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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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동지도 딸을 광산에서 빼돌려 평양에 시집보내지 않습니까?》
오만하게 뇌까리던 청주의 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렴진욱의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그는 발이 어떻게 놓이는지도 모르고 경황없이 걸었다. 그자신 술에 취한 기분이였다. 박치명의 의리심의 한 표현으로 고맙게 받아들였던 그 청혼이 그만 광부들에게는 어떤 기만처럼, 배신처럼 리해된것이였다.《뭐 그러면서도 우리더러는 끝까지 광산을 지키라고 낯두껍게 설교해?》하는!
어떻게 그 사실이 루설되였는가? 청주까지 안다는것은 온 광산에 널리 퍼졌다는것을 의미한다. 안해때문에?… 아니, 그가 직접 들고다니며 자랑했을리는 없다. 가정사를 밖에 나가 입에 올리는 법이란 절대로 없는 과묵하고도 섬세한 안해였다. 아직 정옥이 당자와 합의본것도 아니기때문에 더더구나 소문낼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알려진것만은 사실이였다.
광산은 앞집이 사둔집, 뒤집이 조카네 집, 건너편집이 삼촌댁 하는 식으로 얽혀사는 하나의 큰 가족과 같았다. 광부식의 우의와 자부심이 혼인에도 강한 영향을 미쳐 《광부래야 듬직한 사위감》, 《광부집 딸이래야 착실한 며느리감》이라는 평정이 관습처럼 굳어져있기때문이였다. 물론 외계와 멀리 떨어져있는 지리적구속도 작용하지 않는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설혹 다른 지방의 처녀나 총각을 사귀였다 해도 그것이 광부들에게 모욕으로 받아들여질가봐 될수록 피했다. 광산에 데려온다는 조건부라면 용납되는것으로 알 정도였다.
그렇게 형성된 광산마을이여서 어떤 소식이든 감춰내기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저네들의 풋사랑을 신성시하면서 비밀에 붙이고싶어하는 처녀 총각들이 이 빤한 광산마을을 자주 원망하군 하겠는가. 하루밤 몰래 만나기만 해도 이튿날엔 벌써 사람들이 벙글벙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기 십상이였던것이다.
문제는 소문자체가 아니였다. 《딸을 광산에서 빼돌린다》는 광부들의 인식이 무서운것이였다. 청주라는 한 독설가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별로 고민할것도 없으련만…
렴진욱이 청주를 만나보려고 결심한데는 리정우의 권고때문만은 아니였다. 아침부터 채굴장에 나가 지배인의 눈으로 채광갱과 건설갱, 방수직장들을 꼼꼼히 휘돌아본 그는 광산이 끝장날거라며 광부들을 동요시켰다는 청주의 랑설이 전혀 무근거하지 않다는것을 깨닫고 무등 놀랐다. 채굴장이 극히 협소한데다가 고품위맥이 거덜나기 시작하여 몇달안팎이면 생산이 죽을수 있는 형편이였던것이다. 전기만 계속 와준다면 건설갱에 력량을 집중하여 쉽게 채굴장을 넓힐수 있을테지만 당장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비로소 렴진욱은 자기가 지금껏 긴장한 전기사정이 풀릴것만 고대하면서 어떤 결정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고 지내왔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저 우에다 손내밀고 구원해주기만을 바란 피동적인 방어자, 그것이 자신이였다.
기사장시절엔 왜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였는지 실로 어처구니없을 정도였다.
자연히 생각은 청주에게로 돌아갔다. 광산이 끝장날거라고 예언했다면 그 반대의 경우, 즉 《끝장을 면할》 방책을 가지고있을수도 있지 않을가? 자기를 옳게 리해해주는 일군이 없다는 불만이 그를 독설가로 만들기 쉽기때문이다. 그만큼 청주는 머리가 핑핑 도는 수재형의 기술자였다.
공교롭게도 청주는 출근하지 않았었다. 채광갱 부문당비서는 자책어린 목소리로 청주가 불편한 집에서 사는것을 알면서도 잘 돕지 못했노라고, 아마 그때문에 더 불만스러워 엇나가는지도 모른다고 자기의 추측을 터놓았다.
