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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렴진욱은 납덩이같은 침묵에 꽉 지지눌리운듯 했다. 전주석은 걸상등받이에 등을 젖힌채 부릅뜬 눈으로 천정만을 올려다보았고 리정우는 눈을 내리깔고 얌전히 앉아있기는 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은지 책상우에 얹은 한손을 가볍게 떨고있었다. 전주석의 왼쪽등뒤에 서있는 선풍기만이 침묵을 날려보려고 애쓰듯 부질없이 붕붕거렸다. 벌써 몇분째였다.

그것은 렴진욱이 내놓은 뜻밖의 결심때문에 생긴 아연하고 난감한 기분의 딱한 침묵이였다. 광산의 생산능력을 1년어간에 또다시 2배로 끌어올리자고 호소한것이였다. 지난해말의 생산능력확장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치를 취해주시여 성능높은 새 기대설비들을 들여앉혔기때문에 마광과 부선계통을 약간 늘이는것으로 쉽게 이룰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존생산설비로서는 최대의것이여서 이제 또 두배를 해내자면 그만한 생산계통이 옹근 하나 더 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즉 광산이 두배로 커져야 하는것이다.

《겁들이 났소? 그렇다면 그렇다고 솔직히 터놓구려.》

대답을 기다리기에 짜증이 난 렴진욱이 언짢게 툭 내쏘았다. 그 역시 자기의 결심을 이들이 선뜻 받아물기 숨가빠하리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제꺽 찬성해나섰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였을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당이 바라고 시대가 요구하는 목표였다.

마침내 전주석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굳어진 자세를 풀고 부시럭거리며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는 않고 느닷없이 허허 웃었다.

《우리 집옆에 말입니다.》하고 그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큰 개울이 있는데… 못된 개울이요. 지난해에 터밭을 한절반 뭉텅 잘라먹었길래 석축을 단단히 해놓았는데 이번 장마가 또 도루메기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물이란게 아마 딱 제 곬이 있는 모양이지요.》

그다음 능청스럽게 렴진욱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배인동무의 이름자가 나아갈 진이 아니시오?》

왕청같은 여담같아 렴진욱은 불쾌하게 그를 가로보았다. 전주석이 모르쇠를 하며 웃었다.

《허허… 앞으로만 냅다 달리겠다는 그 걸음을 대체 누가 막겠습니까. 차라리 길을 시원하게 내주는게 낫지.》

분명 심사숙고끝에 지지를 결심한 대답이였으나 그것이 너무 빙빙 에두르는 말같아 렴진욱은 짜증이 났다. 자기가 늘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파격적인 일감을 궁리해내면 정책적으로 잘 따져보고 그속의 빈구멍을 메꾸기 위한 보완대책까지 빈틈없이 세운 다음 동의해주는 전주석이였다.

따져보면 렴진욱의 이번 결심도 퍽 전부터 전주석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광산개발당시에 주신 전망적인 생산목표를 달성할 방도를 탐색해보라고 귀띔해오던데서 분발하여 착상한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렴진욱은 좋지 않은 어조로 대꾸했다.

《억지로 동의한다면 난 싫습니다.》

《난 뭐 속이 편한줄 압니까?》

전주석은 그때까지 손에 들고 주무르던 담배가치를 재털이에 집어넣었다.

《로동자들은 1년가까이 밤낮없이 생산을 내밀고있습니다. 그게 육체적힘이 남아돌아가서이겠습니까. 장군님을 모신다고 생각하니 힘든줄 모르고… 더더욱 용기가 솟구쳐 정신없이 일하니 그런거지. 그 정신에 난 눈물이 납니다. 지배인동문 장군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리자고 새 일감을 또 만들어냈는데 그건 아주 훌륭합니다. 우리 광부들도 마다하지 않을겁니다. 오히려 당위원회가 주저한다면 그들은 용서하려 하지 않을겁니다. 난 다만… 그런 좋은 광부들을 위해 뭔가 못해줄가봐… 내 힘이 딸릴가봐 겁이 난겁니다, 내 힘이 딸릴가봐!》

