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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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구네 집은 멀리 한강이 내다보이는 언덕마을 막바지에 자리잡고있었다. 《총독부》관사에서 쫓겨난 후에 이곳 허줄한 집을 사서 살다가 산으로 떠날 때 동서 양유종에게 맡긴 집이였다. 학교에서 철직되여 화물역의 인부로 전락된 양유종에겐 집이 없었다.

현구부부는 대문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동안 가뜩이나 볼품없던 집은 더 초라해졌다. 구새먹은 서까래로 굼벵이가 기여다니였다. 담장을 대신한 관자울타리에 구멍이 숭숭 나고 지주목의 밑둥도 썩어가고있었다.

하지만 현구부부는 몇해만에 돌아온 감회탓인지 집의 초라한 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시바삐 자식들을 만나보고싶은 조급성과 이제부터는 왜놈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되였다는 환희와 기쁨에 온 심신이 휩싸여있었던것이다.

《수희야! 이 애야?!-》

정녀가 소리치며 대문을 밀었으나 끄떡하지 않았다.

정녀는 대낮에 대문이 잠겨있는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수희야!…수일아!…》

그 순간 뜨락안쪽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났다.

《누구시나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수희야! 우리가 왔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수희는 빗장을 뽑느라 헤덤볐다.

《수희야, 덤비지 말아.》

《어머니, 아버지!》 수희는 문을 열어제끼며 정녀와 현구의 품에 안겼다.

《수희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정녀가 귀여운 딸을 품에 꼭 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아버지, 정말 보고싶었어. 나와 오빠가 역에 몇번이나 마중나갔는지 몰라!》

《그래, 빨리 오지 못해 안됐구나. 우릴 몹시 원망했겠지?》

《아니야, 왜놈세상이 싫어서 산으로 들어간 아버지와 엄마를 마음속으로 자랑했어. 그래서 오빠는 아버지와 엄마가 돌아오시면 한상 잘 차리자고 했어.》

수희는 그처럼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된 기쁨에 눈물을 마구 쏟았다.

《원, 애들두…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 정말 기특하구나. 살아가기가 힘들었지?》 하며 정녀도 눈굽을 훔치였다.

《솔직히 말하면 힘들었어.… 뭣보다도 경찰이 자꾸 와서 아버지와 엄마가 어데로 갔는가고 꽥-꽥 소릴 지를 때면 난 무서워서 울기만 했어요. 》

《그럼 오빠도 울었겠구나.》

《아니, 오빠는 울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를 타일렀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왜놈들이 미워서 집을 떠났다구.… 그래서 우리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을 따라서 공부를 더 잘하고 마음도 굳게 가지고 살아가자고 했어요.…》

《용쿠나.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너희들끼리 사는것만 해도 눈물이 나는데 왜놈들의 그런 모진 성화까지 받아가면서 살아왔으니.…》

정녀는 눈물에 잠기여 말끝을 채 맺지 못하며 이제는 처녀꼴이 잡힌 딸의 함함한 머리칼을 쓸어만지였다.

《엄마, 난 지난해부터 중학에 다녀요.》

《잘했다. 그럼 오빠는 대학에 갔느냐?》

《오빠는 공장으로 들어갔어요.》

《공장이라니?!》

《오빠는 로동자가 돼야 세상살이도 알게 되구 몸도 튼튼해진다구 했어요. 》

정녀는 딸의 말을 믿고싶지 않았다. 남달리 대학공부를 지망하고 그만큼 향학열이 높았던 아들 수일이가 로동판에 뛰여들었다는것이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하면서도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에 왔으니 이제 곧 오빠를 공부시켜야겠다. 그런데 왜 오빠는 보이지 않느냐?》

《예. 요즘 공장청년사업을 맡아가지고 몹시 바쁘대요.》

《뭘? 공장청년사업?!- 그건 무슨 소리냐?》

《어머니, 나라가 해방되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제부터 공장의 주인이 로동자들이래요. 주인구실을 제대로 하자면 공장에 청년들로 동맹을 조직하고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했어요.》

정녀는 청년동맹이라는 말뜻이 제대로 깨도되지 않으면서도 어정쩡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오늘 저녁에는 늦게 들어오겠구나.》

《예. 》

그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잠자코 있던 현구가 동서 양유종이네 소식을 물었다. 수희가 대답했다.

