
잠자리에 누운 대산은 소란스런 바람소리에 놀란듯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별스레 륙감이 이상하고 불안스러웠다. 서리찬 눈총과 억세게 틀어쥔 주먹들이 자기를 노리고 땅을 구르는 발걸음이 몸뚱아리를 타고넘는것 같은 환각이 자꾸 일어났다. 그는 별동대를 인솔하고 밤낮 따로없이 시위군중과 대결하였고 모임장소들을 기습하였다. 정세는 좀체 완화되지 않았다. 폭압이 우심해질수록 대오는 굳세여지고 진출도 한층 완강해졌다.
자꾸만 갈마드는 불안감에 쫓기여 대산은 머리맡의 담배를 더듬어찾았다. 가슴은 떨리고 손끝이 가드라들었다. 방금전에 전해들은 소식으로 하여 더욱 그런지 몰랐다.
대산이 집에 들어서자 치도가 우거지상이 되여 낮에 왔다간 마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것은 마을에 조직된 농민조합이 전치도를 호출했다는것이였다. 농조에서는 수탈한 땅을 모조리 내놓고 3.7제소작료를 실시하라는 요구를 들이댔다고 한다. 동시에 전치도의 친일행위를 전부 들춰내겠다는 통고를 보내왔다. 게다가 《징용》과 《징병》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집에 돌아온 청장년들과 유가족들이 이를 갈면서 치도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있다는것이다.
《이 자식아, 애비의 말을 듣느냐 먹느냐, 엉. 애비는 간이 말라 죽겠다. 왜 입을 열지 않느냐, 엉? 한시바삐 군정의 도장을 얻어내야겠다.》 하며 전치도는 턱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산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도 살아갈 출로는 거기에 있다고 믿었지만 당장은 방도가 없었다.
칠흑같은 방안천정을 지켜보며 대산은 때없이 몸을 흠칠 떨었다. 주원의 형편이 그럴진데 숱한 사람들을 밀고한 애비의 행위가 탄로되는 날에는 집안이 망할것은 불보듯 뻔했다. 《군정》에서도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을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립장을 취하고있었다.
극도의 초조감에 휩싸인 대산은 손에 쥔 담배마저 감감 잊고있는데 방안으로 련결된 정문종이 울렸다.
《찌릉찌릉.》 심야를 깨치는 다급한 종소리에 삽시에 대산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종소리는 간격을 두고 또 울렸다. 그제서야 약속된 비상종소리인줄을 알게 된 대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보, 나가지 마세요.》
질겁한 향란은 대산의 다리를 붙잡았다.
《비켜! 소집령이야, 옷을 가져오라구.》
《…》
향란은 어이없어서 눈을 할기다가 도로 누워버렸다. 그러자 대산은 이불을 활 잡아제꼈다.
《못 꺼내오겠어! 쌍년같으니라구.》
《뭐라구요? 쌍년이라구… 이젠 써먹을대로 다 써먹고 싫증이 날대로 났단 말이지요?》
《입질을 그만하지 못하겠어.》하고 대산은 장안의 옷을 꺼내입고 밖으로 나갔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향란은 너무 분하고 약이 올라서 몸을 비틀면서 눈물을 쏟았다.
현관을 나선 대산은 정문밖에 대기한 찦차에 올랐다. 한밤중에 출동명령이 떨어진것을 미루어보아 큼직한 먹이감이 걸려든 모양이였다.
그는 경찰청뜨락에서 미군잠바를 입은 전날의 경무국경찰을 만났다.
《다나까씨, 오래간만일세. 별동대장이 됐다지. 》
미군잠바는 제법 상관답게 처신하려 했다.
《재미를 보지 못하게 호출하여 안됐네. 한개 중대를 인솔하고 미국어른들을 경호해주게. 중대는 후원에 대기시켰네.》
미군잠바는 대산을 통역관에게 소개하고는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사라졌다.
