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6
연혜천을 연하사람들은 《광산의 뒤모습》이라고 불렀다. 누가 처음 그런 호칭을 붙였는지는 몰라도 비슷한 표현이였다. 광산이 토해낸 미광을 연혜천이 침전지가 되여 갈앉혀주고 정화시켜 압록강으로 흘려보내기때문이였다. 그 물이 흐리는가 맑아지는가에 따라 광산의 뒤거둠새― 뒤모습이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보일것은 자명했다.
지난해 2월말 이상기후로 변덕스러워진 연하땅의 날씨가 갑자기 비를 쏟기 시작했었다. 삽시에 눈석임물과 얼음장들이 비에 씻겨내려 쏠리는통에 미광침전지의 배수정이 막혀버렸다. 잠간사이 물이 불어올라 제방뚝을 위협했다. 그것이 터진다면 압록강이 대번에 오염되고말것이다. 불도젤이 석대씩이나 긴급출동되여 제방을 덧쌓았으나 물이 붇는 속도를 따라내지 못했다. 위기일발의 순간 당시 기사장이였던 렴진욱이 폭약을 몸에 품고 그 얼음물속에 뛰여들어 막혀버린 배수정입구를 폭파시켰다. 사실 말은 간단했으나 배수정을 통하여 지하갱도로 빠져나가는 물의 압력이 보통 아니였다. 까딱 한발을 잘못 짚으면 그 물살에 휘감겨 지하갱도귀신이 될수 있는것이다!… 지금 침전지우의 넓은 못은 양어장이 되여 광부들을 위한 신선한 물고기를 보장해주고있었다. 광산에 두벌로 은혜를 입히는 연혜천이였다.…
김청주는 그 연혜천기슭에서 막돌을 채취하고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돌들을 지레대로 까서는 행길까지 날라올리는 작업이였다. 물기에 눅눅해진 장갑이 꽛꽛하게 얼어들어 손끝이 아려났다. 그러나 청주는 광산사람들의 얼굴과 마주칠가봐 그것이 더 두려워 가슴이 얼어들고있었다. 아버지의 과오에 덧얹은 자신의 치욕… 그것은 순간마다 오한을 불러일으켰다. 광산이 다 아는 일이고 그럭저럭 기일도 지나 《면역》이 형성될 때도 되였으나 그는 자기의 꼴을 사람들에게 보이기가 죽도록 싫고 무서웠다.
청주가 콤퓨터를 구입하려고 했던것은 사실이였다. 불도젤사건으로 옥수금의 지탄을 받고 리정우한테서까지 호된 추궁을 받았을 때 그는 심한 가책과 함께 반발심으로 온몸을 태웠었다. 좋다, 내 나를 어떤 해독분자처럼 지릅떠보는 김지택에게 사라진 광맥을 찾을 과학적방도를 제시하여 코를 납작하게 만들리라!
콤퓨터의 필요성, 절박성은 그때부터 제기되였다. 제나름의 계산은 되여있었지만 3차원상으로 방수벽을 재현하여 부단한 발파진동과 압록강만수위때의 수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의실험을 해보아야 했던것이다. 광산에다 콤퓨터를 요구하면 자기를 미워하여 굴진공으로 처박아버린 지배인이 코웃음칠것은 뻔했다. 아직도 긴장하게 자금을 쪼개쓰는 광산실태로 보아도 당장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청주는 이웃군 기계공장에서 자재과장을 하는 대학동창생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되였다. 동창생은 선뜻 응해나섰다. 자기네 공장의 기업경영프로그람만 짜주면 그 문제는 손쉽게 해결될수 있다는것이였다.
《마침일세. 날 도와주는셈치고 꼭 완성해주게. 우리 공장에선 내가 김책공대졸업생이라고 기대를 가지는데… 나야 원래 대외사업가형이여서 학문을 깊이 파지 못하잖았나. 내 전망이 여기에 달렸다고 할수도 있네.》
청주는 무슨 《전망》운운에서 남의 시험을 대신 쳐주는것 같은 께름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지만 당장 급한것이 콤퓨터여서 두말없이 동의했다. 그 부면에서는 자신이 있었던것이다.
