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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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당비서 전주석은 도당회의에 가고 없었다. 대신 당위원회 직일실에서 그가 남겼다는 당부를 알려주었다.
《래일 점심때 청년동맹에서 옥준보로인과의 상봉모임을 조직했으니 가능하면 지배인동지가 거기에 참석해달라는겁니다.》
렴진욱은 눈이 번쩍 띄였다. 불과 몇분전에 광산을 버리고 가는 은별이때문에 눈물을 흘리던 옥수금을 만나 가슴터질듯 했던 그였다. 비서동지가 얼마나 때맞춰 좋은 착상을 해주었는가. 그렇다, 옥준보로인을 통하여 광부들의 마음속에 광산에 대한 사랑을 더 깊이 심어주는것이야말로 초미의 방책인것이다.
《참가하겠소, 꼭 참가하겠소!》
렴진욱은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계단을 뛰여내렸다. 그러다가 행정청사복도에서 김지택생산부기사장과 딱 맞다들렸다. 좀 밭은 키에 비해 상체가 유표하게 쩍 벌어진 그의 시커먼 얼굴은 방금 누군가와 다투기라도 한듯 뿌루퉁하게 부어올라있었다. 푸시시한 상고머리에 돌가루먼지가 올라있는것으로 미루어 현장을 휘돌고 온 모양이였다.
《마침이구만.》
김지택은 싸움이라도 걸듯 대뜸 목청을 돋구었다.
《채광의 김청주 말입니다. 당장 목을 떼버려야겠수다, 당장 말이요!》
좀 쐑쐑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복도를 드르렁 울렸다. 늘 압축기며 착암기, 굴착기들이 귀아프게 울부짖는 로천채굴장에서 살다싶이 하여 평소에도 고함치듯 말하는것이 인박힌 김지택이였다.
렴진욱은 눈을 찌긋하고 김지택을 굽어보았다. 상대의 무슨 말이든 들어줄 용의가 있다는것을 보여줄 때 그가 취하군 하는 표정이였다. 그것을 잘 아는 김지택은 소란스럽게 계속했다.
《그녀석이 요즘 어쩌는지 아시우? 멀지 않아 채굴장에서 광맥이 아주 거덜나구 그러면 광산두 끝장이라구 소문내며 돌아간단 말입니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어수선해하는 때에… 그따위가 무슨 책임기사요? 암해분자 한가지지. 아, 그런데두 저 정우라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그찰나 기술과의 출입문이 열리며 문제의 그 기술부기사장 리정우가 소리없이 나왔다. 체소한 몸매에 얼굴까지 갱핏하여 병약해보이는 30중반의 젊은이였다.
《언제 내려오셨습니까?》
리정우가 가벼이 고개숙여 인사하며 물었다. 김지택은 어리둥절한듯 이쪽저쪽을 번갈아보며 잠시 눈을 꺼먹거렸다.
《이런 참!》
마침내 탄식처럼 혀를 찬 그는 렴진욱앞으로 닁큼 다가들어 두손을 집게처럼 꽉 틀어잡았다.
《축하합니다, 지배인동지! 하, 그런걸… 그런걸 이 멍청이는…》
떠들썩한 김지택을 그냥 두었다가는 지령장이며 교환수, 대기차운전사 등 온 청사의 야간당직들이 다 쓸어나올 판이였다.
렴진욱은 두 부기사장을 이끌고 서둘러 2층의 자기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다음 직방 사업이야기로 넘어갔다.
《그사이 생산실태를 들어봅시다.》
곱장고개에서 미광수채소리를 듣고 예측했던 그대로였다. 부러진 대치차이발때문에 멎어있는 마광기 한대는 용착으로 때여붙일 과업을 주었었는데 아직 손을 못 대였다고 했다. 업무부지배인이 뛰느라고 했지만 합당한 재질의 용접봉을 미처 끌어 못들였고 직장장자체가 고개를 기웃거린다는것이였다. 그나마 돌고있는 두대의 마광기도 인차 세워야 할 형편이였다. 운반갱 2호원동소의 벨트주동드람이 다 닳아 벨트콘베아를 잘 돌려주지 못한다는것이였다. 원동소들은 각각 1 000여메터의 장거리벨트콘베아를 움직이는데 그우에 원광이 실리면 쓸림힘이 굉장했다.