그렇게 되여 마음먹고 찾아갔던 청주의 집, 그런데 그를 기다린것은 난데없는 《벼락》이였다.…
발밑의 땅이 지진처럼 흔들려서야 렴진욱은 자기가 선광장에 이르렀다는것을 의식했다. 장거리벨트콘베아가 실어온 원광을 쿵당쿵당 바스는 2차턱파장의 소음도 비로소 귀에 들어왔다.
렴진욱으로서는 장거리벨트콘베아를 보는것이 제일 가슴아팠다. 자동차나 굴착기같은것은 그가 기사장시절에 달라붙어 품들여 꾸려놓은 공무기지에서 거의 마음먹은대로 부속품들을 깎고 재생시켜 돌릴수 있었으나 콘베아벨트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여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넝마처럼 헐어빠진 벨트짬으로 광석이 줄줄 새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며칠에 한번씩 사람들이 한줄로 쭉 늘어서서 떨어진 광석을 어레로 퍼담아올리는 역사질을 하여오고있었다. 아니, 이제 더는 그것을 용인할수 없다, 없다!
중쇄장과 세쇄장을 거쳐 마광장에 들어섰을 때에야 련락을 받았는지 이마가 훌렁 벗어진 50중반의 선광직장장이 헐금씨금 나타났다.
《안녕하시우, 지배인동지. 난 점심시간이길래 이렇게 나올줄은…》
렴진욱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와릉거리는 마광기의 진동음으로 대뜸 뽈이 제 량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것을 간파한것이였다. 직장장도 그것을 느꼈는지 당황하여 두리번거리다가 배전함곁에서 어물거리는 고수머리청년에게 버럭 소리질렀다.
《책임기사! 15분에 한알씩 뽈을 넣어주도록 왜 통제 못해? 자릴 뜨기가 무섭단 말이야!》
이미 렴진욱은 물레방아같은 분급기밑에 손을 넣고 광액을 만져보고 있었다. 갈데가 없었다. 뽈이 적으니 분쇄세도가 지표대로 보장 못되고있는것이였다. 세도를 1프로 올리면 실수률이 3~4프로 올라가므로 묵과할수 없는 무책임성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사정은 부선장도 같았다. 탕크속의 광액높이가 고르롭지 못한데다가 부선포말긁개도 잘 조절되지 않아 허공을 긁으며 돌아가는것이 여러대나 되였다. 렴진욱의 눈꼬리가 점점 길게 치째져올라가자 직장장은 급해맞아 중언부언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거 직장이 하두 크다나니 어디 일일이 돌아볼새가 있다구요. 종일 턱파다, 마광이다, 부선이다, 또 분리부선까지 휘돌다나면 무릎관절이 물러앉는 판이우다. 이젠 나두 저 마광기대치차처럼 다 마모된건가…》
렴진욱은 그의 말을 썩둑 잘라치웠다.
《대치차용착을 반대한다면서?》
《어이구, 누가 그따위… 용접봉이 안 와서 손을 못 댔을뿐…》
《실어왔소. 오후 첫시간에 3호마광기대치차이발을 때붙이겠소. 그리 알고 준비하시오.》
《그게… 꽤 되긴 될가요?》
《이제 보니 마모됐다는 동무의 머리부터 용착해치워야 할가보오.》
하는 투미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렴진욱은 그대로 힝 밖으로 나와버렸다.
마음이 언짢아졌다. 오전중에 돌아본 채굴장에서도 그는 건설갱장의 우는 소리를 들은터였다. 이젠 기력이 딸려 사람들을 휘여잡지 못하겠으니 은퇴시켜달라고 사정했던것이다. 그런 사람들모두에게 일일이 소리치고 얼리고 책임을 따지다가는 목이나 쉬고말것이다. 그렇게라도 뭔가 해결된다면 목아픈게 대수겠는가.
따가운 해빛이 지글거리는 선광직장마당을 성큼성큼 가로질러가며 렴진욱은 주먹을 부르쥐였다. 그들을 모두 갈아치우자!… 론의해볼 여지없는 너무도 명백한 결론이다. 일하자는 사람, 그것도 현재와 같은 침체에 의분을 느끼고 몸부림쳐 뛰쳐일어날 패기와 열정, 담대한 기질을 가진 새 일군들이 지금의 광산에 필요한것이다.
다음순간 그는 멈칫 서버렸다. 목구멍에 무언가 가시처럼 깔끔깔끔 걸리는것이 있었다. 선광직장장은 광산개발초기 한 돌격대생활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른, 광산에서 유일하게 자기를 이름으로 불러오던 오랜 친구였다.
