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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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일정총화를 끝냈을 때 초급당비서 전주석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에서 방금 돌아오는 길인데 자기 방으로 건너와달라는것이였다. 지배인부임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앞세우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 말투가 좀 심상치 않았다.

아닐세라 둘이 널직한 사무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을 때 전주석은 에두르지 않고 뚝뚝하게 따졌다.

《동기와교체말입니다. 삭도탑보수용에 손을 댔다면서요?》

예견한 질문이라 렴진욱은 침묵으로 수긍했다. 그것이 전주석을 더욱 언짢게 만든듯 했다. 그의 목소리가 짜증조로 울렸다.

《물론 지배인권한에 속할테지만… 설마 삭도를 아주 집어던지자는건 아닐테지요?》

렴진욱보다 다섯살 년장자로서 작달막한 키에 박달처럼 단단하게 생긴 전주석은 그 생김새처럼 여간 고집스러운 사람이 아니였다. 그럼에도 더듬듯 짓눌린 목소리를 짜내는 품이 겨우 노기를 참고있다는게 알렸다.

렴진욱은 실수를 깨달았다. 평양에 올라갔을 때에는 자기의 머리속에서만 굴려보던 결심을 그대로 성에 비치다보니 삭도페기문제를 당비서와 미리 의논 못한 상태였었다. 동기와교체 역시 삭도페기를 기정사실로 여긴 나머지 당비서가 돌아온 후 알려줘도 늦지 않을것이라고 여겼던것이다. 조직적인 토의를 거치지 않은 지배인의 결심이란 결국 뭐겠는가?… 렴진욱은 섬찍한 생각마저 들었다. 삭도페기의 절박성에 너무 옴하다나니 초보적인 사업원칙마저 잊고있은게 아닌가.

《삭도는》 하고 렴진욱은 사죄할겸 설명했다.

《담당부국장과 이미 페기하기로 합의보았길래… 어쨌든 검토해봐주십시오.》

그는 미리 준비해가지고온 종이 한장을 전주석앞에 쑥 밀어주었다. 삭도페기로 얻어지는 그 회수설비들에 대한 리용안이였다.

전주석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였으나 그래도 책상서랍을 뒤져 안경을 찾아끼였다. 렴진욱은 당비서의 얼굴에 흥미있어하는 표정이 어리고 나중엔 고개까지 가볍게 끄덕이자 이렇게 계속했다.

《그리구 이건 좀 신중한 문제인데… 실적이 없는 일군들을 그냥 자리지킴만 하게 둘순 없다는겁니다.》

좀 뜻밖인듯 입까지 벌어졌던 전주석이 렴진욱을 치떠보았다.

《너무 이르진 않을가요?

나도 이 문제를 가지고 지배인동무와 한번 의논해보아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고난의 행군〉시기 허기져 쓰러지면서도 자기 갱, 자기 직장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그 오랜 경험과 기능 또 공로자, 혁신자였다는 사정… 이런걸 생각하면 차마… 당비서로서 사람문제를 손쉽게 처리하기엔 어쩐지 가슴이 떨린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황소걸음을 하게 내버려둘순 없지 않습니까?》

렴진욱의 강경한 말에 전주석의 눈귀가 가늘게 쪼프려졌다.

각오는 했었으나 전주석의 흥분을 갈앉히기가 쉬울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렴진욱은 물러설수 없었다. 처음 이런 결심을 했을 때 그가 무엇보다 망설인것은 그들의 반수이상이 자기와 함께 광산개발초기부터 어깨겯고 고락을 함께 해온 오랜 친구들이라는 점이였다. 몹시 아팠다. 하지만 그는 다른 교훈도 알고있었다. 이전 지배인 김호성이 바로 그런 인정때문에 이미전에 교체했어야 할 일군들까지 과거의 공로를 외면할수 없다는 식으로 그냥 눌러앉혀둠으로써 광산의 도약에 저애를 가져오게 됐던것이다. 전주석도 거의 다를바 없었다. 결국 전주석의 지난 사업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기도 했다.

보다 중요한것은 인민을 위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헌신의 길에서 《강계정신》이 창조되고 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이겨낸 우리 인민앞에 강성대국건설이라는 휘황한 목표를 제시하시고 그 도약대로 될수 있는 선행공업대상들을 하나하나 일떠세우고계신다는것이였다.

