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7

 

그해 가을 추위가 닥치기 전에 광산에서는 또 수백동의 새집들이를 했다. 건설에 미립이 틀대로 튼 광산이 래년으로 예견되여있는 광산생산능력의 두배확장이라는 담통 큰 계획으로 자금을 최대한 쥐여짜는 속에서도 단 석달만에 와닥닥 일떠세운것이였다.

그날은 마침 년간생산과제를 두달이나 앞당겨 완수한 날이기도 했다. 전해생산량의 두배였으므로 대단한 성과였다. 다름아닌 수백동의 살림집을 일떠세우면서 넘쳐한 생산이여서 더욱 감회가 새로운것이였다.

광산은 명절같이 흥성거렸다. 이사짐을 실은 차들이 기동예술선동대의 취주악속에 련속 들이닥치고 곳곳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새로 지은 살림집마을이 이채로왔다. 연두봉중턱을 쭉 가로질러나간 장거리벨트콘베아대밑까지 층층으로 일떠선 살림집들은 마치 깃을 치며 날아오르는 학무리처럼 산뜻하고 경쾌한가 하면 선들바람을 맞아들이며 활짝 열려진 다락형식의 2층창문들로 하여 갖가지 유람선들이 압록강으로 진수하는것처럼 장쾌해보이기도 했다. 김미화가 삼지연지구를 비롯하여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찍고 스케치해온것들을 렴진욱이 당비서와 기사장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고르거나 보충완성하여 《광산1호》,《광산2호》… 등으로 명명한 여섯가지 형태의 저마끔 독특한 살림집들이였다. 래년에는 그 형태가 두개 더 늘어나 《광산8호》까지 련번호로 이어질것이 계획되고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 이채로운것은 굴뚝이였다. 어느 집이나 할것없이 모두 아름실한 통나무굴뚝을 세운것이였다. 아직 굴뚝마련이 채 되지 않아 속을 파낸 통나무구멍안에 불을 지피는 내굴이 온 광산마을을 뽀얗게 뒤덮다싶이 했다. 북방의 엄혹한 겨울추위에서는 판자나 세멘트로 만들어세운 굴뚝이 내굴을 빨아올리지 못한다. 통나무처럼 굴뚝벽이 두터워야 할뿐더러 그 속을 한번 태워 숯층을 형성함으로써 2중보온을 해놓아야 내굴도 허리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것이였다.

그날은 류병근에게도 명절이였다. 렴진욱지배인이 기술자의 집이라고 갓 장가간 아들에게 새집을 또 배정해준것이였다. 연구사업을 마음놓고 하자면 아들내외가 함께 사는 복잡한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고려에서였다. 그뿐아니라 년간계획을 초과한 혁신자들에게 차례진 천연색텔레비죤수상기까지 류병근에게 안겨졌다.

기분이 한껏 들뜬 류병근은 아들직장사람들이 달려들어 손쉽게 이사짐을 들여놓았지만 그래도 제 손으로 뭔가 한가지라도 도울게 없나 해서 전실에서 어정거리다가 방해된다고 떠미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말았다.

다행히 웃방도배질이 채 안되여 수금이와 윤희가 팔을 걷어붙이고 풀솔질하는것이 눈에 띠였다. 류병근은 너무 기뻐서 슬금슬금 그들짬에 끼여들었다.

《자, 솔질은 내게 맡겨다구. 너희들은 도배지를 붙이구, 좋지?》

《아이구,〈코바지〉.》 하고 윤희가 대뜸 또 퉁을 놓았다. 《이건 녀자들 일이야요. 코바진 아래목에 앉아서 며느리가 대접하는 술이나 자시라요!》

아닐세라 곱살하게 생긴 며느리가 이사짐군들을 위해 한상 차리려고 부엌에서 지지고 볶는 기름냄새가 진동하고있었다. 류병근은 눈을 찔 흘겼다.

