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장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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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수림속에 깊숙이 들어앉은 2현관앞에서 멎었다. 철조망 빙 둘러친 구역안에는 환기들이 달린 네채의 고와 2층3짜리 건물이 있고 네귀때기에 감시막과 탐조등이 세워져있었다. 총을 멘 미군병사가 공지에 야적한 궤짝무지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릴뿐 인적은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차가 달린 방향과 시간으로 보아 동북쪽 교외같았다. 주위의 삼엄한 시설들과 경계망들이 산중 수용소같기도 하고 미군이 쓰는 모종의 비밀소굴같기도 하였다.

현구는 고가 높은 고에 눈길이 가자 《총독부》의 문서고들이 곳곳에 은페되여있다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났다. 바람이 일면서 매개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것이 바로 왜놈들이 비밀리에 태워버린 기밀문건들의 잔해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어느새 벌써 문서고들을 《군정》이 지했구나.…)

현구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참에 접수실을 나선 스미스가 일행을 3층건물로 데리고갔다. 층마다에 무장보초가 서있었고 방들에는 《성원외 출입금지》이란 패쪽이 걸려있었다. 수염이 꺼칠한 사나이들이 노끈으로 묶은 서류뭉테기를 방안으로 날라들였다. 그들은 복도에서 서로 어기면서도 말이 없었고 걸음새는 굼벵이처럼 느리였다. 볼품없이 구겨진 옷과 음영이 짙은 얼굴들에는 굴욕과 공포, 패배자의 울분과 절통함이 어려있었다. 《전승국》의 지령을 받고 되돌아온 《총독부》시절의 고관들과 전문가들같았다.

일행은 묵묵히 3층 3호실로 들어갔다. 널직한 방안에는 고급량수책상과 밤색탁자, 사치한 차관들을 갖춘 원탁이 놓여있었다.

《현선생, 량해하시오.》

스미스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방이 선생의 사무실입니다. 사업상 필요되는건 지장없이 보장될것입니다.》

요즘 스미스는 매우 난처한 처지에 빠져있었다.

자기가 맡은 농촌부문 특히 토지관계가 정확히 료해되지 않아 상급의 줄기압을 받고있는중이였다. 왜놈관리들까지 소환해다 쓰면서도 왜 그 모양, 그 꼴인가? 그래서 스미스는 쯔시마를 협박하였고 그의 요구대로 현구라는 전문가를 찾아내여 예까지 끌어들인것이였다.

스미스는 현구에게 과일즙고뿌를 내놓으며 다시한번 량해를 구하며 웃음을 지었다.

《본관이 부탁하고싶은건 일제 말기의 토지관계문건들을 원상대로 복구정비하는 사업입니다. 지금 그때의 원본들이 풍지박산이 되여서 매일같이 들어오는 토지인가신청서들과 신소들을 확인할수가 없습니다.》 하고 스미스는 그동안 현구의 집사정을 통역관과 전대산처장이 돌봐주도록 조처하겠노라고 그리고 믿음과 선의를 표시하듯 두팔을 쩍 벌리며 자리를 떴다.

《현형, 다른 생각 마시고 성과를 내십시오. 현형에게 복이 굴러들것입니다.》

유종이도 한마디 남기고 나갔다. 쯔시마는 현구의 표정을 살펴보며 서름서름 물러갔다.

장식이 요란한 쏘파에 몸을 던진 현구는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 신한 쏘파가 현구의 번거로운 머리와 피곤한 몸을 어느 정도 안정시켜 주는듯 하였다.

저녁무렵에 현구는 미군하사의 안내로 원에 자리잡은 숙소로 건너갔다. 2안쪽 아담한 귀빈실이였다. 침실과 식사칸이 따로 있고 위생실에 목욕탕이 달려있었다. 여러명이 든 아래층에 비하면 모든것이 편리하고 윤택하였다. 식사시간이 되자 긴 복도가 떠들썩거리였다.

