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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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공교로운 일치였다. 젊은 리정우가 기사장으로 임명받고 온 날 신통히 까마귀 날자 배떨어지는 격으로 김지택이 고질적인 속탈이 도져 병상에 드러눕고만것이였다. 그는 억울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오해할것이다. 기사장이 못된게 분통해서 심화병에 걸린게라고.

지금껏 기사장대리로 힘껏 일해온 그였다. 자기 능력이상으로, 육체적한계이상으로 머리를 쥐여짰고 드달려다녔었다. 그만큼 사업에서 빈틈이 없기도 했었다. 하여 사람들은 앞질러 《기사장동지!》라고 깍듯이 인사하군 했다. 과히 싫지 않은 부름이였다. 또 그것이 오히려 아주 자연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며칠전 병문안왔던 합숙식모 라은선과 나눈 이야기가 불쑥 생각키웠다. 그때 그 녀인은 김지택의 병에 좋은 산꿀 한단지를 가지고왔었다.

《사람들이 날 두고 뭐라지들 않소?》

무엇보다 그것이 근심스러워 물었더니 라은선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혀아래소리를 냈다.

《사람들 낯을 이제 어떻게 보겠느냐고… 차라리 아주 집으로 들어가는게 낫다고…》

《그게 임자 생각은 아닌가?》

《아니, 저야 그저…》

이미 혈압이 올랐던 김지택은 더 듣지도 않고 왈칵 성을 냈다.

《광산일을 버리면 난 죽는 몸이야!》

기실 그는 광산을 몹시 사랑하여 두 자식모두를 사리원지질대학에 보내였고 맏이는 벌써 졸업하여 건설갱에서 일하는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라은선에게 역증을 쓴 일이 후회되고 미안쩍기 그지없었다. 마음씨 곱고 그렇듯 고지식하기도 한 녀인이였다.

지배인이 기사장을 할 때 맞선을 보였던 라은선을 김지택은 실상 잊지 못해했다. 자기보다 10년이나 아래여서 아직도 살결이 뽀얀, 예쁘장한 녀성인데다가 무척 성실하고 일솜씨 깨끗하다는 평판이여서 아니아니 하면서도 호기심에 끌려 선보기에 나선 그였었다. 그런데 오래동안 맡아보지 못한 가벼운 화장품냄새와 어울린 녀성의 야릇한 체취에 그만 머리가 핑 돌아 말도 변변히 건네보지 못한채 황황히 도망쳐 나왔던것이다. 그리고는 후회와 자신에 대한 저주로 온밤 끙끙 앓았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립장은 과연 어떤지 하는 타는듯 한 궁금증을 더욱 촉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애초에 그런 녀성이 광산마을에 있었다는것조차 모르고 지내온 자기가 이상스러웠다. 하여 벼르고 벼르다가 슬그머니 다시 찾아간것이 그만 인연으로 얽혀져버렸다. 그러면서도 두가정을 합치는 일만은 아퀴가 지어지지 않았다.

《난 알아.》 하고 하루는 김지택이 짜증을 냈다. 《다 늙구 볼품없는 내따위가 임자눈에 들수야 없지. 원래 녀자건사두 잘 못하는 위인이니까.》

《아니예요. 그래서가 아니예요.》

녀인은 황황히 부르짖었는데 눈가에 핑 눈물이 고이기까지 했다. 그다음 다시 고개를 수그리고 속삭이듯 계속했다.

《거기서야 진실하고… 열정적이고… 좋은분이라는걸 전 알아요. 그저 내 아들이… 그 앨 제손으로 깨끗이 군대까지 보내고싶어 그러는거예요.》

김지택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말았다. 그의 심정이 충분히 헤아려졌다. 이붓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게 구김살없이 키워 내세우자는 어머니다운 결곡한 심정… 그런데 정작 병상에 눕고보니 지금따라 집안이 쓸쓸하고 마음 또한 외로와 견딜수 없었다. 차라리 아들녀석이라도 빨리 장가들어 며느리덕을 봤으면 좋으련만 벌써부터 제 색시를 아낄 잡도리인지 제켠에서 빨리 후어머니를 모셔오자고 채근하는 형편이였다.