《한다는 소리가. 해가 볼 때 무슨 술을…》

《아버님, 아버님.》하고 나선것은 아래방에서 텔레비죤을 설치하던 아들친구였다. 그는 부엌쪽에 대고 눈을 끔벅이며 느물거렸다.

《거 며느리눈치를 보느라 여태 거사나 변변히 해보았겠습니까? 그러니 오늘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으셔야지요, 예?》

사람들이 키들거리고 부엌에선 며느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수금이가 제일 합당한 방안을 내놓았다.

《차라리 실험실에 올라가 월간실수률분석표나 집계하는게 어때요? 지배인동지가 그걸 기다리시겠는데. 그다음 저녁에 다 꾸린 집에 내려와 한잔 하시면 더 좋지 않아요.》

《허허, 이 정신 좀 보지.》

류병근은 이마를 쳤다. 괜히 들떠 아주 중요한 임무를 까맣게 잊고있은것이였다. 하물며 기술자라고 우대해준 이런 날이야말로 더 착실한 사업성과로 보답해야 할것이 아닌가.

정작 실험실에 붙박혀 일에 골몰하기 시작하자 류병근의 머리속에서는 새로운 착상이 나래치기 시작했다. 2선광부선장에도 가열법을 도입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였다. 그것을 실현하면 정광실수률이 적어도 5~6%는 더 올라갈것 같았다. 흥분한 그는 그것을 도입하는 방안검토에 날이 캄캄해지는줄도 몰랐다.…

흡족한 결과를 얻은데다가 말쑥하게 정돈된 아들네 집에서 며느리가 부어주는 술까지 기분좋게 한잔 들이킨 류병근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밤 열시였다.

그는 꿈을 꾸었다. 회양골초막에서 《부유선광》책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있는데 옥수금이 할싹할싹 달려오며 소리쳤다.

《류〈코바지〉!― 류〈코바지〉!―》

《너 어째 불달린 노루같이 덤벼치느냐?》

《코바지를 평양에서 불러요. 지배인동지의 말이 코바지의 연구결과가 박사학위감이라는 전갈이 왔대요. 그래서 당장 평양으로 올라가야 한다나봐요. 빨리 차비하라요.》

류병근은 숨가삐 엮어대는 수금을 얼빤하게 쳐다보다말고 픽 코웃음 쳤다.

《늙은일 놀리면 죄된다. 넌 쩍하면 그따위 소리로 내 마음을 든장질하는데 벌써 몇번째냐? 제발 날 다신 놀리지 말아라.》

《아이구, 〈코바지〉도.》 하고 수금이 기막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지금껏 해놓은 일이 적어서요? 코바지가 여태 연구한 서류장속의 문서들을 과학원 선광공학연구소에서 모두 료해하고 막 흥분해서 당장 박사증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데요.》

그것은 수금이 류병근에게 몇번이나 권고한 제의였었다. 즉 자기의 연구결과들을 묶어 박사학위론문으로 제출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아마 수금은 자기가 말을 듣지 않으니 몰래 올려보낸것 같았다.

류병근은 자기의 연구성과들이 적지 않다는것을, 그것들 대개가 광산의 진흥을 뒤받침하는 발명가치가 큰것들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에 넘치고 지어 외람된 평정이라는 생각에 노여움이 북받쳤다.

《얘 수금아, 내 몇번이나 말했니. 난 여태 박사를 바란적도 없거니와 그만한 가치를 창조했다고 여긴적도 없다구 말이다. 그저 류소냄새를 맡으며 생을 마치면 행복하다는게 내 소원이다. 내 연구가 광산의 장래발전에 밑거름이 될 재보로 빛나면 더이상 바랄게 없다구 가서 당장 취소하라구 해라. 그건 내 진정을 모독하는거다. 알겠느냐?》

수금은 눈이 올롱해서 류병근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뒤쪽을 가리키며 비명처럼 부르짖었다.

《아이구, 이젠 늦었어요. 보라요, 저기 텔레비죤촬영기랑 들고 사람들이 밀려오는걸요. 그러니 빨리 옷을 갈아입으시라요, 빨리요!》

류병근은 당황망조해졌다. 정말 눈이 부시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무수한 조명등빛이 번쩍거리며 그를 에워싼것이였다.

