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바람에 실려, 구름에 실려
1
집안에서는 향긋하고 들크무레한 냄새가 풍겨돌았다. 함뿍 익은 식혜와 수정과단지에서 풍기는 감미로운 향기였다.
앞치마를 두른 정애는 부엌에서 음식들을 만들고있었다. 저녁시간에 스미스참사관이 귀빈으로 오게 되여있었던것이다.
정애는 손님맞이에 여간만 품을 들이지 않았다.
주방칸으로 한가닥의 저녁빛이 흘러들었다.
실눈 지은 정애는 문밖을 내다보았다. 이층, 삼층 양옥채들은 궁전같이 황홀하고 창문들엔 노을빛이 비껴있었다. 정애는 자기네 단층집이 다층주택들에 깔리고있는듯 한 중압감을 지울수 없었다.
그 집들의 주인들인 벼락출세군들에 비해 자기네가 무엇이 모자라서 눌리워 살고있단 말인가? 이러한 불만은 고관이 된 현구의 남산저택을 다녀온 후에 부쩍 더해졌다.
며칠전 정애는 뒤울안의 과수밭을 손질하는 남편에게 약간 시까스르는 어조로 말했다.
《여보, 그만두시라요. 여기서 당대 살 생각이예요?》
유종은 의아쩍은 눈길로 안해를 쳐다보았다.
과수원을 꾸리자고 조르던 안해가 급작스레 이게 무슨 말인가?
저녁식사가 끝나자 정애는 남편의 서재로 들어와 따지듯 물었다.
《여보, 어찌된 일이예요?》
《?》
《촌에 가서 살자고 하던 당신이 요즘엔 책만 보고있으니 말이예요. 혹시 다시 교편을 잡자는건 아니예요?》
《교편을 다시 잡는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소. 하지만 형님이 잘되는걸 보니 나도 날고싶은 욕망이 정 없지는 않소.》 하며 유종은 무엇인가 간절한 눈빛으로 강건너 제약공장을 지켜보며 말했다.
《어쩌면 형님이 관료계통을 권고할수 있는데 나는 그보다 기업을 운영해보고싶구만.》
《기업이요?》 정애는 한숨을 호-하고 내쉬였다. 《적산》을 불하받자면 해당한 금액과 담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없이는 관리권이나 얻으면 다행이였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숨을 앞세우며 물었다.
《여보, 은행과 거래해보면 어떨가요?》
《그건 안되오. 나와 같은 빈털터리한테 어느 은행에서 돈을 대부해주겠다고 하겠소.》 하며 도리머리를 젓는 남편을 지켜보던 정애가 불시에 생기를 띠며 물었다.
《참, 참사관을 고까와하지만 말고 그 사람에게 부탁하면 어쩌면 좋은수가 생기지 않을가요?》
《그게 상수이긴 하지.》
유종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참사관이 《적산》과 벼슬자리를 팔아서 얻은 돈을 주기적으로 본국에 송금하고있는 내막을 손금보듯 알고있는것이다. 안해의 말대로 스미스에게 부탁하면 일이 풀릴수도 있었다. 웬일인지 께름직하였다. 그래서 내키지 않은 어조로 뜨직이 말했다. 《헌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아이, 답답해죽겠네. 그러면 한평생 큰집만 쳐다보고있자는거예요. 참사관에게 부탁하면 복선을 치는것으로 되니 좋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참사관에겐…》
《당신이 말하기 힘들면 집으로 데려오세요. 한턱 쓰잔 말이예요.》
《외국인을 집에 끌어들여도 일없겠소? 스미스는 워낙 덜돼먹은 양인이라오.》
《목마른 사람이 이것저것 가릴게 있어요. 우리라고 떵떵거리며 잘 살아보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어요.》 정애는 고관저택에서 잘 살아보고싶은 자기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단정하고 의협심도 있었지만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려는 재부욕도 없지 않았다. 유종은 껄껄 웃었다. 그래서 오늘의 초대연이 마련되게 되였던것이다.
음식준비를 마친 정애는 거울앞에서 몸단장을 서둘렀다. 외국인을 맞이한 자리에 어떤 옷차림이 어울리겠는지? 비단치마저고리도 입어보고 이국식으로 양장도 해보았다. 꽃문양이 화려한 달린옷이 풍만한 육체의 곡선미를 드러내며 자기를 한결 젊어지게 하는것 같았다. 정애는 수입제 분과 연지를 써가며 초대연에 이만저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밖에서 차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뜨락으로 남편과 스미스가 들어왔다. 유종은 안해와 아이들을 스미스에게 인사시켰다. 정애는 굳어졌던 긴장을 풀며 애들의 볼을 쓰다듬어주는 스미스에게 인상적인 웃음을 보내주었다.
얼마후 정애는 응접실 식탁에 마주앉은 스미스의 은술잔에 《감홍로》를 따랐다.
《오우! 감홍로!》 스미스는 주홍색술잔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감홍로의 래력을 저도 좀 압니다. 한때 조선에서는 어주로 썼다지요. 감사합니다.》
스미스는 먼저 남편, 그다음 정애와 잔을 찧었다. 정애는 더 밝게 웃으며 스미스에게 소담한 보쌈김치를 권했다.
