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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렴진욱은 광산에 도착하자 승용차를 곧장 채굴장으로 돌렸다. 밤 열한시경이였다. 채굴장안은 함지속같이 안침졌지만 추위가 맵짰다. 와릉거리는 굴착기의 동음을 뚫고 보이지 않는 먼 어둠속에서 압록강얼음이 터지는 소리가 쩡― 쩡― 동안을 두고 울렸고 연두봉을 뒤덮은 눈이 바람에 불려 반짝거리며 귀바퀴와 코끝을 때끔때끔 찔러댔다. 작업신발이 아닌 구두여서 발끝도 몹시 얼어들었다.

채광계단이 압록강쪽으로 넓어진것이 대뜸 렴진욱의 눈에 들어왔다. 새 기사장 리정우가 전화로 알려준 그 방수벽채굴의 결과였다. 다만 예상보다 훨씬 대담하게, 놀라울만 한 폭과 깊이로 뜯어먹고있었다. 이전 같으면 당장 방수벽이 터진다고 아우성칠만치 위태로운 일종의 모험이였다. 하지만 리정우가 아무런 과학적타산도 없이 그런 용단을 내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쨌든 설계를 검토해보기는 해야 했다.

발파를 갓 했는지 굴착기들이 거기에 집중되고 자동차들도 줄지어 광석을 싣고 그쪽에서 빠져나오고있었다. 그 계단복판에서 렴진욱은 모자도 쓰지 않은채 솜옷주머니에 깊숙이 손을 찌르고 침울하게 서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발달한 상체에 비해 다리가 좀 짧은 뒤모습이 김지택이였다. 생산지휘로 나왔겠는데 방심한듯, 허탈에 빠진듯 한 모습이 이상했다.

《몸은 좀 어떠시오?》

렴진욱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김지택은 잠시 우두커니 마주보더니 푹 꺼진 두눈을 번뜩이며 제 가슴부터 두드려보였다.

《잠을 못 자겠수다. 꿈에두 소스라칩니다. 압록강물이 터져들어와서… 정우 그 사람이 미쳤단 말입니다!》

김지택은 소영각처럼 울부짖었다. 렴진욱은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으나 그의 노기는 퍼낼수록 더욱 솟구치는것 같았다.

《내 몇번을 싸우구 얼리구 했겠소. 자중하라, 이건 광산의 존망문제다, 정 그러면 지배인이 온 다음 결론받구 시작하자.… 그런데 보시우. 저렇게 발파하구두 모자라 또 소갱구멍들을 내구있수다. 수십메터는 더 먹어야 하겠다는거요. 이게… 이게 미친짓이 아니구 뭡니까? 끝내 못 참구 당위원회에 제기를 했더니 그가… 정우 그 사람이 뭐랬는지 아시우? 〈령감님, 올해 설에 몇살을 자셨소? 한해에 두살, 세살씩 단번에 자실순 없소? 〉… 허허허, 빨리 늙어서 집으로 들어가라는 소리요.》

김지택의 마감말은 울음처럼 들렸다. 그로서는 통곡이라도 해야 할만 한 말일것이다. 기실 리정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배치되여왔을 때 김지택의 사랑을 몹시 받았었다. 두부 한모라도 생기면 합숙생이였던 리정우를 매번 집에 끌고가 먹였고 신혼살림초기에는 아예 자기 집을 통채로 내주고 남의 웃방에서 지냈었다. 기술이 능하고 영민한 그가 고향도시에 대한 향수때문에 광산에 정을 못 붙일가봐 마음썼던것 같다. 그랬던만큼 리정우의 면박은 하나의 인간적배신처럼 받아들여졌을것이다.

그러나 렴진욱은 사업을 놓고 김지택에게 동조하고싶지 않았다.

