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1
깊은 밤 오진우는 김정일동지를 찾아 당중앙위원회로 차를 달려왔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오진우가 들어서자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아니, 오대장동지가 어떻게 이 밤중에?…》
《예, 좀 만나본지도 오래구 해서…》
《아, 그렇습니까?》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든채 오진우에게 손짓으로 자리를 권하시였다. 《거기 좀 앉으십시오. 제 잠간만… 미안합니다.》
《아, 일없습니다. 난 상관하지 마시구…》
오진우는 말코지에 모자를 벗어걸고 수수한 그이의 집무실과 방안의 가구들, 즉 옷걸이며 보통책상과 의자들, 책장과 창턱의 꽃병 그리고 탁우에 더미로 쌓인 맑스, 엥겔스, 레닌의 저작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너무도 소박한 방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수수하고 작은 방에서 전당을 새롭게 변모시킬 웅대한 구상이 펼쳐지고있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이께서 지금 로동계급의 백년사상사총화를 위해 이 방에서 밤을 지새시는 일이 드문하다는것도 잘 알고있었다.
갑자기 그는 전화로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무엇때문인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매우 심각하신 안색으로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그래서요?… 예― 그렇습니까? 어쨌든 다행입니다. 그럼 박사선생, 제 인차 그리로 가겠습니다. 수령님께 보고드리는 문젠 차후 경과를 봐가면서… 예, 그렇게 하는게 좋겠습니다.》
오진우는 자기가 때와 장소를 잘못 택했다는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자를 눌러쓰는데 그이께서 급히 손을 들며 만류하시였다.
《아니, 왜 그냥 가시렵니까? 안됩니다. 그래도 무슨 일때문에 오셨는지 말씀을 해야…》
《아, 그저 보구싶어서 왔다는데두요.》
《그러지 마십시오.》 그이께서 밝은 미소를 그리시였다. 《내가 어디 알아맞춰보랍니까?… 좋습니다. 오진우동진 지금 윁남에 파견하게 될 공군비행사들문제때문에 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윁남에 가서 싸우게 될 비행사들에 대한 정치사업문제때문에!… 어떻습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오대장동지 얼굴에 그것이 씌여져있는데 그걸 내가 왜 보지 못하겠습니까.》
《?…》
오진우는 두눈을 가느스름히 뜨면서 재빨리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도무지 믿을수 없는 말씀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오진우는 자기가 여기로 오기 전에 수령님께서 벌써 윁남에 파견할 공군비행사들과 관련한 문제를 김정일동지와 전화로 상론하셨다는것을 알지 못했던것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부탁합시다.》 하고 그는 여전히 신중하게 말씀드렸다. 《윁남에 파견하는 비행사들에 대한 정치사업문제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방법론을 좀 가르쳐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 가볍게 나무람하시였다.
《아니, 오대장동지야 오랜 세월 군사정치사업을 해오신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젊은 사람한테 자꾸 그러면 되겠습니까.》
오진우는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난 젊은 사람한테 온게 아니라 당을 찾아왔습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음을 거두시였다. 이윽토록 깊은 존경이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알겠습니다. 오진우동지, 고맙습니다.》
《원, 무슨 말씀을…》
《고맙습니다.》 그이께서 반복하시였다. 《그럼 저와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지금 김일동지의 병세가…》
《뭐, 김일동지가 말입니까?》
그이께서는 불현듯 가슴이 저려나는것을 느끼며 한동안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이윽고 승용차는 하나둘 불이 꺼지기 시작한 수도의 밤거리를 조용히 미끄러져가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 몸소 차의 조향륜을 잡고계시였다. 그 옆자리에는 오진우가 입을 꾹 다물고앉아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난 김일동지의 병세에 대해 보고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불시로 동통이 오는것이 문제입니다. 신성우박사의 말에 의하면 일제와 싸울 때 산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내장이 엉망진창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슨 비상대책을 세워야 할것 같습니다.》
오진우가 그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럼 외국에 보내여 치료받게 하는것이…》
《아닙니다. 김일동지가 뭐 제 나라 의사들과 병원을 옆에 두고 외국에 가겠다고 할게 뭡니까. 우리 병원에 입원하라구 할 때에도 펄펄 뛰는분인걸요.》
《그래도 병치료부터 해야지 그 아바이 정말?…》
오진우가 투덜거리듯 하는 말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닙니다. 김일동지를 사업에서 떼여내면 그는 얼마 견디지 못합니다. 아마 사무실문을 닫으라면 인생의 문을 닫으라고 하는것처럼 펄쩍 뛸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늘 자기가 병때문에 수령님을 잘 받들지 못한다고 얼마나 괴로워하고있습니까. 절대로 그를 병원침대에 붙들어두어선 안됩니다. 그랬다가는 고통만 더 주고 병을 악화시킬수 있습니다. 오아바이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렇긴 해두…》 오진우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뭘 그럽니까. 사실 오아바이도 무슨 주사요, 병원침대요 하는 소리만 나오면 펄펄 뛰지 않습니까.》
《허…》
오진우는 그만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승용차는 대타령쪽의 네거리를 돌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보슬비가 내리고있었다. 번들거리는 길 량옆에서는 사이사이 드물게 서있는 가로등들이 가는 보슬비속에서 희끄무레한 빛으로 졸고있었다.
