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찬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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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천종점에서 내린 현구는 전차길을 가로질러 형무소를 찾아갔다. 차가 드나드는 형무소출입문 량쪽에는 무장한 보초들이 서있고 접수실앞으로 면회를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지어있었다. 혈육의 얼굴 한번 보자면 며칠씩 품을 놓아야 하는 감옥면회였다. 새벽에 숨가삐 달려와도 그날 차례가 위태로와 밤을 패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접수실 입구는 언제나 악마구리 끓듯 하였다.
로파를 부축한 젊은 녀인이 눈을 감기 전에 아들을 보겠다는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주시오하며 앞자리를 사정하였다. 녀인은 분통을 터치였다. 고향으로 내려갔던 세대주가 논밭과 과수원을 마구 밀어제끼는 불도젤앞을 막아나섰다고 기소됐다는것이다. 군용지건설을 방해하는 죄로 되여 남편이 감옥살이를 한다고 울분을 금치 못했다.
녀인의 항변에 사람들은 놈들을 욕질하며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현구는 정문보초에게 출입허가증을 보이고 곧장 길건너의 이층전옥실로 향하였다. 경찰청의 전대산이 알선한 검찰소의 면회허가증이였다. 그는 부득불 전날에 랭대하고 배척했던 전대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면회를 거절당하고 쓰러진 안해를 살려보자고 공중전화소로 달려갔던것이다.
현구는 형무소의 총관리인 전옥실로 들어갔다. 몸이 비대한 전옥이 소개신을 받아보더니 자기도 전대산처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하였다.
《아드님의 이름이 현수일?! 로동자, 열일곱…》
짚이는게 있는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외우던 전옥이 《앉으십시오.》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그러나 인차 수일일 불러내지는 않았다. 전옥은 미국인소장소리를 하면서 미타해하였다. 현구가 돈봉투를 탁자우에 내놓았다. 그러자 전옥은 현구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빈방입니다. 내 소장어른과 의논해보겠습니다. 소개장도 있고 해서 그렇지 아드님은 면회할 대상이 못됩니다.》
《무슨 연고인지 말씀해주실수 없겠습니까.》
《예, 부친이 알아두는게 필요할겁니다. 아드님은 어린 나이치곤 여간 내기가 아닌것 같습니다. 만나서 정신이 들도록 타일러주십시오.》
전옥은 랭담한 어조로 간단히 이야기하였다. 미결수인 수일은 엄중하게도 감방규률을 위반한 죄로 둬달 중한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채심하지 않고 못되게 논다는것이다. 처벌해제를 받고 본래의 감방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를 반기는 사람들속에서 당황해하는 한사람의 눈빛을 포착하고 그를 녹초가 되도록 구타했다고, 그 리유는 바로 그 사람의 밀고로 자기가 벌방처벌을 받게 되였다는것이다. 일종의 《복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전옥은 대노하였다. 또다시 벌방으로 보낼것인가? 여러차례 협의하던 끝에 둬두고 동향을 보는 동시에 조서를 만들어 검찰소에 넘기고 재판에서 계산하도록 했노라고 하면서 말을 그냥 했다.
《감방을 내탐하던 공로자를 이감시킨걸 생각하면 지금도 분합니다. 하지만 발각이 된 이상 그냥 둬둘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드님이 그 값을 물어야지요. 아드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시오. 그러지 않았다간 무슨 일을 칠지 모르겠군요.》 전옥은 위협조의 말을 남기고 나갔다.
현구는 속이 타서 담배를 갈아댔다. 예상을 뛰여넘은 아들의 소식이였다. 자기의 젊은 시절과는 다르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당돌하고 겁을 모르는 자식으로 된줄은 알지 못했다.
