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4
리웅산은 깊은 생각에 잠겨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있었다.
맑은 아침이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어두웠다. 대기념비의 총설계가인 자기가 무엇때문에 지금 여기 아빠트에서 화분이나 돌보고있는것인지 생각할수록 놀랍고 기가 막혔다. 그는 주전자의 물이 화분너머로 줄줄 흘러내리는것도, 집안에서 초인종소리가 거듭거듭 울리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아버지!》 딸 혜영이가 창문을 열고 그를 찾았다. 《손님들이 오셨어요.》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우정 천천히 손을 닦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출입문은 반쯤 열려진 그대로였다. 이렇듯 이른아침에 누가 나를 찾아온단 말인가?…
낯모를 손님 두사람이 복도에 서있었다. 한사람은 밤색모자를 이마우에 비딱하니 눌러썼고 몸집이 앙바틈한 다른 사람은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있었다.
《저… 뉘신지?》
리웅산의 물음에 밤색모자가 공손히 물었다.
《저… 리웅산선생입니까?》
《예, 제가…》
《그렇습니까. 우린 시검찰소에서 왔습니다.》
그가 웃주머니에서 증명서를 꺼내였다. 허나 리웅산은 그것을 받아보지 않았다.
《헌데 무슨 일로?…》
그러자 그 사람은 증명서를 도로 주머니에 쓸어넣으며 얄궂은 웃음을 지었다.
《선생은 늘 손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말합니까?》
그의 심상치 않은 어조에 리웅산은 허둥거리며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앞치마를 두른 혜영이가 부엌에서 내다보았다.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경애를 안고 나왔다. 손님들이 늙으신 어머니가 눈에 띄자 갑자기 거북스러워하며 머리숙여 인사했다.
《저… 어머니, 아침부터 찾아와 미안합니다. 일이 좀 있어서…》
그리고는 리웅산에게 아주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증명서를 좀 보여주겠습니까?》
《예, 예.…》
말코지에 걸린 옷주머니에서 증명서를 꺼내는 리웅산의 두손은 눈에 띄게 후들거리고있었다. 공포에 질려있는 어머니와 혜영이는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경애까지도 이상한 사람들의 출현과 차디찬 분위기에 두눈이 올롱해져있었다.
증명서를 받아든 검찰일군이 리웅산의 얼굴과 사진을 깐깐히 대조해보더니 여전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린 선생이 암해행위를 하고 도주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와 같이 좀 가야겠습니다.》
《아니, 뭐 도주? 암해행위?…》 하고 리웅산은 너무 흥분하여 떠듬거렸다.
《도대체 누가 그― 그따위 허― 허튼 신고를 했다는겁니까, 예?!》
그가 어성을 높이자 검찰일군들은 바빠했다.
《가서 해명해봅시다.》
밤색모자를 쓴 검찰일군이 또 어머니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량해를 구했다.
《미안합니다, 할머니. 공화국법은 공정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늙으신 어머니는 망두석처럼 굳어진채 여전히 한마디 말도 없었다. 잔주름이 그물처럼 덮여있는 입가에 경련이 파문지어가는듯 오무린 입술을 바르르 떨고있을뿐… 그러나 혜영이는 달랐다. 미끄러지듯 아버지에게로 다가오더니 와락 매달리였다.
《아버지, 법은 왜요? 무슨 위법이라도 있었나요?》
리웅산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그런 일은 없다!》
《그런데 왜?… 왜 요새 우리 집엔 이런 일만 계속 생기는거예요. 예, 아버지?!― 》
혜영은 자기 남편 박유진이 일까지 한데 거들며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아버지, 난 믿지 않아요. 아니, 그럴수 없어요. 우리 아버진 절대로 그럴수가 없단 말이예요.…》
어느새 혜영은 온통 눈물에 젖어있었다. 리웅산은 검찰일군들이 보는 앞이여서 면구스러워 혜영이를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울지 말아. 눈물이나 짠다구 될 일이 아니다. 어느 책에도 써있지 않던?… 법은 눈물에 녹지 않는다구.》
《옳은 말입니다.》 밤색모자가 말했다. 《자, 그럼 어서 갑시다. 우리 부소장동지가 직접 만나겠다면서 기다리고있습니다.》
《음― 갑시다.》
리웅산은 말코지에서 모자를 벗기다가 저도 모르게 어머니쪽으로 힐끔 눈길을 돌렸다. 다음순간 그는 흠칫하며 모자를 떨어뜨렸다.
80고령의 어머니가 무서운 의혹과 쓰라린 아픔에 겨워 신음하면서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려앉은 머리를 흔들고있는것이였다. 심하게 채머리를 떠는 어머니의 그 모습은 너무도 처절하고 준엄하였다.
《어머니, 그럼…》
그 다음말은 더 이을수 없었다.
