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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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와 부딪친것은 춘애였다. 그는 수금언니한테 코를 꿰인듯 비척거리며 끌려가는 자기네 책임기사를 눈이 올롱해서 쳐다보았다. 희한한 일이였다. 수금언니로 말하면 바람만 조금 불어도 휘친거릴듯 한 가느다란 몸매에 키도 자그마한 처녀인데 무슨 재주로 말쑥하게 쭉 빠진 커다란 사내를 옴짝달싹 못하게 휘여잡고 망아지다루듯 하는지 신기했다.

다음순간 춘애는 허리를 꺾으며 깔깔 웃어댔다. 비로소 깨도가 된것이였다. 그러나… 곧 시무룩해지고말았다. 인생의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춘애였다. 최근에 이르러 그는 자기가 처녀꼴이 다 잡혔다는 징조를 여러면에 걸쳐 발견하면서 자못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난해 가을 읍지구의 한 혁명사적지를 참관하러 갔다가 때아닌 비를 만나 맵시있게 차려입은 치마저고리를 함빡 적셨을 때였다. 왜서인지 함께 간 총각들이 눈이라도 부신듯 그에게서 황황히 고개를 돌려버리는것이였다.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던 춘애는 잠시후에야 봉긋 두드러진 자기의 앞가슴을 발견하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때 가슴은 왜 그리 콩당거리던지.

 다음징조는 좀더 복잡한 감정이였다. 한주일전엔가 춘애는 굴착기를 운전하다가 주경철갱장이 뽐프공언니와 아주 허물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띠여보았었다. 그런데 그것이 까닭없는 서글픔과 부러움을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춘애는 후에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그것이야말로 자기가 처녀가 다 된징조라고 판단해버렸다. 자기가 즐겨읽는 소설책을 봐도 처녀가 처녀를 시샘하는것은 일종의 질투로서 은페된 사랑의 감정이라고 씌여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도 이젠 사랑이라는걸 할 때가 온가봐!

그때부터 춘애는《진짜 처녀》된 눈으로 총각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였다. 배오철이 자기를 좋아하는것만은 사실인듯 했다. 하지만 아직은 풋내기이고 좀 들뜬감도 없지 않는 미숙한 총각이였다. 그래도 대학공부를 하고싶어 감질내는 그 지향만은 높이 사줘야 하지 않을가?…

기실 배오철은 포부가 요란했다. 무조건 주간대학을 나와야 하겠다고, 그래야 광산을 떠메고 나갈 정보산업시대의 착실한 주인구실을 할게 아닌가고 춘애에게 입버릇처럼 외워왔던것이다.

《춘애, 너도 보고있지? 난 뼈를 아끼지 않고 투신해왔어. 그건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야. 한생 광부의 깨끗한 넋을 잊지 못하도록 지금부터 뼈에 단단히 새겨두자는거야. 이런 사정을 너의 어머니도 잘… 알아줘야겠는데.》

자기 어머니의 신세를 져보자는 얕은 속심이지만 한생 광산의 착실한 주인이 되겠다는 각오만은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하여 춘애는 며칠전에도 어머니에게 배오철의 대학추천은 언제 해줄셈이냐고 지청구를 들이댔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뜻밖의 소리를 했다.

《얘, 오늘부터 난 연구실 실장이다.》

《어마, 그럼 어떡해요? 힘써보마고 그 동무한테 약속했는데.》

울상이 되여 팔을 잡아흔드니 어머니는 춘애의 머리를 쥐여박았다.

《이 철부지야, 대학은 그 어떤 개별적일군이 아니라 조직이 추천해주는거야. 그리고 내 좀 알아봤는데 그 총각은 광산에서 몸을 뺄 궁리만 하는 허파에 바람찬 녀석이라더라.》

《엄만 몰라. 그 동문 좋은 동무야!》

…압록강물이 터졌다는 소리를 춘애는 새집의 분통같이 정갈한 2층다락방에서 소설책을 정신없이 읽다가 들었다. 울타리밖에서 마을녀인들 몇이 소란스럽게 이야기장단을 쳤던것이다. 신경이 살아오른 그는 정오의 따뜻한 봄볕이 쏟아져들어오는 창문을 탁 열어제끼고 냅다 쏘아붙였다.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 막 하지 말아요!》

다시 창문을 닫고 소설책을 펴들었으나 그 순간부터는 글줄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그런지 마음이 불안해난것이였다. 애당초 녀인들의 말을 랑설이상은 아니라고 믿는 그였다. 아무렴 지배인동지나 기사장동지가 그렇게 청맹과니여서 광산을 망칠 모험을 했겠는가!… 그러나 그냥 방안에 붙박혀있기에는 춘애의 성미가 너무 급했다. 하여 교대시간이 아직 멀었지만 한달음에 채굴장으로 달려나오다가 그만 청주와 딱 부딪친것이였다.