문제는 기업경영프로그람이 완성되여 빛을 본 다음에 터졌다. 동창생이 청주의 이름을 빗대고 적지 않은 물자를 뽑아내다가 그만 단속된것이였다. 청주는 그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 사실을 까밝히려 했지만 애초에 자기 역시 콤퓨터라는 물건을 노리고 일을 시작한 점에서는 별로 다를바 없다는것을 의식하고는 고스란히 《공모》를 시인해버리고말았다.
결국 청주는 혁명화 석달처분을 받고 광산이 살림집건설을 위해 조직한 돌격대에 편입되여 일하게 되였다.
그는 우울해졌다. 온 광산이 떠받드는 돌격대였지만 그에게만은 처벌로동이라는 보이지 않는 딱지가 붙어있는것이였다. 어쨌든 과오는 과오니까 무보수는 당연하지만 그냥 채광에 남아 과학기술적사유를 하도록이야 왜 못한단 말인가? 지배인이 끝까지 나를 못쓸 버럭덩이로 믿는게 분명해.…
그러던 며칠전 청주는 돌격대의 경리인 한미영이라는 처녀에게서 어머니가 전해달랬다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지배인이 군대식규률을 적용한다면서 돌격대병실을 따로 꾸려 집에서 출퇴근하지 않았던것이다. 피끗 주소를 보니… 이게 웬일인가. 평양의 《애인》이 아닌가!
눈뿌리가 화끈해났다. 기다렸던가? 그것은 전혀 아니였다. 그저 까닭모를 전률에 손이 사뭇 후들거렸을뿐이였다. 영원히 단념해버린 처녀, 카멜레온같은 변신에 경멸의 침을 뱉은지 오랜 처녀, 그런데 무슨 연고로 편지를 보내왔단 말인가?
그는 추운줄도 모르고 연혜천가의 후미진 곳으로 달려가 편지를 뜯었다. 그러자 심장이 얼어들었다. 인사말도 없이 대뜸 질책으로 넘어간 글줄이 눈을 찌른것이였다.
《…청주동진 무슨 권리가 있어 딴 처녀까지 부추겨 나를 질책하는거예요?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한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그 처녀와 사랑하는 관계인가 본데 그것만도 다행인줄 아세요. 그렇게라도 행복을 찾았으면 나를 더이상 건드리지 말라요.…》
수금이가 편지했구나!… 어째서인지 대뜸 이런 판단이 들었다. 그가 아니고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의감》을 발휘할 처녀가 없을것이다. 또 그만이 자기의 생활에 가까이 접근한 유일한 처녀였다.
분노와 울분에 청주는 강가의 얼어붙은 자갈판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절로 사나운 울부짖음이 터져나왔다.
《야, 수금이, 네가 뭐냐?― 뭐가 되길래 코코에 간섭해? 내 널 가만두지 않을테다!―》
종일 청주는 헐떡거리며 미친듯이 일했다. 그자신 평소에는 들어올릴념도 못냈던 아름실한 돌들을 힝힝 자동차적재함에 올려던졌고 밑창까지 얼어붙은 연혜천얼음을 숨도 돌리지 않고 쩡쩡 까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송진처럼 껍진껍진 달라붙어 떨어질줄 모르는 《애인》의 편지구절들로부터, 그로 하여 환기된 쓰라린 아픔으로부터 도망치려 들었다. 한편 얄밉기 그지없는 수금을 그렇게 뿌려던지고 패주려고 했다.
그러나 밤에 온몸이 노그라져 잠자리도 미처 못 펴고 쓰러졌을 때 청주는 《그렇게라도 행복을 찾았으면…》라는 대목이 수금이도 포함한 광산사람들을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한》부류의 인간들로 경멸하여 쓴것임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신음하며 머리를 싸쥐였다. 자기때문에 수금이, 병근아바이, 리정우기사장, 춘애… 등 모든 아름답고 깨끗하고 굳센 광부들이 모욕당하고 오명을 들쓰게 된것이였다. 자기의 너절한 행위때문에.
아아, 내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그 순간부터 청주의 뼈아픈 후회와 가책이 시작되였다. 광산사람들, 특히 수금이와 맞다들릴가봐 그는 무서웠다.
돌격대생활은 모든 일을 전투로 명명하고 전투적으로 해제낀다는점에서 육체적과부하를 요구했지만 혈기왕성한 청년집단이라 두려움을 몰랐고 그만큼 생활은 랑만으로 꽉 차고넘쳤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을줄 모르는 그들은 축조를 하고 미장을 하는 일견 단조로운 로동도 롱담과 노래라는 그칠줄 모르는 률동속에 흥겹게 해제꼈으며 짧은 휴식시간은 더더구나 떠들썩한 오락회열기로 오고가는 구경군들의 넋을 잃게 만들었다.
