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  산 유령들

 

1

 

전치도는 아들네 집에서 겨울을 날수밖에 없었다. 소작인들이 땅을 가로채지 않았는지 속이 바글바글 지만 두려워서 촌으로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밤낮 방안에 들어박혀있기도 여간 힘든노릇이 아니였다.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때없이 문밖으로 나가보긴 했으나 기분상태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거리의 전주대들과 담벽들에 내붙인 벽보들과 구호들이 그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라!》

《정권은 인민위원회에로!》

《로동법령을 비롯한 민주개혁을 실시하라!》

《토지는 농민에게로!》

《 <미군정>의 부당한 포고령을 취소하라!》

대통로에서는 각종 구호판들을 추켜든 시위군중들이 물결처럼 밀려다녔다. 큰 거리는 더 말할것 없고 골목길에서도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그칠새 없었다. 사람들은 인민위원회를 강제로 해산시킨 맥아더의 포고와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라는 주둔군사령관의 명령을 견결히 반대배격하였다.

그 광경에 질겁한 전치도는 이즈막에 와선 아예 침상을 차지하고 움쩍 못했다. 원래 치도는 주원에서 악착하게 농군들의 등을 쳐먹기로 소문났지만 반일애국자들을 밀고하여 숱한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전적》 가지고있었다. 친일파숙청이란 말만 들어도 중풍환자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는 지주와 일파를 타도하겠다고 윽윽하는 농군들의 눈을 피해서 산중절간에 몸을 피했다. 절간도 그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과 절망에 살이 내리고 정신이 흐려질대로 려진 전치도는 절간문짝소리에도 기겁하여 불상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의 몰골은 하루가 다르게 삭정이처럼 메말라갔다. 하늘처럼 믿었던 상전이 패망한 조건에서 과거사까지 들장나면 분노한 백성들의 뭇매에 몸이 만신될것은 말할것 없고 목숨조차 건질수 없을것은 불보듯 뻔했다. 이토록 함정에 빠진 늙은 승냥이꼴이 되여 마지막숨을 간신히 몰아쉬고있는 때에 천만다행으로 아들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아버지! 나예요, 대산이예요. 부엌데기가 알려서 아버지를 겨우 찾았어요.》 하며 대산은 절간 헛간에 쓰러진 치도를 잡아들었다.

《아버지, 정신차려요. 우린 살았어요! 미군이 토지법을 바로잡는대요. 》

아들의 목소리에 치도는 눈을 번쩍 떴다.

《이 자식아, 살아있었구나! 어이쿠, 이 애비는 네가 잡혀죽은줄 알았다. 》

《명이 길었지요. 향란이라는 기생집에 은신하여 겨우 목숨을 건졌어요. 아버지, 기운을 내세요.》

대산은 춤이라도 출듯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하지만 전치도는 공포에 질려 두눈을 흡뜨며 다그쳐물었다.

《미군이 우리를 어떻게 한다더냐?》

《아버지, 이젠 마음을 놓으세요. 미군이 38도선 이남을 차지하고 <군정> 실시했어요. 조선인관리들도 그전대로 용시키고있어요. 나 역시 경찰청에 입직하고 며칠전에는 고급주택까지 배정받았어요. 》

《아니? 네가 서울경이 됐다구! 그럼 우린 살았구나.》 그제야 전치도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가드라들었던 두팔을 쭉-다. 미국의 태도는 여하간에 아들이 경찰이 된이상 신변의 위험은 덜어진셈이였다. 치도는 그길로 아들을 따라서 제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너렁한 기와집은 온통 마사지고 깨여져 풍지박산이 되였다. 가산도 집도 정리할 겨를이 없었다. 수탈한 땅을 내놓으라는 농군들의 요구가 너무도 강경했기때문이였다. 경찰과 마름들이 막아나섰지만 농민들은 좀처럼 숙어들지 않았다. 수시로 집안에 기와쪼각들이 날아들었고 수리한 대문짝도 밤새 짓조겨졌다. 요즘같은 혼란에는 그 어떤 사태가 불시로 벌어질지 도무지 예측할수 없었다. 할수없이 치도는 토지문건들을 비단보자기에 싸안고 도적고양이처럼 야밤에 서울의 아들한테로 올라왔던것이다.

