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분노(2)
1
귀빈각은 읍거리에서 얼마간 떨어진 군경찰서후면 언덕에 자리잡고있었다. 널직한 정원에선 노가지와 측백나무, 고양목 같은 상록수들이 자라고 높직한 담장안으론 침엽수와 활엽수들이 솟아올라 양옥채를 가리우고있었다. 주원에 출장나온 서울이나 도의 고관들이 숙식하는 2층양옥채였는데 해방된 이즈막에 와서는 《군정청》의 특사가 첫 손님이였다.
귀빈각의 한방을 차지한 현구는 스미스가 보낸 군중모임에서 발표할 기본문건들을 접수했다. 그는 뜻밖에도 눈에 익은 문건들과 맞다들었다. 한건은 주원하촌 바닥개간지에 대한 전치도지주의 소유권확인서였고 다른 두건은 왜놈들의 수탈지를 전치도가 매입한 증서와 그에 대한 공증인의 확인증서였다.
순간 현구의 눈에서 불이 일었다. 일전에 그 문건들을 론의하는 마당에서 스미스에게 자기의 명백한 립장을 밝혔었다. 왜놈들의 강탈지를 매입한다는건 곧 패자에게 선심을 쓰는 치욕이라고, 그래서 그후 전치도의 아들인 전대산의 검질긴 요청에도 동의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상정조차 될수 없는 반역적인 이 문건들을 놀랍게도 군중모임의 기본문건으로 뻐젓이 내려보냈던것이다.
(신한공사의 적산토지들을 지주, 투기업자, 모리간상배들에게 비밀리에 팔아먹은자들, 이제는 일본강탈자로부터 매입한 토지까지 개인소유지로 합법화하려고 하다니… 그들은 이 땅에 지난날의 봉건적인 토지소유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것이며 대토지소유자들의 리익을 지켜주려 하고있는것이다. 그들에겐 농군들의 요구와 리해관계엔 애당초 관심이 없다. 그것을 법화한 이따위 문건들을 《군정》특사의 명의로 군중모임에서 공포하게 하고 그것을 남조선 전역의 시범으로 만들겠다구?…)
현구는 경북과 경남지역에서 느꼈던 의분이 되살아나며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그는 전화기를 움켜쥐였다. 그리고는 주둔군 장교에게 스미스와의 접견을 지급으로 요구했다.
한참후에 장교한테서 답신이 왔다. 스미스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 부를 때까지 군경의 방비에 의거해서 모임준비를 다그치라고 했다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현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2
《경찰청》의 전대산처장은 지하밀실에서 극비료해자료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있었다. 3월총파업에서 주동을 논 민주단체들과 핵심인물들을 확정하고 경찰력을 발동하여 그들을 일망타진하자는것이였다.
10월인민항쟁이후 전국적으로 파급된 구국항쟁에서는 반미적성격이 가일층 농후하게 나타났다. 반미투쟁은 각지에서 미군의 만행들을 보복, 징벌하는 대담한 투쟁에로 번져갔다.
극도로 당황망조한 《미군정청》은 폭압을 전담하는 평정대책기구를 서울과 각 도에 내오고 거기에 전시법에 맞먹는 무제한한 권한을 부여했다. 대산은 애국적인 조직들과 인물들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진압할 대안들을 확정해나가고있었다.
갑자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밀실로 걸려온 비상전화여서 대산이 자기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미스터 전, 본관은 스미스요. 속히 나에게 오시오.》 대산은 예상밖의 전화를 받고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은실을 노리개로 제공하려던 일이 실패한 후로 속을 태우며 스미스의 눈치만 보아오던 그였다. 뜻밖에도 스미스의 부름을 직접 받은것이다.
그는 검토하던 극비자료를 대리인에게 넘겨주고 《군정청》으로 장달음을 놓았다.
넓은 방을 차지한 스미스는 숨이 차하는 대산을 훑어보고 자리를 권하였다.
