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인생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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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를 굽어보며 거들먹거리던 2층, 3층짜리 주택들의 남산거주자들이 바뀌여지고있었다. 《총독부》계렬이 《미군정》계렬과 교체되고있는것이다. 《미군정》이 선발한 요원들과 수급졸개들이 차지한 널직한 정원들에는 갖가지 희귀한 꽃들과 진귀한 남방식물들이 자라고 이끼오른 련못들에서는 관상용물고기들이 꼬리를 치고 무성한 수림과 그 아래쪽으로 흐르는 한강줄기가 철따라 이채로운 자연풍치를 펼쳐주고있었다.
숲속으로 은은한 피아노소리가 스며들고 팔을 끼고 산책하는 이국풍의 모습이 나무들사이로 얼씬거리였다.
해묵은 소나무가지가 채양처럼 드리운 2층양옥채 현관앞에 저택관리원인 중늙은이와 두 녀인이 서있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정녀자매였다.
학교에서 정애에게 끌려온 정녀는 아직도 얼떠름한 상태였다.
《정애야, 이런 고관저택을 처음 본다구 이 야단이냐? 수업도 못하게.》
《잠간만 있으라요. 언니, 좋은 일이 있을지 알아요.》
정애가 흥이 나서 조잘거리는 참에 산굽이를 돌아오른 승용차가 현관앞에서 멎었다. 승용차에선 양유종과 현구가 내리였다.
《아니, 저이가…》
정녀는 뜻밖의 상봉에 어리둥절해졌다. 현구는 정녀의 손을 반갑게 잡으며 몸상태와 수일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저는 퇴원해서 요즘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수일이도 몸이 회복되고있어요.》 하고 정녀는 유종에게 인사를 했는가고 물었다.
《동서에게?…》 현구가 다소 의아해하자 정녀는 자기를 입원시키고 수일의 석방을 힘써준 동서인데 모르는체 해서 되겠는가고 말했다.
《나도 수일이때문에 여간 애를 태우지 않았소. 그자식이 감옥안에서도 말썽을 일으켰다지 않소. 맏자식이 아니라면 그냥…》 현구는 쓰겁게 입을 다시며 말했다.
《동서에게 인사는 하였소. 도움을 받도록 다리를 놓아준건 사실이니까. 》
《도움을 받도록 놓아주었다는건 무슨 말씀이세요?》
《그쯤 알아두구려.》 현구는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석방에서 받은 충격이 컸다. 수일의 석방은 전대산이도 몹시 꺼려하고 주저했다. 그런데 스미스가 나서자 별로 수속도 없이 석방되였던것이다. 현구는 스미스의 막강한 권세에도 놀랐지만 자기의 마음속 고충을 덜어준 그 은혜를 모르는체 할수 없었다. 더우기 이제와서까지 스미스에 대해 반신반의할게 없다고 생각했다. 스미스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일하리라 마음먹었다. 또 그렇게 하는것이 하루빨리 조선정부를 세우고 미군을 철수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지오. 왜놈때의 잘못된 토지관계를 바로잡는 일을 하고있으니 걱정마오.》 하고 현구는 화제를 돌리였다.
《보리장마에 집에 비는 새지 않았소? 워낙 집이 낡아서.》
《물받이개들이 헐어서 봉당에 물이 찼댔어요. 수일이가 고치겠다고 했어요.》
《둬두라고 하오. 며칠후에 내가 가서 지붕을 손질하겠소.》
현구부부가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주택관리원과 마주하고섰던 유종이가 《자, 집이나 돌아봅시다.》 하고 손짓을 하였다.
(집구경이라니… 이 집이야 고관이 살던 집이라는데 구경이나 해선 뭘 한단 말인가?)
현구는 의아한 눈길로 유종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유종은 못내 흡족한 표정으로 《자, 우리모두 집구경을 합시다. 형님이 앞서십시오.》 하며 현구의 등을 떠밀었다. 그바람에 현구는 내키지 않은 걸음을 옮겼다. 현관안에 들어서자 비워두었던 집이 항용 그러하듯 싸늘하고 습한 공기와 곰팡내가 풍기였다. 복도에 주단이 깔리고 전실과 련결된 아담한 응접실에는 쏘파들과 앞상, 탁자 등 비품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언니, 궁전같지 않아요? 어쩌면 이렇게 훌륭할가.》
정애가 하는 말이였다.
《어마나, 목욕을 하다가 쉬라고 침대를 다 놓았네. 전에 언니네가 쓰던 관사와는 다르군요.》
정애는 마음속에서 솟구쳐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연신 말을 하였다.
정녀는 여전히 얼떠름한 기색이였고 현구는 2층계단옆에서 더 움직이지 못했다. 스미스의 권고로 여길 오긴 했지만 고관의 집안까지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어제 오후 현구는 문서고로 걸려온 스미스의 전화를 받았다. 조선의 봄날씨가 참으로 매혹적이라면서 시내산보를 나가라는 전화였다.
