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분노(2)

 

3

 

전대산은 주둔부대의 수속을 거쳐 귀빈각을 방문하였다. 조용한 2집무실로 들어선 대산은 몹시 반가와하는 기색을 띠였다.

《현형! 오래간만이요.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은…》 대산은 령남에서 언제 이리로 왔는가고 물으며 원탁에 고급술과 마른 안주를 차리였다.

《찾아주어 고맙네.》 현구는 첫 손님이라고 할수 있는 전대산이여서 속에 없는 말을 했다.

《이리 오시오. 상봉을 축하해서 한잔 듭시다.》

《이거 안됐네. 사무중이여서 에 합세.》

현구는 서울경찰의 출현이 달갑지 않았다.

《중앙에서 대감이 행차하니까 소인이 따라온거웨다. 현형이 군정에서 중임을 맡았다지요. 소인도 그 덕에 스미스각하의 특별임무를 받게 되였지요.》

대산은 자기가 특사의 신변안전을 책임졌다고 말했다.

《송구스럽구만. 여기 신변안전원들이 있는데 서울의 고위급경찰이 내려오다니.》

《허허, 현형은 군정의 특사가 아니요. 현형, 바람도 쏘일겸 좋은일을 하나 해주지 않겠소? 며칠 있으면 주원이 생겨서 처음으로 되는 경사가 있게 되오.》

대산은 남쪽에 조직되는 괴뢰립법기관에 출두하는 《민주의원》축하연이 열리는데 거기에 특사를 초대하더라는 말을 했다.

《내 그래서 왔는데 거절하지 말아주오. 특사가 연회에 석해준다면 고을의 영광으로 될거웨다.》

대산은 현구를 한껏 춰올리면서 그날에 데리러 오겠다고 하였다. 하면서 그날 현구가 부친과도 상봉하게 될거라고 하였다.

《부친?…》

현구는 전치도가 왜정때 저지른 죄행을 확인하지 못한것이 생각나서 속이 꿈틀거렸다.

《고목에 꽃이 피였지요. 나도 집에 와서 들었는데 아버님이 하지사령관의 감사까지 받았다는군요.》

대산은 거듭 연회에 참석해달라고 청하였다.

《시간을 낼수 있겠는지 모르겠소.》

현구는 외출을 제한당한 소리를 하려다말고는 적당히 대답해버렸다.

《어른들의 기대가 큰데 어긋나지 않게 해주오. 그대신 우리가 도와줄게 없겠소?》

대산은 특사가 하는 용무의 내용을 알았으면 하였으나 현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산은 몸값을 올리는 현구가 아니꼬와서 이마살을 찡그리고 지방의 심상치 못한 정세와 《군정》이 지휘하는 《시국정대책반》과 경찰이 농조의 준동을 제압하고있다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현형은 마음놓고 일을 하시오. 우리가 빈틈이 없도록 조처하고있수다. 우리의 손을 빌릴 일거리는 없겠소?…》

대산은 이번에도 시원한 대답이 없는 현구의 거동이 밉살스러워 골탕을 먹이기로 맘먹었다.

《현형은 늘 나와있으니까 수일이가 무슨짓을 하는지 모르겠구려. 그가 여기 주원에서 돌아더군요.》

(그 애가 여기 주원에?)

현구는 가슴이 렁했다. 집에서 쫓아낸 자식이긴 하지만 걱정되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 보기나 하고 하는 소리요?》

지요. 경찰의 눈은 속이지 못합니다.》

《모르겠소. 그 공장에서 일을 하고있을게요.》

《내 말을 영 믿지 않는군. 요즘 금속로조에서 주원농조에 스며든 자들이 한둘 아닌데 그들은 다 정적색갈이 진한것들이요. 하지만 수일이때문에 현형이 걱정할건 없소. 내가 옆에 있지 않소.》

대산은 이렇게 말한 슬쩍 제 속심을 내비쳤다.

《아들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집 땅문서나 늦잡지 말아주오. 아무래도 내가 현형의 집안일을 소 닭보듯 하겠소?》

《허, 당신의 수완이 보통 아니구려. 경찰관답소, 부친다운데도 있구.》

《현형은 나를 조롱하는게요?》

대산은 히물히물 웃었다. 현구는 겉과 속이 다른 그에게 을 뱉고싶은걸 겨우 참았다. 그대신 노한 목소리가 엄숙히 튀여나갔다.