렴진욱은 전주석의 눈가에 물기가 그렁한것을 보았다.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올해 봄 당위원회는 갓 부비서로 된 리성혁의 주관하에 버섯재배장을 성공시켰는데 아직 그 량이 많지 못하여 한주일에 한번정도 광부들에게 맛보이고있었다. 한편 인민군대에서 기치를 들고 성공시킨 우량품종콩농사방법을 받아들여 도투골에 10여정보의 콩밭을 일쿤것도 부비서였다. 그런데 그것 역시 종자확보가 걸려 은을 못 내는 형편이였다. 그때문에 리성혁은 입술이 부르터서 올리뛰고 내리뛰고 했다. 당사업이자 후방사업이고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라는것을 심장에 새긴 젊은 당일군의 진취적인 모습이였다. 그러나 어쨌든 광부들의 식탁이 당장 눈에 띠게 이채롭게 풍성해지지 않아 전주석은 끙끙 앓는다고 했다.

광부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렴진욱도 마음이 괴로왔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 대한 미제의 책동이 날로 우심해지는 속에서도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대국건설구상을 높이 받들어 산악같이 일떠선 우리 인민, 구체적으로 광산로동계급의 의지력, 래일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더 굳게 믿고싶은 그였다.

그 순간 여태 잠자코있던 리정우가 눈을 들었다. 그 눈빛은 침울하게 흐려있었다.

《전 지배인동지가… 너무 주관적욕망에 빠지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

《생산능력을 두배로 조성한다는건…》하고 그가 침울하게 계속했다.

《기본적으로 선광장의 두배확장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선광장만도 광산개발 초기 6년이란 세월이 걸려 완공되였습니다. 그것도 각지에서 달려온 전문건설자들 만여명이 달라붙어서 말입니다. 물론 설비납입이 좀 지체되여 기일이 연장된것도 있지만… 그것을 지배인동진 우리 광산자체의 힘으로 한해어간에 끝내려고 합니다. 그 건설을 위한 자금조성과 설비자재확보기간을 빼면 불과 서너달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올해 가을도 래년에도 살림집은 계속 지어야겠지요? 그뿐입니까. 채굴장도 두배로 확장해야 해, 수송과 1차턱파능력도 두배로 조성해야 해… 교대를 또 하나 떼여 광부들을 잠도 안 재우고 일시키겠습니까? 일종의…망상입니다.》

렴진욱은 스스로도 자기의 눈꼬리가 치째지는것을 의식했다. 망상이라는 말마디가 특히 뼈아팠다. 리정우의 론거는 그가 이 며칠사이 수백번도 더 따져본 애로에 대한 반복이여서 노여워해야 할 아무런 까닭도 없었다. 그런 타산도 못해본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책임하고 무능한 일군의 태도일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망상으로 비추어졌을 때에는 어떻게든 가능성을 찾아 해보자는 립장이 아니라 덮어놓고 못한다는 패배의식의 투영인것이다. 분기를 누르자니 관자노리까지 쿡쿡 쑤셨다.

《놀랍구만.》

렴진욱이 휘파람같이 내뱉았다. 자제해보자고 애쓴때문이였다. 그는 다시 짓눌린 목소리를 내였다.

《얼마전 일총화때 난… 기뻤더랬소. 동무가 1차턱파기의 파쇄능력을 혁신하겠다고 선포하길래 배짱이 맞는다고 믿었단 말이요. 헌데 그건… 허풍이였소?》

《기술개조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술자들 몇이 머리쓰고 뛰면 되는…》

《그게 틀린거야!》끝내 울컥하여 렴진욱은 그의 말을 탁 잘라치웠다.

《옴쟁이 뭘 주무르듯 구조변경이나 좀 하는게 새 세기의 기술혁신이고 설비현대화라고 보다니, 기사장이란 사람이.… 특대형설비를 척 들여앉힐 궁리는 못했소? 지난 세기와 결별해야 할게 아닌가! 》

《그래서 하는 소립니다. 그걸 누가 세웁니까, 광부들이겠지요?》

리정우가 고집스럽게 반박했다. 다행히 전주석이 앞질러 끼여들었다.