렴진욱은 바로 연하광산도 이 거창한 전변과 진보에 발을 맞추어 내달리지 못한다면 《도약대》의 한귀퉁이가 기울어질수 있다는것을, 그것은 지배인으로서, 한 공민으로서 무서운 죄악이라는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면… 모질다는 말 정도쯤은 흔연히 들어줄 배심을 가져야 했다.

《비서동진… 군사복무를 하셨지요. 솜씨있는 지휘관이였댔구요.》

전주석의 말이 동강났을 때 렴진욱이 슬쩍 끼여들었다. 전주석은 화제가 왕청같이 비약하는 바람에 잠시 눈을 꺼먹거리다가 불쑥 경계심이 들었는지 또 팔을 휘둘렀다.

《알만 합니다. 어쨌든 연구를 좀더 해보아야겠습니다.》

괴로움에 젖은 전주석의 말이였다.

《비서동지! 지금은 21세기라는 새로운 전선이 우리앞에 펼쳐져있지 않습니까. 광산을 정비하고 이 새 세기의 높은 요구에 부합되게 혁명을 일으키자면 새로운 과학기술로 무장했을뿐아니라 인민군대의 지휘관들같은 담력과 배짱, 혁신적안목을 가진 실력있는 일군들이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가슴이 아프더라도 무조건 해야 합니다!》

전주석은 침통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문채 어딘가 한점을 노려보고있었다. 그 눈길로 자기앞을 담벽처럼 막아선듯 한 지배인의 결심에 구멍을 뚫어보자는것 같았다.

전주석이 고개를 든것은 시간이 퍽 흐른 뒤였다.

《그럼… 지배인동문 어떤 방법으로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야…》

렴진욱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전주석이 약간 흥분한 기색을 지으며 서둘러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들은 경험과 기능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런것만큼 공정원이라든가 기술고문격으로 그냥 눌러앉혀 새 일군들을 돕게 하는게 어떻습니까?》

렴진욱은 사실 그들의 차후 대책에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역시 인간의 운명을 책임져주는 당일군이 달랐다.

《그건 좋은 생각입니다. 찬성합니다.》

렴진욱이 계속했다.

《셋째결심이 또 있습니다. 살림집건설을 시작하자는겁니다. 지금 같은 땜때기로는 광부들을 안착시켜내지 못합니다. 나부터 나무집이 싫어죽겠습니다. 광산이 겨우 유지되는데만 머물지 않고 나날이 계속 흥할것이라는걸 실물로 보여주어 광부들을 분발시키기 위해서도 새 집은 꼭 지어야 합니다.》

또다시 펄쩍 뛸줄 알았던 전주석이 의외에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이마의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더 깊이 패였을뿐이였다. 아무래도 렴진욱의 결심을 막을 도리가 없다고 여겼는지 혹은 설마 광산의 수천세대에 달하는 살림집전부를 다 새로 짓자는건 아니겠지 하고 방심했는지… 그러면서도 그는 동안을 두었다가 어두운 얼굴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무가 없어 동기와도 제때에 교체 못해주는 판에…》

《토피를 빚어 쌓자는겁니다.》

렴진욱은 이미 그 대답에도 준비되여있었다.

《버럭돌로 기초를 하고 박토진흙에 벼짚을 섞어 토피를 찍고… 능히 됩니다. 나무도 필요할테지만 최대한 예비를 짜봐야지요. 우선 비서동지부터 승인해주십시오.

후방사업에 쓰려고 절충해놓은 〈주머니〉를 내놓게 말입니다. 광부들은 터밭강냉이로도 년말까진 지탱해냅니다. 그다음엔 생산을 추켜세워 보충하겠습니다. 그리고…》

렴진욱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사죄겸 슬쩍 보태였다.

《지금껏 우리 행정일군들이 일을 쓰게 못해서 비서동지만 고생시켰는데… 제 이제부터 착실한 주인구실을 할테니 비서동진 그저 지도만 잘해주십시오.》

전주석의 얼굴이 민망할 정도로 검붉게 익어갔다. 렴진욱의 말을 전혀 달리, 자신에 대한 어떤 에두르는 비판처럼 받아들인 모양이였다. 기실 이전 지배인은 전반기업소운영을 틀어쥘 대신 늘 자재부속을 구걸하러 성으로, 련관단위로 드달려다니기만 했었는데 그런 공간을 메꾸려고 전주석은 부득불 지배인의 몫까지 떠맡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광산운영이 큰 선상에서는 무리없이 진행되여갔으나 구체적으로는 행정일군들이 당위원회에 너무 매달리던 나머지 치밀한 기술실무적작전까지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일종의 창조성결핍에 빠지게 되였다. 렴진욱자신도 그랬었다. 이제부터 지배인으로서 제 몫을 충실히 한다면 전주석도 마음놓고 정책적지도에 주력할수 있을것이다.