운반해온 저녁식사에 맥주까지 마신 현구는 침대에 누웠다. 그래서인지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보낼 차입품을 마련하여 수의 가슴에 안겨주었을 유종의 수고도 헤아려졌다. 한켠 유종을 통하여 자기의 돌변한 형편을 알게 될 수희와 안해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현구의 머리는 무거웠다. 밖의 나무숲이 설레이고있었다. 칼날같이 날카롭고 강렬한 탐조빛들이 문에 찍혔다.

(여긴 철조망에 둘러막힌 수용소같군.)

현구는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아버렸다.

날 현구는 미군하사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다시 올라갔다. 탁우에는 어제 없었던 새로운 문건철들이 여러 무지로 구분되여 쌓여있었다. 익고 손때묻은 문건철들이였다. 현구는 치욕스러운 지난날이 되새겨져 문건들에 선듯 손을 댈수 없었다.

그는 한식경이 지나서야 자기대로 생각되는것이 있어 문건철을 번지기 시작했다. 완결되였다는 문건들이 너무 불비하고 어설펴서 도저히 일자리를 낼수 없었다. 명색이 고관이고 전문가들이지 실무에서는 소학생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것이다. 밤낮 주색잡기에만 미쳐날뛰였으니 문건들이 그 꼴로 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일에 착수한지 사흘째 되는 날 스미스가 현구의 방을 찾아왔다. 그는 일자리를 얼마 축내지 못한 원인이 현구의 태만에 있다고 여겼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현구는 그 까닭을 구태여 변명하지 않았다.

그 이날에 갑자기 비상소집령이 내렸다. 무장한 미군들이 돌아며 사람들을 뜨락으로 내몰았다.

현구는 뒤늦게야 밖으로 밀려나갔다. 넓은 공지에는 부문별로 줄을 지었는데 모두가 동굴속에서 기여나온 땅굴사람같이 얼굴들이 누렇게 뜨고 옷가지들이 꾀죄죄하였다.

현구는 쯔시마네 농업담당조의 맨뒤자리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요?》 현구의 물음에 《모롭니다. 우리는 복종만 합니다.》 하고 응답하는 쯔시마의 기색은 벌써 절반이나 죽어있었다. 늘어선 대렬중에는 조선사람도 몇명 끼워있었다. 현구처럼 동원되였거나 횡재를 노린 처세군들일수 있었다.

경비실쪽에서 나타난 장교가 질서를 잡았다. 겁을 먹고 설설기는 축들이 있는가 하면 닥쳐올 사변에 항거하듯 눈살을 곤두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후에 철조망밖에서 자동 한대가 마당으로 굴러왔다. 대렬앞에 멈춰선 자동차에서 미군들이 두명의 일본인을 끌어내렸다. 일본인들은 제발로 걷지도 못했다. 옷들은 피로 얼룩지고 얼굴들에는 상자리가 험했다.

《아니?! 스즈끼국장이 아닌가, 그동안 안 보이더니…》

《이쪽은 총무부의 책임관이지?! 영 몰라보겠군.》

사방에서 경악에 소리가 튀여나왔다.

대렬앞에 나선 미군장교가 위엄있게 목청을 뽑았다.

《당신들에게 비상군법회의 결정을 알린다.

이자들 스즈끼와 이노우에는 미군의 관대처분을 심히 악용한 전범자들로서 다음과 같은 중죄들을 범하였다.

첫째, 군정당국에 계통적으로 잘못된 자료들을 제출하였다. 둘째, 담배불로 화재를 일으켜 문서고의 기밀문건들을 불태웠다. 셋째, 군정당국에 충실하려는자들을 모해하고 박해하였다. 넷째, 극비문서들의 처리정형과 매몰지점들을 사실대로 실토하지 않았다.

군법회의는 이상의 엄중한 범죄행위들을 심의하고 해당 법조항들에 근거하여 범인들을 총살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최종적이다.》

미군장교는 관결문을 읽고나서 《총살은 동료들의 면전에서 교이 되게 집행한다.》 라고 선언하였다. 대기하고있던 병졸들이 땅에 박은 말뚝들에 그들을 비끄러매였고 다섯명의 사격수가 장교의 신호에 따라 총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시체로 된 그들을 말뚝로 유개차에 싣고 정문을 빠져나갔다. 수림에 둘러막힌 뜨락은 갑자기 무서운 정적에 휩싸였다. 고개를 떨군 사람들은 일에 착수하라는 호령에도 불구하고 움직일줄 몰랐다.