현구는 처음엔 사양했으나 스미스가 거듭 권하는 바람에 집에나 들려볼 심산으로 유종의 뒤를 따라 승용차에 올랐던것이다.
집구경을 대충 한 현구는 말없이 정원을 거닐었다. 그는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저택이 어떠냐고 묻는 유종에게 객적은 소린 그만두고 잠간 집에 다녀가자고 하였다. 유종은 우선 식당에 가서 요기부터 하자고 대답했다.
차는 번잡한 상점거리를 지나가고있었다. 알락달락한 상품광고들과 멋을 낸 정치적구호들이 사방에 나붙어있었다. 하루에도 각종 조류의 당파들과 단체들이 수없이 출몰하는 시기여서 건물옥상과 창문들에는 형형색색의 프랑카드와 기발이 드리워있었고 마분지로 만든 메가폰이 거리거리와 집회장들을 들었다놓고있었다.
가로수밑에 주런이 앉았던 광주리장사들이 경찰에게 쫓기여 뿔뿔이 흩어졌다. 급히 달아나다 떡함지를 안은채 자빠지는가 하면 쏟아진 풋사과를 주어담는 녀인의 등에서 어린것이 버둥질을 치며 울어댔다.
《형님, 뭘 그렇게 생각합니까. 바깥공기에 기분이 좀 맑아졌습니까? 형님, 오늘 왜 집구경을 하게 된것 같습니까?》
유종은 몹시 부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겠나. 그런 집은 바라거나 부러워한대서 차례지는것이 아니네.》
《나도 그래서 하는 소리입니다. 짐작되는게 없습니까?》 하고 유종은 참사관이 형님한테 완전히 매혹되였다고 말했다. 쯔시마를 데리고 일할적에는 추궁을 면치 못했던 그가 요즘에는 상급의 칭찬만 받는다고 하면서 현구만치 실무에 밝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조선사람은 처음으로 본다고 했다.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나는 토지관계가 제대로 정리되길 바라서 그 일을 하고있네.》
차가 료정앞에서 멎자 일행은 유종을 따라 2층귀빈실로 올라갔다.
네사람이 식탁을 차지하자 곧 음식들이 나왔다.
정애가 첫잔을 현구에게 권하였다.
《드세요. 우리 집 문제를 잘 처리해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은혜, 과수원부지는 리왕실사냥터가 돼서 누구에게도 해로 될것 같지 않아 그렇게 한겁니다.》
《그래도 수희 아버님이 마음을 쓰신 덕이 아닙니까.》
정애의 인사말에 유종이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였다.
《형님덕분에 내가 아버지앞에서 자식된 도리를 하게 됐습니다. 나머지 한건도 수속이 되면 내가 직접 촌으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현구는 소리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정녀가 내미는 잔을 받았다.
《여보, 병을 고친 당신을 보니 마음이 놓이오. 더는 고생시키지 않겠소. 참, 당신은 교편을 다시 잡았다지, 몇학년이요?》
《5학년 남자반이예요.》
《다루기 세찬 반을 맡았구려. 몸을 돌보며 하오.》
《나는 애들을 세차게 키우자고 해요.》
《언니, 그러다 또 앓으면 어떻게 해요?》
《애들은 자랄 때부터 기를 꺾어놓아선 안된다.》
자매의 말을 듣고있던 유종이가 중단되였던 화제를 다시 꺼냈다.
《형님, 다른 한건이 해결되면 나는 촌으로 내려갈 결심입니다.》
《자네의 뜻이 정 그렇다면 막지는 않겠네. 그런데 그게 나에 대한 기대의 전부인가? 함께 일해볼 의향은 없나?》
현구의 말마디는 의미있게 울리였다.
유종은 동의할수 없다는듯 눈꼬리를 추켜들었다. 그는 통역관노릇을 그만둘 생각이였다. 《군정》의 검은 안속을 깊이 알게 될수록 경계심과 민족적의분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미군정》은 요충지들에 군사기지들을 배치하는 한편 강탈한 《적산》을 미끼로 하여 선발한 각 분야의 앞잡이들을 발판으로 장차 남조선을 타고앉자는 흉계를 꾸미고있었다. 유종은 《군정》에 그냥 소속되여있다간 수치스런 오명을 입을가봐 몸을 사리자는것이였다.
현구의 권고를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속에 이상한 흥분이 차올랐다. 모든것이 재분배되고있는 과도적인 기간은 한정없이 계속되는것이 아니다. 지금 형형색색의 무리들이 기를 쓰고 《군정》의 품속으로 기여들고있는것이다. 현구로 말하면 《군정》의 토지를 주관하는 위치에 있는만치 그의 권고에 응하기만 하면 일확천금을 얻을수도 있었다. 그것이 유종을 유혹하였다.