김지택은 그 아들을 통하여 매일매일 광산의 생산정형을 통보받고있었다. 그중에서 그를 제일 괴롭힌것이 채굴장에서 아주 사라져버린 고품위광맥이였다. 기술부기사장으로 직무를 옮긴 터여서 채굴계단을 어느쪽으로 어떻게 형성하겠는가 하는 설계과제는 그에게 차례진 당면임무가 아닐수 없었다. 시추기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할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성에 제기하고 렬차로 실어다가 연남령까지 넘겨오느라면 몇달이 걸릴지 알수 없다. 결정적으로 갱정을 낮춰보아야 광맥이 잡히든 방향이 결정되든 할텐데 그것 또한 조련치 않았다. 엄청난 박토량을 제껴야 했기때문이였다.

김지택은 몇번이나 그것을 검토해보려고 현장에 나갈 결심을 했다가도 주저앉군 했다. 진통이 명치끝에 치받쳐 발을 움직일수 없어서였다. 거기에 또한 낯을 화끈하게 만드는 그 무엇도 은근히 뒤다리를 잡았다.

…그날도 텅 빈 집안에 누워 궁싯거리는데 기술과의 채광설계원이 불쑥 찾아왔다. 오전 열시경이였다.

《이걸 검토해보고 수표해주십시오.》

그가 내민 설계문건을 펼쳐든 김지택은 당장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졌다. 까무라치게도 강 한쪽의 방수벽을 수십메터나 쑥 깎아먹는 채광설계와 장약설계였다.

《누가… 어떤 놈이 이따윌 궁리해냈어, 엉?》

벼락같은 고함에 젊은 채광설계원은 와뜰 놀라 자빠질듯이 뒤로 한발 물러앉았다.

《기사장동지가… 벌써 굴진을 시작했는데요.》

《정우 그 사람이?…》

눈이 뒤집힐것 같았다. 그 얌전데기 리정우가 젊은 혈기를 믿고 이런 어벌뚝지 큰 모험을 벌려놓다니. 당장 압록강물이 터질것이다. 그러면 광산은 망한다!

김지택은 후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다음 바지를 꿰고 저고리를 걸치면서 소리질렀다.

《가라구, 가! 그따윈 다시 들고다니지 말아, 알겠어?》

채굴장으로 쭉 뻗은 큰길에 나섰을 때에야 김지택은 자기가 창황중에 솜옷을 걸치지 못했다는것을 알았다. 땅땅하게 얼어붙은 압록강얼음우로 눈보라가 뱀처럼 구불거리며 휩쓸고있었다. 그 맵짠 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러나 김지택은 되돌아설수 없었다. 순간이 급했다.

채굴장에 다달았을 때에는 귀박죽이 꽛꽛이 얼고 신발속의 발가락들도 남의 살같이 감각이 없어졌다. 이발이 떡떡 맞쪼였다. 그래도 눈에선 대뜸 불이 일었다. 방수벽면에 펑펑 뚫려진 세개의 소갱아구리가 선참 눈에 띄인것이였다. 저렇게 먼저 시작해놓고는 뭐 이제와서 수표해달라고 찾아와?

리정우는 그중의 한 소갱속에 기여들어가 굴진공들에게 뭔가 열심히 설명해주고있었다. 최소저항선법이니 부피법이니 하는 말마디들이 튀여나오는것으로 미루어 장약실을 어떻게 내는가 하는 강의같았다.

《나 좀 보자구.》

김지택은 덮어놓고 리정우를 난장으로 끌어냈다. 귀따가운 압축기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더 높이게 만들었다.

《기사장! 굴진을 당장 중지하게, 당장!》

리정우는 아프다고 꿈쩍않던 김지택이 무엇때문에 헐금씨금 채굴장까지 달려왔는지 이미 다 짐작하고있은듯 눈을 내리깔고 씨무룩이 웃고있었다. 고집쓸 일이 생겼을 때의 버릇이였다.

《걱정마십시오. 청주의 계산자료를 확인해보고 내린 결심이니 틀림없습니다. 시추기를 기다리자면 몇달 걸릴판에 생산을 죽일순 없지요.》

《뭐, 청주?》

김지택은 상고머리칼이 다 흔들리도록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껏 그 녀석때문에 리정우가 부기사장을 할 때부터 옥신각신한것을 생각하면 넌덜머리가 나는 그였다. 너무 격한 나머지 목까지 컥컥 개키였다.

《그따위 건달군과… 같이 춤춰?… 그녀석 계산자료에 광산을 떠맡겨?… 이제 보니 자네두 청맹과니였구만. 난 죽으면 죽었지 이따위 설계엔 수표를 못해!》

김지택은 《죽으면 죽었지》를 실제로 보여주려고 결단성있게 휙 돌아섰다.