《이보게 진욱이, 내게 제때제때에 스위치만 넣어주게. 그럼 내 마광기가 돼서 무어든 제꺽제꺽 갈아치울테니.》
이것은 오래전 렴진욱이 기사장으로 임명되였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가 해준 말이였었다. 비록 기민한데는 없어도 그는 정말로 농사군같은 완력으로 맡은 일을 꾸준히 해왔었다. 그만큼 기능도 높았다. 그러한 친구를 눈에 좀 거슬린다고 손쉽게 떼버릴수 있겠는가?
건달을 부렸다면 문제가 다르다. 따져보면 직장장의 우는 소리처럼 선광직장은 세개의 큰 공정이 모여 이루어졌기때문에 웬간히 패기있는 사람이라도 한손에 거머쥐고 일일이 드다루기가 헐치 않다. 차라리 그것을 여러 직장으로 갈라놓는다면? 그러면 생산지휘를 현장에 보다 접근시켜 치밀히 조직할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인가 인간적인 의리를 저버리지 않게 되였다는 다행스러움에 숨이 좀 나갔다. 그러면서도 렴진욱은 모든 일군들에게 똑같은 방식의 《의리》 운운의 처분을 내려서는 안된다는것도 똑똑히 깨닫고있었다. 그저 《고난의 행군》 이전의 생산계획이나 수행하면 만족했던 그런 광산을 부활시키자는것이 아니기때문이였다. 코앞에 도래한 새 세기에 부합되는 광산, 중요하게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시고 만족해하실 최상급의 현대화된 광산으로 전변시킬 과제가 제기되고있는것이였다. 그러니 결단이 필요했다. 전 지배인 김호성의 말처럼 《광산을 꽉 거머쥐고 모험도 주저함없이 내닫는 무서운 배짱군형의 실천가》로서의 결단이!
선광장을 내려오니 공무직장쪽에서 제재기소리가 요란했다. 한창 동기와감을 켜는중일것이다. 비오는 그밤 2호원동소로 가다가 지붕우에서 하던 소년의 말을 듣고 즉시 포치한 사업이였다. 각 직장별로 비새는 집을 장악하여 보고하게 한 다음 삭도탑보강용으로 차고있던 통나무를 눈을 질끈 감고 돌렸던것이다. 회의에 올라간 초급당비서 전주석이 내려오면 삭도는 내깔릴셈이냐고 펄쩍 뛸테지만 이건 시작일뿐이다. 동기와교체는 그의 머리속 구상의 예령일뿐 본격적인 사업은 전혀 다르게, 눈이 뒤집힐 규모로 본령을 울릴것이다. 좀전에 돌아보았던 청주네 집이 그 결심을 굳히도록 그를 떠밀었다. 남의 집 웃방에 창고같은 부엌을 덧달아놓고 수재형의 기술자가 내굴에 개키며 살고있으니 그런 생활이라면 이지러질만도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생활의 불편에 대한 호소는 전혀 없이 온 심혼을 생산에만 쏟고있는 아름다운 성정의 광부들을 위해서는 더욱 결정적인 대책을 취해야 한다.
마침 렴진욱은 합숙앞에서 승용차문짝을 닫고 내리는 박치명부국장을 만났다. 삭도사업소를 돌아보고 금시 도착한 모양이였다. 박치명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렴진욱을 살구알같은 퍼런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 농구나무그늘속으로 이끌어들였다. 아직 철이 멀었으나 나무두리에서는 약간 떫으면서도 새큼할사한 농구열매향기가 진하게 떠돌고있었다.
박치명도 그 향기를 감촉했는지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젖혔다.
《맛이 그닥 신통치 않다더니 냄샌 기막히구만. 이상하단 말이요. 내 연하에 자주 내려오면서도 직접 먹어보진 못했으니…》
《그럼 가을에 한광주리 올려보내지요.》
박치명은 손을 내저었다. 그다음 제꺽 본론으로 넘어갔다.
《생각보다 더 한심하더군. 동무가 페기를 주장할만 했소.》
그의 신발이며 바지가랭이의 먼지를 보니 직접 산발을 타면서 구체적으로 료해했다는게 알렸다.