《맛보세요. 개성특산인데 귀한 손님을 위해서 별도로 만들었어요.》 하며 정애는 파란 겉잎을 벗겼다. 양념을 한 노란색배추속 갈피마다에 재워넣은 소고기와 배, 사과, 대추, 잣알들이 눈길을 끌었다.
스미스는 호기심을 가지고 먼저 배한쪽을 조심스레 맛보았다. 그는 좀 맵다고 하면서도 입술이 벌개지도록 먹어댔다.
《조선에는 참으로 진귀한것들이 많습니다. 민족음식만 해도 제각기 특색이 있고 대단한 수준입니다.》 스미스는 또다시 정애앞으로 잔을 내밀면서 말을 보탰다.
《훌륭한 주인과 존귀하신 부인의 행복을 축원합니다.》
취기가 오른 그는 상의를 벗었다. 초대연은 예상보다 흥겹게 흘러갔다. 스미스는 제 고장 미씨씨피강변을 자랑하였고 필리핀전선에서 죽을번 했던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유종씨, 또 듭시다.》 성대한 대접에 감동된 그는 유종에게 사의를 표하듯 말하였다.
《당신은 조선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나의 친근한 벗이며 믿음직한 보좌관입니다. 나는 오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단란한 가정적분위기를 느껴보게 됐습니다.》 스미스는 술잔을 비우며 정애를 건너다보았다.
《부인, 나의 첫째가는 생활철학이 뭔지 알고싶지 않습니까? 그건 한마디로 기쁨을 향유하는겁니다. 기쁨이 없는 생활이란 사막처럼 황막하고 무덤속처럼 암담한것입니다.》
그는 유명한 감홍로와 갖가지 료리들 그리고 아름다운 부인과 친근한 유종씨에게 완전히 매혹되였다고 토로하였다.
《고기만 해도 인공적인것밖에 모르던 나로선 조선소고기에서 진맛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처럼 정신적인 만족보다도 피부로 느끼는 쾌감을 더 좋아합니다.》
손에 든 소갈비를 게걸스레 뜯어먹으며 스미스는 물었다.
《부인, 그렇지 않습니까. 정신적인것이란 사실상 공허하고 추상적인것이지요. 나는 아무리 중대한 집회장이라 해도 소갈비와 보쌈김치와는 절대로 바꾸지 않자고 합니다.》 하며 스미스는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정애는 게면쩍어하였고 유종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였다.
인간의 고상한 정신과 리성을 외면하고 천시하는것은 동물적인 변태성이라 할것이였다.
사람이 만족감에 도취되면 말이 많아지고 그런속에서 적라라하게 본성이 드러나기마련이다.
스미스는 대답이 없는 유종과 정애가 자기 철학에 반한것으로 오인하고 계속 지껄였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속에 기쁨의 원천이 있답니다. 다시말하면 치부욕과 출세욕이 충족되였을 때 느끼는 폭발적인 격정과 쾌감이야말로 최상의 기쁨이라 할수 있지요.》
《…》
정애와 유종은 여전히 덤덤히 앉아있었다.
스미스는 그제서야 열적었던지 원탁의 담배를 집어들며 화제를 돌리였다.
《담배곽의 이 그림은 뭡니까? 토기를 구어내는 원추형의 소성로가 아닙니까?》
《그건 우리 선조들이 7세기에 건립한 첨성대입니다.》 유종의 대답이였다.
《첨성대, 천체관측기구치고는 아주 락후합니다. 그러니 소성로처림 보일수밖에.》 스미스는 설명을 듣고도 자기의 무식과 천박성을 고집스레 드러냈다.
《영국에 있는 세계적인 그리니치천문대를 아십니까? 이게 바로 그 영국의것의 조상입니다.》
유종은 점잖게 그의 무식을 시정해주며 이어서 세계적인 의의를 가지는 조선의 력사유물 유산들에 대하여 말하려다 상대가 무안쩍어하는것 같아 그만두었다.
《제 잠간…》
어색해진 공기를 포착한 정애가 새 음식을 가지려 부엌으로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이였으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유식을 뽐내던 자기가 졸지에 무식쟁이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던것이다. 그는 체면을 유지하려고 이리로 올 때 차안에서 하던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리였다.
《현선생이 우리의 대우를 받고 황공해한다면 좋습니다. 우리는 벗들에 대해서는 아끼는게 없습니다. 앞으로 사업에서 성과를 올린다면 현선생을 더높이 내세우자고 합니다.…》
유종은 그 말이 자기 문제와 관련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나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미스는 팔목시계를 보더니 가재미식혜를 한사발이나 축내고 몸뚱이를 일으켜세웠다.
유종은 유감스러웠다.
스미스는 그 심정을 느끼기라도 한듯 《나는 통역관을 잘 도와주자고 한 현선생의 부탁을 잊지 않고있습니다.》 하며 집을 떠나갔다.
스미스를 배웅한 정애는 응접실로 달려왔다.
