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장  분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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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공사 토지관리국 국장으로 취임된 현구는 며칠째 담배 한대 여유있게 피우지 못했다.

《군정청》과 스미스의 신임이 커서만이 아니였다. 《군정》의 포고령에 의하여 토지소유관계가 바뀌게 되면서 농촌에서는 걷잡을수없는 일대 란이 빚어지고있었다. 《군정청》의 인준을 받은 신한공사의 관할지만 해도 거기에는 허점들과 빈구석들이 많았다. 그것들을 헤집어내여서 다문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암투가 그치지 않고있었다. 공사산하의 각 지사들과 출장소들에서 토지증서의 평정요구하여 의견서들, 확인서들, 신소들을 첨부해서 매일같이 관리국으로 보내오고있었다.

현구는 그것들을 깐깐히 검토하여 그중에서 위조문건과 협잡문건들을 갈라내는 한편 수하들을 현지료해지로 파견하였다. 그는 전화가 되는 지방들과는 전화상으로도 협의를 진행하였다.

점심을 마친 그길로 사무탁을 차지한 그에게로 녀서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서기의 손에는 안전면도와 손거울이 들려있었다.

《국장님, 아무리 바쁘셔도 면도는 하셔야겠어요. 사모님이 보고 헛갈리지 않게요.》

문건을 번지던 현구는 머리를 들었다.

두눈은 충혈되여 뻘갰고 턱에는 수염이 수풀처럼 덮여서 어찌보면 류인원의 모상을 방불케 하였다.

《허- 내 한생에 요즘처럼 다망해보긴 처음이요.》 하며 면도기받아든 현구의 에는 과로한 기색이 력연하였다.

재세를 부리며 틀만 차려도 될 그였지만 그새 정말 일에 파묻혀 지내왔다.

그 까닭은 이러했다.

현구가 굼뜨게 진척되는 토지조사문제로 하여 농산국장과 한 론쟁하고있을 때였다.

기척도 없이 국장실로 양풍이 진한 젊은 녀인이 들어왔다. 무릎을 넘긴 짧은 치마, 불룩한 젖가슴, 실한 엉치… 굽높은 구두가 가락맞게 방바닥을 두드렸다.

미국풍이 지배하는 공사안에서도 보기 드문 진렬장의 마네킨을 련상시켰다.

황국장은 머리를 곧추 세운 녀인의 향수내에 압도된듯 비대한 몸을 뚱기적거리며 사라졌다.

《존경하는 국장님, 많이 사랑해주세요.》

젊은 녀인이 자기가 스미스의 통역관으로 되였다고 새빨간 입술을 나풀거리였다.

(그림 유종이는? 나의 부탁대로 스미스가 그를 영전시켰는가?)

현구는 종잡기 어려웠다.

사관님이 보내는겁니다. 국장님이 요구하신 신소입니다.》

《그렇소?》 현구는 문건을 받아놓았다.

《참사관님은 회의가 계속돼서 미안하게 되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묻기요. 본래 통역관을 하던분은 어디로 갔소?》

《저는 아는게 없습니다. 강습을 마고 엊그제 임명받았습니다.》

《그래도 같은 통역직분인데 들은 소리가 없겠소?》

《기쁜 소식이 못돼서… 전 통역관은 미국무성에 보내는 문건번역에서 정치적오역을 내고 철직된것 같습니다.》

《정적오역, 그럴수 없겠는데. 그분은 영어교원출신이요.》 현구는 믿기 어려웠다. 설사 정적오역이 있다 해도 그렇게 처리할 스미스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그는 당장 스미스를 만나고싶었으나 회의중이라고 하여 찾아갈수도 전화를 걸수도 없었다.

녀통역관이 나간 현구는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유종의 고향길 막은것도, 그의 앞날을 담보한것도 회되였다.

