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날은 급격히 어두워갔다. 김지택은 그것도 모르고 책상에 마주앉아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았다. 시작을 떼다만 편지가 그앞에 펼쳐져있었다.

《채취공업성당위원회앞.

본인은 연하광산 기술부기사장 김지택입니다. 최근 광산에서 벌어진 극히 중대하고 파국적인 사태와 관련하여 본인은 공민적량심을 저버릴수 없어 이 편지를 쓰게 되였습니다. 광산지배인 렴진욱은…》

여기까지는 일총화가 끝나자 즉시 달려와 단숨에 휘갈겨쓴것이였다. 가슴에서 끓고있는 의분과 《중대하고 파국적인 사태》를 환히 알고있는 그자신의 촉박감으로써는 더이상 용인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일총화마당에서 피토하듯 경고를 하긴 했으나 그쯤으로 물러설 렴진욱이 아니라는것을 너무도 잘 아는 그였다. 오직 《중앙》의 막중한 권력만이 렴진욱을 저지하고 제압시킬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정작 렴진욱의 이름을 쓰고나니 불현듯 자기가 어떤 비렬한짓을 하고있는게 아닐가 하는 막연한 불안이 갈마들어 끝내 뒤줄을 잇지 못한것이였다. 지금껏 이런 주저감때문에 몇번이나 편지를 쓰려던 결심을 실행하지 못한 그이기도 했다. 광산실태를 뻔히 알고 올라간 박치명조차 손을 못쓰고있는터에 성당이 자기따위의 상소를 무겁게 대해줄것 같지도 않았다.

갑자기 비소리가 요란해졌다. 동시에 부엌출입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이어 비소리는 다시 멀어졌다. 김지택은 무심히 부엌쪽을 스쳐보고 고개를 돌렸다가 어떤 감촉에 다시 홱 돌아섰다. 그러자 부엌문설주에 유령같은 희끗한 형체가 오도카니 굳어져있는것을 발견했다.

심장이 대뜸 라은선이라고 귀띔했다. 김지택은 절로 울대뼈가 꿀꺽했으나 애써 랭담한 태도를 취하며 툭 내질렀다.

《왜 왔소? 다신 찾지 말라고 했는데.》

《사표를 내셨다는게… 사실이세요?》

숨죽인듯 한, 그러면서도 초조하게 떨리는 반문이였다.

《그렇소!》

《어쩌면…》

비명같은 탄식… 합숙이야말로 광산의 모든 소식이 재빨리 집중되고 분석되여서는 또 재빨리 전파되는 소식통중심이였다. 미상불 자기와 라은선과의 관계를 잘 아는 합숙생들이 그에게 제꺽 통보했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했다. 김지택은 여리여지는 마음을 꾹 누르며 더 무뚝뚝하게 내뱉았다.

《임자 내 마음을 든장질할 생각일랑 말구 어서 가보라구.》

어스름속에서 라은선이 가느다란 흐느낌을 터뜨렸다.

《알아요, 알아요.》 녀인이 몸부림처럼 속삭였다. 《제가 이젠 시끄러워지셨다는걸… 알아요. 물러가겠어요. 하지만… 사표는 거두어주세요. 지금 온 광산이 채굴장에서 날을 꼬박 밝히는데 부기사장이 이러고계시면 모두들 뭐라겠어요?》

《흥, 부기사장? 이젠 다 몰라. 난 부기사장두 광산사람두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절로 역증이 터져 김지택은 꽥 소리질렀다. 순간 녀인의 몸이 문설주밑으로 흐트러져내렸다. 그가 또 흐느낌을 터뜨렸다.

《부탁해요, 절 버리더라도 광산은 버리지 말아주세요. 연두봉에 뼈를 묻어주세요!》

비소리가 왈칵 커졌다가 다시 멀어져버렸다. 비로소 김지택은 라은선이 방에서 나갔다는것을 알았다.

마음이 구깃구깃해졌다. 녀성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그였다. 병자였던 안해를 오랜 세월 시중들어온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처한 후로 아들과 번갈아가며 부엌동자질하는것이 무척 고달파지자 녀성이라는 존재의 절박성을 뼈저리게 감득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런 측면에서 라은선은 김지택에게 거의 감지덕지한 대상이였다.