《오대장동지도》 하고 김정일동지께서 다시 오진우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시였다. 《빨찌산 신대원때엔 고생을 많이 했다지요?》
오진우는 조금 게면쩍어하였다. 웃는다는것이 미간을 잔뜩 찌프리고있었다.
《지금도 보다싶이 이렇게 바짝 마르지 않았습니까. 난 원래 타고난 약골이우다.》
《약골이라니요? 아니, 오아바인 언제 보나 땅땅 쇠소리가 나군하는데요. 정말입니다.》
《쇠소리까지야 뭘… 사실 난 빨찌산때 강위룡이나 한창봉이 같은 장사들이 얼마나 부러웠댔는지 모릅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나같은 약골들때문에 갑절 고생하신다구 한탄두 많이 했구요.…》
《그랬습니까?》
《그런데도 수령님께선 단 한명도 떼놓지 않고 우릴 다 데리고다니셨지요. 그때 수령님께서 업고다니신 전사들이 지금은 다 장령별을 달고있구요.》
말수더구가 적기로 유명한 오진우였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면 은근히 감동적으로 이어가군 했다. 지금도 그의 두눈은 깊은 감회로 하여 축축히 젖어드는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선 아마 나어린 전사들의 가슴속에서 끓고있는 충성심을 제일 귀하게 보셨겠지요.》
《뭐 충성심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땐 그저 빙천설지에 오직 사령관동지가 친아버지같은분이시였으니 이분을 떠나면 우린 다 죽는다 하는 생각에 그저 다들 수령님에게 매달렸지요.》
《이분을 떠나면 우린 다 죽는다!…》 그이께서는 오진우의 그 말을 천천히 되받아 뇌이시였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모두의 삶의 신조로 되여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하고계시였다.
《이분을 떠나면 우린 다 죽는다!… 이것은 우리 인민만이 안고사는 생활의 진리입니다. 지지리 못살던 우리 인민을 세상에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하시구 존엄높은 인민으로 온 세상에 보란듯이 내세워주신 우리 수령님이 아니십니까.》
《예, 옳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당이 영원히 나아갈 길도 오직 하나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만을 따르는 유일의 항로라고 보고있습니다. 》
《유일의 항로?!》 오진우가 흥분어린 목소리로 그이의 말씀을 거듭 되뇌이였다.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마음에 꼭 듭니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그러면 윁남에 가는 비행사들에게도 우리 군대가 수령님의 군대라는것, 따라서 수령님의 사상과 전법으로만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것을 깊이 심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윁남의 하늘에 수령결사옹위의 비행운만 그리자는 구호를 말입니다.》
오진우는 그만 벅찬 기쁨을 누를수 없는듯 경련으로 이지러진 입술을 마냥 실룩이였다.
《좋습니다. 인젠 됐습니다. 윁남에 가는 우리 비행사들에게 어떻게 정치사업을 해야 하겠는지… 잘 알겠습니다. 》
드디여 승용차는 병원에 이르렀다. 정문앞에서는 신성우박사가 마치 조각상처럼 까딱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