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8
쾅!― 쾅!―
발파의 폭음이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맞은편 산릉선을 따라 구을러내리다가 그아래 아찔한 협곡에 부딪쳐 절벽을 쪼갤듯 울부짖었다.
《앞으롯!―》
다부진 체격의 건설과장 겸 돌격대장이 기발을 흔들며 구령쳤다. 그러자 대기하고있던 불도젤이 삽날을 번뜩이며 방금 발파로 무너져내린 바위코숭이를 밀어제끼기 시작했다. 일명 딸기봉이라고 불리우는 해발 천여메터에 달하는 산마루어름이였다. 심산오지에 솟은 봉우리인데다가 경사가 너무 급하여 사람들이 발을 붙이기도 힘든 천험의 산이였다. 바로 거기에 벌목작업을 위하여 도로를 닦고있는것이였다.
렴진욱은 지끈지끈 쑤셔나는 허리의 아픔을 이를 악물어 씹어삼키며 다음 발파위치인 날카롭게 치솟은 령정점을 향해 지팽이를 내짚었다. 그뒤로 착암공들이 이동식압축기를 지레대로 한치한치 떠올리며 따라왔다.
《지배인동지!》
착암기를 기관총처럼 둘러멘 배오철이라는 새파란 굴진공이 숨가삐 불렀다. 청년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비자루같이 뿜어나왔다.
《이 산을 왜 딸기봉이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렴진욱은 눈을 찌긋하는것으로 대답을 재촉하고싶었으나 안면근육이 모두 얼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젊은이의 불깃불깃한 얼굴을 부럽게 바라보며 간신히 혀를 놀렸다.
《몰라, 대주겠나?》
《물론이지요!》 배오철이 으쓱하여 대답했다. 《옛날에 귀양살이를 온 한 선비가 이 아래 도투골에서 살았는데 하루는 딸기가 몹시 먹고싶었더랍니다. 서울에서 호의호식하며 공자왈맹자왈 할 때 하녀들이 목마를세라 받쳐올린것이 딸기였다나요. 한데 도투골이야 워낙 심산오지라 한사발만 먹어도 대구 설사를 하는 다래밖에 있어야 말이지요. 물론 그 맛도 아주 좋기는 한데 서리 내리는 가을까지 기다리자니 아뜩하고… 그때 도투골의 우두머리메돼지가 귀양와서도 글밖에 모르는 선비의 읊조림에 그만 세상리치를 깨닫고… 아주 오래 산 놈이여서 사람말도 가려 듣는 정도였지요. 그렇게 세상리치를 깨닫게 해준 선비가 고마와 저 멀리 연남령너머에서 훔쳐먹고온 딸기배설물을 이 봉우리양지쪽에 쭉 싸놓고 선비에게 말했지요. 〈량반나으리님, 래년 여름 큰 싸리바구니를 끼고 여기에 올라오시와요!〉… 정말 이듬해 여름에 와보니 이 험한 봉우리에 새빨간 딸기가 쫙 깔려있지 않겠습니까!》
배오철은 자기가 선비이기라도 한것처럼 일인칭으로 넘어가며 제법 군침까지 꿀꺽 삼켜보였다. 새 착암위치를 잡느라 분주하던 착암공들이 껄껄거리며 시까슬렀다.
《여, 오철이, 누나들 무릎베고 들은 꿈이야기지?》
《메돼진 산중턱의 등고선을 따라 돌지 이런 산마루엔 오르지 않아.》
《저 친구가 춘애 꽁무니만 정신없이 따라다니더니 그 우두머리메돼지처럼 길을 헛갈렸어.》
배오철은 약이 올라 코끝까지 새빨개서 그들에게 대들었다.
《이거 형님들 혀를 다 잘라 두릅을 만들어야겠어요? 이 아래 사냥군 코바지한테 〈선봉〉담배 한갑 주고 겨우 얻어들은 전설이란 말이예요.》
렴진욱도 기껍게 웃었다. 배오철이야말로 담배 한갑쯤은 아끼지 않고 그런 전설을 입수해올만 한 난돌이였다. 어떤 경우이든 사람들앞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위해 갖은 기회, 갖은 수단을 다 리용하군 했던것이다. 오히려 간고한 도로개척전투를 위해서는 그 웃음이 고맙고 대견하기도 했다.