《현선생, 어서 물러나십시오.》

졸개들을 문서고로 보낸 쯔시마의 낯색은 백지장같았다.

3층사무실로 올라온 현구는 충격이 컸다. 어째서 왜놈도 아닌 조선사람들앞에서 총살을 하는가? 이건 분명히 사람들의 기를 꺾자는 야비한노릇이였다. 불복하면 어떻게 된다는 신호이고 협박이였다.

(이자들이 나도 그렇게 본단 말인가.)

현구는 새삼스레 왜정때의 일이 떠올라 가슴노리에 동침을 맞은듯했다.

《진정하십시오. 우린 드문히 겪는걸요.》

뒤미처 들어선 쯔시마가 자기는 그런 일을 당할적마다 속이 떨려 못 견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기각당한 문건들과 현구의 검토를 받게 된 문건들을 가리키며 자기네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하였다.

《나가시오, 상대하기 싫소.》

현구는 분격한 어조로 내쏘았다. 그는 오에 나타난 스미스와 유종이도 그런 기분으로 대했다.

《현선생,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스미스는 쏘파에 걸터앉으며 례사롭게 물었다.

현구는 그의 얼굴에 시선을 못박았다.

《뜻밖이요, 우리 조선사람을 일본사람처럼 취급하다니… 집에도 갈수 없는 이런 곳에 밀어넣구.》

현구는 노염이 섞인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선생도 관했습니까. 나오라고 하던가요?》

스미스는 어두운 빛이 떠도는 현구의 얼굴을 주시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올리였다. 현구의 밝은 얼굴빛이 겁먹은자의 몸부림으로 생각되였던것이다.

《본관이 미처 손을 못쓴탓입니다. 다시는 그런 실례가 없을것입니다.》

스미스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현구가 안심이 되게 말하였다.

상대방에게 공포와 전률감을 안겨주자던 목적이 달성된 조건에서 그만한 양보쯤은 새발의 피였다.

《선생, 기분을 돌리십시오. 선생은 멀지 않아 집에 오가게 될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본관은 그 문제를 성사시키기 위해 힘쓰고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도 힘껏 일해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미스는 자기가 힘껏 뛰는데 비하면 현구의 움직임이 지내 완만하다는듯 비죽이 웃었다. 하지만 속은 편안치 못했다. 스미스는 지금 대단히 어려운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자기가 주관하고있는 사업 특히 토지측량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상급으로부터 매일같이 불같은 추궁을 받고있었다. 어쩌면 무능력으로 본국에 쫓겨갈수 있었다. 그런데 큰 기대를 걸고 애써 데려온 현구가 자기의 처지를 알아주지 않으니 속이 탈만도 했다. 그래서 현구를 일부러 사형집행장으로 끌어내도록 했던것이다. 하지만 겁에 질린 분발심보다 존엄을 훼손당해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더 짙었다. 스미스는 쓰겁게 입을 다시였다. 현구 조심히 다야 할것 같았다. 이건 그의 비위에 맞지 않았다. 생각같아선 현구를 제껴버리고 자기가 직접 손을 대고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한다하는 전문가들인 쯔시마네도 골탕 먹고있는판이 아닌가. 현구에게 매여달리는 길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스미스는 진땀이 내돋도록 갑자르다가 겨우 자신을 수습했다.

《그건 지나간 일인데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나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그럼 성과를 기대합니다.》

그는 애써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현구는 그를 따라나가려는 유종을 멈춰세웠다.