청맹과니란 그가 사람을 모욕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였다.

리정우는 아무리 보아야 청맹과니였다. 방수벽을 깎아내면 기필코 압록강이 터질것은 분명한데 그는 기사장이라는 《자기》의 명분만 생각하고 광산의 운명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날뛰고있는것이 아닌가.

이래저래 울화가 치민 김지택의 눈에 마침 대파작업을 하느라고 집채같은 바위들을 뛰여넘으며 도폭선을 늘이는 광부들이 걸려들었다. 그들은 일을 쉽게 빨리 해제끼려고 사방 갈지자로 마구 도폭선을 늘이고있었다.

《이게 무슨짓들이야?》 김지택은 불끈하여 그들앞으로 달려가 욕을 퍼부었다. 《도폭선이 초당 7~8백메터나 뛴다는걸 몰라? 그렇게 꺾어늘이면 고속으로 내달리던 자동차가 급곡선에서 굴듯이 튀여나간단 말이야. 당장 다시 늘여!》

대파공들이 서로 눈을 끔벅이며 흐물흐물 웃기 시작했다. 기실 김지택의 잔소리는 리론상의 가능성이지 아직까지 그런 일은 생겨본적도 없었던것이다.

《부기사장아바이, 거 감기 드시겠습니다. 제 옷을 벗어드릴가요?》

한 친구가 짐짓 걱정스러운듯 소리쳤다. 그곁의 친구는 한수 더 떴다.

《저, 우린 잘 몰라 그랬는데 부기사장동지가 몸소 이신작칙해서 늘여주는게 어떻습니까?》

작업장에 나오면 욕을 탈줄 모르는 호방한 광부들이 늘 김지택을 허물없는 자기 사람으로 믿고 던지군 하던 롱이였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것이 뼈아팠다. 자기가 기사장이 되였다면 아무리 친밀하다 해도 저런 식으로 말하진 못했을것이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가엾은 처지가 실감되여 김지택은 진저리쳤다. 쇠가 손에 떡떡 얼어붙는 날씨여서 아까부터 맞쫏던 이발이 계속 떨리게 몹시 추운것도 사실이였다.

《망할 녀석들.》

어쨌든 일은 일이였다. 김지택은 대파장을 쭉 훑어보고나서 대뜸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폭선을 늘여야겠다는 타산이 서자 닁큼 한 바위우에 뛰여올랐다. 그다음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능란하게 일을 시작했다.

대파공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언제 시시덕거렸나싶게 주의깊은 눈길로 김지택의 손가락놀림을 여겨보았고 도폭선이며 폭약들을 옮겨주기도 했다. 김지택은 잠간사이 갈지자로 늘여졌던 도폭선을 채광계단같이 고르롭고 일매지게 바꿔치웠다.

온 몸이 후끈해났다. 피뜩 라은선이 언젠가 권고하던 말이 생각났다.

《거기 병은 몸을 차게 해서 더 도지는거예요. 늘 현장에서 얼어지내시니…》

아니, 현장을 떠나 방구석에 처박혀지낸탓에 덧난것이다.

대파공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저런, 도폭선을 30프로는 절약했군요.》

《이신작칙 만세!―》

《젠장, 역시 우린 마구잡이들이였댔어.》

《추우실텐데 빨리 휴계실에 들어가십시오. 점심땐 우리하고 같이 한대포 하셔야 합니다.》

마감말은 채광갱의 영양제식당을 념두에 둔것이였다. 광산에서 그중 로동강도가 센터여서 식량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채광에만은 꼭 고기와 로동보호용술까지 받쳐 점심한끼를 보장했던것이다.

김지택은 마음이 좀 풀리자 리정우의 일을 팽개치고 훌쩍 돌아선것이 가책되기 시작했다. 젊은 기사장이 시작부터 어떤 실적을 올려보려고 무모하게 덤벼치는것을 외면한다면 《자, 햇내기를 내세우더니 꼴이 어떻소?》하고 잘코사니야 하는짓으로 치부될게 아닌가. 그런 용렬한 인간이 되여서는 안된다. 늙은게 책임적으로 보좌해주는것이야말로 광부다운 도리인것이며 특히는 광산이 빠져들 위험을 미리 막아낼수 있는것이다.