도는 아들형제와 외동딸을 키웠다. 세자식중에서 둘째인 전대산을 제일 아끼고 사랑했었다. 맏아들은 여러해전에 치도와 대 싸움을 하고 중국동북지방으로 솔가해갔고 딸은 치도가 권고한 도지사의 서자를 마다하고 장발한 중학선생과 눈이 맞아 돌아가자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그런 까닭에 슬하에 대산이가 남았는데 그 역시 애비틀 닮아 심술이 바르지 않고 행동거지가 추잡하고 포악했다. 지금 집안에 있는 향란이가 세번째 첩이였고 지난 가을에 대학생이 된 은실이도 본처의 소생이 아니였다. 비명에 죽은 하녀부부의 자식인데 귀여운 생김새에 반해 서울에게 맡겨서 키운 애였다. 전치도는 경찰학교를 나온 대산이 총독부의 경무국에 적을 붙인 로는 그를 집안의 기둥으로 점찍어두었었다. 이번에 그는 그 《기둥》덕을 보았다고 할수 있었다.…

밤낮 벌벌 떨며 전전긍긍하던 전도는 아들이 돌아오자 그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는 밤깊도록 앞날을 모의했다.

말끝에 전대산은 이젠 아버지가 주원으로 내려가라고 권고하면서 신변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이 애빈 <총독부>도장 같은 큼직한 도장을 받기 전엔 못 내려간다. 》

도는 아들이 준 문건을 보고 해설도 들었지만 고집을 부렸다. 미군정청은 1945년 9월 22일에는 토지에 대한 소유권에는 변함이 없으며 농민들은 지주에게 무조건 소작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선포한데 이어 군정법령 제9호에서 《최고소작료결정의건》 공포하여 봉건적토지소유관계의 보존을 법적으로 고착시켰다. 그런데도 도는 그런 일반적인 포고로써는 범 무서운줄 모르는 농군들을 굴복시킬수 없다고 머리를 저었다.

딱하게 노는군요. 지금 군정에서 그런데까지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어요. 아버지도 거리가 얼마나 소란스러운지 매일같이 보면서 그러세요. 》

《그래서 이 애비가 주원땅으로 내려가지 못하고있다. 세상이 소란스러우니 이제부터 이것을 네가 건사해두어라.》 치도는 침대머리에 깊숙이 감추었던 문건들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꾸다군수가 본국으로 가면서 내게 값으로 넘겨준 토지 4만평짜리증서이다. 》

《이건 뭣하려 샀습니까? 이런 토지는 군정이 적대국의 재산으로 압수하게 됐어요.》

처음 한동안 대산은 제 애비의 처사를 어리석게 여겼다.

《자식두,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구나. 앞으로 군정의 공인을 받게 될 때 꾸다대신에 내 이름으로 문건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꾸다씨는 벌써 그런 사정을 알고 마름을 불러다가 나를 새 주인으로 섬기라는 당부까지 해두었단다, 알겠느냐. 이것도 맡아둬라. 》

치도는 2만짜리 경찰서장과 금융조합리사장의 토지문서까지도 아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대산은 세상이 뒤집히고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천만한 판국에도 제 리속을 차리는데 혈안이 된 제 애비의 내흉스러운 속심에 탄복 금치 못했다. 전치도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욕심스럽게 사들인 토지들이 자기의 소유지로 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있지 못했다. 눅거리땅값에 환장을 했던것인데 그것이 새로 나타난 《미군정》에 의하여 승산이 내다보이게 된것이다.

《아버지의 속궁리에는 정말 따를 재간이 없군요.》

전대산은 고개를 내저으며 비죽이 웃었다.

《이녀석아, 명심해 듣거라. 리속이란 언제나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거기에 있는거다. 리치를 따지고 량심을 론해서는 남을 딛고 올라서지 못한다. 자고로 부귀영화를 누린 족속들의 비방이 그런거란다. 》

오스런 자기 인생철학을 역설하는 전치도의 입가에도 만족스런 웃음이 비꼈다.

