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찬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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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소에 갔다가 이번에도 담당검사를 못 만나고 돌아온 현구는 수채터에서 손을 씻고 건너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안해와 딸이 수일의 면회를 갔던것이다.

날씨는 잔뜩 흐려있었다.

(비가 오겠는데 새벽에 떠난 사람들이 왜 안 올가?) 차고 싸늘한 봄날씨에 혹시 수일이가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는지, 감방속에서 오욕을 치르고있을 아들이 몹시 걱정스러웠다.

현구는 자기도 함께 면회를 가지 못한것을 회하였다. 여러해동안 만나지 못한 까닭에 이제는 아들의 생김새조차 아리숭했다. 부모의 속을 태우는 아들이긴 했으나 피줄은 어쩔수가 없는것 같았다.

책상앞에 마주앉은 현구는 잠시 담배를 피웠다. 책상우에는 낡은 수들과 토지와 관련된 공개본책자들이 놓여있었다. 성렬선생의 청을 어길수 없어 찾아낸 자료들이였다. 토지와 관계된 문건들은 일체 기밀로 되여있어서 그전에 사용했던 개인수첩들과 기록장들 그리고 출판된 도서들뿐이였다. 현구는 어수선한 정신을 집중하면서 붓을 들었다. 그는 지난날 자신이 직접 목격했거나 체험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일제가 감행한 토지략탈의 진상을 고발한다.》 라고 붙인 총제목밑에 이렇게 써나갔다.

《일제는 오래전부터 강도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토지를 수탈했다.

내가 본 문건에는 1912년 8월에 일제가 <토지조사령>을 공포하고 1915년까지 령남지역을 조사한 경험에 기초하여 본격적으로 토지수탈에 달라붙었다. 일제는 토지에 대한 등록 및 신고수속절차를 까다롭게 만든데다가 신고기일까지 짧게 정해놓고 조상전래의 개인소유지들을 닥치는대로 강제수탈하였다. 그리고 놈들이 반일투사요, 불순분자요 하는 각종의 부당한 항목으로 몰수한 땅이 또 얼마나 되는지 알길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또 담배를 붙여물고 그냥 원고를 썼다.

《호서지방의 대지주였던 하야시는 본래 일본섬 한끝인 규슈태생이다. 그는 자그만치 열이나 되는 식솔을 거느리고 호서지방으로 이주해왔다.

그는 수년안팎에 십이만여의 땅과 과수원을 가진 지주로, 정미소와 양주공장을 차려놓은 경영주로 둔갑했다. 그가 벼락부자로 된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총독부>가 몰수한 <국토> 분할해준데다가 토지조사를 할적마다 수탈한 땅을 넘겨주고 공출과 각종 세금 낮게 정했거나 면제시켜준데 있었다.

나는 그놈때문에 빼앗긴 논밭머리에서 통곡을 하거나 정든 고향을 하직하는 리농민들의 처량한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었다.…》

현구는 마음을 다잡고 회상자료를 사실 그대로 썼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심사를 들었다. 왜놈들의 죄상들을 들춰낼수록 그놈들의 무지막지하고 악착한 강탈행위와 전횡에 피가 뛰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농군들의 비참상에 가슴이 저려났던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날에는 이렇게까지 통감하지 못했었다.

글을 써나갈수록 원고를 부탁한 성렬선생의 의도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속죄하는 마음으로 집필을 다그치는데 뜨락에서 수의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구는 다급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제꼈다. 수가 제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뜨락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얼굴이 백하게 질린 안해의 두팔은 맥없이 아래로 처졌다. 맨발로 퇴마루에 뛰여나간 현구는 조심히 안해를 부축하여 안방에 눕히려고 하였다. 그러자 안해는 현구의 손을 뿌리치면서 공포에 질린 소리로 말했다.