《여보, 그만하면 훌륭했지요. 참사관이 아주 좋아하더군요.》
유종은 반응이 없었다.
《그래, 청을 드려보았어요?》
《말하지 못했소. 제 소리와 형님칭찬뿐인데 어디 기회가 있어야지.》
《기회라니요?! 그것도 말이라고 하세요. 초대연을 마련한게 무엇때문이예요?》
《그만하오! 멀쩡한 정신으로 양키에게 빌붙자니 이건…》 유종은 머리를 흔들었다.
정애는 실망해마지 않았다.
《너무 상심해마오. 그 사람이 형님의 부탁은 잊지 않고있다고 했소. 피곤하겠는데 가서 쉬오.》
《이봐요. 참사관을 다시 데려오세요.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대요.》
《그 량반을 또?!》 유종은 탐탁치 않아했다.
《이번에는 참사관에게 직방 들이대자요. 이런 기회가 계속 있겠어요.》
《또 오자고 할가, 자신이 없구만.》
《끌고라도 와야 해요. 저도 렴치불구하고 나서겠어요.》
《허허… 통역관의 부인으론 성차지 않다는건데. 알겠소.》
유종은 마지 못해 대답했다.
2
고색창연한 남대문을 돌아선 승용차가 대평로를 따라 달리였다. 차안에는 현구와 양유종이 타고있었다. 두사람은 말이 없었다.
현구의 너부죽한 얼굴에는 격정과 음영의 빛이 함께 비껴있었다. 전용차에 몸을 싣고보니 달라진 자기의 처지가 아무리 생각해도 꿈속의 환영같았다. 께름한 생각도 들었다.
《형님, 다른 생각 말고 고관의 체모나 잘 갖추시라요.》
유종의 말에 현구는 눈시울을 움쭉 들어올렸다.
《그런 위풍은 내 구미에 맞지 않네. 난 우리 농군들의 소원을 풀어주고 동서넬 돕고싶은 생각뿐일세. 이제 자리가 잡히면 동서네를 촌에 내려가는것보다 낫게 해주겠네. 참사관을 집에 초대했다지?》
《네.》
《그래, 말 좀 해보았나?》
《웬걸요. 형님을 치하하고 제 소리만 하다가 돌아갔지요.》
유종은 그날의 유감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단 말이지…》
《우린 그저 형님만 믿습니다. 그런데 수일인 집에 붙어있는가요?》
《그 자식을 생각하면… 못된 송아지 엉치에서 뿔이 돋는다구, 음!》
현구는 가슴속 밑창에서 군기침을 톺아올리며 얼굴을 찌프렸다.
《그래도 수일이가 그동안 부모를 대신하지 않았습니까?》
유종은 중학을 그만두고 동생의 학업도 보장하고 살림도 꾸려나간 수일을 대견하게 생각하고있었다. 정애와 유종이도 그래서 그들오누이를 더욱 극진히 위해주었다고 할가.
《이젠 수일이도 공부를 시켜야지요?》
《그렇게 하자고 하네. 우환거리가 되지 않게 멀리 보내서 공부를 시키려고 하네.》
차창으로 《신한공사》 청사가 비껴들었다.
《다 온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은 기관의 성격에 맞게 매사에 주의하길 바랍니다.》
차는 현관앞에 멎었다. 유종이는 마중나온 현관지기에게 현구를 소개하고 물러갔다.
《국장님, 왕림하셨습니까? 간부들이 사장어른방에서 기다리고있습니다.》
안내자가 현구를 2층으로 데리고 가서 사장실문을 열어주었다.
《오우,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국인사장이 구면지기를 대하듯 수선을 떨면서 현구를 자기 옆자리에 앉히였다.
《공사의 중진제씨들.》
사장은 장내를 둘러보면서 위엄있게 입을 열었다.
《이분이 토지관리국의 국장각하입니다. 열렬히 환영합시다. 각하는 우리 공사의 창설에 기여한 공로자이며 조선에서 몇명 안되는 유명한 토지측량전문가입니다. 〈군정〉수뇌진이 특별히 신임하고 파견한 국장각하를 받들고 모두가 성과를 올리기를 바랍니다.》
현구는 굳어진 자세를 좀체 풀지 못하였다. 여러 부문의 각급 고관들이 현구를 응시하는 표정은 각양각색이였다. 아첨기 어린 표정이 있는가 하면 랭담한 빛과 저울질하는 눈초리도 있었으며 오늘까지 비워둔 자리의 임자가 저 사람인가? 어디 두고보자는식의 기색들도 있었다. 현구는 초면인사들을 나누고 토지관리국이 차지한 3층의 오른쪽 국장실로 안내되였다.
널직한 방안으로 들어선 그는 힘겨운 씨름경기라도 치르고난듯 쏘파에 몸을 실었다.
창문으로 흘러든 정오의 해빛에 고급기물들이 번뜩거리고 현관쪽의 차소리들이 분주스러웠다.
현구는 스미스가 시사만 하였던 다음단계의 사업, 즉 산중 문서고에서 둘러맞춘 왜놈때의 토지문건들을 현물로 전환시키는 실천단계에 들어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