보따리를 원탁에 놓은 현구의 눈길에 감옥안뜨락이 비껴들었다. 남색수의를 걸친 죄수들이 간수의 감시밑에 야적장으로 벽돌궤짝을 메날랐다. 그들은 말도 못하고 돌아보지도 못하였다. 벽돌궤짝에 짓눌려 힘겹게 걸음을 옮기였다. 간수가 큰소리를 치며 구두발을 안기여도 그들의 굼뜬 걸음걸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와 격페된 감옥안의 살벌한 분위기와 굴욕적인 징역살이의 일단이 현구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수일이도 형벌을 받게 되면 개천대를 받으며 고역을 치르게 되겠지? 향학열도 높고 품행도 단정했던 아이가 그 누구의 영향을 받고 그렇듯 달라졌을가?…
문이 열리기 바쁘게 흰 얼굴에 머리칼이 더부룩한 젊은이가 뛰여들었다. 《아버지! 아버지!》 하고 목메여 부르며 아들은 현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현구는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말이 나가지 않았다. 몇해만에 안아보는 아들인가.
철없는것을 동서네에게 맡기고 집을 떠난 그날부터 오늘 이때까지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는 아들이였다. 그렇듯 잊은적 없고 그렇듯 보고싶었던 아들을 이렇게 옥중에서 끌어안고보니 숨이 막혀 도무지 입을 열수가 없었다.
《아버지, 저때문에 몹시 속을 태우셨겠지요. 집에 돌아오신지 오랜가요?》
《얼마 안된다.》
현구는 아들의 물음에 겨우 대답했다.
《고생이 많으셨겠지요.》
수일은 눈굽을 훔치며 말을 떠듬거렸다.
《정말 안타까와요. 아버지와 어머님이 집에 돌아오시면 큰상을 차려드리자고 했는데 감옥에서 뵙게 됐군요. 하지만 그런 날은 꼭 올거예요. 믿으세요. 어머니는 앓지 않는가요?》
《무사하다.》 하며 현구는 보자기의 음식을 펴놓았다.
《먹으면서 듣거라.》
원탁에 다가앉은 수일은 어머니의 성의인 녹두지짐이며 약밥, 찰떡을 먹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저를 많이 욕하세요.》
《정말 놀랍구나. 우린 네가 이렇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감옥에서 너를 만나다니?!…》
현구는 기가 차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얘야, 이젠 너도 열일곱살이 되지 않았느냐. 그런것만큼 물덤벙술덤벙할 때는 지났다.》
《아버지, 물덤벙한게 아니예요. 미군이 공장을 빼앗구 땅을 빼앗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어요. 아버지도 왜놈을 증오한것처럼 미군을 미워하게 될거예요.》
《…》 현구는 아들의 말이 어느 정도 공감되였으나 침묵을 지켰다. 그대신 수일에게 어서 먹기나 해라, 어머니가 밤새 만든거라고 말해주었다.
수일은 감방형님들과 함께 먹겠다면서 남은 음식들을 보자기에 쌌다.
《그래 재판은 언제쯤 예견되느냐?》
현구가 묻는 말이였다.
《판검사가 모자라서 빨리 못한대요.》
《담당검사가 부산에서 아직 안 올라왔다더냐?》
《몰라요. 전 재판만 하면 죄가 없어서 나가게 될거예요.》
현구는 아들의 팔을 잡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부어오른 팔목에는 피멍이 든 흔적이 뚜렷하였다. 순간 《총독부》지하실에서 자신이 겪었던 고문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그는 한숨을 토하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내려감았다.
《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감옥인데 그쯤도 안하겠어요. 우린 이겼어요. 면회도 제대로 하게 되고 일과도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아요. 》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일과를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는다는건…》
현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다우쳐물었다.
《우리가 편리하게 맘대로 하고있어요.》
《그러면 안된다. 그것이 이제 재판을 받을 때 계산된다는것을 너는 아직 모르고있구나.》
《아버지, 전옥한테서 무슨 훈시를 받으셨나요?》
《말썽을 부리지 말게 잘 타일러달라구 하더구나.》
《말썽을 부리지 말게 해달라구요? 하기야 돌이켜보면 지난날 내가 경솔하게 행동한것은 사실이예요. 좀더 깊이 생각하고 침착했더라면 벌방에서 고생도 하지 않았을거예요. 앞으로 자체수양과 단련에 힘을 넣겠어요. 》
현구는 속대가 바로선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아들의 젊은 혈기가 걱정되였다. 예상밖의 일을 또 칠수 있었으며 그것이 곧 집안의 불행으로 이어질수도 있었다.