그저 뚝하기만 해보여도 전주석은 무척 민감한 일군이고 허심하기도 했다. 그는 제꺽 낯색을 풀고 미더운 눈길을 던졌다.

《그래, 이제야 주인이 생긴것 같소. 허허… 따져보면 내가 행정일군들을 믿고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데도 잘못이 있었소. 우리 함께 손잡고 일을 본때있게 제껴봅시다.》

《그렇게 리해해주니 고맙습니다.》

렴진욱도 큰숨이 나갔다. 끝내 전주석의 리해를 받은것이였다. 그것도 얼마나 파격적이고 방대한 작전안에 대한 론의였던가!… 그런데 렴진욱의 안도의 한숨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전주석이 못마땅한듯 머리를 흔들며 퉁명스럽게 내질렀다.

《다 된게 아니요. 삭도문젠 나도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살림집건설은…》

처음으로 되돌아가누나… 렴진욱은 아연하여 절로 입이 다셔졌다. 순간 자기를 꿰뚫어보는듯 한 전주석의 예리한 눈길과 마주쳤다. 그것은 어떤 불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기대하는듯 한, 호소하는듯 한 절절한 눈길이였다.

《내 지배인동무의 배짱을 잘 아오만…》 드디여 전주석이 약간 갈린 속삭임을 터뜨렸다.

《그건 헐치 않은 일입니다. 수천세대가 아닙니까. 하나의 도시구획과 맞먹는… 헌데 우린 현재 맨주먹과 같은데, 일단 시작을 뗐다가… 환상을 줬다가 힘들다고 줴버리면 그땐 우리가 광부들의 마음을 영영 잃을수 있다는겁니다. 그래… 끝까지 이겨낼자신이 있습니까?》

렴진욱은 불시에 눈뿌리가 따가와졌다. 그것을 말하자고 했구나, 일시적충동에 떠밀린게 아니냐고, 각오와 잡도리를 든든히 했느냐고.

그 역시 속삭임처럼 대답했다.

《믿어주십시오!》

비로소 전주석은 허리를 쭉 펴고 눈이 보이지 않도록 웃으며 책상을 탁 두드렸다.

《그럼 지배인동무의 결심을 당위원회 회의에서 토의합시다.》

…이튿날 저녁에 열린 당위원회 회의에서는 심중한 검토와 론쟁끝에 렴진욱의 결심을 정식 추진시키기로 결정했다. 보충된것은 살림집건설과 동시에 생산건물, 공공건물들의 전면적인 보수개건도 추진하자는것이였다. 그것까지 합쳐지면 건설규모는 숨이 막힐만치 방대한 량이였다. 그렇다고 살림집을 다 세운 다음 거기에 손을 대는 식으로 한다는것은 세월없는노릇이 될것이고 렴진욱의 불같은 성미에도 맞지 않았다. 일단 손을 대면 모든것을 단번에, 전격적으로!… 렴진욱의 치밀한 공정계획과 자재, 로력타산, 째인 사업분담에서 어떤 무서운 완력과 결단을 의식했는지 위원들은 두말없이 손을 들어 찬성했다. 당위원회가 각 갱, 직장의 부문당들을 발동하여 살림집건설을 전적으로 맡아하겠다고 나선것도 모두에게 신심을 주는 큰 작용을 했다.

유급일군교체문제가 역시 처음에는 불협화음을 일으켰었으나 의외에도 전주석당비서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렴진욱에게 던진 말이 그것을 가볍게 눌러버렸다.

《지배인동무가 너무 욕심을 부렸거던, 그러니 불만이 생길수밖에. 나도 좀 욕심을 채워봅시다. 기술과에 새로 온 제대군인출신의 김책공대졸업생 있지 않습니까. 아, 리성혁이 말입니다. 우리 당위원회가 빼앗아가자는겁니다. 정보산업시대에 우리도 과학기술을 알고 당사업을 내밀어야 할게 아닙니까!》

선광직장의 개편도 론의되였다. 렴진욱의 제기로 세개 직장 즉 2차턱파와 중쇄, 세쇄공정을 1선광직장, 마광과 부선공정을 2선광직장, 희유금속광물을 분리해내는 분리부선공정을 3선광직장으로 가르기로 토의한것이였다. 그것이 각 직장의 부문별전문화수준을 높이고 생산지휘를 기동성있게 할수 있는 방안이라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하였기때문에 모두가 쌍수를 들어 지지하였다.