《기사장동무, 동무말은 알만 한데 한가지만은 리해하고 넘어가야겠소. 지배인동문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자기의 목표로 삼았다는거요. 현존생산능력의 배를 바라신 그 유훈!… 그거야 죽으나사나 무조건 관철해야 할게 아닌가!》

《압니다.》 리정우는 이번에도 여전히 강경하게 받았다. 《문제는 그걸 언제까지 관철하는가 하는겁니다. 현재도 살림집건설때문에 생산이 숨가쁜데 그런 엄청난 짐까지 덧씌워지면 생산은 아주 죽고… 광부들도 못 견딥니다. 뭐 지배인동진 견딜것 같습니까? 병원에 알아보니 후두에 종물이 생겼다더군요. 이제 더 과로하면 목소리를 아주 잃을수 있다면서요?》

《그건 무슨 소리요?》

전주석이 꿈쩍 놀라 부르짖었다. 누구도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전주석은 노여워서 두사람을 쏘아보다말고 급히 전화번호판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당장 병원에 확인해보자는것 같았다.

《관두십시오. 기사장이 괜히 엄포를 놓은겁니다.》

렴진욱이 좀 바빠서 손을 내젓자 전주석은 꽥 소리쳤다.

《너무합니다. 이거 손톱 곪는줄은 알면서도 염통 곪는줄은 모른다더니 내가 큰일 칠번 했군. 안되겠습니다. 당장 병원에 갑시다. 내 눈으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전주석은 소란스럽게 걸상을 밀어제끼며 일어났다. 렴진욱은 노기등등하여 리정우쪽으로 홱 돌아앉았다.

《기사장! 이건 뭐요? 협의를 파탄시키자는건가?》

《난 사실을 말했습니다.》

리정우도 지지 않고 엇섰다.

《뭐 사실?…》분노를 짓씹어삼키느라 렴진욱은 악문 이새로 날카롭게 내쏘았다. 《옳지 않아, 기사장. 자기의 비겁을 가리우자고 광부들을 방패로 내대? 살림집이나 끝난 다음 보자는 속심같은데 광부들은 동무같지 않아. 그들은 자나깨나 우리 장군님을 하루빨리 모실 생각밖에 없어. 5년, 6년씩 그날을 미루다간 그때문에 심장이 터져 먼저 쓰러질 사람들이 우리 광부들이야!》

렴진욱을 들어일구려고 그앞으로 다가갔던 전주석은 심각한 이야기에 그만 우뚝 굳어져버렸다. 그다음 병원생각도 다 잊은듯 제자리에 도로 주저앉으며 한탄조로 중얼거렸다.

《심장이 터져 먼저 쓰러진다.… 그래그래! 나도 지배인동무와 꼭 같은 생각이요.… 앞당겨야지. 우리 장군님 모실 날을 앞당겨야 하구말구!》

또다시 오랜 침묵이 흘렀다. 렴진욱은 고개를 짓수그린 리정우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역시 자기가 광부들에게 무거운 덧짐을 지운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자 년초에 선광계통을 확장할 때의 한 사건이 어쩔수없이 상기되였다.

어느날 새벽 광산을 한바퀴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선광장에 이르니 마광기를 들여앉힐 새 기초충진을 하던 작업조가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무슨 모임인가를 하고있었다. 대렬앞에는 스물도 못되여보이는 새파란 처녀가 불리워나가있었다. 그가 울먹거리며 하는 말이 들렸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사실… 세멘트를 푸러 창고에 들어갔다가 갓 실어온 세멘트가 따뜻하길래… 따끈따끈하길래 그속에다 손을 넣고 잠간 녹인다는게 그만 깜빡… 정말 잘 생각은 아니였는데 그만 깜빡… 정말입니다. 제발 절 조에서 쫓지 말아주십시오. 이제부터 일을 배로 할테니 제발… 직장망신시켰다고 사람들이 용서 안할겁니다, 예?…》

그러고보니 무슨 총화모임이였다. 모든것이 리해되였다. 렴진욱은 처녀가 열흘째 들이댄 돌격전투의 피로가 겹쳐 그야말로 본의아니게 《그만 깜빡》했으리라는것을 믿었다. 처녀는 각 직장별로 선발하여 무은 림시 돌격작업조였으므로 자기 직장의 낯이 깎일 일이 무엇보다 겁난 모양이였다.