그것을 꽉 잡아주는것이 바로 주동드람을 돌려감은 특수재질의 고무판이였다. 지금껏 수입에 의거해왔지만 이제는 더 손내밀데가 없었다.
《…별의별짓을 다 해봤지만 어디 됩니까? 그것만은 우에 제기해서 무조건…》
김지택의 말을 밀막으며 렴진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말이요 참나무를 얇게 켜서 돌려감아봅시다.》
《참나무로요?》
두 부기사장이 동시에 눈이 둥그래서 반문했다. 렴진욱은 빙긋 웃어보였다.
《우리야 우에다 손내밀어보지 않은지가 오래지 않소. 참나무만 한 질긴 섬유질이면 능히 감당할수 있소. 외국제고무판을 찜쪄먹을거요. 내 좀 시험해봤소. 꼭 되오!》
김지택은 감탄인지 한탄인지 입을 쩍 벌리고 굳어졌지만 리정우는 무언가 골똘히 궁리해보더니 나직이 속삭였다.
《좋은 착상같습니다. 정말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문제!…》
나머지 사정들은 더 듣지 않아도 머리속에 휑한것들이였다. 례컨대 중기계에서 부었다는 주물품소재가 전압사정으로 계속 오작나 굴착기수리가 지연되였다느니, 장거리벨트콘베아의 벨트도 닳아빠져 이제 몇달이상 가동하지 못하고말것이라느니, 저품위광석때문에 갈수록 선광실수률이 떨어져간다느니… 렴진욱에게는 자기가 평양에 올라가있은 그며칠사이에도 광산이 한층 더 기진해진것 같은 어이없는 느낌이였다. 그런 속에서도 렴진욱은 《목을 떼버려야겠수다!》 하고 고함치듯 하던 김지택의 말을 고막에서 지워낼수 없었다. 광부들을 떠난 광산이란 있을수 없다. 하여 인적없는 무서운 밤길에 주저앉아 옥수금이 울었고 당위원회는 옥준보로인과의 상봉모임을 조직한것이였다. 그런데 반대로 김청주는?…
기실 김청주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서 채광갱의 기술혁신을 도맡아 해제껴온 열정적인 청년이였다. 문제는 그가 어느 기관의 부위원장을 하면서 《고난의 행군》시기 적지 않은 국가물자를 비법람용한것으로 철직된 사람의 아들이라는데 있었다. 김청주는 초기에 아버지의 과오를 자기가 대신 씻는다면서 무섭게 일했었다. 당시 기사장이였던 렴진욱의 눈으로 볼 때 김청주는 장래가 아주 촉망되여 아버지따위는 찜쪄먹을 큰 일군으로 자라날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인지 그가 불현듯 가시돋힌 입심쟁이로 돌변해버리고말았다. 그것이 렴진욱에게는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무엇이 그의 이런 급전을 조건지어주었는가?…
《이보우, 기술부기사장!》
마침내 렴진욱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한 리정우의 말을 뚝 잘라치우며 물었다.
《동문 요전번 청주를 기술과로 소환시켜달라고 제기했댔지. 아직도 그래야 한다고 보오?》
리정우는 의외의 질문인듯 피끗 고개를 돌렸다가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아까 생산부기사장동지의 제의를 념두에 두신것 같은데… 전 달리 생각합니다. 청주의 말도 썩 그른데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지금껏 채굴장을 넓히지 못해서 고품위맥을 놓치고 저품위와만 해보는거야 사실이 아닙니까. 이대로 계속 나가다가는 선광이 소화해내지 못할 막돌같은것만 주무르게 될겁니다.》
렴진욱은 낯을 찡그렸다. 리정우의 말은 지금껏 기사장으로서 생산을 주관해온 자기에 대한 비난이기도 했다. 불비하고 부족한 기대설비와 전력사정이 목을 조여 박토에까지 낯을 못 돌려 빚어진 사태였지만 어쨌든 그 말이 렴진욱에게는 몹시 아팠다.
