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6
《무슨 일을 친다.》는 청주의 결심이란 따져보면 그렇게 요란스러운것도 아니였다. 그저 물구멍을 자기 손으로 폭파해치우자는것이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방수벽이 안전하다는것을 박치명부국장에게 증명해보이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자기를 사람답게 키워 내세워준 렴진욱지배인이며 광산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보답하는것으로도 될것이다.
물구멍이 옛 탐사갱이라는것을 청주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눈치를 보니 박치명부국장도 압록강이 맞구멍났다고 여기는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물구멍이 옛 탐사갱이라는게 확인되면 대발파가 진행되여 방수벽이 그만큼 얇아질수 있다는 점을 그가 무엇보다 두려워한다는데 있었다. 박치명은 현재상태의 방수벽두께도 아주 위태롭고 불안정하다고 확고히 믿고있었다. 그렇기때문에 방수벽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렴진욱지배인을 단단히 처벌함으로써 자기 사업의 불안요소를 영영 제거해치우려 하는것이였다. 그 끈질긴 기술적무지가 어디서 생긴것인지… 이제 정신차려보라지!
수금이와 헤여져 채굴장으로 돌아오는 청주의 마음속에서는 만약의 경우 돌이킬수 없는 재난이 빚어질수도 있다는 긴장감은커녕 흥겨운 메아리만 공명되여 울리였다.
《믿어요! 믿지 않구요. 믿어요!》… 자그마한 키에 몸매도 자그마한 소녀같은 처녀 옥수금의 그 열렬한 속삭임. 그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는 있을것 같지 않았다. 또 늘 고개를 갸우뚱한채 살금살금 웃는 수금이처럼 아름다운 처녀도 세상에 없는것 같았다. 농구나무처럼 이 연하땅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해준 고맙고 귀중한 처녀가 아닌가. 바로 그 처녀가 자기를 사랑한다는것을 오늘 최종적으로 확인하게 되였으니 이 얼마나 벅찬 행운인가.
《수금이, 약속해. 내 꼭 좋은 남편이 될테야!…》
청주는 와릉거리며 자기옆을 지나쳐가는 광석운반차의 발동소리에 호흡을 맞추며 속삭여보았다. 수금에게 처음으로 하는 약속이였다. 무엇인가 약속할수 있다는건 좋은 래일을 믿는 사람에게만 차례지는 행복이 아닐가!!
갱정에 내려서니 굴진작업을 중지당한 박명준소대가 대파를 위한 착암에 달라붙어있었다. 청주의 눈에 마침 잔뜩 오만상을 해가지고 착암기와 씨름질하는 배오철이 띄였다. 그래도 굴진에서는 제노라던 배오철이였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손에서 착암기가 망아지처럼 갈개는것이 우스웠다. 여겨보니 착암구멍위치를 아무렇게나 잡다나니 정대가 자꾸 미끄러지는것이였다. 마지못해 일한다는것이 알렸다. 주경철갱장의 말처럼 춘애 어머니의 조동에 실망하여 이 며칠어간에 아주 풀이 죽어버린 그이기도 했다. 그 생각의 단순성에 또 웃음이 나갔다.
《내가 좀 해보지.》
청주가 가볍게 떠밀자 배오철은 퉤 침을 뱉으며 투덜거렸다.
《이따위도 착암작업이라구, 쳇!》
불쑥 배오철을 자기의 조력자로 써먹으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구멍폭파는 누구도 모르게 해치워야 할 비밀작업일뿐아니라 일종의 모험이였다. 배오철이야말로 두드러지는 일감을 찾지 못해 몸살을 앓는 친구이니 솔깃해하지 않을가?
예측대로 배오철은 청주의 귀띔을 듣자마자 두눈을 흥분으로 번쩍거렸다.
《그러니까…》하고 그가 입술을 핥으며 탐욕스레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그걸 해치운다 그 말이지요? 한번 광산을 들었다놓는다, 그렇지요?》
《꼭 그런건 아니고 빨리 생산을 내밀어야 할게 아닌가.》
《좋아요! 남들은 미친짓이라고 펄쩍 뛰겠지만 난 하겠어요. 날 고르기를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배오철은 사방을 두릿거리더니 청주의 귀에 대고 아주 신중하게 제의했다.