그때의 측은함으로 가슴 아릿하던 일… 하지만 그날 처녀가 표현한 《용서 안할것》단순히 직장망신뿐이겠는가. 위대한 장군님을 하루빨리 광산에 모시려는 광부들의 절절한 소망을 배신했다는 규탄이 아니겠는가.

아니, 결코 무거울수 없다. 어찌 스스로 기껍게 지는 짐이 힘겨울수 있으랴. 오히려 광부들은 어떤 《인정》에 끌려 헐거운 짐을 지우려는 리정우와 같은 일군을 결단코 용서치 않을것이다.

마침내 리정우가 소리없이 고개를 들었다. 젊은 그의 이마에 때아닌 잔주름이 쭉쭉 패인것을 렴진욱은 보았다. 무언가 심각한 회오의 세계속을 힘겹게 톺은듯… 아닐세라 리정우는 렴진욱쪽으로 몸을 돌리고 눈을 내리깐채 침중히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지, 제 생각이 좀 짧았다는걸 인정합니다. 광부들이 5년, 6년씩 기다려낼수 없다는걸… 그 측면에선 지배인동지가 옳았습니다. 그렇지만…》

리정우가 불쑥 눈을 들었다. 그 눈빛이 한층 고집스럽게 번뜩였다. 그는 언제 썼는지 모를 깨알같은 수자들이 잔뜩 렬거된 종이장을 렴진욱 앞으로 쑥 밀어보냈다.

《그건 이제 증설하려고 하는 마광기와 파쇄기들의 값과 우리 광산이 1년동안에 조성할수 있는 자금량입니다. 현재로는 설비현대화와 살림집건설을 전부 중지하고 그 돈을 몽땅 투자해도 설비값이 엄청나게 모자랍니다. 생산능력의 두배확장을 위한 건설을 광부들이 두석달어간에 뼈를 깎아서라도 해낸다고 합시다. 그러면 설비납입은 누가 해줍니까, 성에서요?》

렴진욱은 자기의 관자노리에서 피줄이 소리치며 풀떡거리는것을 똑똑히 의식했다 . 당장 벌컥 뛰쳐일어나 《에이, 이 패배주의자!》하고 리정우의 멱살을 들어내치고싶었다. 그러나 그를 걸상에 단단히 붙잡아놓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보지 않고도 그는 리정우가 내민 종이장우의 수자들을 똑똑히 알고있었다. 새로운 구상을 무르익힐 때 선참으로 타산해본것이 자금이였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마광기들까지 끌어들일만큼의 자금은 확보하기 숨가빴다. 그리하여 렴진욱은 그것들만은 종전처럼 페기품들을 재생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작정했었다. 어디서 얻어올데가 있는것은 아니였다. 그저 온 나라를 참빗질하듯 훑어서라도 무조건 끌어들여야 한다는 결심, 즉 하자고 결심한 사람앞에 방도는 나진다는 신심뿐… 하지만 바로 그런 신심만으로 기사장을 납득시켜낼수 있겠는가?

입귀를 괴롭게 실룩거리는 렴진욱의 궁한 모습이 보기 딱했던지 전주석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해야 한다는건 명백하고… 결심도 섰다고 봅니다. 그런만큼 구체적인 방도는 더 연구한 다음 다시 모여앉는게 어떻습니까?》

렴진욱으로서는 자기를 구원해준 전주석을 고맙게 여겨야 했다. 하지만 늘어빠진 심리가 그속에 깃든듯 하여 분기가 왈칵 치밀어올랐다.

《듣기 싫습니다. 어디 기사장이 하자는 립장입니까? 비서동지도 같습니다. 내게 이 일을 해보자고 귀띔할 땐 언젠데 이제 와서…》

전주석도 불끈했는지 맞받아 소리쳤다.

《지배인동문 뭘 잘했다고 큰소리입니까? 그래, 기사장동무의 저 단순한 질문에도 대답할 준비가 못돼가지고… 그러고도 어떤 자리를 마련했나 말입니다?》

《마광긴 어떡하나 내가 해결할테니 걱정마시오!》 하는 반박이 튀여나오는것을 렴진욱은 혀를 깨물어 삼켰다. 전주석이 옳았다. 그런따위 얼빤한 대답으로 이 중요한 협의회를 열었다는것자체가 지배인으로서는 하나의 경솔한 무책임성인것이였다.