《당신은 그 토지가 어떤 막을 가진 땅인가를 생각해보았소? 망한 왜놈의 강탈지를 돈으로 사들였으니 그게 조선사람으로서 할짓인가. 하늘이 무섭지 않는가. 부친은 친일주구여서 그렇다치고 법을 지킨다는 경인 자네까지 그게 뭔가. 여기에 나를 끌어들이자구? 그건 어림도 없네.》

《자기만이 애국자인체 하지 마오. 가소롭소.》

대산이도 가만있지 않았다. 현구는 빌붙기만 하던 지난날과 달리 거만하고 도고해진 전대산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누구에게 명줄을 걸고있소? 일본을 타승한 미국이 아니요? 우린 한배를 탄 사람들이란 말이요. 내 말이 틀리오?》

(흥, 한배를 다? 난 너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현구는 이런 말이 나가려는것을 꾹 았다.

《좋소. 그 땅이 그렇게 욕심이 난다면 내 스미스각하의 수락을 받아내겠소.》

대산은 그 이상 더 바랄수 없다는것을 느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대에는 어떻게 하겠소?》

《데리러 와주겠소? 와준다면 가겠소.》

현구는 주원의 형편을 제눈으로 직접 보고싶기도 해서 응하는 기색 보였다.

일단 《초청》하긴 했지만 전대산은 두루 생각되는바가 있는지 잠시 그를 주시했다.

(아무튼 군정특사가 가하면 연회는 더 성대해질것이고 아버지의 위신도 그만큼 올라갈것이다. 그런데 미군경비원들이 어떻게 나오겠는지? 그거야 내 신분을 내대며 입이 헤 벌어지게 꾹 찔러주면 되는거지.)

《고맙소, 내 모시러 오겠소.》

(너는 나를 리용하자고 하는데 나라고 너를 리용 못할줄 아느냐.) 현구는 밖으로 나가는 전대산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1

4

 

한낮의 해볕이 푸르러가는 밀보리밭을 따뜻하게 히고 하늘중천의 종달새가 전치도네 집안에서 울리는 풍악소리와 내기라도 하듯 구성지게 우짖어댔다.

논밭에서 돌아오는 농군들과 린근의 어른, 아이들이 풍악소리를 따라오다가 솟대문을 지키는 졸개들에게 쫓기우며 담장옆으로 밀려들 갔다.

하촌에서 올라온 리운학은 이마에 두른 무명수건을 조이였다. 지주와 담판할 때처럼 그의 낯색은 파리했고 광대뼈가 움씰거렸다. 그는 담장옆에 몰켜선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널직한 앞마당에는 몇대의 인력거와 차가 멎어있었다.

집안에서 한 경축연회가 벌어지고있었다. 이남민중의 민심이 북으로 쏠리자 《미군정청》에서는 남에서도 《자치》를 하자는듯이 《과도정부》 내오고 《민주의원》같은 립법기관을 조작하였다.

상촌의 전도는 심복들이 짜준 각본대로 의원인선놀음에 끼워 서울행을 몇번 하던 끝에 한자리를 얻어냈다. 심복들과 유지들, 졸개들이 교자상을 차지했고 유흥거리에서 데려온 양갈보들과 기생들이 술 다. 풍악이 연회의 분위기를 한껏 돋구었다. 주색에 기분들이 뜬 객들이 입을 모아 치도어른의 정계진출을 축하하였고 마을의 영광이라고 올리춰주었다.