《그래도 기사장인데… 아무런 과학적타산도 없었겠소?》

《청주녀석에게 강아지처럼 끌려다니는짓?》 새로운 울분이 치받친듯 김지택이 또 고함지르기 시작했다. 《그녀석은 해독분자요. 그녀석이 저따위 채굴안을 내놓았단 말이요. 결국 어떻게 됐소? 보안원에게 끌려갔지. 달리 될수 없단 말이요!》

《청주가?》

《딴 녀석이겠소?》

그것은 렴진욱으로서도 좀 뜻밖이였다. 수재형의 전도양양한 한 청년을 건져주려고 해임처벌도 주어보았건만 그것이 반대로 타락에로 떠밀었단 말인가?… 가슴이 쓰려났다.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이제 료해해보면 다 알겠지만 지난해말 청주가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제때에 대책을 취하여 찾아내지 못한것이 큰 실책이였다. 그사이 여느때 없는 일감에 다쫓기고 외국출장까지 제기되여 눈코뜰새 없은것은 사실이나 한 인간의 운명을 놓고 방심했다는것은 어떤 경우에도 변명할 도리가 없는것이다. 하물며 남들은 꿈속에서 잠간 보았더라도 소스라쳤을 방수벽채굴안을 대담하게 제기함으로써 광산의 위기를 타개한, 늘 광산의 운명을 두고 제나름으로 몸부림친 장한 기술자가 아닌가.

사실 탐사대가 광산에 넘겨준 광체모형도나 지질지도에는 깊이에 따르는 구체적인 품위가 륜곽적으로밖에 기입되여있지 않았었다. 따라서 현재의 갱정을 더 낮춘다고 해서 고품위가 나오리라는 담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깊이 파야 보배가 나온다는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이였다. 렴진욱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다만 깊이 파려면 채굴장을 넓혀야 했는데 방수벽쪽을 제외한 나머지방향들은 온통 깊은 박토층과 산화층에 덮여있어 그것을 파제낄 동안은 생산이 완전히 중지될수 있었다. 바로 이 난점을 청주가 해결해준것이였다. 올해부터 생산계획량이 배로 늘어난 조건에서 청주의 안은 매우 시기적절할뿐아니라 갱정을 더 낮출 돌파구를 열어놓아 고품위가 꽝꽝 쏟아질 장래까지도 담보해주는것이였다. 이제 검토해보면 알겠지만 문제로 되는것은 더 얇아질 방수벽이 만수위때의 압록강수압을 견디여내겠는가 하는 점뿐이였다.

드디여 렴진욱은 여전히 풀떡거리는 김지택을 자기의 엄한 시선속에 끌어들이며 말을 돌렸다.

《기사장은 쉽니까?》

《선광에 갔지요.》 대번에 풀이 죽은 김지택이 우울히 중얼거렸다.

《라이나교체작업이 제기됐지요. 어쨌든 난 저 소갱굴진을 당장 중지하자는걸…》

《난 기사장을 믿소!》

렴진욱은 두말 못하게 툭 내지르고 돌아섰다. 그러면서도 아연한듯 입을 항 벌리고 굳어진 김지택을 내쳐두자니 마음이 언짢았다. 《고난의 행군》때 한대의 마광기만을 겨우 돌리지 않을수 없어 이전 지배인은 궁리끝에 고품위만을 따라가며 캐먹도록 지시한 일이 있었다. 어떻게든 생산을 맞춰보자는 미봉책이였다. 그때 김지택은 지금처럼 펄펄 뛰며 지배인과 맞대거리를 해댔다.

《채굴장은 쌀독과 같습니다. 그래 흰쌀밥만 골라먹으면 강낭밥은 누가 먹으라는겁니까? 지배인동진 아들에게 강낭밥만 먹일 잡도립니까?》

오늘이 아니라 광산의 먼 래일까지도 내다보며 마음을 끓이는 그를 고맙게 여겨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자기는 그를, 그의 애끓는 마음을 단마디로 무질러버렸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다. 두배로 늘어난 올해 생산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도 모질고 가혹해야 할 렴진욱이였다.

《아버지!》

한 굴착기에서 딸 정옥이 뛰여내려 달려왔다. 정옥의 얼굴은 별로 환하고 싱싱했다.