《알겠어요. 그 땅만 차지하면 우리는 큰 지주로 될수 있겠군요.》

대산은 눈앞이 황해졌다.

《그거야 두말할것도 없지.… 똑똑히 명심해라. 그게 다 너를 위한거다. 이 애비는 이젠 늙어서 일본세상처럼 끝장이 났지만 너야 새세상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아야 할게 아니냐. 설사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너는 이 애비가 장만한 그 땅을 손아귀에 움켜쥐여야 한다. 그래야 나는 땅속에 묻혀도 눈을 감다.》

《아버지, 맘 놓으세요.》 한껏 기분이 붕 뜬 대산이가 방문을 열어제끼면서 향란에게 주안상을 차려오라고 소리쳤다.

《아니, 이제 얼마 안있으면 새날이 밝겠는데 술상을 려요. 빨리 잠자리에 눕기나 하라요.》

《무슨 말이 많아, 려오라면 올것이지.…》 하며 전대산이가 눈을 흘기자 향란은 할수없이 주안상을 차려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대산은 방에서 향란을 내쫓고는 제 애비 잔에 술을 부었다.

《거 별맛이다. 미국술이냐?》

전지도는 단숨에 잔을 비우면서 매우 흡족해하였다.

《위스키라구 세계적으로 일러준답니다.》

《마사무네하고는 또 맛이 다르구나. 한잔 더 할가.》

전치도는 연방 독한 술로 가슴을 덥히면서 세상이 뒤집히는통에 혼이 나긴 했지만 해방덕을 단단히 볼것 같다면서 아들에게 적산토지틀 맡아보는 미국인과 조선인관리를 잡아나꾸라고 일깨워주었다. 하면서 술기운에 려진 눈두덩을 껌뻑거리면서 물었다.

《대산아, 언젠가 우리 땅을 측량한 사람들중에 똑똑한 사람이 있었지. 쯔시마처장도 공대하기에 나도 섭섭치 않게 대해주었는데 이름이 뭐라더라?》

《현구말입니까?》

《현구?… 옳다. 그 사람의 이름이 현구라고 했다. 총독부시절 관리들이 군정에서 그냥 일을 한다면 필시 그 사람도 있을게다. 래일 당장 그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보아라. 신세갚음을 하게 하겠다면 마다하지는 않을게다.》 전치도는이 나서 주절거렸지만 대산은 입을 다문 머리를 긁적거렸다. 한때 물의를 일으킨 저수지사건이 상기되였던것이다. 현구와 그의 장인의 원을 반일란동으로 몰아붙여 가혹하게 탄압했던 불미스런 과거사가 목에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될것이 없었고 또 그의 도움을 받을 형편도 못되였다. 그리하여 전대산은 술잔을 집어들면서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일본이 망하기 몇해전에 지방으로 추방됐어요.》

《쯔시마처장이 존경하던 사람도 내쫓았단 말이냐. 거참 맹랑하게 됐구나.》

《일이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어요.》

전대산은 오만상을 찡그렸다. 전날의 공적이 오늘에 와선 타격으로 된것이다.

이때 안방의 향란은 두다리를 그러안고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방안에는 저녁화장을 한 분내와 향수내가 풍기고 원탁의 빨간색이 육감적인 빛을 던지였다.

벽시계가 열두점을 쳤다. 향란은 한숨을 토했다. 이밤도 혼자몸으로 넘기자니 기가 막히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즈막에 와서 늙다리령감때문에 긴긴밤을 뜬눈으로 밝혀야 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향란은 더 참지 못해 은실의 방으로 가서 대우에 털썩 주저앉으며 《무슨 꿍꿍인지 겨우내 하고도 모자라서 밤마다 이마때기를 붙이고있어.》 했건만 은실은 응대없이 피아노건반을 두드렸다. 은근하고 애상적인 소야곡이 무엇인가를 절절히 갈망하는상싶었다.

, 사람값에 안 간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는구나.》

향란은 역증을 내였다.

아노소리가 뚝 멎었다.

《작은어머니, 또 기분이 상하셨군요.》

은실은 서른살남짓한 향란을 다르게 부를수가 없었다.