명백히 자기는 기사장에게 오늘 졌다. 이기고 지는것이 문제는 아니였다. 일하자는 욕심을 너무 앞세우던 나머지 과학적인 주도세밀한 타산보다 조급성의 산물인 주먹구구식 사업설계를 제출한것이 문제인것이였다.… 수치감으로 렴진욱은 얼굴이 타들었다.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사업에서의 과실이고 형식주의였다.

따져보면 자기가 오늘 제출한 생산능력의 2배확장은 광산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너무도 방대한 자금과 자재, 설비를 요하는 전대미문의 전투였다. 사실 1년이라는 준비기간도 너무 짧았다. 그런만큼 치밀한 계획과 작전을 앞세우지 않고서는 실패를 면할수 없는것이다.

《내 안할 소리를 한가분데…》하고 전주석이 좀 미안쩍은듯 이마를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지배인동무의 심정을 모르는건 아닙니다. 결정을 먼저 해놓아야 꼬리사릴 구멍이 없어 앞으로만 내닫게 될테니까요. 이를테면 우리 마음속에 든든한 배수진을 쳐놓자는건데… 그건 옳소. 그러니 1년동안에 한다는 목표는 정해진걸로 합시다. 어떠시오, 지배인동무?》

반대할 리유란 없었다. 대신 그것은 렴진욱에게 시급히 방도를 찾아놓아야 할 의무를 지우는것으로 되였다. 그것 역시 스스로 짊어지기로 각오한터였다. 다만 괴로운것은 자기가 처음으로 똑똑치 못한 작전안을 내놓고도 량해를 구하여 통과받은듯 한 께름한 의식이였다. 과연 무엇이 이런 빈구석을 내게 만들었는가?

 

×

 

그날 저녁 전주석이 느닷없이 능글능글 웃으며 렴진욱의 팔을 잡아끌었다. 합숙구경을 가자는것이였다.

《내 좀 알아보니 그 누구더라?… 그래그래, 라은선이라는 녀성의 음식솜씨가 기막히다누만. 어떻습니까?》

첫순간 렴진욱은 몇시간전의 그 언짢은 감정마찰을 해소시켜주자고 엉너리치는줄 알았었다. 그러나 라은선의 이름을 되새겨보자 정신이 펀뜩 들었다. 생산능력확장이라는 아름찬 궁리에 골몰하다나니 김지택문제를 깜박 잊고있은것이였다. 애초에 합숙생들의 생활을 직접 료해해보기로 한것은 당비서와의 사전약속이기도 했었다. 렴진욱은 절로 얼굴이 붉어져 손을 저었다.

《근본을 놓쳤다는 비판인데… 좋습니다.》

개건 및 신설하는 공공건물들중에서도 첫번째대상에 들어가 품들여 꾸린 2층짜리 합숙은 설계원 김미화의 기발한 설계에 의하여 외양이 독특하면서도 매방들의 구조가 사용자들의 편리를 최대한 보장할수 있게 되여 중앙에서 내려오는 일군들까지도 혀를 내두르며 칭찬하는 정도였다. 특히 방안을 장식하는 가구들이 아주 품위있고 화려했다.

수도의 웬간한 식당을 찜쪄먹게 잘 꾸린 식당안에서는 꽤 푸짐한 식탁을 마주하고 웃음판이 펼쳐져있었다. 채광의 입도끼질이 자기 코보다 만만치 않은 굴착기중대장 주경철이 희떠운 이야기를 편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어머니, 아직 합숙밥을 작별할 생각은 없습니다. 너무 맛있으니까요.〉 그랬더니 처녀쪽 어머니가 실망해 돌아가선 동네사람들에게 뭐랬는지 아나? 〈그 총각 나무랄덴 별로 없는데 부족한게 딱 한가지 있더라니까.〉,〈그게 뭐시우?〉,〈뭐겠수, 우리 딸에게 무관심한거지.〉…》

또다시 터져오르는 폭소, 곁의 친구들이 주경철을 몰아대기 시작했다.