《공모자가 하나 더 있어야겠어요. 저―기 춘애!》
그는 갱정바닥에서 광석밥을 퍼주고있는 6호굴착기쪽을 턱짓해보였다. 춘애는 중번교대여서 아직 굴착기에 없었다. 청주가 영문을 몰라 돌아보자 배오철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가지고도 거사를 하겠다고. 아, 물구멍을 터뜨리면 저 굴착기가 꼴깍할게 아니요. 미리 안전한 곳에 옮겨야지. 그걸 누가 하겠소? 춘애라면 의협심도 있으니 들어줄거란 말이요.》
청주는 웃음집이 흔들리는것을 겨우 참았다. 또다시 춘애 어머니가 연구실 실장으로 옮겨앉자 풀이 죽었다던 주경철의 말이 상기된것이였다. 그쯤 됐으면 춘애에게서 아주 물러서버렸음직한데 그래도 무슨 미련이 있는지 열심히 그의 편역을 들고있는것이였다. 청주자신 또한 그러한 배오철을 믿어야 했다.
어쨌든 배오철의 말은 옳았다. 정말 그를 고르기를 잘한셈이였다. 중번교대가 끝나는 자정무렵에 폭파하기로 계획한만큼 그 시각에 굴착기를 운전하는 춘애를 인입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작 춘애가 나타났을 때 당자는 그것을 딱 거절해버렸다. 지배인이나 기사장과 합의보지 않고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것이였다.
《무슨 무질서를 조성하자는거예요? 그게 아이들 놀음이예요? 당장 경철오빠한테 대줄테야!》
춘애는 정말 갱장을 찾아갈 작정인지 뿌르르 돌아섰다.
《야!…》
급해맞은것은 배오철이였다. 그는 춘애를 붙잡으려고 뛰여가다가 팔뚝같은 굴착기전기선에 걸려 공중걸이를 했다. 무릎과 팔굽을 호되게 짓쪼인 그의 입에서 《아이쿠!―》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청주가 달려가 부축하고 춘애도 황황히 되돌아섰다.
그야말로 무릎깬 화에 동이깬 화가 겹친격이 된 배오철은 약이 올라 펄펄 뛰였다.
《가라 가, 가서 어서 고발쳐! 지배인동지랑 잡지 못해 지금 무슨짓들이 벌어지는지 그래 네가 몰라? 후과가 무섭다는거겠지? 광산을 위해 한몸바칠 각오는 혼자 돼있는것처럼 까불거리더니… 겁나면 물러가란 말이야!》
《질서앞에선 겁내야 하는거야!》
춘애도 지지 않고 냅다 쏘아붙였다.
《헹! 지배인을 잡는게 질서야?》
이번에는 춘애가 말문이 막혔는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러더니 청주앞으로 다가왔다.
《그게 사실이예요?》
《?…》
《료해조담화를 받았다던데… 그들이 지배인을 걸고든게 사실인가말예요?》
청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번 다시 입에 올리기 싫은 말이였고 여론화시킬수도 없었다. 춘애는 입을 꾹 다물고 외면하는 청주에게 입을 비쭉해보였다.
《흥, 그러면서도 믿는다고…》
하지만 더이상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고 물이 터진 소갱입구와 굴착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굴착기를 저 둔덕쪽으로 한 4~5메터 끌어올리면 되겠지요?》
그 수자는 춘애 역시 물이 터질 경우를 가상하여 이미전부터 타산해보았다는것을 알수 있게 했다.
《춘애, 고마와.》
청주는 춘애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대신 배오철은 팔굽을 어루쓸며 심사비뚤어진 소리를 내질렀다.
《쳇, 이젠 질서가 무섭잖은게지, 변덕두.》
느닷없이 춘애가 호호 웃었다.
《배동무의 정의감에 반했는걸 어떡해?》
청주는 소리없이 웃었다. 불쑥 녀성이란 나이를 초월하여, 즉 늙었다거나 어리다거나를 따져볼 사이없이 끌려들게 될 때 진짜 녀성다운 녀성이라고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든때문이였다.
