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0
강렬한 투광등의 불빛이 밤의 어둠을 힘껏 밀어내며 괘궁정의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건설장을 환히 밝히였다. 탑신에서는 용접의 불보라속에서 작은 불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고 곳곳에 타오른 모닥불들은 그와 경쟁하듯 기를 쓰고 불찌들을 흩날렸다.
그 한복판을 내각제1부수상 김일이 걸어가고있었다. 그의 뒤로는 지도검열소조의 책임자인 방만길과 총설계가 리웅산, 건설사업소 지배인, 조각창작단 리한윤단장 등이 줄레줄레 그림자처럼 묻어다니였다. 특히 지도검열책임자 방만길은 두툼한 문건철을 끼고 김일의 옆에 바싹 붙어서 따라갔다. 그것도 노상 머리를 조아리고 갑신거리는것이 마치 황제행차에 따라나선 충실한 시종을 형상한 어느 력사물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한듯 했다.
돌연 김일이 걸음을 멈추었다. 무뚝뚝해보이던 얼굴에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가슴후련하게 숨을 들이쉬였다. 마치 건설장의 휘황한 불빛과 따스한 봄을 한껏 들여마시는듯싶었다.
《좋아, 이제야 37년도 보천보의 밤과 같아졌소. 온통 불천지이구, 응?!…》
《예, 그렇습니다.》 하고 방만길이 때를 기다리고있은듯 제꺽 발라맞추었다. 《내각 제1부수상동지께서 오시자마자 홰불이 황황 타오르구 명절기분이 되였습니다.》
김일이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오니까 홰불이 타올랐다구? 허… 이 동무 아직 정신이 똑똑치 못하군, 엉?!… 동무, 똑똑히 알아두라구. 보천보의 홰불은 우리 수령님께서 오래전 1937년도에 벌써 어둡던 이 나라를 밝히며 환히 지펴주신거야! 아직 그것두 모르는가?…》
《예, 예.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제1부수상동지, 제가 그만 실언을…》
방만길이 머리를 떨구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러한 몇마디 질책에 주눅이 들 사람이 아니였다. 어느새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김일을 바투 따라섰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수 없는 그였다. 그는 발을 재게 놀리며 숨찬 소리로 이렇게 계속하였다.
《제가 오늘 정말 옳은 지적을 받았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그동안 제가 머저리구실을 해왔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자책되는바가 많습니다. 상부의 말이면 다 옳은것으로 여기면서 그대로 받아외우던 저였습니다. 그러던 나머지 그만에야… 꼭두각시나 같은 그런 놈이 되고말았습니다.》
김일이 몸을 홱 돌렸다.
《허… 우화속의 박쥐와 같군.》
《예?!…》
김일은 더 말하지 않고 돌따섰다.
한동안 아무말없이 걷기만 했다. 마침내 투광등의 불빛이 사람들모두의 자태를 환히 드러내는 둔덕에서 김일이 또 멎어섰다. 투광등의 불빛속에 서있는 그의 두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펀뜩인듯 했다.
《아무래도 내 한마디 해야겠소.》 김일이 하는 말이였다. 《이건 언제인가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들려준 박쥐에 대한 우화인데… 잘 새겨듣소, 응?!》
웬일인지 항일혁명투사이며 내각제1부수상인 김일에게서 뜻밖에도 우화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자못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는 표정이였다. 슬그머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을 눈치차린 김일이 조금 어성을 높였다.
《박쥐에 대한 우화인데 말이요, 응?!…》 하고 그는 웃음을 전제로 한 유모아를 마치 그 누구를 추궁하듯 엄하게 말했다. 《글쎄 박쥐란 놈이 어느날 새들과 쥐들의 싸움판에 끼여들었다구 하오. 그 싸움에서 먼저 새들이 우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그놈은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난 새다! 당신들의 편, 새편이다, 내 날개를 보라! 하고 떠들어대였소. 그다음 형세가 달라져 들쥐들이 우세를 보이자… 이번엔 쥐들한테 날아가 다들 나를 보시오, 당신들과 꼭같은 내 몸뚱아리를 좀 보시오, 난 쥐요, 박쥐란 말이요! 라고 했다는거요.》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아니, 웃지 못했다. 그의 눈빛이 그리도 랭혹하고 말투까지 몰풍스러웠기때문이였다. 허나 김일이 지금 무엇때문에 격해졌는지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돌연 김일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불같이 지지며 따져물었다.