《거 형님 진짜 부족한게 하나 있구만요.》

《뭐야?》

《제 자랑하는 결함! 내가 처녀라면 형님의 그 코만 봐도 기겁해서 달아났겠어요. 아무렴 처녀의 어머니가 딸이 채웠는데도 그걸 자랑했겠어요?》

렴진욱은 빙그레 웃었으나 그들과 마주앉은 라은선은 무정한 김지택의 일이 련상되였는지 취사복앞자락으로 몰래 눈굽을 찍었다. 40대의 녀인치고는 희한할만치 뽀얀 살갗에 보동보동 살이 올라있던 라은선의 얼굴은 김지택과의 관계가 버그러져서인지 좀 까칠해보였다.

《…전 그이를 사랑한다는걸 구태여 감추고싶지 않았어요. 사랑이야 긍지이지 수친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이가 퇴원할 때도 드러내놓고 모셔왔던거예요. 헌데… 사람들은 그걸 부정한 행실로 보더군요. 그이 역시… 절 외면하기 시작하고… 설마 그런분일줄은…》

설음에 겨워 라은선은 또 눈굽에 손을 올렸다. 렴진욱이 조심히 물었다.

《처음부터 왜 가정을 합치지 않았습니까?》

《그건… 아들이 래년엔 군대에 나가게 될텐데 그때까진 눈치밥을 먹이기 싫어서…》

《잘못 생각했구만.》 전주석이 슬쩍 끼여나섰다. 《부기사장동문 지금 생활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에 처해있소. 그는 좌절감에 빠져있지요. 뭐랄가… 너무 사랑하면 눈이 멀 때가 있는것처럼 부기사장동문 채굴장을 너무 귀히 여기던 나머지 옳게 리용할 생각보다 덮어놓고 꿍져두려하고있는거요. 그것이 모두에게 배척을 받았지요. 아주머니도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시오. 아들을 구김살없이 키워 내세우면 좋지만 군대에 나가선 고향에 외로운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나왔다는 아픔이 계속 마음을 괴롭힐게 아니겠소. 훌륭한 새 아버지가 생기고 그 아버지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나면… 그건 큰힘일거요!》

라은선은 눈을 동그라니 뜨고 당비서를 쳐다보았다.

《그럴가요?》

그가 순진한 환희를 드러내보이며 속삭였다. 다음순간 녀인은 어깨를 떨었다.

《늦었어요. 이젠… 그이가 절 받아들이지 않아요.》

《아니지요. 자기에게 아주머니를 받아들일 자격이 없어졌다고 못나게 생각해서 그러지 결코 싫어서가 아닐거요. 사표를 내고는 그걸 제 인간금새까지 떨어진걸로 여긴단 말이요.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그의 직무를 보고 사랑한건 아닐테지요?》

《어쩌면!》 라은선은 원망스럽게 눈을 치떴다. 《그인 정직한분이예요. 헌신적이고… 그러면 됐지 무얼 더…》

《그러면 됐습니다. 아들을 앞세우고 찾아가십시오. 척 틀고앉으란 말입니다. 사랑만이 부기사장동무를 일떠세웁니다. 꼭 일떠서게 해야합니다!》

《그럼 그이를… 버리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허허…》

전주석이 드디여 라은선 못지 않게 심각해있는 렴진욱쪽을 돌아보며 웃었다.

《그건 저 지배인동무에게 물어보시오. 벌써 작정이 다 되여있으니.》

렴진욱은 좀 급하여 손을 내저었다.

《아, 저야 뭐… 비서동진 괜히…》

전주석이 눈을 뚝 부릅떴다.

《아니, 그를 버리면… 그가 광산을 떠나면 죽는다고 우긴게 누구길래 딴전입니까?》

《여기로 잡아끈건 누굽니까?》

《허― 이 사람들 소개한건 누구구?》

렴진욱과 전주석이 싸움하듯 목청을 돋구자 누구보다 급해한것은 라은선이였다. 그는 이쪽저쪽을 반갈아보며 가슴을 부여잡고있더니 불쑥 눈물이 그렁해서 속삭였다.