《여보게, 생소하고 구차스런 촌길을 기어이 택하겠나? 여기에 남게. 내 힘자라는껏 자네를 돕겠네.》
현구는 자기의 앞날을 기약할수는 없지만 유종이 배운 전문지식을 무용지물로 되게 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형님의 말뜻을 알만합니다.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아저씨, 제집 일도 걱정 크겠는데 우리까지 관심해주어서 고마워요.》
정애가 말짬새에 끼여들며 따뜻한 눈길로 현구를 쳐다보았다.
《우린 더 바라는게 없소. 그저 집사람의 부담을 덜어주고 수일이를 대학에 보내는것이 제일 큰 소원이요.》
《언닌 참 행복하겠어요.》 하며 정애는 언니를 몹시 부러워했다.
정녀의 얼굴엔 그늘이 져있었다. 내놓고 제 안해를 념려하는 현구를 처음 보게 된 정녀였다. 어쩐지 쑥스러웠다.
더욱 놀라운것은 유력자연하는 남편의 자세였다. 똑똑한 직업도 없이 지내다 정체모를 곳으로 간 남편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동서 유종이를 도와주겠다고 하는지 통 리해할수 없었다. 또한 《군정》통역관인 유종이가 남편을 상급으로 존대하는것이 이상하였다.
정녀는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남편이 리해되지 않았다.
상우의 안주그릇을 매만지는데 미닫이문이 열리며 전대산이 얼굴을 내밀었다.
《현형이 왔구만! 언제 나왔소?》 하고 대산은 식탁에 마주앉은 네사람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잠간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직업이 그러하다나니 노상 돌아가지요.》 대산은 묻지도 않은 군소리를 하면서 현구의 맞은켠에 앉았다. 눈썰미가 빠른 유종이 정녀자매를 데리고 먼저 료정에서 나갔다.
현구는 께름직한 마음을 애써 눅잦히며 대산에게 술잔을 권했다. 전대산은 사양하지 않고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말을 끄집어냈다.
《현형, 아직 아들을 보지 못했겠지요?》
《이제 만나게 되겠지. 모두 힘써주어 고맙소.》
《현형앞이니 말이지 애를 먹었습니다. 기소된 수일이의 죄목만 해도 간단치 않은데 옥내사건까지 겹쳐서 검찰과 형무소측에서 트는 바람에 진땀을 뽑았시다.》
《그랬을거요. 후날 인사는 하겠소.》
현구는 이런 말을 남기고 가족들을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떠나겠소?! 현형!》
대산은 현구를 붙잡았다.
은실의 사건으로 스미스의 기분을 잡쳐놓은 조건에서 현구한테서까지 랭대를 받게 되는 날에는 전도가 암담해지는것이다. 그는 사흘이 멀다하게 애비로부터 군정이 승인한 토지문건들을 보내달라는 재촉을 받고있는 중이였다. 전대산은 현구의 손을 놓지 않으며 통사정을 하였다.
《현형, 일전에도 말했지만 내 사정 좀 봐주오. 매매증서와 공증인증서까지 구비되여있지 않소.》
《그렇지만 낸들 해주기 싫어서 그러는게 아니지 않소.》
《아니? 그럼 그 토지들을 〈적산〉으로 넘기겠다는거요?》
대산은 벌컥 성을 내였다.
《정말 딱하게 노는구만. 〈군정〉일을 보는 사람더러 〈군정〉의 포고령을 어기라고 하면 되겠소?… 내 보기엔 지금 소유지만 해도 방대한데 욕심이 너무 크구만. 이젠 조선사람답게 처신할 때가 되지 않았소?》
대산은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우거지상을 하고 끈질기게 빌붙었다.
《현형, 너무 그러지 말고 좀 힘써주오. 내 땅에 묻힌들 그 은혜를 잊겠소.》
대산은 기회를 놓칠가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은혜를 갚겠다… 객적은 소린 그만하게-》
현구는 날카로운 눈길로 대산이를 응시하였다. 그의 가슴속에선 의분이 끓어올랐다. 더 모질고 험한 말로 면박을 주려다 그만두고 쏘아보기만 했다.
현구는 애당초 대산이가 일제의 패망으로 하여 세력관계가 전도된 현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는것을 느끼였다.
설사 인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변화가 문제로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오직 그에겐 상대가 강자인가 약자인가 하는것만이 주되는 관심사로 되는것 같았다. 상대가 강자라면 무조건 상전으로 섬기고 약자를 지배하는데 이골이 난 악한인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러한 본성으로부터 상전의 서리에게 붙기만 하면 그 어떤 문제도 실현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진 협잡군이기도 했다.