《여보게, 참사관의 말대로 집에 다녀올수 있겠나?》

《제기했다니까 소식이 있을겁니다.》

《옆에서 좀 채근해주게. 집사람의 병이 걱정되네, 수일이도…》

《알겠습니다. 문제는 형님에게 달려있습니다. 마력을 내십시오. 그러면 알도리가 있을겁니다.》

현구는 유종의 말대로 마력을 내기 시작했다. 세상이 뒤집힌 란통에 문건들이 분실되고 불탄데다가 수습하는 솜씨까지 서러서 제대로 구색을 갖춘 문건은 한건도 없었다. 적어도 《군정》이 인정하는 문건으로 되자면 소유자의 토지명세와 년도별 매매관계, 공증인의 확인서와 보증서들, 각급 관청과 《총독부》의 최종인가정형이 구비되여야 하였다. 얼마 되지 않은 토지는 지방기관에서 처분했지만 면적이 큰 토지는 수속절차가 복잡했다. 문건들을 수복정리하는 과정에 현구는 매우 중요한 문제들을 포착했다. 자기가 다루는 문건원본들 절대다수가 왜놈들이 수탈한 토지들이였고 그것이 법의 너울을 씌운 강탈지들이였던것이다. 그는 원본의 범죄적내막을 《군정》이 납득할수 있도록 문건들을 작성하기 위해 애썼다.

참사관도 란된 토지관계를 옳게 해결해주자고 원본을 요구해오지 않았는가. -그것이 완결되면 미군이 철수하고 조선정부를 세운다고 하지 않았는가.-생각이 이에 미치자 가슴이 설레였다. 자기의 우유부단성으로 하여 미군의 철수를 지체시킬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당했던 토지소유관계도 공정하게 해결되도록 함으로써 미군이 조속히 철수되도록 힘껏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현구자신만이 할수 있는 유익한 일이였다. 지난날 죄책감을 덜수 있는 두번다시 없는 기회였다. 흥분한 현구는 문건들을 수복정리하면서 한편으론 특대형범죄건들은 따로 적어두었다. 날 죄악에 일제의 강도적인 토지강탈을 세상에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현구는 우선 상급심의에서 부결된 문건들부터 검토하였다. 순서가 건 제대로 해놓고 불충분한 문건들은 보충완비해나갔다. 많은 문건들을 다루다나니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적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관계했던 토지내역에 대해서는 비고란에 위조되고 강요된 사연을 명기해주기도 하였다. 시간이 감에 따라 부결된 문건들이 한건씩 원본으로 재정리되여 넘어갔다. 소유관계가 애매하거나 불명확한 조항들에는 《재확인 요망》 또는 《현지확인할것.》 으로 명기했다.

그는 점심무렵에 문서고로 내려갔다. 문서고들에는 각 분야의 문건더미들이 무질서하게 방치되여있었다. 쯔시마와 수하들은 서고에 나타난 현구를 황송스레 맞이했다.

《여기까지 나오시다니요.》

《현선생, 어지러워 못 들어갑니다.》

현구는 허리를 굽실거리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혼잡을 이룬 서류더미속에서 요긴한 문서장들을 솜씨있게 골라내였다.

《귀신같군. 어쩌면 그 숱한 문건속에서 필요한것들만 찾아낼수 있는지?》

쯔시마거리들은 이젠 살아나게 되였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이윽해서 현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쯔시마가 뒤따라나왔다. 정문쪽에서 문건을 실은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미군들은 철조망을 손질하고있었다.

현구는 문서고뒤마당 잔디밭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현선생덕으로 이제부터 신한공사가 움직이게 될것 같군요.》

현구의 덕택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게 된 쯔시마가 사의를 표시하였다.

《그게 뭘하는 기관인가?》

《과거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류사한 기관입니다.》

쯔시마는 그것이 일본인재산들까지 포함시켜서 과거의 《동척》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문서고에 끌려온 고관들과 전문가들이 자료들 수집완비하면 《군정》의 직속인 신한공사가 그것들을 넘겨받아서 관리운영하거나 《불하》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 조선의 경제를 《군정》이 직접 맡아한다는게 아닌가?)

현구는 머지않아 조선정부가 서겠는데 《군정》이 분주탕을 피울게 있는가싶어 내심 머리를 기웃거렸다.

미군순찰병이 다가와서 작업장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쯔시마는 토끼처럼 닥닥 일어났으나 현구는 미군졸병이 아니꼬와 으! 하고 헛기을 톺았다.