《이모넨 초겨울에 룡산관사로 이사했어요.》

그다음 짐군노릇을 하던 이모부가 영어를 하는 덕에 《미군정》의 통역관으로 제발되고 양옥집도 얻게 되였다고 덧붙여 대답했다.

(영어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더니 이젠 한시름 놓게 됐구나.)

현구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새 이모는 멋쟁이가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제 만나보면 깜짝 놀랄거예요.》

《이모가 멋쟁이가 됐다구?》

웬 영문인지 현구는 이모가 멋쟁이가 됐다는 딸의 말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미심쩍었다. 흔히 《애처가》들이 다 그러하듯 현구는 처제 정애를 남달리 아끼고 사랑하였고 또 믿었다. 처제 정애는 언니를 닮아서인지 품행이 단정하고 웃사람을 존경할줄 알았으며 조카애들도 제 자식처럼 귀여워했다. 그래서 현구는 철없는 두 자식을 그에게 서슴없이 맡기고 3년이상 산속에서 살면서도 어느 정도 마음놓고 살수 있었다.

저녁무렵에 하숙하는 세명의 녀대학생들이 돌아왔다. 녀대학생들은 수희의 부모님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리였다.

《집으로 돌아오신 수희 아버님과 어머님께 경의를 드립니다. 저희들은 수희 아버님과 어머님을 통해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귀중한 몸을 속히 회복해주십시오.》 처녀들은 해방을 맞은 새 세대답게 민족의 얼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낸 현구부부에게 존경을 표시하였다. 세 대학생은 인사를 마치고 하숙방으로 건너가서 복잡한 시국형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성아언니, 우리 경공대에선 동맹휴학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끝내 시작했구나. 우리도 파업에 들어간 대학로조와 협의중이야. 상대는 어쩌고있니?》

《우리 상과대학도 인차 휴학할것 같애. 그런데 친일파라고 다 내쫓으면 누가 배워주겠니?》

《그건 걱정 안해도 돼. 악질주구들만 대학에서 숙청하자는거야. 그런데도 대학당국이 <군정>을 등대고 반대하고있으니 투쟁으로 맞설수밖에 더 있니. 나라가 해방된 새세상에 와서도 친일분자들한테서 배우는건 수치야.》

《그 말이 옳아. 친일분자들하군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어. 하물며 그런자들에게서 공부를 배운다는건 말도 되지 않아.》

녀대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현구의 마음은 복잡하였다. 그는 생각깊은 눈길로 안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수채터에서 어머니가 가져온 산나물을 씻는 수희한테로 의학대학생인 성아가 다가왔다.

《부모님이 오빠소식을 듣고 몹시 걱정하셨겠구나.》

성아의 목소리는 비분에 젖어있었다.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어요.》하며 수는 가는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했다. 공연히 말을 해서 오빠가 촌으로 내려갔다가… 부모님들이 집에 돌아오시니 내 마음이 죄스럽구나.》 성아는 진정으로 미안해하였다.

《…》

수희는 가슴아픈 소식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리랴싶어 또다시 한숨을 쉬였다. 하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였다. (오빠-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셨어요. 하지만 나는 혀가 굳어져 오빠가 감옥에 있다는 말을 못했어요.) 수희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수록 해방된 기쁨을 안고 몇해만에 돌아오신 부모님과 온 가족이 모여앉지 못하는 원통함이 가슴을 아프게 지져댔다.

《언니… 언니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님께 말 좀 해주세요. 전 오빠 소식을 차마…》 수희의 두눈에 끝내 눈물방울이 맺히였다. 성아가 슬그머니 수희의 손을 그러쥐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의 눈도 눈물에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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