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6
1966년 5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따뜻한 해볕이 집무실 창유리로 밀물처럼 쓸어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에 가있는 우리 대사들의 사업정형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계시였다. 특히 꾸바대사 장정환의 보고자료가 류달리 눈길을 끄시였다.
거기에는 피델 까스뜨로수상의 불의적인 우리 나라 대사관방문과 수령님의 현지지도기록영화관람, 꾸바의 지방도시인 싼띠아고 데꾸바에서 진행된 우리 나라 체육기술고문단(축구, 권투, 배구)과 사탕수수생산지원 농업기술협조단에 대한 환영행사, 어느 한 포병부대에서 진행된 행사와 체 게바라에 대한 자료들도 들어있었다.
(인물자료)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① 간단한 경력
―1928년 6월 4일 아르헨띠나 로싸리오시의 한 건축가의 가정에서 출생. 14살때 혁명적청년단체에 참가하여 활동. 25살때 아르헨띠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종합대학 의학부 졸업.
―1954―1956년까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인민대중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투쟁에 나설것을 결심.
―1955년 메히꼬에서 피델 까스뜨로와 만나 7월26일운동에 참가. 이듬해 12월 피델을 비롯한 꾸바혁명가들과 함께 《그란마》호로 꾸바에 상륙. 처음엔 군의, 후엔 유격대지휘관으로 활약.
―1958년 12월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여 1966년 3월까지 꾸바국립은행 총재, 꾸바혁명정부 공업상, 중앙계획위원회 위원장, 꾸바사회주의혁명통일당 비서국 성원으로 활동. 이 기간 정부 및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에짚트, 수단, 파키스탄, 인디아, 먄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일본, 마로끄, 유고슬라비아, 에스빠냐, 쏘련, 체스꼬슬로벤스꼬, 동도이췰란드, 알제리, 중국, 조선 그리고 수많은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방문.
―1966년 4월 꾸바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투쟁무대를 옮김.
② 유엔총회에서 한 체 게바라의 연설중에서(1964. 11. 12.)
《…나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는 아르헨띠나에서 태여났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닙니다. 나는 꾸바사람인 동시에 아르헨띠나사람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저명하신분들인 당신들께 제가 하는 말이 모욕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자신을 라틴아메리카의 열렬한 애국자로 간주하고싶습니다. 그 어느 라틴아메리카나라라 해도 무방합니다. 평범한 한 애국자로서 나는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라틴아메리카의 그 어느 나라에 가서든 그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목숨바칠 준비가 되여있습니다. 그 누구에게 빌지도 않고 그 무엇도 요구하지도 않으며 그 어떤 강박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③ 피델 까스뜨로와 가족들에게 보낸 체 게바라의 작별의 편지
피델 까스뜨로에게
농업의 해
아바나
피델.
거창한 사업을 앞에 둔 이 순간 나는 많은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리아 안또니아의 집에서 당신을 알게 되던 일, 당신이 나더러 꾸바로 가지 않겠는가고 묻던 일, 또 긴장하게 준비사업을 벌리던 그때의 일들을.
…언젠가 우리는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경우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가를 론한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은 우리모두에게 다 있는것이였습니다. 후에 우리는 그것이 옳다는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혁명에서는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마련이니까요.(그것이 진짜혁명이라면.)
…
나는 당신의 땅에서 꾸바혁명과 나를 맺어주고있는 내 의무의 일부를 원만히 수행했다고 보면서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당신의 인민이자 나의 인민이기도 한 그들과 작별하려고 합니다.
나는 당지도부에서의 나의 직책들과 상의 직책, 사령관의 직책 그리고 꾸바공민으로서의 나의 신분을 공식적으로 포기합니다. 이외의 다른 문제들로 하여 나를 꾸바에 붙들어둘 그 어떤 법적근거도 없습니다.
…
나는 훌륭한 나날들을 보냈으며 까리브해의 위기때 위험하고도 보람있던 나날들에 당신곁에서 우리 인민과 함께 있었다는데 대하여 긍지를 느끼고있습니다.