대산은 경무국시절의 동급한테서 지시를 받게 된 수치감을 누르고 통역관의 말대로 경호대를 승차시킨 다음 자기도 차를 탔다. 고급승용차를 앞세운 대산의 찦차뒤로는 여러대의 승용자와 찦차들, 뻐스들과 풍을 친 화물자동차들이 꼬리를 물었다. 어두워서 차안에 사람들이 탔는지 무엇이 들었는지 알수 없었다.
긴 자동차행렬이 바람세찬 야밤에 시내를 빠져 한강다리를 넘어섰다. 거리에는 먹물같은 어둠뿐 마주오는 차 한대 없었다.
대산은 선두차안의 미국인과 통역관을 눈여겨보았다.
(인천길이 아닌가? 그러니 이밤에 오는가?)
극비로 진행되는 요란스런 행차를 두고 여러가지로 추측해보아도 내막을 알길이 없었다. 큰 인물이라면 무엇이 두려워 밤중으로 오겠는가? (혹시 남모르게 물건들을 배에 싣자고 하는게 아닐가?)
대산의 눈앞에 불현듯 《미군정청》경무국을 찾아갔을 때 광경이 떠올랐다. 탁자우에는 생김새가 기묘한 꽃병들과 옥구슬을 늘인 화려한 부채들, 정교한 금불상들, 은술잔들과 주전자를 갖춘 노을색쟁반, 그외에도 값지고 희귀한 각종 장식품들과 장신구들, 골동품들이 수두룩 했었다.
그때 미국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집에서 압수해왔다고 했지만 실은 그런것만이 아니였다. 미국인들은 입성한 그 시각부터 경쟁적으로 궁전들과 박물관의 귀물들을 훔쳐냈고 눅은 값으로 사들이거나 뢰물과 선물명목으로 수없이 앗아냈던것이다.
대산은 그것들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였다. 나라의 귀중한 유물과 문화재보가 아까와서가 아니였다. 그것들의 가치와 용도를 진작 터득하지 못한 자신의 무지와 암둔성에 대한 개탄이고 후회였다.
(내가 왜 저런것들이 귀하다는걸 몰랐을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저런것들이 있었으면 지금쯤 나도 한번 낯을 낼수 있지 않은가.)
대산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사람잡이와 재물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그였던것이다.
차의 행렬은 흑막을 뚫고 쏜살같이 내달렸다. 가로수들이 언듯언듯 스쳐지나갔고 그너머로 우중충한 산발이 뒤로 물러났다.
인천을 가까이하자 대산은 반년전에 일본인고관들을 호송하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날도 이밤처럼 하늘이 흐리고 바람도 심했다. 다른것이 있다면 여름과 이른봄의 계절차이뿐이였다.
대산은 사이또경감의 호출을 받고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었다. 두눈에 피멍이 든 사이또는 부동자세인 대산의 아래우를 훑어보고는 엄한 어조로 명령했다. 본국으로 소환되는 고관들과 그의 가족들을 책임지고 인천항으로 안내하라는것이였다.
대산은 첫순간 그 소리를 듣고 아연실색했다. 《대일본제국》의 종말을 예고하는것 같아서였다.
《다나까과장, 요즘에는 일본사람이 못된걸 수치로 여기지 않는가, 엉?》
사이또는 비양조로 뇌까렸다.
《사이또각하, 멸사봉공하겠습니다.》
대산은 후들거리는 몸체를 간신히 바로 하며 힘주어 대답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전쟁에는 전진도 있고 후퇴도 있는 법이다, 알았는가. 장차 조선이 전쟁마당으로 되는 조건에서 나라의 인재들과 가족들을 보호하자는 제국의 조치이니만치 끝까지 충성하라. 우린 바다가 륙지로 변해도 다나까의 친일정신을 잊지 않겠다.》
사이또는 일본이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고 목청을 돋구었다.
유럽에서 도이췰란드의 패망과 함께 자기들의 비참한 운명을 감수한 일제는 극비밀리에 전후처리문제를 모의하고 추진시켰던것이다.
