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6
그날 밤 청주 역시 잠을 잘수 없었다. 숱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그마한 몸매의 처녀한테서 경멸당한 오욕이 그의 뼈를 에이였다. 응당한 보상, 응당한 귀결이였는지도 몰랐다. 어찌하여 그런 허접쓰레기같은 말을 내뱉게 되였던가? 애초에 그 처녀에게 관심을 돌릴 마음은 왜 생겨났더란 말인가?…
기실 청주의 아버지는 철직되자 늦게나마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가족과 함께 고향인 랑림으로 내려왔었다. 그러나 돌발적인 뇌출혈이 그를 쓰러뜨렸다.
《너 연하광산에 가는게 좋겠다. 배운 값을 해야지.》
운명직전 언어장애가 온 아버지가 청주의 손을 잡고 한자 한자 힘겹게 쓴 손바닥글이였다. 그것은 자기를 대신하여 값있는 보답을 해달라는 절절한 당부이기도 했다. 청주가 대학에서 지질공학을 전문으로 배웠던것이다. 하여 청주는 그 뜻을 따랐다.
예상외로 광부들은 조금도 허물치 않고 그를 따뜻이 대해주었다. 오히려 전문가다운 그의 능력을 존중해주었으며 아버지를 대신하려는 뜻을 장하게 치부해주기까지 했다. 청주를 또 어리둥절케 한것은 지금껏 그의 상상속에 그려져있던, 돌을 드다루는 직업적특성으로 어쩔수없이 굳어졌으리라고 여긴 투박하고 거친 언행을 전혀 볼수 없는것이였다.
모두가 소박하고 진실했으며 의리가 깊었다.
청주가 후에 어머니를 모셔오자 광부들은 신접살림에 보태쓰라며 저마끔 생활비봉투를 통채로 내밀었는데 그것을 사양하려 들자 몹시 노하여 성을 내는것이였다.
《진정을 받을줄 모르는건 광부가 아닐세.》
알고보니 그것은 그들의 굳어져버린 관습의 하나였다. 누구의 생일집에라도 가면 의례히 생활비봉투를 척척 내밀고는 술 한고뿌 쭉 들이키고 《건강하게!》 하는 말과 함께 훌 일어나는것이였다. 아무튼 그들에게는 《자기의것》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것 같았다.
청주가 지질기사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수백수천도의 용암이 이글거리며 만들어낸 광맥처럼 가식과 위선, 리기라는 불순물을 깨끗이 불태워버린 순수하고 굳건한 성정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 판단이 청주를 안심시켰고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배운 값》을 해야겠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하여 그는 더더욱 심신을 불태워 창의고안을 했고 뼈를 아끼지 않고 발파소갱속에서 착암기를 휘둘렀다.
우연한 한 사건이 아니였다면 청주에게 거만한 도고성이나 지독한 입심같은것이 생기지도 않았을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깊어진 갱정때문에 광석채굴이 어려워지고 그 품위도 계속 하강선을 긋자 청주는 품들여 계산한 끝에 매우 대담한 채굴안을 내놓았었다. 연하광산의 채굴장은 선광장에서 5리쯤 떨어진 연두봉서쪽 허리와 압록강사이의 물매진 릉선중간에 위치하고있었는데 연두봉쪽은 파고들어갈수록 박토층이 두터웠다. 반대로 압록강쪽은 슬쩍 겉층만 제껴도 광체와 맞다들렸다. 문제는 그쪽이 장마철이면 물이 바다를 이루어 그 거대한 수압때문에 언제 터져버릴지 모른다는데 있었다.
하여 지금껏 일정한 두께의 방수벽을 남겨놓고 파먹어왔었다. 청주의 안은 바로 그 방수벽을 20여메터나 더 깎아먹자는것이였다. 박토를 선행시킬만 한 기대설비가 결정적으로 부족한데다가 그것들을 움직일 전기까지 긴장한 조건에서 그것은 현재의 상태로도 생산을 몇년간 확고히 담보할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술부기사장 리정우에게 슬쩍 비쳐보았더니 그는 몹시 반가와하며 자기도 그 궁리를 하던 참이라고, 함께 더 연구하여 채광설계를 완성하자고 선뜻 지지해주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소리를 얻어들었는지 한밤중에 김지택생산부기사장이 청주가 일하는 소갱속에까지 기여들어와 따졌다.
《말해보라구. 뭐 채굴장에 압록강물을 터뜨려넣을 궁리를 했다면서? 광산을 아주 망하게 만들 잡도린가, 엉?》
《망하게 만들다니요? 나야 오히려 광산을 살리자고…》
《듣기 싫어!》
단방에 김지택의 입에서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나왔다.