…이 세계의 다른 곳들에서 소박한 내 능력과 도움을 청하고있습니다. 꾸바앞에 걸머진 책임으로 하여 당신이 할수 없는 일을 내가 해야 하므로 드디여 우리가 헤여져야 할 시각이 온것 같습니다.
내가 이 리별을 기쁨과 아픔이 뒤엉킨 속에서 감수하고있다는것을 알아주십시오. 나는 여기에 창조자로서 내가 품고있던 꿈들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소중한것들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속에 남겨두고 갑니다.
나를 아들로 받아준 인민을 두고 떠나간다는 이것이 나의 심장을 막 허비고있습니다. 새 전장들에 당신이 나에게 심어준 신념과 나의 인민의 혁명정신 그리고 투쟁에 대한 자각을 가슴에 지니고 가렵니다.
…이역의 하늘아래에서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나의 마지막생각은 꾸바인민, 특히 당신에 대한 생각뿐일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가르쳐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내가 살아 숨쉬는 마지막 끝까지 당신이 보여준 모범에 충실하도록 힘쓰겠다는것을 약속합니다.
우리 혁명의 대외정책들에 언제나 충실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내가 그 어디에 가있든 나는 꾸바혁명가로서의 책임감을 간직할것이며 또 그 책임을 다할것입니다.
…당신과 우리 인민에게 할말이 많지만 인젠 그만두려고 합니다.
영원한 승리를 이룩할 때까지!
조국이냐, 죽음이냐!
최대의 혁명적열정을 다해 당신을 포옹하면서.
체로부터
1966. 4. 9.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일다와 알레이디따, 까밀리오, 쎌리아, 에르네스또… 이제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때면 그때 나는 너희들속에 없게 될것이다.…
너희들의 아버지는 생각하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였고 자기의 신념에 충실한 사람이였다. 부디 훌륭한 혁명가들로 자라나거라.
공부를 많이 해서 기술에 정통하여 자연을 정복하도록 하거라. 혁명이 중요한것이며 우리 매 사람들은 누구나 저 혼자만으로는 아무 쓸모도 없다는것을 잊지 말어라.…
아버지가 너희들을 굳게 포옹하고 입맞춘다.
아버지로부터
17
체 게바라가 꾸바공화국혁명정부 경제대표단 단장으로서 우리 나라를 처음으로 공식친선방문한것은 1960년 12월초의 어느날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꾸바공화국혁명정부 경제대표단을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고 친히 연설도 하시였다. 그리고 체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그를 따로 만나 장시간 담화도 하시였다. 그이께서 체 게바라와 가지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된 담화였다.
수령님의 추억(4)
귀밑에까지 구레나룻이 수북이 덮여있는 열정의 사나이 체 게바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한 인사말도 남들과는 판다른것이였다.
그날 체는 사복을 입고있었지만 오랜 세월 군복을 입고 싸워온 사람답게 허리를 꼿꼿이 펴면서 거수경례를 하는것이였다.
《안녕하십니까, 경애하는 김일성원수동지! 당신께서 이렇듯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꾸바혁명군의 한 소좌에 불과한 저를 만나주시니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소좌로서만 아니라 꾸바혁명군의 제2부대의 사령관 그리고 꾸바공화국혁명정부의 공업상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꾸바공화국혁명정부대표단 단장인 당신을 만나고있고…》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동지!》
그는 진심으로 감동되여 수북하게 자란 구레나룻을 흠칫거렸다.
눈매는 날카로왔으나 거기엔 따뜻한 웃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그를 자리에 앉도록 권하며 말했다.