《한데말이요.》 하고 그는 잠시 말귀를 고르듯 입술을 쭝긋 내밀고있다가 렴진욱의 팔을 건드렸다. 《그 장거리삭도에 어떤 막대한 투자가 들었는지 고려해봤나? 그걸 무용지물로 만들면… 그땐 법적추궁이 간단치 않겠는데, 응?》
렴진욱은 두눈을 찌긋하고 박치명을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안경알속에서 떠보는듯, 우려하는듯 재게 깜박거리는 저 눈… 혹시 유력한 지지자로 나서줘야 할 이 부국장이 그런 립장에서 후퇴하자는것은 아닌지?
렴진욱이 그 문제를 고려해보지 않았을리 없었다. 당시 광산조업에서 제일 난문제는 철도역이 수백여리나 떨어져있는 조건에서 정광수송에 너무 많은 품이 드는것이였다. 성에서는 깊은 고려끝에 3화수송방침에 따라 삭도를 놓는것이 제일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대담하게 투자하였다. 나라의 금속수요보장이 그만큼 중요했던것이다. 그리하여 북방의 인적없는 험산준령을 꿰질러 백수십여리 장거리삭도가 일떠서게 되였다.
그 덕에 광산은 오래동안 생산을 정상화해왔다. 하지만 20여년 가동하는 사이 쇠바줄이 낡아 자주 끊어지고 삭도바가지며 베아링들이 나가버렸으며 나무로 세운 삭도탑들도 썩기 시작했다. 그통에 수송도중의 숱한 정광이 산판에 그냥 휘뿌려지는 사고도 여러번이나 생겼었다. 나라가 《고난의 행군》에 들어서면서 빚어진 일이였다. 최근에는 전기사정까지 겹쳐 그나마도 거의 가동을 못하는 판이였다. 그것을 돌려보려고 광산은 자기의 재정을 몽땅 들이붓다싶이 하고있었는데 그 결과는 기본생산계통의 보수정비를 위한 최소한의 자금까지 바닥나는 사태를 빚어냈다.
아니다!… 하고 렴진욱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 가동자금이면 그사이 훨씬 가까이로 뻗어온 철도역까지 자동차수송을 조직하는것이 몇배, 몇십배로 실리가 있었다. 그가 중요하게 타산한 점이 또 하나 있었으니 십여개의 굴곡소며 원동소들에 붙어있는 전동기며 감속기, 배전반들과 변동압기, 쇠바줄, 베아링 등을 회수하면 광산의 기본생산계통을 결정적으로 보강할수 있다는것이였다. 실리를 보장하라!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근에 계속 강조하시는 경제원칙이고 그 원리가 아닌가!
《왜, 떨리나?》
마침내 박치명이 안경을 추스르며 껄껄 웃어제꼈다.
《물론 이 문젠 우리가 자의로 결심하고 단행할게 아니요. 그러나 난 동무네가 옳은 해결책을 내놓았다고 보오. 광산을 돌리지 못할바에야 삭도를 굳이 남겨두어 무슨 필요가 있겠소. 내 성에 가서 그렇게 반영하고… 강하게 주장하겠소.》
《그게 정말입니까?》
《어― 믿어지지 않나?》
《아니, 아닙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 진욱동무의 지배인사업을 밀어주지 못하면 내가 무슨 담당부국장이고 오랜 친구이겠나. 하하…》
렴진욱도 마음이 개운하여 따라웃었다. 불쑥 오래전 화령광산으로 졸업실습나왔었던 박치명이 하던 말이 상기되였다. 《굴진공이 선광공학에까지 눈독을 들인다? 지배인쯤 돼보자는거지?》… 따져보면 그의 착실한 방조가 자기를 오늘 진짜 지배인으로까지 성장하도록 하는데 밑거름처럼 작용한셈이 아닐가. 지금도 박치명은 예나 다름없이 형님구실을 착실히 해주고있다.
《아직 식사를 못하셨겠지요? 오늘 점심은 우리 집에 가서 하십시다.》
첫날 일이 속에 걸려 렴진욱이 잡아끌자 박치명은 건성 손을 내저었다.
《산판에서 대충 얻어먹었소.》
그다음 피뜩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지나치는 소리처럼 은근히 입을 열었다.