다음순간 렴진욱은 어이없어 《허―》하고 혀를 찼다. 배오철이 어느 사이 벼랑턱 맨 꼭대기에 기여올라 착암기를 박고있었는데 안전바줄을 손목굵기만 한 고로쇠나무에 걸고 우정 몸을 휘친휘친해보이는게 아닌가. 용감한 자기 모습을 지배인이 보아주었으면 하고 모험하는것이였다.
《배오철이 이녀석, 당장 내려와!》
렴진욱이 성나서 꽥 소리질렀다. 일단 그 나무가 꺾이면 배오철은 천길낭떠러지아래로 굴러떨어지고말것이다. 사납게 치째진 지배인의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는 모양 배오철은 실뚱해서 엉금엉금 기여내렸다. 그러면서도 군소리같은 변명은 잊지 않고 내뱉았다.
《그렇게 률동을 보장하면 착암기가 더잘 뚫는데…》
렴진욱은 그의 머리를 호되게 쥐여박았다.
《이녀석, 우리가 이 도로를 왜 여냐? 말해봐!》
《저 통나무…》
《네가 장가가서 살게 될 집을 짓자는거야. 네가 죽은 다음에야 그 집은 해서 뭘해? 그리고… 잘 알아둬. 난 눈이 뒤에 붙어있어서 앞에서 우쭐렁거리는 녀석들은 볼줄 몰라!》
젊은이의 의욕과 혈기를 꺾는것 같아 언짢았지만 맞대놓고 망신을 주지 않을수 없었다. 드러내놓는 열성이란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는 일종의 아첨과도 같은것이다. 그것이 곧잘 배신으로 뒤집히기도 쉽다.
또다시 회오리치는 눈보라소리를 삼키며 착암기들이 맹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벌써 열흘째 그들은 도투골이라는 산골체취가 물씬 풍기는 지명의 협곡에 천막을 치고 통나무채벌을 위한 쉽지 않은 도로개척전투를 벌리고있었다. 연남령의 《내리면서 60리》중간에서 인적 하나 없는 숲을 뚫고 40리나 깊숙이 들어온 골안이였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골짜기와 령마루들,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골개수가 엇갈려 가로막혀 옛 사냥군의 오솔길만 허리치는 눈에 묻혀있을뿐 아직 림산로동자들은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못 내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투골은 아름드리 분비와 가문비, 봇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들메며 미루나무들이 사람의 몸도 비비고 들어갈수 없게 꽉 우거져있고 썩은 진대나무와 강대들이 걸음마다 앞을 막았다.
렴진욱이 노린것이 바로 이 점이였다. 목재사정이 최대로 긴장한 때였으므로 도림업관리국에서는 연하광산이 년간에 받게 되여있는 목재조차 대주지 못하고있었다. 오히려 나라의 귀한 재부인 산림을 파괴하려드는가고 엄하게 추궁하기까지 했다.
그때 렴진욱이 날카롭게 반박했다.
《도투골막바지의 봉우리들엔 아까운 나무들이 선채로 썩어버리고있습니다. 해방전부터 도로는 물론 발붙일 자리도 없이 한대도 찍어내리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산림자원을 고스란히 썩이겠습니까, 아니면 순환식채벌방법을 도입하여 다 자란 나무는 제때에 리용하고 뒤그루묘목을 심어 새 숲을 키우겠습니까?》
관리국장은 흥미가 동한듯 했으나 여전히 미심쩍게 고개를 기웃거렸다.
《동무네 거기서 나무를 찍어선 어떻게 끌어낸다는거요? 운채길이란 있어보지도 못했고 낼수도 없는 곳인데… 비행기로 나르겠소?》
《그 운채길을 내지요.》
《여보, 경사가 50도를 넘는 천험의 40리길이요. 설사 길을 낸대도 자동차를 다 굴려먹을거요.》
《광부들은 해냅니다.》
렴진욱의 목소리가 오히려 조용하고 침착하게 울린것이 관리국장의 심금을 흔들어놓은것 같았다. 그는 렴진욱의 약간 휘우듬한 독수리부리코에 부드럽게 웃고는 있으나 일단 성나면 사납게 치째질것이 분명한 눈이며를 호기심에 넘쳐 훔쳐보더니 불시에 활기를 띠고 말했다.