《수일아, 몸을 잘 돌보거라. 사회활동은 어른들이 맡아서 하는거다. 다른 생각은 말고 이제 책을 보내줄테니 공부를 꾸준히 하여라. 어머니도 네가 그러길 바라신다.》
《아버지, 저도 어머니가 막 보고싶어요. 다음번엔 꼭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세요.》
수일은 울먹거리며 력사학계통의 책들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잘 생각했다. 제발 소동을 피우지 말아라. 우린 네가 감방에서 빨리 나와 공부를 하게 되길 바란다.》
수일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구는 아들의 다짐을 받아내려고 입을 여는데 방안으로 간수가 들어왔다. 면회시간이 끝났다고 알려주었다.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한 수일은 왼쪽다리를 약간 절룩거리며 문턱을 넘어서다가 물었다.
《아버지, 경찰청의 전대산처장을 아세요?》
《그건 왜 묻느냐?》
《나를 심문하면서 아버지를 찾더군요. 전 바른대로 대주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총독부>때부터 경찰이였어요.》
수일이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데 간수가 등을 떠밀었다.
현구는 아들이 못다 한 말뜻이 어느 정도 리해되였다. 이 아버지가 전대산의 소개로 아들면회를 하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아연실색하겠는가? 운명이 기구한것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6
면회를 하고난 현구는 안정을 잃고말았다. 아들의 얼굴만 봐도 한결 위안이 될줄로 알았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현구의 걸음은 언덕길에서 자주 멈춰지군 했다. 병석에 누워있는 안해에게 아들소식을 그대로 전하기가 여간만 딱하지 않았다. 현구가 대문을 열기 바쁘게 수희가 달려나오고 안방에선 안해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수고하셨어요. 수일이를 만나보았어요?》
정녀가 묻는 말이였다.
《만나봤소. 몰라보게 자랐더군. 당신도 이제 보면 놀랄거요.》
《그래 몸은 어때요? 몹시 상했겠지요. 가져간 음식은 다 먹였어요?》
《당신이 보낸거라구 하니까 두눈을 슴벅이며 먹어대더군. 나머지는 감방형님들과 함께 하겠다더군.》 하면서 현구는 수일이가 어머니와 함께 오지 않은걸 몹시 섭섭해하더라고 말하였다.
《왜 안 그러겠어요. 못 본지가 몇해째인가요.》
정녀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재판은 언제 한대요? 저도 공판정으로 나가겠어요.》
《…》
현구는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정녀는 가슴속 울분을 터치였다.
《그렇게도 착한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구 감옥살이인가요. 일제잔재를 숙청하자는것도 죄로 되는가요? 그래 재판은 언제 한대요?》
《아직 미정이라고 하더구만.》
《뭐라구요? 미정이라구요?》 정녀는 불시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그만 까무라쳤다. 당황해난 현구는 어쩔줄 모르며 수희에게 빨리 의사를 데려오라고 했다. 얼마후에 나이지숙한 의사가 숨가삐 달려왔다. 그는 정녀를 진찰하고 약처방을 주면서 입원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입원은 절대로 안하겠어요. 먼저 수일이를 만나보고 친정집에도 다녀와야겠어요. 저수지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속에 잠겼다면 늙으신 부모님이 어디로 옮겨가셨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병원침대에 누워있겠어요. 》
현구가 그곳은 북조선땅이니 여기와 다를거라고 말해줘도 그는 직접 제 눈으로 봐야겠다고 고집했다. 하면서 친정집에 갔다와서는 교편을 잡겠다고 말하였다.
《병석에서도 생각은 깊었구만. 그러게 빨리 몸을 회복해야지 않겠소. 지체하면 나쁘다오.》
현구가 입원을 강조했으나 정녀는 그냥 도리질을 해댔다.