《작은어머니? .》 향란은 주빛입술을 삐죽거리며 자기는 이집의 작은이 아니라 부엌데기이고 시녀이고 비단깔개라고 꺼리낌없이 말했다. 화류계에서 치워난 못된 성미여서 독이 오르면 무분별해지는 녀자였다.

《아이참, 어쩌면 그런 말을…으세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은실은 이런 경우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당황해하였다.

《은실이, 내 부탁을 들어요.》

《뭔데요?》

《저 방에 가서 아버지를 데려내와요. 저러다간 밤을 밝히겠어요.》

향란의 말투에선 뭔가 애원조가 깔려있었다.

《내가요? 그건 안돼요.》

은실은 얼굴을 더욱 붉히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딸이 제 아버지를 못 끌어내.…》

향란은 침대에서 발딱 일어나며 령감태기에게 쥐여사는 전대산한동안 욕질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은실에게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 자기도 은실이나이때에는 꿈도 있고 리상도 있었다면서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었다. 하고는 제 설음에 목이 메여서 말을 계속했다.

《은실인 내가 어떤 녀자인지 모르지? 난 불쌍한 녀자야.》 량볼로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리는 향란의 얼굴에 회억의 그림자가 비끼였다.

《나에게도 다른 길이 있었다.… 그렇지만 난 화류계를 택했어. 제손으로 목숨을 끊만 한 담이 없는데야 어찌겠나. 그래서 싫도록 향락이나 누리다가 죽자고 마음먹었댔어. …》

타락한 자신의 인생이 회되였던지 아니면 억울했던지 밤화장한 그의 얼굴에는 울분에 빛이 어리였다.

향란은 어머니를 잃고 계모밑에서 자랐다. 계모는 그를 부엌데기로 치부하고 제 딸만 공부시켰다. 악바리로 된 향란은 소학공부를 잘했고 커가면서 련애소설도 읽어서 매일밤 사각모자를 쓴 대학생과 산보하는 꿈을 꾸었다. 계모가 제 딸만 녀학교에 보내자 향란은 강심을 먹고 비누공장에 들어가 학비를 장만했다. 그런데 그만 계모에게 저금통장을 빼앗겼다. 계모한테 넋을 빼앗긴 아버지는 그를 사랑하지도 동정도 하지 않았다.

향란은 저금통장을 돌려달라고 했다. 계모는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방랑아가 된 향란은 장거리의 음식점찌꺼기를 주어먹었고 정거장에서 쪽잠을 잤으며 나중에는 부랑배들의 단련까지 받게 되였다. 그는 더는 살고싶지 않아 한강으로 여러번 나갔으나 몸을 던지지 못했다.

죽자니 억울하고 겁이 나고 눈물이 앞섰다. 그는 별의별 생각을 다하던 끝에 인사소개소를 찾아가 그곳에서 둬달 기생강습을 받고 화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향란은 은실이가 주는 고뿌의 물로 타는 목을 적시였다. 그리고는 얼마간 침통해있더니 전대산과의 관계까지 이야기했다.

작년 봄에 향란은 대산이와 술자리에서 눈이 맞았다. 왜놈세상이 망하자 몸을 해다니는 전대산을 숨겨주었다.

《내가 아니였다면 저 사람은 귀신도 모르게 맞아죽었거야. 은실이도 보았겠지만 그때는 하루밤 자고나면 거리바닥에 친일파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렸댔어.…》

향란은 말을 하다가 무슨 감촉에서인지 훌쩍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울상이 되여 방에 들어왔다. 좀전까지 설음에 겨워 하소연하던 사람같지 않게 약이 올라 씨근거렸다.

《은실이, 제발 할아버지더러 아버지를 놔주라고 해요. 자정이 넘지 않았어요, 어서요. 내 눈에 피발이 선걸 보라요. 은실이도 이제 머지 않아 내 심정을 알게 돼요.》

은실은 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작은댁에 얹혀살다보니 할아버지와 면식이 없노라고 말했다.

《뭐라구? 손녀가 할아버지를 몰라? 별난 집안이군.》

향란은 연지물이 오른 입을 삐쭉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하고는 치도의 방을 흘겨보며 팔짱을 끼였다.