1945년 6월에는 《천황》의 특사인 후지하라가 강점지역들인 중국동북지방과 내몽골, 북부중국 등지를 거쳐 은밀히 서울로 기여들었다. 그자는 《조선총독》아베와 정치경제계의 거물급들과 함께 범죄적인 흉계를 꾸몄는데 거기에서는 우선 본토로 수송할 전략물자들과 극비자료목록을 확정하였고 앞으로 계속 써먹을 주구들을 선발했으며 전후에 조선의 경제를 혼란시킬 범죄적인 책동을 꾸미였다. 그리고 파괴대상들도 조선의 38도선 이북의 주요산업시설들만을 선정하고 이남것들은 그대로 보존하도록 모의하였다.
그런것만큼 이것은 미제와 사전에 협의된 비밀계획이였던것이다.
사이또의 지시를 받은 대산은 불안과 초조감속에서 명령집행에 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서울-인천항사이에 정사복경찰들을 배치해놓고 일본인고관족속들과 물자들을 밤마다 호송했으며 귀국자들의 승선과 짐짝들을 날라주었던것이다.
검은색으로 변한 차창을 내다보면서 대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째서인지 불안하고 긴장했던 그때의 인상이 자꾸만 뇌리에 파고들었다. 그는 며칠동안 긴장하게 진행된 호송사업을 책임적으로 집행한덕으로 맨 마지막으로 떠난 사이또한테서 앞으로 기회를 타서 미주둔군사령부를 찾아가라는 소개장을 받게 되였다. 그것이 연고로 되여 오늘 다시 경관복을 입게 되였던것이다.
깊은 사색에 잠긴 대산은 주머니속에서 담배를 끄집어내여 피워물었다. 멀리 인천시가지 불빛이 장막속에 명멸했다.
인천부두에 도착한 대산은 야전지휘용자동차가 멎어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부두에서는 한창 화물선의 밀가루와 사탕포대들을 부리고있었다. 변질된 체화품인지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대형차부근에서 걸음을 멈추었던 대산은 신호를 받고 차안으로 들어섰다. 두명의 미국인이 마주앉아있었고 미군하급장교와 통역관이 그옆에 서있었다.
대산은 누구에게라없이 도착보고를 했다.
그러자 갈색머리에 몸이 강마른 미국인이 대산의 꺽두룩한 키와 얼굴을 주시하며 물었다.
《오느라고 수고했소. 당신이 경찰대를 인솔했소?》
《옛, 별동대장 전대산입니다.》
대산은 기운차게 대답했다.
《경무국에 있었다면서…》
《그렇습니다, 각하. 》
《이번에도 솜씨를 보이길 바라오. 조선경찰의 값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보겠소.》
갈색머리의 미국인이 거드름을 피웠다.
대산은 신임에 보답하겠노라고 힘차게 대답한 다음 통역관의 설명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3호부두주변에 경찰들을 배치하고 미군장교와 련계방법을 정한 즉시로 경비초소들을 순시했다. 하면서 불빛에 드러난 정박장쪽을 슬금슬금 훔쳐보았다. 창고건물들과 야적한 화물무지들뿐 아직은 아무런 동정도 알수 없었다.
잠시후였다. 검은 바다쪽으로부터 유령처럼 기여든 큰 배에서 잔교를 타고 사람들이 걸어나왔다. 어둠에 묻히긴 해도 미국인처럼 키가 크고 몸집이 비만한 축은 아니였다. 그들은 땅을 밟는 차례로 대기하고있는 승용차와 찦차 혹은 뻐스에 올랐으며 트렁크와 짐짝들은 풍차에 실었다.
신경이 곤두선 대산은 건물모서리에 숨어서 두눈을 크게 떴다. 두 미국인이 통역관과 함께 사람들을 한명씩 맞아서는 차를 타게 했다.
《아니?! 이런 일도 있는가.…》
대산은 와뜰 놀라 두손으로 눈두덩을 비볐다. 한순간 얼른거린 모습이 구면처럼 낯익었다. 작달막한 키와 조개턱, 꾸부정한 어깨가 영낙없이 쯔시마처장과 흡사했다. 쯔시마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미국인이 안내하는 승용차로 갔다.