무엇이든 결정이 되면 도화선처럼 확 타들어가는 렴진욱이였다. 그는 그 즉시 긴급행정간부회의를 열고 위원회정신을 알려준 다음 각 부서별에 따르는 사업분담으로 넘어갔다.

건설과가 할 일이 제일 급했다. 살림집부지측량과 터닦기, 현대적미감에 맞는 새형의 살림집설계… 그것이 선행되여야만 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렴진욱이 방수직장의 모든 기재를 건설에 돌린다고 선포했을 때처럼 소동이 크게 일어난적은 없었다.

렴진욱의 결심이라면 우선 지지해놓고보는데 습관된, 그만큼 렴진욱을 믿고 받들어주던 김지택이부터 길길이 뛰며 선참 부르짖었다.

《방수제방쌓기를 관두자는겁니까? 지배인동지가 갑자기 어떻게 된겁니까? 방수는 우리 광산의 생명선입니다. 청맹과니가 아니고서야… 난 찬성 못하겠수다. 죽어두! 청주녀석이 미쳤다했더니 이젠…》

그가 법석 떠들만도 했다. 안전상 고려로부터 일정한 두께의 방수벽을 남겨두고 파먹고있기는 했지만 끊임없는 발파진동때문에 균렬이 생길수 있다는 우려는 배제할수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부터 도랑을 깊이 파고 진흙다짐제방을 쌓기 시작했는데 그 일을 방수직장이 맡아하고있었던것이다.

《그건 장래를 위한 예방책이지 지금은 일없소!》

렴진욱이 꾹 누르려들자 김지택은 더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청맹과니라는겁니다. 내가 있는 한엔 기대 한대 못 돌릴줄 아시우.》

렴진욱은 지그시 그를 노려보았다. 일단 고집의 뿔을 세울 때에는 상대가 그 누구이던지간에 할말을 다 내뱉고야말 곧은백이괴짜인 김지택이였다. 하물며 허물없는 사이인 지배인쯤이야.

렴진욱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지배인지시로 정식 떨어져도?》

《그래두 안되오!》

《그럼… 자리를 내놔도 좋소!》

렴진욱이 얼음장같이 내뱉았다. 순간 김지택의 거무스레한 얼굴이 단번에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약간 벌어졌던 입도 자갈을 물리운듯 겨우 실룩거렸을뿐 호흡마저 딱 멎어버린것 같았다. 격렬한 노여움과 배신감, 그로부터 오는 모욕감… 그 모든것이 뒤엉켜 불타올라 숯덩이로 변한듯 한 모습이였다. 렴진욱은 짐짓 그를 더이상 돌아보지 않았다. 물론 충분한 과학적론거로 그를 설득시켜볼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집이 하늘소발통같은 그에게 론쟁의 기회를 만들어준다면 뜻밖의 엄청나고 격동적인 새 과업을 받고 한껏 앙양되여있는 회의장분위기를 저조하게 역전시킬 온갖 보수적인 말마디들이 쏟아져나오게 될것이다.

김지택의 주장은 광산의 래일까지를 책임지려는 립장에서는 자기와 상통하는데가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래일을 걱정한다는 명분, 즉 《안전》, 《안전》 하는 제동기때문에 응당 개변되고 혁신을 일으켜야 할 오늘이 발목을 잡히는것이다.

훌륭해야 할, 훌륭할것이 분명한 래일의 시각으로 오늘을 굽어보라, 그러면 오늘의 모습이 참을수 없을만큼 싫어질것이며 그 좋은 래일을 하루 빨리 당겨올 강한 의욕과 투지도 생길것이다!

렴진욱은 이 점을 회의참가자들 특히는 김지택에게 분명히 밝혀두고싶었으나 자존심에 상처입은 그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것을 깨닫고 곧 회의결속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시종 눈을 내리깔고 침묵만 지키다가 행정간부회의가 끝나자 슬며시 나가는 리정우의 모습까지 눈에 걸리고보니 마음이 몹시 언짢아졌다. 자기의 두팔이 되여주어야 할 핵심일군들이 모두 반기를 든셈인것이다.