《아― 불을 꺼주시오. 제발… 꺼주시오.》

류병근은 급해맞아 황황히 눈을 가리웠다.…

《불이야!― 불이야!―…》

어디선가 그의 옹색함을 덜어주자고 했는지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울렸다. 뒤미처 다급하게 울리는 싸이렌소리… 갑자르며 겨우 눈을 뜬 류병근은 자기 집 창문이 활활 타듯 너울거리는 불빛에 물든것을 발견하고 후닥닥 뛰쳐일어났다.

앞서 깨여난 안해가 사색이 되여 부르짖었다.

《령감, 실험실이… 선광실험실이 불타우다.》

《엉?!…》

류병근은 미처 정신도 못 차린채 속내의바람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우중충한 연두봉중턱의 그리도 낯익은 실험실건물이 룡트림하는 사나운 불길에 온통 휘감겨있는것을 보았다. 그 주위를 사람들의 형체가 다급히 휘돌고있었다.

《내 실험자료!…》

눈앞이 캄캄해났다. 본의아닌 방정맞은 꿈을 비웃으며 자기 한생의 유일한 긍지를 령으로 만들어버리는 저 재앙… 류병근은 헉헉 울음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280계단》초입에서 발을 헛짚어 나동그라졌으나 그는 정갱이가 쑤시듯 아프다는것도 의식하지 못하며 허겁지겁 계단을 치달아올랐다. 1년간 그리도 고심하여 완성한 숱한 실험자료들이며 그 도입결과를 기록한 일지들, 새로운 실험구상들을 확인해본 기초계산지들… 그 모든것이 이 한순간에 재로 되여 하늘로 날려가버리는것이다.

너무 숨이 막혀 물밖에 난 붕어처럼 입만 넙적거리며 계단을 다 톺아올랐을 때 실험실은 이미 거의 다 타버린 뒤였다. 류병근의 미친듯 한 눈이 마당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인 소실험용파쇄기와 마광기, 부선기를 더듬었다. 종이장비슷한것도 귀한 시약병 같은것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검댕이매닥질이 된 여러명의 국경경비대군인들이 오가는것으로 미루어 그들이 먼저 불을 발견하고 희생적으로 뛰여들어 그만큼이라도 건졌으리라는것을 류병근은 깨달았다. 그는 속에서 불이 일었다.

《어디 있어, 응? 어디?…》

아직도 숨길이 잘 열리지 않아 류병근은 컥컥 개키며 불티가 날리는 뜨거운 재무지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라없이 애타게 부르짖었다.

《내 실험자료들, 내 일지들!… 못 봤소? 못 찾았소?…》

누군가 등뒤에서 그의 허리를 붙안고 힘껏 끌었다.

《놔라, 놔. 찾아야 해.》

《류〈코바지〉!》

목소리가 옥수금이였다. 그런데 그 부름이 너무도 애절하게 고막을 허비는데 류병근은 놀랐다. 섬찍하여 돌아본 그는 어룽거리는 불빛속에서 납물같은 눈물이 파들파들 떠는 옥수금의 눈에 부딪쳤다. 불현듯 류병근은 그 모든 자료며 일지들이 이 불길속에서 남아있을리 만무라는것을, 자기가 그지없이 황당한 미련과 애달픔에 사무쳐 제정신없이 굴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날카로운 아픔이 찌르륵 가슴을 누볐다. 한달전엔가 있었던 일이 피끗 뇌리를 스친것이였다. 그날 류병근은 자기의 세번째 발명권으로 될 시약체제변경에 관한 론문을 옥수금에게 필사시켰었는데 처녀는 파란 비닐뚜껑까지 해씌운 론문과 함께 손수 코바늘로 정히 뜬것이 틀림없는 당증주머니를 선사하는것이였다.