현구는 특사대접을 받으며 전치도의 앞에 의젓이 앉아있었다. 그는 형식상 전치도에게 축하한다는 속에 없는 말 한마디를 하고는 취한척 하면서 오고가는 말을 주의깊이 들었다. 소득이 없지 않았다. 미국이《과도정부》요, 《민주의원》이요 하면서 나라의 영구분렬을 꾀하고있으며 북에서와는 달리 인민정권수립과 그 어떤 민주개혁도 반대하고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타고앉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 하고있다는것을 현실적으로 감수하였던것이다. 그리고보면 미군이 조선을 도와주러 왔다거니, 복잡해진 사태를 수습하고 조선정부가 서면 물러갈것이라거니 한것들은 다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이미 느낀바그대로였다. 물론 그런 느낌이 처음부터 그를 지배한것은 아니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스미스의 말을 곧이 들었고 그가 하자는대로 하면 자기의 가정문제도 그리고 나라의 독립문제도 다 원만히 해결될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가 미국놈들에게 기만당하고있다고 한 말을 들은 나라가 해방이 되였는데도 이 땅은 어째서 북반부와 다른가고 땅을 치며 통곡하던 권로인의 하소연을 들은 오늘에야 해방전의 토지소유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면서 략탈을 일삼는 스미스와 《미군정》의 검은 속심을 알아차렸고 이런 놈들이 결코 조선에 독립을 선사하지 않으리라는걸 깨달았다. 이제 더는 미국에 대하여 미련을 가질것도 없었고 기대할것도 없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구는 연회석에 앉아있기가 불편하고 괴로왔다. 생각같아선 연회상을 뒤집어엎고 전가네를 타매하고싶었다. 그는 울화가 치밀어 스스로 술을 따라서 단숨에 쭉 들이켰다.

이런 때 동구밖 아름드리 정자나무쪽에서 이인교가 부지런히 들어왔다. 요를 깐 교자바닥에 백발로인이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교군들이며 따라오는 칠팔명의 장정들모두가 잔뜩 흙먼지를 썼으며 피로하고 흥분한 기색들이 떠돌았다. 기차에서 내린 그길로 교자를 메고 허위단심 촌길을 재촉해온 모양이였다.

교자바닥에 한쪽다리를 뻗친 로인의 소담한 채수염과 끝처럼 들린 흰 눈섭이 마치도 마을로 내려오는 산중의 신선로인을 방불케하였다.

대문앞에 이르러 교자가 잠시 머뭇거리였다.

《아전놈의 집이 적실한가?》

《예, 그렇습니다.》

교군이 아뢰였다.

《음- 주인을 찾게 없다. 안채로 짓쳐들라!》

로인의 령을 받은 장정들이 졸개들을 밀어치우고 계단을 올라 대문과 그안의 중문을 제껴놓았고 풍청대는 안뜨락으로 가마가 사정없이 들이닥다. 함께 온 장정들이 당황하여 덤벼치는 졸개들이 얼씬 못하게 가마를 호위하였다.

《게 누가 없느냐?-》

로인의 호령이 풍청거리는 분위기를 제압하듯 위엄있게 울리였다.

큰방의 심복들이 거나한 얼굴들을 하나, 둘 내밀었다. 그들은 예상밖의 광경에 혀를 차며 골살을 찌프렸다.

대청마루로 나온 치도가 한손을 허리에 짚고 배를 잔뜩 내밀었다.

《고현놈들, 어른들의 경사에 함부로 끼여들다니? 큼 사라지지 못할가!》

치도는 뜬 두눈으로 아래쪽의 가마를 거만스레 흘겨보았다.

다음순간 치도의 비만한 몸체가 칠거렸다. 익은 모습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세월은 흘러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세번도 넘어선 그 기나긴 나날에 몸은 비록 늙어 흰수염이 자라고 두볼의 주름살은 깊어졌으나 훤칠한 로인의 이마와 준수한 눈매가 생소하지 않았다.

참사람 되라고 어린시절부터 자기의 까막눈을 틔워주고 배워준 스승의 모습이였다. 일찌기 출세의 길을 단념하고 학당을 린 강직한 선비로서 기울어진 국운을 건지려고 용약 싸움에 나섰던 애국지사였다.

치도는 갑자기 혀가 굳어지며 두무릎이 사시나무 떨듯 했다. 꿈결에 얼씬만 해도 오금을 못쓰게 하던 옛 스승, 왜놈의 《토벌》에서 살아남은 한진사가 분명했다. 사색이 된 치도는 속으로 가슴을 다. 보약과 금테안경으로 변장하고도 안심되지 않아 자리를 옮겨가던 끝에 서해변의 한적한 농촌으로 와서 백발이 되도록 호강해온 전치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생벼락이 어디에서 떨어졌는가? 치도가 두눈을 까집고 아무리 내려다보아도 왜놈의 《토벌》에서 살아남은 한진사가 틀림없다. 간이 콩알만 해진 치도는 얼혼을 잃고말았다. 새 상전 섬기며 정계에까지 발을 내밀고 야심껏 솟아보자던 치도로선 통탄하지 않을수 없는 노릇이였던것이다.