《원 당신두…》 현구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정녀옆에 앉아있다가 건너방으로 넘어왔다.
주위는 고요하고 뜨락의 달빛이 소리없이 졸고있었다.
현구는 잠들수 없어 약속기일이 지난 원고를 마저 쓰려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는 지금 호남지방에 기여들었던 아까모도라는 놈의 범행자료를 적어나가는중이였다.
《…아까모도는 오끼나와에서 건너온 일본인거류민이였다. 그는 놀부이상으로 욕심이 많고 심술이 사나왔다. 자기네 콩밭에 들어선 황소를 붙잡아선 제것으로 만들어버린 지독한자였다.
내가 그 소문을 듣고 당자에게 물어본적이 있었다.
<아까모도상, 콩 몇포기하고 황소를 바꿨다는데 그게 사실이요?>
그러자 작은 키에 수염투성이인 아까모도가 누런 이발을 내밀며 반편처럼 히히 웃어댔다.
아까모도는 이처럼 후안무치한 방법으로 치부한 허가받은 략탈자였다. 수살이놀이, 추석놀이하는 장수골의 명당자리에 별장을 지어놓고 사나운 개들을 풀어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물어뜯게 하는 야차같은 놈이였다. 별장에서 끼고돌아갈 처녀를 탐내여 그의 부모형제들을 중국동북지방으로 추방하게 만든 패덕한으로서 그자의 죄상은 그에만 그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의 명줄인 풍덕벌을 관청과 짜고 수탈한 그놈의 날강도적인 행위는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하였다. 그놈은…》
여기까지 적어놓고 내용을 훑어본 현구는 일단 붓을 놓았다. 안방으로 가서 안해를 간호해야 했던것이다.
《이봐요, 안됐어요.》 약을 먹고난 정녀의 목소리는 갈리였다.
《무슨 소리… 병치료나 잘하오.》
《알겠어요. 저도 그저 누워있자니 베차군요.》
현구는 공손히 눈을 감는 정녀를 지켜보면서 더운 숨을 내쉬였다.
그는 자신을 걷잡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현구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찾는 안해의 목소리에 사이문을 열었다. 뜻밖에도 뜨락으로 나온 정녀가 여느날의 주부답게 머리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둘렀다. 정녀는 벽에 매달린 고사리와 도라지묶음을 가리키며 거미줄이 앉지 않게 간수했다가 오빠가 감방에서 나오면 산나물맛을 보이라고 했다.
《내가요?》 수희는 고사리에 붙은 검불을 집어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난 못해요. 엄마가 접때처럼 맛있게 해줘요. 엄마가 오빠를 생각해서 캐여온게 아니예요.》
《어머니가 없을적에는 곧잘 하면서 뭘 그러느냐. 고사리는 푹 삶아도 일없지만 도라지는 슬쩍 데쳐야 한다.》
《싫어 난, 오빠도 엄마가 해준걸 좋아해.》
수희가 질색하는데도 정녀는 녀자의 미덕은 음식솜씨라면서 한번 산나물료리를 만들어보라고 타일렀다. 그는 장독대의 된장독뚜껑을 바로 덮고 흙물도 씻어내더니 수채터의 오물을 가셔내기 시작했다. 수희가 바람맞으면 해롭다고 해도 아랑곳없이 수채터를 깨끗이 거두라고 했다.
《어머니, 내가 해요. 어머니는 빨리 병을 고치고 다시 학교에 나가야지 않아요. 선생님이 그러는데 새 조국 건설에선 인재가 제일이래요. 》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어머니도 외가에 다녀와선 교탁에 서자고 한다.》
정녀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수희야, 집안을 늘 정돈해놓고 살아야 한다. 집안이란 녀인의 얼굴과 같아서 어지러우면 남들이 흉본단다.》
《집안이 녀인의 얼굴이라구요? 호호. 그런데 엄마, 오늘은 왜 그러세요. 내가 한다지 않아요.》
수희는 기침이 잦은 정녀를 돌아보며 의아해하였다. 정녀는 수희가 말리여도 뜨락의 구석구석을 깐깐히 손질하고 부엌쪽으로 향하였다.