《제발… 전 이젠 믿습니다. 정말…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니 우린 괜히 다퉜군.》 전주석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더 눈총받기 전에 빨리 가야겠소.》

렴진욱도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났다. 얼마나 간단하게 일이 풀리는가. 모든 일이, 모든 사람문제가 말 몇마디로 이렇게 수월히 해결되여준다면!…

그러나 렴진욱은 곧 도리질했다. 라은선의 심장이 사랑으로 준비되여있었기에 그 호응도 빠르고 열렬할수 있은것이였다. 김지택도 꼭 그렇게 될것이다, 그 역시 광산을 그리도 열렬히 사랑하기에. 그러나 사랑엔 불꽃을 던져주어야 한다, 저 당비서처럼!

부지중 리정우가 떠올랐다. 자기를 빈틈없는 수자로 타승했던 젊은이, 그럼에도 그때 그는 승리자다운 우쭐한 표정대신 어떤 괴로운 사색을 좇듯 눈을 내리깐채 침울하게 앉아있었다. 그 역시 김지택과 다름없이 광산을 《귀중한 안해》로 사랑하건만 자기의 발기를 고집스럽게 한사코 반대하였다. 그것이 자기가 규정한것처럼 광부들을 방패로 혁신하기를 두려워하는 비겁성때문이였을가? 아니, 현실을 랭정하게 투시하는 일종의 면밀성이라고 좋게 볼수도 있지 않을가?

어쨌든 그에게 꼭 대답은 주어야 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것이다. 능청스러운 당비서도 그걸 바라고 이 걸음을 조직했으리라.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골똘한 생각을 굴리는데 마침 밥을 먹고 나오던 주경철이 차렷자세를 해보였다. 렴진욱은 짐짓 눈을 찔 흘겼다.

《뭐 합숙밥 리별할 생각이 아직 없다구?》

《왜요?》 주경철이 히쭉 웃었다. 《아직 갱장이 못돼서 그러지 그땐 제꺽 장가를 갈 계획입니다.》

렴진욱은 얼결에 전주석쪽을 힐끔 돌아보았다.그를 진짜 갱장재목으로 점찍어두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걸 어느 사이 냄새맡았는가?… 전주석은 그저 흐물흐물 웃을뿐이였다.

《그건 어째서?》

《아, 그래야 그만한 금새를 가진 처녀를 낚을게 아닙니까.》

《우린 동물 갱장시킬 생각도 안해봤어!》

《아이쿠, 장간 다 갔네.》

주경철은 짐짓 이마를 치며 아부재기를 쳐보였다. 그것이 썩 밉지 않아 렴진욱은 엄한 시선속에 그를 끌어들이며 따졌다.

《누가 그따위 출세를 꿈꾸는 허튼 바람을 불어넣었어?》

또 히들거릴줄 안 주경철이 이번에는 아주 진중하게 대답했다.

《지배인동지, 당비서동지, 군대에서 전사는 분대장, 분대장은 소대장의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회도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양하도록 준비한다는건 나쁜 일이 아니지요.》

녀석이 제법이다.… 렴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꼭 비슷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젊은 시절과 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다르다면 주경철은 인민군대에서 배운 높은 자각과 량심으로 사심없이 이 사회를 떠받들 목표를 지니고있는것이였다. 그가 이미 지질대학 통신수업을 받고있다는것을 렴진욱은 알고있었다. 그것은 그의 굳센 지향이 무엇인가를 뚜렷이 보여주고있었다. 지향이 없는 인간은 앉은방아를 찧기마련이다. 광산운영 역시 그와 다를바 없는것이다!… 렴진욱의 머리속에서는 광산의 생산능력을 두배로 끌어올리려는 자기 결심이 옳은것이였다는 확신이 일층 굳어져갔다. 그때에 대비하여 광부들을 군대에서처럼 《만능광부》로 준비시키는것도 미룰수 없는 과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자면 각 갱, 직장들에서 진행하는 기술학습의 내용을 더욱 폭넓게 깊이 심화시키며 그 강도를 높여야 할것이다.

《아직 빈틈이 많았군요. 빨리 여길 들려봤을걸…》

밖을 나서며 렴진욱은 전주석에게 가책조로 중얼거렸다.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을 자기는 여태 놓쳤었다. 새 세기는 그에 맞는 높은 수준의 설비현대화뿐아니라 고도의 현대적과학기술로 무장한 생산자― 전투대오를 마련할것을 요구하고있는것이였다. 새삼스레 전주석이 고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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