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1

 

인간이, 더우기 일군이 목소리를 잃는다는것은 사업 그자체를 잃는것과 같은것이였다. 렴진욱은 후두의 종물이 악화되여 말을 할수도, 침을 삼킬수도 없는 상태에서 새해를 맞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통증은 심해가기만 했다. 이제는 그 누구의 권고나 강요가 아니라도 당장 수술을 받아야겠다는 촉박감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고말았다.

끝내 초봄에 접어들어 렴진욱은 제발로 적십자종합병원에 찾아가지 않을수 없었다. 광산의 생산능력을 두배로 확장하는 전투를 코앞에 둔 때였다. 이미 그 방안은 상의 적극적인 지지찬동속에 지난해말에 결정된것이였다. 그 문제토의때 박치명은 일변하여 렴진욱의 지지자로 나서주었었다.…

병을 길렀기때문에 수술은 두차례에 걸쳐 매우 힘겹게 진행되였다. 다행히 경과는 좋았다.

수술이 끝난지 이틀째되는 한낮이였다. 병원으로 박치명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목소리는 사뭇 노기등등했다.

《오늘 새벽 광산채굴장에 끝내 압록강물이 터져들어왔소. 당신이 광산을 망쳐먹었단 말이요.… 난 성에 실태료해조를 조직해서 파견할걸 제기했소. 하루이틀내로 내려가게 될거요.》

렴진욱의 고막에서 천둥이 울었다. 그는 믿을수 없었다. 믿는다는것은 광산이 망했다는것을 인정하는것과 같기때문이였다.

그는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받고있었지만 즉시 광산에 전화를 걸었다. 기사장은 자리를 뜨고 없었다. 당비서방 역시 비여있었다. 그들이 모두 사고현장에 나가있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했다. 그렇다면 정말 압록강물이 터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심장이 집게에 집힌듯 아프게 조여들었다.

지령장만은 자기 소임대로 자리를 지키고있었는데 전반 생산을 지휘하느라 겨를이 없는지 계속 통화가 나왔다. 전화가 련결되기를 초조히 기다리는 사이 렴진욱은 사태가 어떻든 무조건 광산으로 내려가리라는 결심을 굳혔다. 성실태료해조까지 들이닥친다니 지배인으로서 편히 치료받는다는것은 말도 안되였다. 병원측은 강경히 막으려 할것이다. 적어도 보름은 입원하여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는것이 그들의 주장이였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길밖엔 없었다.

광산에선 과연 무슨 사태가 벌어졌단 말인가?…

 

×

 

그날 청주는 마지막으로 압록강쪽방수벽을 깎아먹는 소갱굴진장에서 밤을 새웠다. 애초부터 김지택이 복잡하게 문제를 세웠던 작업이여서 책임적으로 굴진과정을 지휘감독해야 했다.

새가정을 이룬 후 김지택은 사표를 거두고 다시 일터에 나왔다. 보매 청주네들의 작업을 리해하려고 무던히 애쓰는 기색이였다. 몇번이나 청주가 작성한 콤퓨터상의 방수벽3차원설계를 현시해놓고 모의실험과정을 연구해보았고 신간기술서적들을 빌려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마지막발파만은 도무지 마음을 놓을수 없는지 발파소갱을 자름자름 여러개 뚫어 소규모발파를 련속하자고 고집했다. 방수벽에 충격을 덜 주자는 절충안이였다. 다행스러운 양보여서 론의에 붙였었는데 기사장 리정우가 그것마저 부결해치웠다.

《로력과 시간, 폭약소모가 더 커진단 말이요.》

그때 김지택은 모욕감과 절망에 싸여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두 난 정보화시대엔 자리가 없는 페물인것 같소. 래일은 커녕 현재도!… 난 안되겠어.》

그러자 리정우가 맵짜게 쏘아붙였다.

