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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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옥수금의 생활속으로도 한사코 비집고들어와 자리잡으려고 애쓰는것 같았다. 그가 보안원에게 불리워갔다는 소식을 알려준것은 실장 김현길이였다. 그는 실험실에서 제일 먼저 그 소식을 안것이 장하기라도 하듯 법석 떠들어댔다.
《…난 벌써 그렇게 될줄 알았어. 척 보기만 해도 매끄럽게 생긴게 엉큼한 속이 들여다보이거던. 이 불같은 때에 물건욕심을 내? 하긴 쑥뿌리에서 쑥이 돋을수밖에.》
시약체제를 바꾸는 류병근의 실험을 돕느라고 일지를 정리하던 수금은 가슴이 싸늘하게 얼어들었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김현길을 쏘아보았다.
《실장동진… 기뻐하는것 같군요.》
김현길은 까치다리를 하고 앉아 무릎을 툭툭 두드리다 말고 퀭해서 바라보았다.
《너 그거 무슨 소리야?》
《남의 불행을 응당한것처럼 말하니 말예요.》
《불행?…》 김현길이 요란하게 코방귀를 뀌였다. 《불행이란 정직한 사람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를 가리켜 하는 말이야. 청주가 정직해? 아버지같은 못쓸 놈이지.》
수금은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김현길의 규정은 짜장 옳기도 한것이였다. 어느 기관의 값비싼 제품들을 부정거래했다니 달리 말할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같은》이라는 말속에는 도덕에 유전성을 결부시키는 온당치 못한, 드러내놓은 비렬함이 울리고있었다. 바로 몇달전에만 해도 김현길은 청주를 두둔하여 잘 생기고 똑똑하다고, 그런 사람을 마다했다고 수금을 나무랐었다. 그것이 수금을 더욱 분격케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것도 있을수 있지 않아요?》
《이것봐라. 그따위 녀석을 감싸주는 용사가 다 생기구. 반했나, 응?》
김현길은 완전히 조롱으로 넘어갔다. 수금은 그만에야 발칵 일어났다.
《난 그 동무가 그렇게 너절하진 않다는것을 믿을뿐이예요!》
그길로 수금은 부선장에 뛰여들어갔다. 무엇이든 일감을 잡고 땀을 쭉 뽑지 않고서는 분을 삭여낼것 같지 않았다. 뭐 반했냐구? 난 다만 나를 부러워하던 그날의 청주동무 말을 믿었을뿐이야. 지금도 그렇게 믿고싶고.
부선장은 고르롭게 돌아가는 기대의 은은한 동음과 콸콸 넘쳐나는 정광거품의 흐름뿐 그가 땀흘릴 아무런 일감도 없었다. 부선공들 역시 기대사이를 한가히 거닐며 노래부르고있는 정도였다. 조업상태가 좋은 모양이였다.
휘영청 달밝은 이밤에 뻐꾸기 뻐꾹
기계화작업반 그 동무 날 찾아 뻐꾹
…
민경옥이라고 부르는, 마주서면 눈부터 웃는 퍽 잘생긴 처녀의 노래소리였다. 수금은 불쑥 그의 부모들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황해도 어데선가 살면서 오래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의견상이까지 있었는데 연하광산이 개발될 때 자원해 달려오니 제꺽 오누이를 낳았다는것이였다.
《어때, 여기 물이 좋지?》
모두들 그의 아버지만 만나면 이런 롱으로 인사를 대신한다고 했었다. 광산이 개발되였을 때 어버이수령님의 배려로 수질이 좋은 회양골물을 끌어 수도화를 해놓았던것이다.
수금은 부지중 한숨을 내쉬였다. 노래는 그것을 부르는 인간의 심장이 갈망하는 호소라고들 한다. 저 민경옥의 호소는 무얼가. 사랑에 대한 갈망? 그렇다면 나의 갈망은?
어쩔수없이 생각은 청주에게로 돌아갔다. 보안원에게 불리워간 청주, 자존심이 강한 동무이니 굴욕감에 태질하고있을것이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갑자기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겼을가. 그것으로는 무엇을 하려고?… 실장의 말처럼 뚱땅거려보려는 목적의 리기심따위에 유혹될 사람이 아니라는것만은 틀림없었다. 제발 그것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한것이였으면, 내가 부럽다던 그의 말이 진정이였으면!…
그날 저녁 수금은 퇴근하다가 어스름속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경황없이 휘청거리는 한 녀인과 마주쳤다. 여겨보니 청주의 어머니 심씨였다. 심씨는 수금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그 걸음이 당장 비탈아래로 굴러내릴듯 위태위태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농구나무를 떠옮겨 심어줄 때 사귄 병약하고 소심한 녀인, 필시 청주동무를 만나고 상심하여 저럴거야.