《체 게바라동지, 우린 공동의 적을 반대하여 싸우는 혁명동지들인데 무엇때문에 그렇게 격식을 차려 군사칭호를 부르겠습니까. 서로 친근하게 동지라고만 합시다.》
《예, 고맙습니다. 하지만… 강대한 일제와 미제국주의를 때려부신 전설적영웅이시고 위대한 혁명가, 조선인민의 수령이신데 제가 감히 어떻게 그렇게야…》
그는 열정적이면서도 한편 고박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대범하면서도 솔직하고 진실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차례진 접견시간을 매우 유용하게, 효과적으로 리용하려고 애쓰는듯 했다. 장황하고 화려한 서두의 말은 될수록 피하고 직방 본론으로 들어갔으며 담화과정에 대표단의 기본목적인 경제문제, 원조문제와는 별개의 아주 엉뚱한 질문도 하였다.
《원수동지께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 근로자들에 대한 로동자극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것은 체 게바라가 한 첫번째 질문이다.
《로동자극문제라… 혹시 물질적자극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까?》
《예, 옳습니다. 그걸 말씀드린다는것이 그만…》 하고 그는 어줍게 웃었다. 《원수동지, 사실 저는 얼마전 뻬뜨렘이라는 쏘련학자와 그 문제로 론쟁을 한 일이 있습니다.》
《쏘련학자와 말입니까?…》
《예, 뻬뜨렘이라는 그 학자는 꾸바와 같은 발전도상나라들은 생산력이 낮아서 직접 사회주의사회에로 이행할수 없으므로 사회주의정권이 수립된 다음에도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즉 국영기업을 독립채산제로 하기도 하고 민간공업을 남겨놓기도 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저는 그의 리론을 내놓고 반대했습니다.》
《어떤 근거로 말입니까?》
《예, 그것은…》 그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꾸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에 얽매여있고 자금까지 매우 부족하므로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면 개인의 리기심에서 생겨나는 자본주의적의식형태가 만연될수 있습니다. 따라서 꾸바의 사회주의건설에 화를 미칠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쏘련학자의 론거를 정면으로 반대해나서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를 지지해주었다.
《정당한 주장입니다.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는것은 사회주의경제에 아편주사를 놓는것과도 같습니다.》
《참,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단 한마디로 명쾌하게 분석하시고 저를 지지해주시니 정말 반갑습니다.》
《지지자가 왜 나 한사람뿐이겠습니까. 피델 까스뜨로수상도 게바라동지의 그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을게 아닙니까.》
《그는 저…》 그는 난감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그러한 론쟁때마다 우리 피델 까스뜨로동지는 계속 침묵만 지켰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존경하는 원수동지께 문의하는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피델 까스뜨로도 마음속으로는 체 게바라동지의 그 주장에 전적인 동감을 표시하리라고 믿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사회학과 력사 및 경제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보다 중요하게는 현시기 꾸바가 처한 특수한 환경에 대하여 누구보다 더 잘 알고있는 피델수상이 아니겠습니까. 두고보시오, 그는 지금 뻬뜨렘이라는 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그를 내세우는 쏘련지도부와의 론쟁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그럴것입니다.》
체의 두눈에서 다시금 광채가 펀뜩이였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정말 기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체가 꾸바땅을 떠나간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밝혀지고있다. 지금 피델은 정신적자극을 중시하는 로선으로 확고히 돌입했으며 가까운 앞날에 천만톤의 사탕을 생산할데 대한 큰 목표를 내걸고 전체 인민이 게바라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혁명을 위하여 일요일도 바쳐가며 투쟁할것을 호소하고있는것이다.)
그날 체는 흥분된 어조로 정신적자극을 중시하려면 어떻게 하는것이 좋은가고, 조선에서는 어떻게 하고있는가고 물었다.
《예, 우리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있습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참으로 통속적이면서도 아주 뜻이 깊은, 아주 멋있는 아니, 그야말로 기막히게 좋은 구호입니다. 참 마음에 듭니다.》
그는 이어 우리 나라에서 벌리는 대중운동, 즉 천리마운동에 대하여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계속 되뇌이며 정신없이 받아쓰더니 돌연 기본의제인 경제문제와는 다른 화제를 끄집어냈다.