15
리웅산은 시검찰소의 어느 한 방에서 밤색모자를 쓰고 집에 왔던 그 검찰일군과 마주앉았다. 그앞의 량수책상에는 시검찰소의 부소장이라는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직접 만나겠다고 한 말과는 달리 무슨 문서에만 골몰하면서 그들의 대화에는 전혀 무관심한듯 했다.
리웅산은 줄곧 손바닥으로 뭉툭한 코를 문지르고있었다. 밤색모자를 쓴 검찰일군의 묻는 말에 별로 깊이 생각지도 않고 즉각 짤막하게 그리고 조금 틀진 어조로 대답하군 했다. 누가 무엇때문에 자기를 신고했는지 분명해졌던것이다.
몇가지 간단한 물음과 대답으로 끝난 그들의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였다.
문:《선생은 인민영웅탑의 총설계가인데 그토록 중요한 기념비건설장에서 왜 도주했습니까?》
답:《난 도주한게 아니라 쫓겨났소.》
문:《신고된 내용은 그렇지 않던데요?》
답:《누가 신고했소?》
문:《이건 뭡니까? 오히려 제편에서 따지면서… 선생은 그저 제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됩니다.》
답:《허… 나를 무슨 죄인처럼 취급하는것 같은데… 그럼 난 대답을 안할수도 있소.》
문:《아니, 대답하게 될겁니다. 그럼… 질문을 계속하겠습니다. 에― 건축가선생이 인민영웅탑의 형성안을 잡아뜯어 어딘가 줴버렸다는데… 그건 무슨 목적으로, 어떤 심보에서 그렇게 했습니까?》
답:《난 줴버리지 않았소.》
문:《그럼 형성안이 어데 있습니까?》
답:《내 트렁크안에 있소.》
문:《대기념비형성안을 왜 트렁크속에 숨겨둡니까? 그래, 그런건 여기 신고된것처럼 암해행위가 아닌가요?》
답:《암해? 허… 동문 그저 뾰족한게 송곳 한가지로구만. 문건철에 구멍을 뚫는데나 제격이겠소.》
문:《좋습니다. 선생이 정 그렇게 나오는 이상 나도 한마디 할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나한테 전적인 권한을 준다면 난 선생을 도피분자로서 감옥에 처넣겠습니다, 군사법정에서처럼… 그렇게 해도 좋겠습니까?》
답:《뭐, 도피분자? 감옥?… 동무같이 생사람을 마구 잡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법기관에 들어오게 됐소? 동무같은 사람때문에 위법이 생긴다는거 알기나 하오?》
문:《내가 왜 법기관에 들어왔는가?… 그건 바로 당신과 같이 자기의 혁명초소를 버리구 도망치는 도주자들을 엄벌에 처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젠 알만합니까?》
답:《에익!… 그만하기요. 난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겠소.》
기록된 문답내용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때 리웅산은 자기를 감옥에 처넣겠다고 한 밤색모자의 말에 너무 분격하여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었다. 그러자 지금껏 문서만 뒤적거리고있던 부소장이 비로소 머리를 들며 말했다.
《리선생, 진정하십시오. 신고된 내용은 다 확인된것 같은데… 인젠 그만합시다.》
터무니없이 맹랑한 일이였다. 리웅산은 한순간 자기의 이마에서 피대가 부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바로 그들, 아침 일찌기 자기를 불러내면서 한 건축가의 자존심을 심히 짓밟은 그들에게 가시돋친 말로 앙갚음을 하고싶은 께름한 욕망이 뾰족하게 치솟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부소장은 그의 뒤틀린 심리따위에는 아랑곳없이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터무니없이 크게 소리쳤다.
《아, 시간!… 런던축구시간이요!》
다음 순간 밤색모자가 벌떡 뛰쳐일어나더니 구석쪽의 라지오를 틀어놓았다. 부소장이 또 소리쳤다.
《넨장, 좀 더 소릴 높이오. 좀 더!…》
밤색모자가 음량을 높이자 휘파람같은 소리가 나더니 돌연 비좁던 방안이 세계를 향해 어방없이 넓어지는듯 했다. 떠들썩한 응원의 함성과 갖가지 소음이 파도치듯 방안을 휩쓸었다. 그속에서 가까스로 울려오는 리상벽방송원의 목갈린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또렷해졌다.
《…이번엔 7번 박두익선수의 공격입니다. 칠레의 3번을 빼몰고 우측으로 길게 련락, 8번 박승진! 공을 몰고 곧추 문전으로 돌입하는가… 아, 그만 뺏기고말았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런던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실황이였다. (후에야 그것이 미들즈브러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경기라는것을 알았지만 사람들은 그때에도 여전히 런던축구라고만 불렀다.)