《어머니!》
수금은 차마 외면할수 없어 그앞으로 달려가 부축해주었다. 손이 얼음장같이 차거웠다.
《뉘시우?》
심씨가 부르르 몸을 떨며 겁질린 소리를 냈다. 수금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제 수금이예요. 옥로인의 손녀.》
대번에 심씨의 목소리가 울먹울먹해졌다.
《날 내버려달라구. 무슨 낯으루… 이제 무슨 낯으루…》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마시고 어서 집으로 가시자요.》
《이제 무슨 낯으루… 어휴―》
이번에는 녀인이 수금의 손을 꼭 움켜잡고 거기에 몸을 실었다. 세상의 눈을 피할길이 수금의 그 작은 줌속에 있기라도 하듯이.
청주네 집은 새로 지은 선광장마을복판에 있었다. 가을녘의 때아닌 폭우로 죄다 무너져내린것을 지배인이 돌격대를 조직하여 블로크 한장한장을 불에 말려가며 끝내 되살려냈던것이다. 널직한 방 두칸에 전실과 세면장, 실내창고까지 곁달린 아주 멋진 집이였다. 부엌에는 고운 무늬의 색타일을 붙였고 송진내 향긋한 가구들이 방에 쭉 늘어섰으며 큼직한 벽거울도 번쩍거렸다. 벽에 바른 산뜻한 도배지도 이채로왔다. 광산이 마음먹고 그 모두를 일식으로 해결해준것이였다.
수금의 눈을 끈것은 웃방 한쪽벽면을 꽉 채운 책장이였다. 주로 사전류와 기술서적인것으로 미루어보아 청주가 꾸준히 공부한다는게 알렸다. 그것이 현재의 청주와 기이한 대조를 이루어 수금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수금은 인차 돌아갈 생각이였다. 처녀가 총각네 집에 드나드는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면 말밥에 오르기도 하겠거니와 보다는 집에서 장작을 패야 했기때문이였다. 살림집이며 공공건물건설이 시작되자 광산에서는 모든 갱, 직장의 한교대인원을 떼여 거기에 돌리는 비상조치를 취했는데 그통에 운전사인 아버지는 종일 운전칸에 올라 광석을 운반하게 되였다. 끊임없는 진동속에서 대형수송차의 조향륜을 다루는 운전직업이 막중한 육체적긴장을 가져온다는것은 다 아는 일이였다. 그러다나니 아버지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쓰러져 내처 잠을 자기 일쑤였다. 결국 겨울철난방용 장작패기는 수금의 차지로 되고말았다.
《어쩌겠니. 이겨내야지. 우리가 살 집을 짓지 않니. 난 그런 큰 용단을 내린 지배인을 고맙게 생각한다. 좋은 래일을 믿게 해줬거던!》
가느다란 팔로 도끼를 휘두르는 딸보기가 민망스러워서인지 언젠가 아버지가 해준 말이였다. 수금이로서는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도울수 있는것이 오히려 기뻤다.
그런데 청주네 집구들이 너무 싸늘한데 그만 발목이 잡히고말았다. 심씨가 아들걱정에 종일 때식을 건느고 불조차 피우지 못한게 틀림없었다.
《어머니, 좀 누워계셔요. 제 불을 땔게요.》
심씨가 랭방에서 온밤 지낼것 같아 수금은 냉큼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것이 녀인을 또 울렸다.
《어휴― 내가 노상 골골 앓다나니… 며느리도 맞았으면 좋으련만 그 녀석이…》
훌쩍거리던 심씨는 수금이가 부엌에 얌전히 앉아 불때는것이 고맙고 신기하기도 한 모양 아예 전실에 나와 앉았다. 그의 따가운 시선을 목덜미에 의식하고보니 수금은 아궁이에서 너울거리는 불길처럼 얼굴이 화끈해났다.
《우리 애가 혼이 쑥 빠졌지.》하고 심씨가 푸념처럼 하소연을 터뜨렸다. 《글쎄 지배인어른이 불도젤을 모는데 뛰여들어 행패질할건 뭔고? 기사장이 그날 썩어지게 욕을 하니까 죽었수다 하고 듣기에 채심했나 했더니 갑자기 무슨 콤퓨터를 장만해야겠다면서 이웃군에 넘나들지 않겠나. 말려봤지만 어디 들어야지.》
《콤퓨터요?…》
그것은 수금에게도 자못 뜻밖이였다. 그러면서도 그 콤퓨터가 《피치못할 사정》이라는 자기의 실낱같은 기대에 대답을 주는것 같아 귀가 항아리만 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당자의 어머니인 심씨도 그 이상은 구체적인 내막을 모르는듯 가슴을 두드리며 새로운 넉두리를 토했다.