특히 퇴원하는 날 도에까지 찾아와 자기를 광산으로 버젓이 부축해준 그 녀자의 태도에서는 세상의 뒤소리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끝까지 자기를 받들려는 결심이 내비쳐져 김지택을 더욱 감동시켰다.

하지만… 그때부터 김지택은 라은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병원에서 방수벽이 터지는 꿈을 꾼 순간에 자리를 내놓을 결심이 서가기 시작한 그였다. 렴진욱지배인에게 한 말은 솔직한 심정 그대로의 토로였다. 볼품없는 늙다리병자꼴에 부기사장이라는 지위까지 없고보면 라은선이 자기에게서 무엇을 긍지로 찾아볼수 있겠는가. 나중에 후회와 한탄의 눈물을 짜게 만들기보다 미리 정을 떼게 하는것이 옳다.…

그랬음에도 라은선은 자존심과 굴욕감모두를 무릅쓰고 찾아와 호소했었다.《연두봉에 뼈를 묻어주세요!》… 김지택은 울적해났다. 광부들은 흔히 구실 못하는 사람을 두고 《연두봉에 묻힐 자격없는 녀석》이라고들 한다. 대를 이어 광산을 지키고 받들려는 자기들의 마음에 대한 형상적표현이였다. 그렇게 자기 역시 한생을 광산과만 결부시켜왔었건만!

아픔이 배를 쑤시기 시작했다. 차라리 병원에 그냥 입원해있었더라면… 김지택은 쓰겁게 웃었다. 자기가 결코 그냥 배겨낼수는 없었으리라는것을 잘 알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정작 달려나와보니 해독적인짓만 골라하던 청주가 버젓이 제자리에 돌아와 더더욱 극성스럽게 방수벽을 깎아먹고있지 않는가. 그것은 의로운 자기 주장에 대한 전면부정이였다.

혹시 그네들 주장처럼 방수벽이 당장 위험하지는 않을수도 있다. 갱정을 그런 식으로 낮춘 덕에 사라졌던 고품위가 꽝꽝 쏟아지기 시작한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래일엔? 끊임없는 발파진동에 층서가 발달되면 기필코 물은 샐것이고 나중엔 터지고야말것이다. 결국 그네들은 눈앞의 생산만 알고 래일은 아랑곳할바 아니라는 1차원적립장이다. 래일까지 책임질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어찌 애국심이 있다고 하랴!

눈앞으로 시퍼런 불줄기가 건너가더니 꽈르릉!― 천둥이 터졌다. 집이 부르르 뒤흔들렸다. 김지택은 소스라쳐 뛰쳐일어났다. 금시 방수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환각에 사로잡힌것이였다.

비발이 얼굴을 후려갈겨서야 김지택은 자기가 밖으로 달려나왔다는것을 깨달았다. 한순간 《난 사표를 냈다.》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으나 이미 발은 진창을 걷어차며 어딘가로 내달리고있었다. 그렇다, 방수벽이 위태로운데 개인적울분이나 체면때문에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을수 없는 죄행이 아니겠는가.

헐썩거리며 어두운 골목길을 달려가던 김지택은 발밑이 물큰하는통에 황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순간 어둠속에서 웬 로파의 고함소리가 천둥못지 않게 터졌다.

《눈이 멀었느냐? 블로크를 밟겠으면 날 밟아라, 날!》

거의 동시에 전지불이 확 켜지며 눈을 찔렀다.

《허, 부기사장어른인걸… 안됐수다.》

여겨보니 공교롭게도 청주의 어머니 심씨였다. 심씨는 우산을 쓴채 우들우들 떨며 비닐박막을 바로잡고있었다. 비옷이며 나래, 비닐마대 등 쪼박쪼박 씌워놓은 블로크들이 길섶에 주런이 늘어서있었다.

선참 새집을 받고 감동된 심씨는 그때 꺽꺽 울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보슈들, 이게 광산이였구려. 구실 못하는 내 아들두 버리지 않고 품어주는게… 이게 광산이였구려.》

그때부터 심씨는 골골 앓는 몸이였지만 극성스럽게, 거의 필사적으로 블로크찍기에 나서고있었다. 어떤 때에는 허리가 너무 쑤셔 벌벌 기다싶이 집으로 들어가군 했는데 그러고도 이튿날 출근길에 보면 그가 다시 삽을 들고 진흙을 이기는것이였다.

