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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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애는 이밤의 공모자였으므로 벌어지는 사태를 낱낱이 지켜보았고 청주가 떨어지는것도 남먼저 발견하고 소스라쳐 달려갔다. 그런데 자기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었다. 소갱아구리에서 쏟아지는 물은 아직도 폭포같았는데 그속에서 어깨가 떡 버그러진 웬 사나이가 기척없이 늘어진 청주를 안고나왔던것이다. 사나이의 울부짖음이 물사태소리를 짓누르며 터져나왔다.
《청주야, 눈을 떠라, 엉?… 눈을 떠라!》
김지택부기사장이였다. 방수벽을 그리도 걱정하더니 그 역시 심상치 않은 기미를 감촉하고 몰래 지켜보고있은게 틀림없었다. 김지택은 춘애가 부축하자 덜컥 무릎을 꺾으며 황소영각처럼 부르짖었다.
《이 사람, 청주! 날… 날 조겨달라구. 골통을 깨버려두 좋아! 다 내잘못이였어, 내 잘못!…》
사람들이 달려왔다. 춘애가 보건대 청주는 팔다리가 골절된데다가 머리에 심한 타박까지 입은듯 전혀 의식이 없었다. 춘애는 겁이 더럭 나 막 울고싶었다. 저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해? 수금언니랑 어떻게 해?…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빨리 병원으로!》
《덤비지 말아, 구급차를 불렀어.》
《지배인동지도 어깨뼈가 탈구되였다누만!》
《젠장, 쓸개빠진 배오철이 그 자식만 도망치지 않았어도…》
《그녀석 어디 숨었어?》
춘애는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듯 화들짝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린가. 정말 배오철이가?!‥ 그는 눈을 번뜩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보일리 만무였다. 악이 북받쳐올랐다. 겁쟁이! 제 입으로 광산을 위해 한몸 바칠 각오가 어쨌느니 하고 줴친것이 불과 몇시간전인데 그 침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선참 꽁무니를 빼? 그따위한테 다 반할번 하다니.
구급차가 들이닥친것은 그때였다. 지배인과 청주를 차에 실었을 때 김지택이 벽력같이 소리질렀다.
《뭣들 해? 빨리 작업에 착수해야 할게 아닌가! 일을 다그치라고 이사람들이 한몸 내댄거란 말이야. 방수벽굴진을 시작하오!》
그다음 그는 춘애를 떠박질렀다.
《넌 교대가 끝났으니 병원에 따라가!》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할 심산인 춘애였다. 그로서는 배오철을 대신하여 이들에게 뼈든 피든 바치지 않는다면 죄악이 될것처럼 여겨졌다. 자기야말로 이들의 《공모자》로서 마지막까지 생사를 같이 해야 했다. 이제와서는 자기가 처음부터 지지해주지 못한것이 지금의 불상사를 가져온듯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언제 소문이 돌았는지 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마당에는 기사장이며 당비서, 보안원 등이 다 모여있었는데 그속에는 별스레 얼굴이 파랗게 질려보이는 박치명부국장까지 끼여있었다.
《무슨 일이든 생길줄 알았어, 무슨 일이든!》
지배인과 청주를 구급실에 날라들였을 때 박치명이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순간 리정우기사장이 몸을 홱 돌렸다.
《이들을 모욕하는겁니까?》 하고 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방수벽이 안전하다는걸 이들은 제 한몸을 내대고 증명했단 말입니다. 탐사갱에 찼던 물은 다 빠졌습니다. 부국장동진 이제 뭘 더 바랍니까?》
《여보, 기사장…》
《기사장이 어쨌다는겁니까? 가서 제 볼장이나 보시오, 우리 일에 삐치지 말고!》
춘애의 가슴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서리찬 부르짖음이였다. 무척 얌전하고 온순하게만 보이던 기사장이 그처럼 사납게 상급을 다몰아쳐 대는것이 춘애에게는 몹시 놀랍고 또 속시원하기도 했다. 바로 저 부국장이 료해다 뭐다 하면서 사람들을 들볶고 허비지만 않았어도 이번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게 아닌가.