별의별 재간둥이들이 다 있었다. 자칭 《연하도립극장 가수》라고 으시대는 주물직장출신의 청년은 음정은 그닥 정확치 못해도 어찌나 음역이 넓은지 남성저음으로부터 녀성고음으로까지의 여러개 옥타브사이를 제비가 날아예듯 순간에 오르내려 매번 청중의 입을 딱 벌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청주가 평양의 전문성악가수들한테서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한 성대였다. 또 중학교를 갓 졸업한 2선광의 전동기수리중대 처녀는 미장칼과 미장판, 몰탈삽 등 각이한 작업도구를 목금처럼 쭉 벌려놓고 그 어떤 노래반주도 경음악단 못지 않게 해제낌으로써 늘 절찬을 받는것이였다.
《무용수》들이 특히 이채로왔다. 한개 분대가량 짝패짓고다니는 그들은 매일 새로운 멋진 춤가락을 들고나오는것으로 유명했다.
실지 그들의 춤은 무섭게 재빠르고 변화무쌍하며 온몸의 모든 부분이 잘 째인 률동속에 조화롭게 움직이는 거의 마술사같은 동작의 련속이였다. 그런 춤동작을 그들이 언제 매일 새라새롭게 안무해내는지 청주는 도무지 알수 없었다. 어느날 우연히 잠이 오지 않아 밤산보를 나왔다가 그 《무용수》들이 전지불빛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새 춤가락을 익히는것을 보았을 때에야 그 비밀이 밝혀졌다.
놀라운 일이였다. 무엇이 그네들의 저 거의 필사적이라고나 할 창조열기를 추동하는것인가? 진짜 배우가 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광부들로서 일생 광산과 운명을 함께 하자는 소박한 꿈밖에 없는 사람들이였다. 그래서 짧은 휴식시간의 칭찬의 박수 하나로 만족해하는것이였다. 그것이 청주에게는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역시 우연한 한 기회가 그에 대한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다고 볼수 있는 대답을 주었다. 년초에 돌격대는 당위원회의 발기에 따라 광산마을입구에 《장군님따라 천만리》라는 대형모자이크구호판을 단 한주일동안에 새롭게 일떠세우는 공사를 벌렸었다. 공사의 마감을 마무리하느라고 그날도 큰 풍막안에 전기불을 켜놓고 일손을 재우치는데 지배인이 불쑥 들어섰다. 운전사까지 거느리고 량손 가득 보따리를 잔뜩 든 차림이였다. 밤참이 틀림없었다.
출출하던 참이라 돌격대원들은 와 모여들었다. 잘 먹겠다느니, 이렇게 나타날줄 알고 아까부터 목빠지게 기다렸다느니, 집안을 거덜낸게 아니냐느니 하는 고마움과 신뢰의 롱말들이 오간 끝에 미처 음식을 다 펴지도 못했는데 례의 그 《연하도립극장 가수》가 지배인에게 《도발》을 걸었다.
《지배인동지, 미안하지만 이 음식만 가지곤 안되겠습니다. 양념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단 말입니다.》
《허― 집안의 고추가루통을 몽땅 쏟아부었는데두?》
청주 보기에 지배인은 《양념》소리가 그저 고추가루에 한한 문제가 아닌줄 번연히 알면서도 딴전을 부리는것 같았다. 그가 흘끔거리며 도망칠 구멍을 노리는것을 봐도 뻔했다.
돌격대원들이 일시에 목소리를 합쳤다.
《슴슴합니다!》
《빨리 〈양념〉을 치십시오!》
벌써 몇몇 돌격대원들은 완력을 행사할 차비로 슬금슬금 지배인의 등뒤에 가붙었다.