정작 채굴장에 내려서니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우선 굴진이 중지되여 귀익은 압축기며 착암기소리가 없는것이 가슴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그럭저럭 움직이는 굴착기들마저 마지못해 시들하니 일하는것 같았다. 물이 터졌다는 소갱입구앞에는 만일의 경우에 대처할 심산인듯 여러 사람들이 통나무쐐기니 진흙마대니 하는것들을 쌓아놓고 긴장하게 지켜서있었다.

 아유, 겁들두!… 춘애는 뇌리속에서 이런 비웃음이 스쳤으나 호기심도 없지 않아 그들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다음 눈치를 엿보다가 냉큼 소갱안으로 뛰여들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물구멍을 관찰해보면 압록강물인지 아닌지를 제꺽 가려낼듯싶어서였다.

그 순간 누군지 그의 꽁무니를 잡아 도로 끌어냈다. 박명준 굴진소대장이였다. 그는 춘애의 코앞에 대고 파리쫓듯 손을 휘저었다.

《저리 가. 아무때나 장난질하는게 아니야.》

《장난질은 무슨 장난질이라고 그래요?》

그 항변에는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춘애는 저으기 밸이 꼴렸다.

《모두 싱겁기란. 척 보면 알잖아요. 압록강이 여기서 얼만데 터진다 어쩐다 하며 벌벌 떨고.》

이번에도 역시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장난질》을 못하게 흘끔흘끔 감시할뿐이였다. 들어가기는 코집이 글렀다. 춘애는 《에이!》 하고 혀를 쑥 내밀어보이고는 돌아서고말았다. 교대시간은 아직도 멀었다. 그렇다고 멍청하니 서있자니 짜증만 났다. 춘애는 덮어놓고 한 굴착기에 올라 운전공을 밀어냈다.

《내가 해보자요.》

《그건 왜?》

늙은 총각소리를 듣는 운전공이 찌글서 가로보며 물었다.

《어디 봐주겠어요? 찌뿌둥해서 성수도 못내는 그 꼴!》

《까불지 말고 저리 가!》

운전공은 화를 내며 춘애를 떠박질렀다. 쫓기다싶이 굴착기를 내리니 마침 주경철이 다가왔는데 그의 얼굴 역시 우울해보였다. 춘애는 그만 약이 바싹 올라 운전공도 들으라고 소리쳤다.

《다들 어째서 시라소니들처럼 축 처져 그래요? 방수벽이 무너질가봐 겁나 얼들이 빠졌어요? 그러니 장가들도 못가고 후줄근해 다니지. 나도 채광시라소니들한텐 절대로 시집 안갈테야!》

여느때같으면 껄껄 웃어주었을 주경철이 도끼날같은 코날을 쭉 곤두세우며 퉁명스럽게 내질렀다.

《이 철부지, 뭘 안다고 까불어?》

《뭐야, 내가 철부지?…》

발끈해난 춘애는 종주먹을 쳐들었으나 곧 손을 내리고말았다. 슬퍼진것이였다. 어머니의 《철부지》소리는 애정이 담긴것이여서 오히려 즐겁기만 했었다. 하지만 경철오빠의 눈에까지 자기가 철부지로 비치였다면!

《그래요. 난… 철부지예요!》

춘애는 눈물이 나는것을 참으며 대들었다.

《그럼 경철오빤 뭐예요? 갱장이라는게 잔뜩 기가 죽어가지고. 그래 지배인동지가 압록강이 터질줄 모르고 일을 내밀 주먹치기같아요? 사람들을 왜 불러일으키지 못해요?》

담배를 찾는지 이쪽저쪽 호주머니를 분주히 뒤지던 주경철이 손을 멈추고 춘애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철부지 아닌 《처녀》를 발견한듯 대견해하는 눈길이였다. 그가 마침내 한숨을 내쉬였다.