박치명은 약이 올라 입술을 바르르 떨었으나 정작 말은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였다. 얼굴만 더 희푸르게 질려버렸다.
그때 어디선가 옥수금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웃옷단추를 절반밖에 못 채우고 머리칼마저 헝클어진것으로 미루어 잠자리에서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온 길인듯 했다. 그가 숨차게 부르짖었다.
《그분들이 어디 있어요? 어디예요, 어디?…》
사람들이 슬그머니 길을 틔워주었다. 구급처치중이여서 출입을 단속해야 한다는것을 모두 알고있었지만 청주와의 숨은 관계 또한 그들에게는 비밀이 아닌 모양이였다.
복도는 불이 밝았으나 수금은 눈먼것처럼 벽체에 부딪치며 휘청거리더니 마침내 구급실문을 활짝 열고 그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동문 뭐요?》
구급의사의 엄한 호령, 그러나 수금이 벌써 청주의 가슴우에 몸을 던진듯 침대가 삐걱거렸다.
동시에 오열하듯 하는 웨침이 터졌다.
《정신차려요! 제가 왔어요. 수금이가 왔어요! 전 동무를 사랑해요!… 사랑해요! 제 말을 들으세요? 사랑해요!…》
춘애는 눈물이 나왔다. 사랑한다는 말은 처녀가 먼저 하는 말이 아니라고 알고있는 그였다. 그럼에도 수금언니는 그것을 먼저 말했고 그것도 비밀스레 속삭인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고 선포하듯 소리높이 웨치고 있는것이였다. 사랑의 힘으로 청주를 일떠세우려고, 그의 넋에 생의 환희를 불꽃처럼 지펴주려고.
지배인의 갈린 목소리가 웅글게 뒤따랐다.
《됐다, 수금아. 청주는 죽지 않아, 죽을수 없어. 그는 내게… 너희들 결혼식을 축복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니? 그렇게 부탁했다. 또 봐라. 청준 이걸 몸에 품고 한몸 내댔다.》
《아!…》
수금의 목멘 속삭임, 의사의 목소리도 부드럽게 뒤따랐다.
《자, 나가 기다리라구. 응?》
이윽고 수금이 눈물젖은 얼굴로 초연히 나왔다. 춘애는 그가 앞가슴에 무엇인가를 꼭 감싸쥐고있는것을 보았다. 순간 눈앞이 탁 흐려졌다. 그것은 붉은 뚜껑을 한 당규약수첩이였다. 보다 더 떳떳하고 훌륭할 자기의 래일을 확신한 저 징표, 그래서 그리도 용감할수 있었으리라.
《수금언니!》
춘애는 그앞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수금은 아무런 감각도 없는것 같았다. 의식도 혼몽한듯… 수금은 춘애를 알아보지 못하고 머리를 힘껏 흔들었다.
《아니야, 난 아직 자격이 없어. 머저리였어. 그인 이걸 품고 살았는데 난… 그저 숨박곡질에만 취해있었어… 멀었어!》
수금은 춘애를 뿌리치고 취한듯 비칠거리며 문밖으로 사라져버렸다.
《?…》
춘애는 멍하니 굳어져있다가 불시에 몸을 떨었다. 수금이 무엇을 말했으며 무엇때문에 갑자기 애인곁을 떠났는지, 이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리해한것이였다. 그렇다면 나는?
춘애도 밖으로 뛰여나왔다. 김지택부기사장이 옳게 말했다. 일을 다그치라고 그들은 한몸 내댄것이였다. 보다 훌륭할 래일을 오늘에 더 많이, 더 힘껏 당겨오려고!
병원정문을 막 벗어나는 순간 누군가의 머뭇거리는 머리와 탁 부딪쳤다.
《에쿠!》
그 머리가 쑥 움츠러들며 기겁한 비명이 새여나왔다. 푸릿한 새벽빛으로 춘애는 그가 배오철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배오철도 그를 알아보았는지 두릿거리던 눈망울을 내리깔며 멋적게 웅얼거렸다.
《난 또… 그들이… 좀 어때? 정신없이 달려왔구만.》
《정신없이 도망칠 땐 언제고?》 하는 매서운 말이 혀끝까지 묻어올라왔으나 춘애는 갑자기 역스러움이 치밀어 홱 배오철을 지나쳐버렸다.