《어떻소, 아주 우스운 얘기지?》
이번에도 역시 누구 한사람 입을 열지 못했다. 금시 벼락불이라도 떨어질것 같아 어깨를 옴츠릴 지경이였다. 오직 방만길만이 때를 놓치지 않고 아주 태연히, 스스럼없이 웃기 시작했다.
《정말 우스운 얘기입니다. 예, 아주 교훈적인…》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김일이 그에게 무섭게 눈총을 쏘았던것이다. 일순 방만길의 입에서 새여나오던 가벼운 웃음이 증기발처럼 사라져버렸다.
《우리 혁명대오엔》 하고 김일은 방만길을 면바로 쏘아보며 마디마디를 도끼로 찍듯이 말했다. 《우화속의 박쥐와 같은 그런자들이 있을 자리가 없어. 동무, 똑바루 새겨들으라. 사람은 언제 어느때든지 제정신을 가지구 살아야 해. 정세에 따라 간에 붙었다 섶에 붙었다 하면서 롱간질을 일삼는 그런자들은 례외없이 가장 어려울 때 배신의 길로 굴러떨어지는 법이야. 이건 바로 우리의 영명한 지도자이신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이야!…》
김일은 손을 홱 내젓고나서 씨엉씨엉 건설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할 말은 다 했고 들을 말은 없기때문이였다.
11
사방에서 착공기들이 《따다다다!―》 하고 귀가 멜듯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화강석대돌에 구멍을 뚫고있었다. 기중기차가 가공한 커다란 대돌을 물고 허공을 가르는가 하면 도처에서 용접기가 웅웅거리며 분수처럼 불꽃을 흩날리고있다. 째는듯 한 호각소리, 화물자동차들의 경적소리, 북소리, 나팔소리…
김일이 걸음을 멈추고 그림자처럼 묻어다니는 사람들, 리웅산과 조각창작단의 리한윤단장과 오대형 그리고 허우대 큰 건설사업소지배인 등을 피끗 돌아보았다.
《동문 건설사업소 지배인이라구 했지?》
《예, 그렇습니다.》
《헌데 무슨 황제행차라구 내 뒤꽁무니만 계속 묻어다니는거요? 엉?!… 어서 가서 제 할 일이나 하오, 필요할 땐 부르지 않으리.》
《알았습니다, 1부수상동지!》
건설사업소 지배인이 껑충 뛰듯이 물러갔다. 무던히도 기뻐하는듯 했다. 그럴만도 했다. 그는 왝왝 소리치며 지휘하는 일군이지 말 잘하는 해설강사는 아닌것이다.
김일은 옆에 보이는 천막을 가리키며 리웅산과 조각가들에게 물었다.
《여긴 뭐요? 제법 울바자까지 치구… 무슨 보물창고요?》
리웅산이 머밋거리는데 리한윤단장이 한걸음 쑥 나서며 말했다.
《1부수상동지, 우리 조각창작단의 녀성조각가 라정아동무가 여기서 일하고있습니다.》
《녀성조각가?…》
《예, 우리 나라의 유일한 녀성조각가입니다.》
《그래?!…》
김일은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리웅산과 리한윤단장도 그뒤를 따랐다. 그런데 천막안엔 그들이 만나려 한 라정아가 없었다. 대신 제일 젊은 조각가 로경호가 통나무로 만든 단우에 무슨 종이장들을 가득 펴놓고 앉아 울고있었다. 김일제1부수상이 들어서는것을 보자 벌떡 일어나는통에 종이장들이 바닥에 흩어져내렸다.
《이건 뭐요?》 김일이 물었다. 《동무도 조각가요?》
리한윤단장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설명했다.