《옳아, 춘애가 제때에 충고를 주었어. 성에서 실태료해조가 내려오는데 뭐 그러면 지배인동지가 무사치 못할수도 있다나. 그런 소문에 귀기울인 나두 참…그래, 방송차를 불러와야지.》

주경철은 불달린듯 휴계실로 달려올라갔다. 반대로 춘애는 더욱 기분이 잡쳐졌다. 실태료해조가 지배인동지를 어떻게 한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짓이란 말인가? 아니, 이건 어떤 시시한 놈이 그따위 뛰뛰한 소문으로 방수벽채굴이 안전치 못하다는것을 설교하자는거야. 우리 내부에 그런 비겁쟁이가 왜 없겠는가! 춘애는 그 시시한자를 당장 찾아내려고 사위를 두릿거렸다. 어디에나 자기와 함께 고락을 나누던 유쾌하고 성실하고 대범한, 그리도 친밀한 광부들뿐이였다. 결코 이들일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겁쟁이는 전혀 없고 무슨 《잘못된다》는게 정말일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기막힌 노릇인가?

다리맥이 풀려 폴싹 주저앉는 순간 채광계단을 따라 털썩거리며 내려오는 배오철이 눈에 걸려들었다. 배오철은 늘 무슨 장식처럼 메고다니던 착암기대신 무슨 부속품꿰미를 쇠줄에 걸고 흔들며 고개를 수굿한채  춘애앞을 지나쳤다. 여겨보니 사철 목에 두르고다니던 하얀 수건도 없는 허줄한 차림이였다. 그들 교대에서 물이 터졌다니 몹시 상심한것 같았다.

춘애는 냉큼 그앞으로 달려가 길을 막았다.

《동문 몰라요, 그게 사실인지? 그… 지배인동지 잘못될수 있다는것 말예요?》

배오철은 전혀 딴 생각에 골몰해있은듯 했다. 그는 무엇인가 리해하려고 애쓰지만 잘되지 않는지 딱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이더니 비로소 춘애를 알아본 모양 쓰겁게 내뱉았다.

《난 바빠!》

배오철은 휙 지나쳐버렸다. 춘애는 지그시 입술을 사려물었다. 언제나 자기만 나타나면 첫눈에 알아보고 달려와서는 시시껄렁한 소리라도 건네지 않고는 못 배기던 배오철이였다.

《알만 해.》 춘애는 그의 등뒤에다 총알처럼 쏘아붙였다.

《이젠 우리 엄마가 다른 사업을 본다고 해서 나같은건 더이상 리용가치가 없다는거지?》

배오철이 뚝 멎어섰다.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정통으로 찔리운것이 헨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구차스러운 변명도 없이 뻔뻔스럽게 되받았다.

《아무렇게나 생각해. 어쨌든 네가 진심으로 날 돕자고 애썼으면 3년씩이나 끌면서 해결 못해줬겠어? 그걸 어떻게 동무라고 할수 있어?》

《어마, 사람이 어쩜…》

춘애는 너무 억이 막혀 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어쨌다는거야? 이젠 동무없이도 돼.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제발로 떳떳이 앞길을 개척하자는거니까.》

배오철은 보란듯이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가버렸다. 춘애는 분해서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다. 설마 했었건만 배오철은 진짜 자기를 리용해볼 비루한 타산으로 겉발림우정을 표방해온것이였다. 그렇다면 한사코 대학에 가지 못해 몸살앓은것도 어머니의 말처럼 광산에서 몸을 뺄 기회를 노린것이 아니겠는가.

요란한 방송차의 음악이 터졌다. 머리우 박토를 제끼는 건설갱쪽에서였다. 주경철이 자기의 충고를 옳게 받아들여 당위원회에 전화한 결과일것이다. 하지만 춘애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인생에서의 첫 배신을 당한것이였다.

《난 정말 부실한 녀자였어.》

춘애는 굴착기를 다루어 사내같이 억세여진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내여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별로 락심할것도 없었다. 처녀로서의 걸음에서 비록 쓰라린 배신은 당했지만 대신 아주 귀중한 첫 교훈도 얻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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