《광산이 생겨 지금껏 방수벽에 감히 손댈념을 못한게 뭐 임자만 못해서인줄 알아? 당장 포기하라구. 그렇지 않으면 제 애비본을 따르자는 수작으로 알겠어!》
년장자로서의 권위와 오랜 광부다운 경험 등으로 하여 지금껏 김지택을 존경해왔던 청주였다. 그러나 그의 마감말은 비수처럼 청주의 가슴을 찔렀다.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 심씨가 우들우들 떨며 애원했다.
《아이구, 너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느냐. 동네에 네가 방수벽을 터뜨려 채굴장을 수장시킬 흉심을 먹었다는 소리가 돌아간다. 제발 아버지일을 생각해서라두 나서지 말아다우. 응?》
청주는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통곡같은것이 끓어올랐다. 《흉심》, 《제 애비본을 따르자는 수작》… 그것이야말로 자기의 어떤 행위이든 아버지의 과오에 굴절되여 사람들에게 이지러진 모양으로 비쳐지기 쉽다는 무서운 증거가 아니겠는가! 너무도 때늦은 깨달음이였다. 애초에 아버지를 따라 평양을 떠나올 때 벌써 그것을 느꼈어야 했다. 그때 청주는 역홈에서 마지막순간까지 서성거리며 애인을 기다렸는데 그 처녀는 끝내 바래주러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그는 미련을 버릴수 없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 즉 렬차시간을 잘못 알았거나 긴급한 일이 제기되여 처녀가 몸을 못 뺐을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던 자기들이였던가!… 하여 청주는 광산에 와서까지도 몇차례의 편지를 띄웠다. 그런데 몇달전에야 겨우 회답을 받았었는데 그 내용은 너무도 어이없는것이였다.
《…용서하세요. 저도 처음엔 제 감정이 사랑인줄 알았어요. 사랑이란 그런것이려니 여긴 철부지다운 착각때문에 말예요. 그러나 한해를 헤여져 지내보니 우리 관계가 사랑은 전혀 아니였다는걸 깨달았어요. 오빠처럼, 스승처럼 따른것이였을뿐… 사랑은 아니였어요.…》
청주는 그때 너무 기가 막혀 쓴웃음도 욕설도 나오지 않았다. 오래전 그 처녀가 소녀였을적부터 귀여워해주고 상급생답게 학습방조도 자주 해주는 과정에 사랑도 함께 키울수 있었던 청주였다. 오히려 처녀쪽에서 더 《행복하고 황홀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청주를 보채기까지 했었다. 결국 처녀는 청주 아버지의 운명에서 자기 애인의 상서롭지 못한 전도를 감촉하고 재빨리 사랑에서의 도주를 단행해버렸던것이다.…
그때부터 청주는 우울해졌고 랭담한 인간으로 변해갔다. 방수벽채굴안연구를 포기한것은 물론이였다. 말투도 표독스러워졌다. 그 거만성으로 그는 자기를 이지러지게 보는 눈길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했다.
그렇다고 오늘 처음 만났던 옥수금이라는 처녀에게는 전혀 모욕줄 의도가 아니였다. 그저 유명한 옥로인의 손녀라니 호기심을 누를수 없어 말을 걸었을뿐이였다. 그런데 한탄스러운 자기 처지에 대한 잠재의식이 그만 불쑥 혀끝에 묻어나와버렸고 결국은 《버럭덩이같은 쓰레기》라는 치욕스러운 락인을 당하고말았다.
잠들었던 어머니 심씨가 느닷없이 발작적인 기침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랭이 심하여 자주 골골 앓는 어머니였다. 청주는 슬며시 부엌으로 내려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간밤 내린 비때문에 구들이 습했던것이다. 내굴이 꾸역꾸역 되나왔다. 어머니를 갑자기 모셔오다나니 당장 집이 없어 이전 선광실험실장이였던 류병근아바이네 웃방에 림시 들었었는데 창고처럼 쓰던 방이여서 그 모양이였다.
내굴에 개키여 청주는 주먹을 불끈 쥐였다. 제길, 광산이야 될대로 되라지. 래일이 보이지 않는 내 주제에 이제 뭘 더 바라겠는가. 마음고생, 병고생으로 괴로와하는 어머니의 여생이라도 잘 받들어드려야지. 새집을 달라고 할 처지도 못되거니와 광산형편도 줄수 없게 기울어졌은즉 제힘으로 집을 고쳐짓는수다!… 청주는 류병근이 회양골에서 터밭을 늘구다가 생생한 강대들을 한차분가량 얻어냈으니 필요하면 가져다쓰라던 말을 기억에 떠올렸다.
날이 밝기 바쁘게 꽁무니에 도끼와 바줄타래를 찬 청주는 회양골로 떠났다. 시오리가량 되는 길이였다.