《언제 오셨어요? 그사이 앓지는 않으셨어요?》

《음, 방금 도착한 길이다.》

《또 끼니를 번지셨겠네.》 딸이 억실억실한 눈을 즐겁게 흘겨보이며 말했다. 《이제 곧장 들어가시자요. 그러잖아도 오늘쯤 오실것 같아 밥이랑 해놨는데 국은 식었을거예요. 인차 덥혀드리겠어요.》

렴진욱은 딸을 호기심에 넘쳐 들여다보았다. 언젠가도 이렇게 호들갑 부리는 딸을 본적이 있었었다. 박치명부국장의 아들을 마다한것이 죄스러워 거짓활기로 아버지의 마음을 눙치려고 한것이였다. 지금 역시 딸은 평소답지 않게 흥겨워하고있다. 문제는 거기에 이전같은 꾸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점이였다. 그것이 렴진욱을 저으기 놀래웠다.

《구급원일이 재미있는게지, 응?》

《좋은 동무들이 많아요. 시간가는줄 모르겠어요.》

《그럼 됐다. 그냥 일을 보아라. 어련히 네 어머니가 날 대접하지 않으리.》

《…》

왜서인지 딸의 얼굴에 그늘이 스치는것을 렴진욱은 보았다. 아버지의 찌긋해지는 눈길에 견디지 못하겠는지 딸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닌… 없어요.》

《?…》

《저… 정석이한테 면회간다면서 떠났는데… 며칠 됐어요.》

정석이란 도중학교에 다니는 막내를 말한다.

《왜, 애가 앓아서?》

《뭐 그런건 아니고 그저…》

말꼬리를 삼키는 딸의 태도가 수상쩍었다. 꼭 무엇인가를 숨기는것 같은 느낌이였다. 도에 있는 애가 앓지도 않는다는데 며칠씩 눌러앉아 돌본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안해야말로 지난 20여년 결혼생활기간 단 한끼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남편을 대접해온, 남편에 대한 기다림으로만 살아온 녀자였기때문이였다. 날자를 정하지 못하고 떠난 출장길에서 예고없이 불쑥 돌아오면 그것이 새벽녘이여도 최금숙은 밥상을 차려놓은채 그앞에 쪼그리고앉아 졸다가 남편을 맞군 했었다.… 어쨌든 오늘은 어이딸모두가 이상했다.

2선광직장에 들렸을 때는 새벽 한시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기사장은 커녕 직장장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젊고 날파람있게 생긴 홍가 성을 가진 공정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광기라이나교체작업을 지휘할뿐이였다.

렴진욱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째져올라갔다. 라이나교체란 선광의 가장 큰 대보수작업이였다. 마광기동체가 광석을 분쇄하는 쇠뽈에 의해 구멍나지 않도록 덧대는 안붙임쇠벽돌을 일명 라이나라고 부르는데 그 한개 질량이 무려 2~3백키로그람이였다. 그런 주물쇠덩이 수십여개를 볼트나트를 풀어 해체하고 새로 맞추어야 하며 그속에 들어있는 쇠뽈 수십여톤도 모두 꺼내여 닳아서 납작해진것들은 골라버리고 새것을 장입해야 하므로 품과 시간이 굉장히 들었다. 하여 온 직장이 달라붙어 전투를 벌리는것이 상례였다.

《직장장은?…》

렴진욱의 입에서 휘파람소리같은 억누른 물음이 새여나오자 젊은 공정원은 마치 자신이 전투장을 기피한 장본인이기라도 한듯 몸을 옹송그렸다.