《뒤그루묘목까지 심으며 찍는다!… 그렇다면야 누가 마다하겠소. 그러지 않아도 썩어가는 그 숲이 아까와 속을 앓던 판인데. 찬성이요. 대신 우리에게 절반은 넘겨줘야 합니다.》
아주 간단히 합의점에 도달한것 같았으나 실은 그러한 도투골의 상태를 정찰하기 위해 렴진욱은 며칠씩이나 산을 톺다가 벼랑에서 굴러 허리까지 다쳤던것이다.
보다 힘겨운것은 벼랑을 폭파해치우고 나무그루터기들을 뽑고 다리까지 놓으며 도로를 내는 일이였다. 100여명의 돌격대와 착암명수들, 불도젤운전공들은 누구나 손발이 얼어 벌겋게 부어오른 상태에서 매일같이 악전고투를 벌리고있었다. 특히 렴진욱은 측량공들을 이끌고 허리치는 눈을 앞장에서 헤치며 도로위치를 정해주느라 볼편살이 거무스레 죽도록 동상을 입은것은 물론 다친 허리의 아픔이 갈수록 심하여 밤마다 잠을 못 자며 끙끙 앓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침이면 또 선참 일어나 지팽이에 의지하여 산을 톺군 했다.
《넘어간다!―》
머리우에서 호기있는 부르짖음과 함께 아름드리 미루나무 한대가 빙그르르 돌면서 눈사태를 일으켰다. 다음순간 나무는 쾅 하고 벼랑에 부딪쳐 몸부림치듯 튕겨올랐다가 그밑의 잡관목들을 우지끈지끈 부러뜨리며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잠시후 뽀얀 눈보라장막에 묻힌 아찔한 골짜기바닥으로부터 쿵!― 하는 소리가 웅글게 메아리쳐왔다.
얼마나 높은 곳까지 우리는 톺아올랐는가. 머리칼이 쭈볏 곤두설 정도의 현실적감각이였다. 하지만 렴진욱으로서는 달에 날아올라가 계수나무라도 찍어내리고싶은 심정이였다. 청주가 불도젤앞을 막아섰던 날 강연회에 출연하여 21세기에도 손색없을 멋진 집을 몇해안팎에 전부 지어주겠노라 약속한 그였다. 하물며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살림집건설은 광부들을 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래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 인민이 실질적으로 그 덕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가슴뜨거운 가르침을 받아안은 그임에랴!
휴식참에 후방부지배인이 돼지를 비롯한 후방물자를 싣고 나타났다.
그의 이마는 어째서인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에― 차를 타고 오르느라니 길이 아니라 하늘만 보이더군요.》
그런데 근심으로 찌프려진 그의 얼굴을 보니 단지 아짜아짜한 자동차 행군때문만은 아닌것 같았다.
《박치명부국장이 어제 도착했는데 지배인동지를 당장 내려오도록 하라고 야단입니다. 기사장동지를 몹시 닥달하던데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방수벽때문일것이라는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되였다. 그러지 않아도 얼마전 전화상으로 심각한 충돌이 있었던 그들이였다. 그때 박치명은 펄쩍 뛰며 만약 방수벽에 손을 대면 법적추궁까지 하겠노라 위협하다가 렴진욱이 김청주의 과학적계산을 믿는다고 그루박듯 하자 얼리는 식의 타협안을 내놓았었다.
《정 그러면 내 지질전문가들을 데리고 내려가 다시 검토해볼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오.》
삭도페기때의 교훈도 있었으므로 렴진욱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냥 일을 내밀었다. 그 사실이 알려져 노해서 달려내려왔는가?…
그때에야 렴진욱은 후방부지배인의 등뒤에서 다소곳이 인사하는 중년녀인을 보았다. 건설과의 설계원 김미화였다. 얼마전 렴진욱이 직접 좋은 살림집표본들을 사진찍어오라고 평양으로 떠나보냈었는데 과업을 수행한 모양이였다.