벌써 사방에서 호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파하겠다는 예고신호였다.

할수없이 휴계실쪽으로 터벌터벌 걸어가는데 등뒤에서 청맑은 목소리가 따라왔다.

《아니? 이젠 다 나으셨어요?》

처녀굴착기운전공 리춘애였다. 춘애는 구을듯 통통 달려와 손에 매달렸다.

《어마, 입술이 다 시퍼래지셨네.》

춘애는 무작정 제 솜옷을 벗어 김지택에게 씌워주었다.

《됐다, 됐다. 너나 입어라.》

《난 춥잖아요. 막 후끈후끈한걸요 뭐.》

아닐세라 춘애의 볼은 익은 사과알처럼 발깃했다. 무척도 생신한, 그래서 몹시 부러운 젊음이였다. 처녀는 연송 재잘거렸다.

《우리 경철오빠 있잖아요.… 아이, 굴착기중대장! 얼마나 멋진걸 궁리해냈는지 몰라요. 분리발파법이라는건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김지택은 골살을 찡그렸다. 도끼날처럼 손을 대면 당장 베여질것 같은 날카로운 코날을 가진 주경철을 그가 모를리 없었다. 롱질 잘하는 익살군이였지만 기능이 높고 통솔력까지 강해 제꺽 굴착기중대의 중대장으로 제발된 제대군인이였다. 그런데 왕청같이 무슨 발파법을 연구했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고 오지랖 넓은 희떠운짓같아 아니꼽기도 했다.

《얘, 얘, 뻔한짓이야.》

《야― 그러지 말고 들어보시라는데두요. 정말 기막혀요, 예?》

춘애는 어린애처럼 김지택의 손을 잡아흔들며 끈덕지게 졸라댔다. 김지택은 허허 웃었다.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밝게 해주는 처녀의 천진하고 상쾌한 미소와 어리광을 뿌리칠수는 없었다. 또 혹시 알겠는가.

《젠장, 그럼 어디 말해봐라.》

《정말이지요?》

춘애는 냉큼 무릎을 접으며 땅바닥에 금을 그어보이기 시작했다.

《자, 이건 채광계단이구요, 이건 산화층…》

아닐세라 주경철의 착상은 진짜 호기심을 자아내는것이였다. 연하광산의 광체는 박토를 제끼면 꽤 두터운 산화층에 덮여있는데 그것은 부선이 되지 않는것이였다. 그래서 따로 발파하여 제껴버려왔었다. 주경철은 산화층밑의 기본광체에 굴을 뚫어 발파함으로써 기본광체는 갱정으로 날려떨구고 산화층은 그것대로 거석이 되여 그 자리에 주저앉도록 하자는것이였다. 일석이조의 실리가 큰 제안이였다.

《흠, 그 사람이 굴착기만 아는줄 알았더니 채광의 보배로군. 나한테 보내거라. 더 완성해서 도입하게.》

《아이 좋아라! 그럼 내 당장 데려올게요.》

또다시 통통거리며 달려가던 춘애가 갑자기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시무룩해져있었다.

《부기사장동지, 우리 구급원 정옥선생말예요. 지배인동진 너무해요. 그래서 경철오빤 지배인동지한테 한번 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있지요 뭐.》

《건 또 무슨 소리냐?》

그 순간 머리우 휴계실에서 문제의 정옥이 고개를 내밀고 전화받으라고 김지택을 불렀다. 춘애는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모양으로 냉큼 김지택의 등뒤에 숨더니 캐득거리며 속삭였다.

《내 후에 말해줄게요.》

전화는 보안원이 기사장을 찾는것이였다. 보안원은 내친김에 김지택에게 그 사유를 설명했다.

《김청주라고 알지요? 그가 지금 무슨 사취건혐의에 걸려 단속되였습니다. 그 처리문제를 토의할 시간을 내달라고 기사장동지에게 전해주십시오.》

쾅! 쾅!… 발파가 시작되였다. 압축된 공기가 휴계실창문을 때리고 발밑이 부르르 진동했다. 김지택은 이를 악물었다. 어디가나 문제인 청주, 그럼에도 리정우는 그녀석과 맞장구를 치면서 방수벽을 허물자고 덤벼치고있었다. 신통히 제 애비본을 따르고있는 녀석인줄도 모르고.

《그래, 기사장도 이젠 깨닫겠지.》

저도 모르게 발파소리를 세여가며 김지택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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