《요즘에는 밤에… 사실 기술적으로 걸릴것도 없기에 제가 대신…》

들어보나마나 뻔했다. 자기가 외국에 간 사이에는 밤에 얼씬하지도 않았다는 소리였다. 비로소 렴진욱은 일부 직장장들이 지배인의 새벽순회가 꼭꼭 정해진 시간에 벌어진다는것을 알고 사무실에서 자다가 슬쩍 일어나 현장에서 어정거림으로써 밤을 패는 정력적인 일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던 리정우의 말이 리해되였다. 2선광직장장이 바로 그런 전형적인 낯내기군이였던것이다. 물론 야간생산지휘를 꼭 직장장이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책임기사도 있고 공정원도 있어 순번으로 돌아가며 맡는것이다. 하지만 직장에 이런 큰 전투가 벌어질 때에는…

《기사장은 안 왔댔나?》

《좀전에 위경련이 와서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위경련은 왜?》

《날씨가 차니 아마…》

원래 타고난 허약한 체질에 술까지 적지 않게 먹어 위가 망그러졌을것이다.

《날 따라오라구.》

렴진욱은 공정원을 꽁무니에 달고 마광장 한끝으로 갔다. 거기에는 오래전에 페기한 구멍투성이 마광기 한대가 주저앉아있었다. 대치차며 소치차들은 모두 닳거나 부러져버린 상태였다.

《어때?》

렴진욱이 눈을 찌긋하고 물었다. 공정원은 명민했다. 그는 지배인이 자기를 이곳에 끌어올 때부터 그 의도를 짐작하고있은듯 주저없이 대답했다.

《간단치 않겠지만 무조건 살려내야 합니다. 그래야 배로 높아진 년간생산계획을 해낼수 있습니다. 딴데서 누가 주기를 바랄수야 없지 않습니까.》

렴진욱이 선광장을 돌아보러 온 목적이야말로 바로 그것이였다. 처음으로 그는 낯을 풀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걸 고치자면 주물품, 가공품량이 간단치 않겠는데?…》

《예, 제가 계산해보니 대략 파철이 70톤은 들것 같습니다. 주물품이 20여종에 800개정도, 가공품이 120여종에 700여개… 주물직장과 공무직장이 혀를 한발쯤 뽑게 되겠지요. 물론 우리 직장 창고안에서도 좀 보충할수 있습니다.》

이 녀석봐라.… 렴진욱은 감탄한 나머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자기의 속구구와 너무도 신통했던것이다. 일개 공정원으로서 광산전반을 념두에 두고 주인답게 다 궁리해둔것이 특히 기특했다. 그래서 이렇게 끌고오기도 한 렴진욱이였다. 직장장감을 찾은셈이였다.

《그럼 창고를 돌아보자구.》

창고는 깨끗이 정돈되여있었다. 각종 베아링이며 피대들, 전기기구들과 그 부속품, 윤활유, 시약 등이 그 용도에 따라 정확히 분류되여 쌓여있었고 명찰표들도 또렷이 붙은것이 주인의 알뜰한 일솜씨를 대뜸 엿볼수 있었다. 렴진욱도 이미 잘 알고있는, 안태영이라고 전국선동원대회 참가자였다.

렴진욱은 그 창고속에서 마광기재생에 쓸 수십여가지의 부속들까지 발견하자 흡족하여 안태영의 잔등을 철썩 두드렸다.

《고양이뿔도 건사했음직해, 괜찮아!》

그로서는 매우 희귀한 칭찬이였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다가 발에 걸채이는 웬 부속이 그의 기분을 잡치고말았다. 여겨보니 마광기배전함에 달렸던 전류변성기였다. 삭도사업소의 배전함을 해체하여 마광기에 설치하다나니 호환성이 맞지 않아 다른것과 교체해버린듯 한데 창고바닥에 딩굴고있는것이였다.

렴진욱의 눈꼬리가 들리는것을 보고 안태영이 급급히 변명했다.

《당장 필요치도 않고 또 밀페가 잘된 부속이라 습기엔 일없을것 같아…》

그쯤은 용서할수도 있었다. 렴진욱은 눈을 흘기는것으로 질책을 대신하고 밖으로 나섰다. 다음순간 발이 굳어졌다. 방임해선 안돼!… 그는 홱 돌아서서 다시 창고안으로 들어갔다.