《내 어제 병원에 잠간 들려보았는데… 정옥이가 더 예뻐졌더군. 정말 맘에 들더라니까.》
렴진욱은 자기 가슴에서 무엇인가 툭 떨어지는듯 한감을 의식했다. 절로 낯이 찡그려졌다. 청주의 가시돋힌 독설… 결국 소문은 박치명의 병원출입이 단서로 되여 퍼졌을것이다.
《어째… 썩 내키지 않는게구만. 응?》
눈치를 엿보던 박치명의 부자연스럽게 굳어진 물음이였다. 렴진욱은 괴로운 한숨을 토했다. 박치명을 마주보기가 몹시 급했다. 그렇다고 속일수는 없었다.
《한 청년이… 채광기사입니다. 지배인이 제 딸을 광산에서 빼돌려 평양으로 시집보내면서도 자기보고는 일생 채굴장에서 버럭과 함께 딩굴라고 강요한다면서 절 규탄했습니다. 그게 전… 두렵습니다.》
《어― 벌써 그렇게 소문났나?》
박치명이 한탄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긴장하게 굳어져있던 그의 얼굴은 서서히 풀려갔다. 불시에 렴진욱의 어깨를 철썩 두드렸다.
《여보, 진욱이라는 결패있던 사내가 언제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는 쪼물짝한 인간이 됐나? 지배인이 된 오늘에 와서까지… 항차 결혼이라는거야 사랑을 쫓아가지 고장을 선택해가는건 아니잖나?》
《…》
《그게 다 부러워서 시샘하는 소릴세. 그 기사가 정옥일 몰래 짝사랑 했던지…》
그랬을런지도 모른다. 타고난 말쑥한 얼굴에 어머니를 닮아 눈이 억실억실한데다가 아버지처럼 키까지 쭉 빠진 딸을 숱한 총각들이 넘겨보는터였다. 하지만… 청주의 규탄은 그 성질이 전혀 달랐었다.
렴진욱이 딱하여 입을 못 떼자 박치명은 혀를 찼다.
《어― 참, 할수 없지.》
그다음 불쑥 말머리를 돌렸다.
《기사장대리를 김지택부기사장이 본다던데 맞소?》
《예.》
《그를 후임으로 제기할 생각이요?》
《아직은…》
《누구든 빨리 골라놓소. 지배인 할 일이 뭐 간단한줄 아오? 옥로인도 잘 도와주라고 당부하더군.… 난 오후에 평양으로 올라가겠소.》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렴진욱은 소리없는 한숨을 내뿜었다. 인간으로 못할짓을 한듯 한 께름한 구속감을 박치명이 헌헌히 벗겨준것이 못내 다행스럽고 고마왔으며 또 그것으로 하여 미안쩍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박치명은 무엇이 미타한지 여전히 발을 떼지 못하고 우물거리며 망설이더니 끝내 자신에게 화를 내듯 툭 내뱉았다.
《정옥이문제말일세, 이렇게 하세. 우린 삐치지 말구 당사자가 결심하도록. 어떤가?》
어딘가 단호한 그리고 자신만만한 음조까지 풍기는 말이였다. 결국 박치명은 단념한것이 아니였다. 그렇다면 혹시 딸이 벌써 동의를 준게 아닐가?… 미처 뭐라고 대꾸할 사이도 주지 않고 박치명이 손을 흔들었다.
《자, 잘있게. 난 빨리 떠나야겠네.》
박치명은 거절하는 소리라도 듣게 될가봐 합숙안으로 훌쩍 사라져버렸다. 렴진욱은 아프게 혀를 깨물었다. 어찌하여 박치명은 저리도 조급하게, 끈질기게 정옥이와의 혼사를 성사시키지 못해 애쓰는것인가?… 처음으로 렴진욱의 머리속에 떠오른 미심쩍은 의혹이였다. 단순한 의리심때문이라면 혼사말을 꺼내준것만으로도 그는 그것을 충분히 시위한셈이였다. 혹시 아들에게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평양처녀를 선택 못하는건 아닐가?
렴진욱은 애써 도리질해버렸다.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오는 그의 호의를 의심해서는 안될것이다. 그저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난감함을, 청주가 대표해나선 광부들앞에 무슨 사기군처럼 비추일 일을 더 괴로와해야 하는것이다.… 자기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아주 딱한 궁지에 빠졌다는 의식으로 하여 렴진욱은 점도록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