《이젠 어찌 살고? 애비 아들이 한본새로 내 가슴을 재로 채워주니 신세두 사납지. 이꼴저꼴 다 보지 않고 차라리 지레…》
《걱정마세요, 어머니!》
수금은 이상하게 눈물이 불쑥 솟아 혀아래소리를 내였다. 그다음 스스로가 불만스러워 고개를 쳐들고 말에 힘을 주었다.
《걱정마세요. 전 청주동무를 믿어요. 그는 너절한 욕심때문에 물건에 손댈 동무가 아니예요. 일시 법을 어겨 처벌은 받겠지만 전… 그가 어머니를 꼭 기쁘게 해드리리라고 믿어요. 그래요, 믿어요!》
심씨의 눈에서 눈물이 텀벙텀벙 쏟아졌다.
《그랬으면 작히 좋겠나.… 아이구, 임자 맘씨는 어쩌면 그렇게도 비단결같나.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쑥 내려가누만.》
그리고나서는 또 새로운 설음이 북받치는지 꺽꺽 느꼈다.
《욕심이 불같지만… 우리 앤 그런 고운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 평양의 그 채옥이가 괜히 뿌리쳤겠나.》
《그… 채옥이가… 어땠어요?》
수금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여나온 물음이였다. 그 말을 뱉자마자 수금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왜 그걸 굳이 알고싶어하는가. 왜 굳이?
심씨는 그사이 수금을 제 사람이나 다름없이 푹 믿게 된 모양이였다. 녀인은 움쭉 일어나 방안으로 올라가더니 책상빼람을 이것저것 뒤진 끝에 몹시 구겨진 흔적이 있는 편지봉투 하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보라구. 뭘 숨기겠나. 우리 애가 버린걸 그래두… 체넨 깨끗했지만 그만 달라져버렸어.… 보라구.》
심장이 콩마당질하는듯 했다. 수금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속지를 뽑아냈다. 류병근아바이한테서 들었던 그 쓰라린 《사랑의 거부》가 이 글줄에 담겨있을것이다. 하지만… 청주라는 인간의 심장을 제일 가까이에서 독차지했었던 처녀의 숨결, 맥박은 과연 어떠했던지?…
정작 글줄을 더듬기 시작하자 수금은 자기 가슴이 얼음덩이처럼 싸늘하게 얼어드는것을 의식했다. 《우리 관계는 사랑이 아니였어요.》하고 거침없이, 무자비하게 시작한 편지에서 그가 발견한 채옥이라는 처녀는 어느 소설에서 표현한 《녀인은 아름다왔다. 랭담한 아름다움, 그래서 전률이 가는 살기띤 아름다움이였다.》라는 문구 그대로로 련상되였다. 아니, 류병근아바이의 말처럼 아주 발칙하게 여겨졌다. 어쩌면 이렇게 철면피할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매정한 그 한문구 한문구가 날카로운 비수로 되여 애인의 심장을 찌르리라는것을, 독침처럼 온몸과 넋을 마비시키고 중독시켜버리리라는것을 전혀 고려도 할수 없을만큼 성정이 메마른 처녀였는가?… 못 참아, 이 빤드름한 거짓말을 규탄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
수금의 눈은 반사적으로 편지봉투의 주소를 더듬었다. 잘 기억해두어야 했다.
그때였다. 《계십니까?》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덜컹 열렸다. 문가에 기사장 리정우의 우선우선한 얼굴이 나타났다. 수금은 질겁하여 아궁이속에라도 기여들듯 고개를 무릎사이에 틀어박았다. 큰 인연도 없는 총각의 집부엌에 처녀의 몸으로 떡 들어앉은 자기가 비로소 얼마나 방정치 못해보이겠는지 실감되였기때문이였다. 차라리 천연스레 인사하고 변명하는 말이라도 하는것이 자연스러웠을테지만 이젠 그것도 계기를 놓친셈이였다.
다행히 리정우는 고개를 끄덕여 알은체를 해보이는것으로 그치고 심씨의 두손을 잡았다.
《어머니, 제 청주를 잘 돕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혁명화 석달로 교양하게 했으니 아마 그때엔 좋은 아들이 되여 돌아올겁니다.》
수금은 이미 문밖으로 도망쳐나온 뒤였다. 이번에도 그는 자기가 천연스레 인사말을 던지고 유유히 나오지 못한것이 분하기 짝없었으나 《석달》이라는 말마디가 귀에 걸리자 새삼스러운 노여움에 아프게 혀를 깨물었다. 왜 석달만 시켜? 채굴장에선 광맥이 끊어져 다들 아우성인데 돈벌이에만 미쳐돌아간 그를 왜? 한 1년은 혼내워야 해. 1년은!…
그러면서도 어둠속을 정신없이 걷는 수금의 눈에서는 쓰라린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그는 처녀시절이야말로 눈물이 아주 중요한 한 내용이라는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