대산은 일제와 미국을 구태여 구분하지 않았다. 현구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조선사람의 근본을 잃어서는 안된다는것이 그의 확고한 립장이였다.
《시간이 없어 나는 이만 실례하겠소.》
현구는 될수록 좋게 헤여지려고 짐짓 말을 부드럽게 하였다. 했건만 대산의 도발에 부딪쳤다.
《정 이러긴가? 최선을 다해 감옥에서 아들을 빼내주었는데도 쓴외보듯 하다니…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알고 그렇게 으시대는가-》
대산은 자기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성은 왜 내오? 기회가 있으면 봐주겠다지 않소.》
현구는 쓰겁게 입을 다시였다. 순간 현구의 마음속에서도 권력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아들의 사건을 봐도 그렇고 자기 또한 대산의 공범자로 될 의향이 없는만치 그로부터 계속될 협박을 예상할 때 더욱 그러하였다.
현구는 어성버성한 상태에서 대산이와 갈라졌다.
료정앞마당에서 차를 탄 현구는 갈림길에 이르러 가족들과 헤여졌다.
《여보, 빨리 돌아오세요.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요.》
차에서 내린 정녀가 애절한 눈길로 현구를 지켜보며 말했다.
《나도 당신과 의논할 심중한 문제가 있소. 몸성히 기다려주오.》 어느덧 승용차는 대통로를 따라 달리였다.
《여보게 동서,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나? 집도 문서고도 아니고…》
《〈군정〉으로 가야 합니다. 참사관의 분부입니다.》
《참사관의 분부?… 바깥바람을 쏘이게 하고는 부른단 말이지.》 현구의 눈귀에 실주름이 잡히였다.
승용차는 곧장 《미군정청》으로 달리였다.
2
깊어가는 밤. 현구는 담배를 피웠다. 창밖으로 은하수가 흐르고 어둠속 수림이 파도처럼 설레였다. 그가 피신했던 중부산지와 여기 도시교외는 거리상으로나 주변풍치로나 판이한 광경이였다. 그러나 밤의 고요에 잠기느라면 자기도 모르게 고달팠던 그때가 어제런듯 삼삼히 련상되였다. 공들인 곡식들을 산짐승들에게 떼우고 끼니조차 끓일게 없어 안해와 같이 풀죽을 나누어먹던 버림받은 인생이 그지없이 슬프고 억울했었다.
이마전에 패인 주름살들이 살아움직이듯 굼틀거리였다. 눈물겨운 과거로 하여 이밤의 심회가 더한층 깊어지는 모양이였다.
그가 유종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스미스는 집구경은 잘했는가고 물으면서 커피를 권했다. 그리고는 《미군정》이 데려다쓰던 왜놈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모든 사업을 조선사람들이 맡아하도록 조처했다는것, 그에 따라 토지문건들의 수복정리사업을 현구가 책임지고 결속하게 되였다고, 그리고 낮에 돌아본 남산저택을 현구에게 《불하》했다는것과 그가 집에 오고가는 문제도 정식으로 허락되였다는것을 알려주었다.
스미스는 이러한 《군정》의 결단은 물론 왜놈들을 추방하라는 사회적항의에도 있지만 기본은 조선사람의 능력을 인정한데 있다고 말하였다.
뜻밖의 희소식에 접한 현구의 흥분은 이루 헤아릴수없이 컸다.
스미스는 속을 들여다보듯 현구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그는 그동안 강제로 끌어들이다싶이한 현구의 성격과 재능, 리력과 사회적관계 등을 전면적으로 료해하였다. 언제나 사업상의 성과여부는 실무에 밝고 일을 직심스럽게 할줄 아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이룩되기마련인것이다. 스미스는 마침내 현구의 민족적존엄이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일종의 자부심으로 판단하였고 그의 비상한 능력과 전문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인정하게 되였다. 따라서 그에게 벼슬과 집을 주고 일련의 고충거리를 풀어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써먹을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현구는 커다란 흥분속에서도 스미스가 이렇게까지 호혜를 베푸는 까닭을 알수 없어 내심으로 의혹을 금할수 없었다. 아무튼 온갖 고충거리가 덜어져 마음이 한결 편했고 일제때의 말석관리에는 비할바 없는 높은 직무에 고관저택까지 차지한 자신이 놀라왔다. 그 순간 《군정》에 적을 두게 되면 통역관보다 월등하게 될거라고 한 유종의 말이 문득 되살아났다.
유종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현구는 방긋이 웃고있는 스미스를 마주보며 맘속으로 결심을 굳히였다.
(공정한 토지문제해결을 위해 내 힘자라는껏 일하리라. 우리 나라는 락후한 식민지농업국가였던만큼 무엇보다 토지문제부터 옳게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해방된 오늘 제일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