1

5

 

한밤중에 눈을 뜬 현구는 물부터 찾았다. 저녁때 술을 지내 마시고 정신없이 곤드라졌던 그였다. 문밖에서 은하수가 르고 숙소구내에는 괴괴한 정적이 무겁게 실렸다. 포장한 길바닥을 울리는 순찰병들의 군화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현구는 전등을 켜야 했으나 그럴수가 없었다. 취침시간에는 불켜는것도 바깥출입도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외출자에게는 구령없이도 사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져있었다.

손더듬으로 주전자물을 마시고난 현구는 대에 등을 기대였다. 수림속에서 밤새소리가 처량하게 울려왔다.

어제 저녁에 양유종이가 향수내를 풍기며 숙소를 방문했었다.

유종은 진작 와보지 못해서 안됐다면서 원탁에 간소한 주안상을 차리였다.

《형님, 산중에서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여보게 동서, 사람을 가둬놓고 면회를 올멋이 있겠나.》

현구는 무척 반가왔으나 말은 바른대로 하지 않았다.

《형님네가 고초를 겪고있는데 우리의 마음이 편할수가 있습니까. 사관이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유종은 형님이 정리한 문건들이 스미스를 만족시킨것 같다고 이렇게 말하였다.

《문건들을 검토하면서 역시 현기사가 인재야 하고 연방 외우더니 형님에게 가보라구 하더군요.》

《?!》 현구는 반신반의했다.

《형님, 기회가 성숙된것 같습니다. 수일일 출옥시킵시다.…》

《여보게, 그런 소리 말게. 긁어부스럼만들 생각은 없네. <포고령> 반대한 아들을 사관이 봐주겠다고 하겠나? 괜히 그랬다간 동서까지 해를 입을수 있네.》

《원 형님두, 내 걱정은 마시라요. 난 수일의 어머니도 입원 받게 할 생각입니다.》

《집사람까지?!》 현구는 두눈을 크게 떴다.

《자, 그 성의는 고맙네만 서두르진 말게. 자네에게 무슨 불티가 튈지 알겠나.》

현구는 진심으로 말했다.

《형님, 나도 생각되는것이 있어 그럽니다.》 하며 유종은 큼직한 사각봉투를 내놓았다.

현구는 무심결에 사각봉투를 받아보았다. 뜻밖에도 그것은 전대산이 보낸 토지문서와 편지였다. 불시로 숨결이 거칠어진 현구는 몇줄 읽어보다가 휴지장처럼 꾸겨던지며 격하게 말했다.

《바로 그래서 그 사람이 나한테 선심을 썼군.》

유종은 현구가 흥분한 까닭을 알길 없어 마구 구겨진 지를 집어서 읽어보았다.

편지에는 인사말뒤끝에 수일의 출문제가 매우 어렵게 됐다는 사연이 적혀있었다.

그 리유는 감옥내에서의 범죄사건도 있어서 법의 절차대로 재된다는 소식과 함께 이렇게 썼다.

《…현형, 락심하지 마십시오. 독틈에도 용수가 있다는데 내가 약속을 어기겠습니까. 그전날의 관계를 봐서라도 힘껏 노력하자고 합니다.

현형, 안심하시고 저의 간곡한 청이나 들어주시오. 다름이 아니라 촌에 계시는 우리 아버님이 땅문서와 두건의 일본인토지증서를 보내왔습니다. 그것들을 아버지의 소유지로 합쳐주었으면 합니다. 매매증서가 첨부된만치 법적으로 문제될게 없다고 봅니다.…》

편지를 읽은 유종의 마음도 격하게 달아올랐다.

물론 자신도 현구의 도움을 받자는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왜놈들이 수탈한 땅까지 저네들의것으로 수속해달라는 대산의 요구는 너무하였다.

현구는 직장알선이요, 아들의 면회와 석방공작이요, 참사관을 대면시킨 《연회》요 하면서 추파를 던진 전대산의 속심이 더럽고 음흉하여 얼굴을 한껏 찌프렸다. 동시에 그러한 청탁을 받게 된 자신의 처지가 혐오스러웠다.