《수고했소. 그래 가져왔겠지?》
《예, 좋다는건 다 찍느라고 했습니다.》
수집게 웃으며 말했으나 김미화의 표정은 좀 자신있는듯 한, 자랑스럽기까지 한 빛이였다. 그러나 수십장이나 되는 사진을 일일이 펼쳐본 렴진욱의 입은 꾹 다물려졌다. 확실히 사진속의 각양한 살림집들은 경탄을 자아낼만 한것들이였다. 전형적인 조선식기와집으로부터 화려한 로대나 옥상이 달린 살림집과 휴양각, 지어 어느 수림속에 아늑히 들어앉은 어떤 자그마한 연구소건물까지도 있었다. 물론 도시구획안에서는 현대적미감에 아주 어울릴것이다. 하지만 대개가 지내 요란하고 구조와 형식이 복잡할뿐더러 우선 그대로 짓자면 품과 자재가 엄청나게 랑비되고 북방고유의 특색도 다 사라질것이 분명했다.
렴진욱은 곧 돌격대원들을 불러 그들에게 사진을 돌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여나왔다.
《이거 별장같구만.》
《하― 이런데서 살면 엉치에 털이 나지 않을가?》
《문고리를 잡기가 걱정스러운데.》
《지배인동지, 이대로들 짓습니까?》
《마음에 드오?》
《예!―》
거의 모두가 일시에 흥겹게 소리쳤다. 렴진욱은 불만스레 지팽이를 내저었다.
《아니, 난 싫소. 별장같이, 궁궐같이 짓자는덴 나도 찬성이요. 하지만… 장군님께선 우리 연하광산에 꼭 한번 들려보겠다고 말씀하시였소. 그 영광의 날이 와서 장군님께서 광산마을을 돌아보신다면… 어떤 집을 마음에 들어하실것 같소? 우리 북방땅에서만 볼수 있는 이채로운 집, 우리 광부들처럼 담대하고 소박하면서도 새것을 열렬히 지향하는 기상을 닮은 그런 특색있는 살림집들일것이라고 난 믿소. 왜냐면 장군님께서는 우리 광부들을 너무 잘 아시고 그만큼 사랑하시기때문이요. 그러니 집도 진짜 광부맛이 나는걸 좋아하실게거던.》
모두 숙연한 생각에 잠겨들었다. 유독 설계원 김미화만은 괴로움에 잠겨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렴진욱은 빙긋 웃었다.
《걱정할건 없소. 여기서 좋은 점들은 다 따먹잔 말이요. 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삼지연지구를 혁명의 성지답게 꾸리시려고 618돌격대를 무어주시였는데 거기서 건설하는 살림집설계도 참고하면 그야말로 우리 북방땅의 광부식살림집들이 착안될게 아니겠소.》
모두들 흥분하여 술렁거렸다. 비로소 김미화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렴진욱은 지팽이를 높이 쳐들어보였다.
《자, 그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쁨드릴 그날을 향하여 돌격!―》
와!― 돌격대원들이 다시 전투에 진입했다. 착암기가 요란스레 암벽을 뚫고 불도젤이 용을 썼으며 통나무를 베여넘기는 기계톱소리도 이에 합세했다. 한낮에 이르러서는 딸기봉정점의 마지막 돌바위코숭이가 하늘로 날아오르고야말았다.
눈보라는 여전히 딸기봉을 핥으며 기승을 부렸으나 그날의 점심참은 특별히 흥겨웠다. 끝내 산정에로의 도로를 열어제낀 기쁨이 누구나의 가슴마다에서 노래를 뿜게 한것이였다.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에 얼굴들이 불깃불깃해진 돌격대원들은 서로 어깨를 겯고 목청을 돋구었다.
우리는 심산속에 우등불 지폈네
언 땅에 천막치고 발전소 세워가네
묻지 말아 우리 심장 왜서 불타는지
…
렴진욱은 눈굽이 뜨거워났다. 저 부르튼 입술들, 얼고 찢긴 장갑이며 소가죽처럼 꽛꽛해진 바지가랭이들… 그들의 심장은 왜서 불타는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자기들의 광산에 모시고 윤택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이께 기쁨드릴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
말해줄거야 우리 래일이 말해줄거야
…
《좋다!―》하며 불쑥 우등불앞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우환히라는 운수직장의 운전사였다. 청년영웅도로건설장에 달려나가 운전솜씨를 톡톡히 보였다는 40대의 사나이였는데 운전사들 일반이 그러하듯 걸쭉한 육담에도 이골이 났다. 렴진욱이 돌격대를 이끌고 도투골로 처음 들어오던 길가에서 우환히는 무거운 짐을 이고가는 한 녀인을 만나자 척 차를 세우고 물었다.
