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돌아오다

 

3

 

현구는 아들의 방에 오래동안 앉아있었다.

아들의 체취가 방안 구석구석에 슴배여있는듯싶었다.

(맏이가 감옥에?… 로동도 힘든 공로동을 해왔구?) 현구는 생각할수록 기가 차서 숨이 막힐듯 하였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따뜻이 보살펴주는것은 의무이기전에 본성이였다. 그는 민족적굴욕을 용인할수 없어 집을 떠나 자식들과 헤여져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왜놈이 쫓겨났다고 하기에 돌아와보니 아들이 감옥의 몸이 되였다. 나라를 찾았다고 심산속을 뛰나온 그 환희와 기쁨은 한갖 부질없는 꿈에 불과했단 말인가.

안방에서 안해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적타격을 받고 졸도했다가 깨여난 안해는 줄곧 아들의 이름을 외워대고있었다.

(아!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현구는 자꾸만 한숨을 내쉬였다.

어느덧 그의 눈에 옷걸개의 작업복과 다림발이 선 외출복이 비껴들었다. 현구는 그 옷속에 아들을 세워보았다. 까까머리에 책가방을 달랑거리던 아들이 지금은 자기 몸에도 맞춤할 외출복을 입는다고 생각하니 성장한 수일의 모습이 갑절이나 그리워 났다. 진한 눈섭과 넓은 이마는 아버지를 닮았고 유순한 코날과 그윽한 눈매는 어머니와 비슷했었다. 아들은 네모진 얼굴에 눈정기가 유별났었다. 이제는 아들을 본지도 네해가 되였다. 그 사이에 많이도 변했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면에서 상당히 발전했을것이다. 이모네가 도왔다고 하나 어쨌든 부모의 원이 없이 동생을 상급학교에 진학시킨 아들의 맏이다운 행동이 미덥고 대견스러웠다. 현구는 학과실력보다도 재력과 안면관계, 권세가 을 치는 입학경쟁을 잘 알고있었다. 현구자신이 청년기에 실력은 높았지만 돈이 없어 그처럼 바라던 상급학교문전에도 못 가보고 고달픈 독학의 길을 걸었던것이다.

그는 책상우의 《고문서색인표》를 집어들었다. 력대고문서의 책명과 발행년도를 밝힌 참고서로서 력사학전문가들에게 요긴한 안내서였다.

(녀석이 일을 하면서도 력사학을 자습하고있구나.…)

현구는 아들에게 배움의 길을 이어주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며 또다시 착잡한 생각에 잠겨들었다.

(하필이면 왜 험하고 힘이 드는 공로동을 했을가?… 그리고 공장에 다닌다는 애가 농촌엔 왜?…)

물론 친구인 종안이가 농약을 마셨다는 소식을 듣고 강한 의협심이 그를 농촌으로 떠밀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때문만이 아닌것 같았다. 수일은 촌으로 떠나면서 토지문제는 우리 집에서도 외면할수 없다고 했다고 하지 않는가.

불현듯 현구의 눈앞에 집을 떠날적의 일이 회상되였다. 그때 집안은 이중삼중으로 겹친 불상사에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황해도 벽성에서 살고있는 장인이 저수지사건으로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아 들것에 실려나왔고 현구자신도 그 사건으로 추방령을 받았다. 안해는 친정아버지와 남편때문에 눈물속에서 나날을 보냈고 아이들도 놀람과 근심에 싸여 학교에 못 나갔다.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던 어느날 수일이가 저녁무렵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지방에 가서도 또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그런 일이라니?》 현구는 되물었다.

《토지측량 말이예요.…》

《아버지가 피해를 입은건 왜놈때문이지 직업이 나빠서가 아니다.》

《하여튼간에 이젠 그 일을 그만두십시오. 내 생각엔 다른 일감을 구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아들의 눈과 얼굴빛은 이미전부터 아버지 직업을 못마땅하게 여기고있었다는것을 뚜렷이 말해주고있었다.

《?…》 순간 현구의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자기의 직무와 측량기술을 두고 누구나 부러워했지 그것을 시비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권세있는 왜놈관리와 지주들도 측량대를 든 자기앞에서는 어깨틀 낮추었었다. 그런데 오직 아들만이 불만을 표시했던것이다.

《아버지, 전 학우들을 보기가 부끄러워 그래요. 며전에 저의 딱친구인 김종안이가 중퇴했어요. 종안이네 땅이 옛날 리왕조의 부업지로 판명되여 몰수당했다고 해요. 생물학을 지망한 수재인데 땅을 빼앗겼으니 공부를 어떻게 할수 있겠어요.》

현구는 그날에 한 아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찌르면서 그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그것은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불명예스러운 과거가 가슴에 걸려 토지문제에 관여하게 된게 아닐가 하는 짐작이였다.