다른 한편 자기의 통역관이 엄벌에 처하도록 내버려둔 스미스가 한스러웠다. 써먹을 때에는 극구 찬양하더니 일이 생기자 외면해버린 스미스, 그가 과연 그런 미국인이였던가? 그는 아무리 일감이 많아도 유종에게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내여 룡산사택으로 갔는데 뜻밖에도 유종이네는 없고 미국에서 귀국했다는 선 사람이 그 집을 쓰고있었다.

(이건 무슨 일인가?)

부닥치는 일마다 커다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처제 정애가 실종되였다는 소식까지 얻어듣고는 돌미처럼 굳어져버렸다.

현구는 한만에야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여 허둥지둥 자기 집으로 향했다. 안해 정녀는 학교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수혼자 있었다.

《아버지, 이모가…》

는 대뜸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이런 말을 했다. 현구도 눈굽이 달아올랐다.

《이모분 어디 있니?》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있자고 했는데두 이모분…》

는 그이상 더 알고있지 못했다. 그들이 어디에 행처를 정했는지 또 정애는 찾아냈는지… 현구는 꼭 정애가 잘못된것 같아 불로 가슴을 지지는듯 했다.

얼마전 유종이네가 촌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자기를 믿고 있어보라고 만류한 회감이 가슴을 비틀었다.

현구는 사무실로 돌아왔으나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전화종이 울리였다. 수화기에서 전대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형, 오래간만이요. 그곳엔 면회가 금지돼서 전화를 하오. 밤에도 있는걸 보니 지내 무리하는게 아니요?》

《그래 용건은 뭐요?》

현구는 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현형, 난 수일이때문에 걱정이 크오.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거던.》

《그건 무슨 소리요?》

대산은 룡산기관구파업을 지원한 《전》련대투쟁과 그때 본 수일에 대해 말했다.

(그 애가?)

현구는 가슴이 죄여들었다. 《군정》이 그것을 안다면 자기를 색다르게 볼것이 뻔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주게. 그 앨 봤다는것이 사실인지 똑똑히 알고싶구만.》

《현형, 내 아무렴 없는 소릴 하겠소. 일간에 다른 일도 있고 해서 만나러 갈테니 그때 더 얘기합시다.》

대산은 전화를 끊었다. 현구는 또 한번 강타를 받은셈이였다.

이런판에 또 하나의 불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군정청》은 스미스가 주관한 토지문제에 따라 신한공사에 토지관계문건철을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3분의 1이 토지분쟁 일으켰고 그로 인하여 《군정》의 존엄과 위신이 추락되게 되였다. 이에 대한 책임문제를 놓고 론쟁이 분분했다. 그 론쟁의 초점은 점차 토지문제를 총한 스미스에게 모아졌다. 결국 그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처지에 빠졌던것이다.

현구는 《군정청》의 처사가 옳다고 생각했다. 역시 미국은 일본과 달랐다. 스미스가 미국의 영상을 려놓았으니 그에 대한 징벌은 너무도 응당한것이 아닌가. 그가 파면된다면… 현구는 그의 파면이 자기의 파멸로 이어질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칫했다. 스미스의 잘못이 용서될수 없는것이긴 했지만 그냥 내처둘수 없었다. 그가 없으면 자신과 가정도 무사할것 같지 못했고 토지문제의 공정한 해결도 불가능해질것 같았다.

현구는 토지분쟁건들의 구체적인 내막을 깊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일에 달라붙었다. 밤잠도 자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지에 나가봐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다.

국장의 출장소식이 알려지자 국산하 각 처와 부들에서 고일어났다. 국장실에서 검토할 긴급문건들이 가득한데 국의 책임자가 어디로 간다는것인가? 떠나더라도 자기네것만은 봐달라고 각 처와 부들에서 용건들을 국장실에 들이밀었다.

수하들이 이처럼 들볶아대는데는 사업상 관계도 있었지만 보다는 자기들의 직무유지를 위해서였다. 날 출장에서 돌아온 그에게서 불만을 사게 될가봐 아예 국사무실에 눌러놓자는것이였다.