《이놈! 그 더러운 짝을 들지 못할가! 네놈이 전치도가 적실한가?》

치도는 허둥지둥 뜨락으로 내려와서 땅바닥에 넙적 엎드렸다.

《존위어른께서 왕림하셨습니까? 이게 얼마만입니까. 꿈인지 생시인지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치도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간 옥체만강하옵시고 네도 모두 안녕들 하신지요.》

치도가 황황히 안채로 모시려하자 한진사가 교자바닥을 굴었다.

《이놈! 야차같은 놈아, 이 늙은일 똑똑히 보거라.》

한진사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뜨락을 들었다.

치도는 자라목처럼 목을 움츠리며 죽은 시늉을 하였다. 하늘이 낮다고 우쭐렁대던 치도가 벌벌 기는 꼴을 보게 된 대의 심복들과 봉당의 졸개들은 아연실색하였고 안뜨락으로 밀려든 마을사람들은 깨고소해하였다.

오직 대산이만이 속이 까매서 바깥의 변고에 귀를 기울였다.

(부친이 립신양명하는 경축연에 이게 어찌된 판국인가?!) 대산은 그것이 우연한 일치같지 않아 온 신경이 바늘끝같이 살아움직이였다.

집안의 막사를 누가 알고있는가? 향란은 종적을 감춘지 오랬다.

그럼 은실이가? 은실은 수일이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러니 은실이가 그들에게? 대산은 은실을 스미스에게 섬겨바치려던 일이 튄 일단 수일의 집에 피신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없지 않았으나 그때 단호하게 손을 쓰지 못한것이 몹시 회되였다. 은실은 보나마나 억울하고 분했던 심정과 함께 제 애비의 비행과 죄행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말했을것이 분명했고 그 말을 들은 수일이가 불원천리하고 지리산을 다녀와서 이곳과 짜고든것이 분명했다. (이놈! 네놈이 끝내 선손을 썼구나-) 대산은 하촌을 돌아오는 길에서 본 밀짚모자가 상기되면서 속이 벌컥 뒤집혔다. 행동대를 풀어서 타지의 젊은이와 농조의 종안을 잡아내라고 불호령을 내렸으나 지금껏 잡아내지 못한것이 분했다.

안뜨락에서 한진사의 격노한 목소리가 모여든 사람들을 격동시켰다.

《이 늙은이는 네놈들의 죄행을 세상에 고발하기 전에는 죽을수가 없어 지금껏 살아왔다. 네놈은 천추에 용서받지 못할 대역도한 역적죄를 아느냐!》 로인의 수염이 격랑을 일쿠었다.

《진사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 진사님께서는 덕망이 높으신 저의 스승이 아니십니까.》

《뭘? 네놈의 스승… 이 늙은인 그것을 평생 욕으로 알고있다.》

《존경하는 진사님, 불효막심한 이놈은 비록 역신의 몸이오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스승을 공경해왔습니다.…》

치도의 후안무치한 행실에 지리산사람들이 치를 떨었다. 로인이 손 들어 억제해도 분노한 그들의 주먹질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치도의 안경이 산산쪼각이 나고 목덜미와 때기에 주먹자리, 발길자리, 지팽이자리가 어지럽게 났다. 치도의 패거리는 군중의 격노한 기상에 눌리워 허세만 부리였다.

교자의 한진사는 국난시기에 전도가 저지른 반역행위와 죄악상 분개한 어조로 공개하였다.

1910년 8월 29일, 망국의 국치를 당하여 경향각지 우국지사들은 자결로써 애국충정을 과시하였고 분노한 군중은 매국노들의 집들을 습격파괴하고 불을 질렀으며 손에손에 무기를 잡았다.