《먼 옛날에 말이야.》하고 그가 무뚝뚝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산골에 염소와 양을 기르는 늙은 내외가 살고있었어. 하루는 늙은 내외가 의논했지. 이젠 우리가 죽을 날도 멀지 않았는데 염소와 양을 잡아 실컷 잔치를 베푼 다음 죽자 하고 말이야.…》

추억은 행복할 때에는 다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렴진욱의 추억은 늘 아팠다. 그의 추억이란 곧 김현순에 대한것이였기때문이였다. 바로 이 옛말이 죽음을 얼마 앞둔 그 처녀가 휴식시간에 그렇게도 말이 없던 전례를 깨고 도란도란 들려준 이야기였다. 꽁다리정대를 버린 렴진욱을 질책하여, 노래를 못 불러준 미안함을 대신하여!

《…그 소리를 염소가 몰래 엿들었어요. 그래서 양에게 슬며시 귀띔하고 둘이 빈 자루를 하나씩 훔쳐멘채 도망쳤어요.…》

…산을 넘고 골짜기를 꿰질러 가고가다가 그들은 풀숲에서 승냥이대가리를 하나 발견했다. 썩둑 잘리운것으로 보아 사람을 해쳐보려다가 오히려 한칼에 맞은 꼴이였다. 염소와 양은 무척 배고팠으나 고기는 먹지 못하는지라 다른 무엇과 바꿔치기라도 해볼셈치고 그것을 자루속에 넣어 지고 다시 길을 떠났다.

 마침내 어느 골짜기 초막에서 내굴이 피여오르는것을 발견한 그들은 너무 반가와 무작정 그안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그속에는 다섯마리의 승냥이가 식탁에 둘러앉아 산과일을 억지로 쩝쩝거리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놈들도 배가 너무 고파 그것으로라도 요기를 해보자던 참인것 같았다.

《아이구, 귀한 손님네들, 어서 나앉으시우.》

그중 털이 부얼부얼한 두목승냥이가 군침을 삼키며 염소와 양을 잡아끌었다. 양은 힘이 셌으나 마음은 약한지라 이젠 다 죽었구나 하고 벌벌 떨었다. 대신 염소는 마음이 굳셌다. 그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루속에 주어넣었던 승냥이대가리를 꺼내여 식탁에 탁 놓았다.

《공짜로 얻어먹을수야 없지. 자, 맛들 보시오.》

승냥이들은 눈이 뒤집혔다. 만만해보이는 염소와 양이 자기네 족속을 이렇게 잡아치웠으니 자칫하다가는 자기들도 그 꼴이 될수 있다는 공포에서였다.

《어― 손님네들이 목마르시겠군. 내 얼른 샘물을 떠오지.》

한 승냥이가 약삭바르게 슬쩍 꼬리를 사렸다. 놈이 나타날리 만무였다. 둘째놈이 또 안달이나 중얼거렸다.

《하, 무거워 지체하나? 마중가봐야지.》

이런 식으로 승냥이들은 모두 줄행랑을 놓았다. 하여 염소와 양은 식탁우의 잘 익은 열매로 실컷 배를 불릴수 있었다.

이번에도 염소가 먼저 위험을 포착하고 경고했다.

《양아, 놈들이 일시 달아나긴 했지만 공포가 가셔지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자기들이 잘못 생각했다는걸 깨닫고 되돌아와 덤벼들거야. 빨리 자리를 뜨자!》

그 짐작이 옳았다. 초막을 미처 벗어나기도 전에 풀숲을 헤가르며 달려오는 승냥이들의 발자국소리가 소란스럽게 가까와오기 시작한것이였다. 급해맞은 염소와 양은 얼른 근처의 키높은 나무에 기여올라갔다.

《냉큼 내려오지 못할가. 한입에 씹어삼킬테다.》

털부숭이두목이 길길이 뛰며 으르렁거리고 다른 놈들도 곁따라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마음 약한 양은 사지가 떨려 그만 잡고있던 나무가지를 놓치고말았다.

《악!―》

양은 처참한 비명과 함께 곧추 승냥이무리복판으로 떨어져내렸다. 염소도 절망에 빠졌으나 순간에 기발한 궁리를 해내고 냅다 소리쳤다.