《부기사장동진 이제 보니 비겁하군요.》

《늙어보라구. 무어나 다 겁이 앞서지 않나.》

《타고난 겁쟁이만 과학도 무서워하는겁니다. 주먹을 부르쥐고 개척해보시오.》

청주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금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래일은 개척자에게만 차례지는 행복이야!》하고 준절히 말하던 렴진욱의 충고가 상기된것이였다. 그렇다. 김지택도 몸부림쳐 일어나 끝까지 개척해야 한다. 자신을 정보화시대에 설 자격과 권리를 가진 당당한 인간으로!…

새벽녘 갱장이 된 주경철이 교대발파준비를 끝내고 난장으로 나왔다. 그뒤로 배오철과 김현길이 줄레줄레 따라나왔다. 배오철은 늘 도화선에 불을 다는것을 도맡아나서며 극성이였었는데 이날은 박명준이라는 제대군인소대장에게 그것을 내맡긴채 뚱한 인상이였다. 호신부같던 착암기도 어깨에 없었다. 대신 김현길이 그것을 품에 안다싶이 들고나오며 뭐라고 그에게 귀띔하고있었다.

주경철이 청주에게 눈을 끔벅여보였다.

《야단났네. 배동무가 영 풀이 죽었거던.》

《왜, 갱장자리를 넘겨다봤댔나?》

주경철은 픽 웃었다.

《춘애때문이지. 그의 어머니가 연구실 실장으로 자릴 옮겼거던.》

《그게 어째서?…》

청주는 잘 리해되지 않아 눈을 꺼먹거렸다. 주경철이 다시 웃었다.

《동무도 영 고지식하구만. 아, 그거야…》

그찰나 박명준소대장이 협조원을 달고 뛰쳐나왔다. 도화선에 불을 단것이였다. 교대당 3메터기준을 일약 6메터로 높인 굴진명수였다. 굴진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있는지 당위원회에서 다른데로 조동시키려하자 제발제발했다고 한다.

그렇게 박명준은 20여년째 굴진공을 해오는데 아닐세라 40대말의 중년같지 않게 날파람있고 혈기왕성했다.

《자, 1분이요!》

박명준이 도화선에 불을 달았던 담배를 맛스레 빨며 알렸다. 청주와 주경철이 동시에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 사이 김지택이 슬금슬금 그들곁으로 다가왔다. 잔뜩 근심이 실린 얼굴이였다.

《이게 장약실을 완성하는 마지막발파던가?》

그가 청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청주는 그를 힐끔 치떠보았다. 설계에 의하면 아직 한발파 더하게 되였다는것을 그가 잊고있을리 없기때문이였다.

《그래, 그래…》청주의 눈길에서 비난을 감촉한듯 김지택이 어물어물 중얼거렸다.

《암만해도 이번 대발파를 너무 욕심부려 정한것 같거던.》

저 완고한 비겁성!… 청주는 불끈했으나 때도 때려니와 년장자앞에 버릇없이 굴어선 안되였고 앞으로 대발파의 성공으로 납득시키기 전에는 그가 결코 자기의 우려를 해소해내지 못할것 같아서였다.

《꽝!―꽝!―…》

드디여 폭음과 함께 물씬 돌가루와 가스가 뿜어나왔다. 청주는 습관적으로 폭파소리를 세며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느닷없이《쏴!―》하는 상서롭지 못한 음향이 고막을 찔렀다. 거의 동시에 갱아구리로 감탕물이 사품쳐 쏟아지기 시작했다.

《압록강이 터졌다!―》

청주곁에 긴장하게 서있던 김지택이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고함쳤다. 어찌 벽력같았던지 모두가 놀라 한길이나 뛸 정도였다. 김지택은 벌써 벼락같이 갱아구리속으로 뛰여들어갔다.

청주는 가슴이 얼어들었다. 눈앞이 새까매지고 다리가 후두두 떨려 서있을수 없었다. 내가 광산을 망하게 만들었다!… 아니, 그럴순 없어, 절대로! 하지만 저 물은?…

《통나무쐐기!》

언제 뛰여들어갔댔는지 온통 물참봉이 된 주경철이 갱입구에 머리를 내밀고 소리질렀다. 그제서야 청주는 발치에 딩구는 통나무토막을 주어들고 허둥지둥 갱구로 들어섰다. 방금 발파한 장약실벽에 사람머리만 한 구멍이 펑 뚫렸는데 그리로 물기둥이 폭포처럼 뿜어나오는것이 보였다. 얼음처럼 찬 물기둥은 삽시에 그를 덮쳤다.