지리산지방에서도 선조의 모범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왜놈주둔지와 《토벌대》를 무시로 징벌하였다. 적아간의 접전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져 싸움속에서 낮과 밤이 흘러갔다. 마을의 학당 스승인 한진사는 대렬보충과 물자보급을 맡아 수행하였다. 그러던중 련락원인 전치도의 변절로 타격을 받게 되였다. 고을에서 아전노릇을 하다가 의병대의 련락원이 된 전치도는 변절에 그게 아니라 사람들의 피난지와 의병대지휘처를 왜놈에게 대주었고 길안내까지 함으로써 무리죽음을 내였으며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것이다. 그때 한진사는 구사일생으로 피신하긴 하였으나 두다리를 상하여 전라도의 친척집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였다.

《이놈, 네놈이 밀고해서 죽은 의병들과 고향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억울하게 희생된 그들속에는 네놈의 일가친척들도 적지않다. 네놈이 추워할세라 배고파할세라 거들어주고 아껴주었던 네놈의 외할아버지가 끌려가면서 뭐라구 했는지 아느냐? 네놈을 잡거든 땅에 묻지 말고 각을 떠서 짐승의 밥이 되게 하라고 했다.…》

치도를 탄핵하는 한진사의 기상은 엄숙하고 준절했다.

《저놈을 당장 때려죽이라! 동족을 해친 친일역적이다!》

치도에게 달려든 사람들속에는 이곳 사람들도 있었다.

치도때문에 남편들과 자식들을 《징용》과 《징병》으로 빼앗긴 유가족들과 친척들, 소작인들이 치도에게 또다시 뭇매를 안기였다.

《그러니 여러분네들, 생각들 좀 해보시오. 우리가 어떤 놈에게 조상의 땅을 빼앗기고 뼈빠지게 소작살이를 하고있는가 말이요!》

격노한 군중앞으로 나선 리운학이 참을수 없는 분격을 터치였다.

《그래 우리가 오늘에 와서도 민주의원감투를 얻어쓰고 미국놈의 개질을 하자는 친일, 친미역적놈에게 매여살아야 하겠소?…》

《아니요. 우린 상촌의 지주가 그런 놈인줄은 몰랐소. 당장 법에 고소하고 우리 땅을 아냅시다.》

《그럴게 있소? 이 자리에서 우리가 요정을 냅시다. 우리 손으로 마의 화근을 뿌리 뽑아버립시다!》

이때에 교자의 한진사가 가마기둥을 잡고 웨치였다.

《마어르신네들- 우리 지리산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사이다.》 한진사는 이렇게 말한 치도에게 눈총을 쏘았다.

《네 듣거라. 우린 네놈을 잡아다 고향에서 심판하기로 하였다. 이건 네놈때문에 죽은 애국자들과 손들이 우리에게 위임한 간곡한 당부다. 네놈도 마땅히 천대와 학대속에서 자란 유복자들과 유가족들앞에서 죄를 빌고 처단을 받아야 할줄로 안다. 자고로 나라와 겨레앞에 지은 죄는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하여도 용서받을수 없는것이다-》

만신이 된 치도는 엎드린 들었는지 얼는지 굳어져있었다.

지리산장정들이 바줄을 들고 나서자 졸개들이 막아나섰다. 그 바람에 치도를 둘러싸고 격투가 벌어지고 일진일퇴의 쟁탈전이 치렬해졌다.

한진사의 교자에로 다가온 하촌 리운학이 머리를 숙여 례의를 표시하였다.

《로인님, 원로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이곳 농조의 인사 드립니다.》

《고맙수다. 그런데 우리 범골에 왔던 젊은이는 왜 안 보이오? 어서 만나게 해주시오.》

한진사는 운학의 팔을 당기며 흰 눈섭을 부르르 떨었다.

《예, 수일군은 여기에 와있습니다. 나설수가 없어서 이 사람이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수일군은 한진사어른께서 오신 소식을 듣고 매우 감동되였습니다. 년로한분이 머나먼 길에 수고가 어지간하지 않았겠다면서 로인님의 신상을 몹시도 걱정하고있습니다.》

한진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처럼 고마운 젊은이를 못 보다니?》

먼길을 찾아온 젊은이를 반겨맞았던 그때가 새삼스러워 한진사는 그 이상 입을 열지 못하였다.