《양아!― 그 털부숭이부터 먼저 덮쳐라!―》

한번 승냥이대가리를 보고 놀랐던 놈들이라 그들의 눈에는 양이 벼락같이 고함치며 자기들을 덮치려고 뛰여내리는것 같이 보였다. 혼맹이가 빠진 승냥이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뿔뿔이 도망쳐버리고말았다.…

《이게 다요.》 렴진욱은 이야기가 길어진것이 못마땅하여 미간을 찡그렸다. 《풀밖에 못 먹는 염소와 양이 그런 액운을 예견한건 아니지만 어쨌든 승냥이대가리를 건사한 덕을 톡톡히 봤거던. 무슨 소린지 알만하오?》

창고장의 반응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미 렴진욱은 마광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새로운 생각이 마음을 긴장시켰다. 배로 높아진 생산계획뿐아니라 외국수준을 딛고 올라설 생산설비의 현대화를 시급히 추진하기 위해서도 기술혁신과 함께 자재부속품관리며 그 통제를 보다 엄격히, 철저히 짜고들어야 하겠다는 자각이였다. 업무부지배인이 착실하고 책임성높은 일군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완전히 방임해버려서는 안되였다. 전면적인 실사를 조직하며 자재과의 입출고질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광실험실에 불이 켜져 있어 그리로 들어선 렴진욱은 눈굽이 저릿해졌다. 류병근이 싸늘하게 식은 방안에서 책상우에 머리를 고이고 잠들어있는것을 본것이였다. 책상에는 새로운 시약비률을 얻어보려고 고심한 흔적들인 계산종이쪼박이며 각종 시약용기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솜옷을 걸쳤으나 추워서 잔뜩 몸을 옹송그린 류병근의 모습은 애처로왔다. 그러나 그 모습에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려는 모대김과 의지가 엿보여 몹시 감동적이기도 했다.

밤을 사랑하는 렴진욱이였다. 낮에는 누구나가 자기앞에 차례진 혁명과업수행때문에 드바쁘게 산다. 대신 밤은 매 인간자신을 위하여 흥겹게 소모할 권리가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리용할줄 아는 사람은 진실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왜냐면 인생을 곱으로 살기에!

그러한 인간을 하나 더 발견한것이 렴진욱은 기뻤다. 그는 류병근을 깨우고싶었으나 곧 단념하고 종이 한장을 끄당겨 거기에 외국에서부터 구상한 가열법에 의한 분리부선조업법요점을 그려넣었다. 그다음 《시급히 시험해보고 계통설계를 완성할것. 지배인.》하고 휘갈겨썼다. 할일이 많은 류병근에게 덧짐을 지우는것이 미안쩍었으나 할수 없었다. 실장이 구실을 한다면!… 불쾌한 비교였다. 그럼에도 박치명은 김현길을 국에 소환하려고 하고있다. 이것이 옳은 처사, 원칙적인 일이겠는가?…

렴진욱이 병원에 들린것은 날이 푸름해지는 새벽이였다. 리정우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배를 움켜잡은채 무엇인가를 그리고있었다. 피뜩 보고 렴진욱은 그것이 라이나개조설계라는것을 알았다. 라이나형태가 배를 쑥 내민것으로 그려진것으로 미루어 쇠뽈에 부단히 쓸려 석달밖에 쓰지 못하는것을 연장시키자는 의도였다. 단순하지만 착상이 기발했다. 그쯤되면 라이나교체기일이 둬달은 늘어날것 같았다.

눈을 찌긋하고 굽어보는 렴진욱의 시선에서 어떤 힐난을 의식한듯 리정우는 창백한 얼굴에 어줍은 미소를 띠워올렸다.