《어디까지 가오?》
《아이, 연상까지… 좀 태워주세요.》
《까짓거 타구려. 헌데 아주머니도 날 태워주어야 합니다.》
《예? 제가 어떻게… 우리 집엔 손달구지도 변변한게 없는데요.》
《아, 가마뚜껑운전수들이야 남자를 배에 태우는 재간이 있지 않소.》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우환히의 재간은 접시춤에 있었다. 벌써 그의 손가락짬에는 두개의 접시가 묘하게 끼워있었는데 곱새처럼 잔뜩 등을 꼬부리고 빙글빙글 춤가락을 맞추는 발동작에 따라 그 접시들이 챙챙 마치며 안땅장단을 울리기 시작했다.
《좋다!― 좋지!― 잘한다!―》
돌격대원들이 들썩하게 박수를 쳐주기 시작하자 우환히의 접시들은 즉시 잦은모리장단으로 넘어갔다. 렴진욱으로서도 그 접시들이 떨어지지도 깨여지지도 않으면서 그리도 잽싸게 마주 울리는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 사이 돌격대원들은 너도나도 뛰여들어 춤판을 벌리기 시작했다.…
첫차에 통나무를 가득 실었을 때에는 딸기봉정점이 서산으로 기우는 마지막해빛을 받아 빨갛게 탈무렵이였다. 렴진욱은 비로소 그 유난히 빨간 모습이 한알의 잘 익은 딸기를 련상시킨다는것을 발견했다. 필경 딸기봉이라는 이름은 배오철의 좀 과장된 전설이 아니라 그때문에 유래되였을것이다.
그러나… 그를 긴장시키는 보다 급한 문제가 앞에 있었다. 아까부터 나무를 조금 부리기 전에는 못 내려간다느니, 일없다느니 옥신각신하던 운전사들의 입씨름이 그만 심상치 않은 완력행사로 넘어간것이였다.
《그렇다면 저리 비켜!》하고 거방진 체구의 사나이가 마주선 운전사를 공기돌같이 휘뿌리며 소리쳤다.
《짐을 골숨하게 싣는다는건 연유를 산에 흘리며 다니는것과 같단 말이야. 그렇게 무서우면 내가 몰겠어.》
《무서워서가 아니란 말이요. 차를 굴려먹으면 누가 보상해? 내 찬 못 맡기겠소.》
휘뿌리웠던 운전사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다가 재차 뿌리워졌다.
《난 소대장이야!》
거방진 사나이는 곽영국이라는 제대군인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연하광산 첫 당비서의 운전사였는데 아들 역시 군대에서 차를 배워 아버지대를 고스란히 이었던것이다. 담대하고 배짱이 센데다가 운전기술 또한 높은 곽영국은 한때 10톤짜리 모차적재함에 15톤들이연유통을 만들어 싣고 연남령을 거침없이 넘나들어 렴진욱의 주목을 끌었었다. 지금은 운수직장장으로 내정되여있었다.
렴진욱은 그들앞으로 다가갔다. 적재함에 가득 실은 통나무가 망막에 박혀들어왔다. 만짐이였다. 보통 령길이라면 문제될것도 없었다. 그러나 올리막에서 길이 아니라 하늘만 보인다는 급경사지를 지쳐내리자면 웬간한 용기와 담력이 아니고서는 사고를 빚어내기 쉬웠다. 문제는 이 첫차의 순조로운 운행이 다른 운전사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줄것이라는데 있었다. 곽영국의 말이 옳았다. 지금은 연유 한방울 한방울도 아껴써야 할 때였다.
렴진욱은 간단히 지시했다.
《바퀴사슬을 서너틀 싣소.》
그리고는 제먼저 운전칸에 올랐다.