《이건… 어쩌자구… 뉘한테?…》

《류〈코바지〉.》 옥수금은 그의 꺼칠한 손을 꼭 끄당겨잡으며 살금살금 웃어보였다 .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시지 않았어요. 나라에 공헌한 그 실적이면… 이제는 입당청원서를 써도 되지 않나 말이예요. 그렇게 믿어요!》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한생의 소원으로만 남아있는, 스스로가 머리를 흔들며 선뜻 쓰기를 저어한 입당청원서, 그것이 옥수금의 섬약한 손에 받들려 눈앞에 다가온듯싶어 류병근은 머리가 핑 돌고 금시 쓰러져버릴것 같았다. 과연 이런 환희가 자기에게도 정말 차례질 날이 있지 않을가?… 다음순간 그는 황황히 처녀에게 잡힌 손을 뽑았다.

《아서라, 제발. 남들이 보면 로망했다고 비웃는다. 아서라.》

옥수금은 쉬이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한사코 받아야 한다고, 믿으면 좋은 날이 꼭 온다고 고집했던것이다. 옥신각신끝에 처녀의 타협안대로 당증주머니를 누가 볼수 없는 서류장 깊숙이 감춰두는것으로 락착보지 않을수 없었었다. 그랬던것이 결국 자기의 넋을 깡그리 기울인 《실적》문서와 함께 한줌의 재로 변하고만것이였다.

아아… 류병근은 억이 막혀 가슴을 쥐여뜯었다.

《누가 불을 놨느냐, 엉? 누가?―》

처절한 부르짖음이여서 분주히 오락가락하던 사람들이 놀래여 그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역시 검댕이투성이인 기사장과 뭐라고 이야기하고있던 김현길실장이 그앞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아직도 어룽거리는 불빛에 김현길의 흡뜬 두눈이 이상하게 번쩍거렸다. 그가 떠보듯 초조하게 따져물었다.

《류아바인 뭔가 짚여지는데가 없소?》

《?…》

《이상하단 말이요. 오늘이야 명절같아서 실험실이 비다싶이했는데… 듣자니 류아바이만 남아서 밤늦게 뭘 했다던데 혹시… 담배불건사를 똑똑히 못한게 아니요?》

《뭐?―》

류병근은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였다. 이밤의 재난이 너무 절통하여 그 당자를 찢어발기고싶은 심정이였는데 왕청같이 자기에게 의심의 화살이 날아온것이였다. 절로 아연하여 입이 벌어졌으나 말은 나가지 않았다. 따져보면 너무도 공교로운 일치가 아닌가. 실험실이 비다싶이 했던것도, 자기만 남아서 밤까지 계속 실험한것도, 게다가 담배를 즐기는지라 련이어 피워댄것도…

기사장이 듣기 거북했던지 끼여들었다.

《실장, 해명되기도 전에 무슨 그따위 억측을…》

《기사장동지!》 하고 김현길이 제 가슴을 두드렸다. 《너무 속타고 분해 그럽니다. 혹시 압니까? 한달쯤전에도 저 아바이의 줄담배질에 책상을 구워먹을번 했는걸요. 그 게틀사한 담배질버릇은 확실히 사고요소란 말입니다. 뭐 듣자니 저 봉산에 있을 때도 한번 불놓은 전과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게 혐의를?… 내가 불을?…》

류병근은 절로 헛손질이 나갔다. 그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했으나 자꾸 눈앞이 휘휘 돌아 똑바로 서낼수가 없었다.

돌연 자그마한 사람형체가 김현길의 가슴팍으로 조약돌처럼 날아들었다. 실험공처녀 윤희였다.

《우리 〈코바지〉 왜 걸고들어요? 제가 뭘 잘났다고 삐쳐요? 꼴보기 싫어요. 여기서 썩 사라지라요, 썩!…》

그때 류병근은 이미 《280계단》층계를 막 굴러내리는중이였다. 첫발부터 헛짚어 공중걸이한것이 그 급경사지에서 무릎을 깨고 머리를 짓쪼으며 돌덩어리같이 밑으로 굴러내려갔다. 그러다가 중간쯤에서 간신히 가느다란 나무에 걸려 멎어버렸다.