《우리 창작단에서 제일 재간있는 동무들중의 한사람입니다. 재작년에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중심주인공형상을 맡았습니다.》
김일이 리웅산을 돌아보았다. 《그게 정말이요?》 하는듯 한 눈빛이였다.
《예, 뛰여난 재간을 가진 동무입니다.》
《그―래? 헌데 재간이 뛰여나다는 사람이 눈물은 왜 짜면서 그래, 엉?!…》
김일은 방안에 세워있는 부녀회원이며 소년을 형상한 조각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장들까지 한눈에 스쳐보고나서 다시 엄하게 물었다.
《혹시 무슨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받은게 아닌가?》
《아닙니다, 1부수상동지.》 로경호가 제때에 허리를 쭉 펴며 잰 말씨로 대답했다. 《이건… 우리 라정아동지한테 온 편지들입니다.》
《라정아?… 헌데 그는 어데 갔소?》
《저… 여기서 울다가…》
《울다니, 왜?!…》
로경호는 인차 대답을 못하고 입술만 세게 깨물었다. 부지불식간에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씹어삼키고있는듯 했다. 잠시후 그는 팔소매로 눈굽을 닦고 허리를 굽히더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장들을 집어 통나무탁우에 널려있는 편지들속에 끼워넣었다.
《1부수상동지.》 마침내 로경호는 하얀 봉투 하나를 손에 들며 말했다. 《우리 라정아동진 지금까지 수백, 수천통의 편지를 써서 전국 각지에 띄워보내군 하였습니다. 저도 좀 봤는데…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자기와 같이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입대한 옛 스승이면서 또 전우인 한 인민군군관을 찾기 위해 몹시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 편지를 받고 첨엔 몹시 기뻐하더니 그만… 편지를 읽다말고 울면서 뛰쳐나갔습니다.》
일부인이 진하게 찍혀져있는 새 봉투였다. 《혜산시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건설전투장 라정아동지앞》이라고 굵게 쓴 글발이 먼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김일이 그 봉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강원도 원산시 영예군인공장 당위원회?…》 그는 봉투를 읽다말고 리웅산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가 이 편지를 읽어봐도 될가?…》
그것을 왜 리웅산에게 묻는것인가?… 리웅산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다.
김일은 편지의 글줄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듯 했다. 종이장을 눈앞에 바싹 가져다 대보고는 한숨을 내긋고 리웅산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
리웅산은 편지를 받아들자 손바닥으로 정히 펴고 천천히 읽기 시작하였다. 읽어내려갈수록 그는 점점 더 숨이 차했고 목소리마저 가늘어지고 죽어갔다.
《…미안합니다. 라정아동지, 우린 사실 림근우대위동지와 제일 가까이 지낸 사람들로서 라정아동지가 우릴 찾기를 정말 잘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쓰자니… 마음이 괴롭습니다.
라동지, 우리가 림근우대위동지를 마지막으로 만난것은 1951년 11월이였습니다. 그는 중요한 전투임무를 받고 간다면서 우리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는데 어데로 무슨 임무를 받고 가는가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는 최고사령부련락군관으로서 지리산빨찌산 리현상대장과의 끊어진 련계를 회복하기 위해 떠나갔다고 합니다. 두번째인가 세번째로 파견되여간 련락군관이였습니다. 그러나 적구종심 깊은 지리산빨찌산에 파견되여갔던 련락군관들은 단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는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두루 수소문해봤지만 그이상 더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라정아동지! 동지가 10여년세월을 하루같이 소식을 모르는 그를 안타까이 찾고있었다는데 그토록 바라는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정말 미안합니다.…》
리웅산은 그이상 더 읽지 못했다. 별안간 모진 아픔에 숨이 막히고 눈시울이 흠칫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김일도 더 묻지 않았다. 다시 방안의 조각상 두개를 유심히 살펴보고나서 천막문을 열고 나갔다. 문밖에서 또 무엇인가 생각난듯 멈춰섰다. 잠시후 그는 뒤따르는 리웅산과 리한윤단장, 조각가들인 오대형, 로경호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돌아보고나서 조용히 말했다.