심씨가 전지불로 길을 비쳐주며 말했다.

《어서 가보시우. 장난꾸러기 애녀석들이 자꾸 밟아놔서 초저녁엔 잠을 잘수 없다우.… 어서 가보시우.》

김지택은 휘청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상한 기분이였다. 블로크 몇장이 아까와 잠도 못 자고 우들우들 떨며 지키는 로파, 그의 가슴에 끓는것은 무엇일가, 광산의 래일이 부흥하리라는 확신? 아니면 단순히 무보수로동과정을 거쳐 새사람이 된 아들 일에 대한 고마움? … 어쨌든 저 로파는 자기 아들때문에 채굴장이 물에 잠겨 온 광산이 망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것이다.

1차턱파장을 방금 지나 채굴장쪽의 경사지길에 접어들었을 때 눈부신 전조등빛을 앞세우고 육중하게 마주올라오던 자동차가 멎고 문이 열렸다.

《타게나.》

목소리로 김지택은 운전사가 옥준보로인의 아들임을 알았다. 자기와 같은 흔치 않은 연하토배기인데다가 나이도 동갑이여서 너나들이로 지내는 오랜 친구였다.

《가게, 난 채굴장으로 가는 길이야.》

《원, 광석을 부리고 돌아서잖으리.》

《뭐, 광석? …》

김지택은 어리둥절해있다가 훌쩍 몸을 날려 차발판우에 뛰여올랐다. 아닐세라 적재함에는 비에 젖어 거무칙칙한 광석이 산같이 실려있었다. 김지택은 몸이 떡 굳어졌다. 적어도 만수위의 압록강수압때문에 방수벽이 무너질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기대들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올리는 차중의 하나일것이라고 여긴 그였다.

《아직두… 아직두 채굴작업을 한단 말인가?》

턱이 떨려 간신히 내뱉자 친구는 실내등빛속에 버룩 웃었다.

《타겠나, 안 타겠나?》

《젠장, 빨리 몰게!》

만짐이여서 차는 무섭게 용을 쓰며 턱파장조구통둔덕으로 기여올랐다.

《우리 운전사들은…》하고 마침내 친구가 김지택의 앞서의 질문을 념두에 둔듯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하루밤이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푹 쉬였으면 하지. 스물네시간 내처 자보게 말이네. 헌데… 자네가 그 소원을 풀어주자고 나섰다며?》

《?…》

《채굴을 중지하고 방수제방부터 쌓자고 들고일어났대? 그러면야 수송이 팔자 늘어지지.》

김지택은 버쩍 경계심이 들었다. 늘어진 친구의 말에서 야유조가 너무 짙게 풍겼던것이다.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린가?》

신경이 곤두선 김지택이 곱지 않게 따지자 친구는 다시 버룩 웃으며 왕청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우리 수송에 갓 장가간 친구가 하나 있네. 연남령너머 읍에서 색시를 데려왔지. 헌데 정작 살림을 펴놓고보니 한달이 되고 두달이 가도록 남편이 자기곁에 와줘야 말이지. 그저 대충 자고는 달려나가고 들어오면 또 혼자 자고…》

이야기는 끊어졌다. 차가 조구통앞에 닿은것이였다. 꽁무니를 돌려댄 차는 와르륵!― 하고 광석을 쏟아부었다. 즉시 까마득한 밑에서 쾅당거리며 광석을 바수는 턱파기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김지택은 그때에야 멀리 굽어보이는 채굴장이 아찔한 갱정으로부터 박토를 제끼는 건설갱에 이르기까지 사방 어디나 야외작업등빛으로 눈부시게 환한것을 발견했다. 그 불빛속에 굴착기들의 팔이 맹렬히 휘돌고 광석차들도 줄지어 채광계단을 오르내리고있었다.

저러다 방수벽이 터지면?… 김지택은 오금이 저리고 가슴마저 써늘해졌다. 갈데 없었다. 지배인은 자기가 사표를 선포하면서까지 위험을 경고했음에도 귀등으로 스치고 배포유하게 방수벽을 계속 깎아먹고있는것이였다.