《왜 그래, 춘애? 나 배오철이야!》
배오철이 제법 놀랍다는듯 소리쳤다. 그러나 춘애는 돌아보지도 않고 씽씽 걷기만 했다. 이제는 배오철이란 인간전모를 다 알수 있게 되였다. 사랑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팔아 대학을 사려고 한 위선자, 두드러지는 일감만 골라하면서 자기 몸값을 높여보려던 철저한 리기주의자, 리기주의란 때로 그 리기를 추구하기 위해 무섭게 적극적일수도 있지만 결코 헌신에까지는 이를수 없다. 자기 몸을 바쳐버리고는 자기를 위한 그 리기를 챙길수 없으니까.
등뒤에서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가까와왔다. 배오철이였다.
《춘애, 너 혹시 사람들이 오해하고 하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귀가 커선 안돼.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정말이야!》
《…》
《너도 잘 알잖아. 모험이라는걸 알았지만… 그래서 희생까지도 예견했지만 난 스스로 나섰어. 그건 너도 알잖아?》
춘애가 여전히 들으려 하지 않고 걸음만 재촉하자 배오철은 그의 팔소매에 매달리며 징징 우는 소리로 넘어갔다.
《정말이야, 춘애. 사람들에게 똑바로 알려줘, 응? 난 그때 지레대를 가지러 달려갔던거야. 그게… 그게 한걸음 늦었던거야.》
《저리 비켜!》
그만 협오감을 참을수 없어 춘애는 배오철을 힘껏 뿌리쳤다. 그것이 너무 불의적이고 또 굴착기를 다루며 억세여진 팔힘이여서 배오철은 곤두박질하여 길섶에 구겨박혔다. 그쪽에 대고 춘애는 침을 탁 뱉았다.
《광부답지 않은 그 변명… 그게 더 비겁한거야!》
춘애는 가슴이 후련해졌다. 이제야말로 진짜 처녀의 눈으로 세상을, 사람들을, 자기 자신을 해부할 자신이 생긴것이였다. 불과 몇분전까지만 해도 처녀의 몸으로 왜 굳이 광부― 굴착기운전공이 되였는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줄수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김청주책임기사의 품속에서 나온 당규약수첩이 다 깨달을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다, 당원들처럼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 티없이 살고저, 두분의 위대한 어버이들의 거룩한 발자취가 어린 이 땅을 더 아름답고 굳건히 가꾸어나가고저 자기는 굴착기운전공이 된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대국건설구상을 바로 이 손으로 이 땅우에 남먼저 꽃피우고저!… 이제는 배오철의 《뭘 바라고?》 하던 물음에 주저없이 대답할수 있었다. 이미 그 대답은 준셈이였다.
그길로 채굴장에 달려간 춘애는 발파소갱안에서 착암을 하고있는 주경철의 옷자락을 잡았다.
《경철오빠, 만약에 말이예요.》 고함치듯 웨치던 그는 아예 착암기의 바람변을 탁 꺼버렸다. 《내 말을 꼭 들어줘야 해요, 알겠어요?》
《이거 무슨 장난질이야?》
주경철은 성이 나서 도끼날같은 코날을 쭉 곤두세웠다. 아이구, 베여먹을것 같네!… 춘애는 깔깔 웃고싶었지만 이제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자는 내용 역시 매우 심각한것이였다.
《만약에 말이예요. 절… 만약 당에 받아준다면 입당보증 서주실래요, 경철오빠?》
주경철은 자못 뜻밖인듯 눈을 뚜무럭거렸다.
《이제… 당장?…》
웃지 않고는 못 배길 반문이고 표정이였다. 그러나 춘애는 웃지 않았다. 웃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자기가 하는 말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었다, 처녀로서의 자존심까지도 걸고.
《언젠가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입당보증인은 부모가 사망한 다음에도 부모가 돼주는 사람이라고요. 전… 경철오빠를 믿어요!》
경철은 이윽히 춘애를 건너다보더니 축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일을 더 잘하라구!》
춘애는 눈굽이 찡 저려올랐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