《어― 내지, 내.》 지배인은 끝내 손을 들고말았다. 《내 요즘 목탈이 와서 노랜 못하겠는데 자작시면 어때? 영 맵진 않아도 음식빛갈은 냄즉한데, 응?》
《만세!―》
청주는 우선 늘 엄엄하게만 굴던 지배인이 아주 능청맞은 호인으로 변한것이 신기했고 애초에 지배인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 돌격대원들의 배심이 부러웠다. 리유는 좀 다르지만 자기는 그앞에 얼굴 내미는것마저 께름하여 잔뜩 구석에 숨어있는 판이였다. 그사이 주먹을 입에 대고 험험 목청을 가다듬은 지배인이 드디여 입을 열었다. 첫마디부터 목소리가 아주 우렁우렁하고 다기찼다.
연하땅
밤을 모르는 연하땅
밤을 사랑하는 연하사람들
잠자기는 싫더라
아침에 깨여나 변한것 없는 이 땅을 보게 될가봐
당겨올, 당겨와야 할 래일이 지체될가봐
우린 정녕 싫더라
오, 연하의 래일
그것은 우리 장군님 늘 그려보시는
정든 이 땅의 참모습
그 좋은 래일을 굳게 믿기에
우린 잠을 싫어하더라
웃으며 그 래일을 안아오더라!
예상밖으로 와― 하는 환성과 박수는 일지 않았다. 풍막안은 숨소리 하나없이 조용하였다. 다들 귀를 기울이며 그 《래일》이 오는 소리를 듣고있는듯 했다.
청주가 듣기에 지배인의 자작시는 미리 준비해둔것이 전혀 아니였다. 한참씩 말마디를 고르느라 몇번이나 랑송이 끊어졌기때문이였다. 틀림없이 늘 마음속에 새기고있던 자기의 지향을 운률에 태워 토로한것이였다.
그것이 청주의 가슴을 쳤다. 우리 당겨오려는 연하의 래일이 바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잊지 못하여 늘 정답게 그려보시는 모습이라는 대목이 특히 그랬다. 그러니 우리 어찌 그 래일을 오늘에 시급히 당겨오지 않을수 있으랴. 지배인이 회의때나 담화할 때 자주 외우고 강조하는 《우리 장군님 모실 그날을 오늘로 당겨오자!》라는 글에 바로 광부들의 절절한 그리움과 기쁨속에 그이를 모시려는 열망이 담겨있는것이였다.
돌격대원들의 그 불같은 열정과 어울려진 희한하기까지 한 랑만이 바로 그때문이 아닐가. 《그 좋은 래일을 굳게 믿기에 웃으며 그 래일을 안아오려》는, 그 좋은 래일에 어울리게 살만 한 자질까지를 갖추려는 열렬한 지향이 아닐가?!
청주는 그들이 끝없이 부러웠다. 자기한테도 바랄수 있는, 당당한 한성원의 자격으로 기껏 누릴수 있는 그 래일이 있다면!… 하지만 자기만이 유독 소외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뼈저린 의식으로 하여 그는 더더구나 고독했고 그 고독때문에 남들과 어울려지낼수 없었다. 그래서 매번 개별적으로 일할수 있는 기회를 노렸고 또 자원해나서군 했다.
어느날엔가는 지배인이 그를 만나려고 우정 돌격대에 들렸댔다는데 그날 청주는 석탄상차로 읍거리철도역에 나가있었었다.
《왜 날 찾는대?》
저녁에 그 소리를 듣고 한미영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처녀는 밉지 않게 눈을 샐쭉해보였다.
《동무없이 지내니 동무해주자고 했겠지요.》
《흥!》
고양이 쥐생각이란 생각이 먼저 떠올라 청주는 드러내놓고 코방귀를 뀌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몹시 기다려지는게 이상했다. 지배인이 좋은 소리를 해줄리는 만무했다. 사람질을 똑똑히 하라는 훈계나 던질것이다. 그렇더라도 만나서 욕을 먹고 조롱이라도 당하고싶었다. 자기가 적어도 한 인간이라는 위안만은 얻을수 있지 않겠는가.
…점심시간이 가까올무렵 정말로 렴진욱지배인이 청주앞으로 터벌터벌 다가왔다. 침전지를 돌아본 참인듯 그의 옷에는 희끗희끗한 미광얼룩이 묻어있었다.