그것을 감촉했는지 김지택이 사납게 찡그린 얼굴로 리정우를 노려보다 말고 튕기듯 벌컥 일어섰다.
《딴게 더 없다면 우린 가보겠습니다. 먼길에 피곤했겠는데 일찍 들어가 쉬시우. 운반갱 주동드람문젠 내가 오늘 밤중으로 대책하겠수다.》
《아니, 그건 내게 맡기고 채광쪽을 잘 봐주시오.》
《뭐 오늘같은 날까지 꼭…》
무엇인가 포치하면 밤이 열둘이라도 현장에 틀고앉아 그 집행결과를 받아내고야마는 렴진욱의 기질을 잘 아는 김지택으로서도 그것은 좀 뜻밖인듯 했다. 렴진욱은 두말못하게 잘랐다.
《그렇게 합시다. 기술부기사장의 지적이 옳소. 채굴장문제를 결정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좋은 방안들을 찾아보시오.》
할수 없었던지 김지택은 리정우를 툭 건드리면서 먼저 나갔다. 어쨌든 빨리 자리를 피해주자는 신호였다. 그러고도 안심치 않은지 복도에서는 짐짓 돋구어내는 그의 기침소리가 몇번씩이나 컹컹 울렸다. 하지만 리정우는 아무 눈치도 못챈듯 눈을 내리깐채 고집스레 앉아있었다.
렴진욱은 내심 미소를 금할수 없었다. 청진광업대학(당시)을 졸업하고 채광갱의 책임기사로 광산일을 시작한 리정우는 머리가 영민하고 진취성도 강해 불과 몇해안팎에 기술부기사장으로까지 발탁되였었다. 장래가 몹시 기대되는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가 태여나 살아온 번화한 도시생활을 그리워하며 속을 썩이고있었다. 놀라운것은 그런 향수병에 시달리면서도 밤을 패며 채광과 선광, 기계부문의 새 기술들을 독파하는것이였다. 렴진욱에게는 리정우의 상반되고 모순되는 이 두 측면의 묘한 조화가 늘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대신 김지택은 명백했다. 올해 쉰넷으로서 렴진욱보다 네살 손우인 그는 연하토배기출신의 광부답게 발파가스냄새와 인연을 끊으면 자기는 죽을것이라고 자주 외우군 했다. 광산의 무엇에 정들었느냐는 물음에 상대의 머리를 쿡 쥐여박으며 했다는 대답이 또 널리 알려져있었다.
《사랑이라는게 뭔지 아나? 그건 일종의 소코뚜레같아서 아무리 벗고 싶어도 못 벗는거야. 헌데 사랑의 코뚜레는 스스로 꿰여차는것이거던.》
기실 김지택의 광산에 대한 검질길 정도의 깊은 애착은 유년시절의 가슴아픈 추억과 련결되여있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미군비행기들은 어떤 전략적대상은 물론 마을다운 마을조차 없는 이 심산오지에까지 두차례나 날아들어 마구 폭격하였다. 그때 김지택의 량부모와 누이가 죽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를 마을사람들이 돌려가며 먹여주고 키워주었다. 후에 도소재지의 고등전문학교를 나오고 훌륭한 직종에서 일할수 있는 자격까지 받았으나 그는 고마운 마을사람들을, 부모들의 묘소를 떠난다면 어떤 배반이 되리라고 여기고 흔연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사랑 《철학》은 이 과정에 형성된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김지택은 중병을 앓는 안해와 함께 살면서 가정의 단란함을 맛보지 못한채 일찌기 상처했었다. 그 궁상스러운 꼴을 보다못해 렴진욱이 년초에 홀로 사는 이쁘장한 합숙식모녀인에게 억지로 끌고간적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분도 못되여 그가 혼비백산해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시오?》
퀭해서 물어보니 김지택은 야단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어― 갑자기 녀자무릎을 가까이 하니… 심장이 멎는것 같아서 그만…》
어처구니없었으나 따지고보면 상처한지 오랜 그로서는 십분 그럴만도 한 일이였다. 그것이 바로 김지택이였다.…
《지배인동진… 청주를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드디여 리정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문제로 남아있었으리라 렴진욱은 이미 짐작한터였다. 그 대답도 준비되여있었다.