《처장, 춘부장께선 건재하시오?》
대산은 역시 생각밖이여서 어리둥절하였다.
사람잡이에 몰두하던 대산은 가쁜숨을 내불었다.
《그간 시간을 내지 못해 찾아가보지 못했습니다.》 대산은 토지소유증서들중에서 미결된것들이 있어 애비를 피하고있었던것이다.
《멀지도 않은데 그러면 안되지. 듣자니까 요즘 의원출마준비도 한다던데.》 하며 스미스는 등받이에 몸을 제끼였다. 지난해부터 종종 전치도가 보내는 진상품을 받은터였다. 신세갚음도 할겸 전치도의 미결건들을 해결해주자고 기회를 노리는중인것이다.
스미스는 호출한 용건에 앞서 대산에게 부친을 만나면 자기가 고려백자기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전하라고 했다.
《고려백자기라니요? 백자기라면 조선봉건왕조때의것을 일러주는…》
《조선봉건왕조고 고려고간에 유명하다는 그 백자기 큰 꽃병을 보고싶소.》
《그 값이 보통 아니지만 부친께 등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스미스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표정을 고치였다.
《처장, 본관은 처장에게 책임적인 과제를 맡기자고 하오. 이건 당신만 알고 집행해야겠소.》
스미스는 누가 엿듣는가를 살피듯 문쪽을 힐끗 바라보고는 명령조로 말하였다.
《처장은 당장 주원으로 내려가야겠소. 그곳에 가서 우리 군정특사의 신변을 보호해야겠소. 주원에서 토지소유문제와 관련된 모임이 진행되오.》
스미스의 눈빛이 음흉스레 번뜩이였다.
그는 현구가 경북과 경남에서 출장일을 볼 때 그의 사업동향에 대한 신고들을 한두건만 받지 않았었다. 《미군정청》특사가 토지협잡건들에 눈을 밝히고있는데 그 결과가 우려된다는 내용들이였다. 그런데 그 협잡건들에는 스미스 자기가 관여한것들도 적지 않았다. 현구가 부정협잡행위를 계속 파고든다면 스미스자신이 난처한 립장에 빠질수 있었다. 어쩌면 《미군정청》의 명예를 훼손시킨 책임을 지고 파면될수도 있었다. 스미스는 빨리 선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노란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군정장관을 찾아갔다.
그를 파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은바 있는 군정장관은 어두운 얼굴에 살기를 띤 스미스를 보는듯마는듯 하다가 이윽고 몇건의 신고장을 책상우에 내놓았다. 그 신고내용들은 스미스가 신고받은것들과 일맥상통했다.
《그 신고장들을 보고나니 감상이 어떻소?》
군정장관은 조롱하듯 물었다.
《장관각하, 면목이 없습니다. 현구란 놈이 우리뒤를 캘줄은…》
《그건 당신이 그를 잘 길들이지 못했기때문이요. 우리에겐 그런자가 필요없소.》
《각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조사업을 중단시키고 개인토지소유문제를 척결하기 위한 군중모임에 출연시켜 리용하고는 제껴버리자고 합니다. 일제시기 토지문건들도 거의 수복한것만큼 이제와서 현구라는 존재가 더는 필요없습니다. 그자를 국장자리에 그냥 놔두면 오히려 우리가 화를 입을수 있습니다.》
군정장관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스미스를 눈여겨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스미스, 당신에게 그런 지략이 있는줄은 몰랐소. 잘해보시오. 그래야 우리가 이 땅의 모든 경제명맥을 틀어쥐고 우리 미국에 예속시킬수 있소. 지금 공장, 기업소들에서 로동자들의 말썽이 많은데 우린 그것도 짓눌려버리자고 하오. 우리 미군정이 실시하는 일에 의견을 가지거나 시비하는자, 뒤를 캐는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숨통을 비틀어버려야 하오. 이 땅의 주인은 우리 미군이요. 그걸 명심하고 당신 결심대로 하시오.》
《장관각하, 고맙습니다.》 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스미스는 곧 현구의 소조사업을 중단시키고 그럴듯한 명분을 세워 주원으로 보내는 한편 군력과 경찰력을 발동하여 현구가 어쩔수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할수 있게 흉계를 꾸미였다.… 대산이를 지켜보는 스미스의 눈빛은 살기를 띠고 번뜩거렸다.