자기는 지금 왜놈시절에 강탈되였거나 잘못 처리된 토지관계를 《공정》하게 처리하려는 《군정》을 돕자고 낡은 문건들을 뼈심들여 수복정리하고있는데 이런 기회를 리용하여 전도와 같은자들에게 나라의 귀중한 땅을 공짜로 차례지게 할수 없었다.

현구는 기가 막혀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또 마시였다.

《형님, 그만하십시오. 》

유종이가 연방 술잔을 비우는 현구를 만류하였다.

《형님, 난 정말 전가의 사람됨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형님에게 권고도 했는데 잘못된것 같습니다.》

유종은 자기의 실책을 생각해서도 현구의 고충들을 푸는데 나서겠다고 하면서 물러갔다.

잠을 깬 현구는 침대를 의지하고 두눈을 슴벅이였다. 저녁에 다녀간 유종이가 기억되고 대산의 편지에서 받은 세 충격도 상기되였다. 방안에는 먹물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또다시 대산의 편지구절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도 대산이와 같은 존재로 전락되는게 아닌가? 그가 나를 리용하자고들다니… 끝내 더 자지 못하고 사무실로 나온 현구는 한숨속에 시간을 보내였다. 한낮때였다.

현구는 문서고로 출두한 스미스를 만났다. 사형집행날 독기를 풍기던 그때와는 달리 스미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비껴있었다.

《현선생!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스미스는 현구를 친절히 쏘파로 이끌었다.

유종이가 앞상에 내놓은 간식들 또한 예상밖이였다.

스미스가 현구의 한쪽팔을 다정히 잡았다.

《현선생, 본관은 우선 선생에게 충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하는바입니다. 선생의 손을 거친 문건들은 모두 완전무결합니다. 본관은 대산씨와 쯔시마처장이 선생을 존경하는 까닭을 기쁜 마음으로 잘 알게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스미스는 상급의 가도 받았다고, 그러면서 집에 오가는 문제도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선생의 신색이 왜 그렇습니까. 지내 무리하시는게 아닙니까.》

기분이 뜬 스미스는 현구에게 마음을 쓰느라 하였다. 이때라고 생각한듯 유종이가 말을 꺼냈다.

《참사관각하, 현선생은 큰 고충을 안고있습니다.》

《그건 뭡니까? 선생은 우리의 친근한 벗입니다. 서슴지 마시오.》

여기에서 용기를 얻은 유종이 현구의 아들이 옥중에 있다는 말을 했다. 스미스는 기색이 달라졌다. 담배를 꺼내문 그의 눈빛은 꼿꼿하였다.

유종은 숨을 죽이였고 현구는 말리지 못한걸 회하였다. 스미스가 아들의 사건을 빗대고 압력을 가하지 않겠는지 심히 우려되였다.

《선생의 아들이 학생입니까?》

스미스는 한껏 당기였던 줄을 서서히 풀어주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닙니다, 로동자입니다.》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본관은 하기 힘든 말을 듣게 된걸 매우 다행으로 여깁니다. 사실 본관은 첫 며칠간 우리의 성의에 비하여 실적이 적은데 대하여 선생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젠 모든것이 리해됩니다. 자식을 감옥에 둔 부모로서 마음이 편할리 있겠습니까.》

이런 말로 위로하던 스미스가 이번에는 현구의 아들을 두둔하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사회운동에서 언제나 로동자들이 선봉인만 로동청년인 아들이 대중시위에도 나가고 맞붙어보는건 사회적풍조이며 류행이라고… 자기도 대학시절에 그렇게 기세를 올려보았다고 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현선생,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십시오. 본관이 법무국과 교섭하겠습니다. 선생은 문건정리사업이나 빨리 결속해주시오.》

현구는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관각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소식에 의하면 감옥안에서 범한 아들의 죄과 또한 엄중하다고 하니…》

《죄과가 어떠하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스미스는 자기 권한밖의 사건인데도 주저하지도 협의해보자고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성과만 있으면 그보다 더한것도 해결될수 있습니다.》 유종이가 이때라고 생각한듯 정녀의 입원문제도 내비다.

《집사람의 입원?! 그것도 걱정하지 마시오.》

스미스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선선히 응했다.

현구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이런 미국인을 내 왜 반신반의했던가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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