청주는 고개를 짓수굿한채 거칠게 정대를 휘둘렀다. 그바람에 주먹같은 얼음쪼각들이 렴진욱의 발치에까지 투덕투덕 튀여났다. 그럼에도 겨울솜신을 신은 지배인의 두발은 뿌리내린듯 움직이지 않았다. 침묵, 침묵… 지금 지배인의 눈에 비껴진 자기 모습은 어떠할가. 한갖 버러지? 굳이 리용가치를 인정한다면 콩크리트혼합물을 굳혀줄 이 한덩이 자갈?…
끝내 청주는 정대를 자갈판에 콱 박으며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다음 자기로도 야비하게 느껴지는 본의아닌 분노를 울컥 내쏟았다.
《그래 속시원합니까, 지배인동지?》
청주는 흠칫했다. 동정 아니면 경멸의 시선으로 자기를 굽어볼것이라고 여긴 렴진욱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져있는것이 아닌가.
《어디 말해봐, 청주.》하고 렴진욱이 마침내 웅글게 입을 열었다.
《콤퓨터를 구입하자는 목적이 무엇이였다구?》
《예,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호사스레 콤퓨터까지 척 차려놓고… 풍청거려야 할게 아닙니까!》
《엇드레질 말아, 청주!》
렴진욱이 엄하게 소리쳤다. 청주는 그만 자기를 다잡아낼수 없었다. 그렇게 기다려온 지배인의 출현이건만 왜 이다지 설음같은것이, 울분이 치받는것인가?… 울대가 마구 경련을 일으켰다.
《그래 내가… 내가 그것밖에 뭘 더 할수 있습니까? 딱지나 잔뜩 붙은 나에게… 누가 알아주기나 해요? 내겐 래일이 없어요!》
렴진욱의 눈꼬리가 흠칫흠칫 치째져올라가기 시작했다. 청주는 이제 무서운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귀뺨이라도 얻어맞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렴진욱의 눈은 어느사이 침통하게 흐려져버렸다.
《동문…》 하고 그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동문 날 인정사정없는 관료주의자로 보지, 그렇지?》
《?…》
《말하지 않아도 돼. 그건… 사실이였으니까. 그저 일, 또 일 하는것밖엔 몰랐지. 담배 없나?》
지배인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것은 온 광산이 다 아는 사실이였다. 그러면서도 청주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자기가 왜 이렇게 공손해졌는지 스스로도 놀라왔다.
렴진욱은 첫모금에 벌써 기침을 터뜨리다가 담배를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쓰겁게 웃었다.
《나쁜 습관은 애초에 안 배우는게 좋지. 배웠더라도 제때에 결별하는 용기는 더 훌륭한거고.》
자기를 빗대고 하는 말이라는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불끈해난 청주가 뭔가 내지르려는 순간 렴진욱이 손을 내저었다.
《저 관료주의자가 일장 훈시를 하려고 부득부득 찾아왔구나 할테지만… 난 반성하자는거야. 일전에 한 처녀가 날 찾아왔는데 일만 일이라고 하지 말고 과오를 범한 청주 같은 사람들한테도 찾아가 고무해주라는게 아니겠나. 마음이 깨끗한 처녀였어. 가책이 크더군.》
청주는 버쩍 경계심이 들었다. 그런 도담한 충고를 할수 있다면, 더구나 자기 이름을 거들었다면 그는 틀림없는 옥수금일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청주는 반발할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렴진욱이 20여년간이나 앓고있은 안해의 병을 몰랐었다고 털어놓은것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이야기가 곧 뒤따랐다. 그가 친구에게처럼 아득히 먼 시절의 한 압축기운전공처녀를 입에 올렸던것이다. 그리하여 청주는 김현순이라는 처녀가 어떻게 화령광산시절의 젊은 지배인을 구원하고 죽었는가를 알게 되였다. 붕락을 앞두고 한손이 동발밑에 깔렸음에도 구원을 호소할 대신 《빨리 피하세요!―》하고 목터지게 웨쳤다는 그 조용한 처녀!… 청주에게는 렴진욱의 목소리가 그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과거를 떠싣고 울려오는듯 했다.
《…그다음부터 난 그 처녀의 소행과 비교해서 나를 검토해보고 사람들도 그렇게 갈라보기 시작했어. 넌 합격, 넌 불합격!… 이제 와서야 난 아름다움이란 평소에 향기처럼 풍길수도 있지만 내심깊이 숨겨져 쉽게 맡아내기 힘들수도 있다는걸 깨닫게 된것 같아.》
그다음 렴진욱은 처음으로 엄한 눈초리속에 청주를 끌어들이며 따졌다.