《기술부기사장은 좀 남소.》

렴진욱은 리정우가 문밖으로 사라지는 마지막순간에 그를 불러세웠다.

리정우는 내심 그것을 바라고있은듯 순순히, 태연하게 되돌아섰다. 버릇처럼 눈을 내리깔고있었음에도 미간에 몇개의 주름이 잡혀있는게 기이하게 생각되였다. 내심의 어떤 불만에 대한 뚜렷한 표시였다.

《말해보오.》 하고 렴진욱은 자리를 권한 다음 좀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동무도 오늘 회의에 대해 의견이 있는것 같은데… 속에 꿍져두지 말고 툭 터놓소.》

리정우는 앉지 않았다. 대신 그는 거침없는 반문을 터치였다.

《청주를 해임시키기로 했다지요?》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렴진욱은 그저 눈을 찌긋한채 그의 다음반응을 기다렸다. 당위원회에 청주문제를 상정시키기까지 생각이 복잡했던 그였다. 청주가 맞대놓고 자기를 공격한데 대한 보복처럼 광부들이 인식할것 같아 주저되였던것이다. 채굴장문제를 두고 그와 담화하려고 계획한만큼 이 해임조치가 청주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을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 리정우에게 말한것처럼 이 수재형의 젊은 기술자를 우선 참된 광부로 만들기 위해서도 처벌은 불가피했다. 그런 사정을 새삼스럽게 리정우에게 반복설명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리정우는 변함없이 눈을 내리깐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어딘가 방 한구석에 시선을 박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삭도사업소를 뜯어 일부 설비를 보충갱신하는건 좋은 착상이지만 그런다고 생산까지 절로 뛰여오르는건 아닙니다. 정상가동이나 보장되겠지요. 지금 형편으로선 그것도 대단히 크다는건 압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조건 기술을 갱신해야 합니다. 그러니 청주의 필요성은 더 커집니다. 왜 그를 교양해서라도 그냥 쓸 생각을 못합니까? 난 오히려 년로보장자들중에서 특별히 고급한 기술자들을 도로 광산에 받아들여 기술력량을 더 보충할걸 주장합니다. 례하면… 선광기사 류병근아바이가 그 한사람일겁니다.》

렴진욱도 이미 그런 방안을 머리속에서 굴리고있던 참이였다. 그자신 기술자로서 모든 사업에 기술을 선행시키지 않으면 진보란 있을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럼에도 리정우의 마감말은 그를 몹시 자극했다. 리정우는 류병근을 특별히 지명함으로써 그의 후임으로 들어앉은 김현길실장에 대한 자기의 불신을 다시 상기시킨것이였다.

집요한데가 있는 젊은이였다. 김현길의 어떤 점이 못마땅했을가. 전번의 잉어탕같은 일종의 아첨기? 혹은 순수 기술실무적측면에서의 무능력?… 한번 료해해볼 필요가 있었다. 하면서도 김현길에 대한 자기의 믿음이 허물어질가봐 은근히 두렵기도 했다. 그것은 그의 누이 김현순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흐려놓을수 있기때문이였다.

어쨌든 상부에 아부할줄 모르는 리정우의 강한 주견만은 높이 사주고싶었다. 일군이라면 그래야 한다. 상급의 기분과 비위에 따라 자기 립장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바꾸는 인간들 대개가 기술실무에서 무능하기마련이다.

그렇다면… 리정우가 기사장재목이 아닐가? 너무 젊다는것이 흠일수는 없다. 기술일면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 기술을 소유한 인간의 정신력이 가지는 거대한 의미까지를 미처 투시해보지 못하는 미숙성이 문제일뿐이다. 이것 역시 한번 검토해볼만 한 방안이였다.

그러면서도 렴진욱은 자기 내심을 감추고 짐짓 딱딱하게 내뱉았다.

《청주의 해임은 이미 결정된 문제요. 그러니 그가 타락하지 않도록 동무가 잘 도와줘야겠소. 선광실험실력량은 보강하겠소. 4.15기술혁신돌격대와 운수수리소 그리고 채굴의 기술력량도…》

《그렇다면 전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렴진욱은 마음이 좀 개운해졌다. 이제부터 시작하게 될 광산현대화전투에서 믿음직한 한팔을 얻게 된것이였다.