《여보, 무리하지 마오.》
현구가 보다못해 옆문을 제끼고 소리쳤다. 누워있기가 답답해서 해보는노릇같지 않았다. 그의 말마디가 유별나고 행동거지가 지나쳤던것이다.
《지내 소풍하면 나쁘다는걸 모르오.》
현구는 당장 일손을 놓으라고 소리쳤다.
《예, 들어가겠어요. 수희에게 살림살이를 대줄 기회가 따로 없을것 같아 그래요.》
정녀가 공손히 응답하고 부엌칸으로 들어갔는데 그것이 끝내 사달을 치고말았다.
수채터의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부엌문을 연 수희가 다급한 소릴 질렀다.
《엄마?! 엄마-아버지-》
현구는 한달음에 달려나갔다. 시렁의 남비를 손에 쥔채 정녀가 부엌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의식을 잃은 정녀의 입술에는 피자욱이 나있었다. 현구는 수희와 같이 정녀를 안아다 자리에 눕히고 입술의 피를 씻어냈다.
《여보! 정신차리오.》
《엄마, 죽어선 안돼. 엄마, 눈을 뜨라 응-》
정녀는 반응이 없었다. 실신한 정녀를 응시하는 현구의 기색은 극도로 긴장되였다. 여러번 거듭된 정녀의 졸도가 심상치 않았던것이다. 현구는 의사를 부르고 수희를 룡산의 처제와 소서문의 성렬선생댁으로 보내였다.
얼마후 가방을 든 의사가 올라오고 뒤를 이어 들어선 처제가 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언니! 이게 웬일이예요. 눈을 뜨라요. 고향에도 안 가겠어요- 안돼요. 언니- 》
《엄마, 죽지 마- 엄마 죽으면 난 어쩌나. 오빠도 못 보구, 엄마-》 정애와 수희가 오열을 터치며 쥐여흔들어도 혼수상태에 빠진 정녀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 시각부터 로숙한 의사의 구급처치틀 받으며 사경을 넘나들었다. 현구는 물론 약과 음식을 싸들고 올라온 성렬선생도 숨을 죽이였다. 낮게 드리운 떼구름이 무거운 집안공기를 더한층 어둡게 하였다.
시간이 흘러 의사가 담배를 붙여물었다.
《급한 고비는 넘긴것 같습니다. 한잠 자고나면 피기가 돌겁니다.》 의사의 말에 방안사람모두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성렬선생이 안방의 현구를 마루로 데리고나갔다.
잠시 동안을 두었던 그는 현구의 기분도 돌려줄겸 집필문제를 화제에 올렸다.
현구는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의 청이 돼서 써보긴 했습니다. 한데 소용이 되겠는지…》 현구는 체계도, 년차별 순차도, 고증도 없이 생각나는대로 적어놓았을뿐이라고 하였다.
《시작은 했군, 수고했소.》 성렬은 희색을 띠였다.
《그러면 그렇겠지! 어디 봅시다.》
성렬은 벽지에 쓴 글을 반가이 받아쥐였다.
《이제 이 글이 나가기 시작하면 사회적으로 반향이 대단할겁니다. 특히 농촌에서 더할겁니다.》
마루에 앉은 성렬은 류의해서 몇대목을 읽었다. 체험자, 목격자의 체취와 반일감정이 글귀마다에서 날카롭게 맥박쳤다.
원고를 읽고난 성렬은 게면쩍어하는 현구에게 신심을 주며 앞으로의 집필방향과 내용까지 상세히 가르쳐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빨리 쓰시오. 잡지사 편집원들이 만족해할것 같소. 그리구 생활상 재정적도움도 받게 될거요.》
김성렬은 이렇게밖에 현구를 도와줄수 없는 자신이 답답한듯 말을 마치며 한숨을 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