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6
《음―그렇단 말이지?》 김일은 조금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내가 그새 출장을 갔다오다보니 오늘에야 서기한테서 그 동무에 대한 얘길 들었소. 그런데 량심적인 그 사람을 법에 걸어 송사하다니? 에익, 나쁜 놈들!… 음, 알겠소. 그렇게 하오.》
김일은 송수화기를 놓고 입술을 악물었다. 웬일인지 명치끝이 얼얼해나고 입으로는 거치른 욕지거리가 거침없이 쏟아져나올것만 같다. 하여 그는 한동안 갑자르다가 탁우의 다른 전화기를 불쑥 앞으로 끄당기였다.
송수화기를 들자 교환수처녀의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예, 교환입니다. 제1부수상동지, 말씀하십시오.》
《동무, 이 전화를 …》 하고 김일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숨가쁘게 말하였다.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께 련결해주시오, 당장!…》
《알았습니다, 제1부수상동지.》
그는 송수화기를 귀언저리에 끼운채 잠시 숨을 돌렸다. 했건만 그냥 속이 떨리고 입안이 말라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되는것이 있었다. 그는 불에 덴것처럼 흠칠하며 송화구에 대고 소리쳤다.
《가만, 교환수, 지금 몇시가 됐소? 응?… 내가 그만 시간도 보지 않구…》
아무 대답도 없다. 전류흐르는 소리뿐 어데선가 멀리 아득히 울려오는 소리로 미루어 교환수는 벌써 당중앙위원회와 련결하고있는듯 했다. 김일은 다급히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덧 새벽 2시 45분이 되였는가?… 그 순간 김정일동지의 귀에 익은 음성이 귀전을 울리였다.
《1부수상동지, 안녕하십니까. 김정일이 전화받습니다.》
《김정일동지, 제가 그만…》 하고 그는 한손을 내흔들며 다급히 말씀드렸다.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갑자기 긴요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꼭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하다보니 그만 어뜩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정말 안됐습니다.》
《?…》
웬일인지 저쪽에서는 전류흐르는 소리만 계속될뿐 한동안 아무 기척도 없었다. 김일이 의아하여 송수화기를 후― 불어보았다.
《김정일동지! 내 말이 들립니까?》
그제서야 전류흐르는 소리가 멎었다.
《김일동지, 내 벌써 몇번이나 말했습니까.》
《아니, 무슨 말씀이신지?…》
《김일동지, 항일의 백전로장인 김일동지까지 젊은 사람한테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시면 전 어떻게 하라는겁니까, 예?!…》
《아, 그것때문에요?…》 김일은 당황해하며 한손으로 이마를 세게 문질렀다.
《김정일동지, 제가 그만… 인젠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턴… 예, 내 반드시 동무라고 부르리다.》
《좋습니다. 김일동지, 그럼 우리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세번째 약속이라는걸 잊지 마십시오!…》
《참, 그렇군요. 》
《그런데 김일동지, 지금 웬일입니까?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것 같은데 혹시 병세가 다시 도지는건 아닙니까?》
《아, 아니, 무슨 말씀!… 대낮에 홰불을 켜들고 다녀도 나만큼 건강한 사람은 아마 찾지 못할겁…》
그는 다시금 말끝을 맺지 못하고 거친 숨소리만 송수화기에 쏟아부었다. 마침 김정일동지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1부수상동지, 어서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예, 좀 심각한 일이…》
김일은 다시 숨소리부터 거칠게 내불었다. 이어 그는 격해진 목소리로 벌어진 일에 대하여 두서없이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 근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알겠습니다. 이건 단순히 리웅산이라는 한 건축가에 한한 문제만이 아닌것 같습니다. 예, 매우 심상치 않은 일입니다.》
창밖의 먼 하늘가에서는 소리도 없는 번개가 뾰족한 불의 창끝처럼 연신 펑끗거렸다.
×
비상한 하루였다. 리웅산은 시검찰소의 풍차에 탔다. 운전사의 옆자리엔 부소장이 올라앉았다.