그때 방안에서 전대산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술과 안주를 더 가져와.》

향란은 마지못해 술과 안주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나가봐.》

전대산의 목소리는 저으기 거칠었다. 향란은 그만 발끈했다.

《또 밤을 샐 작정이예요. 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구.》

《나가라면 나가는게지 무슨 대꾸질이야.》

《내가 이 집의 종인가요, 나가라말라… 그래, 거리바닥에서 죽게 된 사람을 살려준 보답이 기껏해서 이런거예요?》

향란은 자기의 마자락에 숨어서 목숨을 건진지가 며칠된다구 벌써 사람을 괄세하는가고 대들었다.

낯이 벌개진 대산은 향란의 입을 막기에 급급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하던 이야기가 있어 그랬다면서 향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향란은 대산에게 끌려가면서도 할 소리, 못할 소리 마구 퍼부었다.

《여보, 진정하오. 내가 당신의 은혜를 잊는다면 그게 사람이겠소, 여보.》

향란의 말대로 기생인 그의 방조가 없었더라면 아마 대산은 벌써 죽은 목숨이였지도 모른다. 총독부경찰인 대산은 해방직 신할 곳이 없었다. 본처가 있는 주원으로 가자니 그곳의 애비 역시 무사할것 같지 않아 첩의 집으로 달려갔지만 문전에서 내쫓기였다. 겁에 질린 그는황중에 향란을 찾아 그앞에 무릎을 끓었다.

《향란이, 날 살려주오. 목숨만 건지게 되면 당신을 평생 업고 다니겠소. 제발 이 불쌍한 대산을 구원해주오. 향란이-》

그리하여 대산은 향란의 집에서 위기를 모면했던것이다.

《여보, 내 래일부 집에 오는 길로 당신을 먼저 찾겠소.》

대산은 겨우 그를 진정시켰다. 얼마 아버지방에서 나온 그는 향란을 넓은 침대에 앉히고 슬슬 가슴부터 쓸어만지였다.

《비켜요, 징그러워요. 내가 당신을 끼고 자지 못해서 을 쓰는줄 알아요? , 천만에요. 내겐 당신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예요. 난 사람을 모욕하는 당신을 잊지 않겠어요.》

《아직도 노염이 풀리지 않았소, 요 귀염둥이.》

《수개같은게…》

얼마 향란이 더운 입김을 내불며 물었다.

《당신은 전주대처럼 키가 크고 령감은 절구통같이 가로퍼졌는데 은실은 어떻게 돼서 그렇게 몸매와 얼굴이 고와요. 그가 진짜 당신의 딸이 옳아요?》

《내 딸이든 아니든 그거야 상관있소.》

기분이 들뜬 대산이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한적없는 소릴 토설했다. 며칠전에는 앵돌아진 향란이를 진정시키느라고 제 애비의 숨겨진 죄과를 말했다면 이번에는 자랑삼아 은실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은실은 대산이가 정에 불타서 눈독을 들이던 하녀의 딸이였다.

하녀도 인물이 고왔지만 그 딸도 삐여지게 고왔다. 산탈로 시름시름 앓던 하녀는 징병에 끌려간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까무라친 종시 여나지 못했다. 그때 은실의 나이는 8살이였다. 대산은 인물고운 그 애를 키우면 장차 덕을 볼것 같아 양딸로 삼아 첩에게 맡겼다. 하루 세끼 밥만 먹이면 저절로 크겠는데 이런 노릇쯤 못할게 없었다. 대산은 한송이 백합꽂처럼 곱게 피는 은실의 미모에 관심이 높아져 학교에도 보냈다. 해방에는 그의 희망을 거절하고 영어를 배우게 했노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어떻소, 이만하면 이 전대산이가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지… 히 -히- 》

《…》

향란은 자기 솜씨를 뽐내며 히물거리는 대산의 낮짝에 침을 뱉고싶었다. 어쩐지 은실이가 자기처럼 뭇사내, 아니면 제 애비로 자처하는 대산의 노리개신세를 면치 못할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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