아들의 방 벽에는 획들이 굵직굵직한 이런 족자들도 걸려있었다.

《우리 민족은 죽지 않았다. 왜놈들을 멸망시키고 승리한 민족이다!》 어린 마음에도 치욕스런 과거를 되풀이할수 없어 가슴속에 새겨두자고 쓴것 같았다.

《제왕도 대포도 단두대도 진리는 꺾지 못한다!》

《로동계급은 사회적재부의 장조자이다!》

모두가 열혈칭년의 패기와 고결한 지조,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는 글발들이였다.

족자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구의 얼굴표정은 이를데없이 심중하였다. 수일이가 단순히 동생을 공부시키고 살림살이를 보태느라고만 공장로동을 한것 같지 않았다. 그 어떤 남다른 지향에 매혹되여 로동판에 뛰여든것 같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기의 젊은 시절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아들이였다. 현구자신은 그 시절에 오직 생존을 위한 전공지식을 습득하는데 온 정력을 깡그리 바던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겨레의 운명과 사회적정의에 선차적주목을 돌리고있지 않는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리해하여야 하는가?‥

현구의 깊은 상념은 뜨락쪽에서 수희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의해 흐트러졌다.

《언니, 가지마.- 언니가 없으면 엄마는 누가 치료하나?》

《어머니는 진정하시면 곧 회복돼. 자주 들리겠어.》

《성아언니, 우리 부모님이 탓할가봐 그러지요?》

《아니야. 송구스러워 못 견디겠어. 수희가 내 립장에 있어봐.》

현구는 그들의 말이 이상스러워 군기을 톺아올리며 마루로 나왔다.

《아버지, 성아언니가 집을 나가겠대요. 못 가게 하세요. 예- 오빠가 알면 성을 낼거예요.》

는 곡진한 마음으로 현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오빠가 성아언니의 말때문에 잡혀갔는가요? 아니지요. 오빠는 전날부터 촌사람들을 정했어요. 땅이 없어서 자기 동무도 중학을 그만두고 성아언니도 고학을 한다면서 오빠는 늘 괴로워했어요. 》

가 두둔하는데도 성아는 그냥 몸둘바를 몰라했다. 처녀대학생은 처분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숨을 죽이고있었다.

《수가 옳게 말했다. 대학생처녀의 심정도 리해된다. 단지 감옥살이를 하는 수일이때문이라면 우리 집에서 그냥 하숙을 하라구. 왜놈때의 토지제도는 심히 잘못된거야. 뭣보다도 이걸 똑똑히 명심하라구.…》

현구는 토지분쟁에 관여하게 된 수일의 립장이 짐작됐던만치 성아 너그럽게 대해주었다.

《성아언니! 보라요. 우리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지요. 우리 엄마 마음도 같거예요.》

는 신이 나서 성아를 방으로 이끌었다.

현구가 자매지간처럼 친근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안방에서 정녀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수야, 어디 있느냐?》

숨가쁜 어머니의 부름소리에 수가 얼른 안방으로 건너갔다.

현구도 뒤따랐다.

정녀는 방바닥을 짚고 침상에서 일어나면서 부탁했다.

《수야, 장농속에서 내 옷들을 꺼내다오.》

《어머니, 옷은 해서 뭘해요?》

《어서빨리 그 애가 살았는지 어쩐지 만나봐야지 어디 견디겠니?》

정녀는 기침이 나서 벽에 몸을 의지했다. 그리고 안타까이 하소했다. 그 애가 친일지주놈을 반대했다면 애국적소행이겠는데 그게 어떻게 죄로 되는가? 정녀는 머리를 들었다. 현구와 수가 진정하라고 타일러도 정녀는 조선사람치고 왜놈들을 복수하지 않고 어떻게 참아내겠는가, 복수를 해도 천백배로 해야지 않겠는가고 울분을 토했다. 하면서도 오해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것 같다고 했다.

현구의 생각도 별반 다름이 없었다. 수일이가 충돌과정에 법질서를 엄중히 위반한게 아닌가? 젊은 혈기에 경찰을 해거나 기물을 파괴하는것과 같은 과격한 행동을 했을수 있었으리라고 짐작하였다.

《여보, 내가 알아보겠으니 당신은 편히 눕소. 수야, 어머니를 잘 돌봐드려라.》 하고 현구는 안방에서 나와 동서네 집을 향해 걸음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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