지리산사람들의 해묵은 원한을 풀어주자고 멀리 서울을 떠나온 젊은이는 기나긴 로상에 발은 부르트고 산중에서 끼니도 건네가며 허위단심 달려오느라 두눈이 한길이나 들어가있었다. 한진사는 이 나라의 젊은이다운 갸한 의협심에 몹시도 감복하였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강한 정의감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었다.

《젊은이에게 전해주오. 그때 약속한대로 역적놈을 고향으로 끌고가 놈의 죄행을 실토하게 한 다음 희생된 애국자들과 유가족들의 이름으로 처단함으로써 맺힌 원한을 풀어주자고 한다고 말이요.》

한진사의 말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반역자들에게는 용서도 시도 없다는것을 보여주자는 심정을 담은것이기도 했다.

문득 경찰들이 대문안으로 쓸어들었다. 그들은 몸이 묶이운 치도를 들어내다 짐짝처럼 적재함에 올려던졌다.

극도로 당황망조한 전대산이가 뒤문으로 빠져 짚차를 타고 달려가서 긴급출동시킨 군경찰들이였다.

《전치도는 친일역적이다. 살인자다. 경찰은 간섭말라! 우리가 처리하겠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경찰을 둘러쌌다.

인솔해온 경찰이 한진사에게 말하였다.

《우리 관할하의 사건인만치 군에 가서 협의합시다. 관계자들도 함께 갑시다.》

《안된다! 죄는 지은 고장에서 취급하여야 한다.》

한진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군중과 경찰간의 대결이 격렬해졌다. 하지만 맨손으론 이쪽에서 당해낼것 같지 못했다.

한진사는 군으로 가서 서장도 안된다고 하면 도에라도 가자는 심산으로 같이 온 일행과 도를 실은 적재함에 올랐다.

변장을 하고 사태를 지켜보던 현수일은 랑패를 당하는것 같아 달려나가려고 했다. 종안이가 급히 그를 잡았다.

《자중하게, 앞으로 있을 큰일을 그르치지 않게!》

현수일은 마지못해 그와 함께 뒤산으로 몸을 피했다.

현구는 가슴이 련했다. 한진사도 장해보였고 한진사에게 치도의 행처를 알려준 아들도 장해보였다. 그는 방금 리운학과 한진사의 말 통해 수일이가 지리산마까지 찾아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수일아, 네가 이 애비보다 훨씬 낫구나. 그런데 너를 집에서 내쫓았으니 이 애비가 정말 망녕된짓을 했구나.)

현구는 쓰리고 아픈 가슴을 부둥켜안고 허허청 전치도의 집을 나섰다.

연회장은 수라장이 되였다.

전대산은 애비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혼수상태에 빠진 치도는 눈도 뜨지 못하였다. 그의 기름진 얼굴과 짧은 목덜미는 온통 터지고 멍이 들어서 성한데라곤 찾아볼수 없었다.

대산은 억이 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주원바닥이 좁다고 호령질을 하던 애비가 정무대에 몸을 내대인 《경축날》에 호된 징벌을 받고 마지막숨을 쉬고있는것이다. 생토록 소작인들을 구박하고 고혈을 짜내고 세상 고약한짓들을 다해온데다 역적질까지 저지른 중죄값을 치르고 걸레쪽같이 너부러진 저세상으로 가고있었다.

대산은 돌연히 오금이 저려나서 식은땀으로 온몸을 적시였다.

한켠으로는 복수심으로 온몸을 불사르고있었다. 당장 경찰을 내몰아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고싶은 욕망으로 가슴이 부질부질 끓어올랐다. 아직은 아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스미스가 관심하는 중대한 일을 그르칠수 있는것이다.

(가만, 내가 이러고있다니, 현구를 내버려두고.…)

황중에 이런 생각이 든 전대산은 의사에게 신세갚음을 든든히 할니 아버지를 꼭 살려달라고 신신당부한 황황히 차에 올라탔다.

(정신두 참… 왜 현구에게 《신변호위원》 붙여놓지 못했더란 말인가.)

차에 올라탄 대산이가 병원정문밖으로 빠질 때 전치도는 불현듯 감고있던 두눈을 부릅뜨고 천정을 노려보다가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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