현구는 수하들의 그 속심을 똑똑히 알았지만 출장을 늦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스미스가 전화를 걸어왔다.

《현국장, 밤이 깊었는데도 쉬지 못하는군요. 사정이 있어 가지 못하니 널리 량해하시오.》

스미스의 음성은 처음부터 주눅이 들어있었다.

사관각하, 목소리가 왜 그렇습니까? 참사관어른답지 않군요.》

현구는 짐짓 동정하는투로 말했다.

《현국장각하도 떠도는 소문을 들었을겁니다. 처자를 남겨두고 수륙만리를 떠나와서 밤낮으로 뛰고있지만…》

그는 뒤말을 잇지 못했다.

사관각하, 우리 나라 속담에는 죽을수가 나면 살수도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구는 일단 그를 안심시키려고 내키지 않는 말을 했다. 《나같은게 힘쓴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현지에 나가 자세히 알아보자고 합니다.》

《국장, 이자 뭐라고 하였소? 다시 말씀해주시오. 국장이 자리를 뜰수 있겠소?》

몹시도 격한 스미스의 목소리가 전화기의 공명들었다.

《나는 이미 결심했습니다.》

《국장!》

기가 질려있던 스미스의 억양에서 다소 활기가 느껴졌다.

《우리 미국사람들중에도 당신같은 사람은 없소. 당신은 하느님의 사도요!》

(하느님의 사도라구?)

현구는 속으로 허거프게 웃었다.

《그렇다면 전 통역관 양유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 그도 나의 친근한 벗이였는데 일이 참 안됐소. 경제담당사관인 나로선 정치적오역을 범한 그를 도울 길이 없었습니다.》

스미스는 구구히 변명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유종통역관이 새 직업을 구할 때까지 생활상 도움을 주자고 합니다.》

《이왕이면 그의 직업을 알선해줄수도 있지 않을가요?》

《그건 좀…》

《그렇다면 지금 그의 부인이 참사관어른이 그의 집에서 대접을 받은 실종되였다고 하는데 찾아볼 용의는 있습니까?》

《나도 알아보는중입니다. 더 힘써보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현구는 이어 성렬선생의 출문제를 꺼냈다.

《현국장각하, 이미 말했지만 난 경제부문참사관이지 정치참사관은 아닙니다.》

《그래도 각하가 나서면…》

《그 문젠 더 론하지 맙시다. 가정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으면 그거나 말해주시오. , 아들을 류학보내겠다고 했는데…》

스미스는 성렬선생문제엔 아예 도리질을 한 화제를 돌리였다.

《아들문제는 걱정마시오. 혹 경우 내가 본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데리고 가서 공부시킬테니… 자, 그럼 출장지에서 큰 성과를 거두시길 바랍니다.》

현구는 자기의 속생각은 모르고 큰 기대를 표시하는 스미스가 어쩌면 가엾게 느껴졌다. 결국 스미스가 바라는것은 제 목을 조이고있는 토지분쟁문제들의 조속한 해결이였다. 그러면 자기가 살아날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현구는 그 속심이 너무도 뻔해서 을 놓듯 말했다.

사관각하, 토지문제가 해결되면 미군이 수하고 조선정부가 선다는 참사관각하의 말을 믿어도 좋습니까?》

《국장각하는 우리 미군을 믿지 못하는게 아닙니까?》

《…》

현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미국은 약소국가민족을 동정하고 도와주는 나라입니다. 국장각하가 이걸 믿지 못한다면 그건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럼 유감스러운 일이 없도록 해주길 바랍니다.》

현구는 이렇게 그루를 박아 말한 전화를 끊었다.

1

2

 

관리국종합처장에게 필요한 지시를 주고난 현구는 출장준비를 하려고 집으로 갔다.

숲이 무성한 남산에는 단풍이 들었고 높아진 공에는 제비들이 강남길을 재촉하듯 날아옜다.