배오철의 아픔은 《정의감》소리에 씻은듯 사라진것 같았다. 당장 얼굴이 환해진 그는 잘 찡그려지지 않는 얼굴을 아주 진중한 표정으로 만들려고 애쓰며 청주에게 말했다.
《이거 중요한 내용이 또 하나 빠졌어요.》
《뭔데?》
《특식!… 중요한 작전인데 우선 배를 기름지게 무장시켜야잖아요. 그렇지, 춘애?》
《아유― 어리광대!》
춘애가 또 깔깔대고 청주도 웃음을 못 감추었으나 배오철은 어느 사이 껑충껑충 휴계실로 사라졌다. 전화로 누나들에게 부탁할 심산인 모양이였다.…
드디여 중번교대가 끝나고 3번교대가 작업진입전에 인계와 점검을 위해 잠시 휴식할 때 춘애의 굴착기가 둔덕쪽으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저 채굴위치를 약간 옮기는것처럼 슬그머니 해치우라고 귀띔했었는데 춘애는 불을 환히 켜고 보조공 몇사람까지 붙여 전기선 옮기는 작업을 시키면서 보란듯이 와릉거리고있었다. 그 모양을 김지택부기사장이나 갱장이 본다면?
《아이쿠, 이거 들짱나는게 아니요?》
배오철도 그것을 느꼈는지 안절부절 부르짖었다.
《빨리 앞으롯!》
청주는 마음이 급하여 냅다 소갱쪽으로 달려갔다. 이젠 누가 보건말건 조심할 계제도 아니였다. 그뒤를 배오철이 헐썩거리며 따랐다.
《안되겠소. 동문 여길 지켜야겠소. 5분… 아니, 3분만 견지하오!》
소갱입구앞에 배오철을 보초병으로 떨군 청주는 물이 질벅한 소갱속으로 숨차게 기여들어갔다. 누가 방해하기 전에 재빨리 폭약을 장진하고 불을 달아야 했다. 심장이 고르지 않게 뛰였다. 비로소 그는 이밤의 도적작업이 아주 모험적이라는 의식에 뒤가 켕기였다. 압록강이 터질리는 없다. 그러나 갱정에 물이 고이면 굴착기 한대의 작업이 멎고 광석수송도 그만큼 적어질것이다. 이 혼란을 수습하는 사이에 생산이 떨어질것도 자명했다. 차라리 갱장에게만은 사실대로 말하고 미리 대책을 세우도록 했을것을… 하지만 이제는 엎지른 물이였다.
철벅거리며 물이 터진 장약실로 들어서던 청주는 갑자기 흠칠 굳어졌다. 안전등이 환하게 켜져있는 장약실안에 렴진욱지배인이 떡 틀고앉아 담배에 불을 달고있지 않는가. 지배인의 머리우에는 물구멍에서 드리워진 도화선들이 흔들거리고있었다. 더 설명할나위없이 모든것이 명백했다. 지배인 역시 물구멍을 폭파하러 나온것이였다.
둘의 시선이 딱 맞부딪쳤다. 더욱 놀라운것은 지배인이 마치 자기를 기다리고있은듯 빙그레 웃고있는것이였다.
《이 장난꾸러기자유주의자들.》하고 렴진욱지배인이 쉭쉭거리며 가까스로 말을 짜냈다.
《용서못할 음모를 꾸며? 이번엔 광산에서 아주 쫓고말테야!》
청주는 비로소 짚이여지는데가 있었다.
《춘애가 고자질했군요?! 목이 아프실텐데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전 이젠 뿌리를 든든히 박아서 뽑아던지기 힘들겁니다.》
렴진욱이 청주의 어깨를 철썩 갈겼다.
《혹시… 만약의 경우 목숨이 위태로울수도 있다는걸 알겠지?》
《뭐 지배인동진 그런 각오를 안했습니까?》
《살 권리야 젊은이들이 더 많지.》
청주는 반박하고싶었다. 살 권리로 말하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차별이 있을수 없다고, 오히려 늙은 사람들이야말로 그 권리를 최대로 누려야 한다고, 왜냐면 짧은 생을 가뜩이나 줄일수 있는 모험은 그 《짧음》을 단축해버릴수 있기에!… 그러나 지배인이 힘겹게 말하는데 그 괴로움을 더해줄것 같아 그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는데 그만 왕청같은 고백을 하고말았다.