(그 량반이 다시 오다니, 엉? 어떻게 된 판국이야?)
쯔시마말고도 면목있는 사람들은 여럿이나 되였다. 대산의 얼굴에 마침내 미묘한 웃음이 피여나고 두눈에선 말 못할 기쁨이 차넘치였다. 그는 소리쳐부르며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렀다. 그로서는 상상할수도 바랄수도 없는 일이 엄연한 현실로 눈앞에 펼쳐진것이다. 흥분한 대산은 경비원들에게 구석진 곳들과 행인들을 잘 감시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한편 자신도 주위정황에 주목을 돌리였다.
《미군정청》에서 일본인고관들과 전문가들을 야밤에 끌어들이는것이 분명하였다. 이 소식이 루설되는 경우에는 불달린 폭약처럼 어떤 무서운 사태가 빚어질지 예상할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왜놈들과 친일주구들을 비호하는 《미군정》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이 각지를 휩쓸고있었던것이다.
대산은 두눈에 쌍심지를 달고 교외로 뻗어나간 구역까지 뻔질나게 순찰했다.
(이런 일이 또다시 나에게 차례지다니? 이것이 행운일가, 아니면 불행일가?)
일본인들을 건너보내기도 하고 데려오기도 하는 일에 선발되니 가슴이 떨리였다. 이것이 탄로되는 날에는 개처럼 맞아죽어도 대역부도한 죄를 씻지 못할것이다. 대산의 두려움과 불안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일찌기 사람다운 리성이나 민족관념따위는 헌신짝처럼 쥐여버린지가 오랜 그였다. 그는 죄의식보다 상전의 신임에 감복하였고 위구심보다 차례질 행운에 가슴이 부풀었다.
대산은 이밤의 죄악적인 사건을 통하여 경원시해왔던 미국을 더 가까이하게 된것 같았다. 《미군정》이 일본인들을 소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을 속속들이 장악하자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세운다는 조선정부란 무엇인가?)
야밤을 타서 끌어들이는 왜놈들을 보게 된 대산은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혔다. 사실상 대산은 미국인들을 몹시 두려워하고있었다. 미국이 친일주구를 용서할수 있겠는가 하는 공포와 위구심때문이였다. 그런데 이밤에 옛 상전들을 다시 보게 되니 두눈에 정기가 돌았다. 《미군정》이 친일잔당을 써주기도 하고 내버리기도 하는통에 쫄아들었던 숨통이 열리였다.
대산은 위임된 경비사업을 손색없이 마친 긍지를 안고 지휘차를 찾아갔다. 그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통역관에게로 다가갔다.
《통역관선생, 밤인데도 수고하시는군요.》
대산은 한껏 친절을 표시했지만 통역관인 유종은 건숭 맞인사를 할뿐 시답잖게 굴었다.
《저, 한가지 물어도 좋겠습니까? 방금 하선한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아닙니까?》
대산은 통역관의 엄한 표정을 보고 어투를 바꾸었다.
《난쟁이들이 머리를 갑삭거리는게 쪽발이같더군요.》
유종은 불쾌한듯 외투깃을 추슬렀다.
《글쎄올시다. 알고싶은게 많으면 명이 짧다고 하던데요.》 하며 유종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재밤중에 불려나온 유종은 상상밖에도 부두가에서 전날의 원쑤들과 다시 맞다들어 경악감과 함께 복수하지 못한 분노로 가슴을 끓이고있는 참이였다. 그는 왜놈들이 내미는 손을 외면해버렸고 스미스에게 그들의 전직급을 되는대로 통역했다. 그들은 모두가 《총독부》의 고관들과 경제전문가들이였다.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왜놈관리들만 해도 수백명을 헤아리는판에 무얼 하자고 《군정》이 이런 음흉한짓을 계속하는지 기가 막혔다.
《호기심이 동해서 그랬는데 탓하지 마십시오. 나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걸 알고있습니다. 저 통역관선생, 실례지만 상관을 찾아주십시오. 차후행동에 대한 지시를 받자고 그럽니다.》
대산은 멋적게 웃으며 다가섰다. 욕심같아선 어느 부문을 맡은 통역관인지 물어보고싶었지만 상대의 기분을 잡칠가봐 그만두었다.