차가 현관에 당도한지 썩 에야 정녀가 나왔는데 그의 얼굴엔 비감이 짙었고 두눈두덩은 부석부석했다.

동생을 찾지 못한 그의 심정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수일이 이모분 로조의 도움으로 신문사에 취직했는데 당신 일은 어떻게 되고있어요?》

정녀는 밥상을 차리며 걱정어린 어조로 물었다.

《난 일없소. 수일이때문에 걱정이요. 그 애가 집에 있소?》

《네. 책을 보는데…》

《이리 오라고 하오.》

《할말이 있으면 식사나 하구 만나시구려.》

《당신두 , 식사가 다 뭐요. 내 그 애때문에 하루라도 마음놓은줄 아오? 공장사람들이 반미항쟁의 돌격대로 나섰다는데 수일이도 그 한 성원이라지 않소. 병보석으로 나온 주제에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니까.》

현구는 제 손으로 술 한고뿌를 따라 마신 아들의 방으로 건너갔다.

책을 보던 수일이 자세를 바로했다.

《공부하는건 좋다만 공장엔 왜 자꾸 나가는거냐?》

현구는 첫마디부터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공장엔 나가지 말구 당장 공부를 해라. 멀리 미국류학을 떠나거라.

《…》

수일은 반응이 없었다.

《출장을 가면서 너때문에 일부러 들렸다. 그렇게 하겠니,안하겠니?》 확답을 받아내려는 현구의 재촉은 불같았다.

수일은 아버지를 외면했다. 반미항쟁을 시대의 사명으로, 민족의 급선무로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와는 말을 할게 없다는듯…

《왜 대답이 없어, 엉?》

《아버지.》

수일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마음붙이고 살 제 세상이 없는데 류학공부가 다 뭐예요.》

《뭐라구?! 네가 감히 아버지를 가르치려 들어?》

현구는 노발대발했다.

《우린 약소민족이다. 슬픈 일이지만 이런 약소민족으로서 렬강의 도움을 받아 일어서자는것이 뭐가 나쁘냐? 난 그래서 너를 미국에 류학보내자는게다. 그런데 어쩌구 어째… 집안에 화가 미치기 전에 당장 나가라.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현구는 결김에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했다.

《좋아요, 나도 아버지와 같이 살고싶은 생각이 없어요.》

수일은 말을 마치기 바쁘게 벌컥 일어나 몇가지 물건들을 집어들고 방에서 나갔다.

《얘야, 너 정말 나가겠다는게냐?》

정녀가 수일을 붙잡았다.

《못 간다, 못 가! 어머니를 둬두고 가긴 어디로 간다는게냐?》

《어머니, 아버진 지금 미국놈들에게 기만당하고있어요. 난 집에 있고싶지 않아요.》

《글쎄 안돼!》

정녀는 수일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현구를 돌아보며 원성 터뜨렸다.

《저는 수일이 없인 못살아요.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아들을 내쫓지 못해 안달인가요?…》

《그만하지 못할가.》

현구는 안해의 말을 일축하며 독같이 성을 냈다.

《당신도 그렇고 수일이 너도 우리가 누구덕에 이런 고관의 집에서 살고있는줄을 똑똑히 알고있어야 한다. 미국사람들의 덕이다. 스미스참사관은 동서가 직업을 구할 때까지 생활상 도움까지 주겠다고하오. 수일, 너는 미국에 류학보내구…》

《성렬선생은요?》

금시 현구의 입이 얼어붙었다.

《…》

《어머니, 더 묻지 마세요. 아버진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못돼요.》

수일은 이 말을 남기고 종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애야, 수일아!》

정녀는 뒤아나가며 아들을 불렀다. 옆방에 있던 수희도 따라가면서 오빠를 소리 불렀다.

현구는 집안에 자 남았다. 그는 집안일도 세상일도 온통 뒤죽박죽이 된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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