리웅산은 저도 모르게 꽉 부르쥔 주먹이 돌덩이처럼 굳어지는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자기가 방금전까지 심문을 받고있었다는것마저 까맣게 잊고있었다.
《…이번엔 6번 임성휘선수가 던져넣기한 공을 15번 양성국이 받고 양성국은 또 11번 한봉진에게… 11번 한봉진 좌측으로 돌진합니다. 칠레의 3번이 바싹 따릅니다. 한봉진 오른쪽으로 길게 차주는 뽈… 아, 칠레의 방어수 2번 가슴으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공을 어느새 돌입해들어가던 박두익 날래게 앗고 곧장 문대를 향해… 슛!―》
《슛!―》
이렇게 소리친것은 부소장만이 아니였다. 밤색모자와 리웅산까지도 《슛!―》 하고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아, 그만 꼴문대를 스치며 넘어갔습니다. 정말 아쉽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공격은 계속됩니다. 비록 전반전 26분경에 11메터벌차기로 먼저 한꼴을 실점당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여전히 기세충천하여…》
부소장이 밤색모자를 향해 소리쳤다.
《뭐라구? 전반전에 뭐가 어떻게 됐다구?》
《지금 말하지 않습니까.》 하고 밤색모자가 볼부은것 같은 소리를 했다. 《11메터벌차기루 먼저 한꼴을 먹었다구…》
《넨장, 경기시간이 얼마나 남았소?》
누가 그것을 알수 있으랴. 마침 다행히도 방송원 리상벽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5분밖에 없습니다. 이 마지막 5분을 남기고 우리 선수들은 필사적으로 공격을 들이대고있지만 칠레팀은 완강한 방어로 이행하는 한편 가끔 역습도 들이대고있습니다. 실로 막강한 실력을 가진 칠레팀, 제7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3등을 한 전적을 가진 강팀입니다.》
리웅산은 너무 가슴이 짓눌리여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흘러가는 분과 초들이 비수같이 가슴을 찌르고 이마전의 피줄들이 금시 터져나갈 정도로 무섭게 압박했다.
《…다시 칠레팀의 공격… 칠레의 9번선수가 10번에게 넘겨주고 10번은 다시 가운데로… 가운데서 8번선수가 우리 꼴문대로 몰고들어옵니다. 좌측으로 넘겨줄듯… 아, 이번에도 최종방어수가 잘 막아냈습니다. 중간선을 넘어 날아가는 공을…》 별안간 리상벽이 고함치듯 했다. 《아, 좋은 기회입니다! 7번 박두익선수, 8번 박승진에게 련락해주는 공… 박승진선수 자기에게 달려드는 칠레의 2번선수를 살짝 빼돌리고 번개같이 돌입하면서… 아! 꼴문대를 향해 힘껏 슈―웃!― 꼴인입니다! 정말 멋있는 꼴, 꼴인입니다!―》
다음 그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계속되는 리상벽의 열띤 목소리…
《…지금 관람석에 키가 굉장이 큰 한 거인남성이 경기장 한복판으로 나오고있습니다. 경찰이 막아나서지만 거인은 막아선 경찰을 손으로 가볍게 밀어치우면서 그대로 걸어나옵니다. 누굴 찾고있는것인가?… 아, 우리의 8번 박승진선수의 손을 잡아쥡니다. 그의 손을 높이 쳐들며 관중석을 향하여 흔들고있습니다. 박승진선수보다 키도 몸집도 두배, 세배나 더 큰 영국의 거인입니다!…》
부소장은 물론 리웅산이 아니꼽게 보던 밤색모자도 눈물에 젖어있었다. 그 역시 뾰족하기만 한 송곳은 아닌듯 했다. 송곳에도 눈물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가?…
부소장이 또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급히 탁우의 전화기를 끌어갔다. 이어 송수화기를 들고 발전자돌리개를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 누군가가 나왔다. 부소장이 목쉰 소리로 말했다.
《내각교환을 주오.》
리웅산은 아직도 축구경기의 열광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었다. 그가 무엇때문에 전화를 거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과는 다르게 좀 강마른듯 코날이 날카로운 부소장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후 송수화기에서 교환수의 챙챙한 목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왔다. 부소장은 송수화기를 다른 손에 바꾸어쥐더니 흥분으로 거쉬여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검찰소 부소장이요. 예, 내각 제1부수상동지에게 련결해주시오. 즉시 보고해야 할 문제가 있소. 음…》
그 어떤 찌르는듯 한 예감에 리웅산은 손에 쥐고있던 모자를 꽉 그러쥐고 정신없이 구겨놓기 시작했다.
《내각 제1부수상동지, 시검찰소 부소장 조한성입니다. 오늘 리웅산동무에 대한… 예, 료해하였습니다. 지금 제 방에 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