《안됩니다, 지배인동지!》
곽영국이 시커먼 눈섭을 꿈틀하며 끌어내리려고 했다. 렴진욱은 대뜸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내가 걱정돼? 자신없다는 소린가?》
《날 뭘로 봅니까?》 곽영국이 차문짝을 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좋습니다. 운전사가 차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차가 운전사에게 복종하는가?… 해봅시다!》
부르릉!― 어느 사이 차에 뛰여오른 곽영국이 주저없이 발동을 걸었다.
《그건 내 차요!》
운전사가 눈이 뒤집혀 문짝에 매달렸으나 곽영국이 문을 활 열어제끼는 통에 길섶으로 튕겨났다. 탕 문짝이 도로 닫겼다.
제동이 풀리자 렴진욱은 대뜸 육중한 짐이 차를 아래로, 아찔한 협곡으로 사정없이 떠미는것을 직감했다. 힘꼴이나 쓸 곽영국의 솥뚜껑같은 주먹안에서도 조향륜은 탕탕 튀며 비틀리였다. 급경사받이에서 몸이 너무 앞으로 쏠려 렴진욱은 차손잡이를 두손으로 꽉 틀어쥐지 않을수 없었다. 두눈을 지릅뜨고 굵은 땀방울을 뚝뚝 떨구는 곽영국, 갈수록 더욱 요동치는 조향륜, 불그스레한 전조등빛속에 갓 닦은 도로의 울퉁불퉁한 돌부리들이 심장을 허비듯 번개처럼 눈앞으로 육박했다가는 바퀴밑으로 얼찐얼찐 사라지고있었다. 한순간 렴진욱은 차의 제동기가 고장나 바람난것이 아닐가 하는 아찔한 생각까지 들었다.
렴진욱은 어금이를 꽉 앙다물었다. 얼결에 비명이 튀여나오거나 곽영국에게 차를 세우라고 소리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순간에도 몇번이나 그런 비겁한 요구를 하고싶은 유혹… 펀뜩 안해의 부석부석한 얼굴이 떠올랐다. 20여년간이나 앓고있는 산후탈조차 가려 못 본 자기, 그저 연하광산의 첫 당비서가 준 과업집행을 위해서만 살아왔지. 하지만 이제 무사히 돌아간다면!… 기이한 느낌의 순간이였다. 생명이 경각에 이른 순간 인간의 머리속에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상기되였다. 정말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고있었을가? 제길, 못난이같은 생각, 죽을가봐 공포에 질리다니!
또다시 차가 왈칵 들추며 렴진욱의 내장까지 뒤흔들었다. 전조등빛속에 급한 굽인돌이의 돌벼랑이 부딪칠듯 다가들었다가 휙 옆시창으로 멀어졌다. 머리칼이 일어섰다. 꼭 이렇게 일해야만 하는가? 삶을 위해 하는 일, 그런데 그 삶을 순간에 집어던질수도 있는 이런 모험적인 일이 과연 가당한가?…
앙다문 이새로 불쑥 노래가 흘러나왔다. 렴진욱자신도 놀랍게 생각되는 노래였다.
…
말해줄거야 우리 래일이 말해줄거야
《더… 더 부르십시오, 지배인동지!… 더!…》
곽영국도 혀를 꽉 깨문것 같은 토막말을 숨차게 내뿜었다.
…한시간후에 그들은 땀에 흠뻑 젖은채 《내리면서 60리》길에 들어섰다. 그사이 돌부리에 쓸린 바퀴사슬은 세번이나 교체한 뒤였다.
×
박치명은 자지 않고있었다. 밤 열두시반이였다. 렴진욱을 놀래운것은 합숙방에 지금껏 있어본적이 없는 지령전화기가 가설된것이였다. 그속에서 지령장과 주고받는 운반직장 원동소야간당직의 말소리가 찌륵거리며 흘러나오고있었다. 그럼에도 박치명은 성가신 기색이 없이 거기에 귀기울이는 한편 책상이 비좁다 할 정도로 가득 벌려놓은 문건철들을 번지는것이였다. 얼핏 눈에 띄는것을 보니 선광실험일지와 탐사대가 넘겨주고간 광물함유량을 표시한 지질지도였다. 박치명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알수 있었다.