《제가 장가를 가면… 그때 찾아와주겠습니까?》
《허!…》
지배인의 눈귀가 쳐들리는것을 보자 청주는 할수없이 다 털어놓지 않을수 없었다.
《옳습니다, 수금입니다. 정말… 힘들게 쟁취했습니다. 그 권리를 지배인동지가 주셨지요. 그래서 결혼식은 소박하게 할 생각이지만 지배인동지만은 꼭 참석해주기를 부탁하는겁니다.》
말해놓고나니 청주는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밤 왜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것처럼 여겨지는지 이상했다. 수금이와의 첫 포옹이 가져온 크나큰 여운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아서?
지배인의 두툼한 손이 청주의 손을 끌어당겼다.
《참가하겠소. 꼭!》 그다음 지배인이 속삭임처럼 물었다.
《자, 시작해야지? 춘애가 굴착기를 다 옮겼을가?》
《예!》
시계를 들여다본 지배인은 청주에게 도화선 하나를 가리켰다. 함께 불을 달자는, 청주를 신뢰하는 지시였다.
둘은 재빨리 도화선에 불을 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보초를 서던 배오철은 난데없이 지배인이 나오자 눈이 접시만 해졌다.
《난… 난 그저 구경삼아… 정말입니다!》
《장해! 딴 정황은 없나?》
《없습니다. 누가 감히 내앞에서…》
제때에 자신을 수습한 배오철이 두눈을 위엄있게 굴리며 장담했다. 지배인이 이밤의 모험에 자진하여 뛰여든 자기를 보아준것이 무등 기쁘고 자신 또한 대견한듯 했다.
발파소리는 요란하지 않았다. 그러나 충격파에 뒤이어 쏟아지기 시작한 물줄기는 사태와 같았다. 굴아구리를 꽉 메우며 시커먼 감탕물이 폭포같이 뿜어나오며 레루장을 뒤번져놓고 버럭돌들을 휘뿌렸다.
그때였다. 발파의 충격에 고임돌이 빠졌는지 갱입구옆에 서있던 육중한 압축기가 흠칠하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리굴기 시작했다. 갱에서 쏟아지는 물이 압축기를 덮쳤다. 그러자 압축기는 기우뚱거리며 채광계단끝으로 급속히 기울어졌다. 그밑은 15메터나 되는 낭떠러지였다. 청주는 숨이 컥 막혔다. 귀한 설비인 압축기가 곤두박히면 끝장이였다.
《오철이, 뭘해? 지레대!》
휙 몸을 날리며 그가 소리쳤다. 그러다가 거센 힘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에 얻어맞고 휘청거렸다.
그는 배오철이 《어!…》하는 기괴한 비명을 터뜨리며 뒤걸음질치는것을 보았다. 배오철이 누구보다 압축기가까이에 있었으므로 한번의 지레대질이나 하다못해 돌멩이 하나만 고여도 사태는 전혀 달리 될수 있었으련만!… 청주는 이미 자기 몸을 지탱할수 없었다. 압축기모서리를 붙잡으려고 뻗쳤던 손도 물줄기에 덮치워 버들가지처럼 휙 꺾이였다.
《청주!―》
지배인의 비통한 부르짖음, 청주는 자기 먼저 지배인이 압축기밑에 어깨를 들이밀었다는것을 알았다. 압축기는 물큰하는 충격과 함께 멎어버렸다. 그러나 청주의 몸은 이미 물사태와 함께 채광계단밑 어둠속으로 날아내리고있었다.
《지배인동지!―》
심연속으로 곤두박히며 청주는 부르짖었다.
《청주!―》
고막속으로 메아리쳐오는 웨침, 그것이 지배인의 부름이였는지… 청주는 어째서인지 수금이가 자기를 찾은것 같이 생각되였다.
걱정마, 수금이. 난 약속했어. 약속은 래일을 위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