《비가 또 오려나?…》 부소장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운전사동무, 어디로 가는지 알지?》
《예, 압니다.》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리웅산은 창밖을 내다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어쩐지 이상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인젠 모든것이 끝나지 않았는가, 다 해명되지 않았는가?… 오늘 처음 그는 마음이 평온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리웅산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가만, 이 차가 지금 어데로 가는겁니까?》
시검찰소 부소장이 웃으며 말했다.
《당중앙위원회로 갑니다.》
《아니, 거기엔 왜?!…》
《내각 제1부수상동지가 그렇게 지시하였습니다. 거기 가면 기다리시는분이 있다고…》
《예?!》
차는 어느덧 당중앙위원회청사에 이르고있었다. 전조등빛에 키높이 자란 가로수들이 확 자태를 드러내군 했다.
그 순간 차창유리가 확 밝아지고는 곧 어둠속에 묻혔다. 시퍼런 번개불이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으며 저 멀리 지평선 한끝으로 날창처럼 내리꽂힌것이였다. 리웅산은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허나 무시무시한 우뢰소리는 없었다. 모든것이 고요했다.
《다 왔습니다.》
부소장이 뒤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였다.
《예―》
리웅산은 차문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 머리우에서 땅!― 하고 무시무시한 천둥이 터졌다. 하늘과 땅을 그리고 그의 온몸을 산산이 으깨여놓는 굉음이였다.
17
《리웅산선생입니까?》
어둠속에서 그를 향해 마주온 사람이 묻는 말이였다.
《예, 제가…》
《제 당중앙위원회 과장 김형원입니다.》
《예― 그렇습니까. 헌데 무슨 일로?…》
《저와 같이 갑시다. 가보면 압니다.》
그는 몹시 흥분된 기색이였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앞서걸었다.
밤하늘을 덮은 시꺼먼 구름장에서 어느덧 비방울들이 엇비스듬히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김형원은 그를 청사앞의 정원으로 데리고갔다. 청사의 창문들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굵직굵직한 비방울들이 후둑후둑 때리는 떨기나무들과 작은 련못이며 그 주변을 따라 군데군데 놓인 돌의자들을 희미하게 비쳐주고있었다.
갑자기 앞서가던 김형원이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저기서》 하고 그는 낮고도 거칠게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을 기다리시는분이 누구신지… 알기나 합니까?》
뜻밖의 물음이였다.
《저…》
리웅산은 주밋거렸다.
《똑똑히 들어두시오.》 하고 김형원은 자기의 흥분된 목소리를 그누가 들을가봐 저어하는듯 좀 더 소리를 죽이며 속삭이는것이였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지금 선생의 일때문에 가슴이 아프시여 아까부터 계속 저 어둠속을 거닐고계시오. 오죽하면 비가 내리는데도 아랑곳 않고 계속 자리를 뜨시지 못하겠소.…》
《예?!…》
리웅산은 별안간 한손으로 가슴 한쪽을 꽉 움켜쥐였다. 심장의 박동이 멎어버린듯 했다. 그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몸을 제대로 가눌수도 없었다.
《그러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저때문에?!…》
호흡이 딸려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순간 예리하게 가슴에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다. 총설계가인 자기가 지금 혜산의 대기념비건설장을 떠나 집에 와있다는것, 집에 와서 화분에 물이나 주고있는 그것이였다. 그야말로 시검찰소의 밤색모자를 쓴 사람이 말했듯이 《도주자로서 감옥에 처넣》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자, 갑시다.》
《예.…》
그는 어떻게 김형원과장을 따라갔는지 알지 못했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 한 넓은잎나무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서계시였다. 뿌잇한 외등이 그이의 모습을 흐릿하게 비쳐주고있었다. 김형원이 다가가 뭐라고 나직이 말씀드리자 그이께서 급히 머리를 돌려보시였다.
《그가 왔습니까?》
리웅산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다 얼어붙어버렸다.