《허― 그렇게 지배인이 꼭 눈속을 딩굴어야 하나?》
처음부터 못마땅한 비난을 퍼부을줄 안 박치명은 반가운 미소를 온 얼굴에 피워올리며 렴진욱의 거멓게 언 얼굴을 걱정스레 더듬었다. 그다음 감심한듯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그렇게 앞채를 메고 달리니 광산키가 커진거지. 그사이 많은 일을 했더군. 금년도 생산계획은 가망있겠더라니까.》
렴진욱은 갑자기 더운 방에 들어서서 아려나기 시작하는 얼굴을 힘껏 문질렀다. 이것은 본론을 떼기 위한 서론에 불과할것이다. 이제부터 하게 될 말은 매우 랭담하고 가혹한 추궁일지도 모른다.
《앉게.》 여전히 박치명은 은근한 목소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사이 고생이 많았겠는데 편히 앉아 얘기하세. 하긴… 꼭 오늘 밤 얘기해야 한다는 법도 없지.…》
《일이야 다그칠수록 좋은거지요.》
이미 책상우의 문건들에서 박치명의 신경을 돋군것이 무엇이겠는지 대략 짐작한 렴진욱은 그의 말을 중도에서 막고 직방 본론에 들어갔다.
《방수벽이 걱정됐겠지요?》
《허허… 이미 저질러놓은 일이야 어찌겠나. 이제라도 보강대책을 잘 세워놓는게 중요한거지. 내 그래서 지배인동무와는 토론도 없이 몇가지 시정대책을 취했는데… 방수벽채굴과 저농도부선을 중지시켰네. 이제부터 방수제방쌓기도 재개하자는걸세.》
짐작한대로였으나 저농도부선만은 좀 뜻밖이였다. 그 생각을 앞질러 읽어낸듯 박치명이 계속했다.
《달리 생각말게. 제련소에서 성으로 항의가 들어와서 따져보니 그 류병근령감이 또 말썽이였더구만.》
《제련소문제라면 그건 이미 해결된겁니다. 방수벽채굴 이전의 저품위가 말썽을 일으켰댔으니까요. 이젠 사라졌던 광맥도 다시 잡을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걸 믿나?》
처음으로 박치명이 입을 삐주름히 내밀며 성칼스럽게 내뱉았다. 그러나 곧 다시 낯을 부드럽게 풀었다.
《나도 독단을 쓴게 속에 걸려 이렇게 문건들을 뒤져보는데 저농도도 그렇고 특히 방수벽문젠 광산의 운명이 달린 심중한 문제네.》
불을 어떻게 땠는지 방안이 숨막힐듯 더웠다. 렴진욱은 책상우에 놓인 보온병을 스쳐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물을 마시고싶었으나 그속의 더운물을 따른다면 가슴속에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불쾌감의 번열이 더해질것이다.
《우리 기사장을… 닥달하셨다던데 그 문제들때문이였습니까?》
말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하자니 렴진욱은 목소리가 짓눌려 힘겹게 나갔다. 그것을 감촉했는지 박치명은 억지로 웃음을 띄워올렸다.
《뭐 리해하게. 성당의 추궁을 받고나니 좀 언짢아서 큰소리쳤을뿐이네.》
《그래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주인들을 납득시켜 스스로 지령을 떨구도록 해야지요.》
《내 그래서 미안해하는게 아닌가.》 박치명은 딱한듯 손바닥을 벌려 보였다.
《하지만 자네도 일을 썩 잘한건 아니야. 내 뭐랬나. 지질전문가들을 내려보내여 구체적으로 조사확인해보고 안전이 담보된다는 보증을 받은 다음 방수벽에 손을 대도 대라고 했는데… 간담이 써늘해서 난 그앞에 서있을수도 없었단 말일세. 아니, 난 절대로 찬성할수 없네. 자네 명의로 지령을 떨구게. 즉시 방수벽채굴과 저농도부선조업을 중지하라고 말이네.》
렴진욱은 자기의 눈꼬리가 푸르르 떨리는것을 의식했다. 광산의 일군들을, 기술자들의 과학적실력을 믿지 못하는 저 완고성!…
《그래 그 문건들을 검토해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겁니까?》
《여보, 한두시간이나 가지고 될 일이요? 내 여기 틀고앉아 며칠 더 연구해봐야겠소. 그다음 평양에 올라가 성일군들과도 토의하고.》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렴진욱은 참을수 없어 좀 거칠게 내쏘았다.