그는 어금이를 꾹꾹 깨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처장, 본관의 말을 채심해 듣소. 우리는 군정특사를 믿소. 특사가 어김없이 군정의 방침대로 모임을 집행할것이요. 모임이 다르게 전도되는 사태가 빚어질수 있소. 그때에는 처장 당신의 결단에 맡기겠소. 무엇을 념두에 둔 말인지 알만 하오?…》
대산은 벌떡 일어나 차렷자세를 취하며 목청을 돋구어 소리쳤다.
《참사관각하, 멸사봉공하겠습니다.》
《본관은 당신의 장끼를 의심하지 않소. 모임이 우리 미국에 충직한 당신과 부친에게 행운을 가져다줄거요. 집행하시오.》
스미스는 행운이라는 말에 의의를 부여했다.
비밀지령을 받은 대산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바라고바라던 충복의 《영예》가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청사로 돌아온 즉시로 수하들을 선발해서 과업을 주고 그길로 주원으로 떠났다. 자기가 맡은 특사가 누구인지, 행사란 어떤것인지 설명을 듣지 못하였다.
주원으로 내려온 대산은 집에부터 들리였다. 스미스의 호의로 보아 그간 아버지가 어지간히 뒤거래에 품을 들인것 같았다.
사랑채앞에는 여러 컬레 신발들이 놓여있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마중나온 안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채로 들어갔다. 안방의 전치도는 청지기의 전달을 받고도 그냥 장죽을 물고있었다.
《아버지,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집에 어른들이 오셨군요.》
치도는 아들의 인사말에 도끼눈으로 대했다.
《고현 놈, 무슨 낯으로 왔느냐? 네놈이 계집질에 쓸 돈은 없다. 더는 손을 내밀지 말라!》
치도는 독같이 성을 내며 장죽을 내흔들었다.
《남들은 모두 토지인가를 받아내는데 네놈은 도대체 뭘 하느냐?》
치도는 두해째나 개간지소유권문제로 하여 부대끼는데다 왜놈들에게서 사들인 두건의 방대한 토지문제가 미결되여 속을 태우고있었다.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듣기 싫다. 이놈, 그래 양놈한테서는 무슨 기별이 없느냐? 없다구? 쯧쯧, 양놈이란게 왜정때를 찜쪄먹게 논다니까.》 하고 치도는 옛날만 못하다고 투덜거리였다.
《아버지, 참사관이 안부를 물었어요.》
《뭐라구? 그따위 치레말로 굼때자는거냐?》
《참사관도 생각이 있는것 같아요. 큼직한 조선봉건왕조백자기꽃병을 마련해달래요.》
《엉?! 큰 꽃병을… 흥, 그래도 그게 귀물이란걸 아는게지.》
치도의 흰 머리가 볼상없게 흔들렸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같아 스미스에게 바친 뢰물들이 아까왔던 모양이다.
《가산을 팔아서라도 구해주라요.》
《그게 진품이면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기나 하냐? 실없는 소리 작작하고 물러가라. 제 집일도 못하는 경찰자식은 소용없다.》
《그러게 아버지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시라는거예요.》 대산은 의원출마를 내비친 스미스의 말을 상기하면서 계속했다.
《아버지, 화만 내시지 말고 기다려보세요. 행운이 차례질지 알겠어요.》 이런 정도로 암시만 하는 대산의 얼굴에 종잡기 어려운 밝은 웃음이 비끼였다.