《담배나 마저 태우고 들어갑시다.》
《그렇게 하십시오. 나도 한대 피우겠습니다. 요즘 매우 바쁘시겠습니다. 》
대산은 집요하게 면목을 익히려 들었다.
《바쁘기야 치안에 나선 그쪽이 더하지 않을가요?》
《우리 일이란 왜정때나 지금이나 늘 그런걸요. 정말 못해먹을노릇이지요. 요즘에는 로동자들이 농촌에까지 나가서 치안유지를 방해하는 바람에 여간 애를 먹지 않습니다.》 하며 대산은 주원군 경찰서에서 서울의 로동청년을 호송해온 사건까지 말했다.
처음엔 무심히 흘려듣던 유종의 귀가 번쩍 트이였다. 처조카 현수일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던것이다.
유종은 슬그머니 그것들만이 포고령위반건에 걸렸는가? 그런 경우 어떻게 처리되는가고 물었다.
《사건나름이지요. 사건이 엄중하면 중형을 받아야 할겁니다. 혹시 선생의 집안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대산의 직업적인 촉각이 눈을 떴다. 유종이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는 자기의 기관명과 직분을 대주면서 아무때라도 찾아오라고 각별히 친절을 보였다. 유종은 마음이 동했으나 대방의 지나친 호의에 오히려 경계심이 나서 걸음을 떼고말았다. 했건만 대산은 사양하지 말고 오라고 이른 다음 상관의 이름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집요한 친절과 물음에 유종은 마지못해 《스미스》라고 대답했다. 대산은 가슴속에서 북받쳐오르는 환성을 누르며 짐짓 범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분이 경제담당 참사관이지요. 알게 되여 반갑습니다. 선생은 양유종씨지요. 소인은 전대산이라고 경무국출신입니다. 앞으로 친절히 살펴주십시오. 선생의 성함은 익혀두었지만 찾아뵙지는 못했습니다.》
기분이 뜬 대산은 제먼저 지휘차안으로 들어가서 부동자세를 취하였다.
《스미스참사관각하, 별동대장 보고합니다. 임무수행중 이상이 없습니다. 》
대산은 커피잔을 든 스미스에게 간단명료하게 보고하였다.
《오우, 당신 벌써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있습니까?》
《스미스참사관각하, 저는 미국사람들을 매우 존경합니다. 그 존경심이 각하의…》
《알만합니다. 매우 반갑습니다.》 스미스는 노란 눈알을 반짝이면서 흡족해하였다.
《오늘 밤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래일 하루 더 수고해주시오.》
《수고랄게 있습니까? 미국어른들이 주는 명령과 지시라면 불과 물속에도 서슴없이 뛰여들겠습니다.》 하고 절도있게 인사를 하면서 돌아서는 대산을 눈여겨보던 스미스가 한마디 했다.
《경찰의 그 결심과 패기가 내 마음에 드는구만.… 그래 뭐 요구되는것은 없소?》
대산은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다음날 밤 경비를 끝내고 왔을 때 대산은 하급장교로부터 밀가루와 통졸임의 출고전표를 받았다.
《동원된 경찰들에게 분배하시오. 그대신 비밀을 담보해야겠소. 우린 신용없는 사람 상대하지 않습니다.》
대산은 깍듯이 허리굽혔다.
《각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스미스는 흡족한듯 대산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당신의 활동이 마음에 드오. 승급하도록 경무국에 주선하겠소.》
《참사관님, 황송합니다. 각하의 대해같은 은총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
대산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고 지휘차에서 물러났다. 이른새벽의 바다바람이 화끈 달아오른 얼굴에 찬 기운을 들씌웠다. 그는 외투깃을 풀어헤친채 전용차있는 곳으로 큰 걸음을 떼였다. 꿈같이 차례진 횡재가 그의 기분상태를 고무공처럼 들띄워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