광산마을을 끼고도는 연혜천을 건너 비좁은 협곡을 한참 추어올라가니 함지박같은 넓은 골안이 쭉 펼쳐졌다. 회양골이였다. 여기에 광산부업지가 있는데 주변들에는 광산로동자들에게 나누어준 터밭들도 있었다. 그뒤로 연줄연줄 치솟은 산봉우리들이 제법 엄엄했다. 연하사람들이 흔히 농암이라고 부르는 험준한 봉우리였는데 실은 그 이름이 룡암이였다. 압록강이 먼 옛날의 심부파렬대선상이여서인지 그 꼭대기에도 한때엔 화산분화구못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속에서 룡 한마리가 외롭게 살던 끝에 산나물캐러 올라온 포수집딸이 마음에 들어 옥황께 자기를 사람으로 변신시켜달라고 청하러 하늘로 날아올라서 룡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것이였다. 아무튼 사방 전설이 없는데가 없는 류별난 고장이였다.
따가운 불볕에 잔등이 땀으로 질벅해졌을 때에야 청주는 팔뚝같이 실한 이삭들을 쭉 업은 류병근네 강냉이밭에 이르렀다. 류병근은 밭머리에 세운 제법 아담한 초막속에 들어앉아 무슨 두툼한 책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있었다. 메돼지성화에 밤에도 집에 내려오지 못하는 그였다.
《체, 강냉이밭에서 호미나 긁는 신세에 책은 또 뭐예요?》
청주가 짐짓 씩둑대며 곁에 털썩 주저앉자 류병근은 쭝긋 나온 허연눈섭을 치켜올렸다.
《왔나?》
류병근이 온유하고 어지게 생긴 눈을 쪼프리며 허거프게 웃었다.
《뭐 산중에서 장참 새소리와만 벗할순 없는거구…》
한쪽으로 슬그머니 밀어놓는 겉표지를 훔쳐보니 놀랍게도 《부유선광》이라는 기술서적이였다. 청주의 눈이 커지는것을 띄여보자 류병근은 할수 없었는지 속을 털어놓았다.
《어찌겠나. 분김에 실장자릴 사직하고 뛰쳐나왔네만… 류소(류화수소)냄새가 그리워 잠 못 자겠구만.》
또 씩둑대보려고 했던 청주는 그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환갑도 지나 강대같이 꺼멓고 버쩍 여윈 늙은이, 그럼에도 떠나온 광산을 못 잊어 책속에서라도 그 세계를 하염없이 거닐어보고있다.… 왜서인지 청주의 눈에는 강냉이대들사이를 팔랑거리며 날아도는 한마리의 하얀 나비가 이상하게 아프게 안겨왔다. 자기의 짧은 삶을 애수에 차서 하소연하는건 아닌지.… 생각이 그래서인지 청주에게는 나비의 그 애수가 류병근의 여윈 가슴속에서도 아지랑이마냥 아물아물 솟아오르고있을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아래웃방에 함께 살면서 청주는 류병근에게서 그가 지금의 지배인이 기사장을 할 때 대판 싸우고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청주가 관찰해본데 의하면 류병근은 화학기사로서 부선공정의 시약배합에서는 아주 창조적이고 혁신적일만치 높은 기능을 소유하고있는 인재였다. 그런 인재를 가려 못 보고 개인적인 감정때문에 광산에서 내쫓았다니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다. 거기에 기사장으로 물망에 올라있다는 근시안 김지택과 같은 간부들이 그런 판이니 광산의 앞날도 빤히 내다보인다. 오죽했으면 류병근이 선광을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회양골막바지에 숨어들어 강냉이밭이나 뚜지는 일종의 도피행을 택했겠는가.
류병근이 툭툭 건드려서야 청주는 생각에서 헤여났다.
《여보게, 지배인 딸이 평양에 시집간다는 소리가 있던데 사실인가?》
《?…》
《뭐 성 부국장과 사둔을 맺는대?》
《체, 누가 그래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가. 어쨌거나 정옥이야 인물 잘나, 맘씨 고와 평양에서 품놓구 데려갈만 하지.》
《가만, 가만!…》
청주는 눈을 쪼프렸다. 비로소 무슨 부국장인가 하는 사람이 내려왔다던 말이 기억났다. 그러니 뜬소리는 아닐것이다. 젠장!… 울분같은것이 절로 가슴속에서 부그그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광산의 전도가 암담한 판에 잘들은 놀아대는군.