《여보,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수일은 면회조차 할수 없는 몸이 됐어요. 》

《그건 무슨 소리요? 전번주에 수일이네 공장 동무들이 면회를 했다고 하지 않았소?》

《아버지, 그건 형무소에서 내린 처벌이예요.》 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를 일이다. 형무소에 그럴 권한이 있는가?》

《간수의 말이 자기는 오빠가 왜 그런 처벌을 받았는지 전혀 모른대요. 》

현구는 기가 막혀 더 묻지 못했다. 형무소가 미결수를 처벌하다니? 혹시 엄중한 자료가 새로 제기된게 아닐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짐작이 가지 않아 집을 나선 현구는 전차를 갈아타며 검찰소로 달려갔다. 담당검사실은 여전히 문이 잠겨있었다. 다른 검사에게 문의했으나 자기네는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현구는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설사 내막을 알아냈다고 해도 무직자인 자기로선 속만 태웠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돌아설수도 없었다. 어깨죽지가 시큰거리고 무릎마디가 저려났다. 충격을 크게 받으면 도지군 하는 전날의 고문자리였다.

이때 밖에서 현구를 찾는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경찰전용차에서 키가 무척 큰 사내가 뛰여내리며 재차 소리쳤다.

《현구선생…》

(아니?! 저놈이 전대산이 아닌가?)

불시에 현구의 두눈에선 불이 일었다. 저자가 어쩌면 저렇게도 천연스러울수 있는가, 혹시 제가 저지른 죄를 내가 아직 모르고있다고 생각하는것이 아닌가? 현구는 마음을 도사려먹으면서 엄한 얼굴빛으로 맞받아나갔다. 그 기상에 전대산은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 그는 반갑다는듯 눈웃음을 지었다.

《현형, 나웨다. 전대산을 모르겠소.》

현구는 상대를 쏘아보기만 했다. 면피하기 그지없어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현형, 여기 검찰소엔 어떻게?…》

전대산은 내흉스런 눈길로 그를 여겨보며 물었다. 현구는 그 눈빛이 역스러워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현형, 나에 대한 노여움이 있으면 푸시우다. 나도 실상 그래서 현형을 띄여보고 차를 세웠수다.》

《그렇다면 저리로 가세. 나는 자네하구 회계할게 있네.》

현구는 비로소 한마디 던진 그의 앞을 지나 공지가 있는 곳으로 내처 걸었다.

《현형, 거 뭐 검찰소앞에서… 차도 있는데 다른 곳으로 갑시다.》

전대산은 사뭇 고분고분한 태도로 말했다. 현구는 다시한번 역스러움을 느끼며 그의 얼굴에 눈총을 박았다.

《여러말 말구 따라오게.》

《원 형님두… 상봉을 기념해서 식당에 가서 한잔 하며 회포를 나누자고 했는데…》

《한잔? 그래 자넨 한잔 술로 자기 죄를 무마할수 있다고 보나?》

전대산은 칫 몸을 떨었다. 그다음 얼굴표정도 몸가짐도 굳어졌다. 현구가 자기 죄를 죄다 알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였다.

《어떤 욕을 봐도 현형앞에선 할소리가 없수다. 식당에 가서 한잔 하면서 또 욕을 하시구려. 이놈이 오죽이나 밉겠소.》

현구는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빌붙는 전대산을 노려보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 짐작에 당신이 상전을 갈아댄것 같은데 왜놈시절처럼 함부로 날치였다간 무사하지 못할줄 아오.》

《충고를 해주어 고맙소.》

전대산은 이렇게 말하며 그의 말을 막았다.

《좀더 꾸짖고 가시구려. 나도 해방이 되니까 돌이켜지는게 많수다. 그때에는 너나없이 죄스럽게 살아가지 않았소. 그중에서도 이놈이 제일로 못되긴 했지요. 그래서 내 속죄도 하고 보상도 단단히 할 생각이웨다.》 한껏 자세를 낮춘 대산은 현구의 마음을 사느라 요술 웠다. 그는 머리를 굽석거리며 현구의 요청이라면 그 어떤것이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들어주겠노라고까지 뇌까렸다. 고양이가 쥐 생각을 하는것 같아서 현구는 대산을 뿌리치고 몸을 돌리였다. 대산은 아연실색할뿐 그 이상 현구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대신 《사람의 일이란 알겠소. 이거나 기념으로 건사해주오.》 하고 명함장을 내밀었다.

현구는 얼결에 받은 명함마저 내던질수가 없었다. 기분이 몹시 상한 현구는 입안이 소태같이 쓰거워 골살을 찌프렸다.

(그자가 어째서 내 환심을 사자고 하는것일가? 제놈이 지은 죄때문일가.)