《굴진공을 시키겠소. 그렇게 당위원회에 제기하자는거요.》
《그래선 안됩니다.》 여전히 조용하나 좀 강경한 어조로 리정우가 반대했다.
《그는 수재형의 기술자입니다. 광산을 위해서도 아껴야 합니다. 그가 불평이 많은건… 우리 사업에 그만큼 빈틈이 많기때문입니다. 이걸 먼저 인정하셔야지요.》
렴진욱은 리정우를 곧추 쏘아보았다. 눈꼬리가 절로 사납게 치째져갔다. 광산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분노했을 때의 그의 눈길이였다. 또다시 자기에 대한 비난으로 몰아가는 저 론거!… 결코 그것을 부정하는것은 아니였다. 김지택부기사장에게 좀전 지시한것처럼 문제가 있는 채굴장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심도 굳혔었다. 다만 과거를 두고 옴니암니 시비를 가르고만 있을 때가 아니기때문이였다.
노기를 누르느라고 렴진욱의 목소리는 저으기 갈려나왔다.
《부기사장, 그건 전혀 다른 문제야!… 이자 광산을 위해 아끼자고 했는데 난 바로 그래서 떼자는거야. 지금은 청주가 기술로 광산에 이바지하는것보다 랑설로 광부들을 동요시키는 피해가 더 커!》
리정우는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문가에 이르러 그는 다시 돌아섰다. 그의 목소리가 저으기 구슬프게 울렸다.
《저도 잘못이 많습니다. 청주가 왜 갑자기 이지러졌는지 알아볼생각도 못하고있었으니… 제 보기엔 누군가가 그의 마음에 무슨 아픈 못을 박지 않았는가 하는겁니다. 어쨌든 청주를 한번 만나보고 결심해주십시오.》
그다음 잠시 망설이더니 힘겹게 보탰다.
《구태여 뗄 사람을 꼽으라면 전… 선광실험실 김현길실장을 꼽겠습니다.》
렴진욱은 일순 심장이 쿡 찔리운듯 한 아픔에 어깨를 떨었다. 그는 언제 리정우가 나갔는지도 몰랐다. 김현길!… 그는 오래전 총각시절의 렴진욱을 구원하고 죽은 처녀의 동생이였다. 굴진공들에게 류별난 애착을 갖고 위해주지 못해 그리도 마음쓰던 숫접고 아련한, 그지없이 성실하고 헌신적이였던 처녀!
그리하여 렴진욱은 김현길을 그 처녀의 분신처럼 여기고 돌봐주려고 여러모로 마음써왔었다. 다행이랄지 박치명부국장이 자기의 대학후배인데 똑똑하니 실장으로 써보라고 김현길을 극력 천거했을 때 렴진욱은 몹시 기뻤었다. 먼저 간 그의 누이앞에 속죄라도 되는듯싶어서였다.
아닐세라 김현길은 괜치 않게 실장소임을 감당해냈다. 현재의 안정된 선광조업체계가 그의 재임기간에 확립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리정우는 그의 어떤 허물을 보았단 말인가?
책상우의 지령전화기가 그의 생각을 깨뜨렸다.
《…2차턱파! 2차턱파… 왜 세웠는가?…》
피뜩 벽시계를 쳐다본 렴진욱은 흠칫 놀랐다. 밤 열시가 지났던것이다. 박치명부국장!… 지금껏 그를 감감 잊고있은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