《빨리 돌리게, 빨리!》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리라는 작정도 없이 김지택은 소리쳤다. 가슴을 들이대고라도 재난을 막아야 했다, 지배인의 멱살을 잡아끌어서라도!

그럼에도 친구는 유유히 차를 몰며 좀전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겨우 명절날이 차례져 오늘에야 한잠자리에 들어주겠지 하고 그… 뭐라더라? 옳지, 목욕재계를 하고 좋은 이부자리까지 펴놓았다네. 헌데 또 드러눕기 바쁘게 코를 골기 시작한 남편이 새벽이 다 되도록 어디 손가락하나 다쳐줘야 말이지. 그만 서러워지고 발끈해지기도 한 색시는 에이, 이 곰통! 하고 남편의 팔을 죽어라 하고 꼬집었다는걸세. 그러자 화닥닥 놀라 뛰쳐일어난 남편이 〈벌써 교대시간이야?〉하고는 옷도 변변히 못 꿰고 밖으로 뛰쳐나가더라네. 색시는 너무 기가 막혀 눈물을 좔좔 쏟았지. 그제야 남편이 무슨 사윤지 짐작하고 얼렸다네. 〈이봐, 그래도 난 하루 절반은 잠잘 시간이라도 있어. 그러나 우리 지배인은 그 잠을 아주 버리고 살아. 제 주머니를 채우자고 그렇게 뛰나? 우리 광부들 잘사는 모습으로 어버이장군님께 기쁨드리자고 그러는거지. 이런 사람이 하는 일을 받들어 따르지 않으면 내가 뭐가 돼, 응?〉…》

초조감에 등이 달대로 단 상태에서 들은 이야기여서 귀에 잘 새겨지지도 않았거니와 알짜 꾸민것이 헨둥한 그 이야기가 자기의 립장을 빗대고 비난하는것임이 뻔하여 김지택은 울컥했다.

《실컷 따르게, 실컷!… 세우라구. 난 내리겠네.》

이미 채굴장중간계단까지 내려온 때였다. 괘씸한 생각에 문짝을 쾅 후려닫고 밖에 나서니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이미 즘즛해져있었다. 대신 압축기와 착암기, 굴착기들의 동음이 채굴장을 엄청나게 공명시키며 그의 귀청을 때렸다.

그 소리가 갑자기 김지택에게 위압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불가사의 한 힘을 과연 내가 제지시켜낼수 있단 말인가. 오금이 저리도록 무시무시한 재난의 위협앞에서도 주눅이 들 대신 오히려 호호탕탕하기만 한 저 사람들을, 바로 저런 사람들의 의지에 떠받들려있는 지배인을?…

갑자기 등뒤에서 요란한 자동차경적이 울렸다. 비로소 김지택은 자기가 얼없이 길복판에 버티고 서있었다는것을 깨닫고 후닥닥 물러섰다.

자동차가 지나칠듯 하더니 급정거하고 차문이 열렸다.

《부기사장동지!》하면서 냉큼 뛰여내린것은 자기와 방금 한차에 탔던 친구의 딸 옥수금이였다. 《갱정으로 내려가시면 타십시오. 우린 내립니다.》

김지택은 다시한번 놀랐다. 운전칸에서 이번에는 옥준보로인이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내렸던것이다.

《이보게 부기사장, 임자 자릴 내놓겠다구 했다면서? 연두봉에 묻힐 생각이 없어졌나?》

옥로인이 롱비슷이 그러나 저으기 준절하게 꾸짖었다.

《…》

이밤 벌써 두번째로 듣는 《연두봉》소리였다. 김지택은 더이상 따지지 않고 수금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지척지척 걸음을 옮기는 로인의 뒤모습을 이를 앙다물고 지켜보았다. 왜서인지 기가 질렸다. 옥준보로인이라면 그래도 자기의 애타는 심정을 충분히 리해해줄듯싶었었는데 쓴 오이보듯 경멸하고 지나쳐버린것이다. 모두가 나를 버리고 물러나고있다. 친구도 그의 아버지인 옥로인도 지배인과 리정우기사장도 저 수금이도 지어 라은선까지도!

가슴터질듯 한 쓸쓸함과 고독감에 김지택은 망연히 굳어져버렸다. 인생자체가 나를 버렸다. 아니, 이것이 내가 인생을 버려 차례진 귀결이라면?! …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