《행운? 흥… 벼락이나 안 맞으면 천행이다.》 치도는 역설을 하면서도 짚이는게 있는지 아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 애야, 하나 묻자. 정부가 남쪽에만 선다는 소리가 정설이냐?》
《내 생각엔 미국이 우선 남에 정부를 세우고 〈자유세계〉를 북쪽으로 넓혀가자는것 같애요.》
《음, 정설이라- 그렇다면 이 애비도 헛수고를 하지는 않았군.》
얼마전부터 치도는 《과도정부》의 립법기관으로 될 《민주의원》에서 한자리를 따내자고 서울에 올라가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것이다.
《공연히 돈만 쓰는게 아닌가 했는데 그럼 됐다. 친일했던 사람들도 나선다니 내가 뭐가 모자라서 빠지겠니. 이 애비는 한몫 더 쓰자고 한다. 미군기지 가까이에 유흥장을 몇개 더 꾸려놓으면 알 도리가 있겠지.》 치도는 장죽으로 재털이를 두드리며 매우 흡족해하였다.
《너도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토지증서에 도장을 받아내거라.》 하고 치도는 이번에 자기가 서울을 다녀오면 연회를 크게 차리겠노라고 했다.
대산은 기분이 둥 떴다. 스미스가 한 행운이란 말이 실없는 소리가 아닌것 같아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이제 보니 아버님이 보통사람이 아니군요. 의원으로 나서시겠다니 집안에 경사가 겹쳐나겠어요. 참 아버지 고을에 군정특사가 내려왔다지요?》
대산은 흥이 나서 말했으나 치도의 반응은 그와 달랐다.
《야, 말도 말아라. 유지들이 귀빈각으로 몰려갔다가 정문보초에서 쫓겨왔다. 어디서 뭘 해먹던게 왔는지, 원…》
《특사의 신변때문에 그러는거예요. 이제 제가 만나겠어요.》
《너라구 되겠느냐. 그래 왜 왔다더냐? 그리구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아는게 없느냐?》
대산은 대답대신 비죽이 웃어보이고는 안방을 나왔다. 그는 대청을 건너 사랑방문을 열었다.
《어이쿠, 의원나리의 자제분이 왕림하셨군.》
《마침이군, 이리 나오게. 기별이 간 모양이지.》
주안상을 끼고앉은 린근의 지주들과 유지들이 저마다 대산을 반가이 맞아들였다.
대산은 전전긍긍해하던 집안에 떠도는 활기에 기분이 좋아서 술상을 같이하였다.
나비넥타이를 한 상고머리가 먼저 고을에서 난 의원나리를 기쁘게 해주려고 의견들을 모으던중이라고 하였다.
《고맙습니다. 국사에는 미숙한 아버님이신데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대산의 인사말에 옆에서들 훈수를 들었다.
《아버님의 공로를 아직 모르나? 의원나리가 미군기지부근에 유흥장을 여러개나 세워서 하지사령관의 감사까지 받으셨다네.》
《그렇습니까!》 대산은 그 소리에서 왜놈들을 섬기던 아버지의 옛날 솜씨를 다시 보았다.
대산은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여기서는 군의 치안관계자들이 앞으로 있을 연회를 위하여 대책들을 토의하고있었다. 전치도는 항간의 평이 몹시 나빠서 그가 《의원》으로 나섰다면 소동이 일어날것은 불보듯 명백했던것이다. 미군기지에 비행장이 서면서 고을의 반미기운이 더욱 고조되여가고있었다.
《위험대상과 주목되는 인물들은 장악되였습니까?》
대산의 질문에 군경찰서장이 설명했다.