현구는 더 생각하기조 모멸스러워 머리를 내젓고 약국으로 향했다. 푼전을 털어 안해의 약을 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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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가 어디인가?…》

원래 갇혀있던 2층미결감방이 아닌것 같았다. 싸늘하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일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어깨죽지에 불티가 떨어진듯 따끔거리며 모진 동통이 온몸으로 지였다. 이마가 터지고 옷앞섶은 로 얼룩졌다. 그는 상처를 만져볼수 없었다. 육중한 구식쇠고랑이 두손목을 등뒤로 묶어놓았던것이다.

수일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고 기가 차서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미결감방에 있던 그는 졸지에 내질서위반자로 끌려나가 혹독한 폭행을 당한 끝에 처벌자감방으로 옮겨진것이다. 벌감방은 오래된 구식감방이여서 벽체가 두텁고 문이 작아 한낮에도 동굴속같이 음하고 스산했다. 벽체와 바닥에서 풍기는 랭기가 얼음같이 차고 감방굽도리에는 하얗게 곰이가 내돋았다.

퇴색한 안쪽벽면에는 《일제타도》, 《조선독립》, 《신념》, 《혁명만세!》 라는 글발들과 이름자들이 검불그레한 적으로 남아있었다. 희미해진 굵직한 획들을 한자한자 더듬는 그의 두눈이 광채를 뿌리듯 빛났다.

미구하여 지그시 어금이를 앙다문 그는 상반신을 세우려고 모지름 썼으나 승산이 없었다. 허리가 끊어져나가는듯 했다. 허벅지가 켕겨났으며 잠간사이에 온몸이 진땀에 잠겨들었다. 반나절동안 몽둥이와 가죽찍, 구두발에 편포짝이 되도록 얻어맞았던것이다.

간신히 담벽에 상반신을 기대인 그의 메마른 입술에서 《벌감방맛이 꽤 나는군! 》 하는 코소리가 튀여나왔다. 열일곱나이에 벌써 뒤수정과 같은 옥내 최악의 처벌에 독감방처벌까지 겹쳐받고보니 자기로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원군경찰서로부터 경찰청 특별수사실로 압송된 그는 취조를 마치고 서울형무소 미결감에로 넘겨졌다. 경의 지독한 단련은 끝이났으나 미결감은 또 그것대로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형무소에서 일반범과 사상범을 갈라넣은 다음부터 사상범들에 대한 단속은 말할수없이 가혹해졌다.

일반범들은 밤이나 낮이나 소동을 피워도 간수들이 본체만체 하였다. 감규률을 위반하는 이러한 형무소측의 묵인은 복도중앙건너편의 경우에는 더한층 우심하였다. 거기에 매국역적들과 친일주구들이 갇혀있었는데 그자들은 아무때에나 드러누웠고 식사도 끼마다 구미에 맞게 차입해다가 먹었다. 감방이 오히려 그것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몸을 내는 안식처로 되고있는것이다. 그러다가는 《미군정》의 비밀지령을 받고 솔금솔금 뒤문으로 빠져나가군 하였다.

하지만 사상범들의 처지는 그와 정반대였다. 《악귀》로 불리우는석부리간수는 월남도주하게 된 앙갚음을 사상범미결수들에게 해대였다. 그놈은 마루바닥에 무릎을 고 줄지어앉도록 강박하였고 옆사람과 한마디 말만 해도 사정없는 찍을 안기였다. 며칠 안되여 무릎에 렇게 멍이 들고 화농이 된 자리에서 피고름이 흘렀으며 약간 움직이자고 해도 마비된 무릎을 한씩 주물러야만 하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수일은 더이상 참을수 없었다. 젊은 피가 끓어올랐다. 놈들한테 잡힌것만 해도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는데 재판을 기다리며 언제까지 감의 고초에 시달려야 하는가? 감방이라고 해서 죽어살아야겠는가?

수일은 감방의 좌상과 협의하고 감방생활을 혁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우선 기결수도 아닌데 왜 어앉겠는가. 모두 편히 앉기로 하였다. 그리고 기상해서는 밖에서 싸우는 동지들의 건투를 빌어서 잠시 묵상을 하고 식사에는 잡념에 빠질게 아니라 취미에 따라 자체학습 하고 토론도 하며 저녁시간에는 돌림식으로 흥미있는 이야기도 하기로 하였다.