《어서 가서 찾아보오. 어데 가서 울고있지나 않는지…》
×
라정아는 대기념비의 대돌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머리우의 탑신에서 용접의 불찌들이 휘뿌려지고있건만 그것도 알지 못했다.
오고가는 자동차들이 전조등빛을 휘딱거리며 괴롭게 헐떡이고있는 그를 언듯언듯 비쳐주군 했다. 얼핏 보기에도 그가 오늘따라 더 심하게, 괴롭게 기침을 톺고있는것이 알렸다.
《정아동무, 여기 있는걸 온데 돌아가며 찾았구만.》 리웅산이 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병이 또 도진게 아니요?!…》
《아, 아니예요.》
다시 터져나오는 모진 기침소리…
리웅산이 그를 힘껏 다그어 안았다.
《안되겠소. 이러다간… 빨리 병원으로 갑시다.》
《아니, 제발… 절 좀 가만 놔두세요. 부탁해요.》
그러나 리웅산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먼 어둠속에서 라정아를 찾는 웨침소리가 났다. 반대켠에서 리한윤단장이 소리치는것이였다.
《단장동…》
리웅산이 그를 부르려 했으나 어느새 라정아가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부탁해요. 제발… 떠들지 말아주세요. 그리구 내게 잠간만 기회를 주세요. 여기서… 나의 꼬마와 이야길 좀 하구 그다음…》
《이야기를?》
라정아는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고있었다. 자기의 조각품을 거쳐 저 시꺼먼 밤하늘에 솟아오른 탑신꼭대기를 바라보는 그의 두눈에는 물기가 어리고있었다. 용접의 불광에 따라 빨갛게도 파랗게도 그리고 하얗게도 번득이는 맑은 눈물…
《야! 높기두 하네.…》
여전히 탑신꼭대기를 올려다보는 흐느낌소리.
《정아동무!…》
가까와오는 리한윤의 웨침소리… 그러나 라정아는 귀가 먹은지 오랬다. 커다란 두눈만이 물기를 머금고 번뜩이고있었다.
라정아는 천천히 허리를 폈다. 안깐힘을 쓰며 대돌우에 올라서려고 했다. 리웅산이 다시금 그를 껴안다싶이 하면서 단우에 올려세웠다.
《아, 이제야 올라섰구나.》 여전히 라정아는 혼자소리처럼 속삭이며 소리없이 웃었다. 《아, 나의 꼬마! 넌 나보담두 훨씬 더 크지? 그렇지?!》
라정아는 손을 올려 대우에 조립해놓은(용접으로) 소년과 자기의 키를 대보았다. 갑자기 확 스치여간 밝은 전조등빛에 그 녀자의 피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이 흑백색사진처럼 확― 찍히였다.
《나의 꼬마…》
라정아가 또 소곤거렸다. 리웅산에게는 어쩐지 그가 최후의 힘을 가다듬고있는것처럼 느껴졌다. 숨이 차서 헐썩이면서도 라정아는 자기가 하려는 중요한 말을 마저 잇지 못해 모지름쓰는것이 알렸다.
《내 사랑하는 꼬마, 그 어린 나이에 수령님을 따라 천리, 만리 얼마나 먼길을 헤쳐온것일가?… 나도 너처럼 가고 또 가리라고 오래전에 맹세했었지. 내 한생의 꿈을 안고 기어이 가리라고!…》
그리고는… 말이 없었다. 이어 숨소리도 끊어진듯 했다. 다음순간 라정아는 리웅산의 팔우에 머리를 무겁게 떨구었다.
《정아, 정아동무!…》
리웅산이 목터지게 웨쳤건만 라정아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뒤였다.
얼마후 대기념비건설전투장으로 도인민병원의 구급차가 경적소리도 높이 들이닥쳤다. 온 건설장이 일손을 놓고 구급차에 실리우는 라정아를 지켜보았다. 구급차는 곧 시인민병원으로 바람같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