《군농조와 청년부장인 김종안이 문제지요. 료해한데 의하면 김종안이가 서울의 딱친구와 련계를 맺고 활동하는것 같습니다.》
《김종안청년부장이라구? 서울의 딱친구란 누굽니까?》
대산은 군의 실정을 손바닥안에 쥐고있는듯이 주어대는 서장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는게 없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증대되는 반항세력에 비하면 우리 경찰력은 보잘것이 없지요. 주동분자들에 힘을 넣고있는데 그것들도 미꾸라지처럼 어떻게나 잘 새여나가는지 골탕만 먹고있시다.》
서장은 그러고나서 체면을 세우느라 주를 달았다.
《종안의 딱친구라는게 지난해 우리가 잡아서 서울로 후송한 그 현수일이란 청년로동자가 아닌가?…》
서장은 자신이 없었던지 술상의 잔을 만지작거리였다.
《음, 경찰관다운 추리요. 아주 중요한 단서요. 그 현수일이 틀림없을것 같소.》 대산은 행방을 찾고있던 수일의 흔적을 여기에서 포착하게 되자 눈초리가 날카로와졌다.
《그 젊은 로동자가 담도 크군. 한번 혼이 났는데도 아직까지…》
서장은 지나친 수일의 담기에 충격을 받는 동시에 이곳에서 벌어질 모종의 사건에 긴장되는 마음을 어쩔수 없어하였다.
대산은 거퍼 술 두잔을 마시였다.
《서장, 무슨 수를 써서든 김종안을 낚아야겠소. 그걸 놓쳤다간 랑패를 볼수 있소.》
대산은 술자리를 물리고 일어섰다.
《나는 전적으로 당신들의 수완을 믿소. 군정특사도 참석할수 있는만치 축하연에 만전을 기하길 바라오.》
대산은 치안관계자들에게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먼저 온 수하들의 공작정형을 청취하였다.
《혹시 여기에 현수일이라는 서울청년이 나타날수 있소. 만약 그를 보면 무조건 체포해서 군경찰서로 압송하고 나한테 알리시오.》
대산이가 수일을 손에 넣는것은 지체할수 없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그것은 은실을 스미스에게 섬겨바치려던 자기의 추악상에 대한 고발자를 없애는 동시에 그를 미끼로 집안의 토지소유지문제를 현구에게서 해결해낼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대산은 귀빈각방문도 미루면서 우선 군내 여러면들과 리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군내의 불길한 분위기와 특히 외지의 인물들의 래왕에 주목을 돌리였다.
어느날 대산이 차를 타고 하촌에서 군으로 돌아갈 때였다. 차창으로 고개마루에 오른 한 농군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비껴들었다. 밀짚모자에 훌렁한 저고리를 입은 젊은 농군이였다. 그가 얼굴을 돌리는 순간 어딘지 낯이 익어보였다.
차림새는 일반농군이나 걸음새와 몸동작에서 도회지냄새가 났다. 키도 몸체도 수일이 비슷하였다.
10월항쟁때 긴나무다리를 돌파해나가던 대오속에서 수일을 알아본 대산의 눈이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수일이다! 속도를 높이라!》
차를 내달려 언덕마루로 오른 대산이 두눈을 흡뜨고 주위와 린근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차소리를 듣고 숲이 우거진 산속으로 사라진 그를 찾아낼길이 없었다.… 값진 먹이를 놓친 대산은 주먹을 부르쥐고 미친놈처럼 돌아갔다.
무성해진 숲을 쏘아보는 그의 독살스런 눈에서 퍼런 불이 펄펄 일었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며 이발을 갈던 그의 눈에 한찰나 반디불같은 린광이 번쩍였다.
먹이를 잃은 손실은 막대했으나 먹이를 발견했다는 그자체로써도 소득이 정 없는것이 아니였던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현구를 휘여잡을수 있겠다는 타산이 그를 흥분시켰다.
(제놈이 날아갔겠는가? 땅속으로 잦아들었겠는가? 뛰여야 벼룩이지.) 이를 갈며 군으로 올라온 대산은 수사망을 물샐틈없이 조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