그만 그것이 며칠 못 가서 원인모르게 발각되였다.

수일은 주동분자로서 혹독한 폭행을 당했고 나중에는 내의 최고 형벌을 받게 되였다.

 

차디찬 벽체에 상한 몸을 의지한 수일은 복도에서 나는 배식소리를 들었다.

《밥이요. 안 받겠소? , 배가 불렀군.》 잡범인 배식원이 빈정거리면서 지나갔으나 을 뒤로 묶인 수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규정에 밥시간과 용변때면 뒤수정을 풀어주게 되여있었다. 간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번 그노릇을 하자니 죄인의 시중군같아 기분이 상한다는것이다.

낟알냄새를 맡은 수일은 갑절이나 허기증을 느끼였다. 끼니를 번진지가 벌써 이틀이나 되였다.

저녁시간에는 다행히도 배식구안에 밥그릇이 놓였으나 그것을 집어낼 재간이 없었다. 설사 꺼냈다 해도 먹을수가 없었다. 문짝을 발로 차서 간수를 호출하려다가 았다. 그때마다 당하는 천대와 모욕 생각하면 라리 굶는게 나것 같아서였다. 한동안 궁리하던 끝에 그는 뒤손으로 밥과 국그릇을 하나씩 이불우에 조심조심 가져다놓았다. 어앉아 핥아먹었다. 사람이 졸지에 짐승으로 그것도 결박당한 짐승으로 되고말았다. 그런데다 이불이 국물에 젖어서 겨울밤을 입은 옷만으로 엎디여자야 했다. 앞가슴의 압박으로 호흡장애가 오고 상처들이 날카롭게 신경을 자극했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속에 그는 간수를 불러댔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감방에는 주야로 숨막히는 적막과 차디찬 랭기뿐 벽장문을 스치던 석양빛도 사라진지가 오래되였다. 보이는건 담벽의 어지러운 피자욱과 웃머리의 변기통이고 들리는건 간수의 구두소리와 옆감방의 신음소리였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독감방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인차 알아낼수가 없었다. 절망적인 고독이 극도로 쇠약해진 심혼을 어지럽히고 불길한 악몽과 잡념이 그를 사정없이 괴롭혔다. 이런 때 옆에 사람이 있어준다면 한결 견디기가 쉽고 위안이 되련만 바랄수 없는 기대이고 희망이였다.

찬 마루바닥에 앞가슴을 대고 쓰러진 그의 입술에서는 헛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니… 어-머-니-》 그 목소리는 가날프기 그지없었다.

정신이 몽해진 수일은 옆에서 누가 드는 감촉을 받았다.

《젊은이, 눈을 뜨게. 여기서 맥을 놓았다간 북망산이야.》 말씨는 투박하고 거칠었으나 인정미가 있었다. 턱수염이 검실검실한 장년이 수일을 안아일으켜 등에 이불을 받쳐주었다. 수일은 전에없이 부드러워진 공기를 감촉하고 감방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사이에 오물통처럼 썩은 냄새를 풍기던 감방이 별로 깨끗해진듯싶었다. 바닥의 먼지와 굽도리의 거미줄을 털어내고 변기도 가셔낸것 같았다.

수일은 감심어린 눈길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처벌기간에만 쓰는 감방을 이토록 말끔히 손질하는 수감자가 인상깊었던것이다. 턱수염이 자란 둥그스름한 얼굴에 입술은 두툼하고 눈빛은 선량한 마음인양 온화했다.

《거긴 대학생이지? 난 절도범전과자요. 함께 있기가 거북하지 않겠소?》

상대방은 거침없이 자기의 수치스런 존재를 드러냈다.

수일은 자기는 대학생이 아니라 로동자라고 대답했다. 《로동자면 로동자고… 왜, 내 말이 믿어지지 않소? 이번에는 미군고를 털다가 재수없게 걸려들었소.》 하고 상대방은 두터운 입술을 이지러뜨렸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자기와 함께 있는게 불쾌하다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수일은 그의 소탈하고 대범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아닙니다. 청소가 된 감방을 보고 감동이 돼서 그럽니다.》

《감동? 허허, 난 그런 사한 말은 모르오. 좌우간 같이 지내기요. 내 이름은 왕효덕이요. 작업장에서 간수가 희떱게 놀기에 한대 먹였더니 여기로 보내더군.》

수일의 상한 목과 쇠고랑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형벌치고는 너무 과하군.》 하고 머리를 들었다. 그가 머리를 드는 까닭이 있었다. 그것은 재판전에 미결수가 잘못되면 형무소측의 책임으로 되기때문에 자기를 보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처벌자의 상태가 대단히 위독했던것이다.