《리웅산선생!》
그이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귀전에 메아리쳐서야 그는 본능적으로 한발을 앞으로 내짚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그이께서도 몇걸음 마주오시였다. 인제는 외등빛이 비를 맞고계시는 그이의 모습을 더 잘 비쳐주었다.
《리웅산선생!》 그이께서 낮고도 준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이름있는 건축가인 리웅산선생을 내 언제부터 만나보고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한지에서 비를 맞으며 만날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그는 숨이 막혀 허덕이였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가 심장으로 웨치고싶던 말이 아니였던가. 그 역시 지금껏 그이를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는 행운을 얼마나 꿈꾸어왔었던가. 그런데 오늘 이렇게 그이를 만나뵈우리라고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리웅산선생.》 그이께서 또 말씀을 이으시였다. 《선생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와있는지 알고있습니까?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선생을 대기념비건설의 주인으로 보내주셨는데 무엇때문에 지금 집에 와 숨어있는가 말입니다.》
무어라고 말씀올릴수 있으랴. 그이의 어깨우에 내린 비방울들이 뽀얗게 물보라로 흩어지는것만 얼없이 바라보았다. 이 모든게 다 나때문에 벌어졌단 말인가?… 그는 입으로 흘러드는 비물과 함께 헉― 헉― 터져나오는 흐느낌소리를 씹어삼키고있었다.
순간이 천년인듯… 그이의 엄하신 음성이 다시금 귀전에 메아리쳤다.
《난 처음 리웅산선생이 도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저히 그 말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건축가선생이 도주자라는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입니까?…》
리웅산은 저도 모르게 헉!― 하고 흐느끼였다.
《그래 선생은 형성안을 안고 오면서 자기의 량심은 지켰다고 믿고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이께서 계속하시는 말씀이였다. 《아니, 량심은커녕 선생은 자기의 신념까지 버리고 도주하였습니다. 도주자라니… 얼마나 불미스러운 일입니까. 선생을 심문한 시검찰소의 법일군들이 옳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선생을 도주자, 도피분자라고 지탄한것은 천만번 정당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시오. 목에 칼이 박힌다 해도 자기의 신념을 지켜야 할 대기념비의 총설계가가 이렇게 도주자, 도피분자가 되여 여기에 나타났으니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
그이께서는 가슴이 저리신듯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잠시 격하신 마음을 억누르시는 가쁜 숨소리만 계속될뿐…
리웅산은 한손으로 가슴을 꽉 움켜쥐였다. 그렇게 뼈아픈 고통까지 다 한손에 거머쥘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순간순간이 줄기찬 비속에서 흘러갔다.
그이께서 준절하게 계속하시였다.
《잊지 마시오, 리웅산선생. 도피란 언제나 배신에로 이어진다는것을! 내가 너무 엄중하게 분석한다고 생각될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도피와 배신은 하나로 통하는 오솔길입니다. 거기에 들어서면 다른 길이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의 진지도 줴버리고 도피해가면 량심까지 버리게 되고 다음엔 더 큰것을 버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어데로 굴러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난 그처럼 쉽사리 자기의 신념을 버린 사람을 만나고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수령님께서 품들여 키우신 한 일군을 그냥 줴버릴수가 없어서, 우리 수령님께서 한때 딴길을 걷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참다운 길, 혁명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그 숭고한 뜻을 생각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였습니다.》
《…》
리웅산은 헐떡이고있었다. 목이 꽉 메이고 눈이 바로 서지 않았다. 벌려진 입으로 쓸어든 비물은 피처럼 찝찌레했다. 그는 숨이 막혀 허덕이면서 그만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는 그곳, 비물이 즐벅한 땅바닥에 어푸러지고말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이 미련한 리웅산이 그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목갈린 사나이의 통곡… 머리우의 시꺼먼 밤하늘에서는 련이어 시퍼런 번개불이 펀뜩이고 뒤미처 터진 우뢰소리는 끊임없이 꽈르릉, 꽈르릉! 하늘땅을 진감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