《뭘 해?》

김지택이 비칠거리는 청주를 왈칵 떠박지르며 통나무를 빼앗아들었다. 통나무는 구멍에 틀어박기 바쁘게 펑― 하고 도로 튀여나왔다. 이번에는 주경철이 달려들어 통나무를 들이민 다음 잔등으로 버텼다.

《빨리 쐐기를 쳐라!》

누구의 고함인지 몰랐으나 청주는 반사적으로 땅바닥을 더듬었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것은 방금 발파로 떨어져나온 날카로운 쇠돌들뿐이였다. 통나무에 막혀버린 물기둥이 그 새짬으로 부채살처럼 퍼져나오면서 아츠럽게 울부짖었다.

다행히 경험있는 박명준이 부서진 나무쪼박들을 한아름 안고 뛰여들어왔다.

텅!― 텅!―… 나무쪼박쐐기를 박는 다기찬 메질소리, 그것이 청주의 가슴에 뼈아프게 박혀들어왔다. 자연이 과학을 우롱했는가, 과학이 자연의 오묘한 비밀속으로 다 뚫고들어가지 못했는가?… 생각은 무섭게 고패쳤다. 그러나 결론은 내려지지 않고 차디찬 물줄기에 흠씬 젖은 온 몸만 우들우들 떨려났다.

마침내 물구멍은 완전히 막혔다. 그들은 기진맥진하여 난장으로 나왔다. 방금 연두봉우로 솟기 시작한 해가 따뜻한 빛으로 그들을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모두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을 때 역시 김지택이 먼저 나서서 예방책을 내리엮었다.

《림시 막았지만 일단 터진 이상 더 큰 균렬이 생길지 몰라. 갱입구를 완전히 막을 준비를 하자구. 현길이, 대파공들을 모두 불러 진흙가마니를 하나씩 준비해오게 해. 오철인 통나무 몇대 더 날라오구. 빨리 움직여!》

배오철이 엉치를 툭툭 털며 투덜거렸다.

《이거 자라보고 놀란 놈 솥뚜껑보고도 어쩐다는격 아닌지, 쳇!》

순간 김지택이 그의 뒤통수를 콱 쥐여박았다.

《이놈아, 개미가 동뚝을 허문다는 속담은 못 배웠느냐? 냉큼 달려가지 못할가!》

마침 급보를 받은 리정우가 달려왔다. 그는 소갱속에 들어가보고나서 청주와 김지택, 주경철을 휴계실로 불러들였다.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김지택이 역증처럼 내질렀다.

《물어볼거나 있소? 이젠… 다 됐소.》

《뭘 투덜거리시오?》

리정우가 대뜸 날카롭게 면박주었다.

《뭐가 다 됐단 말이요? 제발 주책없이 굴지 말고 제정신 차리시오!… 청주!》

이미 청주는 랭정한 리성을 회복한 뒤였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방수벽이 압록강까지 맞구멍날리는 없습니다. 발파충격에 혹시 암반이 금갈수는 있지만… 그럴 가능성조차 없긴 하지만 설혹 그렇게 됐다면 돌짬으로 물이 새여나와야 정상일겁니다. 따라서 그 구멍은 무슨 동공일수 있습니다.》

《동공이란 우리 광산광체엔 있을수 없어.》

리정우가 즉시 반박했다. 그다음 눈을 내리깔고 잠시 침묵하더니 확신성있게 말했다.

《맞구멍도 안났고 금간것도 아니요. 그러나 해명은 정확히 해야겠소.》

결국 대발파를 위한 굴진작업은 전면중단되였다. 귀따가운 압축기소리가 멎으니 채굴장은 이따금 와릉거리는 굴착기의 동음뿐 한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사고는 사고니만치 기사장이 그 실태를 국에 보고했는데 박치명부국장이 길길이 뛰며 그를 닦아세웠다는 소문까지 돌아 사람들은 뒤숭숭해서 일에 성수도 내지 못하고있었다.