덕은 몹시도 쇠약해진 수일을 지켜보다가 문짝옆의 쾌통을 눌러 간수를 불렀다.

《간수님, 이 젊은이의 손목을 좀 보시오. 살이 썩어서 고름이 나옵니다. 쇠독이 오르면 목숨이 위태롭지 않습니까. 의사를 데려다주시오. 》

《내가 네놈들의 종인줄 알아? 의사는 왔다갔어. 군소리말고 어앉기나 해!》

간수는 신경질을 부리며 시을 닫아버렸다. 했으나 효덕은 순종하지 않았다.

《간수님, 변기를 타겠다는데 수정을 풀어주시오.》

다시 시을 열어제낀 간수는 덕을 집어삼킬듯이 쏘아보았을뿐 거절하지는 못하였다.

덕은 수일의 뒤수정을 풀어주고 나가는 간수의 겨드랑이에 털내의 한벌을 찔러주었다. 그리고 수일의 팔목상처를 조심히 처치한 다음 어깨와 팔을 주물러주었다.

수일은 효덕의 정성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벽을 비던 해별도 스러지고 저녁기운이 랭기를 몰아왔다. 감방안은 침침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했으나 수일은 솔곳이 잠들었다.

만에 눈을 뜨니 자기 이불까지 수일에게 덮어준 효덕이가 심란한 표정으로 담벽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머니가 면회를 못하고 또 울었겠군.》

덕의 애절한 그 소리에 수일은 상반신을 일으키며 물었다.

《집에 어머님이 계십니까? 늙으셨겠군요.》

덕은 웬일인지 응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몇이나 됩니까?》

《아이들? 흥, 아이들같은 소릴 하는군.》 효덕의 말소리는 명스럽게 울렸다. 《내겐 색시는커녕 아버지도 없네. 아버지가 언제 있었는지 이름도 도 모르네.》

이렇게 말꼭지를 뗀 효덕의 얼굴기색은 쓸쓸하였다.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로총각인 효덕은 려관집식모의 태생이였다. 아버지도 모르는 그는 결핵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몹시 따랐고 또 불쌍하게 여기였다. 날품팔이로써는 앓는 어머니를 구원할 길이 없었다. 날로 위급해진 어머니의 병세에 겁을 먹은 그는 고민끝에 처음에는 려관방 습격했고 나중에는 점점 을 크게 벌려나갔다.

《나라고 왜 량심이 없었겠나. 난 도적질을 하고는 며칠동안 일체 문밖에 나가질 않았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량심이 걸리고 아파서 그러했네. 하지만 전과자라고 어디에서도 안 받아주니 살길이 막힐수밖에 더 있나.》

효덕의 눈에 물기가 어리였다. 본의아니게 그런 길을 걸어온 자신 통탄하는 기색이였다.

《어머니는 몸이 회복되셨는가요?》

《응, 바깥출입은 하오.… 이 못난 자식 하나 믿고 사시는데 이 꼴이니 …》

덕의 착한 마음에 수일이도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덕형, 그처럼 효성스런 마음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한들 입에 풀칠을 못하겠습니까. 다시는 어머님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수일은 간곡한 어조로 당부하였다. 하면서 웬 영문인지 눈굽이 쩌릿해졌다. 어머니를 괴롭힌 점에서는 자기도 덕과 별반 다름이 없었던것이다. 어쩌면 지금쯤에는 집으로 돌아오셨을 부모님을 뵙지조 못하는 이 자식의 심정을 뭐라 표현할수 있겠는가? 집을 떠나는 날에 남긴 어머니의 다심하신 정이 지금도 가슴속 한복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한밤을 패며 학습용비품들과 따라 갈아입을 옷가지들 손질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애들아, 너희들을 두고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기막힌 사연을 너희들도 짐작하리라 본다. 수일아, 부디 맏이구실을 잘하거라. 우리는 떠나지만 너희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둬두고 간다.》

수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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