기실 청주의 눈으로 볼 때 광산은 그 전망이 그렇게 절망적인건 아니였다. 오히려 옳바른 주인이 있어 키를 잘 잡아주면 지금같은 어려움은 쉽게 극복하고 멋지게 도약할수도 있었다. 그 결정적고리가 과학기술에 대한 중시였으며 인재를 아끼고 내세울줄 아는 현명한 시각이였다. 채굴장의 경우가 그랬다. 왜 전기사정이요, 기대가 낡았소 하고 우는 소리만 하겠는가. 자기의 방수벽채굴안을 받아들이면 당장 허리를 쭉 펴겠는데. 그렇게 하여 슬금슬금 자금을 확보하면 설비현대화같은것도 히쭉 웃고 해제낄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간부들하고는 어림도 없어!
《술 없어요?》
청주는 씹어뱉듯 하며 손을 쑥 내밀었다.
《이 사람, 나무는 안 끌어내리고 술은 무슨…》
《젠장, 술값 안 물어줄가봐 그래요?》
《원, 허허…》
동거살이의 연줄로 허물없어진 사이였지만 류병근은 청주의 게정부리는듯 한 말투가 이상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초막구석에서 큼직한 비닐단물병을 끄집어냈다.
《적당히 하라구, 적당히! 원래 해가 내려다볼 때 마시는 술은 다 사고감이라네.》
이미 술은 청주의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흘러들어 배속을 뜨끔하게 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뇌리를 허비는 그 무엇인가를 아니, 만사자체를 잊고싶은 목적은 이 술을 다 마시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다. 청주는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다시 병을 쳐들어올렸다.
《그러지 말게. 이 사람, 그러지 말게.》 안주로 마른 낙지를 찢어주던 류병근이 느닷없이 침통하게 말렸다. 《내 꼴을 봤지? 그렇게 인생을 끝내겠나? 젊음 그자체는 큰 담보지만 꽉 거머쥐지 않으면 다 놓치는거라네. 그러지 말게. 자넨 벌써 놓치고있어. 듣자니 무슨 연구인지 뭔지도 다 팽가쳤다면서?》
《필요없어요. 나야 뭐 이젠 더 놓칠것도 없는 놈인데… 저 나비 한가지지요.》
청주는 웬 나비소리인가 하여 눈이 둥실해진 류병근에게 더이상 설명해주지 않았다. 설명한댔자 슬픔만 덧날것이다.…
나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산을 내린것은 한낮이였다. 왜서인지 쌍안경을 거꾸로 들여다보는것처럼 시야가 좁아져 방향을 가늠할수 없었다. 술을 지나치게 과음했을 때의 생리적현상이였다. 그리하여 청주는 자기 집을 몇번이나 지나치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골목길을 헤매다가 끝내는 웬 녀인에게 《우리 집이 어디우?》하는 바보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 녀인을 몹시 웃기기는 했으나 그 덕에 그래도 곧 집마당에 들어설수 있었다. 하지만 곧 어떤 대들보같은것과 딱 부딪쳤다.
《제 갱을 줴버리고 없다 했더니 어디 가서 술추렴했나?》
그 《대들보》가 엄한 사람의 목소리를 냈다. 비로소 청주는 자기앞에 버티고서있는것이 렴지배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깨지 않은 술기운을 타고 욱 반발심이 뻗쳐올랐다. 청주는 거들거리는 목을 꼿꼿이 세우려고 애쓰며 짐짓 랭랭하게, 거만하게 내뱉았다.
《그게 어쨌습니까? 남들은 광산도 버리고 달아나는 판에… 뭐 지배인동지도 딸을 광산에서 빼돌려 평양에 시집보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나더러는 채굴장에 처박혀 일생 버럭과 함께 딩굴라는거군요?》
취중에도 청주는 자기가 아주 조리있게, 분명하게 말하였으며 발음도 똑똑했다는것을 알았다. 통쾌감이 북받쳤다. 지배인이라는 엄엄한 직위의 사람이지만 눈치를 보거나 설설 기지도 않았고 반대로 맞대거리하여 보기 좋게 면박주었던것이다. 그 말이야말로 자기가 이렇게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울분에 대한 명백한 설명이였다.
돌미륵처럼 굳어져버린 지배인을 남겨놓고 청주는 뚜걱뚜걱 마당을 가로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떡 막아섰다. 이번에는 어머니였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앞세우고 어머니가 청주에게 매달렸다.
《너 무슨 말본새냐? 이 일을 어찌할고… 지배인어른이 방금 집을 돌아보고 가슴아파하셨다. 좀전 점심참엔 옥준보로인님이 손녀를 데리고 와서 농구나무를 심어주고… 아이구!》
청주는 뗑하여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술이 말짱 깨는것 같았다. 자기를 쓰레기라고 경멸했던 수금이가 왜? 존경할만 한 옥준보로인은 왜?… 무엇보다 렴지배인이 자기 집을 돌아보고 가슴아파했었다는 말마디가 그의 생각을 온통 혼란속에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