리정우기사장의 지시로 기술과가 총동원되고 물성분분석때문에 선광실험실의 옥수금과 윤희까지 채굴장에 나타난것은 아침 9시경이였다.

그때까지 행여나해서 노트콤에 입력된 방수벽3차원모형을 뒤적이던 청주는 수금을 띠여보자 그만 속이 켕겨서 서둘러 콤퓨터를 끄고는 슬금슬금 휴계실쪽으로 뒤걸음쳤다. 지난해 여름밤 처녀의 뺨을 쳤던 죄의식때문은 전혀 아니였다. 놀랍게도 그 얼마후 렴진욱지배인이 그를 찾더니 눈이 부실만큼 멋진 노트형콤퓨터를 척 내밀며 이렇게 말했던것이다.

《내 수금이의 청에 못 이겨 구해온거니 받으라구. 글쎄 우리 딸의 말을 들으니 수금이가 동무맘에 드는걸 고른다면서 온 평양시를 발칵 뒤졌대. 그통에 우리 딸이 발까지 부르터 겨우 돌아왔다나. 어때, 수금이가 기특하지?》

청주는 《수금의 청》이라는 소리를 조금도 믿지 않았다. 자기의 발전을 위해 진심으로 마음써주는 지배인이 아니고서는 해줄수 없는 매우 값진것이기때문이였다. 그저 온 평양시를 발칵 뒤졌다는것은 있을법 했다. 그러니 수금은 자기가 부르짖은 《바보》의 의미를 옳게 리해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내오기 시작한셈이였다.

하지만 그 확신은 또다시 의혹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수금이 해를 넘기도록 자기와 마주서기를 한사코 피한것이였다.

단 한번 맞다든적은 있었다. 그것은 지난 2.16경축공연시연회때였다. 채광에서는 소리가 굵직굵직한 사람들을 골라 남성중창을 준비했었는데 키가 큰 청주가 맨 앞장에 서서 무대로 나갔다. 그런데 무대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그는 피뜩 건너편 무대면막에서 고개를 갸우뚱한채 재미나는듯 살금살금 웃고있는 수금을 발견했다. 다음순서로 대기하고있는 선광의 녀성군무조가 거기에 있었던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몸이 굳어져버렸다. 중창인원이 많아 자기가 무대끝까지 쭉 나가야 한다는것을 잊고 도중에 멎어서버리는 통에 맨 끝사람들은 무대에 나서지도 못해 혼란이 일어났고 옆구리를 쥐여박혀서야 겨우 제자리를 차지하고 노래를 시작했을 때에는 머리에서 가사가 싹 달아나 입을 벌리지 못했다. 마감에는 한손을 높이 들어보여야 했는데 살금살금 웃는 수금이와 또 눈이 마주칠가봐 겁내던 나머지 그만 반대켠 손을 쳐들어 자기의 손끝쪽으로 경건히 돌아보게 된 중창조를 어리둥절케 만든것은 물론 심사석까지 웃기였다.

갱장과 부문당비서가 사정사정하여 겨우 합격으로 통과되긴 했지만 청주는 당장 중창조에서 제명되고말았다. 그때 갓 갱장이 된 주경철은 화가 나서 퉁을 먹였다.

《여보, 동무같이 무대담이 없는 얼간이가 어떻게 광부를 해먹어, 엉?》

여태 담이 없다고 자기를 한탄해본적이 없는 청주였다.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수금이가 자기의 심장이 방정맞게 투닥투닥 뛰는 모양까지 다 들여다보며 재미나서 살금살금 웃는것 같은데야!… 그때부터 수금이 앞에서의 청주의 자신심은 싹 사그라져버리고말았다.…

기사장이 물이 터진 원인을 해명하라고 지시한 순간부터 청주는 무엇인가 짚여지는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개발초기부터 광산실태를 손금처럼 알고있는 옥준보로인의 도움을 받아야 증명할수 있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가자니 손녀의 뺨을 친 자기를 로인이 어떻게 대해줄지 두려웠다.