《이자 자기에게 래일이 없다고 했는데… 그게 진정이였나?》
《…》
청주는 그의 눈길을 피했다. 여느때라면 주저없이 《지배인동지가 이미전에 〈넌 불합격!〉하고 집어던지지 않았습니까!》하고 투미하게 시까슬렀을테지만 무엇인가 자제하도록 다잡는것이 있었다. 지배인의 솔직한 고백때문일것이다. 보다는 아버지의 과거행적이 자기의 래일에 차단봉을 내리고있다는 피해의식때문에 쏟아놓은 말이여서 굳이 지배인을 원망할것도 없었다.
렴진욱은 그 속내를 다 읽은듯 했다. 한숨끝에 그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동무를 뭐라고 해야 할지… 알아보니 동창생인지 하는 그 자재과장의 비행을 자기가 뒤집어썼다면서?… 당위원회가 나서서 다 해명했어. 그러한 청주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니… 나도 기쁘더군.》
불시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울컥 오열같은것이 목구멍을 메웠다. 청주는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비틀거렸다. 아, 날 알아주었구나. 끝내 알아주었구나!…
지배인의 목소리는 다시 엄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그 행위를 찬성하는건 아니야. 제 동창생을 아주 못쓰게 만들수 있거던. 거기엔 또 자기자신을 포기해버리는 나약성도 들어있어. 몸부림은 필요해. 그만큼 산다는건 여간 흥미있는게 아니지만 또 여간 힘겹고 무서운것도 아니니까. 어떤 때 무서운가? 그건 삶이 힘겹다고 누가 개척해주려니 기대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릴 때야. 명심하라구, 청주. 래일이란 개척자에게만 차례지는 행복이라는걸. 헌데 개척할 용기를 가지자면 그 래일을 굳게 믿어야 하거던. 알겠나?》
언제부터 시작된것인지 알수 없는 눈꽃이 점점이 흩날려내리며 청주의 눈섭이며 어깨우에 살풋이 매달리기도 하고 쌓이기도 했다. 믿으라! 믿으라!… 눈송이들은 마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부드러운 속삭임을 터뜨리는것 같았다.
청주는 꿈에서 깨여나기라도 한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하늘을 메우며 날아내리는 눈송이들이 어째서인지 불쑥 지난해 여름 회양골의 류병근네 터밭에서 보았던 나비와 흡사하게 보이는것이였다. 짧은 삶에 대한 애수, 과연 그랬을가. 그 짧은 삶에 대한 정열적인 구가는 아니였을가? 긴 삶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비애를 자아내는 법이다!
청주는 렴진욱이 눈발속으로 멀어지기 시작했을 때에야 펀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도 랭담하고 가혹하다고 여겨온 지배인이 이 순간 그에게는 무척 솔직하고 그만큼 강직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지배인동지!》
그가 소리쳐불렀다. 그다음 헐떡거리며 그앞으로 달려갔다. 이 순간의 그 느낌이 희석된다면 자기가 다시 말해낼 기회를 가져내지 못하게 될것 같은 초조감이 들어서였다.
《방수벽을 깎을 결심을 내리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 믿지 않으실줄 알지만 그래도 한번 믿고 그걸 30메터까지 더 내미십시오. 방수벽은 그래도 안전합니다.》
렴진욱은 유심히 청주를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불쑥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뒤집어보았다. 얼고 거칠어진 손이였다.
《동무를 채광에서 일시킬수도 있었어.》 렴진욱이 속삭임처럼 말했다. 《하지만… 자기라는걸 허용치 않는 돌격대의 집단력을 배워야겠기에 이리로 보냈으니 그리 알라구.》
렴진욱은 말귀를 고르듯 잠시 입술을 감빨더니 슬쩍 보태였다.
《일 잘하라구. 내… 기다리겠소.》
지배인은 떠나갔다. 청주는 말뚝처럼 못박힌채 오래동안 서있었다.
《내 기다리겠소.》하던 말마디가 심장을 파고드는 노래소리처럼 울리는것을 그는 귀기울여 듣고있었다. 모든 기다림은… 인생에 바로 기다릴것이 있다는것 자체는 행복이 아닐가, 희망이 있기에!