《우리 꾸바는 신생국가입니다. 원수동지께서는 갓 시작된 우리 꾸바혁명을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보위하자면 어떤 전략전술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내 생각을 말하면… 신생꾸바혁명을 보위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미제에 공격의 창끝을 집중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계적규모에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세계적규모에서 반제반미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제가 제멋대로 꾸바혁명을 교살할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구한 기간 강도 일제와 싸우며 얻은 피의 교훈입니다. 통일전선전략, 단결이 중요합니다. 서반구의 유일한 사회주의나라인 꾸바가 외로워지면 안됩니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작은 나라들도 단결하여 도처에서 미제에 타격을 주고 그들의 력량을 최대한 분산약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조선식으로 말하면 미제의 각을 뜬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이 현시기 가장 중대한 반제반미투쟁전략입니다.》
별안간 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고있었다.
《옳습니다. 원수동지, 정말 명철하신 말씀이십니다. 〈절대 꾸바가 외로워지면 안된다.〉, 〈외토리로 싸워선 안된다.〉, 〈작은 나라들도 단결하여 세계도처에서 미제의 각을 떠야 한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바란것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
너무도 큰 충격에 체는 몇번이고 그 말들을 되뇌이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외교상의 례의도 다 잊고있는듯 했다. 엄정하게 정해진 접견시간이 거의나 가고있는것도 알지 못하는듯 했었다.…
담화도중 그는 이런 질문도 했었다.
문:《원수동지께서는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직접 전투를 지휘하군 하셨다는데 어떻게 한번도 부상당하지 않으셨는지… 정말 원쑤들의 탄알도 민족적영웅만은 피해간것이 아닙니까?》
답:《아닙니다. 난 사실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죽을번 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원쑤의 총탄이 사령관이라고 피해가겠습니까. 그건 후날 우리 인민들속에 전설처럼 전해진 얘기이고… 실은 몇번이나 적의 총에 맞을번 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배낭을 벗어서 털어보면 대여섯발의 총탄이 굴러떨어질 때도 있었으니까요.》
문:《그러니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답:《아닙니다, 기적이 아니라 동지들 덕분입니다. 우리 유격대의 모든 대원들이 사령관을 목숨바쳐 사수하자고 희생을 무릅쓰며 나를 위험에서 막아나섰습니다. 동지들의 사랑과 헌신이 총알도 막아주었습니다. 그걸 굳이 기적이라고 볼수야 없지요.》
문:《한가지만 더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 피델수상동진 언제든 꼭 조선을 방문하고저 하는데 지금은 시간을 낼수 없어 안타깝다고 하면서 대신 저더러 존경하는 김일성원수동지께 꼭 시간을 내여 꾸바를 방문하도록 청을 올리라고 했는데… 그렇게 약속해주실수 있겠습니까?》
답:《진심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앞으로 꼭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외의 정세가 그걸 허용치 않습니다. 나는 피델 까스뜨로수상도 지금은 자리를 뜨는게 아니라고 봅니다. 신생꾸바의 혁명진지를 더 굳건히 다진 다음 시간을 내도 됩니다. 오늘은 일단 그렇게 약속하는게 어떻습니까?》
문:《좋습니다. 원수동지, 돌아가서 피델 까스뜨로수상에게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원수동지께서는 아까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꾸바혁명을 보위하려면 세계도처에서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여러 나라들에서 동시에 무장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하신 의미인지 혹은 의회투쟁까지도 포함하여 하신 말씀이신지?…》
답:《우리는 일부 우경기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의회투쟁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 혁명의 경험은 오직 무장투쟁만이 제국주의, 식민주의자들의 지배와 예속으로부터 자기 나라와 민족을 해방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
이렇듯 담화는 계속 이어져갔다. 돌이켜보면 그때 벌써 그는 미국의 《고요한 뒤동산》으로 불리우는 저 라틴아메리카에서 무장투쟁의 홰불을 지필 생각을 한것 같다. 그렇게 믿을수 있는 근거는 많다. 그가 귀국할 때 영어와 에스빠냐어로 된 연설문단행본들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수십권을 가지고갔다는 사실도 의미깊은 일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