궁리끝에 청주는 굴착기수리를 도와주고있는 주경철을 찾아갔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옥로인을 찾아가서 여기 실태를 설명해주오. 틀림없이 귀가 번쩍 열리는 소리를 얻어듣게 될거요.》

주경철은 청주를 빤히 쳐다보더니 내놓고 코웃음쳤다.

《왜 동무가 직접 못 가고 날 둘러리시키나?》

청주는 불끈해났다.

《둘러리?… 동무 갱장 맞아? 이게 어디 남의 일인가?》

《에이, 졸장부.》하고 주경철은 청주의 머리를 툭 쥐여박았다.

《수금이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지? 직접 부딪쳐보라구. 차라리 구실이 좋지 않나.》

그가 다 아는것을 보자 청주는 갑자기 발뺌하고싶어졌다. 그러나 까닭모르게 먼저 한숨부터 나갔다.

《갱장동문… 다 몰라. 내 지질기사여서 천길땅속은 들여다볼 자신이 있지만… 한치 얄팍한 처녀의 가슴속은 요지경같거던. 그래서 의사들도 청진기요, 투시요 하면서 숱한 기재의 도움을 받는것인지…》

《이것 봐라, 진짠 진짜였구만!》

주경철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는 청주의 기막히게 말쑥하고 미끈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입술을 핥더니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도 눈치는 챘지만 동무가 제 잘난 얼굴값을 하느라고 수금이를 저울질하는줄 알았네. 그래 아무때건 한대 줴박자고 별렀지. 생김새로 녀자금새를 매기는건 우리 광부식이 아니고 바람쟁이들의 저속한 악취미라고말야. 헌데 제법이구만.》

주경철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마침 소갱속에서 물시료를 떠가지고 나오는 수금이와 윤희를 띠여보자 제잡담 겅중겅중 달려가 수금의 팔목을 잡았다. 그다음 청주도 들으라고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옥수금아가씨, 우리 책임기사 말입니다.… 아, 쭐난 총각 김청주도련님 말입니다. 동무 할아버지를 꼭 만날 사정이 있는데 동무가 무서워 벌벌 떨고있다 그겁니다. 자, 어찌 하오리까?》

진담이라기보다 롱에 더 가까운 그 소리가 수금의 코웃음이나 경멸을 더 자아낼것 같아 청주는 속이 한줌만해졌다. 당장 수금이 팩해서 쏘아붙일것 같았다. 그런데 수금은 고개를 갸우뚱한채 잠시 입술을 감빨더니 청주앞으로 또각또각 다가왔다. 그 걸음새가 청주에게 제꺽 옥준보로인과의 청년동맹상봉모임때 있은 굴욕적인 사건을 상기시켰다. 이렇게 매섭게 다가와서는 또 치욕을 선사한다면… 청주는 조마조마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마침내 저으기 쌀쌀한 수금의 목소리가 울렸다.

《물구멍때문이겠지요?》

청주는 얼떠름하여 고개를 들었다. 처녀의 얼굴에는 모욕을 느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좀 랭담하기는 해도 진지한 표정이였다. 청주는 너무 반가와 황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소.》

《그럼 절 따라오세요.》

수금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씽 앞서걸었다. 청주는 심장이 상사말처럼 들뛰기 시작했다. 그는 등뒤 먼발치에서 주경철과 윤희가 아주 재미나서 지켜보고있는것도 모르고 눈먼 사람처럼 허겁지겁 처녀의 뒤를 따랐다. 자꾸 발이 걸채였다. 이상했다. 자기는 그저 손녀의 안내를 받아 옥준보로인을 찾아갈뿐이 아닌가. 그럼에도 어찌하여 광산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문제를 론하러 가는 공적인 소임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그저 경쾌하게 앞서걷는 처녀의 뒤모습만이 눈을 꽉 채우면서 현훈증에 시달리는것인가?

갑자기 눈앞에서 무엇이 얼씬거리더니 몸이 휘우뚱했다. 자기앞으로 바삐 달려오던 웬 사람과 탁 부딪친것이였다. 그러나 청주는 그가 누군지 가려보지 못했고 또 미안하다던가 눈이 없느냐고 성낼 생각도 못했다. 그저 자석에 끌린듯 경황없이 걸음만 내짚었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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