류병근은 얼얼한 속에서도 악에 북받쳐 생각했다. 끝까지 굴러내리지 않고 왜 멎었어? 온몸이 찢기든 탕쳐지든 왜?… 일찌기 봉산에서도 불때문에 인생이 급전했던 자기였으니 이제 다시 급전한들 새삼스러울것도 없었다. 그게 자기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불이야말로 자기의 인생재화가 아닌가!…

이튿날 아침 류병근은 보안원의 호출을 받았다.

《달리 생각지 마십시오.》 하고 인상좋은 중년의 보안원이 걸상을 끌어다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고가 사고니만큼 철저한 조사를 하지 않을수 없으니까요. 우리 동무들이 현장을 꼼꼼히 조사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바이한테 혹시 짚여지는 점이 없나 해서 알아보자는겁니다. 자, 어서 편히 앉으십시오. 앉아서 얘길 하십시오.》

류병근은 간밤처럼 다시 머리가 휘휘 돌기 시작했다. 달리 생각지 말라지만 이건 명백히 날 의심하는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미 봉산화학에서 이런 일을 당해본 그였다. 그때에는 모든것이 응당했다. 왜냐면 실험도중에 일어난 폭발, 자기가 일으킨 불이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리유와 근거로 의심하는가?

보안원의 은근한 목소리가 그에게는 꿈속에서처럼 들렸다.

《초보적인 조사에 의하면 전기사고같긴 한데 아바이는 퇴근하면서 전등을 껐다고 하니 그것도… 물론 아바인 담배불도 정확히 끄고 퇴근했겠지요? 아, 딴게 아니라 그런 증언을 한 사람이 있어 확인해보자는것일뿐입니다.》

류병근은 리성적으로 사고해낼만 한 정신상태를 더이상 유지해낼수 없었다. 현길실장의 터무니없는 신고를 그대로 믿는구나. 저 조심스럽게 의견을 듣는체 하면서 한걸음한걸음 담배불이 화재의 원인이였다는데로 몰아가는 로련한 수법, 오냐, 좋을대로 생각하구 좋을대로 처리해라.

끝내 류병근의 입에서는 울분이 폭발하고말았다.

《그래, 내가 불을 놨소. 내가… 어서 날 잡아넣으시우!》

《아바이.》

《뭐 말라죽은 아바이란 말이요? 범죄자지. 질질 끌며 괴롭히지 말구 빨리 잡아넣기나 하란 말이요!》

침묵이 깃들었다. 미처 숨을 못 돌린 류병근의 발작적인 기침소리만 동안뜨게 울렸을뿐이였다. 보안원은 이윽토록 상대를 여겨보았는데 류병근에게는 마치 당장 잡아넣을가, 좀더 비밀을 뽑아볼가 망설이는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윽해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자못 유감스럽고 섭섭한 어투였다.

《우릴 잘못 리해하셨군요. 우린 아바이가 사고를 해명하는데 방조를 주리라고 기대했을뿐입니다. 기분을 건드렸다면… 더이상 아바이를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류병근은 어떻게 그곳을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가을의 다양한 볕이 눈을 시게 했다. 아니,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한무리의 처녀들의 따가운 눈길이 뒤통수를 지지는것 같아 감히 고개를 쳐들수 없었다.

《저 령감이 불을 놨대.》

처녀들이 마치 이렇게 뒤소리하며 손가락질하는것 같았다. 달리 될수 없었다. 보안원에게 불리워갔다는 자체가 벌써 그런 험구를 낳기엔 충분하지 않겠는가.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우선 지목되여 조사당하는 사회의 이 경계자, 혐의자!… 선광을 그리도 사랑했건만 그 사랑이 이렇듯 큰 죄였더란 말인가?…

그날부터 류병근은 출근을 포기하고 아주 몸져눕고말았다. 심화병이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