《한가지 권고할건 속으로만 끙끙 앓는 버릇을 뚝 떼오. 옳은 주장도 불평으로 오인되기 쉽거던.》

렴진욱은 순진하게 얼굴을 붉히는 리정우를 흥미있게 지켜보았다. 부끄럼이란 좋은 품성인것이다.

 

×

 

집에 들어선것은 밤이 이슥해서였다. 딸 정옥이 류달리 활짝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또 늦으셨네.》

딸은 렴진욱이 옷벗는것을 거들어주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나도 요즘 구급환자가 들어와서 며칠밤을 꼬박 샜지요 뭐, 아유― 땀! 어서 세면하세요.》

렴진욱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무엇인가 수상했다. 어릴 때부터 딸은 몹시 내성적이여서 내놓고 아버지에게 매달려 응석부릴줄 몰랐고 다 자란 지금껏 그저 방끗 웃어보이는것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게 전부였었다. 이 애가 혹시 박치명부국장에게 동의를 준게 아닐가. 그래서 아버지의 의사를 타진해보려고?

그때 부엌에서 안해 최금숙의 언짢은 힐난이 날아올라왔다.

《넌 뭐가 좋다고 가살떠는거냐?》

《어머니!》

딸의 날카로운 부르짖음, 다음순간 정옥이 불쑥 호호 웃었다.

《내가 아버지 좋아하는 만두를 빚었는데 그만 삶다가 다 터뜨렸다고 저러지요 뭐. 그래도 맛은 좋다나요.》

《듣기 싫다!》

마침 밥상을 챙겨들여온 안해가 딸에게 눈총을 쏘며 하소연했다.

《이걸 어쩌면 좋아요? 례장까지 받은 격인데… 저 애가 평양엔 시집 못 가겠다고 딱 버티는군요.》

《엄만 정말!》

금시 울상이 된 딸이 얼굴을 싸쥐고 픽 돌아섰다. 렴진욱은 우뚝 굳어졌다. 심장이 후두둑했다. 그리도 마음속으로 고대하던 대답이였다.

하면서도 박치명을 생각하니 섬찍하기도 했다.

《너 그게… 정말이냐?》

왜서인지 목구멍이 말라들어 렴진욱은 가까스로 말을 짜냈다. 딸은 방바닥에 두무릎을 모으고앉은채 고개를 깊이 떨구고있었다. 불빛에 드러난 그의 상큼한 목이 눈부시도록 하얗다. 싱싱한 젊음이 발산하는 빛이였다. 그것이 렴진욱의 마음을 이상하게 흔들었다. 다 자란 딸, 이제 시집도 가야 할 딸!

《어떻게 그럴 결심을 다 했니? 혹시 여기에 애인이 있어서?》

《…》

《저게 어디 무슨 사정인지 통 입을 열어야 말이지요.》

안해가 또 속상한듯 끼여들었다. 느닷없이 렴진욱은 허허… 후련한 웃음을 터뜨렸다. 홀연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는 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생각이 많았겠는데… 어쨌든 용타. 광부들은 우리 집을 지켜보고있다. 또 우리 집안이 원래부터 광부집안이고, 부국장큰아버지에겐 좀 미안하게 됐다만… 네가 응당 광부한테 시집가는게 도리지. 용타!》

딸이 어깨를 흠칠 떨었다. 그다음 힐끗 아버지를 치떠보았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니 고여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

《아버지!》 하고 마침내 정옥이 울먹거리며 부르짖었다.

《난… 난… 그렇겐 못하겠어요. 아버진 다 몰라요!… 몰라요!…》

어느사이 딸은 방을 뛰쳐나가버렸다. 렴진욱은 뗑하여 채 닫기지 않은 출입문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평양에 시집가는것도 단호히 마다한 딸, 그러면서도 무엇을 《그렇겐 못하겠어요》란 말인가?

안해가 속상한 한숨을 길게 토했다.

《남들은 에미한테 속이랑 잘 털어놓는다는데 저건 어디서… 따라다니는 총각이 있냐 물어도 도리질, 평양가겠냐 물어도 도리질. 아이구, 이젠 부국장동지를 어떻게 대하겠어요?》

렴진욱의 눈길이 절로 딸의 화장대우에 댕그라니 놓여있는 외국제화장품곽에 가 멎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채로였다. 그것이 마치 딸의 사랑에 대한 굳건한 봉인같이 여겨져 더더욱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말 못하는 딸의 하소연인듯 선광장의 마광기소리가 으르렁으르렁 끊임없이 고막을 허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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