《제 청주때문에 화술을 좀 마셨습니다. 그것이 찬 날씨덕분에 요동친것 같습니다.》

《내 언젠가도 충고한것 같은데…》하고 렴진욱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린 술 마실 시간, 담배 피울 시간도 가져선 안되는 일군이요. 또 일군은 감정에 치우칠 권리도 없소. 뭐 기술부기사장에게 빨리 나이들라고 소리쳤다면서?》

얼굴에 엷은 홍조가 피여오르는 품이 리정우가 부끄러워한다는것이 알렸다. 예민한 사람이라 그이상 질책할 필요는 없을것 같았다. 그가 김지택을 친형님이상으로 존경한다는것을 고려해봐도 매정한 말을 내뱉은 다음 가책이 컸으리라는게 뻔했다.

렴진욱은 즉시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방수벽문제 말이요, 그걸 들어보자구.》

리정우는 버릇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승인없이 한 일에 대해 질책받을것 같았던 모양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눅들지 않고 담담히 설명했다.

《제 청주가 작성한 설계안을 콤퓨터에 입력시켜 계산해보았습니다. 3차원모의실험결과 방수벽이 안전하다는게 증명되였습니다. 우리 암질에선 균렬이 가지 않습니다. 참, 청주가 채광공정을 새롭게 콤퓨터화할 구상을 갖고 그걸 스케치해놓았더군요. 그앞에서 가책이 컸습니다. 청주의 자백에 의하면 그가 콤퓨터를 구입하자고 이웃군 기계공장의 기업경영프로그람을 짜주었다는겁니다.》

《뭐요? 그렇다면 무슨 비법사취는 아니지 않소?》

렴진욱이 너무 반가와 큰소리를 내뿜자 리정우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글쎄 그것만이면 좋겠는데… 그 공장 자재과장이 청주의 대학동창이여서 자기가 콤퓨터를 구해줄테니 프로그람을 짜달래서 해줬더니 예상밖의 많은 물품을 그 값으로 뽑아낸 모양입니다. 필경 그 자재과장이라는 사람이 오그랑수를 쓴것 같은데 청주는 자기가 요구한것이라고 끝까지 두둔해나섰다지 않습니까.》

《흠―》

렴진욱은 우선 놀랐다. 한 공장의 기업경영프로그람을 짜준다는것은 높은 수준의 콤퓨터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엄두를 못내는 일이다. 바로 청주가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있는것이다. 그렇게 보면 문제의 그 자재과장이 청주를 리용하여 한몫 보려고 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물론 청주도 자기의 기술을 콤퓨터구입이라는 상적목적에 리용했으므로 처벌받는것은 응당했다. 그러나 그것이 채광의 콤퓨터화를 위한 오직 그 하나의 시도였다면 그에게 들씌워진 장사군근성의 리기주의자딱지는 벗겨질수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청주의 지향을 제때에 파악하고 콤퓨터를 안겨주지 못한 자기에게 더 큰 결함이 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어쨌든…》하고 리정우가 계속했다. 《온 광산의 생산공정을 빨리 콤퓨터화해야겠습니다. 청주 같은 기술자도 있겠다, 광산의 잠재력도 커졌겠다 결코 복잡할것이 없습니다.》

일하자는 사람만이 사색하는 법이고 사색은 곧 창조를 낳게 된다. 렴진욱은 내심 만족스러웠다. 외국의 그 모래폭풍속에서 본 광산을 압도하려던 자기의 결심이 기사장의 머리속에서도 싹터오른것이였다. 리정우와 같은 이런 일군, 청주와 같은 이런 광부들을 믿어야 한다. 이들은 결코 박치명의 주장처럼 《빈주먹뿐》이 아닌것이다.

불쑥 떠오른 생각에 렴진욱은 화제를 돌렸다.

《현길실장 말이요. 국에서 소환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안됩니다!》 예견대로 리정우는 대뜸 반발해나섰다. 《그를 보내면 사람들이 우릴 욕할겁니다. 또 국의 사업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래… 옳소. 그래야 하오.》

렴진욱은 순간이나마 김현길의 소환을 다행으로 여겨보았던 일이 새삼스레 역겨워져 선뜻 동의했다. 인간적인 오랜 연고관계로 보아도 김현길은 바로 이 광산에서 사람답게, 기술자답게 완성시켜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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