《제가 설명해주지요. 류병근기사는 저농도부선을 안전한 조업법으로 정립시켰습니다. 정광실수률이 7% 높아지고 규소함량은 15%로 떨어졌단 말입니다. 한달동안의 균일한 생산일보로 그것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김청주의 방수벽채굴안에 대해서도 꼭같은것을 말해줄수 있습니다. 이제 당장 콤퓨터로 현시해줄가요, 어떻습니까?》
《이건… 뭐 시험쳐보자는거요?》
박치명이 얼굴이 시뻘개서 소리쳤다.
《아니요. 언제부터 부국장동지에게 해주고싶은 충고가 있어 그러는겁니다. 부국장동지가 왜 남을 쳐다보기 좋아하는지 압니까? 우리 로동계급의 힘을 믿지 않게 되였기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니 이젠 자기자신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부국장동지의 실력에 그 문건들의 과학적수치를 판별 못할리도 없는데 덮어놓고 부정한다는건 자신마저 믿기 두려워하는 뚜렷한 증거지요. 왜 그렇게 되였습니까? 부탁인데 제발 이전의 정력적이고 공정하던 자신으로 돌아와주십시오. 그건 우리의 래일을 락관할 때에만 가능한겁니다!》
삐주름히 내밀린 박치명의 입술이 희푸르게 질려갔다. 그는 자제해보려고 그 입술을 꽉 깨물었으나 잘되지 않는지 공연히 안경을 벗어 거기에 힘껏 입바람을 불어댔다.
《아―주… 고맙구만.》
그가 휘파람처럼 내뱉았다. 다음순간 박치명은 벌컥 몸을 일으켰다.
《아주 고맙소! 그러니까 내가… 지금은 변질되였다, 말하자면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신념이 없다 그 소리겠지. 좋소, 알만하오. 이제 보니 렴동문 지배인이 되더니 소총명이 굉장히 자랐소. 교만해지고… 안하무인이고!》
《부국장동지!…》
《마저 듣소. 동무가 성의 관심을 간섭처럼 여기고 못마땅해하니 내 이젠 더 삐치지 않겠소. 맘대로 하오, 방수벽을 깨든 허물든… 그러나 한가지만은 성의 지시로 알고 무조건 집행하시오. 당장 건설에 투자하고있는 자금을 모두 성으로 넘기시오. 국가적안목으로 다른 광산들을 도우라는 소리요. 그러고도 여유가 생기면 전부 설비현대화에 돌리오. 광부들은 좋은 집을 쓰고살걸 바라는게 아니라 광산의 현대화를 먼저 바란단 말이요.》
《부국장동무!》
끝내 렴진욱도 튕기듯 뛰쳐일어났다. 눈꼬리는 이미 사납게 치째져올라간 뒤였다. 그만큼 그는 분노를 걷잡을수 없었다.
《다른 광산들도 부국장동무의 그 자신을 못 믿는 본을 따른다면 자금을 아무리 쏟아부은들 밑빠진 독 한가지라는걸 아직도 모르겠소?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오!》
렴진욱은 모자를 버리고 나왔다는것도 의식하지 못하며 합숙현관을 뛰쳐나오자 어둠속을 경황없이 걸었다. 눈가루가 뺨을 치며 숨 못쉬게 입으로 쓸어들었다. 가슴이 답답해났다. 자기의 한 오랜 벗이자 형님처럼 존경하고 따르던 박치명을 동격으로, 지어 아래사람처럼 하대하여 호령한것이 눈물나도록 괴로왔다. 그러나… 달리 할수 없었고 달리 해서도 안되였다. 박치명의 말은 일견 옳기도 했다. 광부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리도 훌륭하고 귀중한 사람들이기에 더 좋은 집을 안겨주어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자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뜻이 아닌가!
박치명에게는 확실히 광부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 그들의 행복한 래일까지 책임지려는 뜨거운 심장이 없기때문이다. 정말 박치명자신이 그 래일을 락관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믿지조차 못하는게 아닐가?
마광장의 동음이 별로 희미하게 들렸다. 눈보라때문이 아니였다. 광부들의 견실한 손에 의하여 그 어떤 아픈 호소처럼 울리던 성가신 소음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것이였다. 좋은 래일은 확실히 앞당겨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