그날 청주는 돌격대생활기간 처음으로 저녁녘의 오락회에 참가했다. 그가 몹시 어줍어하며 기타를 들고 나타나자 돌격대원들은 숨죽이고 지켜보다가 와그르르 무너지게 박수를 보냈다. 청주는 별안간 눈물이 쿡 솟았다. 지금껏 자기가 생각해온 이네들 광부들과의 현격한 거리감이라는것이 실지 존재하기는 했었을가? 이들은 그리도 기껍게 자기의《은둔생활결별》을 환영하는것이 아닌가!
평양에 있을 때에는 짬만 있으면 즐겨 타군 하여 기타가 과히 서툴지 않았던 청주였다. 그런데 광산에 내려온 이래 전혀 손을 대보지 않아 첫줄을 튕길 때에야 청주는 망신하겠구나 하고 혀를 깨물었다. 하면서도 그는 도망쳐 숨을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것은 기타솜씨가 아니라 지배인의 말처럼 《자기라는것을 허용치 않》을 결심을 보여주는것이였다.
…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압록강 2천리에 노를 저어라
얼음장을 헤치면서 떼는 흐른다
…
왜 그리도 긴 노래를 택하였던지… 줄땀을 뽑으면서 전문가들이나 즐겨할 여러 부분 형식의 노래를 겨우 이어나가면서 청주는 자기의 경솔한 노래선택을 두고 스스로를 저주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밤 자기가 결코 다른 노래는 부를수 없었으리라는것을 기쁨속에 의식했다. 압록강을 사랑하여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고싶은 이 감정을 어찌 다르게 표현할수 있으랴.
노래가 끝나자 《연하도립극장 가수》가 선참 달려나와 청주의 팔을 높이 쳐들어보이며 엄숙하게 선포했다.
《자― 이제부터 김청주기사동지가 우리 극장의 악장으로 임명되였다는것을 정식 발표합니다!》
그날 밤 청주는 쉬이 잠들수 없었다. 애초에 자고싶지 않았다. 고막속에서는 지배인의 자작시 한대목인 《잠자기는 싫더라》가 여운깊은 노래가락처럼 계속 곱씹어울리는것이였다. 잠을 자지 않을수만 있다면, 온몸을 혹사시키는 뻐근한 돌격전투과제가 당장이라도 내려주었으면.
돌격대의 규률은 역시 규률이였다. 구령에 따라 모두 잠자리에 들자 즉시 코고는 소리가 병실을 들었다놓기 시작했다. 잠도 전투적으로 자는 돌격대원들이였다.
그속에서 청주는 경리처녀 한미영과 취사원녀인이 부엌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가려들었다.
《…성에서 펄쩍 뛰며 당장 중지하라는걸 지배인동진 〈우리 기사의 3차원모의시험결과를 전 믿습니다.〉하고 칼로 자르듯 반박해치웠다잖아요. 종일 콤퓨터에 마주앉아 그걸 확인했다는거지요. 그리고는 일총화가 끝나자 또 도림업관리국과 산림경영처로 떠났대요. 살림집건설에 필요한 목재를 이 겨울중에 전부 확보해놓자고요.》
《온, 그러니 몸이 강쇠인들 견딜가?》
《언닌 우리 지배인동지를 아직도 몰라요? 그분은 안 쓰러져요. 모든걸 다 해내기 전엔 절대로!》
위압감과 함께 어떤 포근한 안정감이 청주를 휘감았다. 그는 어느 책에선가 본, 인간의 행복은 그자신이 얼마만큼 행복해지겠다고 뚜렷이 목표를 정한 본인의 결심에 많이 달려있다고 한 문구가 떠올랐다. 렴진욱지배인이야말로 그 목표와 결심이 뚜렷하고 확고한 인간이였다. 그러한 불굴의 의지가 있다면 아마 자기의 그 《래일》도 기껍게 손저어 마중해올것이다.
청주는 한미영이 말하던 《3차원모의실험》이 자기의 방수벽채굴안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렴진욱지배인이 자기를 믿어준것이였다. 그러자 시름없는 단잠이 왔고 꿈도 꾸었다. 콤퓨터앞에서 번개같이 건반을 눌러가는데 옥수금의 얼굴을 한 처녀가 갸웃이 고개를 기울이고 지켜보는것이였다. 처녀의 눈은 경탄으로 하여 사뭇 령롱하게 반짝거렸다. 청주는 으쓱해서 호기있게 소리쳤다.
《그래, 잘 봐. 이젠 네가 날 부러워할 차례야.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